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mannerist > 매너놈이 중복서평 안 쓰는 이유, 그리고 첨언

다 까놓고 시작하자. iamX님과 매너놈은 ㅍ모 동호회에서 먼저 얼굴 마주한 동갑내기이며, 몇 번 마주하여 술잔 기울인 적은 있지만(물론 녀석은 안 기울였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녀석은 술, 거의 하지 않는다) 2003년 이후로는 본 적이 없다. 그간 주고받은 대화로 녀석의 세계관에 공감대를 느끼고 사석에서 면 트고 말 까고 몇 번 시덥지도 않은 농담 주고받은 관계로 온라인에서도 말 트고 산다. 2003년 이후에는 면전 마주한 일은 없지만 두 놈 다 인터넷 뒷조사엔 도가 틀 만큼 틀 인간들이라 그 이후 행적은 서로가 잘 알고 있으나 티내진 않는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매너놈이 남의 블로그에 처음 가서 남기는 댓글에 말 툭툭 트면서 이런 소리 하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움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iamX님은 "인터넷 서점의 중복서평을 고발한다 - 1"이란 포스팅을 지난 주 월요일에 쳤다. 본인이 꽤 오래전부터 공감했지만 이런저런 뒷감당과 설명이 귀찮아 감히 밖으로 내놓고 이야기 하지 못한 얘기였다. 해당 글의 원본 링크한다.

http://iamx.net/blog/377

해당 글 보시면 알겠지만, 매너놈은 이런 시니컬하고 버르장머리없는 댓글까지 달아놓았다.

mannerist 2007/01/09 11:10 L R X
호호호.

다시 한 번 불 좀 질러볼까. 이따 저녁때 링크 좀 따간다. 또 착한나라 사람들 징징대는 목소리가 귓속에 메아리치는구만.

("모처"에서 거의 매일같이 마주하는지라 인사는 생략;)

난 iamx님의 글을 읽으면서 이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한 대 쥐어박으면 될 걸 왜 이리 다구리를 쳐."

매너놈의 생각도 그렇다. iamx님의 비난의 정도가 좀 심하긴 하지만 그리 잘못된 생각은 아니다. 위서가님이 교보 블로그에서 제기하셨던 서평의 질과 동일 서평의 범람으로 인한 전체적 퇴화에 대해서는, 본인은 명확한 판단이 서지 않는 고로 제외한다(관심있는 분은 여기 가서 해당 포스팅 찾아보시길.http://booklog.kyobobook.co.kr/toktomish ). 오로지, 매너놈이 지적하고 싶은 건 '돈'문제다. 전제해야될 건, 매너놈의 관점에선 공적인 돈, 지가 노력으로 벌어들일 돈은 단돈 10원도 칼 같이 떨어지도록 깔끔을 떨어야지, 안그러면 사람 망가지는건 순식간이라는 거다.



1. 온라인 서점에 올리는 서평이 오로지 '책'만을 위한 존재인것이 가능한가?

결론부터. 불가능하다.

올리는 사람이야 그런 의도로 올린다고 할 지라도 포스팅해서 오케이 버튼을 클릭하는 순간, 그 텍스트 문자열은 필자의 의도대로 '좋으나 안 팔리는 책'의 홍보 역할을 하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터넷 서점의 컨텐츠로써 마케팅의 수단이 되고 동시에 각 인터넷 서점에서 실시하는 마일리지 혜택과 우수 서평 인센티브 부여의 잠정적 대상이 된다. 이런 마일리지는 대부분 금전적 인센티브의 성격을 지니므로 서평은 등록된 순간 필자의 선의와 상관없이 해당 개인에게 적든지 크든지, 이익이 돌아가게 된다. 그러한 혜택을 자신이 먼저 포기하지 않 한, 인터넷 서점에 서평을 올리는 행위는 최초 필자의 의도와 동시에 지대 추구 행위의 성격을 띄게 된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이런 혜택을 자발적으로 포기하지 않는 한, 인터넷 서점에 올리는 서평은 두 가지의 성격, 안 팔리나 좋은 책에 대한 홍보와 같은 최초 필자의 의도와 동시에, 해당 필자의 개인 이익 추구의 두 가지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게 된다.

둘 중 어느 것의 순기능 혹은 역기능이 클 것인가? 매너놈은 정확히 판단내리기는 힘들지만 둘 다 무시할 수준은 못된다고 본다.



2. 그렇다면 동일한 글로 서로 다른 두 군데에서 이익을 추구하는게 온당한 일인가?

