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보다 하루 더 길었던 기말고사가 오늘로 끝났다.
중간고사 때 엄청 고생했던 기억을 되새기며 많이 준비했지만, 그럼에도 여러 곳에서 삐거걱거렸다.
이를테면, 1교시는 3학년만 시험 보므로 주로 3학년 담임이 시감을 들어가는데, 조회 때문에 다들 일찍 오신다. 그런데 시험 시작 5분 전까지 나타나지 않는 어느 3학년 담임 선생님. 전화를 해보니 아직도 15분은 더 있어야 도착한다는 이야기. 아니 그렇게 늦게 도착할 거면 미리 연락을 줬어야지 무슨 배짱인가? 엘리베이터 놓치고 5층까지 총알처럼 뛰어 올라가 시험지 나눠줬다. 즈질 체력을 자랑하는 나는 놀라기도 하고 분하기도 해서 씩씩댔다지. 그런데 오늘은 2교시 시감을 까먹고 안 나타나서 또 대타로 들어갔다 왔다능.... 버럭!
이건 우리 기획 샘 실수였는데, 과목 코드를 잘못 알려주셔서 OMR 카드가 잘못 나갔다. 한 과목짜리 카드는 코드번호가 50번까지만 기록할 수 있고, 두과목 짜리 카드는 99번까지 쓸수 있는데 65번 과목을 11번이라고 알려주셔서 한 과목 카드를 모두 집어넣었는데 알고 보니 틀렸던 것. 덕분에 시험 시작하고 28개 교실을 다 돌면서 카드 교체해 왔다. 어휴...
두과목이 섞여서 들어오기 때문에 회수하면서 다시 재분류를 해야 하는 게 번거롭다. 그래서 다음 번 주문 때는 아예 카드를 두과목짜리로만 신청했는데 달랑 한 상자만 도착한 것이다. 알고 보니 예산이 부족하다나 뭐라나. 헐...
또 한 번은 이과반과 문과반의 독서 시험 답안지의 사이즈가 뒤바껴서 인쇄되었다. 문과가 큰 사이즈고, 이과가 작은 사이즈였는데 바뀐 것이다. 이걸 시험지 포장하는 선생님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셨는데 다음 날 시험 당일 다른 선생님이 큰 사이즈로 다시 인쇄해 달라고 요구하셨다. 그래서 시험 시작 20분 전에 부랴부랴 재인쇄해서 다시 포장했다.
3학년 고사 담당 샘은 인쇄 맡길 때 제대로 전달했다고 하는데, 인쇄실 종이에는 반대로 적혀 있다. 중간에 구두로 전달한 원로 샘이 잘못 전달했던가, 인쇄실 기사님이 잘못 적으셨던가... 암튼, 아침부터 식은땀을 좀 흘렸는데, 나중에 편집 선생님들께 물어보니 답안지 작게 나와도 상관 없는 문제들이라고 했다. 오히려 크게 인쇄하면 이상한 답을 많이 써서 채점하기 힘들다고... 재인쇄를 요구하신 선생님이 연세가 좀 있으셔서 아무래도 눈이 침침했던 게 아닐까 싶다.
뭐 여기까진 그럭저럭...
어제는 3학년 시감에 참여한 학부모 한 분이 과감한 패션으로 학교에 오셨다. 빨간 면 티에 진 핫팬츠!
아, 우리는 '반바지'가 아니냐고 첫번째 목격자 샘께 재차 물었지만 '핫팬츠'가 맞다고 하신다. 결국 궁금해서 올라가서 슬쩍 보고 왔는데 진짜 핫팬츠더라. 학교에, 그것도 남고에 핫팬츠라니....ㅜ.ㅜ
그렇지만 오늘은 그보다 더 큰 이슈가 발생했다.
역시 3학년 시험이었는데..ㅎㅎㅎ 이과 수학 시험 시감 들어가신 학부모가, 학생들 그동안 수고 많았다고... 마지막 날을 기념하여 용돈을 주겠다며 교실에 있는 17명 학생에게 모두 만원씩 선물을 주었다. 그것도 시험보는 와중에!
아, 이런 엽기 행각이!
혹시 전날 핫팬츠 사건을 무마할 더 쇼킹한 사건을 일으켜서 화제의 중심이 되고 싶었던 걸까???
아들 반에는 시감을 못 들어가므로 남의 반에 가서 17만원이나 뿌린 건데, 나중에 얘기 들어보니 그 전부터 학교에 자꾸 뭔가 사서 보내려고 했건만 아이가 싫어하고 담임샘이 못하게 해서 근질근질해 하셨단다. 럴수럴수럴수!
시험을 하루 더 봤으면 내일은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알 수 없음. 암튼 절대로 심심할 수는 없었던 고사 기간이었다.
일찍 출근해서 가장 늦게 퇴근하는 나날들의 연속, 아흑... 피곤타. 오늘은 일찌감치 나와서 로댕전을 보러 갈까 했는데, 햇볕이 너무 무서워서 5시 반까지 교무실에 남아서 일을 했다. 그 시간에 나와도 뜨겁긴 했지만 눈은 뜰수 있었음. 양산을 장만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