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이덕일의~’ 이름값 최소 5만부
대학교수 직함 없이 저술만으로 승부
‘소설가 지망 사학도’ 술술 읽히는 글발 내공
데뷔 10년 만에 30권 베스트 순위 착착
직장인처럼 출퇴근…원고 마감 어기는법 없어
 
구본준 기자 김정효 기자 

한국 출판계에서 ‘자기 이름을 내건 책’만으로 살아가는 글쟁이, 곧 프로 저술가는 극소수다. 문학쪽은 오히려 더욱 전업작가가 적고, 인문·사회·경제쪽, 그리고 실용서쪽에서 최근들어 분야별로 한두명씩 서서히 저술가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 가운데 역사 전문 저술가 이덕일(45)씨는 가장 성공한 글쟁이로 꼽힌다. 책 이름에 ‘이덕일의~’라고 붙일 수 있을 정도로 개인브랜드를 만들어낸 것이다. 현재 역사쪽에서 대중들과 직접 호흡하는 저술가, 특히 ‘대학교수’란 배경도 없이 책만으로 승부하는 저술가는 그가 유일하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진학이 늦었던 ‘늦깎이 사학자’ 이씨는 1997년 서른일곱살이란 나이에 첫 책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석필)을 쓰면서 저술가로 데뷔한 뒤 꼭 10년 동안 30여권의 책을 쓰면서 역사쪽에서 최고의 인기저자로 자리잡았다.

역사쪽에서 대중적인 인문서 쓰기를 시도한 이가 이씨 혼자만은 아니었다. 80년대 후반 한국역사연구회 등이 ‘역사 대중화’를 시도한 뒤 여러 소장학자들이 대중과 직접 소통을 시도했다. 히지만 현재까지 남아 출판시장에서 통하는 이는 이씨뿐이다. 그만큼 이씨의 등장은 90년대 이후 출판계의 새로운 변화를 상징한다. 이씨가 저술가로 활동을 시작한 초기에, 때로는 지금까지도, 받았던 가장 큰 오해가 ‘재야 사학자’란 호칭이란 점은 이를 잘 보여주는 대목. 역사분야에서 ‘재야’란 말은 정식으로 역사를 전공하지 않고 홀로 공부한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학과(숭실대)를 졸업했고 <동북항일군연구>로 박사학위를 딴 정통 역사학 연구자인 이씨는 ‘재야’가 아닌데도 이씨처럼 저술활동만 전념하는 전공자가 이전에는 없었기 때문에 이씨를 재야일 것으로로 넘겨짚은 것이다.

저술가로서 이씨는 올해 경력의 절정을 맞고 있다. 1999년 나왔던 <누가 왕을 죽였는가>를 개정한 <조선왕 독살사건>이 지난해 다시 나온 뒤 10만부 넘게 팔리고 있고, 최근 펴낸 <조선 최대 갑부 역관>도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어 이씨 책 두 권이 동시에 상위 순위에 올라있다. 또 <~역관>이 이씨의 책으로는 처음으로 드라마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이씨를 향한 출판사들의 구애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다.

출판계에서 추산하는 이씨의 시장가치는 ‘5만부’. 올해 출판시장에서 이씨의 가치를 환산한 수치로, 이씨의 이름으로 5만명까지는 끌어올 수 있다는 의미다. 5000부를 넘기기가 쉽지 않은 인문·교양쪽에서 5만부란 수치는 다른 분야의 10만부 수준이다. 이씨는 30~40대 남성들을 고정팬으로 거느리고 있어 최소 1만부는 기본으로 넘긴다. 이런 점 때문에 이씨는 대형 종합출판사 김영사의 ‘빅4’ 필자 가운데 1명으로 꼽힌다. 다른 3명이 <먼나라 이웃나라>의 이원복 교수, <식객>의 허영만 화백, <토익, 답이 보인다> 시리즈로 토익시장 최고의 베스트셀러 저자인 김대균씨인 점을 보면 이씨의 힘을 알 수 있다.