찝찝한 일이다.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동일한 칼럼이 한겨레 조간 23면과 경향의 칼럼란에 실려있다고 상상을 해 보기 바란다. 땡스투 마일리지 적립금 부여는 금액이 작잖아, 이주의 서평에 당첨 안 되면 가능성에 그치는 거잖아. 그럴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익 추구의 가능성이란 점에서는 벗어나지 못한다. 이주의 서평에 당첨되지는 못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서평을 많이 올리는 사람에게 각 인터넷 서점은 어떤 형태를 띄든 혜택을 부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두 군데 인터넷 서점에 서평을 동시에 올리는 거, 한 번 쓴 거 가지고 울궈먹는 찝찝함 때문에, 그리고 알라딘에서 땡스투 받거나 이주의 마이리뷰 당첨된 녀석이 다른동네에서도 당첨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때문에, 그런 경우 매너놈이 예를 든 사례와 다를 게 뭔가 하는 생각에 그런 일은 안 하고 있다. 그래서 '여기말고 딴동네에 끄적'이 존재한다. 한 군데 리뷰로 썼으면 다른 동네에는 포스팅으로 갈음한다. 리뷰 당첨의 가능성을 없에기 위해서였다. 다른 데 써서 원고료를 받은 글도 마찬가지이다. 매너놈이 사보에 실은 글도 그래서 리뷰가 아니라 이 카테고리에 쓴다. 땡스투의 가능성에 대해 깜박하고 그 상품 링크는 걸어놨는데 이 글 마무리하자마자 끊을 생각이다. 이정도 깔끔함은 지켜야 매너놈은 그나마 어깨 피고 살 수 있다. 그리고 그당시에는 페이퍼에 대한 thanks to 제도가 내 기억엔 없었지 싶다.(이 관련 이야기는 아래에 계속)



3. 그럼 젠장, 내가 쓴 글 내 홈피에도 쓰지 말란 얘기냐?

무슨. 사적 이익 추구의 가능성이 없는 곳은 상관없다. 즉 자기 개인 홈피에 게시한 글을 인터넷 서점 1군데에 올리면 그닥 문제될 건 없다. 자기 개인 홈피에 부가가치를 부여하여 볼때마다 돈 받게하는 사람은 없을테니. 그렇다면 그 돈으로 이익을 추구하거나 그런 가능성이 있는 곳은 1곳인 거니까. 그러나 위에서 지적했던것처럼, 이미 한 번 댓가를 받았던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이익을, 혹은 그 가능성을 추구하는것은 문제 있다고 본다.



4. 그래서 첨언.

정군님의 글을 보고 좀 아쉬웠던 것은, 이런 측면은 그다지 고려하지 않고 '충성소비자론'으로 도맷금했다는 점. 여기에 '나는 좋은 책을 소개하기 위한 순수한 의도로만 올릴 뿐이다. 다른 측면은 고려하지 않는다.'라는 주장이라면, 매너놈은 더 붙일 말이 없다. 최소한의 전재, 동일 행위의 여러 성격을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 무슨 말을 더 붙이겠는가. 정군님의 심기가 좀 불편하리라 생각하지만, 그래서 아쉽다. 소개글에서 풍기는 이미지도 그렇고, 만만찮은 생각도 많이 접하셨으리라 짐작하지만, 다른 시각 - 물론 그게 대단히 과격한 언사로 겹겹이 둘러싸여있고, iamx님 본인도 분기탱천이 앞어 이 문제점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는 점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큰 관심 기울인 적이 없다면 쉽게 알아채긴 힘들겠지만 - 에 대한 고려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다.

앞에서 했던 이야기 다시 한 번.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인터넷 서점에 올리는 서평 행위가 필자의 좋은 의도와 인터넷 서점의 잇속이란 다중적 측면을 동시에 띄게 된다. 이 점에 있어서 떳떳하려면 적어도 한 군데에서 받는 혜택을 제외한 다른 인터넷 서점에서 받는 혜택을, 자신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선언을 하여,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이 자본주의 서점 공급 시스템이 부과한 다중적 측면의 한 쪽을 떨궈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매너놈이 허용할 수 있는 중복서평 등록은, 알라딘과 교보 양쪽에 서평을 올리면서 교보문고 서재 대문 혹은 자기소개에 '알라딘과 중복거제한 서평이며, 알라딘 서점의 이주의 마이리뷰 후보가 됨과 동시에 땡스투 가능성이 있는 포스팅으로도 등록되므로, 교보문고에서 부여되는 모든 인센티브는 사용할 예정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라고 쓰고 이를 지켜, 자신의 서평을 지대 추구의 ㅤㄷㅓㅈ에서 완전히 분리시키는 것이다. 이런 선언이 없거나, 혹은 두 군데 이상의 서점에서 동일한 서평으로 부과된 마일리지를 사용한다면, 금액의 작고 큼을 떠나 상기에 제기한 도덕적 책임에서 그리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5.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생각을 해야 해?

