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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우노메 인형 ㅣ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평점 :
끔찍한 죽음을 당한 오컬트 작가의 집에서 찾은 원고. 즈우노메 인형에 관한 그 소설은 한 소녀가 겪은 고통과 공포의 기록이다. 출판사 직원인 후지마는 원고를 읽으면서 죽은 작가와 즈우노메 인형이라는 도시 괴담에 관해 캐들어간다. 그러던 중 먼저 원고를 다 읽은 직원으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걸려온다. 아직 안 읽었다면 빨리 읽어, 지금 당장 전부! 무슨 일이냐고 묻는 후지마에게 그는 말한다. 가까이 다가왔어... 인형이야... 지금 눈앞에 있어...
'보기왕이 온다'로 22회 일본 호러소설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단한 사와무라 이치. '즈우노메 인형'은 '보기왕이 온다'의 후속작이며 히가 자매 시리즈 중 두 번째 작이다. '보기왕이 온다'는 근래 보기 드물게 체감 공포를 전달한 수작 호러소설이었다. 그래서 이 히가 자매 시리즈가 국내에 모두 출간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전작이 보기왕이라는 전승 괴담을 소재로 했다면 이번에는 즈우노메 인형이라는 도시 전설이 주된 소재다. 인형, 도시 전설, 가정문제, 저주 등의 키워드만 놓고 보면 조금은 흔한 스토리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의 솜씨는 역시 탁월했다. 죽은 작가가 남긴 '즈우노메 인형'이라는 소설 원고, 그리고 그 원고를 읽는 이들에게 찾아오는 괴사건. 소설은 이렇게 '원고 속 내용'과 '원고 밖 현실' 두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된다. 두 개의 스토리는 서로에게 복선과 미스터리를 던지며 뒤로 갈수록 절묘하게 하나로 엮인다.
소설의 전반부는 즈우노메 인형에 얽힌 괴담과 그 저주에 걸려든 이들에게 서서히 찾아드는 미스터리한 현상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저주의 실체와 인형과의 격돌을 그리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후반부가 더 마음에 들었다. 초중반까지는 음산한 분위기로 일관하며 한 소녀가 겪는 끔찍한 가정사, 개인사가 이어짐과 동시에 후지마가 즈우노메 인형의 저주에 서서히 다가가는 이야기로 일관하는데- 공포소설적인 분위기는 이쪽이 더 좋지만, 사실 조금 루즈한 면도 있었다. 소녀가 겪는 '문제'들도 조금은 빤한 것들이고, 후지마의 괴담 추적도 이미 '링' 같은 소설에서 봐 온, 익숙한 패턴이었다.
말하자면 이 소설은 슬로 스타터인 셈이다. 오히려 히가 마코토가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하는 후반부에서 소설의 재미와 긴장감은 커졌다. 특히 마지막 챕터에서 즈우노메 인형의 본체, 저주의 시한, 마코토와 인형의 격돌, 그리고 뜻밖의 반전- 등이 연이어 터지며 극한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소설은 스즈키 코지의 '링'에 많은 빚을 진 작품이다. '링'과 거의 같은 플롯이며, 소설 속에서도 '링'을 무수히 언급한다. '링'으로부터 많은 것을 빌려온 셈이지만- 좋게 말하면 '링' 혹은 '링' 세대의 문화 코드들에 대한 메타 픽션적 세계관의 창조라고 할 수도 있겠다.('링' 뿐만 아니라 수많은 공포소설, 공포영화, 도시괴담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데, 사실 호러 마니아로서 이 부분은 무척 반갑고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