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 실천시선(실천문학의 시집) 168
정윤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7년 6월
품절


어디 숨었냐, 사십마넌



시째냐? 악아, 어찌고 사냐. 염치가 참 미제 같다만, 급허게 한 백마넌만 부치야 쓰겄다. 요런 말 안 헐라고 혔넌디, 요새 이빨이 영판 지랄 가터서 치과럴 댕기넌디, 웬수노무 쩐이 애초에 생각보담 불어나부렀다. 너도 어롤 거신디, 에미가 헐 수 읎어서 전활 들었다야. 정히 심에 부치면 어쩔 수 없고......

선운사 어름 다정민박 집에 밤마실 나갔다가, 스카이라던가 공중파인가로 바둑돌 놓던 채널에 눈 주고 있다가, 울 어매 전화 받았다. 다음 날 주머니 털고, 지갑 털고, 꾀죄죄한 통장 털고, 털어서, 다급한 쩌언 육십마넌만 서둘러 부쳤다.

나도 울 어매 폼으로 전활 들었다.

엄니요? 근디 어째사끄라우. 해필 엊그저께 희재 요놈의 가시낭구헌티 멫 푼 올려불고 났더니만, 오늘사 말고 딱딱 글거봐도 육십마넌뻬끼 안 되야부요야. 메칠만 지둘리먼 한 오십마넌 더 맹글어서 부칠랑께 우선 급헌 대로 땜빵허고 보십시다 잉. 모처럼 큰맘 묵고 기별헌 거이 가튼디, 아싸리 못혀줘서 지도 잠 거시기허요야. 어찌겄소. 헐헐, 요새 사는 거이 다 그런단 말이요.

떠그럴, 사십마넌 땜에 그날 밤 오래 잠 달아나버렸다.-28쪽

우체국 앞 은사시나무 그늘 밑에서



우체국 앞에 서 있는 은사시나무 그늘 밑에서, 누군가를 기다려본 기억을 가진 사람과, 우체국 앞에 서 있는 은사시나무 그늘 밑에서, 누구라도 한 사람을 기다려본 기억이 없는 사람의 인생의 무늬에는 어딘가 차이가 있을 것도 같았다.

모든 생의 바닥으로는 다른 빛깔의 그늘이 와서 깔리고, 모든 생의 그 그늘들은 다른 방식으로 스러지기도 할 것 같았다.

우체국 앞에 서 있는 은사시나무 그늘 밑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뒷등에 대고서라도, 이제라도 '그'를 한번 기다리며 서 있어보라고, 가만히 말을 건네주고 싶었던 가을날이 있었다. -36쪽




집, 얼룩무늬의 털스웨터 한 벌로 평생을 나는 표범을 다큐멘터리 방송에서 지켜보면서, 그들의 집이 어쩌면 저 한 벌의 털스웨터일 수도 있겠구나 싶은 부러움에 빠져본 적이 있다.

집, 아니 짐이여. 무거움이여.

집, 그러나 나는 내 말년의 모습이 조금쯤은 말라 보였으면 하는 마음이 적지 않다. 별로 그럴 일은 없을 듯하지만, 볼따구니의 살집이 한 점의 긴장도 없이 추욱 늘어지거나, 욕심의 뱃구레가 오크통처럼 불거져서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 않았으면 싶다.

집, 표범이 아니라도, 실은 내 몸도 한 채 집이었구나.-89쪽

밥經


저를 다하여 하냥 온기를 게워 올리는

향처럼 피워 올리는

둥근 지붕부터 헐어 몸 열어주던

거기, 원적외선 담요보다

푹신하고 느른한

寺院 같던, 입으로 읽었던.-1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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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가게 - 제13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53
이나영 지음, 윤정주 그림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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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때인지. 열심히 공부해야 미래가 편한 거야. 지금은 힘들어도 나중엔 웃게 돼."
엄마는 작년에도 그랬다. 4학년은 인생이 결정되는 중요한 시기라고 말이다. 6학년이 되는 내년엔 뭐라고 말할까?-38쪽

한꺼번에 학원에서 밀려 나온 아이들 때문에 거리는 복잡했다. 도대체 이 많은 아이들이 어디서 온 건지 신기하기까지 했다. 학원 거리라고 불리는 이곳은 가운데 도로를 사이에 두고 빽빽하게 학원이 들어차 있다. 무리에 섞여 걷다 보면 마치 내가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라와 있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공장에서 필요한 부품으로 최상의 제품을 찍어 내는 것처럼, 나도 공부 잘하는 아이로 만들어지고 있나는 느낌. 절대로 불량품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77쪽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20등도 아니고, 2등인데도 너무 창피했다. 한 번쯤은 봐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엄마가 얼굴을 찌푸리자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생겼다. 무서웠다.
"다음은 없어. 그건 공부 못하는 애들이나 하는 말이라고. 엄마가 누구 때문에 고생하는지 몰라? 너는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 될 거 아니야. 공부만큼 쉬운 게 어딨어. 하라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되잖아."-94쪽

내 눈동자가 '계획표'라는 글자에 꽂혔다. 불안했다. 엄마는 나를 관리해야 할 고객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내 하루하루를 설계했다. 오늘은 11월과 12월 계획표였다. 11월 초에는 영어 인증 시험을, 12월에는 기말고사를 치러야 한다. 시험 날짜에 맞추어 하루, 삼십 분 단위로 계획되어 있었다.-109쪽

엄마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원래 책 읽기를 좋아했다. 하루 종일 책만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책 읽는 것마저도 간섭하면서 싫어졌다. 책장을 덮자마자 느낀 점이 뭐냐고 물어보면 식은땀이 났다. 이제 나에게 세상 모든 책은 교과서와 다름없었다. -118쪽

시간만 사면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런데 내 과거도 현재도 엉망이 되어 버렸다. 지금 행복하지 않은데 엄마 말처럼 미래에 행복해질 수 있을까. 만약에 그렇다 해도 지금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1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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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밖 지리여행 사계절 교실밖 시리즈 6
박병석.노웅희 지음 / 사계절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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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강암은 모래 성분이 많아서 그 일대의 하천이나 바닷가에 모래가 많다. 이런 지대에서는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한다. 북악산을 끼고 있는 청계천도 모래가 많아서 물이 땅 속으로 잘 스며든다.
- 35쪽

