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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프니 듀 모리에 - 지금 쳐다보지 마 외 8편 ㅣ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0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이상원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7월
평점 :
히치콕이 가장 사랑한 작가 중 한 명인 대프니 듀 모리에. 히치콕은 그녀의 작품 중 '레베카', '새', '자메이카 여인숙' 등 세 편이나 영화화했다. '레베카'를 읽을 때도 느꼈지만 이 작가의 장점은 일상을 파고드는 비일상의 공포를 무척 섬세하게 그려낸다는 것이다. 이번 소설집에서도 그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일상을 잠식하는 이상(異常)의 공포를 무척 현실감 넘치는 호흡으로- 독자들을 강력하게 끌어당긴다.
첫 수록작 '지금 쳐다보지 마'부터 독자를 어둠의 심연 속으로 끌어내리며 숨이 턱 막히는 긴장과 악몽 속을 헤매는 듯한 암담한 공포를 선사한다. 수수께끼의 쌍둥이 노파를 만난 후로 느닷없이 사라진 아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남자의 악몽담을 그린 '지금 쳐다보지 마'는 수록작 중 '새'와 함께 가장 탁월한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은 라스트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결말이 압권이며 그로인해 그때까지 차곡차곡 쌓아왔던 복선과 미스터리의 궤가 절묘하게 맞물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인간을 이유 없이 공격하는 새들의 공포를 그린 '새' 역시 걸작 중편이다. 히치콕의 영화로 이미 봤지만 원작소설만이 가지는 재미는 또 따로 있었다. 영화는 그저 대자연의 공포를 그린 공포물이지만, 소설은 좀 더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한다. 이를테면 새 떼의 공격에 무기력하게 당하는 인간의 모습을 작가는 전쟁 중 대공습에 빗대기도 한다. 사실 전쟁이 터지면 소시민의 삶은 단번에 깨진다. 그들은 도대체 어디서 포탄이 날아오는지도, 왜 싸우는지도 모르는 채 허둥대며 방공호로 숨어들기 바쁠 테다. 단지 공포를 느낄 뿐 이 공포가 시작된 원인 같은 건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리라.
이 외에도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을 건너뛰어 버린 노파의 이야기를 그린 '눈 깜짝할 사이', 한밤의 연쇄살인과 아름다운 미녀와의 만남을 애수 어린 필체로 그려낸 '낯선 당신, 다시 입 맞춰 줘요', 렌즈를 바꾼 후 사람들이 동물로 보이는 기막힌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푸른 렌즈', 인간이 절대 오르면 안 되는 산 너머 몬테베리타 마을의 신비와 공포를 그린 '몬테베리타' 등이 인상적이었다. 아니, 그것 외에도 실로 전 수록작이 하나하나 다 걸작이고 다 재미있다. 한편 한편 수록작 수가 줄어드는 게 아까울 정도로 이 작품집 속엔 소설이 추구해야 할 모든 미덕이 다 담겨있다. 공포와 전율, 스릴과 서스펜스, 그리고 유머와 아련한 비애까지...
장르소설 팬이라면, '레베카'에 감동한 팬이라면, 그저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고 해도- 이 작품은 어느 누가 읽어도 순식간에 빠져들게 만들 것이다. 그러니 곧장 이 책을 집어 들길 바란다. 그리고 모리에 여사가 준비한 공포와 악몽의 성찬을 그저 만끽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