김영사 ‘빅4’ 필자 중 한명
 
이씨가 저술가로 성공한 최고의 강점은 가장 기본적인 능력인 ‘글쓰기’에서 나온다고 출판계는 분석한다. 학자풍의 딱딱한 글을 쓰지 않는 수준을 넘어 짜임새 있는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이다. 소설가 지망생(이씨는 실제 역사소설 <운부>를 쓰기도 했다)답게 이씨의 책들은 소설처럼 술술 읽을 수 있는 게 매력이자 장점이다. 김영사 신은영 실장은 “좋은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그 이야기에만 빠지는 게 아니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알고 글을 쓰기 때문에 독자들이 머릿속에 극적인 장면을 그림을 그리듯 떠올리며 읽을 수 있는 것 같다”고 평했다.

책 내용을 차별화하는 틈새 주제 포착능력도 강점으로 꼽힌다. 누구나 아는 방향으로 책을 쓰지 않고 책마다 반드시 새로운 보여주는 게 있다는 말이다. 논쟁이 일었던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처럼 책마다 ‘걸고 넘어지는 것’이 있기 때문에 주목을 받게 되는 것인데, 이는 출판사나 편집자가 가장 바라는 점이기도 하다.

이씨의 글은 이야기가 맛깔진 반면 전하는 메시지가 약해 주장하는 바를 명확히 모르겠다는 평도 듣는다. 너무 글 ‘테크닉’에만 의존한다는 평도 있다. 이는 이씨의 장점인 동시에 약점이지만, 이씨의 철학과 전략에 따른 선택이기도 하다. “독자를 가르치려는 책은 오래 못가는 것 같아요. 전에는 제 주관과 판단을 글에 집어넣기도 했는데 몇년 지나 다시 읽어보니 그 부분들이 꼭 목에 딱딱하게 걸리더라구요. 그래서 이야기 전개에는 주관을 넣어도 마지막 결론은 독자들에게 맡기려고 합니다. 이걸 어기면 독자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 같아요.”

직장인처럼 규칙적인 생활과 철저한 자기관리도 이씨의 성공비결 가운데 하나. “남들 출근하는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시간까지 일하고, 가끔 야근도 합니다. 일이 되든 안되든 앉아서 글을 쓰든지 책을 보면서 업무와 관련된 일을 하는게 원칙입니다.” 이씨는 술마시는 시간을 빼면 항상 글을 쓰거나 공부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마감이 고무줄처럼 늘어나기 마련인 대부분의 필자들과 달리 원고 기한을 어기는 법이 없다. 자기 일정과 작업량을 잘 감안해 합리적으로 마감을 정하기 때문이다. “책도 상품인데 아이스크림을 겨울에 낼 수는 없잖느냐”고 이씨는 웃었다.

지금은 ‘역사 저술가’로 이름을 굳혔지만 그 과정은 물론 쉽지 않았다. 이씨 스스로도 “늘 어렵게 살았던 터여서 ‘라면 세 개에 소주 한 병이면 하루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도전했던 것”이라며 “아마 온실에서 도전한 사람이었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른바 ‘일류대’ 출신이 아닌 그가 대학교수에 도전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긴 했기에 저술가를 ‘블루오션’(경쟁자가 없는 시장)으로 일찌감치 정하고 도전해 거둔 성과인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씨는 “인문학 공부하는 사람이 대학 기웃대지 않고 잘먹고 살면서 전문가의 길을 갈 수 있다는 선례를 보여준 점”을 자부심으로 꼽는다.

불행하게 가신 분 한풀어줘 보람

역사 저술가로서의 보람을 물었다. “한 시대의 시대정신을 추구하다 불행하게 돌아가신 분들에게 애정이 많이 가는 편입니다. 책으로 그런 분들의 한을 풀어준다고나 할까, 그게 보람입니다.” 이씨는 저술가로서 앞으로의 방향을‘평전’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한 개인의 삶을 통해 그 시대를 바라보는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씨는 평전 쓸 대상으로 우선 3명을 정해두었다. 이순신을 발탁한 정치가 유성룡, 사문난적으로 몰려 사약을 받아야 했던 비운의 학자 윤휴, 그리고 정조 임금이다.

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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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스크랩 기술
최상희 지음 / 넥서스BOOKS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굳이 '스크랩' 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자료를 모으고 분류 분석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해왔습니다.
최상희 기자에게 '1호 봉투' 와 '스크랩북' 이였던 스크랩 도구가, 제게는 온라인 게시판이었죠.

