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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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를 받고 북향 저택을 지은 건축가. 그러나 의뢰한 가족은 그 집에서 살지 않는다. 건축가는 이상한 마음에 저택을 찾아가 보지만, 그곳엔 사람이 산 흔적조차 없고 이층 창 앞에 의자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의뢰인 가족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어째서 그러한 의뢰를 한 것일까? 


'64'이후 내내 손꼽아 기다렸던 요코야마 히데오의 신작 소설. 주로 형사, 기자가 주인공으로 나와 현장감 넘치는 미스터리 소설을 써 왔던 작가가 이번에는 상당히 감성적인 드라마로 돌아왔다. 미스터리의 선을 옅게 깔고는 가지만, 굉장히 사색적인 작품이기에 작가의 기출간작에 열광했던 독자라면 지루할 수 있다. 사라진 의뢰인의 흔적을 추적하며 자신의 삶과 주변인의 삶까지 돌아보며- 결국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새로 깨닫는다는 이 테마는 다소 고전적이지만 작가의 유려한 필체 덕분에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역시 이전까지 요코야마 히데오의 긴장감 넘치는 미스터리를 기대한 한 사람으로 조금은 아쉬웠던 게 사실이다. 작가의 문장력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솔직히 다 읽는데 시간이 엄청 많이 걸렸다. 그만큼 속도가 나가지 않았다는 게 아이러니다. 이 작가만큼 속도감 넘치는 작품을 쓰는 작가도 드물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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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갱은 셋 세라 명랑한 갱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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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 일본 작가 중 한 명인 이사카 고타로의 명랑한 갱 시리즈 3편 '명랑한 갱은 셋 세라' 이 시리즈는 1,2편 모두 굉장히 유쾌하게 본 기억이 난다. '러시라이프', '중력 삐에로', '칠드런' 등으로 이사카 고타로 세계에 입문하며 '새로운 소설'의 재미에 빠져 있을 때, '명랑한 갱이 지구를 움직인다'는 이사카 엔터테인먼트의 정점을 찍은 듯한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이 시리즈의 재미는 개성 넘치는 네 캐릭터의 존재 그 자체에 있다. 소매치기 전문가, 거짓말 탐지 전문가, 운전 전문가, 말하기 전문가- 이렇게 네 인물이 은행을 털며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며 위기를 통쾌하게 해결하는 과정이 다이내믹하게 펼쳐진다. 


이번 시리즈 3편은 '말맛'의 재미가 살아 있고, 예측불허의 스토리 속에 작가의 동물 사랑이 곳곳에 포진해 있는 구조가 초기 이사카 고타로의 스타일을 만끽할 수 있어서 좋았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은 시리즈 1,2편은 언제나 라스트에 크게 한 방 먹이며 뒤집는 재미가 압권이었는데, 이번에는 그 부분에서 조금 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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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완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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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과 백, 선의와 악의가 피처럼 흩뿌려진 그날, 진실은 실종됐다.


한 여학생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소녀. 소녀는 자신을 괴롭히는 여학생이 죽이고 싶을 만큼 밉다. 어느 날, 그 여학생이 소녀를 대형 쇼핑몰 스완으로 부른다. 소녀가 스완에 도착하고 곧바로 사건이 터진다. 두 테러범이 스완으로 들어와 무차별 살상을 가한다. 살기 위해 도망치는 이들의 아우성, 총성, 그리고 순식간에 피로 물든 스완. 한 테러범이 스완의 스카이라운지로 들어선다. 그곳에 소녀가 있다. 남자는 소녀에게 총구를 겨누며 말한다. 네가 골라, 다음으로 죽일 사람을... 그리고 총성, 피, 신음소리가 이어진다. 그 순간 소녀의 눈에 자신을 괴롭힌 그 여학생이 눈에 들어온다. 다음은 저 아이 차례야. 테러범이 그렇게 말하며 총구를 겨눈다. 


