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집사 18
야나 토보소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일년에 두권 나오는 흑집사를, 반년 기다려서 드디어 보게 되었다. 아 기다림은 길고 페이지는 짧기만 하구나!

이번에도 어김 없이 표지 그림부터 확인했다. 겉껍질을 벗겨 내면 패러디 표지가 나오는 것이 흑집사를 읽는 또 다른 재미니까.

이번 그림은 이누야사나 백귀야행의 패러디인 건가? 그 둘의 조합인가? 아무튼! 여전히 기분 좋게 읽을 수 있었다.



옅은 청록색? 형광빛 초록색? 하여간, 블랙과 조화를 이루는 다양한 색상들이 매번 등장한다. 이것도 속표지 보는 재미 중의 하나!


목차 옆 자리는 장의사가 차지했다. 부담스럽게 다리를 길게 그리지 않아서 편안하다. 애니메이션은 확실히 과하게 다리가 길게 나왔는데 야나 토보소의 그림체는 안정적이다. 약간 삐뚜름한 목차도 반전 매력이 있다. '그 집사'로 시작해 두 글자로 소제목을 표현하는데 타무라 유미가 색깔로 소제목을 표현하는 것처럼 개성 있다.



명문 기숙학교에서 벌어진 실종 사건의 마무리가 지어졌다. 데릭 아덴에 얽힌 이야기는 다소 짐작 가능한 범주에서 진행되어서 크게 재밌지는 않았다. 다만, '전통'과 '이름'에 얽매여서 잔디 하나도 맘껏 밟지 못하고 더 소중한 것을 지키지 못하고 자신을 내어놓은 중생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여기 팬텀하이브 가의 고용인들처럼 양떼들과 함께 맘껏 밟는 잔디를 좀 즐겨봤으면......



새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의 막간을 이용해서 우리의 집사님은 능력과 센스를 발휘해서 집사된 자의 소임을 다했다. 팬텀 하이브 사의 새 향수는 그대로 매진! 이 집사, 진정 능력있는 걸!


새 이야기가 시작됐다. 그 배경이 독일이라는 게 마음에 든다. 어떤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하고 있다. 


자세히 나오지 않았지만 장의사는 또 다른 의미에서 시엘을 지켜주는 자가 아닐까 싶다. 악마 세바스찬이 계약 관계에 의해서 그를 모시는 것처럼. 혹시 장의사는 시엘의 아버지와 어떤 계약이 되어 있지 않을까? 사신은 악마처럼 계약은 하지 않나? 아무튼 까도까도 또 매력덩어리인 장의사가 회를 거듭할수록 더 멋있어지고 있다. 세바스찬, 분발하세요! 이러다가 인기 순위 밀립니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4-03-24 2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14-03-24 23:01   좋아요 0 | URL
생각난 김에 이미지도 바꿨어요. 대놓고 승환바라기 하고 있어요.^^ㅎㅎㅎ

BRINY 2014-03-25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원물 특집 끝나서 이제 안살까 했더니....사야겠네요.

마노아 2014-03-26 10:43   좋아요 0 | URL
중세 느낌이 물씬 나는 인물들이 등장했어요. 또 다시 궁금증이 생기네요.^^ㅎㅎㅎ

후애(厚愛) 2014-03-27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지가 마음에 드는데요.ㅎㅎ
흑집사가 벌써 18권이군요..
역시 시리즈가 적을 때 구매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마노아 2014-03-27 21:43   좋아요 0 | URL
그림 보는 재미와 내용의 즐거움까지 큰 책이에요. 앞으로 다시 반년 기다릴 생각하니 까마득해요. ^^ㅎㅎㅎ

2014-03-27 2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27 2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진 2014-03-29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 하... 하아
흑집사 흑집사 봐야하는데!!
어째선지 일년 동안 흑집사를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일주일 전인가 문득 떠올랐어요.
어느새 두 권이 출간되어 있더라구요. 하 기쁨이 솟구치네요.