게시판의 카테고리(category)를 나누는 일이 제일 만만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한가지 자료를 선택했을 때, 이것을 어떤 카테고리로 분류하느냐가 늘 골치를 썩였습니다. 카테고리를 새로 나누고, 자료를 재분류하는 일도 몇번 있었죠. 무척이나 고된 일이었습니다. "이걸 꼭 해야하나?" 하는 회의가 새삼스럽게 일어나곤 했으니까요.

<신문 스크랩 기술>이, 오랜만에 만난 고향친구처럼 느껴지는군요.

실용서의 매력은,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명료하게 보여주는 데에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도움말은 하나의 '좋은 예시' 임과 동시에 '예시일 뿐' 이니까요.
문제를 풀어가는 실제적인 방법은 원인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형식일 뿐이니, 독자로 하여금 문제의 원인에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면, 그럴싸한 예시들로 가득찬 실용서란 '빛 좋은 개살구' 일 뿐이지요.

그래서, 좋은 실용서 <신문 스크랩 기술>은 두개의 부분 - 정보의 달인이 되는 신문 읽기, 앞서가는 사람들의 실용 스크랩 기술 - 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성질 급한 독자들은 두번째 부분부터 읽겠지만, 저는 첫번째 부분부터 차근히 읽어나가시길 권하고 싶군요.

첫번째 부분이야 말로, 우리가 왜 스크랩을 해야하며, 신문은 어떤 점에서 좋은 정보전달매체인지, 인터넷을 이용한 정보접근의 약점은 무엇인지, 스크랩은 크게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지,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스크랩은 단순히 정보를 수집하고 분류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정보력을 향상시키는, 즉 정보를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생산적인 활동이자 훈련방법이라는 것이죠. 정보의 탐색 - 선택 - 정리 - 활용 으로 이어지는 스크랩의 과정까지 정확하게 훌륭하게 이해했다면, 사실 두번째 부분은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두번째 부분에는 좋은 도움말들이 많이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 최상희 기자의 방법이니까요. 독자가 자신에게 가장 좋은 스크랩 방법을 찾는 것이 저자의 바램일 것입니다.
(물론, 두번째 부분을 읽으면서, 첫번째 부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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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 2009-02-18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스크랩 원칙 ]

1. 정해진 규칙대로 스크랩 하라.
2. 닥치는 대로 모으지 마라. 뚜렷한 주제와 분야를 정해라. 목적에 맞는지 따져라.
3. '왜'라는 질문을 던져라.
4. 부연설명이나 참고 자료를 함께 모아라.
5. 2~3일 간격으로 임시보관함의 정보들을 분류하라.
6. 스크랩 전에 핵심을 메모해보라.
7. 버릴 때는 과감히 버려라.
8. 6개월의 한번은 정보 가꾸기를 하라.
 

타이포를 비슴듬히 쓰는 방식은 익숙합니다.
타이포 아래 신문 이미지를 주목할 만 해요. 파스텔톤 색상 세가지로 옅게 처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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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출판계 “젊은피 대환영”
임종업 기자 

6월 30일. 한해의 반이 뚝 부러지던 날. 마포구 서교동의 출판인회의 회관에서 배코머리, 꽁지머리, 노랑머리가 나타났다. 이날은 다름아닌 서울출판예비학교 1기 수료식이 열리는 날. 배코머리는 이 학교 교감인 박영률(커뮤니케이션북스 대표, 출판인회의 교육위원장)씨, 2팀 담임교수 김철호(유토피아 대표)씨, 3팀 학생 주소림씨.

1월 초 신입생 환영회 자리에서 한 테이블에 앉았던 이들은 6개월 교육을 마치는 날 각각 그러한 머리를 하기로 약속했다. 그렇지 않으면 출판계를 영원히 떠나겠다고. 술김의 약속이라고 했지만 각자의 착잡한 심정의 발로였다.