삼각주란 하천이 바다로 들어가는 어귀에 하천이 운반한 흙모래가 쌓여서 된 평평한 지형을 말한다. 이름을 듣고 언뜻 삼각주의 생김새가 모두 세모꼴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 세모꼴이 아닌 삼각주들이 더 많다. 삼각주는 바다의 밀썰물이 쓸어 가는 흙모래보다 하천이 실어 오는 흙모래가 더 많을 때, 즉 바다의 밀썰물 차가 작을 때 잘 형성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동해안의 여러 하천 하구와 낙동강 하구, 압록강 하구에 발달했다.
- 51쪽

큰 하천은 흙모래를 많이 운반하는데, 미시시피 강은 한 해에 3억 t의 흙모래를 날라서 이곳의 삼각주는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해마다 1mm씩 가라앉는다. 삼각주 부근의 퇴적층은 두께가 히말라야 산맥의 높이보다 두껍고 무게는 지각 변동을 일으킬 만하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젖줄인 메콩 강에는 강 어귀에서 상류로 300km 지점까지 삼각주가 펼쳐져 있다. 이러한 삼각주는 옛날에 바다였다가 뭍이 된 것이다. 메콩 강 삼각주는 해마다 60cm씩 바다로 뻗어 나가고 있는데, 넓이가 남한 면적의 발쯤 되어서 자동차로 몇 시간 달려도 산을 볼 수가 없다. 여기에서 생산되는 쌀만 해도 우리나라 생산량의 반이나 되며, 강기슭의 호치민(사이공) 항구에서 세계 각지로 수출된다.
- 52쪽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가운데 세 지역이 삼각주에 자리 잡고 있다. 인도 문명을 비롯해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 문명이 그것이다. 숱한 지류와 본류가 합쳐져 도도히 흐르던 하천이 마침내 바다를 만나 그동안 실어 나른 흙모래를 어귀에 잔뜩 쌓아 놓고, 이러한 현상이 오랜 세월 이어져서 바다가 메워지며 그 땅에 거대한 인류 문명이 탄생하고 국가와 도시가 번성한 것이다. 바다가 뭍이 되었으니 말 그대로 ‘벽해상전’인 셈이다.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의 삼각주들이 자연의 힘으로 계속 자라고 있다.
- 55쪽

새는 먹이사슬의 윗부분을 차지하고 수명이 길어서 환경을 평가할 때 지표가 된다. 새들이 서식지와 산란장으로 갯벌을 즐겨 찾는다는 것은 갯벌의 생태계가 그만큼 건강하고 안정되어 있다는 뜻이다.
갯벌은 자연 정화 능력 또한 탁월하다. 갯벌의 오염 정화 능력을 실험해 본 결과, 갯벌 10km2의 정화 능력은 면적 25.3km2에 10만 명이 살고 있는 도시의 오염 물질을 정화하는 하수 종말 처리 시설에 맞먹었다. 갯벌은 육지의 자연 재해를 줄여 주기도 한다. 홍수가 났을 때 물을 저장하고 물살을 가라앉히는 역할을 하며, 태풍이나 해일이 일어났을 때는 육지를 향한 충격을 방패막이처럼 덜어 주기도 한다.
- 64쪽

해양보다 비열이 작은 대륙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아서 연교차가 큰 기후를 ‘대륙성 기후’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계절풍의 영향도 받아서 더욱 연교차가 크고 지역에 따라 여름 강수량이 겨울보다 5~10배 더 많다.
대륙성 기후는 우리나라 집의 구조에 영향을 주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열대 기후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집의 구조와 한대 기후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집의 구조를 모두 갖춘 2중 구조, 즉 여름을 시원하게 나기 좋은 대청과 겨울을 따뜻하게 나기 좋은 온돌(구들)이 발달했다.
- 72쪽

온돌은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 난방 시설로, 중국 만주의 난방 시설인 ‘캉’과 기원이 비슷하다. 난로, 페치카 같은 외국의 난방 시설은 실내의 위쪽을 따뜻하게 해서 대류 현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효과가 떨어진다. 하지만 온돌은 실내의 아래쪽을 따뜻하게 하므로 따뜻해진 공기가 실내에 골고루 퍼진다.
- 73쪽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바람이 가장 세게 부는 지역이다. 이는 바다에서 바람이 거침없이 불어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람의 피해를 막는 방법도 다양하게 발달했다. 지붕은 날아가지 않도록 용마루를 만들지 않고 동아줄로 튼튼하게 묶어 둔다. 그리고 밭 주변에는 나무들을 심어 방풍림을 만드는데, 그렇게 하면 바람이 방풍림을 타고 더 높이 올라가서 지표면의 농작물을 덮치지 못한다. 밭을 따라 현무암으로 돌담을 쌓아서 바람의 피해를 막기도 한다.
- 79쪽

‘통시(뒷간)문화’도 이러한 기후·토양 조건과 관계까 있다. 제주도의 전통적인 통시는 사람이 배변하는 곳에 돼지 우리가 딸려 있었다. 사람의 배설물은 짚이 깔려 있는 돼지 우리로 곧장 들어가서, 돼지 우리에는 돼지의 배설물뿐 아니라 사람의 배설물도 쌓인다. 돼지가 우리 안을 돌아다니며 바닥을 밟아 주면 짚과 배설물이 섞이면서 잘 썩게 된다. 이것은 농작물에 좋은 거름이 되며, 씨앗과 흙이 바람에 날아가는 것을 막아 준다.
- 80쪽

우리나라는 여름 강수량이 수백mm에 이르지만 지중해 연안은 수십 mm밖에 안 된다. 그래서 여름에 나무나 풀이 마치 우리나라 가을처럼 갈색으로 변한다. 여기서 자랄 수 있는 나무는 뿌리 깊고 나무껍질 두껍고 잎 작은 코르크참나무나 올리브나무 등이다. 그 대신에 겨울은 따뜻하고 비가 제법 많이 내려서 녹음이 짙은 계절이 된다. 가을에 씨앗 뿌리고 봄에 수확하니 ‘추수’가 아니라 ‘춘수’라고 해야겠다.
- 90쪽

