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우리들의 행복한 공지영

잡일들을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까 생각하던 중에 장문의 인터뷰 기사가 눈에 띄었다. 한국일보에 '100℃ 인터뷰' 코너가 새로 생긴 모양인데(원래 있었나?) 소설가 공지영과의 아주 '뜨거운' 인터뷰를 싣고 있다(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701/h2007010119334584290.htm). 아침신문에 게재될 듯한데, 이만한 분량이 전재된다는 게 일단 놀랍다. 지난해 최고 베스트셀러 작가인 만큼 안티독자들도 많이 거느리고 있는 '문제적인' 작가 공지영의 세계를 들여다 보는 데 아주 요긴한 '창' 구실을 할 듯해서 옮겨놓는다(강조는 나의 것이다). 기사 원문은 아직 정리가 덜 된 상태인 듯한데, 부분적으로 발췌하도록 한다(어쩐지 너무 길다 싶었다). 아무래도 아침에 기사를 읽고서 다시 정리해야겠다... 

유치원 방학중인 아이를 앞동 외갓집에 데려다주고 학교에 나가는 대신에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깎았다. 그리고는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서 한국일보를 사들고 왔다(스포츠와 경제신문 말고는 한국일보만 달랑 한 부가 남아 있었다). 역시나 파격적인 분량의 인터뷰가 양면에 게재돼 있었는데, 다시 역시나 전문이 전재된 건 아니었다. 나머지는 한국아이닷컴을 참조하라고 돼 있는데, 인터넷주소는 앞에 적어놓았다. 온라인상의 인터뷰에는 중복되는 대목들이 많아서 일단 오프라인의 기사를 바탕으로 정리를 해두도록 한다. 정초부터 왜 이런 일을? 다들 '행복'을 바라는 신년이므로 작년에 가장 행복했던 작가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어보는 것도 무용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또 어찌 알겠는가? 그 비결이라도 전수받을 수 있을지...

한국일보(07. 01. 02) 소설가 공지영

이 만남은 뜨겁다. 덕담이나 입에 발린 말은 사양한다. 까칠하게 묻고 집요하게 말꼬리 잡는다. 새해를 맞아 한국일보가 논란과 화제의 중심에 서있는 사회 각계 인물들을 찾아가 그들의 생생한 모습을 파헤치는 다자(多者) 입체 인터뷰를 선보인다. 한 무리의 기자들이 치열하게 묻고 따지는 반론과 해명의 이 펄펄 끓는 현장으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편집자주

아주 좋거나 아주 싫거나! 그 중간은 없다.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으로 신드롬을 일으킨 소설가 공지영(44)씨. 어지간히 잘 나가는 작가도 1만부를 넘기기 어려운 문학의 장기 침체 속에서 홀로 78만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린 그에게는 작품 외에도 늘 다양한 이미지가 따라붙는다. 운동권, 페미니스트, 미모, 세 번의 이혼, 성이 다른 세 아이를 기르는 '싱글맘'…. 공지영이라는 이름과 함께 떠오르는 저 단어들로 인해 오해와 편견의 한 가운데 서 있는 그를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네 명이 만났다. 지난해 12월28일 오후 6시, 홍대앞 한 퓨전식당에서 시작된 이 까칠하고도 뜨거운 인터뷰는 술잔을 기울이며 자정을 넘겨서까지 계속됐다.

_<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덕분에 지난 한 해가 ‘나의 행복한 시간’이었겠어요.

“네. 당분간 생활비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서 그게 제일 행복하고요. ‘사형제 폐지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는 독자들의 반응이 작가로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어요.

_불편한 반응들도 있지 않아요?

“많죠. 반은 그렇다고 보면 돼요. 참 이상한 게 그런 리뷰들은 대개 ‘나는 공지영이 너무 싫다’로 시작하는데 끝에 가면 ‘그런데 책은 다 읽었다’ 이렇게 끝나.(웃음) 이게 되게 이상한 현상인 거 같아요. 처음엔 ‘왜 나를 미워하지? 싫으면 안 읽으면 되지 왜 다 읽고, 여기다 리뷰까지 달면서 날 미워할까’ 생각했는데, 뭐 어차피 대중들의 시각이란 게 완벽하게 일치하는 게 이상한 거죠. 어쨌든 저야 팔아주시니까 고맙죠. "

_78만부나 팔았으면 죽을 때까지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겨우 생활비 걱정 면한 건가요.

“아니, 얼마 전까지 생활비 걱정 했다니까 왜 그래요.(웃음) 막내 대학까지 보낼 수 있을까 생각하며 밤마다 울었다니까요.”

_한 달 수입이 30만~50만원도 안 되는 작가들도 많은데 그렇게 말하면 다른 작가들 맥빠지겠어요.

“맞아요. 좀 그렇긴 하죠. 하지만 다 사연이 있으니까 걱정이 된다는 거죠. 돈이라는 게 번대로 착착 쌓일 수도 없는 거고….”

