내가 미운 날 보리 어린이 25
오승강 지음, 장경혜 그림 / 보리 / 2012년 10월
장바구니담기


재운이 소풍날

누나가 아파
병원 가느라
도시락도 못 가져가는 소풍날.

먹을 것이라도
많이 사 먹으라고
어머니가 주신 돈 오천 원.

가만히 계산해 보자.
백 원짜리 과자는 오십 개
이백 원짜리 과자는 스물다섯 개
배가 터질 것 같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재운이 산 것
백 원짜리 공책 스무 권
천 원짜리 연필 두 다스
오십 원짜리 지우개 스무 개.

모두 제 먹을 것만
가방에 가득 싸
어깨에 메고 줄지어 선
아이들 사이에

먹고 싶은 것 참고
우리 반 아이들에게 줄 학용품을 들고
기쁜 얼굴로 서 있는
도움반 아이
재운이 소풍날.-22쪽

다시 옮긴 교실

다 낡아
바람 숭숭 들어오는
슬레이트 교실.

겨울날
우리 교실에
어느 어른 다녀가신 뒤
교무실 옆
새로 지은 교실로 이사 갔다가

봄이 오자
비워 둔 옛날 교실
다시 옮겨 왔어요.

새로운 동무 두 명
함께 왔어요.

새로 지을
새 교실에
들어가기 위해

이곳에 다시 왔다
선생님은 말했어요.

말하는 선생님 얼굴
슬퍼 보였어요.

그러나 우리는 만세를 불렀어요.
유치원과 우리 교실만 있는
외딴 교실.

마음대로 놀 수 있어 좋았어요.
눈치 보지 않고
소리 지르며
뛰어놀 수 있어 좋았어요.-25쪽

내가 미운 날

내가 술래일 때
아이들은 재미있게 놀다가도
저희들이 술래 되면
나를 바보라고 놀리며
술래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럴 때 나는 정말 바보처럼
히히 웃고 말지만
참지 못하고 울고 달려들 땐
되레 저희들이 울며 집에 갑니다.

내가 더 많이 맞었어도
바보 자식이 남의 아들 때렸다고
아주머니들은 우리 집에 달려와서
우리 엄마까지 울려 놓고 갑니다.

그런 날 엄마는
내 등 어루만지며 섧게 웁니다.
너는 아무 죄 없다며
다 내 죄라시며 섧게 웁니다.

그러나 나는 압니다.
우리 엄마 정말 죄 없습니다.
놀려도 끝까지 참지 못한 내가 죄 있습니다.
끝까지 참지 못한 내가 밉습니다.-46쪽

걱정

아침에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낯선 사람이 너희에게
과자 사 준다고 따라오라면
어떻게 할래?"

모두가 안 따라가겠다 하는데
수정이는 따라간다 합니다.
과자 먹고 싶어 따라간다 합니다.

"수정아, 따라가면 집에 못 온다.
엄마 아빠 못 본다."
따라가면 안 된다고
선생님과 우리들이 아무리 말려도

"그래도 간다. 그래도 간다."
가겠다고 울면서
수정이는 말합니다.
악을 써 가며 말합니다.

우리는 걱정이 되어
정말 걱정이 되어
공부가 끝난 뒤
줄을 지어 집에 갔습니다.
수정이 앞세워 함께 갔습니다.-51쪽

수정이 저만 아는 말

수정이 학교에서 하는 말은
네 가지밖에 없다.
네 가지 말
하지 않고 아껴 둔다.

동무가 울고 있을 때
동무가 저를 귀찮게 할 때

수정이 저만 아는 말
아껴 둔 말이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온다.

메타비타 주세요
치이토오스
죽도시장
태엑시.

수정이 아껴 둔 네 가지 말
무슨 암호와도 같은
저만 아는 말이
눈물과 함께 터져 나온다.-74쪽

아무도 쓰지 못한 이름

아침 자습 시간에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할아버지와 할머니 이름을
적어 내도록 하셨다.

