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이 지나가고 새 달이 되면, 전 달에 내가 몇 권의 책을 읽었는 가를 다이어리에 표시해 둔다.
예전엔 그 달에 본 공연과 비디오와 영화와 만화책과 기타 등등 자세히 적었는데 요샌 귀찮아서 책 몇 권! 이런 식으로 적는다.
그런데, 이때 내가 사용하게 되는 '책'의 범주는 좀 애매하다.
역사책이나 인문 도서, 수필 등은 생각할 것도 없이 '책'으로 표기한다. '동화책'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애매한 분야가 '만화책'이다.
책은 책인데... 책 몇 권!에 넣자니 조금 양심에 찔린다. 아니 왜? 상대적으로 금방 읽게 되어서?
그럼 동화책도 마찬가지다. 긴 동화책도 있지만, 유아용 도서는 진짜 십분도 안 되어 읽을 수 있다.
그럼 내용 면에서? 재미만을 추구하는 만화책도 많지만, 그 깊이와 넓이에 있어서 웬만한 도서 못지 않은 훌륭한 만화책도 참 많다. '작품'의 반열에 올라선. 그에 비해서 '책'이라는 껍데기를 갖고 있지만 정말 돈 아까운 도서도 많은데 말이다.
이건 솔직히 차별이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만화책들은 세어볼 수가 없어서 얼마나 되는 지 알 수 없는데, 아마 꽤 많을 것이다. 그런데 과거로부터 우리 어무이께서는(언니들 모두 포함) 내가 만화책 보는 것을 싫어하신다. (하지만 나를 만화의 세계로 이끈 것은 아홉살 때 엄마가 사준 보물섬 때문이었는데...;;;)
그래서 나는 만화책을 몰래 사서 읽었고, 몰래 보관했다. 그런데 잦은 이사 때문에 이 만화책들이 들통날 때가 많았다.
2000년도에 대대적으로 책을 방출해서 많이 비워냈지만, 지금도 사실 많다. 문제는, 대놓고 전시할 수가 없어서 다 어디다가 숨겨두었는데, 지금 사는 집에서 이토록 오래 살 줄 몰랐던 나는 베란다 어딘가에 방치한 채 지금도 책을 못 찾고 있다. 그밖에 또 많은 책들은 상자 채 친구 집에 선배 집에 기타 등등 보관시킨 게 많다. 나중에 그 책들을 다 회수하려면 자동차 운전이 필수가 될 것이다.
나의 소박한(?) 꿈이 나의 책들을 차별하지 않고 제대로 된 책장에 잘 꽂아두는 것인데, 이건 내가 시집을 가거나 홀로 독립하기 전엔 좀 힘들 지도 모르겠다. 요새는 쌓여가는 책들 때문에 만화책 아닌 인문 서적들도 박대를 받고 있다ㅠ.ㅠ
어무이께서는 사람이 책만 읽고 지식으로만 꽉 채워지면 몹쓴다고 하시지만, 아니 지식으로라도 채워봤어야 그런 말이 안 억울하지..ㅡ.ㅡ;;;;
하여간, 오늘도 헌책방에서 구입한 나의 만화책들은 책상 밑 상자 안에서 밭은 숨을 몰아쉬고 있다. 나 혼자 있을 때 택배 아저씨가 오셔서 어찌나 다행이던지...;;;;
하지만 절판된 귀한 책을 구했으니 기분 좋다. 더 안전한 곳으로 빨리 피신시켜야지...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