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테크리스타
아멜리 노통브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세계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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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 노통은 매력적인 작가다.  그녀의 필체는 흡인력이 있고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어서 일단 손에 잡으면 계속 읽어야 한다.  그런데 그녀의 작품을 소개하면 두가지 반응이 나온다.  깔깔대며 웃었다고 재밌어 하는 부류와, 이게 뭐냐고 집어던지는 형..ㅡ.ㅡ;;;;

흠, 그 두 부류가 모두 이해가 간다. 보통은 첫번째의 경우로 내게 다가오는 작가지만, 아주 가끔 두번째로 나를 방문하기도 하니, 이 작품이 바로 그러했다. T^T

노통의 작품 속에는 '적'이 등장한다.  그 적은 내 안의 양심일 수도 있고 악마적 본성일 수도 있고 사이코 기질의 누군가일 수도 있다.  이 작품에서는 아주 깨는, 그리고 못된, 정말 때려주고 싶은 여자아이가 등장하는데,  읽는 동안 어찌나 히스테릭해지는지 아주 환장할 지경이었다.  그녀에게 속아 넘어가는  주인공의 부모님은 내다 버리고 싶었다.ㅡ.ㅡ;;;작품의 길이가 짧아서 다행이었다고 할까.(노통의 작품은 대개 200페이지에서 300페이지 사이의 길이를 유지한다. 400페이지 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그 점이 맘에 들기도^^ㅎㅎㅎ)

그녀의 다다다 쏟아내는 말투는 흡사 김수현씨의 극본을 연상하게 하는데, 김수현씨의 작품은 일단 나왔다 하면 대중적 홈런을 치기는 하지만,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도 곧잘 보게 된다.  그들이 지적하는 것은 주인공들의 쏟아지는 말들이 짜증난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이 작품에서 나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이건 마치 트랜디 드라마에서 감초인 척하고 나오는 전형적인 악녀의 캐릭터랄까.  물론, 트랜디 드라마같은 소설은 아니다.  그보다는 더 남는 게 많다고 말할 수 있다.  주인공이 신데렐라 캐릭터가 아닌 것은, 마지막 씬에서 거울을 보며 갑작스레 멋있어질 자신을 기대하지만 그런 마법은 일어나지 않는다. 주인공들은 그저 일상으로 돌아갈 뿐.

노통의 작품을 볼 때면, 항상 그녀의 놀라운 상상력에 감탄하곤 한다.  이런 발상은 어떻게 가질까? 싶은... 외교관 아버지 덕에 여러 나라에서 살았던 경험과 추억이 고스란히 글속에 남아있겠지만 그 이상의 특별함은 무엇으로 설명할까.  그녀의 작품을 같이 읽어온 한 지인의 표현대로라면, 그녀는 분명 외계인이 분명하다...;;;;

그러나, 노통은 재미를 주지만 감동은 쉬이 주지 않는다.  깔깔대고 웃고 즐길 수 있지만, 가슴 찐하게 흔들리는 여운을 주지는 못한다.  그것이 그녀의 한계랄까.  그런데 작가 자신은 그런 것에 그다지 집착하지도 않고 개의치도 않는 것으로 보인다. 혹 그것이 동양적 정서와 서양적 정서의 차이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어린 시절 습작해 놓은 것을 해마다 발표하고 또 다시 베스트 셀러를 기록하고 자신의 매니아들을 양성해내는 것으로 만족하는 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처럼 내내 즐겁게 보다가도, 어느 순간 한계를 느끼며 이제 그만 봐도 되겠다 싶게 느끼는 독자들도 있게 마련일 것이다.(내 주위엔 벌써 나가 떨어진 독자들이 많다...;;;; 나야말로 오래 버텼달까...;;;)

그런데 또 마력이 있는 것이, 새 작품이 나오면 다시 궁금해진다.  보다가 또 열받으면 어쩌지? 걱정이 되다가, 그런데 또 재밌으면 어쩌지? 하는 기대가 공존한다.  현재 그녀의 작품은 딱 두개만 보지 못한 상태이다.  아마 끝내 나는 그 책들을 챙겨볼 것 같다.  다시 애정으로 바뀌어질 지, 영원히 내치게 될 지는 그때 판단해야 할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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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어떤 것
현고운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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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흥미진진하게 시작했다.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새벽 늦게까지 책을 놓지 못할 정도로 긴장도 주고 재미도 주고 멋있기도 했다.  드라마는 보지 못했지만 등장 인물들을 알기에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읽으니 더 재밌고 근사하게 보였다.