그러나 나는 쓰지 못했다,
할아버지 이름도
할머니 이름도.

옆을 둘러보니
경식이도 아름이도
연필을 쥐고
겸연쩍게 사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외국 가수들 이름은
노래만 들어도
척척 알아맞힐 수 있는데

야구 선수들 생일도
이름만 대면
척척 대답할 수 있는데

우리들은 아무도 몰랐다.
자기 할아버지 이름은
자기 할머니 이름은.

시험지를 모아 쥔 선생님은
아무 말씀도 없이 씁쓸한 얼굴로
우리들 얼굴을 바라보셨다.

무슨 말씀이라도 하실 듯한
선생님 얼굴을 보며
우리는 고개를 푹 숙였다.
자꾸만 얼굴을 감추고 싶었다.-10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장바구니담기


하지만 이것은 단지 나만의 감상적인 생각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 소파는 노인들이 단지 앉아서 쉬기에 좋았을 뿐만 아니라 빌라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감시하기에도 더없이 좋은 장소였으니까. 애써 무심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노인들의 호기심은 안쓰러우리만치 애절해 그들의 탐욕스런 시선은 언제나 주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좇느라 분주했다.

-46쪽

최근의 엄마에겐 의아한 대목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온 식구가 한데 모여 살면서부터 엄마에게 알 수 없는 활기가 느껴졌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고는 하지만 엄마는 이미 칠순이 넘은 노인이었다. 게다가 근래에 엄마에게 기분 좋을 일이라곤 손톱만큼도 없었다. 오히려 막내딸 미연까지 이혼을 하고 친정으로 쫓겨나 엄마로선 그야말로 혀를 깨물고 죽어도 시원찮을 상황이었을 텐데도 엄마는 마치 물 좋은 온천에라도 다녀온 것처럼 얼굴에 생기가 넘치고 목소리까지 한 톤 더 높아졌다.

-57쪽

-사람은 어려울수록 잘 먹어야 된다.
나는 엄마의 그 말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결기 같은 게 느껴졌는데 실제로 그날의 삼겹살을 시작으로 엄마는 거의 한 끼도 빠짐없이 고기를 상 위에 올렸다.
-59쪽

어릴 때부터 용돈과 학원비로 맺어진 이 기묘한 모녀관계는 얼핏 생각하면 골치 아픈 양육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려는 무지한 부모의 전형적인 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점에선 서로 물고 빨고 핥느라 개인의 인생을 모두 소진시켜버리는 여느 한국식 가족관계보다 더 간편하고 합리적인 면도 있었다. 정상적이지 않은 가족관계보다 더 간편하고 합리적인 면도 있었다. 정상적이지 않은 가족사와 뭔가 석연치 않은 직업, 복잡한 남자관계 등 늘 무언가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두 모녀가 그런 식으로 서로 공존하는 방법을 찾은 건 어쨌든 다행이라면 다행한 일이었다.

-78쪽

그날 밤, 나는 옆에서 오함마가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내가 마지막으로 사랑한 게 언제였을까 생각해보았지만 마치 누군가를 단 한 번도 사랑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사랑이란 단어가 낯선 외국어처럼 생경하게 느껴졌다. 그래, 마침내 나는 괴물이 되고야 말았구나! 인생에서 아무런 의미도 찾지 못하고 술에 찌들어 사는 동안 어느 틈엔가 감정은 메마르고 사랑을 믿지 않는 괴물...... 그게 바로 마흔여덟에 발견한 나의 모습이었다.

-91쪽

-아마 다들 눈치 채고 있었을 거야. 근데 왜들 모른 척했어? 그때 누군가 따귀라도 갈기면서 욕이라도 하지 그랬어. 아니면 머리라도 깎아서 집에 들어앉히든가. 그런데 나한테 뭐라고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 씨발, 무슨 가족이 그래?