매너놈의 대답은 예. 이다. 동일한 행위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는 다면적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수긍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책 한 권 더 읽혀 뭘 할 것인가. 세상엔 책 많이 읽은 인간 말종, 널리고 널렸다. 시사저널을 이지경으로 만든 사태 최정점에 있는 이학수는 서양미술과 고흐에 전문가 뺨치는 감식안을 가졌으며, 눈에 뵈는 여자마다 껄떡대고 두번째 만난 여성에게 섹스가 어쩌구, 즐기는 관계가 서로 좋지 않겠냐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뒷담화 퍼뜨리는 것도 모자라, 도무지 매너놈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태어나서 매너놈의 배때지 쑤셔버리고 싶다는 말을 내뱉은 양반은 매너놈이 아는 남자 중 가장 소장 장서가 많은 남자였다.



6.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데?

정군님을 비롯한 중복 서평 거제하시는 분들 재고를 부탁드린다.
논점과는 조금 벗어나지만 매너놈의 잡문과 더불어, 이 글도 읽어보시길 권한다.
http://booklog.kyobobook.co.kr/toktomish/B2912824/36495

그리고, 저런 '치사한'혐의를 벗기 위해서라도, 한 군데를 제외한 나머지 인터넷 서점에서 부여되는 마일리지에 대해 사용하지 않는다는 선언을 하시는 게 어떨지 싶다. 이게 힘들다면 소극적으로라도, 다른 곳에서 부여받은 마일리지를 사용하지 않아 1년 혹은 특정 기간 후 자동 소멸되게 한다면, 그것도 차선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봐서 알라딘, 인터파크, 예스24, 리브로에 달린 모든 책의 독자리뷰 50%가 동일한 때를 - 지금 추세로 봐서 그리 멀지 않은듯함 - 상정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한 표, 그것이 안 팔리는 책 잘 팔리는 것과 별 상관관계 없을거란 데 다시 한 표 던진다.





iamx님께 넋두리_이건 오늘 ㅅ누나랑 전화하면서 도 한 얘긴데, 내가 먼저 치고 나간다고 얘기만 해 두고 밍기적거리다가 당신이 톤 조정 못한 글이 이쪽 풀려 당신에 대한 적잖은 조리돌림으로 풀리고 있는 것 같다. 씁쓸하면서도 미안하다. 월요일 집구석 제사 지내자마자 이십대 들어 처음 제대로 걸린 몸살감기에 2006년 실적 마감까지 겹쳐 미쳐 돌아갔다는 핑계가 절반, 그리고 이야기를 꺼내면 어떤 형태를 띄든 내가 심정적으로 비난할 수 없는 사람까지 대상에 들어간다는 점에서 감기 기운이 떨어진 어제 저녁 내가 망설였다는 점을 밝힌다. 그리고 더불어, 내가 월요일 댓글을 쓰면서 염두에 둔 글의 내용은, 당신의 해당 글을 링크시키고 비난의 수위가 지나친 점은 있지만 문제제기만은 타당하며, 그런고로 알라딘 운영진은 다시 한 번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정도의 내용으로, 한 두 페이지 정도에서 끊으려고 했었음. 저 댓글의 냉소적이고 오만방자한 어투와 매치가 안되는거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지만, 동갑내기 친구놈과 어깨 두드리면서 주고받는 말이 공식반응하고 같은게 이상한거지 뭐. 그렇다우.

살아있으면 뭐. 언젠가 또 만나겠지. '업계'사람들에게 안부나 전해주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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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일제와 해방공간                                                                                  

1) 독립투쟁의 대부, 홍암 나철
2) 김일성 항일투쟁의 진실
3) 만주의 친일파
4) 반민특위 - 승자와 패자
5) 53년만의 증언 친일경찰 노덕술
6) 분단의 기원
7) 비밀결사 - 백의사
8) 천황을 살려라 - 도쿄전범재판의 흑막
9) 제주 4.3

Ⅱ. 이승만 정권                                                                                         

ㄱ. 이승만정권하 비사제목

1) 여수 14연대 반란
2) 강요된 화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3) 이승만을 제거하라 - 에버레디 플랜
4) 조봉암과 진보당

ㄴ. 한국전쟁제목

1) 보도연맹 1 - 잊혀진 대학살
2) 보도연맹 2 - 산 자와 죽은 자
3) 노근리 사건의 진실
4) 00사단의 사라진 작전 명령서
5) 망각의 전쟁 - 황해도 신천 사건
6) 일급비밀! 미국의 세균전
7) 맥아더와 한국전쟁 1 - 태평양의 시저
8) 맥아더와 한국전쟁 2 - 또 하나의 전쟁
9) 6.25 일본 참전의 비밀
10) 중국의 6.25 참전
11) 한국전쟁과 포로 1 - 철조망 속의 지배자들
12) 한국전쟁과 포로 2 - 철조망 속의 전쟁
13) 한국전쟁과 포로 3 - 철조망 속의 안과 밖