서울출판예비학교는 노동부가 추진하는 신규 직업인력 양성 훈련 프로그램인 ‘중소기업직업훈련컨소시엄’ 제도의 일환. ‘중소기업직업훈련컨소시엄’은 중소기업들이 직업훈련을 실시할 경우 기업에서 납부한 고용보험료에 일정 규모의 지원금을 얹어 되돌려주는 제도다. 출판회의로서는 기존의 교수진과 시설을 이용해 편집자를 양성함으로써 당면한 인력난을 해소하고 노동부로서는 비용을 분담하여 골칫거리인 청소년 실업율을 낮추는데 기여할 수 있어 서로 이해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출판인회의(회장 김혜경)에서도 처음 시작하는 제도인 만큼 공을 많이 들인 편. 지난해 5월 176개사로 컨소시엄을 꾸렸고 11월에는 출판사의 인력 및 교육 수요를 조사했다. 이를 바탕으로 교육콘텐츠를 개발하고 교수진을 꾸리고 훈련생 29명을 뽑아 입학식을 열기까지 10개월이 소요됐다.

훈련생 선발도 까다로워 서류심사, 한국어 및 논술시험과 면접을 거쳐 지원자 120명 가운데 29명을 선발했다(3명 중도탈락). 4대1 경쟁률. 뽑힌 사람들은 스물넷에서 서른다섯의 청년백수들. 면접 과정에서 편집에 대한 의욕과 열정이 확인된 이들에게 없는 것은 기능뿐(가장 중요한).

현장의 교수진이나 백수였던 학생들이나 여섯 달 725시간의 출판편집 교육은 생소한 만큼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배코, 꽁지, 노랑머리는 세명이었지만 모든 교수와 학생들의 다짐이자 함께 힘 내자는 깃발이었다.

배코·꽁지·노랑머리의 약속

이날 수료식에 앞서 6개월 소회를 주고받던 4층 간담회장. 노랗게 머리를 염색한 주소림씨가 뒤늦게 들어서자 ‘와’ 하는 탄성이 나왔다. 간담회를 주관하던 고경대 교수는 바로 박영률 교감한테 확인전화를 걸었다. 이발소에 있다는 대답에 또 한차례 탄성이 흘러나왔다. 6개월 725시간. 고난의 행군을 마친 26명 가운데 17명은 취업이 확정되고 나머지도 면접을 앞둔 마당, 행군을 무사히 마쳤다는 성취감과 교육 결과에 대한 만족감을 교수와 학생들이 함께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훈련은 주5일 하루 6교시 수업. 강의와 세미나 중심의 이론교육과 팀 워크숍을 중심으로 한 도제식 교육. 5~6명을 한 팀으로 모두 5개팀으로 나눠 담임교수가 지정되고, 이들은 교육생이 출판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소양과 출판 제작과정 전반, 즉 원고검토, 편집·조판, 교열·교정, 레이아웃, 디자인, 마케팅 기법 등을 전수했다.

현장 경험자가 교수가 되어 실제로 책을 직접 만들어가면서 교육하기로는 이번이 처음. 기왕의 대학교육이 장기간에 걸쳐 널널하고 이론에 치우친 반면 예비학교의 수업은 짧은 기간, 실습 위주로 편성돼 일정은 퍽이나 빠듯했다.
 
학생들은 아침 9시 수업을 위해 아침마다 일찍 ‘등교’하는 것이 괴로웠다고 말했다. 또 교수들은 6개월동안 수업 외에 다른 일을 전혀 할 수 없었다. 특별히 시간을 낸 강무성(도서출판 느린걸음 대표), 김철호 교수는 방치한 일인 출판사 일에 묻혀야 하고 김장환(푸른숲 주간), 최병헌(커뮤니케이션북스 주간) 교수 역시 수료식 뒤 바로 출판현장으로 복귀할 예정이다.

팀별로 실습을 하면서 낸 첫번째 책은 <난세를 가로 지르다> <마음 떠나 길을 걷다> <독일인 유대인 비극의 이중주> <한국인은 신들렸다> <임서방 물건은 돈독도 하지> 등 다섯 권. 원고는 출판사에서 지원받은 것으로 에세이·전문서적, 국내저술·번역물 등 다양하다. 이들은 주어진 원고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사실과 부합하는지를 따져보았고, 주제에 맞춰 체제를 뜯어고치는 것은 물론 의미의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 원고의 반 이상을 덜어내기도 했다. 각각 50권씩 제본해 교육자료로 남기고 일부는 그들의 기념품으로 삼았다.