-132쪽

엄마를 포함해 나나 미연이나 오함마나 전과자이긴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모두 실패의 낙인을 간직하고 있었고 과거에 발목이 잡혀 있었다.
도대체 이놈의 집구석에 멀쩡한 사람은 아무도 없단 말인가? 그리고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우리 식구들에겐 그토록 어려운 일이었던가?
-140쪽

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런 행복을 얻기 위해서 무슨 짓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것은 그저 위선에 가득 찬 역할극에 지나지 않는 걸까? 그래서 실은 그것이 드라마에서나 가능할 뿐, 현실에선 영원히 실현될 수 없는 허망한 판타지일까?
집에 들어와 함께 살기 전까지 나는 가족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은 생각할 때마다 가슴을 답답하게 하고 힘이 쭉 빠지게 만드는, 평생 달고 사는 오래된 지병 같은 거였다. 평생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변두리만을 떠돌며 낭떠러지를 걷듯 살아온 천애의 삶, 아무리 똥줄 타게 뛰어다녀봤자 입에 풀칠하는 것조차 버거웠던 무능과 무지, 숱한 수모와 상처, 불명예와 오명의 역사...... 도대체 내가 어떻게 가족에 대해 자부심과 애정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141쪽

짱알거리는 목소리로 ‘씨발’거리며 눈을 치켜뜰 땐 아무리 조카딸이라도 머리통을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그애는 우리 삼남매가 모두 죽고 난 뒤에 우리를 기억해줄 유일한 다음 세대였다. 게다가 그애는 나에게 담뱃값을 대주지 않았던가!

-175쪽

예쁜 여자들이 흔히 그렇듯 그녀는 구태여 착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래서 착하지 않았다.

-184쪽

그녀는 한마디로 기내식 같은 여자였다. 별로 당기지는 않는데 안 먹으면 왠지 손해일 것 같고, 그래서 억지로 먹기는 먹되 막상 먹으려고 보니 뭔가 복잡하고 옹색하기만 하고, 까다로운 종이접기를 하듯 조심스럽고 겨우 먹고 나면 뭘 먹었는지 기억도 잘 안 나고, 식후에 구정물 같은 커피를 마시다보면 뭔가 속은 것 같은 기분도 들고, 갖출 건 다 갖춘 것 같은데 왠지 허전하고, 결국 포장지만 한 보따리 나오는 그런 여자였다. 그녀의 얼굴엔 언제나 ‘안전벨트를 매주시겠습니까, 손님?’이라고 쓰여 있었다.

-185쪽

그에게 빚을 졌다는 부담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 때문에 오함마를 점점 더 멀리하게 되어 출감하기 몇 달 전부턴 면회도 가지 않았다. 그러다 급기야 죄의식과 부채감 등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서 가장 어리석고 나약한 사람들이 선택하는 방식을 택했다. 즉, 그를 미워하게 된 거였다. (...) 나는 억지로 자신을 합리화했고 급기야 그가 교도소에 간 게 당연한 일처럼 느껴졌다. 잘못된 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192쪽

우리는 서로 사랑했던 걸까?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아무런 약속도 기대도 없는 쿨한 사이였을 뿐이다. 열정이 없으니 상처도 남지 않는 게 당연했다. (...) 내가 믿기론, 사랑이란 여자의 입장에선 ‘능력 있는 남자에게 빌붙어서 평생 공짜로 얻어먹고 싶은 마음’이고 남자의 입장에선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건강하게 낳아 양육해줄 젊고 싱싱한 자궁에 대한 열망’일 뿐이었다. 우울한 얘기지만 그것이 사랑의 본질인 것이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그 모든 사랑 이야기는 대중을 기만하는 사기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젊지도 않고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그것은 사랑하곤 애초에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이야기일 뿐이었다.

-216쪽

자존심이 없는 사람은 위험하다. 자존심이 없으면 자신의 이익에 따라 무슨 짓이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건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사람이다. 그것은 그가 마음속에 비수 같은 분노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자존심을 건드리면 안 되는 법이다.