Ⅲ.박정희 정권                                                                                         

ㄱ. 5.16과 박정희 정권의 출현

1) 장도영과 5.16
2) 민족일보와 조용수
3) 박정희와 레드 콤플렉스 - 황태성 간첩사건
4) 3억불의 비밀 - 한일협정

ㄴ. 박정희 정권의 남북관계, 한미관계 제목

1) 실미도 특수부대
2) 푸에블로 나포 사건
3) 1972년 7월 4일 박정희와 김정일
4) 8.18 판문점 도끼 사건
5) 섹스동맹, 기지촌 정화운동
6) 박동선과 코리아게이트
7) 박정희와 핵개발

ㄷ. 박정희 정권하 권력 비사

1) KT 공작의 실체, 김대중 납치사건
2) 땅에 묻은 스캔들, 정인숙 사건
3) 20년의 침묵 - 김형욱 실종 사건
4) 79년 10월, 김재규는 왜 쏘았는가
5) 육영수와 문세광 1 - 중앙정보부는....
6) 육영수와 문세광 2 - 문세광을 이용하라
7) 10.26, 궁정동 사람들

ㄹ. 박정희 정권하 간첩 사건

1) 간첩? 이수근
2) 끝나지않은 동백림 사건
3) 잊혀진 죽음들 - 인혁당 사건
4) 또 하나의 분단 -  재일동포
5) 반한 베트콩 , 한민통의 진실

ㅁ. 박정희 정권하 인권과 사회상 제목

1) 베트남전의 포로/실종자들
2)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병장
3) 전향공작과 양심의 자유
4)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 전태일과 그후
5) 마녀사냥- 도시산업선교회
6) 자유언론실천선언
7) 금기의 시대- 건전가요와 금지곡
8) 투기의 뿌리, 강남공화국
9) 8인의 사형수와 푸른 눈의 투사들
10) 무등산 타잔, 박흥숙

Ⅳ. 전두환 정권                                                                                         

ㄱ. 5.18 전두환 정권의 출발

1) 버림받은 희생 삼청교육대
2) 정화작전 삼청계획 5호의 진실
3) 45계획 10.27 법란의 진실
4) 인권의 무덤, 청송 감호소
5) 언론통폐합과 언론인강제해직
6) 녹화사업의 희생자들 - 군대가서 죽은 아들아
7) 일본 커넥션, 쿠데타 정권과 '친한파'
8) 허문도와 국풍 81
9) 스포츠로 지배하라!  5공 3S 정책

ㄴ. 군부정권과 민중의 저항

1) 어둠속의 외침 -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
2) 73인의 외침 - 미문화원점거 농성사건
3) 조국은 나를 스파이라 불렀다 - 구미유학....
4) 200억톤 물폭탄의 진실 - 금강산댐 사건
5) 강요된 해방구 - 86년 건국대점거농성 사건
6) 6.29의 진실

