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죽이기 죽이기 시리즈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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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 아리는 요즘 방황하는 앨리스의 꿈을 꾼다. 그 꿈속 세계는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이다. 그러던 중 험프티 덤프티가 추락사하는 꿈을 꾸고 나서 같은 대학 연구원인 오지 역시 추락사한 사건이 발생한다. 아리는 동료 모리를 통해 꿈속 세계와 이쪽 세계의 죽음이 이어져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한편 꿈속 세계에선 모자장수와 3월 토끼가 험프티 덤프티 추락사를 살인사건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그런데 흰토끼의 증언 때문에 앨리스가 용의자로 몰린다. 누명을 벗지 못하면 앨리스는 사형에 처해진다. 앨리스와 아리는 두 세계를 오가며 진범을 찾아나서고, 그런 와중에 연이어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고바야시 야스미의 '앨리스 죽이기'는 2014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4위에 오르며 시리즈 누적 3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다. '장난감 수리공'으로 일본 호러소설 대상 '단편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작가는 공포, SF, 미스터리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소설을 집필중이다. 고바야시 야스미의 작품은 이전에 '장난감 수리공'과 '밀실, 살인' 두 작품을 봤지만 그 두 작품도 호러와 미스터리, 판타지가 적절히 뒤섞여 있었다. 그러한 장르적 혼합이 정점에 오른 작품이 '앨리스 죽이기'다. 이 소설은 미스터리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호러, 동화, 판타지, 차원이동 등 여러 장르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읽는 이에 따라서 이것이 장점으로 다가올수도, 조금은 어지러운 단점으로 다가올수도 있겠다.


사실 이 소설에 대한 찬사는 이미 들었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것은 간간이 보이는 '내 취향은 아니다'라는 혹평 때문이었다. 확실히 취향을 탈 소설이다. 특히 초중반부의 대화체들이 그러하다. 실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이 작품도 어딘지 나사가 빠진 듯한 인물들의 장황한 대화들이 주를 이루는데 여기서 '포기선언'을 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읽다보면 정말 이런 나사 빠진 대화들이 정말로 필요한 것들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반드시 그 부분을 참고 견뎌야 한다. 틀림없이 후반부의 경악할만한 진상은 인내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될 것이다! '장난감 수리공', '밀실, 살인' 때도 그랬지만 이 작가는 특히 반전에 강하다. '앨리스 죽이기'에서 선보이는 반전은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대반전이라 작품 전체가 완전히 재해석 된다. 미스터리 잔혹동화로 시작해서 판타지의 강을 건너 마침내 SF의 영역에 도달해 우주 생성 이론에까지 뻗어나가는 느낌이다.


개인적 취향으로 보자면 역시나 초중반은 각오를 단단히 하고 봐야할 소설이었다. 이런 정신없고 산만한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끝까지 보고 나서 필독의 가치가 있는 작품임을 느꼈다. 라스트의 반전 때문만은 아니다. 소설 곳곳에 보이는 '호러적 색채' 때문이다. 유명 동화를 베이스로 한 미스터리지만 이 소설은 곳곳에 '호러소설 대상' 출신 작가의 '호러적 취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동화속 캐릭터가 끝없이 죽어나간다는 설정부터가 그로테스크하다. 게다가 후반부의 살인장면 묘사는 '꽤 센 편'이다. 개인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 소설은 잘 짜여진 '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잘 만들어진 '호러 판타지'에 가까웠다. 사실 추리소설로서 치밀함이나 공정성은 약했다.(너무 정신없는 캐릭터들의 쏟아지는 대화속에 단서들을 슬쩍슬쩍 묻어두었기에, 그걸 알아차리기란 힘들다) 하지만 호러판타지로 본다면 만족도가 훨씬 높아진다. 참신한 세계관, 으스스한 연속 살인, 피가 튀는 잔혹함, 그리고 경악할만한 후반부의 진실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팬이거나, 잔혹동화를 좋아하거나, 반전이 강한 미스터리를 찾는 이들에겐 좋은 독서가 될 것이다. 험프티 덤프티, 그리핀, 흰토끼- 끝없는 연속 살인과 혼돈의 세계에서 앨리스는 과연 진범을 찾아낼 수 있을까? 



