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5 -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 요석 미생 5
윤태호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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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박과장의 비리를 파헤쳐서 회사의 암적인 존재를 걷어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고 또 잘 해냈다. 그러나 영업 3팀을 바라보는 회사의 시선은 곱지가 않다. 꼭 그렇게까지 했으야 했느냐!는 무언의 압박이 있고, 그 바람에 책임을 지고 줄줄이 자리에서 쫓겨난 사람들에 대한 동정론이 일었다. 그리고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감시의 대상이 된 것만 같은 불쾌감이 들어 불편한 눈초리들이다. 그 모든 것들을 견뎌내야 했다. 다른 수가 있겠는가.


연휴가 다가왔다. 친척 어르신들의 등쌀에 시달릴까 봐 이곳저것 떠돌던 장그래가 집으로 돌아갔다. 혼자 시달릴 어머니께 미안해서였다. 그런데 술에 잔뜩 취해서 아들 자랑에 여념이 없는 엄마를 문밖에서 목격했다. 그제서야 깨닫게 된 장그래의 혼잣말


잊지 말자.

나는 어머니의...

자부심이다.

모자라고 부족한 자식이 아니다.


기특한 녀석! 이제라도 알아주어서 내가 다 고맙다. 예스, 장그래!


그리고 영업3팀에 새 인물이 충원되었다. 전에 같이 일한 전력이 있던 천과장이다. 드라마에서 천과장은 '닥터 이방인'에서 북한 공작원으로 나와서 제대로 악역을 소화했더랬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다 보면 자꾸 이 사람이 뒷통수 칠까 서늘해질 때가 있다. 그렇지만 그런 캐릭터는 아닌 것 같다. 처음에 간 보느라 오차장님께 호되게 야단 맞았지만.... 일하러 왔으면 일할 것이지 간보지 말고, 정치하지 말라는 말! 정곡을 찔렀다. 역시 예리하고 꼼꼼한 오차장님!


그리고 이제 새 일을 시작해야 한다. 새 아이템을 찾기 위해 골몰하고 있는 영업 3팀에 던진 장그래의 한마디는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누구도 입에 올리지 않았던, 아니 못했던 그 한마디가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언성부터 높아지고 역정까지 내기에 이르렀지만, 사실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본질을 들여다 본다면...


신입사원다운 패기이기도 하거니와, 보통의 평범한 스펙을 쌓고 이 자리에 올라온 게 아닌 장그래이기 때문에 또 가능했을 제안이었다. 안영이의 평가처럼 그에게는 승부사의 기질이 있다. 승부를 놓고 싸우는 치열한 세계에서 십년 넘게 고수의 길을 걸어왔던 사람이 아니던가.


요르단에 대한 정보가 신선했다. 친구는 코이카에 지원해서 이집트에 2년 반동안 다녀왔다. 처음에 가려던 곳은 요르단이었는데 그곳에서 최소 석사 이상을 요구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지원국을 바꿔야 했다. 당시 막연히 요르단이 정치적으로 불안하고 위험하단 생각만 했는데, 뜻밖에도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가 감지되는, 무척 역동적인 나라였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된 이 기쁨! 만약 친구가 그때 요르단을 가게 되었더라면 나는 이집트 대신 요르단을 다녀왔을 테지. 그것도 좋은 선택지다. 하하핫^^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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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6 03: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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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6 0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16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16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생 4 -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 정수 미생 4
윤태호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내가 미생 드라마에 꽂히게 된 건 우연이었다. 언니가 열심히 시청하고 있었지만 시간을 맞추지 못해서 계속 못 보고 있다가, 내가 애정하는 82쿡 게시판에 "어제 김희원 연기가 갑이지 않았어요?"란 글이 있는 거다.

그런데 마침 언니 방에 갔다가 김희원 나오는 부분을 재방송으로 보고 있는 언니를 발견했다. 그 장면에서 김희원은 여자가 타주는 커피가 제맛이라며, 커피 타주는 여직원 다리를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잘 빠졌다~라고 희롱을 던지며 자동차 카달로그 보는 시늉을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완전 재수 똥!이었다. 그런데 단순히 '연기'로만 따지면 너무 리얼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연기는 영화 '카트'에서 알바생 임금 떼먹으려고 수작부리던 재수 없는 편의점 주인을 연상시켰다. 그 인물이 바로 파란을 일으킨 4권의 주인공이다.


