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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의 시간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1월
평점 :
13년 전, 초등학교 강당에서 강사가 강의를 하던 중 한 청년에게 살해된다. 체포된 청년은 살인 여부에 관한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자백도 속죄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다만 딱 한 마디만 말한다. '이것은 도덕 문제입니다' 13년 후 이 사건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려는 이들이 모여 그때 강당에 있었던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며 '사건을 재구성'한다. 그때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며, 살인으로 치닫기까지 어떠한 공기가 그곳을 지배했을까? 그러나 더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늙은 도예가의 사망 사건이 일어나고, 그 현장에서 이상한 낙서가 발견된다. '도덕 시간을 시작합니다. 죽인 사람은 누구?'
'스완'으로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을 수상한 오승호의 데뷔작 '도덕의 시간'은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으로 일본에서 크게 히트한 작품이다. 이 데뷔작으로 오승호는 단숨에 일본을 대표하는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가로 떠올랐다. '스완'을 무척 재미있게 읽어서 '도덕의 시간'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스완' 못지않게 이 작품도 출발이 너무 신선하고 매력적이었다. 훌륭한 선생으로 칭송받는 강사가. 강의 도중 한 청년으로부터 칼을 맞고 죽는다. 더구나 청년은 강사의 옛 제자이며, 선생을 무척 존경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진 걸까? 청년은 체포되고 15년 형을 받기까지 모든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딱 한 마디를 남긴다. '이것은 도덕 문제입니다.' 이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이며, 청년의 살인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정말로 그가 살인범인 게 맞는 것일까?
소설은 13년 전 그 사건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려는 젊은 여자 감독이 팀을 꾸려 그때 그 강당에 있었던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장면들로 상당 부분 채워진다. 그와 맞물려 유명 도예가의 사망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이상한 낙서 사건이 교차로 이어진다. 초중반은 상당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과연 두 사건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이며, 두 사건의 연관성은 또 무엇일까? 거기에 더해서 독특한 카리스마를 지닌 젊은 여 감독 캐릭터도 수수께끼를 자아낸다. 여러모로 '스완'과 비슷한 구성이며 그만큼 가독성도 높다. 다만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13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이 있고 전혀 다른 사건임에도 두 사건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것은 도덕 문제입니다', '도덕 시간을 시작합니다' 둘을 잇는 키워드는 바로 '도덕'이다. 소설은 스토리 진행 내내 이 도덕의 문제를 강조해서 다룬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다 읽고 나니 작가가 '도덕'에 관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뚜렷이 알기 힘들었다. 뭐랄까, 내가 작품을 제대로 읽은 게 맞나 싶은 의구심이 내내 들었다. 작가가 의도한 것과 독자가 느낀 바가 다르다고 해서 그것이 작품의 흠으로 직결될 수는 없지만- 경악스러운 '라스트 진실'과 맞닥뜨리고 나니 머릿속에 혼돈이 찾아왔다. 미리 말하지만 스토리는 완벽하다. 미스터리의 궤가 딱 맞고, 복선도 빠뜨리지 않고 회수한다. 이것은 스토리의 문제가 아니라, 메시지- 말 그대로 '도덕의 문제'였다.
여기서 다시, 그렇다면 도덕의 문제란 무엇일까? '도덕이란 무엇일까'가 아니라 '도덕의 문제'는 무엇일까다. 대학시절 문학 강의 시간에 교수가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한 스님이 길을 가다 생선장수가 생선을 죽이려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돈을 주고 그 생선을 산다. 그러고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며 다리 밑 강물로 던져 방생한다. 생선장수는 재미가 들려 스님이 지나갈 때마다 생선을 죽이려 하고 그때마다 스님은 생선을 사서 방생한다. 나중에 생선장수는 스님이 지나려 할때 마침 생선이 떨어지고 없자, 옆에 있던 어린 아들을 죽이려는 시늉을 한다. 스님은 돈을 주고 아들을 산다. 그러고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며 다리 밑으로 던진다. 이 에피소드에서 스님의 문제는 그가 '혼자만의 도덕'에 빠져 산다는 점이다. 도덕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이야기인데, 이것이 이 소설 '도덕의 시간'과도 미묘하게 맞물렸다.