캘리포니아는 지중해성 기후 지대이지만, 저위도인 멕시코 쪽에서는 건조 기후가 나타나고 고위도인 캐나다 쪽에서는 서안 해양성 기후가 나타난다. 캘리포니아는 더운 여름에 비가 내리지 않는데도 쌀을 많이 생산한다. 엄청난 규모로 관개를 하기 때문이다. 미국 서부의 로키 산지에는 눈이 쌓여 있는데, 이 눈 녹은 물을 콜로라도 강에서 끌어 와 관개를 합니다. 여름에 기온이 높으니까 관개만 하면 벼는 잘 자랄 수 있다. 칠레도 캘리포니아처럼 저위도에서 고위도로 감에 따라 사막 기후, 지중해성 기후, 서안 해양성 기후가 나타나는 곳이다. 칠레에서도 눈 녹은 물로 대규모 관개 농업을 한다. 대표적인 농산물이 포도다. 그 눈의 원천은 안데스 산지다.
- 92쪽

리비아에서 국가적 숙원 사업으로 벌이고 있는 대수로 공사는 사하라 사막의 지하수층을 대규모로 개발하는 것이다. 사하라 사막의 땅 속에는 옛날 이곳이 습윤한 지대였을 때 형성된 지하수층이 엄청난 규모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공사를 우리나라 기업에서 도맡아 우리 기술과 인력으로 완성했다.
- 93쪽

유럽에서 고기용 가축으로 많이 키우게 된 동물은 양이다. 조금 먹고 빨리 자라는데다 번식력이 좋았기 때문이다. 이 양들을 초원으로 몰고 가 풀을 먹이고 지키는 것이 바로 개였다. 양을 돌보는 목양견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보더콜리다. 보더콜리는 체력, 판단력, 학습력이 뛰어나고 아주 민첩한데다 주인을 향한 충성이 강하다. “눈으로 최면을 걸면서 양을 몰고 다닌다.”는 말을 들을 만큼 양치기 능력이 탁월하다.
- 99쪽

우리나라 아이들은 ‘하늘 향해 두 팔 벌린 나무들같이 무럭무럭’ 자라라는 말을 쉽게 알아듣지만, 이탈리아처럼 지중해성 기후가 나타나는 지역의 아이들은 그 말에 의아해할 것이다. 그 지역의 나무들은 대체로 키가 작고 옆으로 퍼져 있기 때문이다.
- 102쪽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중국에서 만든 「혼일강리도」, 아라비아 계통의 지리 지식을 토대로 아라비아에서 만든 「성교광피도」에 기초해 이회가 만든「조선전도」, 박돈지가 일본에서 수입한 「일본지도」를 합성해서 만든 것이다. 채색은 아라비아의 영향을 받았으며, 동남아시아 지역이 대부분 생략되어 있는 데 비해 일본은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다. 이 지도를 보면 우리의 선조들은 중국을 크고 가까운 나라로, 일본은 작고 먼 나라로 인식하고 있었다.
- 113쪽

김정호는 우리나라를 북쪽 백두산 일대부터 남쪽 한라산 일대까지 남북 120리씩 22층으로 나누었고, 층별로 동서 방향의 지도를 한 첩에 담았다. 그래서 22첩이 된다. 각 첩은 동서 80 리를 기준으로 접고 펼칠 수 있게 했는데, 접으면 큰 공책 크기여서 들고 다니기 편하다. 22첩을 모두 펼쳐 연결하면 가로 약 3.3m, 세로 약 6.7m의 대형 조선 전도가 된다. 교실로 치면, 폭은 칠판 길이쯤 되고 높이는 교실 두 층쯤 되는 셈이다.
- 127쪽

기록을 통해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기까지 기존의 우리나라 지도들을 두루 참고하면서 지도 제작의 전통을 집대성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대동여지도』보다 앞서 만들어진 우수한 고지도들이 400종 이상 현존하고 있다.
- 128쪽

황현이 쓴 『매천야록』에 의하면 19세기 말엽 북촌에는 노론만 살고, 소론과 북인과 남인은 고급 공무원일지라도 남촌에 섞여 살았다고 한다. 100여 년 동안 노론이 권력을 행사해 왔기 때문이다.
- 134쪽

양반 계급 아래에 속했던 중인들은 서울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대대로 관아 앞에 살았기 때문에 ‘아전’이라고도 불렸다. 통역사, 의사, 필기사, 화가, 인쇄·출판인, 회계사, 의전관 같은 중인들은 지금의 정부종합청사와 세종문화회관 서쪽, 즉 종로구 당주동, 적선동, 내자동, 내수동, 사직동 등에 살았다. 중인들 중 군대 장교들은 왕십리에 살았다. 지금의 동대문운동장 야구장 일대에 있던 훈련도감, 훈련원과 가까웠기 때문이다.
- 136쪽

북촌과 남촌 사이 청계천 주변에는 계층이 가장 낮은 주민들이 사는 중촌이 있었다. 이 지역에는 관권과 결탁한 큰 상인들도 살았지만, 수많은 서민들의 초라한 가옥이 밀집해 있었다. 이곳은 청계천이 흐르는 저지대라서 큰비가 내리면 물이 잘 빠지지 않았다. 자연히 주거 환경이 나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사회적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었던 것이다.
- 138쪽

1925년에 일어난 을축년 대홍수가 저지대인 서울 일대 시장의 시설들을 모조리 휩쓸어 가는 바람에, 한강 유역의 수운 기능은 더욱 약해졌다. 결정적으로 한국전쟁 이후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지점에 휴전선이 지나가게 되자 바다에서 한강으로 들어오는 뱃길이 완전히 막혔다. 다리 건설도 여기에 한몫했다. 한강에 다리가 적었던 수십 년 전만 해도 나룻배를 이용해 강남의 채소를 용산 시장으로 운반했다.
- 146쪽

세계 각국이 영해를 설정하던 초기에 영해의 범위는 3해리였다. 초기에 영해를 설정한 주된 목적은 방어를 위해서였는데, 그 당시의 함포 사격 거리가 3해리에 미치지 못해서 영해의 범위가 그렇게 정해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영해 설정의 목적이 점점 바뀌고 있다. 방어 목적뿐 아니라 수산자원을 확보하거나 대륙붕의 해저 지하자원을 개발하기 위해서이다.
- 160쪽

1997년 우리나라가 외환 위기로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일본은 1965년 맺었던 한일 어업 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파기의 한 축에는 독도 부근을 ‘한일 공동 규제 수역’으로 설정하려는 의도가 있었는데, 이 의도는 성공해 현재 그렇게 설정되어 있다.
- 161쪽