데뷔작 '도덕의 시간'으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며 천재 작가로 떠오른 오승호, 일본 이름 고 가쓰히로. 재일 3세인 그는 다른 재일 작가와는 달리 정체성 문제나 국가관을 다룬 소설은 쓰지 않는다. 그는 국가나 인종을 초월한 '인간의 본성'을 날카롭게 해부하는 소설을 써서 문단의 극찬을 받고 있다. 일본 추리작가협회상과 요시카와 에이지 신인상을 동시 수상한 '스완' 역시 끔찍한 테러사건 이후 남겨진 이들의 불안과 공포, 그리고 '인간의 이중성'을 탁월한 필치로 그려낸 수작이다.


소설은 두 테러범이 쇼핑몰에 들이닥쳐 수십 명을 무차별 학살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놀라운 것은 이 오프닝 학살씬이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 그리고 결말의 진실까지 모두 담고 있는 복선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피범벅의 오프닝이 지나면 한 인물이 마련한 수수께끼 같은 모임으로 이어진다. 이 모임은 스완 사건의 생존자 중 다섯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을 초대한 인물은 그들과 함께 그날 사건의 '사실'들을 재구성한다. 


제목이 뜻하는 스완은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 이야기와 닿아 있다. 백조와 흑조, 오데뜨와 오딜, 선과 악- 세상은 언제나 모든 것을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누길 원한다. 거의 강박에 가깝다. 이를테면 건물 하나가 무너진다. 수십명의 사상자가 나온다. 부실 건물 설이 불거지고, 이내 사회는 안전 불감증에 대한 공포에 휩싸인다. 내가 사는 아파트도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공포! 희생자들에 대한 동정과 일이 그렇게 된 것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 혼란의 단계가 지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마녀사냥. 군중은 자신들에게 닥친 불안과 공포를 풀어낼 '대상자'를 찾기 마련이다. 누군가에게 비난의 돌팔매를 하고, 누군가는 그 팔매질에 피투성이가 되어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그들은 날선 모순의 질문만 던져댄다. 넌 흑이야, 백이야? 


어째서 '우리편 아니면 적', '흑 아니면 백'으로만 모든 것을 제단하려는 걸까? 세상에는 다양한 인간이 존재하고 인간의 마음은 흑백이 아닌 그라데이션에 가깝다. 뒤통수에 총구가 겨눠진 소녀에게 어떤 선택지가 있었을까? 무턱대고 '넌 그때 이렇게 했어야 최선이었잖아!'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뒤통수에 총구가 겨눠지지 않은 이들이 그렇게 편안하게 결과론만 따질 자격이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중은 진실이 아닌 오직 '흑과 백'만을 원한다. 작가는 이러한 군중 심리가 만들어낸 괴물 같은 사회를 보여준다. 간신히 살아남은 이들은 그 괴물 같은 사회의 먹잇감이 되어 다시 피투성이가 되고 마는 것이다. 


소설은 전체적으로 오프닝, 모임 전반부, 모임 후반부, 결말- 이렇게 네 등분으로 나누어지는데, 단숨에 빠져들게 만드는 오프닝을 지나 모임 전반부는 다소 지루하게 흘러간다. 그러나 모임 후반부부터 드러나는 진실 공방이 숨 가쁘게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그리고 대망의 라스트, 그 충격적인 결말과 가슴 먹먹해지는 에필로그는 잊을 수 없는 여운으로 각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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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이, 혼자가 될 때까지
아사쿠라 아키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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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 배틀물의 베이스를 깔고 가면서도 논리적인 추리성도 잃지 않았다! 볼만한 청춘 미스터리 성장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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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이, 혼자가 될 때까지
아사쿠라 아키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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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고등학교에서 연이어 세 학생이 자살하는 사건이 생긴다. 그들은 모두 죽기 전에 다음과 같은 유서를 남겼다. '나는 교실에서 너무 큰소리를 냈습니다. 조율되어야만 합니다. 안녕.' 한 학급에서 세 명이 자살한 사건으로 교실은 물론 학교 전체가 우울감에 빠진다. 그러나 한 아이만은 이 모든 사건이 자살이 아니라 누군가가 벌인 '살인'임을 깨닫는다. 교묘한 수법으로 살인을 자살로 위장한 '살인마'가 교실에 숨어 있다. 살인마의 살인 목적은 무엇이며, 교묘한 살인 수법으로부터 교실을 구해낼 수 있을까? 