Ⅴ. 노태우 정권                                                                                         

1) 91년 5월 죽음의 배후
2) 원혼의 절규, 박창수 의문사

Ⅵ. 김영삼 정권                                                                                         

1) 94년 한반도 전쟁위기
2) 94년 그해 여름 - 조문파동과 공안정국
3) 한국 IMF로 가다
4) 나는 프락치였다

Ⅶ. 김대중 정권                                                                                         

1) 서해교전과 NLL
2) '신의 아들'과의 전쟁

Ⅷ. 통사적 아이템                                                                                      

1) USFK, 주한 미군
2) 동맹의 거울, SOFA
3) 미국의 검은 방패 미사일 디펜스
4) 한반도 전쟁위기 1994-
5) 국가보안법1 -반공의 총과 칼
6) 국가보안법2 -자유민주주의를 위하여
7) 남북교류의 선행자들
8) 분단의 너울, 연좌제
9) 고문, 끝나지 않은 전쟁
10) 북파공작원 1 - 조국은 우리를 버렸다
11) 북파공작원 2 - 우리는 인간이 아니었다
12) 재개발의 그늘 - 폭력 철거
13) 한국의 진보 1 - 공장으로 간 지식인들
14) 한국의 진보 2 - 인민노련 혁명을 꿈꾸다
15) 한국의 진보 3 - 혁명의 퇴장, 떠난 자와....
16) 일본의 핵 개발
17) 6.15 선언과 북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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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ype - Soulfire - Maxi Single
P-type 노래 / Kakao Entertainment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 처음 힙합 음악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2003년이었습니다. 음악을 넓게 듣지 않았기 때문에 "가요는 식상해." 라는 선입견이 무척 강했고, 의도적으로 다른 음악을 찾았던 것 같습니다. 이미 충분히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다이나믹 듀오' 앨범을 들으면서, 소재의 다양함, 가사의 유쾌함, 라임(rhyme, 운율)의 매력을 잔뜩 느꼈습니다. 그리고, 좀 더 욕심을 내어 앨범을 찾아듣기 시작했죠. (오늘날 한국 힙합음악에 큰 기여를 했다고 하는) 하이텔 힙합음악 동호회에서 정리한 힙합의 역사와 문화를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욕심 같아서는 저 멀리 미국땅의 힙합 1세대 앨범까지 모조리 구해 들어보고 싶었지만, 그저 귀에 익은 한국 힙합 앨범을 손에 잡히는대로 듣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 P-type 앨범을 듣게 된 것이 그 와중이었습니다. 그저 검색결과대로 앨범을 구해 들었을 뿐이죠. 제가 P-type 1집 앨범 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곳은 「돈키호테」 가 아니라 「힙합다운 힙합」 이었습니다. 이 곡은 아카펠라로 시작해 한 두 소절을 부르다가 비트가 끼어들어가는 형식을 띄고 있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1집에서 그가 직간접적으로 강조하는 얘기가 바로, "랩은 또 다른 드럼이다." 라는 것인데, 문장 자체를 이해하는 것과 경험을 통해 새기는 것은 충분히 다른 행위이니까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그런 그의 얘기들이 가장 쉽게 표현된 곡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힙합플라야의 어떤 회원은 그를 '마스터(master, 장인)' 라고 부를 정도였으니, 정말 대단한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죠.

- 그의 앨범을 기다려온 분들이 무척이나 많았던 만큼, 싱글 앨범인 에 아쉬움을 표현하는 분들도 많으실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충분히 훌륭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크게 「돈키호테 리믹스(Remix, 변환곡)」 과 「Soulfire」, 「부메랑」 이라는 새 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나머지 7곡 중 인트로(Intro)를 제외하면 6곡인데요, 그 6곡은 각 곡의 연주 부분과 노래 부분을 분리시켜 담았습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소위 '재탕' 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또 실제로 그러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노래 부분은 충분히 듣고 또 들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일종의, 아름다운 건물의 건축도면을 보는 듯한 기분이거든요.

02. Soulfire

"모두 2004년의 혁명을 기억해? 돈키호테. 그 향기 여태까지 남아있지 꽃이 피었겠지."
"판에 들어온지 불과 몇년 몇년 사이에 남은건 오직 형제 몇명 몇명들이 몇년 뒤에 몇명으로 바뀔지.."
"당시엔 방식 따윈 관심 밖이었지. 매일 잠깐씩 혹은 한 시간씩 자신과 씨름하듯 가사를 남겼지."


2004년 돈키호테를 발표한 후일담이자, 1집 에서 간략하게 다루어졌던 개인의 역사에 대한 얘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가 훌륭한 라임을 적어내는 만큼 그의 작업방식이 궁금하기 마련인데요, 「Soulfire」에서는 사건과 느낌 중심으로 다루고 있지만, 1집 「So U Wanna be Hardcore」에 좀 더 구체적인 그의 음악관이 담겨있습니다.

03. 부메랑 (feat. Red Roc)

"나와 같은 세대들은 다 기억해. 격해진 편견은 힙합을 지겹게 공격했지 겪게 됐던 그 많은 아픔을 가볍게 봐선 안돼 그땐 모두 힘겹게"
"명심해 유행은 언젠가 다시 변해. 들어봐 꽃은 펴.."
"Jordan과 Barkley는 코트를 떠났어. 2Pac과 Big Poopa도 힙합판을 떠났어."