살인이든, 꽁초를 버리는 행위든- 그것은 작든 크든 모두 법과 도덕의 문제 속에 포함된다. 이를테면 우리가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것은 그것이 범법행위이기 때문일까, 부도덕한 행위이기 때문일까? 인간이라면 법의 문제보다 도덕의 문제 때문에 '살인'을 망설이기 마련일 테다. 그러나 도덕에는 강제적 구속력이 없다. 때문에 법의 문제만 비껴간다면 '도덕의 문제'는 개인의 선택 문제로 귀결된다. 어떤 이유로든, 내 삶이 더 나아질 수만 있다면 도덕의 문제는 건너뛸 수 있다는 말이다. 생각할수록 이것은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문제다. 다수의 권력자들은 이미 부도덕한 일을 저지르며 '이것은 범법행위가 아닙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이런 권력자를 향해 미디어는 범법행위가 아니면 다냐? '이것은 도덕의 문제다'라고 비난한다. 여기서 도덕은 곧 정의다.
그렇다면 장발장은 어떨까? 배고픈 청년이 빵을 훔쳐 자신과 병든 어머니에게 줬다고 한다면- 그것은 물론 엄연한 범법행위다. 하지만 살기 위해 빵을 훔친 그를 도덕적으로까지 몰아세울 수 있을까? 때론 도덕은 마녀사냥처럼 한 인간을 옮아맨다. 우리는 한 사람의 '개인사'를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싶어 하진 않는다. 그가 저지른 부도덕한 '행위'만 놓고 그를 저울질한다. 어린 나이에 양부모에게 구타당해 갈비뼈가 부러진 소년이 집을 나와 떠돌이 개를 잡아먹었다면- 사람들은 도덕을 앞세워 그 아이를 '개 살생마'라고 비난한다. 그가 겪은 지옥 같은 삶에는 어떤 구원의 손길도 내밀지 않지만, 그의 부도덕한 행위에는 언제든 '도덕'이라는 총알을 쏟아부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얘기다. 그 소년에게 도덕은 어떤 의미일까? 소년에게 도덕은 곧 혐오일 테다. 도덕이 아무리 대단해도 소년의 삶보다 위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시- '도덕의 문제'란 무엇일까?
소설의 라스트에 13년 전 강당에서 있었던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데- 그 대목에서 충격과 함께 '혼란'이 찾아왔다. 그런 사연이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도덕'이란 무엇일까? 작가는 도덕의 양면성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나로서는 그렇게밖에 이해할 수 없었다. 소설 속에서 다뤄지는 두 사건은 결과적으로 도덕의 다른 정점에 선 사건이었다. 위 예로 든 '스님 이야기'처럼 혼자만의 도덕에 빠진 도덕을 비웃는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도덕이 가진 정의로운 힘을 믿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후자의 이야기로 귀결되는 라스트는 꽤 마음에 들었다. '스완' 때도 그랬지만 작가는 비정한 사회의 단면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한편 작은 휴머니즘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전자의 이야기로 귀결되는 라스트다. 이것은 도덕 문제입니다,라고 툭 던진 매력적인 메시지로 인해 뭔가 커다란 세계관을 품고 있을 거라 막연히 짐작했는데,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조금은 비약적인 동기가 아니었나 싶은 마음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혼란이 찾아왔다. '그런 이유로' 그 모든 행위가 설명되어지는 걸까? 그것이 도덕이 가진 '문제'를 직설하는 거라면 작가의 의도를 이해할 것도 같은데- 정말로 내가 느낀 점들이 작가가 의도했던 것들인지는 지금도 모호하다. 마치 도덕이 가진 모호성처럼.
쓰다 보니 글이 무척 길어졌다. 그만큼 나로 하여금 할 말이 많아지게 만든 소설인 것은 틀림없고, 그것만으로도 이 소설이 가진 가치는 높다고 본다. 총평을 하자면 매력적인 출발로 시작해서 사건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의 긴장감, 그리고 모든 진실이 밝혀지는 충격의 라스트까지 소설 자체는 사회파 미스터리로서 손색이 없다. 다만 라스트 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독자가 느낄 감상은 다 다를 것 같다. 우리가 막연히 입에 담는 '도덕'이 가진 '문제'에 관해 곱씹어 볼 수 있기에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 단계 올라갈 수도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