국내 출간 전부터 이 작품에 대한 기대치가 컸다. 완벽한 수법으로 '자살'을 가장한 연속 살인이라는 줄거리가 무척 매력적이었다. 더구나 제목이 암시하는 바로는- 교실이 혼자가 될 때까지 살인을 계속하겠다는 의지처럼 여겨져, 과연 어떤 놀라운 방법으로 이런 '대범죄'를 저지를 수 있을까 몹시 궁금했다. 미리 말하지만 이 소설은 '능력자 배틀물'을 베이스로 깔고 간다. 이는 책 표지에도 버젓이 나와 있기에 스포라고 할 수도 없다. 아무튼 이런 설정의 소설인 줄은 몰랐다. '교실이, 혼자가 될 때까지'의 살인마 역시 '초능력'을 이용해 완전범죄를 이뤄낸다. 미스터리 소설에 초능력이 개입하면 사실 김이 빠질 수밖에 없다.


다만 읽기 전의 이런 우려와는 달리 소설은 초현실적인 설정을 가지고 가면서도 나름 그 세계관 위에서 철저히 논리적인 미스터리를 선보였다. 소설 속 살인마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고,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 역시 살인마와는 다른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 주인공은 자신이 가진 능력치를 최대한 활용해서 살인마가 가진 능력이 무엇인지 간파하고자 애쓴다. 하지만 주인공이 많이 불리한 상황이라 싸움이 만만치 않다. 상대의 능력을 정확히 알아내야만, 최종적으로 살인마를 제압할 수 있는데 거기까지 도달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탄탄한 논리적 전개를 선보인다. 판타지적 설정을 바탕에 깔고 가면서도 결국 이 소설은 판세를 뒤집는 결정적 한 방에 있어선 '추리소설의 묘'를 잃지 않는다.


교실이 혼자가 된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소설을 읽으며 제목이 뜻하는 바를 내내 곱씹었다. 학창시절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교실에 드리워진 왁자지껄한 소음이 일순간 사라지면 좋겠다는 생각. 내 눈에 비친 그 소음의 결정체는 '가식덩어리'였다. 친한 척, 친구인 척, 유쾌한 척, 동료애인 척, 활기찬 인간인 척, 그렇게 무리에 끼지 못 하면 초라해지지 않을까 하는 몸부림들의 아우성! 보이지 않는 칼만 있다면 그 가식의 아우성을 난도질하고 싶었다. 교실이, 찍소리 못 할 때까지. 책 속 주인공의 능력이 예기치 못하게 인물들의 '진실'을 캐치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어쩌면 인간은 '혼자'가 가장 편하다는 진실을 인정하면서도 '함께'이어야 한다는 거짓에 몸을 맡기는 건 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 지점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하하 호호 거리며 가식을 떠는 행위는 사실 피곤하다. 편할 리가 없다. 그런데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은 결국 '교실'을 떠나도 '세상'이라는 집단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초능력과 추리- 상반되는 두 세계관이 어긋나지 않고 조화롭게 믹싱한 잘 빠진 청춘 미스터리 성장물이다. 생각보다 라이트한 소설이었고, 그런 만큼 가독성은 좋았다. 하지만 묵직한 감동은 없었다. '살인마의 심리'에 무척 공감했지만, 동기 및 사연이 조금 빈약했다. 살인마와의 최종 에피소드도 '이런 식으로 처리해야만 했나'라는 반감이 들었다. 무엇보다 소설의 테마는 좋았지만, 인물들의 세세한 동선, 감정선이 조금씩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어긋나 있는 기분이 들었다. 드라마가 촘촘하지 못하다고 해야 할까? 추리소설이든 뭐든 소설은 역시 '드라마'가 강해야 묵직한 감동이 느껴진다. 작가가 좀 더 설득력 있게 인물의 감정선을 다듬었다면 걸작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작은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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