2장의 앨범을 냈을 뿐이지만,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오랫동안 많은 활동을 해왔던 힙합음악가로서 오늘날 힙합음악계의 앞과 뒤를 넓게 조망하고 있습니다. 편견과 비방 속에서 꾸준히 활동해 온 어제와 힙합이 하나의 영역을 만들어 낸 오늘을 얘기하며, 유행에 치우치기 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질 기회를 준비하며 자신만의 음악을 꾸준히 해나가자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물론, 마지막 가사인 "무거운 달력을 넘기고" 에서는 노장 음악가의 씁슬함이 녹아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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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에서는 '20세기를 뒤흔든 사건' 이라는 특집 다큐멘터리를 방영해오고 있는데요, (1) 난징 대학살 (2) 러시아 혁명 (3) 중국 혁명 (4) 1차 2차 세계대전 (5) 한국 전쟁 (6) 베트남 전쟁 (7) 쿠바 혁명 (8) 냉전의 전사들 (9) 냉전의 종식 (10) 20세기의 회고 까지 총 10편, 각각 5부씩 전부 50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는 적지않은 분량의 기획입니다. 2006년 12월에 난징 대학살(1937년)이 방영된 이후, 현재까지 러시아 혁명(1917년)까지 방영된 상태인데, 한 편을 촬영하는데 적어도 2~3개월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보아 50부작이 마무리되려면, 올해를 훌쩍 넘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여튼 이번 MBC 특집 다큐멘터리 5부작 <러시아 혁명>은 국내 최초로 러시아 혁명을 다루고 있다는 점 만으로도 충분한 의의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제작팀은 홈페이지를 통해서 밝힌 기획의도를 통해 "러시아 혁명은 한편으로는 20세기 현대사 이해의 열쇠를 제공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 한국 사회가 떠안고 있는 ‘이념 갈등’과 ‘분단’이라는 난제를 반추해 볼 기회를 제공하고 나아가 문제의 해법을 암시해줄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배우는 근대사 중 정치분야는 시민혁명, 경제분야는 산업혁명 부터 시작이죠. 오늘날 보통선거의 상식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4% 선거권(영국)으로 상징되는 시민혁명의 모순, 아동 노동과 빈민굴로 상징되는 산업혁명의 모순이 폭발하는 것이 바로 세계대전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모순을 해결하고자 했던 또 하나의 거대한 축이 새로운 대안의 모색, 즉 사회주의였다는 것은 공정하게 평가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살펴보더라도, 사회주의 사상과 사회주의 혁명은 전체적인 흐름에서는 제외된 채, 그저 '1917년에 러시아에서 일어난 사건' 으로 되어있을 뿐입니다. - 이것이 사회주의 사상과 운동에 대한 악의적인 왜곡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증은 뒤로 하고서라도, 이러한 방식으로는 1차 2차 세계대전의 전개와 그 이후 냉전 체제의 성립을 개연성 있게 설명할 수 없다고 보여집니다. 그런 점에서, 제작팀의 기획의도를 높이 살 만 합니다.

- 한국의 역사가 그 한복판에 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전후로 광범위하게 형성되고 또 재편되는 식민지,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의 성격은 전쟁 자체 보다 전후 회의(베르사이유 회의)에서 보다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전후 회의에서 한국을 비롯한 식민지 국가들의 독립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종전 직전에 성립된 소비에트 러시아가 이러한 식민지 국가들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는 점이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냉전 체제 성립의 배경이 됩니다. 이것에 대한 직접적이고 정확한 언급 없이, 1920년대 이후 조선의 독립운동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러시아 혁명> 역시 사건 자체의 소개와 영향에 큰 비중을 두다보니, 한국 역사와의 연관과 영향에 대해서는 (기획의도에서 밝혀진 포부에 비하면) 다소 소홀하게 다룬 측면이 있습니다. 소비에트 러시아가 조선의 독립운동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는 사실이나 소비에트 대회에 한국 대표가 참여했다는 사실, 스탈린 숙청기나 중앙아시아 대이주 때에 많은 한국인 공산주의자들도 숙청당했다는 사실 정도가 나열적으로 언급되었다는 느낌입니다.

- 내용은 크게 5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1부는 [~1917.2] 로서 "왜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게 되었는가" 라는 상황적 배경과 혁명의 시작을 다루고 있습니다. 2부는 [1917.2~1917.10] 로서 2월 혁명 이후 부터 10월 혁명까지의 상황을 다루고 있습니다. 혁명은 차르(황제)가 통치하는 러시아에서 일어났고, 2월 혁명의 결과는 가진 자들만의 의회, 자본주의의 본격적인 발전이라는 서구 시민혁명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2월 혁명 직후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다루고 있습니다. 연이어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 (2월 혁명의 결과였던) 의회를 무시하고 소비에트 체제, 정부를 수립합니다.3부는 [1917.10~] 로서 소비에트 정부 수립 직후  사회 경제적 주요 과제(전쟁, 토지, 공업발전) 에 대한 소비에트 정부의 대처를 다루고 있고, 4부는 내전과 스탈린 혁명을 다루고 있습니다. 마지막 5부는 1930년대 스탈린 독재 형성기에 이루어진 온갖 숙청과 내부적 갈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소비에트 혁명은 결국 스탈린 독재 체제로 귀결되었다." 라는 것이 제작팀의 결론이었죠. ^^

