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엔 볼 일이 있어 종로에 나갔다가 반디 서점에 들렀다. 추워서 안쪽을 서성이다가 동화를 몇 권 읽었다.
책 읽는 여우도 나오고 도서관에 간 사자도 나오고, 책을 소재로 한 많은 이야기들이 탄생되고 있으니 책청소부도 마냥 생소하지는 않다. 하지만 소재가 재밌다고 해서 이야기도 재밌는 것은 아니다.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다.
그림이 인상적인 '너를 만나 행복해'는 이야기가 몹시 단순하다. 꽤 따뜻한 이야기지만 역시 기대치가 있어서 확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다.
밥 한그릇 뚝딱!은 편식하지 말라는 의미로 만든 책인지... 그래서 추천도서인지는 모르겠다만, 그림이 너무 징그러웠다. 밥알마다 눈이 있는데 벌레 같아 보여서 식겁했다. 똑같이 음식에 얼굴이 있어도 김영진 작가의 그림은 징그럽지 않고 귀여웠는데 말이다.ㅜ.ㅜ 최인선 작가의 만화가 생각나는 그림체였다. 으...
내 토끼가 또 사라졌어!는 '내 토끼 어딨어?'의 후속편인데 전편과 마찬가지로 재미와 감동을 준다. 성숙해진 아이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선물이 되어주는 이야기 구조가 마음에 들었다. 따뜻한 이야기다.
화요일에는 저녁 약속이 있었는데 광화문에서 볼 일이 있어서 나간 김에 씨네큐브에서 영화를 봤다.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
일랴 레핀의 '맨발의 톨스토이' 그림에서 보았던 톨스토이와 똑같은 모습의 톨스토이가 화면에 나온다. 어쩐지 반가웠다. 백작이라는 신분적 특권을 내려놓고 사유재산을 부정하며 자연인으로 살려고 했던 인물. 부인과의 마찰은 당연지사다. 자식들도 아버지를 지지하는 이와 어머니를 지지하는 이로 나뉠 수밖에 없다. 백작 부인 역을 헬렌 미렌이 했는데 '더 퀸'의 그 고고한 여왕님과는 180도 다른 모습의 연기를 볼 수 있었다. 역시 베테랑! 속물이기는 하더라도 사랑에 솔직했던 백작 부인이 톨스토이를 앞세워 목적을 달성하려고 애쓰는 체르트코프의 가식보다 훨씬 인간미 있었다. 숭고한 이상을 앞세우며 인간에 대한 기본 예의조차 지키지 않는 모습을 보자니 갑갑했다. 내 왼쪽의 커플은 너무 떠들었고, 오른쪽에 앉은 아주머니는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내내 코를 골며 주무셨다. 아, 난감하여라....
저녁에는 합정으로 넘어가서 나의 야곱을 만났다. 11월에 잠깐 만나 밥만 먹고 헤어졌는데 모처럼 길게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예전에는 내가 술을 전혀 먹지 않아서 야곱은 맥주를 마시고 나는 차를 마실 수 있는 곳을 찾느라 무지 애를 먹었는데 이젠 둘 다 맥주를 즐길 수 있는 곳에서 만날 수 있어 추위를 덜 타도 되었다. 아는 사람이 운영한다는 북 카페를 갔는데 문학과 지성사 팀이 행사 진행 중이어서 홍대 쪽으로 나와 흔한 호프집에 들어갔다. 오, 나는 지난 주에 마신 맥주 500ml가 내 인생 최고로 많이 마신 맥주였는데 이날 모두 합해서 1,330ml를 마셨다. 호가든하고 생맥주 합해서. 우리가 시간이 더 있었다면 좀더 마셨을 것 같은데 12시에 털고 일어났다. 알고 지낸지 10년 만에 술잔으로 건배했다. 다음엔 피쳐로 시키자고 약속했다.^^
야곱이 내게 전해준 멋진 책들은 아주 묵직했다. 내가 배낭 메고 가서 전해주고 온 무게만큼 다시 지고 돌아왔다. 우린 매번 그런다.
다음 약속은 1월인데 그때 들고 나갈 책 목록도 이미 생각해 두었다. 그 중 하나가 더블. 창비 어린이 정기 구독을 하는 동안에 40% 할인을 받았는데 며칠 전까지 유지되던 나의 40% 할인이 끝났다. 박민규 더블을 하나 더 사려고 했는데 그것 때문에 정기 구독을 연장해야 하나 고민 중이다. 정기 구독 연장은 3만원이고, 더블은 알라딘에서 사도 마일리지 빼면 대략 2만원인데.. 흐음.. 좀 더 고민을...