제목에 소제목으로 '정수'라고 붙었는데 표지만 봤을 때는 그게 등장 인물 이름인 줄 알았다. 기풍, 정수.. 모두 이름처럼 들렸다. 그런데 책날개 안쪽을 보니 바둑 용어라고 설명이 붙어 있다. '정수'란 바둑에서 속임수나 홀림수를 쓰지 않고 정당하게 두는 기술을 의미한다. 이 작품에서라면 오과장같은 인물이 정수에 해당하겠고 그 반대편에 박과장이 있다. 


내부고발자가 되는 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올바른 일을 해내고도 욕을 먹기 일쑤고 사필귀정이 되지 않는 걸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이번에도 영업3팀은 황금호흡, 드림팀임을 증명해 냈지만 내상이 있을 것 같다. 여긴 대한민국이니까.


바둑 덕분인지, 성정이 그런 건지 알 수 없지만 장그래는 무척 직관이 날카롭다. 그의 비상한 머리가 순간순간 번뜩이면서 사건의 실마리를 줄 때가 많다. 이렇게 빛나는 인물이 끝내 정규직의 벽을 넘지 못한다는 결말을 미리 일고 지켜보는 건 참으로 착잡하다. 헛된 기대감은 줄일 수 있지만... 


학력운운하는 게 얼마나 천박한지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력의 벽을 쉬이 넘지 못하는 사람이 천지다. 문득 노무현 대통령이 떠올랐다. 김대중 대통령보다 훨씬, 훨씬 더 우습게 보였던 것은 그가 고졸 출신 인사여서가 컸을 것이다. 단순 비교할 수 없는 인물이지만 장그래를 보니 한숨이 나와서 같이 떠올랐다. 뭐, 고졸 아니라 대졸, 석사, 박사 출신 실업자, 비정규직도 쎄고 쎈 이곳 대한민국이지만...


즐겁게 기대하며 보고 있는데 그 끝은 이렇게 쓰기만 하다. 현실은 이보다 훨씬 잔인할 텐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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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12-10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생이 좋은 작품인 이유는 그 쓴 뒷맛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마노아 2014-12-10 08:55   좋아요 0 | URL
어제 드라마로는 6편을 보았는 친구 사이에서 저지르는 갑질에 대해서 나왔거든요. 참으로 더럽고 치사한데 현실은 그보다 더 심할 테지요. 재벌 2세 3세에 신데렐라나 캔디가 나오지 않고도 빛나는 드라마가 나워서 반가워요. 웰메이드 원작이 있는 덕분이겠죠^^

Mephistopheles 2014-12-10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미생의 인기는 ˝현실적˝ 이기 때문이라고 보고 싶어요.

그것을 가감하며 순화시키는 건 윤태호 작가의 역량이고요.

설마 작가가 모르겠어요 미생 속 환경에 비하면 현실의 환경은 그보다 더한 지옥이라는 걸.

마노아 2014-12-10 11:53   좋아요 0 | URL
그래서 직장이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라는 명대사가 나왔나봐요.
본인은 직장 경험도 없다면서 얼마나 취재를 열심히 했길래 이런 리얼리티가 나올까요.
근데 재밌는 게 어제 본 6편의 박대리는 만화를 너무 고스란히 옮겨놔서 재미가 덜했어요.
만화는 만화대로,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취할 것은 취하고 덜 것은 덜어야 하나 봐요. ㅎㅎ
 
미생 3 -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 기풍 미생 3
윤태호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피티를 통과하고 정식 사원이 된 장그래. 아직 정규직의 길은 멀고 멀었지만, 적어도 인턴의 옷은 벗게 되었다. 그렇게 사원의 이름으로 첫발을 내딛게 된 회사에서 그가 느끼는 감정들에 미소가 지어졌다. 본인이 소속감을 느끼게 되었을 때 그렇게 조직 안으로 한발자국 더 들어섰을 때 보이는 풍경은 분명 다를 것이다. 사람들도 마찬가지. 