_공지영 소설은 20대 여성이 가장 많이 읽잖아요. 젊은 세대와 통하는 게 있다는 얘긴데.

대학 때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이 ‘중학교 때 전기가 처음 들어와서 감전된 적 있다’ 이런 얘기들을 막 하는데 너무 놀랐어요. 전 공선옥씨의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 살>을 읽고 도무지 이해가 안 갔어요. ‘왜 대학까지 중퇴한 여자가 이런 데 가서 이 고생을 하지? 취직을 하든가 장사라도 하지’ 이해가 안 가요. 나중에 느꼈는데 60년대산들은 지역이 불균형하게 개발될 때다 보니까 지역별로 세대차가 막 나더라구요.

저는 우연히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경제개발의 혜택을 제일 먼저 입은 세대로 자라나서 초등학교 2학년 때 아파트로 이사를 갔어요. 바로 롤러스케이트 타고, 자전거를 탔죠. 당연히 TV도 봤고. 어떤 의미에서는 70년대 중반산들과 같은 경험을 가진 거예요. 아파트키드라는 거, 대도시적 감수성 가진 거. 문학소녀일 때는 대도시에 태어난 게 너무 창피했었어요. 그때 문학은 다 농촌정서 얘기하는데 나는 도저히 그게 무슨 얘긴지도 모르겠고, 그러면서 열등감을 느꼈는데, 시대가 변하면서 오히려 제 정서가 더 보편적이 된 거 같아요. 제가 잘 해서 선취한 것이 아니라 제가 자라온 환경이 그렇게 만든 거죠.”

_공지영씨의 좌파적 가치가 젊은 세대와 통하는 것 아닐까요.

“전 제가 좌파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어느날 토론에 나갔다가 충격을 받았어요. 저는 낙태에 관해 기본적으로 반대입장 취하거든요. 그런데 ‘넌 좌파가 어떻게 낙태를 반대하느냐, 더군다나 페미니스트인데’ 하면서 굉장히 공격을 받았어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내가 정치적인 면에서만 좌파고 나머진 굉장히 보수적이더라구요.”

_예를 들면요?

“결혼 같은 거. 이거 웃긴 얘기지만, 남자와 여자는 꼭 결혼을 해야한다든가, 하하. 사람들이 왜 자꾸 결혼을 하냐고 물어서 제가 ‘아니, 사랑하면 결혼해야 되는 거 아냐?’ 그랬거든요. 물론 요즘 좀 생각이 바뀌었지만. 아무튼 그런 면에서 되게 보수적인데, 저는 사안에 따라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게 훨씬 더 고뇌에 차고 가치 있는 삶인 것 같아요. 좌파, 우파로 나누면 제가 어느 쪽인지 모르겠고, 최소한 상식과 합리가 있는 길을 가고 싶어요.”(*어느 쪽인지 모르는 건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굴곡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생활우파의 삶을 살았고 관념적으로 자신이 좌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_운동은 왜 했어요?

“나 진~짜 운동하기 싫었어요. 안 하려고 엄청 애썼고. 그런데 왜 하필 나랑 친한 애들은 다 운동하고, 잡혀가고, 죽고 그러는지. 난 무섭고 귀찮고 싫고 피하고 싶었는데 운동하는 사람들이 너무 예쁜 거예요. 내가 생각하는 인간의 이상을 가장 근접해 실현하고 있었어요. 사람을 좋아하다 보니 이쪽으로 따라갔죠.

또 하나는 안 하고 있으면 너무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차라리 내가 가서 괴로움 당하는 게 낫지. 멀리서 남들 괴로워하는 거 보면서 마음 괴로운 거보다 몸으로 때우는 게 덜 괴로웠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거예요. 그것이 오늘날의 절 만드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죠. 만약 이 과정이 없었다면 저는 정말로 재수없는 부르주아 여성이 됐을 거예요. 전두환이라는 사람이 내 인생에 기여한 바가 참 많아요. 나를 정말 사람 만들어줬죠.

_사실 공지영 소설이 문체가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미학적으로 뛰어난 것도 아니잖아요. 서사가 강해서 번역해도 잃을 게 하나도 없는데.

“전 소설을 대하는 입장이 동시대의 다른 문인들과 달라요. 그래서 이런 삐그덕거리는 일들이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해요. 저는 문체가 아름답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요. 그게 뭐예요, 도대체? 아름다운 단어를 써야 아름다운 문체인가요?

저는 처음부터 미사여구 쓰지 않고, 화려한 문체보다는 단문으로 이해하기 쉽게 쓰려고 했어요. 소설은 캐릭터와 상황의 문제예요. 중요한 건 캐릭터를 어떻게 설정하고, 그 캐릭터를 어떤 상황에 배치하는가죠. 사람들은 <춘향전>이나 <베니스의 상인>을 원전으로 읽지 않아도 춘향이와 샤일록이라는 캐릭터는 알아요. 제가 추구한 것은 삶의 본질, 인간성, 시대의 본질을 전달하는 거예요. 그래서 문체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 들었을 때 굉장히 당황했어요. 서사가 강한 게 뭘 그렇게 잘못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나는 소설이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항상 보면 ‘극단적인 캐릭터다’, ‘문체가 너무나 거칠다’ 이런 평들을 하니까. 왜 내가 추구하는 것들은 하나도 얘기 안 하죠?"

