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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키고 싶은 비밀 ㅣ 신나는 책읽기 5
황선미 지음, 김유대 그림 / 창비 / 2001년 12월
평점 :
입밖에 나가는 순간, 모든 비밀은 깨어지게 되어 있다. 절대적 비밀이란 말은 절대적 소문이란 말처럼 들린다. "너만 알고 있어야 돼~"라는 말끝에 나간 말이 내 귀로 다시 들어오는 경험을 다 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내 맘 속에 담고 있는 것이 고달파서, 누가 부러 들춰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비밀도 분명 있다. 우리가 아이였을 때에나 이미 어른이 된 뒤에도 말이다.
은결이는 엄마가 낡은 지갑 속에 모아두는 빳빳한 돈을 몰래 몰래 꺼내쓰면서부터 통 밥맛이 없다. 친구들과 어울려 과자를 사먹은 탓에 입맛이 없지만, 엄마한테 들킬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에 더 그렇다.
형 한결이는 게임중독으로 컴퓨터 근처에 동생이 가지도 못하게 하고, 아버지는 치주염으로 고생하시고 어머니는 일까지 시작하셔서 은결이는 통 관심의 대상이 되질 못하고 있다. 친구들에게 얻어만 먹다가 모처럼 군것질도 시켜주니 어깨도 으쓱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우쭐댈 수 있는 것은 잠시뿐이고, 친구들의 관심을 지속시켜주기 위해선 엄마의 지갑게 자꾸 손을 대어야 했고, 그리고 죄책감은 더 커져갈 뿐이었다.
작품은, 언제나 그렇듯 철저히 주인공의 시선에서 전개된다. 9살 은결이의 사고 수준에서 엄마와 아빠를 생각하고 형을 생각한다. 아이는 관심 받고 싶고 사랑 받고 싶고 주목을 끌고 싶지만 그 방법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서툰 실수를 하고 그 실수의 파장에 당황하고 더 큰 잘못을 저질러 더 궁지에 몰리고 만다.
열두 살 형 역시 딱 그만큼의 사고 수준으로 움직인다. 동생과 싸우기 일쑤고, 태권도 시합에 대비한 연습은 게을리하면서 게임에만 열중한다. 시합에서 이기고 싶었던 마음도 게임씨디를 선물로 준다는 아빠의 약속 때문이었다. 단번에 KO패 당해 나가 떨어지자 아버지는 힘내라고 하면서도 여간 섭섭한 눈치가 아니다. 형이 패한 것에 대해 동생 은결이는 자신이 커서 복수해주겠다고 말하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웠는지 모른다. 그 나이 때에는 내 편이 아닌 것은 모조리 적으로 인식될 때니까. 그래도 형이라고, 아버지가 주신 매실주스를 남겨서 동생 먹이는 장면이 훈훈했다.
은결이의 들키고 싶은 비밀은 마침내 폭로된다. 원치 않는 방향에서 말이다. 엄마와 아빠의 배신감은 이루말할 수 없었다. 아이는 다행으로 여기면서도 무섭고 서럽고 울음을 그치질 못한다. 몇 대 맞을래? 라고 했을 때 "한대요"라고 대답한 장면은 푸훗!하고 웃어야 했다. 어리긴 어리구나... 그리고 순수하고 솔직하구나... 싶어서. ^^
내내 들었던 생각은, 그래도 '가족'은 참으로 따뜻하고 아름답다는 것. 유리파편에 발바닥을 다친 은결이를 땀에 푹 젖으며 업고 오면서도 힘들다 내색 않던 엄마(아들의 잘못을 이미 알고 있어 화가 나 있는 상태였음에도), 엄마가 힘들게 모으던 그 돈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를 알았을 때, 아빠의 수술로 병원에 가기 위해 나설 때 그래도 동생 손을 꾸욱 잡아주던 형의 믿음직한 모습 등이 작품 속에 예쁘게 박혀 있다.
아이는, 그 따뜻한 정을 자양분 삼아 성장할 것이다. 낡은 지갑 속에 엄마가 차곡차곡 모았던 그것이 사실은 사랑의 한 표현이라는 것... 아무리 얄밉게 굴어도 형만한 아우 없음도 알 것이고, 엄마 지갑에 손댄 것만큼이나 물질적인 것으로 친구를 만들려고 했던 마음도 나쁘다는 것을...
이 작품 역시 작가의 개인적 경험에서 소재를 찾은 듯한데, 소소한 일상에서 이토록 품에서 빼낸 듯 따뜻한 이야기를 뽑아내는 작가의 재능에 감탄하게 된다. 작품 말미가 덜 종결된 느낌으로 끝난 것이 다소 아쉽지만, 그래도 별 다섯이 아깝지 않다. 거친 듯 그렸지만 개구쟁이 아이들의 모습을 정겹게 담아낸 그림도 즐겁다. 책 말미에는 "들키고 싶은 비밀"을 적어볼 수 있는 여백이 따로 준비되어 있는데, 보란 듯이 들키고픈 비밀을 적어보는 것도 즐거운 놀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