여러 캐릭터들을 좀 더 상세히 설명해준 느낌이다. 장백기는 일을 시켜주면 좋아한다.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해낸다. 안영이는 시키지 않아도 찾아서 일을 한다. 너무 빼어나서 오히려 상사들이 불편해 한다. 동기들이 밥먹으러 나가자고 하면 눈치 보던 상사들이 기뻐한다. 오죽하면 법인카드 쥐어줄까 생각을 다 하나. 그래서 생기는 불협화음도 있다. 그렇지만 그걸 지혜롭게 풀어나가는 안영이의 스킬이 놀랍다. 그조차도 너무 잘나서 또 불편해질 수 있지만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고 맞춰가고 호흡을 챙길 것이다. 자원2팀도 문제 없다. 


한석률은 아직 좌충우돌. 무척 친화력 높은 성격이지만 조직사회의 경직된 분위기 안에서는 도리어 마이너스가 될 요소가 많다. 약간의 융통성이 필요하다. 아무렴, 장그래만큼 시행착오가 필요할까 싶지만...


김선주 부장을 그림만 보고서 남자인 줄 알았다. 뒤에 나오는 그림 보고서 여자구나! 하고 화들짝. 그러고 보니 이름도 여자 이름이었구나. 안영이의 2,30년 뒤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큰코도 잠시 다쳐 보고, 그렇게 더 성장하겠지.


도전하는 일에서 더 큰 희열을 느끼는 오과장 캐릭터도 선명해졌다. 그래서 나이보다 승진이 늦었구나. 그걸 걱정하며 챙겨주는 김대리 캐릭터도 좋다. 영업3팀은 그야말로 황금 궁합이다. 장그래, 인복 있구나!


소제목이 '기풍'인데, 이거 바둑 용어인가? 

바둑을 둘 줄 알았더라면 훨씬, 훨씬 더 재밌게 다가오고, 잡아내고 찾아내는 것도 많겠지만, 바둑의 'ㅂ'도 모르는 지금도 이 작품은 충분히 재밌고 훌륭하다. 그리고 드라마도 못지 않게 잘 만들었다. 웰메이드 드라마다. 올해의 드라마는 '미생'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올해의 드라마가 생겨서 살짜쿵 다행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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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4-12-08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각 권의 제목은 바둑과 관련된 것일거 같은데요

마노아 2014-12-09 10:35   좋아요 0 | URL
검색하면 뜻이 나오겠죠? 찾아봐야겠어요. 궁금하네요.^^

아이린 2014-12-09 0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흑 정가제전에 샀어야 했어요 ㅜㅜ

마노아 2014-12-09 10:35   좋아요 0 | URL
정가제 직전에 미처 못 산 뒷권 3개를 부랴부랴 구매했어요. 그랬더니 다른 판형이 또 나오네요..;;;;;

아이린 2014-12-09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도서정가제 시작되구 미생 세트가 3만원이나 뛰어있는 모습보군 물러났답니다 ㅜㅜㅋㅋ

마노아 2014-12-09 16:20   좋아요 0 | URL
저는 각권 사고 나니까 세트 도서 40% 할인하더라구요. 저도 싸게 사진 않았지만 일단 소장한 걸로 만족을!!

바람돌이 2014-12-09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바둑 하나도 모르는데 미생 각 장 시작부분에 나오는 기보가 너무 좋더라구요.
진짜 대가의 대국을 눈앞에 마주보며 손에 땀이 고이는....

마노아 2014-12-09 16:20   좋아요 0 | URL
기보를 이해할 수 있으면 더 재밌겠죠? 엄청 숨막힐 것 같아요. 고수의 싸움! 두둥!!!
드라마 3편에 조훈현이던가? 고수 두명이 잠깐 출연했는데, 나는 모르는 사람임에도 막 벅차더라구요.
 
미생 2 -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 도전 미생 2
윤태호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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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1권 읽은 게 이년 전 같은데 아주 오랜만에 2권을 읽었다. 결국 2권 읽고 다시 1권 읽고 3권 넘어갔지만.ㅎㅎㅎ


장그래가 근무하는 부서가 아닌 다른 부서 사람들 나오는 이야기들이 눈에 띈다. 

