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ESC에서 발췌)

- 지난해 홍대 앞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우울한 소식 가운데 하나는 노네임노샾의 이사였다. 입주 5년 만에 다섯 배 가량 뛴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영등포구 문래동으로 작업실을 옮겼다.

- 홍대 앞에서 먹고 자고 일하고 놀던 '동네' 사람은 어느덧 이곳에서 사라지고 강남에서, 이태원에서, 대학로에서 몰려온 '타지인'들로 북적인다.

- 홍대 앞에는 반전이 있다. 홍대 앞의 '동네'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유흥가를 벗어난 구석, 구석으로 숨어 들어갔을 뿐이다.

- 홍대 앞 바 '샤'는 술집이면서 이따금 작은 공연무대로 변한다. 주말이면 테이블을 귀퉁이로 밀어놓고 허클베리핀이나 다른 밴드들이 어쿠스틱 공연을 연다.

(김은형 기자)

- 월세를 벌어 볼까라는 생각에서 차와 맥주를 파는 바의 틀을 갖춘 로베르네집은 홍대 앞 젊은 예술가들의 아지트가 됐다. 열 평 안짝의 좁은 공간이지만 무료 임대를 해 원하는 작가에게 벽과 천장 등 공간을 제공하면서 다양한 실험적 전시들이 열렸고, 원하는 음악인들은 한 귀퉁이를 빌어 공연도 열었다.

(김은형 기자)

- 제2의 카페 열풍이다. 최근에는 갤러리나 공연장, 작업실 등의 문화적 기능이 더해지고 있다. 2003년 문을 연 '이리카페'는 공연과 전시 등 문화 복합공간으로서 홍대 앞 카페의 원조 격인 장소다.

- '무대륙'처럼 작가들의 작업실을 카페로 바꿔 전시와 공연, 시낭독회 등을 수시로 여는 공간들도 생겨난다.

- 미술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입소문이 난 아트카페 '샴'도 그중 하나다.

- 노트북을 연결하기 위한 전기코드는 기본이고 스탠드와 흡연자를 위한 공간이 마련된 곳도 많다.

(김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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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진화론을 배격하는 창조론 지지자들이 최근 창조과학을 다루는 과학저널을 창간하고, 과학계는 ‘2009년 진화론 150돌’을 기념할 채비에 나서면서, 지구촌에 과학과 종교의 긴장이 높아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복음주의 기독교단체인 ‘해답은 창세기’는 최근 “성경의 틀 안에서 창조와 지구적 범람을 연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과학저널 <앤서즈 리서치 저널>(ARJ, answersingenesis.org/arj)을 온라인 출판 형식으로 창간했다. 이 단체는 지난해엔 켄터키 주에 2700만달러 규모의 ‘창조 박물관’을 열었다.

편집장을 맡은 오스트레일리아 지질학자 앤드류 스넬링은 이 저널을 지지하는 동료 과학자들의 ‘심사’를 거친 논문만을 저널에 싣는다고 밝혔다. 창간호엔 ’미생물과 창조의 날들’ ‘격변을 보여주는 화강암 구조’ 등 주제의 과학논문 3편이 실렸다.

창조론자들은 1990년대 이후 ‘세계와 생명은 우연이 아니며 어떤 지적 존재의 작품’이라고 보는 ‘지적 설계론’을 과학으로 내세우며 세를 넓혀왔다. 생물학계는 대체로 이를 과학으로 인정하지 않은 채 무시하는 태도를 취해왔다. 하지만 이번엔 과학계가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과학저널 <네이처>의 누리집엔 창조과학 저널의 기독교근본주의를 비판하고 우려하는 과학계 독자들의 글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는 과학과 종교의 화해를 주장했다.