마노아 2014-03-30 15:04   좋아요 0 | URL
한번에 두권을 보는 기쁨과 맞닥뜨리게 되었군요. 하하핫! 축하합니다.
저는 올곧이 반년을 기다려야 하거든요.;;;;;
흑집사 넘흐 좋아요. ㅎㅎㅎ^^
 
이키가미 10 - 환상의 나라, 완결
마세 모토로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전체주의 국가라든가, 국가의 폭력적 국민 통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곧잘 해주던 게 이키가미였다. 오랜만에 얘기하자니 기억이 가물가물한 부분이 있어서 찾아보다가 뜻밖의 사실을 알았다. 이 작품이 이미 완결이 났다는 것이다! 세상에, 그걸 내가 왜 몰랐지? 페이퍼를 뒤져보다가 알아차렸다. 10권이 나왔을 무렵 그걸 이미 읽은 9권으로 착각했고, 그래서 구입했다고 여긴 것이다. 그후 나올 때가 됐는데 왜 소식이 없나... 하고 궁금해 했던 것이다. 하핫, 이미 일년 반 전에 완결이 난 것을...;;;;;



마지막 이키가미가 배달되었다. '국가번영 유지법'이라는 이름으로 1,000명당 1명 꼴로 국민을 죽여온 무서운 정부! 내가 왜 죽어야 하는지 납득도 하지 못한 채 하루도 채 남지 않은 수명을 부여안고 작별 인사도 제대로 남기지 못한 채 많은 사람들이 죽어 왔다. 그리고 그 정부는 그렇게 잘난 척을 하고서도 연방의 공격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제 국가는 국민들더러 '자발적으로' 군에 자원해 달라고 요청을 가장한 명령을 하고 있다. 국가의 이 뻔뻔한 폭력성은 언제까지 진행될 것인가! 


한 엄마가 있다. 아이는 선천적으로 아프게 태어났다. 많이 사랑해 주고 많은 시간을 함께 해주고 싶었지만 공무원인 엄마는 바빴다. 아이의 생일 날도 야근으로 퇴근이 늦어졌다. 꼬장 부리는 상사의 억지 명령 때문이었다. 그날 딸은 세상을 등졌다.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해주지 못했다. 당연히 작별 인사도 없다. 엄마의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래오래 남아 두고두고 괴롭힌다. 그래서 지금 작별 인사도 없이 하루 밖에 남지 않은 시간을 다른 곳에 사용하려는 사람에게 제발 엄마에게 인사하고 가라고 붙잡고 있다.



여자의 말은 옳다. 그녀가 이미 충분히 후회해 본 사람이기 때문에 말리고 싶은 진정성이 보인다. 그런데 남자의 말도 옳다. 여자의 자책감과 죄책감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편해지기 위한, 나를 위한 참회와 사과가 아니었는지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극단적인 사건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전쟁이라는 일촉즉발의 상황, 그리고 국가번영법의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의 움직임. 그러나 이토록 무서운 사회에서 사람들이 모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한홍구 교수님 강연에서 들었는데, 유신 시절에 집회에 500명 모이기도 힘들었다고 한다. 오늘날 작정하면 10만 명 이상 모이는 시절과 비교할 수 없는 숫자다. 그럴 수밖에! 그 시절의 폭력과 오늘날의 물리적 폭력을 비교하는 건 무의미하다. 차원이 다르니까. 


이 나라의 국민들은 국번법으로 한번 유린 당하고, 전쟁 지원자 모집에서 또 한 번 이용되었다. 군말 없이, 혹은 감지덕지하며 누군가의 군사공급처로 만족하며 살아간다. 혹은 내가 떨어지지 않은 구멍에 감사하며 지내게 된다. 그렇게 철저하게 이용되고 가차없이 버려진다. 그 시스템을, 그 커넥션을 이해하고 깨부수려고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건 그야말로 죽은 인생이다.