p.s. 진입장벽이 꽤 있는 소설이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 나라의 앨리스', '스나크 사냥' 등의 인물과 세계관이 그대로 적용되기에 이 작품들을 미리 읽지 않은 독자라면 의아할 수도 있고, 혼란스러울 수도 있으며, 재미없을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게, 원작 캐릭터들의 특징과 대사, 행동, 사건 등이 '앨리스 죽이기'의 추리 요소, 플롯, 트릭 등으로 활용되기에- 적어도 인터넷을 통해 이 작품들의 요약본과 캐릭터들을 미리 알고 독서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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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덩이 창비청소년문학 2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 창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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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한 유머와 보석같은 미스터리가 도처에서 빛을 발하는 마술적 리얼리즘! 모든 삽질에는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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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덩이 창비청소년문학 2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 창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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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오는 신발에 머리를 얻어맞고 누명을 쓴 소년 스탠리. 잘못된 시간, 잘못된 장소에 있었던 죄로 스탠리는 소년원으로 간다. 초록호수 캠프라 불리는 소년원은 특별한 곳이다. 우선 초록호수 캠프인데도, 호수는 없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황무지만 드넓게 펼쳐졌다. 그런 곳에 수감된 아이들은 하루에 하나씩 구덩이를 파야한다. 깊이 너비 1.5미터의 구덩이를 하루에 하나씩 파야한다는 건 어마어마한 중노동이다. 정신수양 때문이라지만, 사실 아이들에겐 너무 가혹한 처사이고, 소장에겐 조금 특별한 목적이 숨겨져 있다. 내일은 더 힘들거야. 그리고 다음날은 더 힘들거야. 아이들 사이에 이런저런 불만과 문제가 불거지고 그렇게 지옥같은 나날이 끝없이 이어진다. 불운의 구덩이에 깊이 떨어진 스탠리는 어느날 우연한 계기로 구덩이를 뛰쳐나간다. 


'구덩이'를 읽게 된 계기는 그저 우연이다. 정말 우연히 알라딘 외국 소설 분야 베스트가 뭔지 검색해봤고, 1위에 올라 있는 'Holes'라는 작품에 관심이 갔다. 표지만 봐서는 무슨 공포 스릴러 같았다. 그래서 검색해보니 국내 '구덩이'라는 작품으로 출간되어 있었고, 청소년 소설이었다. 아무튼 이런 일로 읽게 된 '구덩이'는 정말 황무지 속에 묻힌 보석 하나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이 소설은 시작부터 독자를 스토리 속으로 끌어당긴다. 아주 간명하게 쭉쭉 진행된다. 이런 저런 어려운 배경묘사나 아이들의 내적 묘사에 치중하지 않고, 말 그대로 활극 위주로 이야기를 펼쳐간다. 누구라도 쉽게 읽을 수 있게 글을 썼다는 것이다.(이점이 작가의 재능이다) 


소설은 다중 플롯으로 진행된다. 큰 줄기를 이루는 것은 스탠리의 구덩이 파기를 둘러싼 이런저런 소동이지만, 그것 외에도 스탠리 조상들이 겪은 이야기, 그리고 100여년 전 유명했던 은행강도 살인마의 이야기가 교차로 엮여 있다. 아주 작게는 초록호수의 지난 역사, 노란반점 도마뱀의 특성, 운동화, 발냄새, 복숭아, 양파 등 작은 이야기들이 촘촘하게 뒤섞여 진행된다. 소설 속 등장인물, 스쳐지나가는 이야기, 소도구 하나까지- 모든 것은 복선이고, 여기에 우연은 없다. 모든 인과관계는 거대한 우주의 궤처럼 처음부터 하나로 빚어질 운명이었다. 언뜻 번잡해 보일 수 있는 진행이지만, 작가는 마치 노련한 이야기꾼처럼 유연하게 스토리를 끌고 간다. 


