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니
톤 텔레헨 지음, 김소라 그림, 정유정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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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소원'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나는 톤 텔레헨의 어른 동화- 

'고슴도치의 소원' 때도 그랬지만 이 작가의 책은 책장을 펼치는 순간 '내 속'으로 깊이 빠져들어간다. 감추고 싶어하는 나, 바뀌고 싶어 하는 나, 나조차도 모르는 나, 내가 진정으로 꿈꾸는 나- 겹겹이 쌓인 내 안의 나 속으로 끝없는 탐색을 하게 된다. 현대인은 거의 모두, 남들에게 '보여지는 나'와 나만 아는 '감추어진 나'- 이렇게 분열된 자아 속에서 살아간다. 작가는 이렇게 분열된 자아가 빚는 갈등과 고뇌 그리고 두 자아가 서로를 이해하고 하나가 되는 여정을 그려낸다. 특별히 새로울 게 없어보이는 18개의 짧은 우화로 이뤄졌지만- 이 모든 에피소드가 결국 나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작은 위로와 작은 용기를 얻게 된다. 글도 글이지만, 귀엽고 아름다운 일러스트만으로도 마음 속 불안과 삶의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치유된다.


예전에 '설국열차' 홍보로 내한한 헐리웃 배우 틸다 스윈튼이 성공의 정의를 이렇게 내렸다. '진정한 자기 자신일 때 성공한 거다. 다른 사람으로 변장하거나 자신에 대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고 마음이 열려있고 자신에 대해 진정으로 표현할 수 있을 때 그것이 진정한 성공이라 생각한다.' 무척 멋진 말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 책 '잘 지내니'는 틸다의 이 말과 같은 감성을 교류하고 있다. 내가 다른 이로 보이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에 당당해질 수 있는 삶. 그것이 이상적 삶인 것이다. 누구나 꿈꾼다. 지금의 절망적인 내 모습이, 꾸며낸 가면으로 덧칠한 내 모습이- 진짜 내가 아니라는 꿈. 언젠가- 수많은 언젠가가 지나고 이윽고 그 날이 찾아오면, 그 모든 가면을 벗어던지고 세상에 진짜 내 모습을 보일 날. 그 날을 판타지처럼 꿈꾸며 지금의 나약한 영혼이 상처받지 않길 기도한다. 그래서 어쩌면 더 간절한 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그저 '잘 지내니' 정도의 안부만이라도 물어봐주길... 그 정도의 안부만으로도 우리는 지친 하루를 그럭저럭 견딜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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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항설백물어 - 상 - 항간에 떠도는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8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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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늑장 출간도- 굳이 분권한 것도- 다 참고 넘어갈 수 있는데... 이렇게 기다리게 해놓고 어째서 상권만 나온 겁니까? 반쪽짜리 책 읽고 싶지 않으니 하권 출간 시기 좀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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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능성은 이미 떠올렸다
이노우에 마기 지음, 이연승 옮김 / 스핑크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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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에 신흥 종교 집단이 자급자족하며 살아간다. 그곳의 일원이었던 소년과 소녀는 탈출을 꿈꾼다. 어느날 지진이 일어나자 교주는 외부와 연결된 유일한 통로를 폭파하고 마을은 완벽히 고립된다. 그리고 마지막 날- 모두가 한 방에 모여 기도회를 하던 날, 이상한 소리가 들려 소녀는 기도를 하다말고 눈을 뜬다. 그때부터 소녀가 목격하게 되는 것은 현실과 비현실이 뒤섞인 모호한 기억으로 남는다. 무시무시한 피의 참극과 신비한 현상... 10년 후 여인은 그때 있었던 일의 수수께끼를 풀어달라며 탐정을 찾아온다. 현실적인 진상이나 논리적인 트릭보다 '기적을 믿는 탐정' 우에오로에게 여인은 이런 말을 한다. 이건 단지 가설이지만, 그때 소년은 목이 잘린 채로 저를 안고 도망쳤던 것 같아요... 


이노우에 마기의 '그 가능성은 이미 떠올렸다'는 본격 미스터리에 라이트노벨의 감각을 섞은 퓨전 추리소설이다. 퓨전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만화적인 캐릭터성 때문이지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과정은 무척 논리적이고 탄탄하다.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의 출발은 크리스티 여사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마지막 장과 흡사하다. 탐정이 추리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이미 사건은 10년도 넘은 과거의 일이 되어 있다. 즉, 그때 그 고립된 장소에서 일어난 대학살극의 진실을 논리적으로 풀어가는 스토리다. 앞서 말했듯,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 10명 모두가 죽은 섬에 도착한 형사들이 이 불가능한 사건의 진상을 캐보려고 이런저런 추리를 짜내는 것과 비슷한 설정인 것. 다만 여기서 작가는 기존의 추리소설이 가진 틀을 크게 비튼다. 