찰스 다윈의 탄생 200돌이자 진화론의 고전인 <종의 기원> 출간 150돌인 2009년을 앞두고 진화론과 창조론의 긴장도 갈수록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지구촌 과학계는 진화론 150년의 역사를 기념하는 여러 과학 행사들을 기획하고 있는 반면, 창조론 지지자들을 진화의 증거를 반박하며 창조론의 과학성을 입증하는 활동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이처>는 새해 초 사설에서 창조론이 미국과 유럽에서 여전히 강하다고 지적하며 “2009년 2월12일 다윈 출생일 전까지 진화론과 관련한 과학 학술단체들은 진화의 증거를 정리하고 널리 알리는 데 나서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오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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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공간의 논쟁을 즐겨하는 이들 중 일부는 상대의 글을 제대로 읽지도 않은채 반박이란걸 펼치는데, 종종 장광설을 늘어놓기 일쑤다. 그들이 쓴 글을 읽고 있으면, 제 분에 못이겨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해서, 나는 피식 웃음이 나는 것이다.

너그러운 이들은 이들의 글쓰는 태도나 예의를 하나하나 지적해주지만, 별로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들의 행태란,
결국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라는 식으로 제 할 말만을 내뱉으려는,
아니면 제 말재주 혹은 글재주를 뽐내고 싶은,
그것도 아니면 타인의 글을 읽고 괜히 제 찔리는 구석을 어떻게든 무마해보려는,
그런 일차원적인 욕구에서 나오는 것이지, 애초에 소통 혹은 논쟁을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소통을 원하지 않는 바에야, 대꾸할 필요도 없겠지만, 저희들 자유대로 쓰는 글을 나무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물론, 저희들의 일차원적인 욕구 충족을 위해 타인의 글을 재료로 삼는 점을 지적해야겠지만.

(덧붙이자면, 이런 이들 중에도 상급이 있고 하급이 있다. 아시다시피, 상급은 아전인수 격으로 글을 인용해놓고 제 할 말만 잔뜩 늘어놓는 위인들이지만, 하급은 독해 자체가 엉망이어서 물꼬를 틀 능력도 없는 이들이다.)

- 대학 시절, 공활이나 빈활이 '봉사 활동'이 아닌 '연대 활동'이라는 것을 알고 후배들이 종종 봉사와 연대의 차이에 대해서 물어보곤 했는데, 나는 그것에 대해 답하기를 좋아했다.

"봉사가 남을 위한 것이라면, 연대는 우리를 위한거겠지."

물론, 묵묵히 봉사하면서 자신과 타인의 차이를 자연스레 잊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조직에 소속되어 있다는 이유로 봉사를 연대라고 떠벌이는 이들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전자ㆍ후자 모두 너무 극소수라, 전자는 간헐적으로 언론에 보도될 뿐이고, 후자 역시 '연대'라는 가치가 아예 사라지는 요즘이다. 내가 좋아하는 어떤 칼럼니스트는 "뽐내기 위한 봉사인들 어떠랴" 라고 말 할 정도 였으니까.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인들 역시, 간헐적으로 봉사하거나, 연대할 자신이 없어 봉사를 갈등한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봉사니 연대니 운운하면서 제 자신을 드러내기에 바쁜 이들은 최고의 목불인견.

말이야 어찌됐건, 이들의 행동이 곤경에 처한 타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재밌는 것은, 오히려 이들이 이런 명백한 사실에 대해서는 겸양을 떨면서, 한편으로 제 자신의 성정에 대해서는 추켜올리려 한다는 것이다.

봉사는, 타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줌과 동시에 불편한 제 자신의 마음을 달래려는 것인데, 이들은 애써 후자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제 마음을 포장하기에 바쁘다. 그러면서, 제 욕심만큼 인정받지 못했을 때에는, 슬쩍 발을 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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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거름이요, 너희는 씨앗이며 뿌리와 같으니라. 언제 어느 곳에 가 있더라도 잊지 말아라. 너는 천대받는 백성들의 울본이 화한 마음이요, 그 손발이고, 그 머리며, 그 무기가 되어라." (금강산 운부 대사가 장길산에게)

"부자에게 재물이란 더러운 목숨과도 같은 것이니, 그에게서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이들께 보시하는 것도 죽이는 일 만큼의 징치가 되겠지요. 그렇지만 글을 읽고 세상의 도리를 아는 자의 죄는 더욱 용서할 수 없이 큰 듯합니다." (서 선비를 징치하고나서 길산이 김기에게)