작품은 시종일관 유쾌하고 유머러스하고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짜릿하다. 스릴과 미스터리, 그리고 모험 활극이 잘 짜인 피륙처럼 정교한 스토리로 세공된다. 별 연관없어 보이던 이야기들이 마침내 하나로 절묘하게 모이는 라스트의 반전은 강렬한 카타르시스와 감동을 자아낸다. 마치 퍽퍽한 현실에 드리워진 가슴 설레는 마법처럼...! 작가는 그렇게 소설 내내 무수한 비밀과 흥미로운 장치를 구덩이 속에 묻어놓고 독자들이 그것을 파내서 기적같은 결말에 다다르게끔 만든다. 


불운과 고난으로 뒤덮인 스탠리는 언제나 삽질만 하는 삶을 살았다. 그렇지만- 그 삽질에 어쩌면 우주의 진리가 숨겨져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당장 아무 의미 없어 보이고, 그저 지옥 같은 고난의 연속처럼 보이는- 그러한 삽질들이 어쩌면 우리를 기적으로 이끌 꿈의 계단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지금 파는 이 구덩이에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묻혀 있을까? 다른 구덩이를 파야할까? 얼마나 더 많은 구덩이를 파야 내가 바라는 꿈에 다다를까? 삶은 그러한 의문을 애타게 품고 맨땅에 삽질하는 고행의 연속이다. 그러나 우주는 알고 있다. 당신의 고행을! 흘린 땀방울의 가치를! 그 삽질의 순간순간이 원기옥처럼 모여 커다란 꿈의 에너지로 바뀌어 가장 빠른 루트로 당신에게 날아가고 있으니- 방황하는 젊은이여, 젊어 삽질을 두려워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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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가는 유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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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평범한 형제가 있다. 남들과 조금 다른 것이라면 일란성 쌍둥이라는 것. 그리고 조금 이상한 능력이 하나 있다는 것. 생일 하루만 통하는 능력. 그것은 하루동안 2시간마다 둘의 위치가 바뀐다는 것이다. 물리적 법칙을 무시하는 비현실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그것을 특별한 능력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우습다. 그저 둘의 위치가 바뀌는 것뿐이다. 초인적인 힘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눈에서 레이저가 나가는 것도 아니다. 동생이 있던 곳에 형이, 형이 있던 곳에 동생이- 그렇게 위치만 바뀔뿐, 그외 다른 것은 없다. 그정도로는 위기에 빠진 사람을 구하거나, 악당들로부터 세상을 구하는 슈퍼히어로가 될 순 없다


그래도 형제는 그 작은 능력이 즐거웠다. 아버지에게 지독한 학대를 당하며 고통스러운 어린시절 내내 그 '작은 기적'은 삶의 '작은 활력'이었다. 재미삼아 위치를 바꿔보고(물론 바뀌어지는 것이다. 선택 사항이 아닌, 강제 이동인 셈이다), 이런 저런 실험도 해보며 논다. 말 그대로 그 이상한 현상은 형제에게만 의미있는 놀이이고, 신이 부여한 지극히 사소한 선물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형제의 그 능력이 위기에 빠진 누군가를 구해준다. 학대와 냉대로 얼룩져 마음 속에 깊은 벽을 두르고 있던 형제는 그렇게 한 걸음을 내딛는다. 높고 커다란 벽을 부수고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그 작은 움직임이 기적같은 구원을 만든다.