현재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맺은 한미 항공 협정은 우리에게 매우 불리하게 되어 있다. 서울에 도착한 미국 항공기는 우리나라와 외국의 어느 도시로도 비행할 수 있지만, 미국의 어느 한 도시에 도착한 우리나라 항공기는 미국의 다른 도시로 자유롭게 비행할 수 없다. 또 인천 국제공항에는 미국 항공기를 위한 독립적인 터미널이 설치되어 있지만, 미국의 어느 공항에도 우리나라 항공기 전용 터미널은 설치되어 있지 않다.
- 163쪽

우리나라에서 표준자오선을 최초로 정한 때는 1908년 4월 1일. 대한제국이던 당시에 동경 127° 30‘을 우리나라 표준자오선으로 정한 것이다. 그런데 한일병합 이후 일제에 의해 1912년 1월 1일부터 일본의 아카시를 지나는 동경 135°를 표준자오선으로 쓰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난 뒤 우리나라에 일본의 모든 것을 배척하려는 의식이 번지자 1954년부터 동경 127° 30’을 우리나라 표준자오선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시 동경 135°로 바뀌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 장교를 지냈던 박정희 소장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1961년 8월 7일 법률 제 676호 ‘표준자오선 변경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면서 우리나라 표준자오선을 또다시 동경 135°로 굳어졌다. 우리는 생체 리듬에 맞는 자연적인 시간보다 30분 더 앞당겨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1988년 올림픽 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될 당시에 우리나라는 서머타임을 실시해 한 시간을 앞당긴 적이 있다. 미국에서 텔레비전을 통해 올림픽 경기를 지켜볼 미국 시청자들을 배려한 결정이었다. 이러한 서머타임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생체 리듬과 무려 1시간 30분이나 차이 나는 생활을 해야 했다.- 167쪽

프랑스를 비롯해 중국, 인도, 스리랑카, 이란 등은 자기 나라 고유의 시간을 보존하기 위해 15‘이나 30’ 단위로 표준시를 정해 쓰고 있다. 우리나라도 애초에 정해졌던 127° 30‘을 유지한다 해도 국제 사회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은 아니다.
- 168쪽

우리 민족이 주체였던 조선 시대까지 우리나라 교통로는 왼쪽 지도와 같았다. 즉 서울을 중심으로 주요 교통로가 방사형으로 발달되어 있는 모양이 마치 ‘줄기세포’와 같았다. 이러한 방사형 교통로는 우리 민족의 터전 곳곳을 고루 연결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전통 교통로는 일제에 의해 거의 다 사라져서 흔적조차 희미해지고 있다. 일제는 우리나라를 침략한 이래 우리 고유의 교통로를 무시하고, 신작로와 철도 위주의 X자형 교통로를 만들었다. 식민지 침략과 수탈을 좀 더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염두에 둔 것은 우리 민족의 삶이 아닌,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착취를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 190쪽

철도 개통은 일본인들에게는 식민지 침략과 수탈의 발판이어서 환호할 일이지만, 우리 민족에게는 조국이 멸망하는 지름길이었다. 그래서 의병들은 철도를 파괴하면서 항일 투쟁을 하다가 끝내 처형당했다.
- 191쪽

방사형 교통로와 달리 일제가 만든 X자형 교통로는 수탈을 위한 공간 구조를 나타냈으며, 국토 발전에서 소외되는 지역을 낳았다. 그로 인해 지역감정이 싹트게 되었으며. 결국 우리 민족이 단결하는 데 장애가 되어 국토 발전은 더더욱 불균형하게 전개되었다. 일제에 의한 근대 교통 개발이 끝내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공간 구조를 망가뜨리고 국토 발전까지 방해한 셈이다.
- 192쪽

노동 집약형 산업은 일한 시간에 비해 부가 가치가 낮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1970년대부터 집적 이익이 큰 중화학 공업을 육성할 필요를 느꼈고, 특히 철강·기계 공업과 석유 화학 공업을 발달시켰다. 중화학 공업 단지는 기종점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적환지에 입지하느라 주로 남동 연안 지역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런데 집적의 이익을 지향한 우리나라 산업의 역사는 결국 지역 발전의 불균형을 불러왔다. 정부가 산업이 발달한 대도시, 특히 서울과 부산 일대에 집중적으로 투자했기 때문이다. 세금은 온 국민이 냈지만 예산은 주로 대도시를 육성하는 데 쓰였다. 정부는 이러한 대도시가 성장하면 그 이익이 주변으로 파급되고, 우리나라 전국이 고르게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1970년대의 개발 방식을 ‘성장 거점 개발’이라 한다.
제1차 국토 개발 계획은 성공했다. 하지만 1980년대의 제2차 국토 개발 계획은 그렇지 못했다. 성장한 대도시의 이익이 주변으로 파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제1차 국토 개발 계획이 끝나면서 새로운 문제가 대두했다. 집중적으로 육성한 지역은 더욱 성장하고, 그렇지 않은 지역은 더욱 쇠퇴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200쪽

사실 고기를 얻기 위한 가축 사육은 토지 생산성이 매우 낮다. 드넓은 사료용 곡물 경지에서 생산되는 고기의 양이 턱없이 적은 것이다. 고기를 생산할 때 소비되는 사료용 곡물의 양을 살펴보면, 쇠고기 1kg 생산에 6.9kg, 돼지고기 1kg 생산에 4.8kg이다. 전 세계 곡물 생산량의 40%가 가축의 먹이로 쓰이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그 비율이 90%나 된다. 같은 면적에 곡물을 심을 경우 얻을 수 있는 열량이 고기를 생산해서 얻는 열량보다 훨씬 높다.
- 209쪽

원주민들은 자연에 대한 윤리적인 태도, 후손과 공동체에 대한 헌신 등 소중한 가치들을 소박하게 지켜 왔다. 세계적으로 소비 문화와 개인주의가 팽배한 오늘날 바람직한 미래상을 구상할 때, 원주민들의 삶은 물질만능주의의 희생양이 되어 많이 파괴되었다. 하지만 물질만능주의, 또 그로 인한 환경 파괴 같은 병폐를 극복하려 할 때 원주민들의 삶은 자꾸 되돌아보고 되살릴 만한 가치가 있다.
- 217쪽