장충은 건넌방 문을 열더니 선반 위에 얹혔던 고리짝을 끌어내렸다. 그리고는 통장고를 어깨에 걸머지고 마당으로 나서는 것이었다.
"어디 한바탕 해보아라."
길산은 머뭇거리다가 고리짝을 열고 켸켸묵은 탈박들 중에서 취발이의 탈을 집어들었다. (중략) 아버지가 통장고를 두드리며 불림을 내었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노던 달아.."
길산은 저절로 어깨가 으쓱여지고 무릎이 올라감을 느꼈다. 타령장단이 계속되자 길산은 힘차게 깨끼춤을 추며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몇 바튀 돌아가는 사이에 길산의 장딴지와 팔뚝에는 어언 신명이 잡혀서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있던 춤사위가 저절로 풀려나오기 시작하였다.

작은 배에 큰 짐을 실을 수 없고 너그럽지 못한 자가 머리가 될 수는 없다. 그런 자가 분수를 모르고 억지로 남의 위에 행세하면 일도 그르치고 스스로의 몸도 망치는 것이다. (길산이 흥복에게)

그들은 초여름부터 길산이 내린 율에 따라 하루에 두 끼의 밥밖에는 먹지 못하였고, 산채에서는 따로이 절량하는 독을 두고 그나마 덜어내는 것이었다. 녹림당이란 생산하는 자가 아니니 뜻이 없으면 백성의 적이라는 것이었다. 흉년에 녹립의 무리가 옳은 행적이 없다면 그는 역병보다도 더욱 무섭게 백성을 해치리라는 것이었다.

이제 두려움은 빈 창자뿐인 백성들뿐만 아니라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 일수록 견디기 힘든 계절이 되어가고 있었다. 길산이네가 다녀간 뒤로 평산에서는 두 부자가 아예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비우고 감영이 있는 해주로 피난하기도 하였다.

아침 저녁으로 우리가 주막에서 음식을 먹을라치면 걸인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둘러싸고 한 술만 달라고 사방에서 아우성이다. 눈뜨고 차마 볼 수 없으면 밥이 어찌 목구멍으로 넘어가리오. 만약 그들에게 남은 밥을 주면 그들은 형제간, 부부간에도 서로 조금도 사양함이 없었다. 다투어 한술이라도 더 얻어먹으려고 다투고 빼앗았다. 이런 형편에서 염치나 인륜 같은 것은 도저히 찾아볼 수 없었다.

예부터 우리들 노비란 당신네 양반들에게는 개 돼지나 우마와 다를 바 없지 않소. 상전편에서는 은의라 하나 우리 쪽에서는 다만 한때의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 진정한 은의라면 왜 진작에 면천시켜주지 않았습니까. 허리가 부러지도록 평생을 댁내를 위해 일하다가 몸져누운 할아버지를 시구문 밖에 내다 버리라고 했던 것도 당신들이지요. 대감께서 장례를 치르도록 하였다지만, 집안의 강아지에게 한줄기 인정을 쓰는 것과 무엇이 다르오. 댁네는 우리 누이를 삼남 향족에게 팔아버렸지요. 왜 그랬나요. 그때에 내가 어렸으나 누이와 어미가 붙들고 울어서 다 듣고 알았소. 이 집 큰서방님짜리가 ㅇ므행하여 말썽이 생겼기 때문이지요. 그때에 누이가 아이를 가져서 값이 후하였다고 댁네들이 지껄이는 소리도 들었소. 나와 내 아우가 자라나며 겪은 온갖 매와 고달픔은 다 잊었으나, 어미가 겪은 수모는 말로 꺼낼 수가 없소. 댁네 양반들은 모두들 음예로 날을 보내며, 부인들은 갖은 포학으로 앙갚음을 하였으니, 내가 어찌 한두 번 댁네를 죽이고자 작심하였겠소. 어미가 손가락을 작두에 잘리고 골방에 돌아와 울 적에, 나는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어둠속에다 대고 맹세하였지요. 언젠가는 댁네 양반들을 이 세상에서 하나도 남김없이 쓸어버리겠다고. (노비 복성이 그의 주인 목내선 대감에게)