작품의 마무리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흡사 '침묵의 함대'를 보았을 때 느꼈던 충격이다. 그러니까 가장 군국주의 전통을 갖고 있고, 지금도 호시탐탐 그런 시절로 돌아갈 꼼수를 부리는 나라에서 가장 '평화'를 얘기하고 공존을 꿈꾸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말이다. 오히려 그들이기에 더 설득력도 있었지는 이 아이러니함!


영화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완결 나기 전에 나온 영화 같아서 그 마무리는 어떨지 궁금하다. 찾아서 확인해 봐야겠다. 


좋은 작품이다. 작품의 재미도 재미거니와 주고자 하는 메시지의 묵직함이 소름 끼칠 정도다. 우리가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지 다시 돌아보게 한다. 우리의 정부는 국민에게 사망 예고장을 주고 있는 건 아닌지 역시 두눈 부릅뜨고 확인할 일이다. 우린 안전한 세상을 살고 있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칼바니아 이야기 14
토노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구입한지 한참 지난 칼바니아 이야기 14권을 우연히 발견했다. 책더미에 깔려 있던 것을 의도치 않게 발견한 것이다. 하하핫, 출간일자를 보니 작년 여름에 구입했다. 반년 이상 묵혔구나.;;;


수영하다가 다리에 쥐가 났는데 일주일이 되도록 좀처럼 풀리지를 않았다. 그래서 안마기를 돌려놓고 편안히 볼 수 있는 책을 고르자 한 게 이 책이었다. 역시나 가볍게 보는데 최고!


에큐의 아버지 카일의 남모를 비밀이 드러났다. 본인에게는 좋은 일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부러움과 질시를 한몸에 사게 될 비밀을 짐작해 보시라. 키워드는 '유전'이다. 


카일의 새 아내는 임신 중이다. 에큐는 젊은 새엄마를 반기는 분위기다. 그렇지만 이 야무진 새엄마의 잔소리가 보통은 넘을 듯하다. 에큐가 좀 피곤해질 듯!


귀신 무서워하는 에큐는 귀신이 출몰하는 곳에서 열리는 파티를 가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연인 라이안은 현재 사업에 몰두 중인지라 에큐를 상대해주지 않는다. 


크로스티아에서 온 에큐의 친구 비스가 새인물로 등장했다. 어마무시한 길치로 등장하는 그에게서 친숙함을 느꼈다. 며칠 전 집앞 은행을 가다가 하나마트가 있던 자리에 우리 마트가 있어서 그새 하나마트가 망했구나... 싶어 안타까워했는데, 몇 발자국 더 가니까 버젓이 하나마트가 있었다. 아, 하나마트 옆에 우리마트가 생긴 거구나. 내 머릿속 지우개가 또 발동한 거다. 아무리 커도 그렇지 성 안에서 자꾸 길 잃어버리는 비스야, 정신 좀 차리렴!


칼바니아의 여왕 타니아가 기다리는 콘라드 왕자님이 이웃 나라에서 스캔들에 휘말렸다. 그것도 유부녀와! 아니 이럴 수가! 믿기지 않는 소식이다. 그 순둥이 점잖은 콘라드가! 그런데 여기에 또 사연이 있다. 당연하지! 그리고 그것은 타니아와 관련된 중요한 인물이 연결되어 있다. 이 스캔들도 사실은 왕자님의 사랑의 표현이었던가!


이번 이야기는 이전에 비해서 빵빵 터지거나 찐하게 감동을 주진 못했지만 소소한 재미들은 분명히 있었다. 작가님은 잊을만 하면 한권씩 책을 내주신다. 이렇게 가끔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뷰리풀말미잘 2014-03-16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쥐 났을 땐 마사지보다 스트레칭이 좋아요!