두번째 책은 <서양 문명의 창, 기독교>(로즈마리 헤일 지음, 장석만 옮김)는 실제 출간해 시중에 판매한다. 학생들은 원문과 일일이 대조해 오역과 어색한 번역을 잡아냈다. 예컨대 원저에서 잘못 표기된 테르툴리아누스의 생존시기를 바로잡고, ‘캘린더’라고 원어 그대로 옮긴 것을 ‘교회력’으로 표기를 바꿨다. 또 원서에 없는 보론(한국의 기독교)과 용어해설도 붙였다. 판형도 시리즈에 맞게 손 안에 드는 크기로 하고, 표지 역시 고급스럽게 만들었다. 자신의 출판사 유토피아에서 책을 내기로 한 김철호 교수는 여럿이 꼼꼼하게 작업을 해 상업적으로도 손색이 없어 시중판매 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권말에는 서지사항과 별도로 이 작업에 참여한 훈련생 26명, 지도교수의 7명의 이름이 ‘자랑스럽게’ 인쇄돼 있다.

전원이 만든 책 1권은 시중판매

“시간이 무서워요. 긴가민가 시작했는데, 이제는 벽보나 간판에서 자연스럽게 띄어쓰기 잘못이나 오자가 눈에 들어와요. 친구와 대화하면서도 그들의 말을 교정보고 있더라니까요.” “디자이너와 편집자 사이의 의사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알아서 했겠지 하고 서로 믿다 보니 결국 틀리더라구요.” “긴장의 끈을 끝까지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에요. 잠시 방심하거나 괜찮다 괜찮다 하다보면 잘못 나오더군요.” “편집기획이 가장 중요한 줄 알았는데, 사소한 문자나 색상교정이 책의 품위를 좌우해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는 게 없더라구요.” “저자에 대한 환상 깨졌어요. 원고가 손볼 데가 많구나 하면서 편집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한마디씩 털어놓는 소감에 반년 동안의 고민이 담겼다. “몇년 늙은 느낌이에요.” 이말에는 와르르 떼웃음이 터졌다. “2년경력에 필적할 만큼 집약적으로 교육을 시켰지만 막상 현장에 가면 새내기일 수밖에 없어요. 다만 이들이 출판의 모든 과정을 해보았기 때문에 완전초보들이 3년에 걸쳐 습득할 것을 1년 안에 배울 것이라고 봐요. 자신의 분야를 빨리 찾아 정착할 수 있고 그만큼 성장이 빠를 것입니다.” 김장환 교수의 말이다.

고경대 교수는 “386세대 이후 맥이 끊긴 출판인력 유입의 맥을 잇게 되었다”면서 “교사들이 멘토 역할을 해 문제가 생기면 조정을 하는 등 일종의 애프터서비스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력 못잖은 새내기 17명 취업
 
이들에게 거는 출판계의 기대는 자못 크다. 새내기를 뽑아 가르쳐 일좀 한다 싶으면 다른 출판사로 옮겨가고, 경력자들 역시 1~2년마다 출판사를 떠돌아 ‘그나물에 그밥’인 현실에서 새로운 피에 대한 기대는 클 수밖에 없다.

수료생 가운데 한명을 채용한 들녘출판사 윤재인 주간은 “인턴사원을 뽑은 적이 있었는데, 아무 것도 모르고 가르칠 시간이 없어 허드렛일만 하다가 그만 둔 적이 있다”면서 “이번에 뽑은 친구는 집중교육을 받은 만큼 일년동안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게 해 적정한 분야에 정착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번 실험이 출판계의 고질적인 인력수급 문제를 푸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결과가 좋으면 매년 한두 명을 이런 식으로 선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예술작품에 숨겨진 수학> 같은 매니아가 찾는 책을 만들고 싶어요.”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사>처럼 의미있는 책이 좋아요.” “할말은 많은데 알려지지 않아 소외된 저자를 발굴하고 싶어요.”