_<춘향전>이나 셰익스피어의 소설미학과는 다른 시대잖아요. 오히려 공지영의 소설이 낡았다는 얘기 아닌가요.

“문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서사의 회복과 캐릭터의 독특성이라는 정공법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현대 문학 중 가장 높이 평가하는 게 <해리 포터>인데, 이건 19, 20세기 정통 영국소설의 문법이거든요. 그 소설은 그렇게 책을 읽지 않는 애들로 하여금 책을 잡게 만들었어요. 서운할 때 드는 생각은 저라는 사람이 2000년대 대한민국에 있는 3만명의 소설가 중 하나인데 왜 나에게 이 모든 것을 원하냐는 거예요. 우리가 최민식 송강호 같은 배우들한테 ‘요즘 영화배우답지 않게 너희는 왜 그렇게 얼굴이 크냐’ 안 그러잖아요. 이나영, 강동원 같은 배우는 연기는 좀 못하지만 클로즈업 하면 우리가 즐겁고. 그런 게 다채로운 영화를 만들어가듯이 한국문학도 다양성 속에서 크게 아울러야 해요.”

_다양하게 아우를 수 있는 시장상황이면 좋지만 혼자서 책을 다 팔고 계시잖아요.

“다양하게 아우르지 않으니까 독자들이 자꾸 떨어져나가는지도 모르죠. 평론가들이 왜 그걸 포용을 못하는지, 포용의 문화가 좀 아쉬워요.”

_평론가들로부터 외면 받으면서 “넌 네 길을 가라, 난 내 길을 간다” 식이 돼버렸는데.

“그럼 내가 어떡해요. 그 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할 수도 없는 거고. 상도 안 주는데 내가 왜 해.(웃음) 사실 보상이란 게 꼭 평론가들만이 주는 건 아니고, 제가 독자들한테 물질적이거나 심리적으로 보상받기 때문에 상관 없어요. ‘나는 왜 문학적으로 평가 받지 못하는 거야’ 그런 생각도 별로 안 하고. 이 시대의 평론가들, 상을 주는 심사위원들이 모든 문학을 끝까지 쥐고 있고, 앞으로도 쥘 수 있을지…, 아, 이렇게 자꾸 말하지 말라 그랬는데, 사람들이.(일동 웃음) 이러면 점점 멀어져서 돌이킬 수 없다는데.”

_상하고 인연은 진짜 없죠?

“세 번이면 됐죠. 이런 말해서 좀 그렇지만, 솔직히 이상, 동인 별로 존경하지도 않는데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받고 싶지 않아요.

_한국일보문학상이면?

“그건 괜찮아요. 가치중립적이니까. 근데 안 주잖아.”(웃음)

_얼마 전 라디오 설문조사에서 미녀배우들과 함께 ‘20대 여성이 뽑은 닮고 싶은 여성’ 4위에 올랐어요.

“하하하. 1위가 김혜수, 2위가 고현정, 3위가 이나영, 5위가 손예진이었어요. 내가 그거 다 외워. 황당했지만 기분은 좋았어요. 내가 올 초에 3번 이혼한 사실을 밝힐 때까지 어려운 과정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제 남의 반응은 신경 쓰지 않겠다는 결심이었는데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아, 이 죄인을’이었고. 난 나대로 불행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닮고 싶다니. 세대가 바뀌긴 바뀌었나 봐요.”

_남성잡지 <에스콰이어>가 뽑은 ‘남성들이 가장 만나고 싶은 작가’ 1위에도 올랐어요.

“와. 그러니까 자꾸 광고가 들어와서 날 힘들게 하는구나.”

_광고가 들어와요?

“커피 광고도 들어오고, 소주, 아파트 광고도 들어왔는데 다 거절했어요. ‘묶어서 한 10억 부르고 한 십년 쉬어?’ 하는 그런 생각도 했는데요(웃음). 예전에 돈이 너무 없을 때였는데, 자동차 지면 광고가 들어온 적이 있어요. 너무 유혹적이었죠. 하지만 내가 자본주의도 비판해야 하는데, 거기 가서 ‘이 차 사세요. 좋아요’ 그렇게 말할 수는 없잖아요. 내가 언젠가 그랑 부르주아를 소설에 등장시켜서 깔 수도 있는데, ‘이 차 너무 좋거든요’, ‘이 소주 너무 좋아요’ 이러면 내가 나중에 그걸 어떻게 비판을 해요.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자유를 위해 돈을 포기한 거죠. 얼굴 팔리면 제 생명이 끝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건 익명으로서의 삶이 끝나는 것이고, 그건 내가 보통인들이 느끼는 체험을 못하고 특별 대우를 받는다는 의미잖아요. 그러면 저의 작가로서의 삶도 끝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가장 중요한 이유예요.”(*지면 기사에는 좀더 압축돼 있다. '그랑 부르주아'는 '쁘띠 부르주아'의 상대어이다.)