난지도의 ‘난지’는 ‘난초’와 ‘지초’를 통틀어 가리키는데, 흔히 ‘아주 아름답다’는 뜻을 빗대어 표현하는 말로 쓰인다. 난지도는 실제로 향긋한 난초와 지초뿐 아니라 온갖 꽃들이 만발해 아름다웠던 곳이다. 김정호가 만든 지도 「경조오부도」나 「수선전도」에는 ‘꽃이 피어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의 ‘중초도’로 표시되어 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난지도가 사람 살기 좋은 터의 조건을 두루 갖춘 곳이라는 설명이 들어 있기도 하다. (...) 난지도는 1978년 3월부터 쓰레기 매립장이 되어 10여 년 새 높이 약 100m의 쓰레기산 두 개로 변해 버렸다. 경제 성장을 거듭할수록, 우리의 소비 문화가 확대될수록 난지도의 쓰레기 산은 점점 커져 갔다. 난지도는 쓰레기 때문에 늘 악취와 먼지, 해충이 가득했고 메탄으로 인한 화재가 15년간 1400여 건이나 발생하기도 했다. 여러 모로 위험해진데다 기술적으로 쓰레기를 위로든, 옆으로든 더 이상 쌓을 수 없게 되자 1990년대 들어 폐쇄되었다. 이후 버려진 땅이 된 난지도는 생태 공원으로 탈바꿈시키는 공사를 진행한 끝에 이름에 걸맞은 풍경을 되찾아 가고 있다.
- 219쪽

‘갈바람’은 서풍을 가리키는 순 우리말이다. 앞에 붙은 ‘갈’에는 ‘작은’이라는 뜻이 있는데, 이렇게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본래 서풍은 그다지 위력 있는 바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심각한 골칫거리를 떠안기는 바람이 되었다.
- 222쪽

최근 들어 중국에서 배출하는 대기 오염 물질의 위험이 더 심각해진 이유는 중국의 주요 연료가 석탄에서 석유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석탄은 주로 이산화탄소가 일으키는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지만, 석유는 질소산화물이 일으키는 광화학 스모그의 원인이다. 광화학 스모그는 시야를 가려서 교통사고 같은 각종 사고를 유발하고, 호흡기 질환이나 눈병 등도 불러온다.
- 225쪽

적도 부근은 동풍을 타고 해류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른다. 남태평양 동쪽의 경우 한류가 페루 해안을 따라 북상하다가 에콰도르의 과야킬 만에서 서쪽으로 흘러가기 시작하여 동남아시아까지 흘러간다. 과야킬 만은 용승 현상-수심 200~300m 되는 중간층의 차고 영양 풍부한 바닷물이 해수면으로 솟아오름-이 활발한 대표적인 한류 지역이다. 한류인 페루 해류가 지나는 페루 연안은 멸치의 일종인 안초비가 풍부하여 세계적인 어장이 형성되며, 많은 어민들은 이 바다에서 살아 왔다. 그런데 몇 년에 한 번씩 크리스마스 무렵이 되면 이 바다의 수온이 상승하는 이변이 발생한다. 이 현상이 여러 주나 여러 달 지속되면 이곳 어민들의 주 소득원인 안초비가 사라져 버린다. 바다의 수온이 상승하는 시기가 크리스마스 즈음이어서 페루 어민들은 그 현상을 ‘엘니뇨’(남자 아이, 아기 예수)라고 불렀다.
- 227쪽

1989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에 취임한 데클레르크는 흑인 인권 운동가 넬슨 만델라를 석방하고, 1991년 인종 차별에 관한 모든 악법을 폐지하면서 아파르트헤이트의 종식을 선언했다. 데클레르크와 만델라는 아파르트헤이트 철폐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3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리고 1994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초의 다인종 선거에서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 235쪽

팔레스타인에는 본래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 기원전 11세기에 건설된 이스라엘 왕국이 분열과 멸망을 거쳐 기원전 1세기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로마 제국은 636년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인들에 의해 멸망했다. 12세기 제1차 십자군이 예루살렘 왕국을 건설하여 이곳을 통치하기도 했지만, 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팔레스타인은 줄곧 아랍인들의 영토였다. 한편 로마 제국에 의해 쫓겨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은 1800년대 말에 시오니즘(유대인의 민족 해방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 236쪽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과 싸우던 영국은 유럽과 미국의 돈 많은 유대인들에게 지원을 받으려고 1917년 벨푸어 선언을 발표했다.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민족 국가를 수립하는 것을 영국이 정책적으로 돕겠다는 내용이었다. 영국은 원래 팔레스타인에 대해서 아무런 권한이 없었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국제연맹의 결정에 따라 팔레스타인은 영국의 위임 통치령이 되어 버린다. 그때까지도 팔레스타인에는 유대인들이 거의 없었다. 영국이 팔레스타인을 위임 통치하고부터 유대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오기 시작했다. 1918년 6만 명이 채 안 되었던 유대인들은 1947년 총 인구 193만 명 중 61만 명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유대인들이 차지한 땅은 전체의 6%에 지나지 않았다.
- 236쪽

영국의 팔레스타인 통치는 1948년까지 계속되었다. 하지만 영국은 다수를 차지하는 아랍인과 강력한 시오니즘으로 세력이 점점 커져 가는 유대인의 요구를 모두 만족시키지 못했다. 결국 제2차 세계대전 후 팔레스타인 문제를 국제연합 총회에 떠넘겼다. UN 총회에서는 1947년 11월 29일 팔레스타인에 아랍인 국가와 유대인 국가를 따로 세우고 예루살렘은 국제도시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UN 총회의 결의안이 통과되자 팔레스타인 전체 면적의 56%를 유대인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UN은 팔레스타인의 올리브 농장과 곡창 지대의 80%, 아랍인 공장의 40%를 유대인들에게 배정했다. 흔히 유대인들이 불모의 사막을 농경지로 개척했다고 알고 있으나, 처음에 그들은 강대국의 힘을 빌려 아랍인들의 농경지를 빼앗았던 것이다. 마침내 유대인들은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을 건국하게 되었다.
- 237쪽

관동대학살 당시 도쿄 일대에 살던 조선인 3만 명 가운데 6000 여 명이 단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무차별 학살되었다. 조선인 대학살은 자경단뿐 아니라 군인, 경찰, 소방대가 나서서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 겁을 먹고 경찰서를 찾아 보호를 요청한 조선인들은 경찰서에서, 군에 연행된 조선인들은 수용소에서 ‘폭동 방지’라는 명목 아래 무참히 살해되었다. 이를 은폐하려고 시신을 대부분 하천에 버리거나 암매장했다.
- 241쪽