마노아 2014-03-16 22:37   좋아요 0 | URL
스트레칭을 많이 했어요. 근데 일주일 가까이 안 풀리더라구요. 이상하게도...
아무튼 지금은 풀렸어요. 수영을 다시 해서 그런가.... ^^;;;
 
주말엔 숲으로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스다 미리 책을 즐겁게 보고 있다. 앞서 읽은 책들도 재밌게 읽었는데, 그래도 다시 볼 것 같진 않아서 이 책까지 보고 묶어서 중고로 팔까 생각했다. 헌데 이 책을 보고 나니 더더 좋아져서 그냥 모두 소장하기로 했다. 더불어 지금 장바구니에는 채 구입하지 못한 마스다 미리 책과 이번에 나오는 예약도서 두권도 담겨 있다. 송삼동 표현으로 농약같은 가시네 마스다 미리다. ^^


하야카와는 시골에 집을 얻었다. 동기는 간단했다. 잡지 응모로 하이브리드 차가 생겼는데 도시에서는 주차비가 엄청 들었던 것이다. 마침 그녀의 직업은 번역가여서 출퇴근이 필요 없으므로 숲이 있는 시골 마을로 가는 데에 별 문제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주 깡촌도 아니다. 역에서 아주 가깝다. 산책으로 숲을 갈 수 있고 호수에 카약을 띄우고 놀 수도 있지만 불편한 전원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누구나 예상할 만한 텃밭도 없이 식사는 도시에서 배달시켜 먹을 때가 많다. 친한 친구 둘이 주말이면 자주 놀러오는데, 올 때마다 도시의 명물 간식을 사갖고 온다. 친구들의 짐은 점점 많아지고 각자의 카약과 서랍장도 갖추게 된다. 그야말로 '주말엔 숲으로' 체제가 되어 버렸다.


하야카와가 원래 철학적인 인물이었는지, 혹은 자연과 가까이 살면서 슬로우 라이프를 즐기며 이리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친구들과 대화 중에 그녀가 정리하곤 하는 이야기들이 가슴 속에 차곡차곡 쌓인다. 


-왜 이렇게 걸음이 빨라?

-시간이 아깝잖아.

-하지만~

-인간은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만 걷는 건 아니다. 요즘 이런 생각이 들어. -12쪽


현대인들, 특히 도시민들은 얼마나 바쁘게 살던가. 잠시 잠깐의 시간도 가만히 두지 못하고 뭘 해야만 한다고 여긴다. 아니면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한다. 나부터가 그렇다. 시간이 남으면 뭐라도 읽어야 하고, 뭐라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주 잠깐이라도 침묵 속에서 나를 방치하고 좀 더 비울 생각을 해보지 못한다. 그렇게 달려나간다고 원하는 곳에 빨리 가지도 못한다. 앞만 보고 달릴 게 아니라 옆도 보고 뒤도 돌아보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다. 


-아이쿠! 위험했어!!

-세스코~ 헤드라이트는 2~3미터 앞을 비추는 거야. 숲에는 돌이나 나무뿌리가 있어서 어두울 때는 발밑보다는 조금 더 멀리 보면서 가야 해. -32쪽


앞만 보고 달려가지만 정작 멀리 내다보지 못하면 넘어지기 일쑤고, 죽어라 달려온 방향이 잘못 들어선 길일 수도 있다. 좀 더 멀리 내다보자. 좀 더 느긋하게, 천천히 오래오래 바라보자.


누가 보지 않아도 최선을 다해 꽃을 피우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다. 그렇지만 기왕 피는 것 누군가 봐줬으면 하는 마음도 자연스럽다. 사실 우리는 대부분 이런 마음을 먹지 않던가. 


-이곳에 오면 흙 위를 걷는 게 참 기분 좋은 거구나 느껴.

-도시에 있으면 몇 개월이고 흙을 밟지 않을 때도 있지.

-, 맞아.

-하지만 하이힐을 신고 아스팔트 위를 걷는 것도 좋아. 또각또각 하고.

-그 소리, 성인의 소리지.

-성인이란 좋은 거지.