-222쪽

니들처럼 배운 게 없는 놈들은 잘 모르겠지만 원래 사람은 이렇게 다루면 안 되는 거야. 우린 위대한 문명을 창조한 존재고 우리 스스로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살도록 제도를 발전시켜왔거든. 니들이 무슨 짓을 하면서 살아도 좋지만 절대로 그 사실을 잊어선 안 돼. 하지만 니들은 그 사실을 망각하고 날 짐승처럼 다뤘어. 그게 얼마나 슬프고 끔찍한 일인지 너희들은 모를 거야. 그것은 단지 나 개인을 두들겨 팬 게 아니라 인류가 수천 년 동안 피 흘리며 이룩한 위대한 유산을 짓밟은 거야.

-251쪽

최근에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나는 언제나 특별한 혜택을 받고 살았다. 적어도 나의 가족 안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그들은 늘 나를 배려해줬고 무엇에서든 우선권을 주었다. 그들 덕에 나는 가족 관계 안에서 평탄한 삶을 살았다. 오함마에게 두들겨 맞은 것도 어릴 때의 이야기일 뿐, 나이가 들어서는 오히려 그가 나를 어려워했다. 순전히 내가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자신들과는 뭔가 다른 미래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들은 나에게 자신들과는 뭔가 다른 미래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들은 나를 지지해줬지만 나는 고생 없이 평탄하게 살아온 덕에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인간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그들을 무시하고 경멸했으며 그들을 부담스러워하기까지 했다. 나에 대한 기대가 부서져 산산조각난 뒤에도 그들은 나를 버리지 않았고 나 자신이 나를 포기한 뒤에도 그들은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252쪽

나는 언제나 목표가 앞에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 이외의 모든 것은 다 과정이고 임시라고 여겼고 나의 진짜 삶은 언제나 미래에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 결과 나에게 남은 것은 부서진 희망의 흔적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헤밍웨이처럼 자살을 택하진 않을 것이다. 초라하면 초라한 대로 지질하면 지질한 대로 내게 허용된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내게 남겨진 상처를 지우려고 애쓰거나 과거를 잊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겠지만 그것이 곧 나의 삶이고 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286쪽

여기서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헤밍웨이가 아기였을 때, 완벽한 문장으로 처음 한 말은 ‘나는 버팔로 빌을 몰라요’였다고 한다. 작가 그레이엄 그린이 처음 한 말은 ‘개가 불쌍해’였다고 알려져 있다. 역시 비범한 작가들은 뭔가 달라도 처음부터 다른 모양이다. 그렇다면 내가 완벽한 문장으로 처음 한 말은 뭐였을까? 그것을 말해줄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나도 알고 당신도 알고 우리 모두가 안다. 그것은 틀림없이 다음과 같은 말이었을 것이다.
맘마.
-28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타블로이드 전쟁 - 황색 언론을 탄생시킨 세기의 살인 사건
폴 콜린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13년 4월
장바구니담기


호리호리한 헝가리 출신 이민자인 퓰리처는 남북전쟁 때 북군에 입대해, 셰리든 장군이 승리로 이끌었던 셰넌도어 계곡 전투에 기병으로 참여했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뉴욕으로 흘러들어왔다. 지금 신문사가 있는 이 자리에 원래는 프렌치 호텔이 있었는데, 무일푼 퇴역 군인이었던 퓰리처가 이 호텔에서 쫓겨난 일이 있었다. 20년 뒤 서부에서 부자가 되어 돌아온 퓰리처는 복수라도 하듯 호텔을 밀어 버리고 바로 그 자리에 뉴욕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세웠다. 퓰리처 소유의 건물을. 세계에서 가장 넓은 인쇄실을 떠받치는 데 들어간 연철 기둥이 3km가 넘었다. 퓰리처는 425t짜리 거대한 금색 돔지붕 아래 꼭대기 층 안에 사무실을 설치했다. 도금을 한 퓰리처의 건물 표면은 수km 떨어진 바다에서도 보였다. 그래서 미국으로 이민오는 사람들이 신대륙에서 처음으로 보는 광경은 자유의 여신상이 아니라 퓰리처의 금빛 건물이었다. 퓰리처는 집무실을 프레스코화와 가죽 벽판으로 장식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퓰리처의 집무실을 처음 들어온 손님 가운데 어떤 사람은 이렇게 외칠 정도였다. "여기는 신을 모신 곳인가?"
-33쪽