- 방송사 일정 및 프로그램의 영향을 받았을 제작진의 노고를 백번 이해하면서도, 순수하게 작품 자체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자면, 4부에 등장하는 내전이 3부로 들어갔다면 좀 더 매끄러운 전개가 되었을 것이라는 점과, 5부가 1~4부의 비중에 밀려 1930년대~1990년대까지를 광범위하게 다루면서 마무리 역할을 제대로 하기에는 사실상 역부족이 아니었나 하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기획 의도 대로라면, 스탈린 독재 체제로의 귀결에서 마침표를 찍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한국 사회주의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1980년대 후반까지는 폭넓게 조명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 가장 불만이었던 부분은, 스탈린 독재 체제가 1929년 경제대공황 이후 나치즘과 파시즘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인데, 이는 다소 관념적인 해석이라고 생각됩니다. 더구나 스탈린 독재 체제의 성립 과정을 충분히 다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구분없이 '볼셰비즘' 이라고 일원화시킨 것은 잘못입니다. 오히려, 볼셰비즘이 스탈린 독재 과정에서 해체되었고, 1929년 경제대공황 이후 전체주의라는 하나의 맥락에서 소련,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을 동일하게 다루는 방식이 더 올바르지 않을까요?

-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파편적으로 보아왔던 러시아 혁명에 대해 좀 더 개연성있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히, 이전까지 계급 투쟁의 관점에서만 조명해왔던 내전과 관련해서, 연합국의 일원으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러시아가 사회주의 혁명 직후 나머지 연합국 - 영국, 프랑스, 일본, 미국 - 과의 갈등을 빚을 수 밖에 없었다는 상황적 배경이나, 스탈린 독재의 관점에서만 조명해왔던 1930년대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역시 2차 세계대전 직전이라는 상황적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한국인의 이해관계에서만 바라본다면,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서 자본주의 국가들에 의해서 독립을 외면받고, 소비에트 러시아의 지원에 기대 직간접적인 도움을 받으며 내전에도 적군의 일원으로 참여하지만, 스탈린 독재 이후에 다시 한번 러시아에 의해서도 외면받는 - 강제이주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상기한다면 외면 정도가 아니지만 - 일련의 흐름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오로지 사회주의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20세기를 뒤흔든 역사적 사건이라는 큰 주제의 일부로 다루어졌기 때문에, 주제와 분량 면에서 큰 제약을 받았을 것입니다. 다만, 이번 다큐멘터리가 하나의 시작이라면, 생략되었던 몇가지 세부적인 측면을 제기하는 것도 크게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아래에 메모해둡니다. (제가 정리하고자 하는 내용들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MBC 특집 다큐멘터리 제작팀이 더 좋은 다큐멘터리를 많이 제작해 줄 것을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1. 제국주의 차르 러시아, 사회주의 사상의 시작과 러시아로의 유입, 차르 러시아의 대응, 1905년 혁명에서의 가퐁 신부의 역할.

2. 소비에트 러시아의 민족 정책의 변화 (소비에트 러시아 - 스탈린 독재 체제 - 소련 해체 이후까지)

3. 2차 세계대전에서의 소련, 동유럽 및 한반도 주변 국가의 수립과 소련식 경제 발전 (스탈린 독재 체제의 성립을 기점으로, '소비에트 러시아' 와 '소련' 을 구분하고자 합니다.)

4. 1970년대 이후 소련식 경제 발전의 한계와 모순, 소련 및 동유럽 국가 지배층의 자구책과 아래로부터의 저항

5. 소련 공식 해체의 일련의 과정, 이후의 사회 경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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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7-01-13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셨군요.^^ 저도 방학이 끝나기 전에 한번 봐야하는데...

비로그인 2007-01-13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b님, 처음 인사드립니다. 이 좋은 프로를 놓치고 있었습니다. 꼭 찾아서 봐야겠어요. 퍼갈게요. 고맙습니다.^^

sb 2007-01-13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아직 못보셨군요. 좋은 비평 기대하겠습니다.
[FTA반대마음행로님] 저도 반갑습니다. 다큐멘터리 채널이라고는 MBC가 고작입니다만, 충분히 좋은 다큐멘터리들이 많군요. 좋은 프로그램 있으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 국사 교과서를 꽤나 증오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책상과 의자가 빽빽하게 들어찬 고등학교 교실에 앉아있을 때가 그러했고, 계급투쟁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세상을 새로이 바라보던 시절이 그러했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이제 교과서도 하나의 책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것도 다른 책과 하나 다를 바 없이, 필자 집단과 필자 집단의 관점이 녹아있는 책이라는 것이죠. 교과서에 대한 판단이 변한 것이 아니라, 교과서를 바라보는 감정의 응어리가 풀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재미있어졌습니다.