수요일은 오래 전에 예매해 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보았다. 잠실 샤롯데 씨어터. 수요일 낮 공연이어서 할인을 받았고 좌석도 가장 낮은 등급의 A석이었는데 익숙한 내용인지라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다만 내 왼쪽의 모녀는 늦게 입장해서는 떠들고, 나중에 핸드폰까지 받아버려서 역시 식겁...
2006년도에 처음으로 지킬앤하이드를 보았다. 류정한, 소냐, 김소현 주인공.
그 다음엔 2008년도던가? 류정한, 김선영, 김소현 버전으로.
그래서 이번엔 홍광호 버전으로 예매했는데, 김소현이 독감에 걸려 조정은으로 급하게 바꼈다. 루씨는 선민.
홍광호는 스위니 토드에서 처음 보았고, 선덕여왕 ost로 기대를 모았던 배우다. 그런데 상당히 아쉬운 캐스팅이었다. 일단, 연기가 좀 안 된다. 지킬앤하이드는 잘만 소화하면 대박 스타가 될 수 있는 좋은 역할인데 1인 2역을 소화해야 하므로 꽤 연기력을 요한다. 노래만 하면 괜찮은데 대사를 잘 소화하질 못했다. 무엇보다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부족했다. 조승우의 안정된 연기와 류정한의 카리스마에 익숙했던 나로서는 지나치게 아쉬운 지킬이었다. 그나마 가장 유명한 '지금 이 순간'을 부를 때 무리한 애드립으로 역시 실망실망...
김소현은 다른 건 몰라도 '엠마' 역에는 딱인 배우였다. 그녀가 나오는 다른 뮤지컬에서는 맘에 들지 않을 때가 곧잘 있었지만 지킬-에서만큼은 딱 엠마 그 자체였는데 애석하게 배우가 교체되었고... 조정은 배우는 전혀 성에 안 찼다.
오히려 너무 강렬한 소냐 덕분에 김선영 루씨도 별로였던 터라 전혀 기대를 모으지 않았던 선민 배우가 아주 열연을 해줬다. 소냐보다 잘 부르진 않았지만 김선영 버전보다도 훨 나았고, 무엇보다도 예뻤다. ㅎㅎㅎ
잠실까지는 너무 멀었고, 2부 시작하고는 졸음을 참느라 애먹었다. 초등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들이 종종 보였는데 사람 죽이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오는 이 뮤지컬은 아이들에게 조금 그렇지 않나? 내 왼쪽의 아이도 번개 치는 장면에서 엄청 크게 비명을 질러서 그 소리에 더 놀라고 말았다. 아이가 초등 저학년 쯤으로 보이던데 스릴러 장르는 좀...
수영 강습 시간이 빠듯해서 포토존에서 사진 한 장 못 찍고, 프로그램 구경도 못하고 바로 뛰쳐나왔다. 정작 셔틀 버스가 늦게 와서 저녁도 굶고 기진맥진 재차 기다려야 했지만...
집에 돌아와보니 택배가 한 상자 도착해 있다. 어제는 보리 특집이었는데 오늘은 문학동네 특집.
역사 만화는 이제 슬슬 역사 공부 시작할 때인 큰 조카에게 맞춤형 책이다. 게다가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체. 알라딘 산타님 덕분에 이모는 또 생색낼 수 있게 됐다. 그밖에 다양한 소설과 만화 등등, 푸짐한 만찬 선물이 되어버렸다. 어이쿠, 과한 선물에 잠시 몸둘 바를 모르겠다.('' )( '') 이매지님 고마워요, 책 맛있게 읽을게요. ^^
지난 주에 이어 이번주까지 엄청 바쁘게 놀았다. 송년회라는 이름을 굳이 붙이지 않아도 꼭 보고 싶었던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 시간이었다. 이제 이틀도 채 남지 않은 2010년을 차분하게 마무리 해야 하는데 스케줄이 조금 더 있는 것도 가....같고...;;;
하여간! 2010년의 끝자락에서도 좋은 사람들의 따뜻한 온기가 마음으로 전해진다. 날씨는 찬바람 쌩쌩이지만 나누는 마음의 온도는 언제나 섭씨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