퓰리처보다 한 세대 아래인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는 퓰리처와 정반대 인물이었다. 허스트는 젊고, 미국 본토박이고, 캘리포니아 상원의원이자 광산왕의 아들이었다. 허스트는 20달러짜리 순금 넥타이핀부터 해서 딱 보기에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처럼 보였다. 하버드에 다닐 때 학문보다는 신문사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러다가 교수들한테 교수의 초상화가 새겨진 요강을 선물하고 학교에서 쫓겨났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허스트는 타고난 신분에 걸맞지 않게, 새로 출범한 <월드>에 프리랜서 기자로 들어가서 신문사가 돌아가는 것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았다. 허스트는 퓰리처가 신문을 이용해 돈을 버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발명해 냈다고 생각했다.
-53쪽

언론가 사람들도 이런 변화에서 아이러니를 느꼈다. 퓰리처는 <선>의 옛 동료들을 ‘공룡’이라고 공격하면서 재산을 모았고, 그다음에 마찬가지로 명망 높은 신문인 제임스 고든 베넷의 <뉴욕 헤럴드>보다 낮은 가격으로 신문을 내놓아 <뉴욕 헤럴드>의 뒷덜미를 잡았다. 그런데 이제 <월드>에서 수련을 받은 허스트가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89쪽

"남편이 보았어요." 여자가 계속 주장했다.
당연히 보았겠지. 마틴 손은 사방에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다. 아지랑이처럼. 벌써 마틴 손을 닮은 수상쩍은 사람이 둘이나 잡혀 왔다. 알고 보니 진짜 범죄자였다. 한 사람은 루이빌에서 횡령을 하고 도망친 사람이고 한 사람은 "잠자는 제이크"라고 불리는 브루클린의 사기꾼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둘 다 마틴 손은 아니었다. 저지시티 공동묘지에서 산을 삼키고 공통스러워하다 사망한 사람이 있었다. 그건 틀림없이 마틴 손일 거다. 하지만 노장 연극배우 조지 빈이 스태튼아일랜드에서 요트를 타다가 발견한 시신은? 가까이에서 총을 맞아 얼굴이 날아간 시체였다. 신문들은 이렇게 물었다. 이게 마틴 손인가?
-133쪽

"난 구경거리가 아니에요." 낵 부인이 여간수에게 쏘아붙였다. "날 구경할 수는 없다고 말해줘요. 난 전시물이 아니라고."
그러다가 낵 부인은 다시 잠깐 생각에 잠겼다. <저널>과 에덴 박물관이 사건을 가지고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뭔가? 박물관에서 입장료로 50센트를 받는다니, 낵 부인은 시물감에서도 가격에서도 박물관을 누를 수 있었다.
"잠깐만요." 낵 부인은 자리를 뜨려는 여간수를 불렀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와서 구경하라고 해요. 한 사람당 25센트를 낸다면요."
오거스터 낵은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174쪽

정말 머리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양배추가 나왔다.
우드사이드에서 다른 아이는 총알구멍이 난 갈색 중산모를 발견했다. 7월 4일 독립기념일에 수천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우드사이드 수풀을 뒤졌을 때 왜 이런 증거물들을 찾아내지 못했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유물들을 만들어냈다는 혐의가 허스트와 퓰리처의 기자들에게 돌아갔다.
-177쪽

낵 부인은 금세 생존법을 터득했다. 낵 부인은 단순한 전략을 통해 감옥에서 여왕이 되었다. 호기심에 찾아온 사람들과 팬들에게 25센트씩을 받아 그 돈으로 커피와 빵을 사서 다른 죄수들에게 돌렸다. 좋은 변호사를 만나는 것을 제외하고 툼스 교도소의 여죄수들이 바랄 수 있는 최고의 행운은 오거스터 낵 가까이에 깃드는 것이었다.