_본인도 자기가 예쁜 거 아시죠?

“아니요. 몰라요.”(웃음) 사실 그거 작가생활 하는 데 저 너무 불리해요. 전 정말 제가 못 생겼으면 책이 배는 팔렸을 거라고 생각해요."

_(이구동성으로) 그 반대 아니에요?

“아뇨, 아뇨. 강동원과 이나영의 연기력이 폄하되는 것과 같은 이치 아닐까요. 장동건씨가 전에 “정말 잘 생긴 게 이렇게 핸디캡일지 몰랐다”고 했는데, 난 잘 생겼다고 생각지도 않지만 이렇게 노력을 많이 했는데도 사람들은 아직도 여전히 내 얼굴만 봐요. 얼마 전 조선일보에서 박완서 선배가 공지영 신드롬의 원인 중 하나로 미모를 꼽았을 때 굉장히 불쾌했어요.”(*작가는 두 가지를 혼동하고 있다. 짐작에 그녀가 못 생겼다면, 판매고는 절반 이하로 떨어졌을 테지만 문학적 평가는 다소 상향조정됐을지도 모른다. "전 정말 제가 못 생겼으면 책이 배는 팔렸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 무슨 '미녀는 괴로워'식의 대사인가?)

_지금은 사회 모든 분야에서 외모가 메리트가 되잖아요.

내 직업에선 핸디캡으로 작용해요. 전에 김훈 선배가 재미있는 농담을 했는데, ‘우리 업계가 이게(외모)가 좀 낮아’서 그렇대요. 영화인들이 저희한테 ‘너희는 공지영이 심은하급 되나보지?’ 하고 비웃어서 다들 자지러지게 웃은 적도 있어요.”

_소위 운동을 했다는데, 드러난 작가의 사생활이 너무 풍족했고, 지금도 소설 써서 충분히 보상을 받는 것 같아서 배신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은데요. 잘 나가는 작가 공지영에 대한 비판의 기저에는 그런 것이 있지 않을까요.

분명히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전 제가 얼마나 유복하게 살았는지 정말 몰랐어요. 다들 비슷하게 사는 줄 알았어요. 제가 재벌집 딸도 아니고, 배고픔의 서러움을 겪지 않았을 뿐이지 저도 아버지 월급을 받아야 용돈을 받을 수 있는 평범한 아이였어요. 그런데 이 문단이라는 데를 나오니까 전부 가난한 사람들인 거예요.(웃음) 이 계가 진짜 나를 너무나 부자로 만들어준 거야. 내가 이 계가 아니라 화류계, 영화계를 들어갔으면 난 굉장히 평범한 집에서 자란 평범한 애였을 텐데, 전통적으로 가난한 것이 미덕이 중요한 계에 들어와서, 제가 아주 계를 잘못 들었죠. 엉뚱한 제가 갑자기 난데없는 상류층에, 난데없는 미모에 황당해요.

대학 때 우리집이 차압을 당해 먼 잠실로 이사 갔어요. 그때 시인 기형도 형이 몇몇 형들이랑 저희 집에 놀러왔는데, 이 형들이 와서는 나를 경원하고 멸시하는 표정인 거예요. 나는 그 형들이 아무 말도 안해서 얼마나 가난한지 정말 몰랐어요. 나중에 기형도 산문집 읽고 절대가난이라는 걸 알았는데 미안하기도 했고 분하기도 했어요. 왜 나한테 슬프고 가난하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그러면 나는 “형, 우리집 너무 누추해”라고 말하지도 않았을 텐데. 너무 배신감 느낀 거예요.

 

‘캐비어 좌파’라는 말이 있잖아요. 캐비어를 먹는 사람은 꼭 우파여야 하나요? 비록 캐비어를 먹지만, 좌파적 입장에서 제3세계 얘기하는 게 사실은 더 훌륭한 게 아닐까요.”

_나는 몰랐고, 이 업계가 가난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은 수긍하기 좀 그런데요.

나 잘못하면 필화사건 나겠다. 그리고 저 좌파적으로 살았어요, 왜 이러세요.(웃음) 저 연탄 때는 10평짜리 전세 아파트 살다가 연탄가스 먹고 병원에도 가고, 원당읍에 15평 주공 아파트에도 살았고 계속 전셋집 옮겨 다녔어요. 혜화동 천에 십만원짜리도, 삼선교 2,500짜리 반지하도 살았어요. 아 진짜, 이런 구차한 변명까지 해야 되나. 지금 사는 집이 제 첫 집이에요. 제가 차를 바꾼다고 하니까 어느 선배가 벤츠를 사라고 하더군요. “아니, 어떻게 작가가 벤츠를 타” 그랬더니, 그 선배는 우리 문인들이 잘 되서 외제차 타면서 지탄받는 그런 사회가 됐으면 좋겠대요. 그 말을 듣고 20년 동안 간직해왔던 부에 대한 죄의식을 털어버렸어요. ‘인세 많이 들어와서 좋아요’ 라고 말하고 다닌 지 몇 년 안됐어요. 옛날에는 ‘저는요, 꼭 팔려고 했던 건 아닌데요’ 그랬거든요.