목 잘린 소년이 소녀를 안고 구출했다- 라는 판타지적인 가설을 탐정은 오히려 그대로 받아들인다. '상식은 만고 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이 세상에 기적은 존재한다' 라는 게 탐정의 지론이다. 그래서 탐정은 이때부터 이상한 대결을 펼친다. '그때 그곳에서 있었던 불가능한 사건'을 논리적으로 추리하려는 여러 사람에 맞서- 그 논리를 논리적으로 파괴하며 반증을 시도한다. 탐정은 그런 식으로 가능한 모든 논리적 추리를 논리적으로 파괴해서 마지막에 남은 하나의 진실, 그것이 비록 '비현실적인 진실'이라고 해도- 그 자체를 하나의 기적의 현상으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추리소설 역사상 이토록 독특한 탐정의 탄생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기적을 믿는 탐정이라는 설정은 무척 근사하다. 마치 꿈이 사라진 세상에서 꿈을 꾸는 마지막 몽상가처럼. 아스팔트처럼 딱딱한 논리와 물리의 법칙으로만 빈틈없이 굴러가는 이 팍팍한 세상에 꿈도 희망도 어쩌면 그 아스팔트 속에 함몰된 게 아닌가 싶다. 꿈과 희망을 잃은 현대인의 삭막한 가슴에 단비처럼 찾아온 '기적 탐정'은 그래서 우리가 오래전 잃어버린 소중한 '가치'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일까. 신흥 종교의 집단 대학살이라는 무시무시하고 어두운 사건을 담고 있음에도 묘하게도 소설은 뒤로 갈수록 따뜻한 정서를 뿜어낸다. 두려움이 용기로, 절망이 희망으로, 죽음이 삶에 대한 의지로 거듭난다. 아무리 힘들고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더라도 꿈과 기적을 믿으며 '살아라!', 라고 듀라한은 우리를 위로한다.


목이 잘렸음에도 소년은 소녀를 품에 안고 길을 걷는다. 끝까지 소녀를 안전하게 보호하고자 한다. 목 없는 기사와도 같은 그 소년을 바라보는 소녀는 안심한다. 목이 없지만 자신을 끝까지 지켜줄 것 같다. 이처럼 비현실적인 일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고- 논리주의자들은 탐정이 미처 생각지 못했을 '현실 가능한 추리'를 열심히 늘어놓는다. 그때마다 탐정은 고고히 나서서 말한다. 그 가능성은 이미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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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왕이 온다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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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챕터 ‘방문자‘의 압도적인 공포감만으로도 필독의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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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왕이 온다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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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여름, 치매에 걸린 외할아버지와 단 둘이 집에 남게 된 히데키. 초인종 소리가 들려 현관을 보니 반투명 유리문 너머로 회색의 그림자가 보인다. '긴지 씨 계세요? 시즈 씨 계세요?' 정체불명의 그림자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찾는다. 두려움을 느낀 히데키는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아내 가나, 딸 치사와 함께 행복한 삶을 사는 히데키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긴지 씨 계세요? 시즈 씨 계세요?' 오래전 외할아버지의 집을 방문했던 그 요괴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치린 히데키는 공포에 떤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로 계속해서 목소리가 들린다. '히데키 씨? 가나 씨?'


어린 시절 외할머니는 말을 듣지 않는 히데키에게 '간코가 온다'라며 겁을 줬다. 간코는 요괴의 일종이며 정확히 어떤 형태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외할아버지는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게 있다고 말했다. 간코 정도로 얌전해지다니, 우리 동네엔 그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게 있지. 그게 오면 절대로 대답하거나 들여보내선 안 돼. 현관으로 오면 문을 닫으면 되는데 뒷문으로 오면 위험해. 뒷문을 열면 끝이지. 잡혀서 산으로 끌려가. 그게 뭐냐고 묻자 외할아버지는 말했다. 이름이 '보기왕'이라고 했어...


22회 일본 호러소설 대상 수상작 '보기왕이 온다'는 일본 전설과 괴담, 민속학까지 아우르며 '보기왕'이라는 새로운 요괴 캐릭터를 끌어낸다. 소설은 세 개의 챕터로 나뉘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 챕터에선 보기왕이 멀리서부터 서서히 다가오며 공포감을 조성한다. 그리고 세 번째 챕터에 이르면 마침내 그 공포의 실체와 직면하게 된다. 그래서 세 챕터는 각각의 분위기가 다르다. 보기왕과 처음 조우하게 되는 첫 번째 챕터가 가장 으스스하며 공포소설로서 완성도도 뛰어나다. 두 번째 챕터는 심리 스릴러의 느낌이 강하다. 그리고 보기왕과의 본격적인 대결을 다루는 세 번째 챕터는 액션 판타지로 장르가 바뀐다. 두말할 것도 없이 개인적으로는 압도적인 공포감을 선보이는 첫 번째 챕터가 가장 흥미진진했다. 첫 번째 챕터 하나만 따로 떼어놓는다면 근래 읽은 가장 무서운 소설 중 하나로 꼽을 만하다.(미쓰다 신조의 분위기도 났다) 


챕터가 바뀌면서 시점과 분위기도 바뀌며 초반의 공포감이 조금씩 옅어지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이어가는 솜씨는 훌륭했다. 무엇보다 '안으로 들여보내면 죽는다!'라는 '보기왕'이라는 요괴가 내뿜는 압도적인 공포감만으로도 마지막까지 책장을 쉼 없이 넘기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한 번 찍히면 어디라도, 어떻게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집요하게, 끝까지 찾아오고야 마는 무시무시한 이 캐릭터는 '링'의 사다코만큼이나 신선했다. 오카다 준이치, 츠마부키 사토시, 쿠로키 하루, 마츠 다카코 주연으로 영화화가 이뤄졌는데 영상 속에서는 보기왕이 어떻게 표현될지도 무척 궁금하다. 초반의 압도적인 공포감,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긴장과 호기심을 따라가다 보면 극한의 퇴마사 고토코와 극한의 요괴 보기왕과의 최후 대결에 다다른다. 나약한 인간들은 보기왕이 뻗는 핏빛 마수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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