인도에서 카디 운동이 전개될 수 있었던 배경은 다름 아닌 데칸 고원이다. 데칸 고원은 사바나 기후 지역으로, 연중 고온인데다 건기와 우기가 뚜렷해서 목화를 재배하기에 알맞다. 더욱이 이 고원은 용암지대여서 현무암의 풍화토인 레구르토가 많다. 레구르토는 점토질이어서 수분 유지가 잘되며, 유기물까지 풍부해서 비료를 주지 않아도 이어짓기 농사를 할 수 있다.
옛날에 인도에서는 목화를 별로 재배하지 않았다. 각 농가에서 작은 규모로 재배하는 정도에 그쳤으나,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영국이 미국에서 목화를 공급받을 수 없게 되자 인도의 데칸 고원을 새로운 목화 공급지로 선정한 것이다. 당시 미국은 남북전쟁이 끝나면서 노예들이 해방되어, 더 이상 값싼 노동력으로 많은 목화를 재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영국은 데칸 고원에 목화를 대규모로 심고 인도인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재배하기 시작했다. 인도에 아시아 최초로 철도가 놓이게 된 이유도 교통이 불편한 생산지에서 콜카타, 뭄바이, 첸나이 등의 항구로 목화를 신속하게 수송하기 위해서였다.
- 248쪽

커피 농장 일꾼들이 되풀이되는 고단한 생활에서 활력소로 여기며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 있다. 1년에 한 번씩 벌어지는 ‘집단 투우’이다. 식민 모국 에스파냐의 영향을 받아 콜롬비아 사람들도 투우를 즐기는데, 집단 투우는 이 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방식의 경기다. 수만 명이 관람할 수 있는 원형 경기장에 투우 수십 마리를 한꺼번에 풀어 놓고, 수백 명에서 수천 명까지 동시에 경기를 한다. 농장 일꾼들이 집단 투우에 참가하는 동기는 투우들이 날뛰는 사이를 달리면서 스릴을 만끽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주로 에스파냐계 백인 농장주들이 던지는 돈을 줍기 위해서이다.
- 255쪽

콜롬비아에서 아마존 강 유역의 열대 우림, 남쪽의 칠레, 서쪽으로 태평양 연안에 이르는 지역은 고대에 ‘타완틴수요 제국’이 형성되어 있었다. 타완탄은 ‘4’, 수요는 ‘지방’을 뜻하는 말이어서 타완틴수요는 ‘네 방향에 걸쳐 있는 나라’를 의미한다. 지금껏 타완틴수요 제국을 잉카 제국으로 불러 왔는데, 잉카는 ‘왕’ 또는 ‘왕실’을 뜻하는 말이어서 나라를 가리키는 말로 타완틴수요가 더 걸맞다.
- 257쪽

질병뿐 아니라 극심한 노동 착취에도 수많은 원주민들이 죽어 갔다. 예컨대 산토도밍고의 인구는 처음 백인들에게 정복될 때는 20만 명이었으나 20년 뒤 1만 4천명, 다시 30년 뒤에는 겨우 200명으로 줄어들었다. 이러한 비극은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일어났다.
- 260쪽

미국은 1940년대 후반부터 농산물이 눈에 띄게 남아돌기 시작했다. 잉여 농산물 때문에 생길지도 모르는 시장 가격의 폭락을 막으려고, 미국 정부는 재배 면적을 줄인 농민들에게 금전 보상까지 해 주었다. 그래도 남아도는 농산물은 정부가 사들이다시피 해 곡물 메이저의 창고에 보관했다. 그런데도 잉여 농산물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골머리를 앓다가 미국계 곡물 메이저와 함께 다른 방법을 찾았다.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미국식 식생활을 길들이는 것이었다.
- 267쪽

논은 자연 생태계 중 생산성이 가장 높은 습지와 그 환경이 비슷하다. 이런 까닭에 논이 줄어들면 우리나라 토지는 비옥도가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논은 물을 저장하는 저수지와 같아 여름철 집중 호우 때 홍수 피해를 줄이는 기능이 있다. 토양 침식도 막아 주고, 대기 오염도 줄여 준다. 또 우리의 목숨을 이어 온 논농사는 전통 문화의 토대가 된다. 그래서 여러 형태의 논 가운데 일부 논은 국가에서 문화재로 지정할 정도이다. 경상남도 남해군에 있는 다랭이논(계단식 논)이 그 예이다.
- 2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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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소녀
잭 케첨 지음, 전행선 옮김 / 크롭써클 / 2009년 6월
품절


그때, 나는 '적어도 내가 때리는 건 아니잖아.'라고 생각했던 것이 기억난다.
원하기만 했다면 나도 그들의 폭력에 합세할 수 있었다.
그 순간,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나도 권력을 가진 자였다.-179쪽

아이들은 대부분 작업대 주변에 둘러 앉아 카드놀이나 낱말 맞추기를 하면서, 콜라를 마시거나 잡지책을 읽기도 하고 이야기도 했다. 모두들 무언가를 조롱하거나 수치심을 주는 말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맥이 그곳에 있지도 않은 듯이 행동했다. 폭행은 일상적이고 평범한 일이 되어 있었다. 맥의 존재는 우리로 하여금 포로들의 수동적인 복종을 요구하게 만들었다. 이제 맥은 우리 클럽하우스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다. (...) 맥은 꽁꽁 묶인 채 그곳에 조용히 앉아 있거나 서 있었고, 우리는 그녀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그러다가 가끔 누군가 맥을 이용한 새로운 놀이가 있다고 제안하면 그것을 시도해보곤 했다.-276쪽

(작가노트)
그녀의 아이들은 <<파리 대왕>>에 등장하는 소년들을 연상시켰다. 일단 아이들 문제는 제쳐 놓기로 하자. 여기 그 여자, 그 어른이 있으니 말이다. 아이들의 행위를 허락했던, 혹은 그 모든 상황을 지휘하고 각각의 방식을 게임으로 변형시켜 이끌었던 그 사람 말이다. 자신의 고통 이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그녀의 왜곡된 성향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의 게임에 다수의 십대들을 끌어들였다. 그 소녀의 '친구'였던 아이들을.-3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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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양심, 천안함을 추적하다 - 물리학자 이승헌의 사건 리포트
이승헌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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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부 추진체에 300도의 열만 가해졌더라도 잉크는 완전히 타 없어졌을 것이다. 비등점이 이보다 높은 유성잉크나 페인트를 사용했더라도 어뢰 외부의 페인트가 타버릴 정도였다면 내부의 유성잉크나 페인트도 함께 탔을 것이다. 이러한 불일치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외부 페인트가 탔다면 "1번"도 타야 했고, "1번"이 남아 있다면 외부 페인트도 남아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과학이다. 그러나 고열에 견딜 수 있는 외부 페인트는 타버렸고, 저온에도 타는 내부 잉크는 남아 있다. -서재정·이승헌

-47쪽

6월 24일경 노종면 기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정희 의원실에서 합조단에 흡착물질을 요구했더니 천안함 선체의 흡착물질(AM-1)과 어뢰추진체의 흡착물질(AM-II)은 주겠다고 했는데 모의 폭발실험에서 나온 흡착물질(AM-III)에 대해서는 아직 확답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뭔가 확실히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다음날 노기자에게서 전화가 왔을 때, 나는 웃으며 "모의 폭발실험 흡착물질의 EDS데이터가 조작되었군요."라고 말해주었다.