나는 진짜 밥을 벌기 위해서 밤 새워가며 앉아서 글 썼어요. 이제껏 결혼을 3번 했지만 지금까지 제가 생활비를 대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23세 이후부터 현재까지 내가 집안의 가장이었고, 사력을 다해 글 쓰는 게 내 밥벌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내가 독자들이 좀 더 좋아할 수 있는 책을 써서 생활비를 댈까 이것이 오직 나의 관건이었죠. 돈은 버는 족족 어디로 갔지만.(웃음) 그래서 <우행시>로 평생 처음 돈을 저축했어요. 남편이 없기 때문에 이제 돈 저축이 되는 거죠.”

_소설에 늘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그런 비판이나 죄의식을 풀기 위한 건가요?

“그런 면도 없지 않아요. 22세에 첫 결혼을 했는데 그때부터 제 인생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더라구요. 제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아무리 인내를 해도 어쩔 수 없는 방향으로, 너무 끔찍하고 슬프고 진짜 어디 가서 하소연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이런 부분들이 나로 하여금 <우행시>에서 사형수를 만나러 가게 했어요. 내가 사형선고를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던 것 같아요. 나는 왜 여기까지 왔나, 나는 왜 이런 낙인을 줄줄이 달고 있나, 난 왜 전과 기록처럼 이런 걸 줄줄이 달고 서 있어야 하나, 이런 게 너무 절망스러웠어요. 사회적 사형선고 받은 느낌이었어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삶이 극한으로 내몰렸던 마음의 경험을 했기 때문에, 정말 내 인생이 정말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체험들을 했기 때문에 나는 사형수들에게 감정 이입을 할 수 있었어요. 결국 이 모든 것이 내가 소설가로 만들어지게 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나를 좋은 환경에 놔두었다면 밤 새워 내가 굳이 글을 쓸 이유도 없었겠죠. 돈 있고 남편이 등 따시고 배부르게 해주면 내가 뭐 하러 글을 써요.”(*문학평론가 김윤식 선생의 어법을 빌면, 문학은 현실에 패배한 자들이 그 현실에 복수하는 것이다.) 

_공지영에 대한 관심이 작가에 대한 관심엔 파란만장한 사생활에 대한 호기심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데요.

“제가 두 번째 이혼을 했을 땐데 안티들이 나를 너무 상처 주더라구요. 제가 친구에게 “나 너무 불쌍하지 않냐. 난 심지어 이혼까지 이렇게 많이 해서 진짜 힘들다” 했더니 그 친구가 “너 이혼했다는 사실 때문에 미움 받는 거야. 여자들이 너 같은 경우라고 다 이혼하는 게 아냐. 너는 능력 있으니까 이혼했어” 하더라구요. 난 항상 하늘이 몇 조각 나는 경험을 하는 건데, 그런 말 많이 들어요. ‘나도 당신만큼 능력이 있으면 당장 이혼했어’라는 말. 솔직히 그때 화가 많이 나서 조금만 어렸으면, “저 있잖아요. 제가 이혼했을 때 천만원에 10만원 하는 지하방에 살았거든요. 난 그때 소설 수입도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랬을 텐데 지금은 죽음의 시간 같은 것들을 넘어왔기 때문에 이해해요.”

_죽음의 시간이라뇨?

“마지막 고비(이혼)가 너무 힘들었어요. 제 소원이 비행기 사고가 났으면 좋겠다, 트럭이 나를 덮쳤으면 좋겠다 그런 거였어요. 그땐 친한 친구에게도 더 이상 말할 수 없어서, 하느님한테 갔어요. 18년 만에요. 가서 “항복합니다. 저 좀 살려주세요” 이야기했고, 그랬더니 정말 살려주시더라구요. 제가 그 힘을 가지고, 남들이 보기엔 당당하고 내가 보기엔 좀 담담하게 사람들 앞에 나섰죠.”

_또 결혼하실 겁니까?

“저는 결혼이란 제도를 상당히 좋아해요. 저희 식구들이 다 첫사랑이랑 결혼해서 아무 문제 없이 행복하게 살았어요. 그래서 처음 만나면 빨리 결혼해야 하는 건지 알았고, 그렇게 하면 결혼이란 게 아무 문제가 없을 줄 알았죠. 그런데 내가 해보니까 나는 왜 안 되는 거야. 결혼이란 제도의 미덕이 있어요. 약속을 관철하게 하는 약간의 강제적 힘 같은 것. 사람이란 너무 변덕스럽고 불안하니까요. 그건 아직도 믿어요. 하지만 앞으로 또 결혼을 할지는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사랑은 하고 말 거야. 언젠가."