그렇다. 대저 아조에서 제도를 바꾸려던 이들이 모두들 임금을 죽이고, 밑에서부터 위에 이르기까지 일시에 혁파할 생각을 먹지 못하고, 어떻게 조정에 기어들어가 통이야 팥이야 따져서 천천히 고쳐나간다는 생각을 하거나 고작해야 저희 벼슬아치들끼리 치고 받아 환국하는데 그쳤으니, 일반 백성들에게야 두루 미칠 수가 없었고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 되고 말았으렷다. 역모가 혁파에까지 이르지 못한 바가 대게 그같은 이유에서였다.
어찌 싸움이 입으로나 글로써만 이루어질 것이겠는가마는, 죽이고 무찌르고 넘어뜨리는 일을 차마 생각지도 못하니 어찌 이겨낼 수가 있으랴. 높은 태산을 오르려는 자가 늘 가던 길, 누구나 걷는 대로를 택하여 오르려다가는 미리 방비하고 막아선 편에게 언제나 밀리게 마련이다. 밀릴 줄을 알면서도 그 길로만 모두들 떼지어 오르려는 것은 아예 태산의 정상에 오르지 않겠다는 뜻이로다.
다른 길, 아무도 뜻하지 아니한 새롭고 험한 길을 만들어 바위를 타넘고 미끄러지는 위험을 무릅써서 올라야 할 것이다. 어느 쪽 길을 택하는 것이 옳았던지는 태산의 꼭대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알 수 있는 일이다. 길을 새롭게 뚫는 자만이 올라갈 의사를 지닌 자이고 당도하게 될 것이다. (석씨와 산지니의 대화 중에 서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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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양산 망해사

- 보경선사
- 심백
- 여환
- 묘정
- 보

# ??

- 강말득: 자고를 잘 던진다. 달리기가 빠르다. 입산 후 안악에 주막을 차리고 있다.
- 끝춘: 강말득의 동생. 꾀가 많다.

# 불타산

- 심백: 선흥의 토벌 때 간신히 살아남음
- 법호: 심백의 모사. 선흥의 토벌 때 간신히 살아남음
- 초봉: 고만이의 내응에 따른 관군 토벌로 죽음.
- 둘봉: 관군 토벌 때 살아남아 달마산으로 이동.
- 고만

# 달마산

- 강선흥: 장연 소금장수. 부역 나갔다가 내수사 노비를 때려 곤장을 맞음. 그후 입산. 달마산 수돌이 불타산 심백이 산채를 정복. 관군 토벌 때 총을 맞음. 구월산으로 합세.
- 업복

# 풍천

- 우대용: 수적의 두령.
- 석범철
- 박성대: 건조기술자
- 홍천수: 오입쟁이
- 이경순

# 송도

- 박대근
- 귀례: 배 대인의 딸. 박대근의 처. 영특하고 명민하다.
- 최윤덕: 인삼 모표 모녀의 사위

# 구월산

- 도화: 갑송의 처. 안생과 바람이 나 시어미를 죽임.
- 봉순: 길산의 처.
- 마감동
- 오만석
- 김기: 자진하려는 것을 갑송이 구해준 다음, 구월산의 책사가 됨.

# 월정사

- 옥여
- 풍열

# 서산이목 잠채장

- 김선일

# 봉산 자비령

- 김기
- 서 선비
- 천동이 만동이
- 최흥복: 춘천 태생. 문점손 축출. 천동의 잠채 텀.
- 문점손
- 을량: 부두령. 길산이 자비령을 점령할 때 따로이 독립함.

# 춘천

- 춘천댁
- 이세백: 황해도 감사
- 김식: 포도청 장교. 이세백 평무장. 최형기의 제자.

# 광주 삼전나루

- 한판관
- 석씨
- 석산진
- 까마귀

# 묘적산

- 정원태

# 솔부리

- 복만
- 고달근
- 황회
- 모신: 서강에서 활동. 최형기 삭탈 계를 씀
- 시동: 최형기 저격 실패

# 포교

- 최형기
- 김익훈: 김장생의 손자
- 목내선: 복성의 주인.
- 남구만: 병판
- 이인하: 좌포도대장
- 신여철: 우포도대장

# 살주계

- 북성: 목내선의 집에서 심문 중 죽음.
- 억기: 살림을 차렸다가 발각되어 발고. 산진이에게 죽음.
- 중길
- 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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