-100쪽

저녁에 서재정 교수와 인터넷전화로 통화를 하다 참여연대 보고서 이야기가 나왔다. 오늘 참여연대가 지난달 발간한 『천안함 이슈 리포트』의 영문판을 유엔 안보리에 보낸 사실이 밝혀지면서 한나라당과 정부를 위시한 보수진영으로부터 맹공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국가적 이적행위" "어느 나라 사람이냐" 하는 어처구니없는 말들이 쏟아져나왔다. 우익단체 회원들이 참여연대 사무실 앞으로 몰려가 물리적인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경찰은 팔짱을 끼고 방관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101쪽

백낙청 교수가 젊었을 때 어떤 분이었는지는 잘 몰랐는데 리영희 선생의 『대화』에 의하면 60년대초 돈과 권력이 있는 집안의 자식들은 다 군대를 빠질 때, 하버드 박사과정 재학중 귀국하여 입대하고 군복무를 마친 분이라 한다.l 또한 스물여덟의 나이에, 그후 한국 민주화운동의 한 축을 담당했던 계간 『창작과비평』을 창간한 분이 아닌가. (...) 현정부와 한나라당의 고위직 중에서 군 복무를 회피한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어찌 백낙청 교수 같은 분과 비교가 되지 않겠는가. 군 복무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전쟁 불사’를 부르짖고 군 복무를 마친 사람은 ‘전쟁 불가’를 외치니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119쪽

정간사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얼마 전에 현 태국정부로부터 국외추방을 당한 탁신 전 수상의 변호사라는 사람이 여기서 기자회견을 했다고 한다. 그때 태국정부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의 기자회견 사실이 알려진 후, 한국 정부로부터 왜 이런 일을 하느냐는 항의전화가 여러 번 걸려왔다고 한다. 언론의 자유에 대한 한국정부의 이해 부족에 기자클럽에 있는 동료들에게 참으로 부끄러웠다고 하셨다.

-142쪽

"우리가 이렇게 찾아온 이유는 이 주간지 기사가 이승헌 교수님의 소속을 밝혔으니 학교 본부에서 교수님과 가족을 보호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면 토오꾜오 경찰과 일본 경찰청에 이교수님의 개인정보를 주어야 하는데 동의해주시겠습니까?"
나는 처음에 귀를 의심했다.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나의 신변보호를 위해 경찰에 협조를 요청한다니.
"토오꾜오대는 이교수님의 보호를 위해 경찰이 필요하면 경찰이 캠퍼스에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다른 도시로 가는 것은 가급적 삼가시고, 꼭 갈 일이 있으면 며칠 전에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일본 경찰청이 그 도시에 교수님의 행적을 미리 알려 보호대책을 세우도록 하겠습니다."
놀랍고도 고마운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일본사회의 저력이랄까 하는 것을 느꼈다. 더구나 과학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사회가 이 정도로 개인의 학문적 소신을 지키는 일을 지원해주다니 더할 나위 없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152쪽

기사에 의하면 러시아 조사단의 결론은 천안함이 먼저 수심이 얕은 해역에서 좌초했고 깊은 물로 가려다가 무언가 사고가 일어나 천안함이 세 동강났다는 것이다. 좌초의 증거들 중 하나는 스크루 날개의 변형상태였다. 이 ‘초기 좌초설’은 이미 『서프라이즈』대표 신상철씨와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 이종인씨가 처음부터 주장했던 건데, 어뢰 공격 이외의 모든 가설은 철저히 무시하는 전략에 의해 조명받지 못했다. 더구나 그들이 박사학위가 없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그런데 러시아 전문가들 또한 똑같은 결론을 냈으니, ‘초기 좌초설’의 신빙성이 더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161쪽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을 신문지상에서 계속할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일 것이다.
첫째, 이 문제는 정권과 보수세력 전체의 존립이 걸린 문제라, 정부의 주장을 계속 되풀이하여 국민으로 하여금 믿게끔 해야 한다는 정치적 판단을 했을 것이다.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과학이라는 권위를 빌리면 국민들로서는 믿지 않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둘째, 한국 과학계의 나약한 침묵이 또 하나의 이유다. 이 정도로 문제가 제기되었으면, 문제의 심각성에 비추어 한국물리학회 같은 공인된 과학단체에서 진실규명을 요구하거나, 직접 실험을 통해서 진실규명을 하겠다고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폭발 초기 버블 팽창과정이 가역적인지 비가역적인지는, 아주 기초적인 물리문제이어서 실험을 할 필요도 없는데, 개개인이 익명으로는 발언을 해도 실명으로는 하지 않는 이유는, 현 정부에 밉보이면 연구비가 끊길 것 같아 몸을 사리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이렇게 개인이 하기 어렵다면 공인된 단체가 나서야 하는데, 참 안타까운 일이다.
-187쪽

버지니아대학은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이 낙향 후에 직접 교정과 건물을 설계하고 세운 학교로 유명하다. 건축에도 일가견이 있던 제퍼슨은 교정에 유럽풍의 건물과 파도 같은 담장들을 세웠고 곳곳에 아기자기한 정원들을 만들어놓았다.

-235쪽

하나 재미있는 것은 합조단이 발표한 최종보고서에는 실제로는 합조단의 결론을 뒤집는 씨뮬레이션 결과나 EDS데이터 등이 실려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합조단 실무과학자들은 양심적으로 모든 자료들을 다 주었고 합조단 고위관계자들은 이를 종합하는 단계에서 자기들에게 불리한 자료들을 구별하지 못하고 모두 다 보고서에 실은 것이 아닌가 하고 여겨졌다.