_그렇게 당하고도 또 사랑을 하고 싶으세요? 

"사람들은 그렇게 당하고도 또 사랑을 하고 싶냐고 물어보는데, 내가 만난 것은 저 사람이었지 남자 일반은 아니에요. 전 ‘남자는 다 그래’라는 말 참 싫어해요. 그건 여자는 다 그래란 말과 똑같다고 봐요.”

_앞으로 쓸 작품은요?

“저희 큰 딸이 고3이고 밑으로 초등학생 아들 둘이 있는데, 우리 가족을 모델로 한 <즐거운 나의 집>을 쓸 거예요. 참 축복인 게 우리 애들이 무지 밝아요. 나의 죄책감이 있기 때문에 학교 가면 애들이 밝나 안 밝나 그런 것부터 보거든요. 다들 에미 닮아서 대책 없이 밝아요.

언젠가 제가 딸한테 “엄마가 이혼 너무 많이 해서 미안해, 너한테 이런 모습 보여줘서 미안해” 얘기하니까 자기는 그거 잘 모르겠대요. 자기가 오직 항의할 수 있는 건 단 한 가지, “우리 아빠랑 왜 이혼했어”뿐이고, 나머지는 엄마의 사생활이니까 인정한대요. 대신 자기가 엄마를 좋아하는 이유는 “엄마는 엄마 차의 시동을 한 때 껐지만 엄마의 열쇠를 던져버리지는 않았잖아. 내 친구 엄마들은 다시 못 찾게 강물 속에다 다 던져버렸어. 그래서 누가 밀어주기 전에는 다신 못 떠나. 그런데 엄마는 그것을 주머니 속에 감춰두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시동을 켜고 떠났잖아” 그러는 거예요. 저 이제는 안 버려요. 이제는 열쇠를 버릴 생각도 없고, 시동을 끌 생각도 없어요.”(*지면 기사는 여기까지이다. 이후의 내용은 중복이 많다. 발췌해서 옮겨놓는다.) 

_이제 공지영이라는 이름은 확실한 브랜드가 된 것 같아요. 무슨 책을 써도 기본은 팔린다는 관측인데.

그건 오직 신만이 아시는 거죠. 독자들은 너무 변덕스러워서 그 기호를 따라가다가는 제가 망해요. 그냥 제 배짱대로 쓰는 거죠. 우리 문단에서 ‘밥벌이 때문에 소설 쓴다. 밥벌이 안되면 미련 없이 떠난다’고 말하는 사람이 저랑 김훈 선배예요. 난 가장이기 때문에 노동의 대가가 충분치 않을 경우 하시라도 국수집을 할 태도가 돼 있어요. 국수 맛있게 마는 비법이 하나 있거든요. 제겐 프로작가로서의 내 노동이 우리 아이들과 나를 먹여 살릴 수 있느냐가 굉장히 중요해요.

_사람들이 많이 알아보죠?

"아니에요. 전혀 몰라봐요. '혹시 공지영씨와 많이 닮았다는 소리 안 들어요?' 이런 말도 들어봤어요. 그럼 '아니요' 그래요. 난 공지영이지 닮은 건 아니니까. 지면사진과 달리 실제로 생기발랄해서 더더욱 못 알아봐요. 그런데 TV는 잠깐만 나와도 알아보더라구요. 아주 소름끼쳤어요."

_영화는 실망스럽지 않았어요? 캐스팅도 젊은 배우고.

"전 만족해요. 선남선녀가 안 나오면 누가 보겠어요. 이쁜 여자가 나오니까 시간이 잘 가잖아. 영화 흥행이 책 매출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데 다소 맥 빠지는 쓸쓸함도 느낄 것 같아요. "영상의 막강한 파워를, 영상이 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인정해요. 문학은 갔구나, 아름다운 문학이여, 이런 식으로 생각지는 않아요. 그게 영화화 됐다는 것은 이미 제 작품을 본 독자들이 많다는 의미도 되니까. 영화 때문에 팔리긴 했어도 영화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요."

 

 

 

 

_봉순이 언니 만나셨어요?

"그게 다 사실이 아니고 소설이에요. 시집가서 남편이 죽는 것까지만 실화예요. 나중에 언니가 찾아왔어요. 그래서 내가 저 언니가 책 읽었으면 어떡하지 했죠(웃음). 다행히 안 읽은 눈친데, 언니가 워낙 순하고 그래서 읽었더라도 봐줬을 거예요. 어린 시절 세팅이나 언니 존재는 실화예요. 30년 만에 만났는데, 잘 살더라구요. 멀리 멀리 시집갔는데 분당 우리 집옆에 죽전에 살더라구요. 옛날에 거기 땅이 있어서 보상 받아 아파트 살고 있었고 아이들도 잘 키워서 아들 하나는 분당 삼성플라자 직원이더라구요.

 

 

 

   

-산도르 마라이 좋아한다면서요.