거절하지 못하고, 남의 편에서 항상 생각해주는, 참으로 이타적인 인물이 나왔다.

그러나 회사라는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정글에서 그같은 성격은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았다.

회사는 물론이요 본인에게도 그랬다. 

잠시 잠깐 날개가 돋혀 자뻑하는 순간은 만날 수 있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러나 이 낭만적인 처사가, 행보가 또 다른 좋은 징검다리가 되어줄 수도 있는 게 인생의 묘미.

남다른 순발력으로 잘 대처했지만, 그 어떤 패배보다도 더 절실한 패배감을 맛보았던 장그래.

그는 모두에게 누구나의 바둑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또 한 발자국 내딛었다. 그는 날마다 성장한다. 아주 성실하게 천천히.



맞벌이 부부의 이야기도 눈길이 간다. 대기업에서 차장까지 올라갈 동안 그녀가 얼마나 고군분투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똑같이 바쁘고 똑같이 일을 하는데도, 아이에 대한 책임은 그녀에게 더 많이 몰리게 되어 있다. 구조적으로.

아이가 그린 그림 안에서 아빠는 집에서 늘 누워 있는 사람이고 엄마는 얼굴이 없다. 

아이는 하루의 대부분을 놀이방에서 지내고 엄마 아빠와는 대화를 나눌 겨를이 없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열심히 사는 건데, 그 열심히 살고 있는 삶이 행복을 방해한다. 역설적인 악순환이다.

그런데 또 한숨 나오는 것은, 이들 부부는 그래도 대한민국 전체로 보자면 평균 이상의 삶을 영위하는 이들일 것이다. 

이들만큼의 직업도 소득도 배움도 없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처절하게 살고 있을까.



두달 간의 인턴 과정이 끝났다. 팀별 PT와 개별 PT가 남았다. 

주인공이라고 장그래 혼자 빛나지 않았고, 임원들이라고 해서 꼰대만 나와 있지 않았다.

모두들 그 자리에 필요한 사람들이었고, 역량을 발휘해 냈다.

회사라는 살벌한 세상이 섬뜩하게 다가오면서 동시에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실감도 확실히 와 닿았다.

작가 윤태호의 역량이다.



신입으로 입사하게 된 직원들을 데리고 간 곳이 쌍용자동차 분향소라는 것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다.

연재 당시 이미 기사로 읽은 내용임에도 감동은 줄어들지 않았다.

장그래 뒤로 보이는 재능교육 간판도 의미 없이 새겨 있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완생으로 나아가야 하는, 우리 미생들의 분투기. 

오늘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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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12-07 0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가족과 도서관 이용자들은 많이들 봤는데 정작 나는 아직도 안 봤어요. 드라마는 가끔 채널 돌리다 나오면 보는데... 겨울방학에 읽어볼게요. 불끈!!

마노아 2014-12-07 21:13   좋아요 0 | URL
드라마에 대한 인기가 폭발하니까 책을 먼저 봐야겠단 생각이 들어서 부랴부랴 읽고 있어요. 어제 드라마도 1편 봤는데 아주 좋더라구요. tvN이 계속 홈런을 치네요.^^
 
설희 11
강경옥 글.그림 / 팝툰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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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지막으로 본 연재분이 아닌 단행본으로 설희를 보는 게 얼마만인지... 족히 몇 년은 기다린 것 같다. 팝툰으로 설희를 봤던 게 2009년이고, 다음에서 한동안 연재하는 걸 보았다. 그래서 내내 이미 본 것을 복습하는 단행본이었는데, 처음으로 보지 않은 내용인 것이다. 아, 반갑고 반갑다. 


여전히 배경은 강원도이고, 관계들에는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늘 뒷걸음치기 바쁜 세라가 모처럼 자기 감정에 솔직해졌고, 여전히 조건이라는 전제 하에 조심스러워하는 그녀이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계속해서 제안이 들어온다. 사람은 쉽사리 성정이 바뀌지 않지만, 세라도 스스로를 위해서 좀 더 내지르고 살았으면, 도전해 버렸으면, 한번쯤 될대로 되라지~ 하며 좀 막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설희와 세이의 관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세이는 조금씩 전생을 기억해 가고 있고, 설희는 그가 기억해내는 전생과, 자신이 기억하는 과거를 맞춰가면서 마음이 복잡해지고 있다. 자신의 과거에 닿아 있던 인물의 전생을 추적해가는 게 그녀의 목표였지만, 그 목표를 이루고 난 다음 일은 그녀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세이의 말대로 그녀는 늘 과거 속에서만 살지 미래가 없다. 죽지 않고 사는 불사의 몸이기에 더욱, 그녀에겐 미래가 없다. 이 역설적인 진실이라니!