-180쪽

구출작전은 합법적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허스트는 언제나 한계를 넘어섰다. 뉴스를 직접 만들어낼 수 있는데 왜 그냥 보도만 하고 있겠는가?

-213쪽

이제 뉴욕 신문들은 다른 어떤 도시보다 범죄와 사건 사고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저널>에는 유혈이 낭자한 기사와 여성들의 관심사, 만화들 때문에 경제, 노동, 종교 기사는 아예 발 들여 놓을 틈이 없었다. 허스트는 독자들을 알았고, 독자들이 무얼 좋아하는지 알았다.

-280쪽

6월 어느 더운 날 이 사건의 문을 연 것도 이스트 강가에서 놀던 아이들이었다. 다섯 달이 지난 겨울날 어두운 법정 안에서, 다른 아이가 그 문을 닫아 버렸다.

-313쪽

<이브닝 저널> 삽화가는 옆에 서서 그 장면을 부지런히 펜과 잉크로 스케치했다.
"안 들어가." 동료 한 사람이 일러주었다. "그렇게 큰 종이는 새가 못 날라." 삽화가는 자기 실수를 깨닫고 얼른 종이 한가운데를 반으로 잘랐다. 비둘기 두 마리에 반쪽씩을 실어 강 건너편으로 보냈다.
-315쪽

"법으로 사후에 시신을 해부하게 되어 있다. 사실 그게 형벌의 일부다. 시신 해부로 사인을 밝히는 것도 아니고 과학 발전에 도움이 되라고 하는 것도 아니니, 해부의 목적이 처형을 완결하기 위한 것임이 명백하다." 오닐 박사는 이렇게 썼다.

-359쪽

"이미 한 여자가 감당하기에 넘치는 고통을 받았어요." 낵 부인은 흐느끼며 가방을 든 채로 복도에 주저앉았다. "대체 지난 과거에서 뭘 얻으려고 그러는 거지요? 아직도 만족하지 못하나요?"
하지만 바로 다음날, 오거스터 낵은 과거의 가치를 깨닫기 시작했다. "내 이야기를 팔겠어요." 오거스터 낵이 <뉴욕 타임스> 사무실에 당당하게 걸어 들어와 말했다. "당신네 신문사에서 얼마를 줄 수 있나요?"
유감스럽게도 <타임스>는 그런 식으로 일하지 않는다고 낵 부인에게 말했다. 그렇지만, 물론 <저널>은 그런 식으로 일했다.
-377쪽

<저널> 초기에는 전쟁 개전 정도 되는 소식이라야 이런 거대한 활자를 조판했다. 그렇지만 새로운 세기에는 날마다 전쟁이고 날마다 충격이었다. 이번 주 어떤 신문은 이렇게 소리를 높였다. 건물 붕괴 : 40명 사망. 이런 것도 있었다. 유니언 광장에서 여자가 남자를 죽이다.
-378쪽

그래도 <월드>는 자발적으로 선정주의에서 조금씩 멀어져 갔다. 조지프 퓰리처로서는 허스트의 공격적 마케팅에 허덕허덕 끌려다니는 게 늘 못마땅했었다. 말년에 퓰리처는 <뉴욕 타임스>의 냉철한 신뢰성 쪽으로 끌렸다. 1911년 사망한 뒤에 퓰리처는 역사적 기억 속에서 새롭게 탄생했다. 황색 언론 전쟁은 잊히고, 컬럼비아 대학에 재산을 기부하고 작가와 기자들에게 주는, 그의 이름이 들어간 상이 제정되어 장밋빛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허스트는 반성할 줄 몰랐다.
-390쪽