"내가 왜 그렇게 좋아하나 봤더니, 그 사람이 운명과 싸우더라구요. 현대 유럽작가와 다르게 운명이나 비극을 담고 있다는 평을 봤어요. 아마 그런 것이 나를 매료시킨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제 자신이 마흔이 넘어갈 무렵에 운명이란 게 있구나, 너무 강력해서 내가 피할 수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굉장히 많이 들었거든요. 나의 노력, 의지, 선의와 상관없는 그런 일들이 내 인생에서 일어나고 있는 꼴을 보는 순간들이 있었어요. 운명이란 것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제가 가진 많은 것들, 말하자면 키가 큰 것, 좋은 부모님 만난 거. 머리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던 거, 그래서 공부도 잘 했던 거, 가난하지 않게 살았던 거. 내 의지가 하나도 개입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우스운 말이지만 얼굴 생긴 것도 내 의지랑 아무 상관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나를 규정해 왔고,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는 거예요. 아, 이게 장난이 아니구나 느끼면서 신에게 돌아간 것 같아요. 정말 항복합니다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운명이라는 것을 생각할 기회가 많았어요. 작가로서는 그게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한 여자, 한 인간으로서 굉장히 많은 비극을 갖고 있지만, 작가가 되는 데 고통의 문제, 폭력, 운명의 문제를 나로 하여금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줬던 거 같아요."

-공지영 신드롬이라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요?

"아, 근데 그거 94년도에도 한 번 했었어요. 공지영 신드롬, 최영미 신드롬이 있었는데. 전 데뷔 때부터 문학 지상론자는 아니거든요. 이 문장 하나 만들기 위해 내 목숨 다 바치겠다,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전. 그래서 사실 보상이란 것이 꼭 평론가들만 주는 건 아니고, 제가 독자들한테 물질적이거나 심리적으로 보상받기 때문에 독자들의 리뷰나 그런 것으로부터도 받아서 그것이 어떤 일이든 그것이 상관이 없어요. 나는 왜 문학적으로 평가받지 못하는 거야. 뭐 그런 생각도 별로 안 하고. 이 시대의 평론가들, 상을 주는 심사위원들이 모든 문학을 끝까지 쥐고 있고, 앞으로도 쥘 수 있을지…, 아, 이렇게 자꾸 말하지 말라 그랬는데, 사람들이.(일동 웃음) 이럼 점점 멀어져서 돌이킬 수 없다는데."

-심중의 얘기들을 감추지 못하는 성격으로 자신이 준 상처, 받은 상처 그런 기억들은?

"내 말투, 농담을 함부로 하지 말자 뭐 그런 거 있어요. 저 사람들에게 정말 악의 없어요. 근데 항상 너무나 미움을 많이 받는데, 내 친구가 그러더라구요. 넌 항상 본질을 빨리 파악하는 능력이 있어서 그걸 말하는 것 자체가 상처를 주는 것 같다고. 제가 상처 받는 건 언제나 이런 거예요. 봉순이 언니에서도 많이 썼는데. 이런 말 해도 되나. 난 꼬인 데 가 없고 사람을 오래 미워하는 법이 없어요.

시인 김정환형한테 "형. 난 왜 이렇게 사람들이 나한테 잘못한 거 금세 잊어버리지" 푸념하니까 "지영아, 넌 너무 착해" 이럴 줄 알았더니 "넌 너무 머리가 좋아서 그래"라더군요. 똑똑한 사람들은 남 미워하는데 오래 끙끙거리지 않고 비생산적인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대요. 난 그냥 말에 사람들이 상처받고 그러는 것 같아요. 난 금세 잊는데, 나한테 상처받았다는 사람은 너무나 많이 나타나는 거예요. 넌 날 상처 입혔어, 그러면서 가버려요. 아니라고 해도 그리곤 다시는 나를 안 보는 거예요. 그런 것에 제가 상처받았죠."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상처를 받지 않을 걸로 생각하는데.

"네. 별로 상처 안 받아요. 하도 받다보면 나도 살아야 되니까 처리하는 법을 배우잖아요. 30분 정도 걸려요. 미움을 하도 많이 받아서. 고등학교 때 왕따였어요. 어느날 보니 나를 따 시키더라구요. '어머. 사실 나도 너희들과 얘기하고 싶지 않았어' 생각하고 혼자 그렇게 살았어요. 전 진짜 조숙해서, 지금은 그 조숙만 믿다가 미숙의 경지에 다다랐지만, 친구들이 말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어요. 드라마 얘기하고, 전 그런 얘기 하면 옆에서 고개 돌리고 다른 책을 읽고 그랬는데 친구들은 그게 오만방자해 보였겠죠.

-소설 낼 때마다 소외 당하지도 않았지만, 이처럼 단기간에 뜨겁진 않았잖아요. 뭐가 달라졌나요?