-그렇지. 싫은 것도 많긴 하지. 싫은 일이나 귀찮은 일은 전부 사라지면 좋을 텐데.-100쪽


흙을 밟는 기분은 싱그럽다. 그렇지만 하이힐을 신었을 때는 흙바닥이 불편할 것이다. 그럴 땐 깔끔하게 정리된 아스팔트 위가 더 편할 테지. 이 부분을 읽으면서 친구가 생각이 났다. 예쁜 하이힐을 신으며 또각또각 걷는, 그렇게 스스로가 여자임을 만끽하는 내 친구가 떠올랐다. 그 친구 덕분에 원피스 입는 게 즐거워졌고, 높은 굽의 신발을 신는 불편함도 감수할 만한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차피 여자로 태어났는데, 기왕이면 그 여성성을 드러내면서, 혹은 즐기면서 사는 게 더 멋지지 않은가. 그런게 청소년 때는 하기 힘든, 성인이어서 제약 없이 할 수 있는 나름의 특권 아니던가. 


-어른이 되면 뭐든지 알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그렇지만 모르는 게 산더미처럼 많아. 뭔가, 모르는 세계가 가득하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어른이 된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어. -122쪽


친한 언니가 있다. 언니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스물 셋이었고 언니는 스물 여덟이었다. 스물 셋의 나는 스물 여덟의 언니가 굉장한 어른으로 보였다. 하지만 내가 스물 여덟이 되었을 때, 나는 그다지 어른스럽지 않아 보였다. 그 후 또 한참 나이를 먹은 지금 생각해도 스물 여덟은 어린 나이였다. 하지만 스물 셋의 나도, 스물 여덟의 나도 모두 이미 어른은 어른이었다. 내가 그다지 어른스럽지도 않고, 모르는 것도 잔뜩 있는, 그렇게 나이만 먹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도 어른됨의 한 증거일 테지. 나이 먹어간다는 것을 거울 속에서 확인하는 것은 다소 서글픈 일이지만, 그래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가 보낸 시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차곡차곡 쌓인다고 생각하면 나이 먹는 게 나쁘지만도 않다. 좀 더 시간이 천천히 흘러갔으면 하고 바라는 것과는 별개의 마음으로 말이다.


누가 보지 않아도 열심히 꽃을 피우는 식물처럼, 누가 보지 않아도 기꺼이 작은 선행 하나를 베푸는 마음으로의 연결이 곱다. 그러면서도 이 장면을 누군가 보고 반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귀여운 생각도 한다. 이런 깨알같은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저런 마음을 먹더라도 그냥 슥 지나치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은가. 


산으로, 숲으로 들어가면 저렇게 열린 마음이 절로 들지 않을까. 구성애 씨의 방송 중에서 그런 대목이 있었다. 이혼을 앞둔 부부가 마지막으로 히말라야로 여행을 갔다고 한다. 이제 헤어질 사람이니 온갖 미움 애증 다 내려놓고 산을 올랐는데, 그 높은 산 위에서 별의 정기를 가득 받고는 오히려 감정이 풀어져서 다시 잘 살게 되었다고... 모두 그럴 수는 없겠지만, 산의 기운이, 숲의 기운이 그런 힘을, 용기를 줄 것만 같다. 집에서 북한산이 아주 가까운데 좀처럼 가는 일이 없다. 당장 산으로 올라야 할까? 아웃도어부터 장만하고? ㅎㅎ


상상력이 과연 인간에게만 있는 건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그 상상력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드는지, 상상력 없는 인간의 삶이 얼마나 삭막할 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길 가다가 봉변을 당한 세스코가 로또 한장을 샀다. 거기에 방금 전 만난 그 나쁜 인간에 대한 저주를 담아 숫자를 기입하다가, 이런 곳에 인간의 좋은 상상력을 쓰는 건 옳지 않다고 여기고 로또를 찢어버린다. 이 부분이 참 예뻤다. 그 좋은 재능을, 머리를, 능력을 엄한 데 쓰는 사람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세스코의 마음가짐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었으면 한다.


숲 가까이 살고 있는 친구 덕분에 다른 친구들도 전원 생활을 즐기고 있다. 이들의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건 서로의 선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바쁜 일이 있으면 있다고 선을 그어서 자신의 시간을 지키는 하야카와가 현명하다. 