-240쪽

이과대 학생들의 발표에서 전두환정권 시절의 금강산댐 에피쏘드를 듣고는 새삼스러운 감회가 일었다. 한 학생은 당시 어울대 모 교수가 TV에 나와 금강산댐이 열리면 여의도 63빌딩이 40층까지 물에 잠긴다고 주장했던 예를 들며, 과학이 정치에 부역했던 사례라고 지적했다. 과학자가 자신의 발언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지인으로부터, 10월 28일 합조단 단장을 지낸 윤덕용 교수가 포항공대에서 학부생을 상대로 천안함에 대한 강연을 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강연을 들으면 이수학점을 받을 수 있어서 많은 학부생들이 참석했다고 한다. 교수들도 몇몇 오고 학교 행정관계자들도 왔다고 하며, 또한 포항가속기연구소의 연구원들, 포항공대 대학원생과 박사후연구원 등 소장 과학·공학자들도 다수 참여하였다 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윤교수의 강연 후 토로시간이 매우 격정적이었다는 사실이다.
-245쪽

특히 박병규 박사라는 분은 자신의 인터넷 필명이 Gaia라고 소개한 뒤, 데이터 조작이라는 말도 꺼내며 윤교수를 몰아세워 그가 당황해하자, 몇몇 교수들이 원로이신 윤교수께 무례하다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과학적 진실을 추구하는 데 쓸데없는 권위에 기대어, 진실을 추구하는 그 노력을 묵살하려 하는가. 미국에서 학위를 하면 나이에 전혀 상관 없이 지도교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을 존칭 없이 그저 "철수야" 식으로 이름으로 부른다. 이는 단지 우리와 그들의 언어적 차이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고 학문에 있어서 서로간의 평등한 관계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히고 학회나 쎄미나 등 발표 후 토론은 오직 무엇이 과학적 진실인지만을 따질 뿐이다. 이렇게 연령·직책에 대한 권위의식이 전혀 없는 미국 등지에서 학위를 마치고 돌아왔을 한국 교수들 중 일부가 권위의식을 갖게 되는 것을 보면 참 우스울 따름이다.

-246쪽

침몰의 원인에 대한 이러한 진상규명과 함께 병행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데이터 조작 혐의에 대한 조사다. 이 ‘조작혐의’의 진상은 과학의 재현성 때문에 언젠가는 꼭 밝혀질 것이다. 이것은 이명박정권이 한국사회에 준 ‘과학적’ 선물이다. 이를 밝히기 위해서는 간단히 모의 폭발실험을 다시 하면 된다.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현정부에 감사한다. 그날이 오면 한국사회는 명실공히 참된 민주사회라 불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48쪽

과학적데이터의 조작이 국제무대에서 이용된 적도 있는데, 그 결과는 이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한 예가, 잘 알다시피, 부시 정권의 이라크 침공 직전에 당시 미 국무장관 콜린 파월이 유엔에서 이라크에 대량살상용 생화학무기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죠. 당시엔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가 유사시 45분 내에 상화학무기를 배치, 발사할 능력을 갖췄다는 식의 보도가 줄을 이었는데요, 이는 뒤에 모두 조작된 정보로 밝혀졌습니다. 결국 7년여 간의 전쟁을 통해 희생된 무고한 인명들에 대한 책임은, 당시 미국과 영국 등에서 무기 자문역을 했던 과학자들에게도 상당 부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국제 외교장에서는 이라크전쟁처럼 무언가 결정되고 실행되면, 무수한 인명피해 같은 매우 불행한 결과들을 피할 수 없죠.

-253쪽

이렇게 미국의 경우는 과학자들이 실명을 걸고 과학적 문제 제기를 하는데요, 아마 미국 과학계가 훨씬 크고 다양하다는 점, 그리고 한국에 만연된 인정주의보다는 과학의 존엄성과 엄밀성에 더욱 가치를 두는 미국 과학계의 분위기가 작용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한국에서는 실명을 걸고 남을 비판하면 학계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자신의 연구비나 자신이 속한 조직의 연구비를 따는 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심한 것 같습니다.

-257쪽

이번 국정감사에서 보니 한나라당이 이종인 알파잠수기술 공사대표를 추궁하는 방식은 세가지더군요. 하나는 ‘어느 당이냐?’며 소속을 묻는 사상검증입니다. 둘째는 ‘전문가인가?’라고 묻는 식의 권위주의에 기대기, 셋째는 ‘직접 폭발실험을 해보고 하는 소리냐?’는 식의 태도였습니다. 첫 번째 태도는 거론할 필요도 없는 반인권적 발언이고, 두 번째는 이종인씨는 이 문제에 있어 누구 못지 않은 과학적 탐구정신을 보여주지 않았냐고 되묻고 싶네요. 세 번째는 물리학의 정성적인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국회의원과 이를 반복해서 재생하는 언론사들의 무교양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이러다보니 국민들은 이를 진실게임인 양 결론이 나지 않는 어려운 문제로만 바라보게 되는 것이죠.

-265쪽

(이필렬)2차대전이 끝난 뒤 일본의 과학자들은 군사주의에 동참했던 과거사를 반성하며 민주과학자연맹을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활동 또한 그들의 독립성이라는 전통에 기여했을 것입니다.

-273쪽

(이승헌)제가 머물던 토오꾜오대 연구소에는 내부 승진이 없습니다. 즉 조교수가 부교수로 올라가려면 다른 대학으로 자리릉 롬겨 그곳에서 부교수가 되어 활동하다, 잘하면 부교수나 정교수로 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토오꾜오대에는 쿄또오대 출신이 많습니다. 이러다 보니 교수 집단 내의 패거리정치가 설 자리가 없습니다. 속된 말로 동종 교배는 있을 수 없는 것이지요. 실력은 없어도 내 후배니까 끌어줄게라는 식의 문화는 한국보다 훨씬 적다고 보시면 됩니다. 어느 대학을 나왔든, 공대를 나왔든 다른 전공을 했든 실력이 있다면 인정한다는 거지요. 이런 것들이 연구의 자율성에서 중요한 토대가 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274쪽

(이필렬) 교수의 승진 씨스템은 독일과 마찬가지군요. 한국의 경우는 요즘 들어 연구실적을 따지면서 점점 개선되어간다고는 하지만, 오래전부터 내부승진이 일상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집단의식이란 것이 생기고 남을 비판하는 일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생겨나지요. 더구나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 예컨대 천안함사건 등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입장을 드러내기가 그리 수비지 않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2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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