- 다소 딱딱한 필체이지만, 교과서도 나름의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읽기는 어렵지만, 찾기 쉽게 쓰여졌다고 할까요. 정치, 경제, 사회, 문화로 나뉘어 쓰여져있는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는, 이야기를 포기하는 대신 전체를 조망하는 편리함을 택한 것이죠. 하지만, 전자와 후자는 택일의 문제가 아니라는데에 아쉬움이 있습니다. 오히려 전후관계라고 생각해요. 분석과 종합이라는 방식은, 어디까지나 분석되고 종합될 대상이 필요한데 그것이 이야기이니까요. 초등학교, 중학교 교과과정에서 충분히 이야기를 전달한 다음이라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이미 여러차례 국사 교과서를 공부한 스물여섯 한국청년이 이야기에 목말라 대하소설이며 역사영화 데이터베이스를 뒤적이는 꼴이란.

- 영화의 배경이 되는 20세기 초반은, 한국 근현대사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서 자발적으로 - 엄밀하게 따져 자발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과 달리, 조선과 청은 그렇지 못했다는 점에서 서로 비슷합니다. 그 결과는, 무력을 앞세운 침략이었고 지배와 통치였습니다. 그리고, 강요된 변화가 가져온 것은 - 변화의 방향이 옳고 그름을 떠나 - 가치관과 사회의 급격한 변화였죠. 이 점에서 조선과 청이 나아갈 길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1919년 3/1 만세운동이 일어나던 해에 역시 중국에서 5/4 운동이 일어나고, 이 흐름이 1931년 만주사변으로 인해 한중 독립군의 연합작전으로 모아졌다고 본다면 너무 지나친 일반화일런지요. 하지만, 아무리 주인공이 조선이고 대한제국이며 한국인 국사 교과서라고 해도, 중국은 조연으로서의 자리매김도 확실하게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종종 국제정세, 대외정세로 다루어지고 있긴 하지만, 마치 일인다역을 하는 이름 없는 조연배우 마냥 느껴진다면 좀 지나친 표현일까요.

- <마지막 황제>는 중국의 마지막 왕조 '청' 의 황제 '푸이' (이름과 지명은 원어 발음 그대로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의 일생을 다루고 있습니다. 국사 교과서에는 '만주국의 허수아비 국왕' 이라고 짧게 다루어졌던 그였죠. 그의 일생을 연기하는 배우가 유아시절, 청소년 시절, 장년기까지 모두 세명이라는 점이 상징적입니다. 유아시절의 그는 찬란한 중국왕조의 황제(1908년 즉위)였고, 청소년 시절(1911년 신해혁명)의 그는 자금성만의 황제였으며, 장년기(1924년 일본공사관 피신)의 그는 그저 명망있는 중국인일 뿐이었습니다. 새로운 시대는 지나간 시대의 최정점에 서있던 이를 가장 먼저 스치고 지나갔으며, 그만큼 가장 멀리 멀어져갔던 것이죠. 황제 푸이가 1911년 신해혁명과 함께 해체된다면, 인간 푸이의 해체가 1924년 군벌들 사이의 펑톈즈리 전쟁과 함께 자금성을 나오면서 부터 시작됩니다. 그는 혼란스러운 국내 상황에서 일본공사관을 선택한 것이죠. 이러한 그의 선택은, 1931년 만주사변 이 후, 만주국 황제로까지 이어지면서 그를 전쟁범죄자로 만들게 됩니다. 그는 1945년 일본 패전 이후 소련군에게 체포되어 1959년 특사로 풀려나올 때 까지, 오랜 감옥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문화대혁명이 일어나던 1967년 사망합니다. 전쟁범죄자인 자신을 심문하던 공산당의 간부가 죄인으로 몰려 뭇매를 맞던 시대였습니다.

- 영화를 제작한 이탈리아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훗날 발간된 푸이의 자서전 <나의 전반생>을 원작으로 했다고 합니다. 그는

- 7살의 나이에 황제에 오른 푸이는 수많은 환관과 시종 시녀 요리사들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넓고 높은 자금성의 벽에 둘러쌓여 있었습니다. 이내 나갈 수 없도록 된 자금성의 벽은, 그에게 담장 이상의 것이었겠죠. 그는 푸이이기 이전에, 황제 푸이였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인생을 비극적으로 마감시킨 일본공사관으로의 선택 역시, '황제 푸이'의 결정이었습니다.

- 동정적인 시선: 어린 나이에 황제가 되었다, 자금성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럴 자유를 허락받지 못했다, 1924년 펑톈즈리 전쟁 이후 국민당의 종묘 도굴, 내내 멍한 표정, 일본 내무대신들의 농간, 등 

- 비판적인 시선: 권력에 집착하는 그의 선택, 신발끈 조차 매지 않음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거지?" 라며 환관들에게 목욕물을 뿌려대던 유아시절 이후, 그에게서 웃음은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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