그런데... 중반 넘어가면서 뭔가...;;;;; 싶었다.

우리 드라마의 전형적인 설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뻔한 신데렐라 이야기랄까.

여자 주인공이 똑부러지고 야무지고 요새 인기있는 설정은 다 있지만, 그 설정을 납득시키는 근거가 너무 부족했다.  이를 테면, 마지막에 주인공 다다가 자신에게 있는 어떤 특별함 때문에 독신을 고집했다고 하는데, 그 특별함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는다.  그녀가 굉장히 독특하고 또 똑똑하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그녀의 특별한 해몽도 사실 평범하기 그지 없었고, 그밖의 다른 에피소드에서도 그런 눈치는 전혀 챌 수 없었다.(그녀가 일부러 감춘거라고? 그런 설정이 있을 뿐.ㅡ.ㅡ;;;)

그녀의 오빠 김서현. 엘리트에 미남 의사. 다부지면서 카리스마가 있는 정말로 멋진 캐릭터!라고 작가는 설정을 해 놓았는데, 보통 이상이라는, 범접할 수 없다는 그만의 카리스마가 대체 어디 있는지 나는 글 속에서 찾기 어려웠다.  그건 어디까지나 그렇다라는 설정이 있을 뿐이었다.

또 악녀로 등장한 주희는 어떠한가.  그 캐릭터의 뻔한 전형성이야 넘어가지만 그녀가 다현을 걸고 넘어지기 위해 부린 수작이라는 것은 상식 수준을 벗어났다.  단순히 악녀 캐릭터라는 것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덜떨어진 수단이었다..;;;;

주인공 다현이는 학교 선생님이지만 선생님으로서의 고뇌나 에피소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처음 계약 연애를 시작하는 것이 자신의 뛰어난 수재 학생을 유학 보내기 위한 거래였는데, 그 때 이후 그녀의 학교에 관한 이야기는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솔직히 얘기해보자.  할아버지 짐 들어드린 것에 홀딱 반해서 재벌 총수가 자신의 손주 며느리로 여인을 찍는다!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아우, 아무리 비현실적인 드라마에 소설이라고 해도 이건 정도가 심했다.

초반에 톡톡 튀는 연애질에 재밌었던 것이 무색할 만큼 작품은 뒤로 갈수록 망가졌다.  드라마는 조금 더 현실감있게 그렸을지 어땠을지 알 수 없지만, 일단은 소설만 보기에는 너무 비현실적이었고 억지스러웠다.  내가 가졌던 호감이 다 사라지는 기분을 맛보며 읽기를 마무리 지었을 때는 참 불편했다.

21세기에도 사랑은 영원한 주제이지만, 그 주제를 포장하고 표현하는 방법은 20세기와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이젠 독자들도 예전 같지 않다.  루루 공주의 실패와 내 이름은 김삼순의 성공이 떠오른다.  작가의 다음 이야기는 보다 현실적인, 그래서 수긍하고 공감가는 이야기가 나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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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과 유진 푸른도서관 9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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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이는 중학교 학년에 올라가서 자신과 같은 반에 또 다른 유진이가 있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성도 똑같은 이유진이다.  자세히 보니 같은 유치원을 다녔던 동창생이다.  그런데 작은 유진이는 나 큰 유준이를 알아보지 못한다.  더군다나 그런 유치원에 다닌 적도 없다고 한다.  분명 같은 아이인데... 작은 유진이는 왜 기억을 잃어버렸을까...

이금이 소설 유진과 유진은 성장 소설이다. 한참 사춘기를 겪을 중학생 소녀가 주인공이다.  두 유진이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다른 성격과 특징을 갖고 있지만, 둘은 동시에 같은 기억을 가진, 그래서 같은 이름이 운명같기도 한 아이들이다.