눈덮인 산 위에서 눈토끼를 만들고 낙엽으로 귀를 장식하는 장면이 나왔다. 작가도 직접 연출해 봤나 보다. 이 귀여운 사진이라니!



눈밭에 벌렁 누워버린 세 친구가 파란 하늘을 보고 있다.  두팔을 벌려 하늘을 바라보니 마치 하늘을 날고 있는 기분이 든다. 실제로 이 숲엔 눈이 1미터가 쌓여 있고, 이들은 땅 위에서 1미터 정도는 높은 곳에 있는 거였다. 참새만큼은 아니지만, 이들도 하늘을 날고 있다. 아, 근사해!


동경하게 만들지만 모두가 이렇게 살기는 쉽지 않다. 하야카와의 경우 직업이나 성향이 이런 생활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유홍준 교수님은 도시에서 닷새를 살고 촌에서 이틀을 사는 '오도이촌'을 외치며 실제로 부여에 있는 시골집에서 주말을 보내신다. 두집 살림이 가능한 경제적 뒷받침 덕분에 가능한 일이지만, 그런 마음을 품고 계획하고 실천에 옮긴 의지도 중요한 것 아닌가. 집 바로 뒤에 있는 산도 안 오르면서 숲에서의 생활을 동경하는 건 어불성설! 


-하야카와, 저 새는 뭐야?

-세스코, 저건 참새야.

-, -

-아는 새가 처음 본 새처럼 보이는 건 새의 아름다움이 보였다는 거야, 분명. -151쪽


나태주의 풀꽃이 떠오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상큼한 책이었다. 나의 주말을 풍요롭게 해준 고마운 책에게 이 시를 바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무개 2014-03-10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다들 하야카와 같은 친구가 있었으면...했을껄요?
자신이 직접 시골 가서 살수는 없으니 그런 친구가 있어 이렇게 주말엔 숲으로~ 놀러가고 싶은 그런 맘.

오오 요기 밑에 광고창에 굿바이 미스터 블랙이 있군요.
이게 저희 첫 '순정'만화였어요. ^^

마노아 2014-03-10 22:08   좋아요 0 | URL
하하핫, 그러게나 말입니다. 제 친구가 이집트로 코이카를 다녀온 덕분에 제가 이집트 여행을 갔다 올 수 있었거든요.
친구한테 아기 다 키워놓으면 코이카 한 번 더 가라고 했어요. 덕분에 여행 가자고요.ㅎㅎㅎ

미스터 블랙이랑 아뉴스데이가 저의 황미나 만화 입문이었던 것 같아요.
순정 첫 입문은 김동화의 아카시아가 아니었나 싶어요.
정말 추억 돋는 제목들이에요.^^
 
생각하는 우리
아직도 생각할 게 많은 개구리 이야기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짱 시리즈로 유명한 마스다 미리의 작품이다. 등장하는 인물도 손꼽을 만큼 적고, 그림도 아주 심플하다. 배경그림도 없고 그야말로 좀 더 통통한 졸라맨 정도로 보이는 캐릭터가 나오지만 길지도 않은 대사에는 곱씹을 내용들이 가득하다. 제목부터 이미 철학적이다. 다 읽고 나면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하고 되묻게 되는 생각하는 만화다. '생각하는' 만화라고 뱉고 나니 '생각하는 개구리'가 떠오른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묻고 대답하며 다시 생각하는 그 개구리가 떠오른다. 역시, 생각하게 만드는 만화였어!