수료생들의 의욕이 큰지 출판계의 기대가 큰지 곧 판가름 날 터.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맞춰가는 과정이다. 고통스러울지라도 함께 져야 할 짐이기 때문이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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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7-14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접 가신 건 아니시죠?

sb 2006-07-15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제가 출판 실무에 관심이 있어서 담아둔 것 뿐입니다.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
공선옥 지음 / 당대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산문집은 좀처럼 가까이 하기가 힘들었다.
넓은 자간과 행간, 넉넉한 여백, 구성진 말투.. 산문집이 풍기는 조금은 느리고 여유로운 모습 때문이었다.
몇일 전 한 친구가 굳이 소개해주지 않았다면, 아니 소개만 하고 선물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산문집을 가까이 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표지에 실려있는 그녀의 투박한 외모와 이력, 그리고 "예술가가 해야 할 일 중에는 풍경을 기록하는 것뿐 아니라 그 시대의 상처를 기록하는 일도 포함된다."는 다짐도, 오래 자리잡은 산문집에 대한 인상이라는 것을 바꾸기는 힘들었다.
소외를 기록하는 일이 무에 힘들다고.. 우리 시대의 상처를 기록하는 일은 솔직하면 될 일이지, 다짐까지 해야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공선옥도 소외를 말한다.

돈이 없어 아이를 아동일시보호소에 내맡기는 아비「내 이웃의 통곡소리가 그치지 않는데」
천연조미료 만들어 먹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한 이들 「뉴-슈가와 맛나니」
나이가 조금 많거나 조금 적은 이들의 사랑이야기 「사랑은 가고 러브만 남은 이 휘황한 밤에」
공중전화통을 붙들고 있는 어린 군인들  「어떤 쓸쓸함에 대하여」
김선일씨의 죽음 「행복할 자신이 있는가」
쓰나미가 할퀴고 간 상처 「새해에 비는 소망」
기회의 불균등에 상처받는 아이들 「서울대 진학확률 0%인 사람들의 원죄는?」
억지로 아이 젖을 떼야 하는 여성노동자들 「젖 주는 사회」

하지만, 공선옥이 전하는 소외는 특별하다. 소외와 더불어 '근본' 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본질이다. 왜 사는가. 왜 돈을 버는가. 왜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키는가. 왜 정치를 하는가. 나는 왜 인간인가."  「본질을 망각한 사회」
"지금 우리는 확실히 가난은 없고 빈곤만이 남아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중략) 가난은 그대로 어느 정도 숨 쉴 구멍이라도 있지만, 빈곤은 도대체 그 어떤 대책도 없는, 가난은 가난해도 어딘가 따스한 기운이 묻어나기도 하지만 빈곤은 그야말로 삭막 자체인 것 같은." 「가난과 빈곤」
"차마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극한의 고통을 요구하는 노동현실이 지금 이 땅 건설현장에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런 현실에 있는 이들에게 책읽기로서 인간으로서의 자존심 운운하는 것은 또 하난의 폭력이요, 기만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나는 지금 통렬한 심정으로 고백하는 것이다."「말할 수 있음의 폭력」


그녀의 항변에는, 소외를 기록하고자 하는 한 예술가의, 근본에 대한 열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리고 이것이, 공선옥의 글이 칼럼이라기에는 날카롭지 못하고, 산문이라기에는 보드랍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녀는 아직 "아름다운 노래 따위 부를 수 없는" 것이다.

소외에 다가가는 법은 제각각이 아닌가. 어떤 이들은 자신의 동정심과 인간미를 십분 발휘하기 위해, 어떤 파렴치한 이들은 밥벌이 수단으로, 그리고 공선옥은 근본에 대한 열망으로 소외에 다가간다. 공선옥에게 소외란, 이미 남의 것이 아니다.

소외는 솔직함을 간직하는 이상 우리 모두의 것이다. 소외가 더 이상 소외라고 하기 무색한 사회, 소외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치는 이들과, 소외를 해결하기 위해 팔 걷어 붙이고 달려드는 많은 이들에게, 아직 예술가이기를 거부하는 글쟁이 공선옥은 말한다.

"왜 사는가. 왜 돈을 버는가. 왜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키는가. 왜 정치를 하는가. 나는 왜 인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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