유치원 시절, 유치원 원장에 의해서 성추행을 당했던 아이들중에 두 주인공 유진이들은 다른 방법으로 상처를 꿰매느라 애썼다.  큰유진이의 부모님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며 아이를 안아주고, 네 탓이 아님을 강조하며 아이의 드러난 상처를 자연상태로 치유하고자 했다.  반면 작은 유진이의 부모님은 어찌할 바를 몰라하다가 아이에게 기억을 잊어버릴 것을 강요했다.  할머니는 깨진 그릇 취급을 하였고 어머니는 너무 쌀쌀맞았다.  성장과정에서 작은 유진이는 자신의 엄마나 아빠가 새엄마 내지 새아빠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는 동생들과 다른 그 차별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작은 유진이는 봉합되었던 기억을 큰유진이를 만나면서 조금씩 상기하게 된다.  그 파장은 놀라웠다.  내 탓이 아닌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죄인 취급하는 가족을, 강요된 기억상실에 아이는 설 곳을 잃어버린다.   전교1등을 하며 악착같이 모범생의 모습으로 자신을 지탱해오던 작은 유진이는 이 일을 계기로 반항을 하기 시작한다.  담배를 피우고, 학원을 가지 않고 춤을 배우러 다니고 지금껏 못했던 일탈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들이 들통나면서 균열은 더욱 커진다.  부모님은 왜 그랬냐고 묻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망가지기 전에 미국에 보내겠다는 엄포와 무서운 매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한편, 큰유진이는 유치원 동창생인 건우와 예쁘장하게 연애를 하고 있었는데, 건우 어머니로부터 유진이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고는 그만 헤어지자고 한다.  어머니께서 '그런 애'와 사귀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건우의 어머니는 사회운동가로서 사건 당시 피해자의 어머니들을 위해 발벗고 도와주었던 사람이었다.  텔레비전에 출연해서 우리 사회의 청소년들에 대한 전문적 조언을 아끼지 않던 그녀의 이중성과 건우의 모습에 유진이는 큰상처를 받는다.

집에 갇혀버린 작은 유진이는 큰 유진이에게 도움을 청하고 큰유진이는 단짝 친구 소라와 함께 작은 유진이를 구출(?)한다.  갈 곳 없는 아이들은 바다를 보기 위해 정동진행 기차를 타고 나름 무모하면서 기대되는 일탈을 해버린다.

그러나 정동진에 도착했을 때는 학원비로 챙겨두었던 돈을 도둑맞은 뒤였고, 결국 아이들은 부모님께 연락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을 팽개치고 달려오신 큰유진이의 부모님은 혼을 내기는커녕 오히려 아이를 보듬어 안고 무사함에 감사하기만 했다.  슈퍼마켓 운영으로 늘 바빴던 소라의 어머니는 딸을 때리며 혼내키기도 했지만 그 끝에 묻어나는 울음과 따뜻한 포옹은 소라의 마음도 울려버린다.  그러나 멀찍이 떨어져서 한마디 말도 하지 않는 작은 유진이의 어머니는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  돌아오는 길, 어머니는 차를 돌려 어느 호텔에서 묵자고 하였다.  내내 억눌렀던 울분을 작은 유진이는 터트리고 만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어머니의 미숙한 모성애와 서툴렀던 사랑을 확인한다.

세상에 어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 사랑하는 방법은 저마다 모습이 달랐다.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 애정은 오해와 불만을 만들고, 작은 유진이의 경우처럼 긴 상처를 남겨 서로를 상처내기 일쑤다. 