그렇지만 허스트가 정신적 대부인 퓰리처에 도전했고, 퓰리처는 <헤럴드>의 제임스 베넷을 배신했던 것과 똑같이, 이번에는 허스트가 뒤통수를 맞았다. 그 주인공은 허스트가 중국 통신원으로 고용했던 시카고 청년 조지프 패터슨이었다. 패터슨은 1919년 <뉴욕 데일리 뉴스>를 창간하여 신문 저널리즘의 판돈을 또 한차례 올렸다.
-391쪽

언론왕의 자산이 수십 종의 신문으로 확장되며 허스트는 신화적 인물로 자라났다. 영화 <시민 케인>이 바로 허스트를 모델로 한 것이다.
-391쪽

"제 책을 갖다 주세요." 마틴이 철창 너머 간수에게 호소했다. 그날 오전 마틴이 불안한 기색을 보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간수가 책 무더기를 새 감방으로 옮겨 주자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제 제 친구예요."-35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박세연 지음 / 북노마드 / 2012년 1월
절판


로열 코펜하겐

로열 코펜하겐은 1775년 덴마크 줄리안 마리 여왕의 후원으로 왕실 도자기 업체로 시작해, 200년이 넘는 동안 세계 최고의 도자기로서 덴마크와 유럽 각국의 왕실과
전 세계 명사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특히 한국에서도 인기가 있는 블루 플루티드 라인은
처음 만들어낸 패턴 중 하나로 1770년대부터 생산하기 시작했다.
한 점의 접시를 그리는 데 1,197번의 붓질을 요하는 놀라운 작품으로
가히 덴마크 문화유산 중 하나라 할 만하다.
최상의 품질을 지켜나가기 위한 로열 코펜하겐 장인들의 자부심은
오늘날까지 그대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로열 코펜하겐이라는 이름은 이제 하나의 브랜드라기보다는
덴마크라는 국가를 상징하는 문화유산이자 자부심이 되었다.-40쪽

불면증이 심해져 한의원에 갔다.
한의사의 진단에 따르면 불면증이나 소화불량 등
모든 병의 근원은 스트레스이며
이를 해결할 방법은 매사에 무책임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한의사는 무책임한 말투로 '무책임해지세요'라고 했다.
정말 마음에 드는 해결책 아닌가!-110쪽

에스프레소의 온도를 지키는 데미타스,
홍차의 향을 머금은 넓고 얇은 잔,
어떤 음료든 척척 담아내는 머그,
음료의 시원함을 그대로 전달하는 유리잔,
보온을 위한 둥글고 두꺼운 잔,
누구든 이동하며 마실 수 있는 종이컵까지.
그냥 만들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
잔에는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훌륭한 맛과 향과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한
정성이 숨어 있다.
차가 찻잔을 통해 입으로 전달될 때까지의 모든 것을 위해
만들어진 소통의 도구이다.-44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래도 괜찮아 푸른도서관 40
안오일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11월
장바구니담기


영광은 양보하고 묵묵히 뒷감당만 하는 고마운 발. 무엇보다 가족을 책임지느라 더 벅찼을 먹먹한 발...- 11쪽

뿌리와 물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든다. 내 몸속에 깊게 자리한 자양분들...- 12쪽

그러게, 나도 궁금하다. - 17쪽

다리 하나를 위해
세 개의 다리가 선택한 것은
다 같이 불편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가 되는 과정이었다

-이 부분에서 큰 울림이 있다.- 20쪽

참 질서정연해. 모든 게 '일괄적이야'- 22쪽

사람이,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60쪽

골 깊은 주름살, 그 깊은 고랑 내가 파놓았던 게지...- 63쪽

그러게... 이렇게 극성스럽게 일하고 공부하는데, 왜 다들 행복하지 않은 거지?- 6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