이사카 고타로는 한때 동서를 토탈해서 가장 좋아하던 작가다. '러시 라이프'를 우연히 읽고, 감탄과 감동을 금하지 못해 이후 그의 전작품을 줄줄이 사서 읽었다. 놀랍게도 다 '걸작'이었다. 하지만 이후 미묘하게 작가의 작풍이 바뀌기 시작했다. 아마도 '골든 슬럼버'의 상업적 대성공 때문일까? 꽤 다작을 하던 작가가 과작을 하기 시작하더니, 초기 작품에서 느낀 스피디한 전개와 촘촘한 미스터리의 묘, 그리고 시원한 플롯이 흐릿해지며 읽는 재미가 점차 약해졌다. '화이트 래빗' 이후의 소설부터 예전의 명성을 되찾아갔다. 아무튼 이번 작품 '후가와 유가'는 작가의 초기 작풍으로 완전히 돌아온 작품이었다. 읽는 내내 '중력 삐에로''마왕'이 떠올랐다.(화성에서 살 생각인가도 살짝 떠오름)


이사카 고타로 소설의 특징은(전성기 시절의 특징이라 할 수 있지만) 이야기가 한 편의 '모험' 같다는 것이다. 이번 작품 '후가는 유가'도 마찬가지다. 이 소설도 쌍둥이 형제의 모험을 다룬 한 편의 활극이다. 전작 같은 절묘한 미스터리의 묘는 없지만 읽는 내내 형제의 활극에 심장 박동이 함께 뛴다. 마음을 닫고 오직 둘이서만 교류하던 형제가 마침내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하고자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하는 대목에서 이루 형언할 수 없는 통쾌함이 느껴진다. 그렇게 세상은 아주 조금씩 바뀔 수 있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있다. 남의 일인데 뭐- 하며 외면하면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역지지라고, 형제는 아픈 이들의 상처를 보며 자신들의 아픔을 떠올린다. 그렇게 타인과 교류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바라보는 것에서만 그치지 않고 움직인다. 비록 보잘 것 없는 능력이라고 해도, 움직이는 순간 세상은 어떤 식으로든 바뀐다. 눈에 보이지 않을만큼 좋아진다. 형제는 그것을 깨닫는다. 그 작은 움직임들이 모여 마침내 커다란 악도 처단할 수 있다는 정의의 진리를... 이사카 고타로를 모르는 독자라 해도 입문용으로 보기 더없이 좋은 소설이다. 소소한 능력만을 믿고, 나머지는 정의의 본질에 모든 것을 맡긴- 두 형제의 마지막 승부는 엄청난 긴장과 카타르시스, 그리고 뼛속 깊이 파고드는 진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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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The Complete Maus 합본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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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 그런데 너 왜 우는 거니?

제가 넘어졌는데요. 친구들이 저를 두고 가버리잖아요.

친구? 네 친구들? 그 애들을 방안에다 먹을 것도 없이 일주일만 가둬놓으면... 그땐 친구란 게 뭔지 알게 될 거다.


아트 슈피겔만의 그래픽 노블 '쥐'는 만화책 사상 유일하게 퓰리처상 수상 작품이다. 사실 이 만화는 오래전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책 표지가 독특해서 집어 들었다가 빽빽한 글자와 칙칙한 그림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내려놓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도 책표지에는 '화려한 찬사' 문구로 가득했다. 재미는 없어도 뭔가 훌륭한 만화겠거니, 생각만 했다. 그러다 최근 '쥐'가 합본판으로 나왔다는 걸 알고 다시 이 책에 관심이 갔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만화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기에 다소 떨리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완전히 빠져들었다. 책장 줄어드는게 이토록 아까운 적은 또 오랜만이었다.