이 책은 열다섯 소녀들의 감수성과 그들의 고민, 그들의 행동들을 딱 그 모습 그대로 묘사해내고 있다.  건우와의 문자 데이트를 소라를 통해서 해야 했던 큰유진이는 핸드폰을 사달라고 노래를 불렀지만 어머니에 의해 무시되었고, 아버지께서 핸드폰을 사러 같이 가자는 말에 자신을 위한 선물이라 여겨 콧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신의 핸드폰을 장만하신 거였고, 자신이 넘겨짚은 거지만 상처받은 유진이는 동생과의 싸움에서 기어이 감정이 폭발하고 만다.  이 과정에서 부모님이 보여주신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어릴 적 읽었던 소설 "홍당무"에서 무섭기만 했던 홍당무의 어머니와 비슷했달까.  결국 부모 마음이란 그렇지... 라는 안도감과 유진이의 반응들이 너무 귀엽고 생생해 어릴 적 내 모습도 같이 떠올릴 수 있었다.

단짝 친구 소라의 캐릭터도 인상적이다.  슈퍼마켓을 운영하시는 부모님은 자식들이 공부를 잘해 앞가림을 하면 모를까, 아니라면 가게에서 배달을 시키겠다고 하셨다.  언니인 보라는 죽어라 공부를 하지만, 소설가가 꿈인 소라는 차라리 배달을 하는 것이 자신의 인생 겸험을 늘려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어른들의 기준으로 공부는 못하고 딴 궁리만 하는 소라가 우등생은 아닐지언정, 아이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고 나름 확고한 인생관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유진이와의 우정은 또 얼마나 깍듯하던가.

건우와 건우 어머니의 캐릭터도 생각의 여지가 있다.  멋진척 쿨한척은 다했지만 사실은 마마보이였던 건우와, 사회적 명예와 위신은 지켜도,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는 친절은 아니었던 그녀의 가식은 유진이를 향한 반응에서 이미 드러났다.

작은 유진이를 가졌을 때 너무도 가난했던 부모님은, 자신들에게 닥친 사건이 가난 때문이라고 탄식했다.  부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을 했던 그들은, 부모님께 순종하여 집으로 들어가며 자신들이 감당해야 했던 책임과 상처를 외면해버렸다.  그것은 결국 그들과 딸 작은 유진이에게 더 큰 상처로 돌아오고 말았다.

성장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이 책이 시사해주는 바는 작지 않다.  비단 청소년들의 읽기 책으로 국한할 수도 없다.  거기에는 이 책이 담고 있는 소재의 위험성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성범죄는 유독 건드리기 어렵고 민감한 부분이다.  전통적 유교 질서에 얽매여 있는 이 사회는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더 발뻗고 자지 못하게 만들고 가족이나 이웃들도 어떤 의미로든 가해자의 입장이 되곤 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의 건우와 건우 어머니, 그리고 작은 유진이의 부모님과 조부모를 떠올리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근래 들어 더더욱 성폭력 사건이 많았는데, 이는 단지 피해자들이 마음을 독하게 먹는 것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대책이 필요하다.  사람들의 의식이 먼저 바껴야 함은 물론이다.  더군다나 성폭력은 재범죄율이 높은 만큼 거기에 대한 시급한 대책이 요구된다.  이 책이 그러한 여러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서도 경종을 울릴 수 있기를 바란다.

참 아프고 참 강동적이었던 글을 만나서 기뻤다.  도서관에서 책을 골라 본 것인데, 아무래도 구입해서 소장해야겠다.  두루두루 선물도 하면 좋겠다.  오늘 수업에 학생들에게 얘기해주면 열다섯 소년소녀들은 즐거이 들을까? 음... 솔직히 모르겠다ㅡ.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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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 문성현 - 창비소설집
윤영수 지음 / 창비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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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풍기는 느낌이 꼭 '민주화 운동' 냄새가 났다.  게다가 내가 싫어하는 신명조체로 줄간도 좁다.  표지는 전혀 세련되지도 않았고, 작가의 이름은 처음 들어본다.  그런데 반드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추천한 사람의 안목을 믿기에^^

책을 펴드니,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어릴 적 동네에 있던 작은 책방, 문을 열고 들어서면 싸아하게 코를 자극하던 오래된 책에서 나는 옛스런 냄새. 햇빛 드는 날은 먼지까지도 화사하게 보이던 그곳에서의 풍경이 오랜 시간 지나 다시 연출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장편 소설인 줄 알았건만, 이 책은 중 단편을 모은 소설집이었다.
맨 앞의 연작 소설 세 편은 형식과 연출에 있어서 거의 파격적인 모습이었고, 첫 작품부터 그녀의 탁월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헉! 영화로 찍어 놓으면 죽이겠다 싶었다.