400년 전에 가보았던 전봉사. 천년을 이어온 사찰은 옛 모습을 얼마만큼이나 남기고 있을까. 건물은 흔적을 찾기 어려워도 기억은 쉽사리 잊지 못하겠지. 게다가 그것이 그들의 신혼 여행이었다면... 



건물 그림이 자연스러운 것에 비하면 인물 그림은 여전히 부자연스럽다. 그게 강경옥 샘의 매력이긴 하지만.

설희가 자동차 뒷좌석에 기대어 자고 있는 건데, 시트에 기댔다기 보다는 침대에 누워 있는 듯한 모습...



그런데 또 오죽헌 모습은 아주 보기 좋다. 배경 어이스트가 있는 걸까. 아니면 원래 건물은 반듯하니까 사진처럼 나오고 인물만 부자연스러운 걸까? 대학 때 갔었던 오죽헌은 무척 인상 깊었다. 검은 대나무가 신기하기도 했고...



쉽게 잠들지 못하고, 또 쉽게 잠들 수 없던 깊은 밤이 그림에서 느껴진다. 



잠시 나왔던 백여 년 전 설희의 모습이다. 만주에 가겠다고 한 건 혹시 다이아몬드를 팔아서 독립운동 자금에 보태려고 했을까?


이렇게 긴 시간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조국'이라는 말은 사실 의미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이 땅에서만 내내 살았던 것도 아니고... 그녀라면 국가는 초월해서 살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만주라고 하니까 왠지 독립운동 자금이 생각났다.^^


베라의 생각대로, 불사의 몸이 되더라도 자신의 욕망을 채우지 못하고 여전히 허덕이며 산다면 길게 사는 인생이 도리어 지치게 할 것도 같다. 대단한 인류애와 탐구 정신으로 학문에 매진한다든지, 의학 발전에 이바지한다든지, 아니면 예술의 길로 빠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설희는 요리 따위는 아주 잘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여러 나라의 언어를 익힐 기회도 충분히 있었다. 그것 말고는 또 무엇을 하며 살았을까? 그저 전생만 몇 백 년 동안 기다리며 살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녀의 외롭고도 서러웠을 그 빈 시간들이 궁금하다. 


위기가 닥쳤고, 그 위기는 다시 관계의 변화를 가져올 지도 모른다. 그 변화가 설희에게도 따스한 힘이 되어주었으면 한다. 그녀의 짙은 고독이 조금은 사그라들길 바라면서...... 


이제 그녀도 바꿀 수 없는 과거보다, 채 닥치지 않은 미래의 시간에 좀 더 기대며, 기대하며 살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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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4-10-09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희 이번 11권은 연재했던 분량이 아닌거군요. 저도 그럼 처음 보는 이야기일 거 같은데요.
설희는 몇 권이나 더 이어질까요.
저 그림 속의 오죽헌, 전에 가본 적이 있긴 한데요, 아마 설명이 없었다면 못 알아봤을 거에요. ^^
마노아님, 즐거운 휴일 보내세요.

마노아 2014-10-10 14:20   좋아요 0 | URL
무료연재했던 분량이 지난 10권에서 끝났고 11권부터는 아마 유료 연재 분량인 것 같아요. 근데 어디서 연재 중이시지...???
80년대부터 활동하시던 그 시절 여류 작가님들 활동이 거의 전무하다 보니까 강경옥 샘의 설희는 가뭄 끝의 단비예요. 전 이야기가 길게 길게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옛 한옥이 비슷비슷해서 정말 설명 없으면 알아보기 힘들겠죠?
서니데이님! 이름처럼 화창한 오후예요. 오늘 내일은 낮기온이 제법 높네요.
이 따스함을 우리 같이 즐겨요. 유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