작가 아트 슈피겔만의 아버지 블라덱은 아우슈비츠에서 실제로 살아남은 생존자다. 작가는 그런 아버지에게 그때 당시의 이야기를 듣고 '쥐'를 완성했다. '쥐'는 아버지가 겪은 유태인 학살 이야기와 현재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액자구성이다. 재미있는 것은 지옥 같은 과거의 역사가 현재의 부자 사이에도 묘한 기류로 남아 꿈틀댄다는 것이다. 이는 곧 작가의 메시지이기도 하고, 또 작가의 심정이기도 하다. 피의 시간을 관통한 '그것'은 형태만 변할 뿐 그 속에 깃든 혼은 그대로 남아 현재까지 떠돈다. '그것'이 인물이 되었든, 이념이 되었든, 역사 그 자체가 되었든- 뿌리 깊숙이 스며든 피비린내는 모든 것을 병들게 만든다. 피의 역사, 그후 남겨진 삶은 그토록 피폐한 것이다.(우리도 충분히 겪고 있는 시간이다) 


아버지 블라덱은 나치 치하에서 지옥을 열두 번도 넘게 경험했다. 위기의 순간마다 그를 구한 것은 그의 뛰어난 머리와 운이다. 사실 운이 80퍼센트 이상이다. 그래서 그는 살아남았음에도 마음 어딘가가 텅 빈듯하다. 이미 가슴엔 수백 발도 넘게 총알구멍이 나 있다. 그토록 너덜너덜해졌다. 그리고 그것은 아들에게로 옮겨진다. 전염병처럼... 작가는 현재의 고통을 이해하고자 아버지의 삶을 기록하고, 만화로 그렸다. 그래도 그는 현재의 고통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작가는 말한다. 차라리 아버지와 함께 그 고통을 겪었다면 모든 게 더 분명해지지 않았을까... 


작가는 또 이렇게 말한다. 이 작품을 한 가지 메시지로 축소시키고 싶지 않다. 누구든 원하는 메시지로 이해하길 바랐다. 그래서 이 작품은 아버지의 삶을 아들이 기록한 것이지만, 굉장히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며 담담하게 그려낸다. 인종차별의 피해자로 지옥을 경험한 아버지가 흑인에게 편견을 가진 인물임을 감추지 않는다. 이는 일반적인 만화가 가진 통념적 가치관을 무너뜨린다. 가해자와 피해자- 우리는 결국 가해자가 악이고 피해자가 선이라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피해자 역시 언제라도 가해자의 시선으로 다른 인간을 차별하고 매몰차게 대할 수 있듯, 가해자라고 반드시 절대 악이라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선악의 가치 기준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가? 작가가 우화적으로 그린 쥐, 고양이, 개, 돼지라는 가면 뒤에 숨은 인간의 진짜 모습에서 괴물도, 피의 역사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만이 정의라 자처하며, 어느 쪽에 서 있느냐에 따라 선악의 가치 기준도 손바닥 엎듯 바꿀 수 있는 존재이기에...  


이런 저런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인건 틀림없지만, 그러한 메시지보다- 책 속 스토리에 푹 빠져들게 만드는 놀라운 가독성이 이 작품의 최대 매력이다. 억압받는 유태인들을 쥐로 그린 것은 '신의 한수'였다. 차라리 인간의 얼굴을 한 유태인이 죽었다면 그렇게 큰 비애감이 들지 않았을텐데, 묘하게도 귀여운 쥐로 의인화한 이들이 고통받고 죽어가자 더욱 씁쓸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광기의 역사가 그토록 많은 쥐들을 아우슈비츠 굴뚝 연기로 사라지게 했다. 그렇게 사라진 연기는 비가 되어 피눈물처럼 대지를 적신다. 피눈물이 흥건한 역사의 현재 페이지를 걷는 우리는 '그 시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까...! 



p.s 잔인한 장면이 나오지 않는데도 유태인 학살을 다룬 그 어떤 영화보다 더 큰 충격과 전율, 비애와 감동을 느꼈다. 아마 쉰들러 리스트, 피아니스트 두 영화 모두 이 만화의 영향을 받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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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ehyun 2020-03-29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쥐를 워낙 싫어해서 그 자자한 명성에도 책 읽는 내내 마주칠 쥐그림에 집어 들지 못 한 책입니다. 명성대로 좋은 책이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