이어지는 단편들에서도 눈이 커지기만 한다.  책에서 손을 놓기가 어렵다.  단편도 이렇게 재밌는거구나... 새삼 깨닫고 말았다.  일상 소사에서 녹아있는 삶의 체험들, 곧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가 곳곳에서 할짝이며 눈인사를 보낸다.  더군다나 여성 작가, 어머니, 주부로서 쓸 수 있는 이야기들과 관찰의 대상들에 살짝 미소지을 수밖에 없었다. 

작가의 시선은 줄곧 따뜻하다. 우리 사회의 모순을 고발할 적에도 그녀의 눈길은 차마 냉소를 머금지 않는다.  작가는 독자와 자신을 분리하지 않고 그녀 자신도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임을 온몸으로 보여주며, 동시에 특별한 존재임을 증명한다.

마지막 편 착한 사람 문성현을 읽으면서 떨려오는 흐느낌을 참기가 힘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눈물 짓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놀라운 충격이었으며 감동이었다.  고맙고도 미안했으며, 안타깝고 아픈 마음이 줄곧 공존했다.  그녀의 글쓰기가 오래오래 지속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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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어린왕자
장 피에르 다비트 지음, 김정란 옮김 / 이레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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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린왕자를 만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었다.  너무 예쁘고 순수해서, 사막에서 그를 만난 생떽쥐베리가 너무도 부러웠던 나였다.  중학교 2학년 때, 교생 선생님과의 국어 수업, "선생님, 생떽쥐베리가 정말 사막에서 어린 왕자를 만난 거죠?"라는 질문에 교실은 온통 웃음 바다, 졸지에 난 현실 감각이 없는 학생이 되어버렸다.  소설이 허구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 있어 어린 왕자는, 그 허구 속에 틀어박힐 수 없는 대상이었다.  때문에 소설임에도 어린왕자는 내게 실존인물이었다.  그것이 깨졌던 바로 그날, 집에 돌아와서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난다. 웃음거리가 된 게 챙피해서가 아니라, 좀 더 오래 내 안에 있어도 좋았을 어린 왕자를 내 스스로 보내버린 것 같아서...

그래서, "다시 만난 어린왕자"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이 책이 반갑지 않았다.  다시 만나봤자니..ㅡ.ㅡ;;; 요런 시니컬한 반응.  친한 동생이 이 책을 추천해 왔을 때에도 그닥 내키지 않았다.  그래도 그 아이의 안목을 믿었던 터라 한 번 들여다 본 책은, 너무 예상 밖이었고 내 기대를 한참 비켜나갔기에 꽤 충격적이기도 했다.

책은, 원작 어린왕자를 패러디한 내용이다.  그러나 단순한 패러디가 아니라 몹시 철학적으로 접근했다.  생떽쥐베리 대신 장 피에르 다비드를 만나 준 어린왕자의 이야기.  조금은 달랐던 그의 여행기, 그의 요구 조건, 그와의 대화...

몹시, 이뻤다.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까닭도 모른 채 눈물이 날만큼 그리운 기분이었다.  그다지 길지 않은 책을 덮으며 참 마음이 벅찼었다.  역자의 후기는 또 다른 해석을 남기며 내 지적 만족감을 채워주기도 하였다.

패러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원작을 해치는 다시 쓰기도 좋아하지 않던 나였는데, 이 책은 그 모든 것에서 예외가 되었다.  역시 스스로의 습관을 너무 고집하면 편벽될 수밖에 없는가 보다. 고집 꺾고 보았더니 좋은 책을 만나지 않던가.  호불호야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좀 더 마음을 열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세한 책 이야기는 직접 읽고서 느껴보시기를... ^^ 멋진 당신의 어린 왕자를 다시 만날 것이다.  어릴 적의 어린왕자와 달리, 성인이 되어서 만난 어린 왕자도 여전히 매력적일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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