미나코는 결혼 전에 은행 창구에서 일을 했다. 결혼 후 육아에 전념하면서 전업 주부가 되었고 남편의 벌이는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보인다. 딱히 부족하지 않고, 딱히 갖고 싶은 것도 없는 상태. 남들이 보면 부럽다고 말할 수 있는 여건이지만, 그럼에도 마음 속에 차오르는 허전함을 이기기 힘들다. 볕이 좋은 날은 이불 널어 말릴 생각부터 하게 된다. 주말에 아이를 봐줄 수 있는 남편이 있지만, 주말에 연락해서 만나자고 하는 친구는 없다. 부르면 나갈 수 있지만 가족이 있기 때문에 모두들 알아서 연락하지 않는다. 주말엔 보기 힘든 사람으로 이미 분류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일을 해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아이도 괜찮다고 했고 남편도 동의했다. 하지만 단서가 붙는다. 집안일에 지장 안 주는 선에서! 친정 어머니도 남편과 가족에게 소홀하지 않는 선에서 구하라고 했다. 내가 원하는 일을 뚝딱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이런 저런 조건들이 붙는다. 하고 싶은 일을 고를 수도 없을 것이고, 월급이 많지도 않을 것이며, 집안 일은 똑같이 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일은 왜 해야 하는 걸까? 하고 묻게 되는 것! 물론, 모두들 비슷하다.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하면서 돈도 잘 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은 고마운 것이다. 이것저것 따질 새도 없이 일단 생활전선에 뛰어들기부터 해야 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미나코도 알고 있다. 자신의 이 고민들이 사치스럽다는 것을. 그러나 사람은 아래만 보면서 살지 못한다. 경제적인 계산 만으로 살기에 사람은 무수한 욕망의 주인이 아니던가. 


미나코의 딸 리나는 어리다. 초등학교 저학년 쯤으로 보인다. 정확한 나이는 모르겠다. 어른들은 아이가 아직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기 바라지만, 아이는 산타클로스가 사실은 부모님이 대신하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게 왜 실망스러운 건지 알지 못한다. 어른들, 특히 여자 어른들은 유난히 나이 먹기 싫어한다는 걸 아이는 의아하게 여긴다. 꽃이 시드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대답도 아이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꽃은 내년에도 피는 것을! 


이 아이도 자라서 어른이 되고, 젊음의 유한함을 아쉬워할 때가 분명히 올 거라는 것을 알지만, 그럴 때에는 리나의 고모처럼 젊음은 짧기 때문에 더 가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나름의 생각이 자리를 잡을 것이다. 젊음이 짧아서 가치가 있는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그렇게라도 믿어야 덜 서럽기 때문이 아닐까 싶지만, 완벽한 정답도, 오답도 아니라고 여긴다. 



아이는 주인 주자를 가지고 단어 만드는 숙제를 고민했었다. '주어'도 있고 '주인(가장이나 남편)'도 있다고 엄마가 힌트를 주었다. 아이는 주인이란 단어가 엄마가 아빠를 부를 때 쓰는 단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렇지만 정확한 뜻을 모른다. 주인이란 말을 엄마는 집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 정도로 표현했다. 그렇지만 정말 그 뜻이 맞는 것일까 고민한다. 얼마 후 아이는 장차 무엇이 되고 싶냐는 작문 시간을 앞두고 누구도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이는 누군가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는 '주인'이 아니라 '주인공'을 택했다. 이 대답이 엄마의 머리를 크게 한방 치고 말았다. 


엄마는 어린 시절 자신이 되고 싶었던 무언가가 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아무 것도 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엄마는 지금 이곳에 이렇게 존재하는데. 어린 리나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엄마보다 더 똑똑하다. 어른보다 더 현명하다. 이 아이가 이렇게 자존감 있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으로 계속 자랐으면 한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면서 말이다. 


작품은 재밌게도 엄마가 바로 그 '남편(주인)'이란 단어를 다시 입에 올리게 만드는 설정을 끝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고 싶지만, 누군가의 조연으로 전락하고 만 기분으로 살게 될 때가 많이 있다. 그렇지만 그 조연도 내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는 결국 주인공이다. 내가 있음으로 의미가 있는!


기분 좋은 책이다. 마스다 미리의 에세이도 읽어보고 싶다. 좀 더 많은 글밥 속에서는 어떤 느낌을 줄지 궁금하다. 좋은 느낌일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