"제 소설보다 제가 취재해서 쓴 현실 자체가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거 같아요. 그게 좋았어요. 다른 소설들은 제 경험 윤색하거나 시대의 얘기였는데 이건 전혀 동떨어진 세계를 발견하고 '어떻게 이런 일이' 해서 그걸 옮겨다 이쪽에 준 거죠. 그게 너무 가슴 아파서 취재하는 동안 많이 울고 취재 시작부터 소설 쓴 후까지 마음이 아프기도 했어요. 이 책보다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 더 뒤인데, 그건 제가 전적으로 지어낸 소설이라 그게 각광받았다면 내가 잘 나서 그랬구나 그런 생각했을 텐데 제가 다 취재한 것이기 때문에 각별한 느낌이 있었어요(*'다 취재한 것이기'는 인터뷰에서 뭉개져 있는 부분을 내가 채워넣은 것이다). 나는 어떤 의미에서 말 그대로 인터뷰어, 옮겨놓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 현실이 각광받는 게 더 중요했고. 다른 게 각광받았다면 느낌이 달랐을 듯해요."

-이젠 스타라 무슨 책을 내든 잘 팔릴 것 같은데요.

"그건 아니에요. 조용필도 안 팔리는 시대인데. 우리사회가 생각보다 그렇지 않아요. 지금 네티즌들이 얼마나 무서운데요. 제가 제 작품을 두고 하는 말이라 그렇지만 저는 독자들이 무지 냉정하고 제가 스타라면 그것에 대한 안티의 눈도 굉장히 많아서, 제가 정말 정신 차려서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소설을 내지 않으면 바로 끝장날 거라고 생각해요. 94년에 베스트셀러 여러 개 낼 때부터 생각한 건데 독자라는 사람들은 굉장히 변덕스럽고 어떤 의미에서 굉장히 냉정하고 정확해요. 그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의 대가를 바라고 있거든요. 스타작가에 대한 평가는 더 혹독하고.

지금도 생각하는 건. 94년부터 제가 아까 생활비 걱정 안 해서 감사하다는 얘기는, 내가 우연히 독자 기호에 맞아떨어져서 이렇게 됐지만, 어떤 의미에서 소설을 쓰는 것은 대중의 기호를 맞춘다는 것은 할리우드 사람들도 잘 몰라요 그거. 그렇기 때문에 반 장사(50%)예요. 내가 그것을 따라가다 보면 바로 망해요. 그래서 내 자신의 내적 필연성을 따라갈 수밖에 없어요. 내 자신에게 이 걸 쓰는 동안 이것만 생각하고 내 자신에게 도움이 됐다면 평가는 온니 갓 노우즈거든요. 거의 신경 안 써요. 이게 제 배짱일 수 있고."

-너무 일찍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서 다음 작품에 부담은 없어요?

"무소의 뿔 다음에 고등어 쓰는 데 출판사에서 이거 최소 50만부 찍어야 하는데 이러는 거예요. 난 고등어는 절대 안 팔린다고 생각했는데 이것도 성공하니까 이젠 불안하더라구요. 그 때 내가 대중들을 따라가면 망한다 그런 생각했어요."

-일본 작가들 작품은 어때요?

"전 별로 안 좋더라구요. 키친 하나 빼고 별로예요. 차라리 우리 작가들 소설이 나은 것 같아요"

 

 

 

 

-어떤 독자들이 기억에 남아요?

"제가 제일 행복해 하는 독자들이 있는데 그게 30대 중반의 독자들이에요. 선배들의 강요로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를 대학 초년에 읽고, 그 후 <무소 뿔> 읽고 그랬던. 저와 함께 성장해온 친구들이죠. 그 친구들이 출판사의 편집하는 사람이 많아요. 저도 내년 데뷔 20년인데 그럴 때 가장 행복해요."

-왜 소설을 써요?

"얼마 전에 문학 캠프를 갔는데, 김훈 선생과 함께 독자와의 대화를 했어요. 왜 소설을 쓰시냐는 질문이 있었어요. 선배가 "난 밥을 벌기 위해 쓴다. 이게 밥이 안 되는 순간 미련 없이 떠날 거다" 그러더라구요. 깜짝 놀란 게 문단에 나와서 밥 때문에 소설을 쓴다고 했던 게 저였는데 김훈 선생님도 그렇더라구요. "저도 그렇다. 난 가장이기 때문에 노동의 대가가 충분치 않을 경우 하시라도 국수집을 할 태도가 돼 있다" 그랬죠.(*이 문학캠프 기사는 이전에 옮겨놓은 바 있다.) 

근데 문단에서 우리 둘만 그런 것 같아. 전 문학 지상주의자도 아니고. 문학이 모든 것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고, 문화의 베이스이긴 하지만. 그렇더라도 내가 밥도 안 되고 애들도 굶고 있는데 내가 거기 가 있을 필요도 없고, 프로작가로서 이게 내 노동으로서 우리 아이들과 나를 먹여 살릴 수 있느냐가 굉장히 커요. 반농담으로 국수집 차릴 거다, 국수 아주 맛있는 비법이 하나 있어요, 그랬어요. 실제 가격을 얼마로 매길까 고민도 많이 했다니까요."

 

 

 

 

-어떤 작가 좋아해요.

"황석영의 단편 <몰개월의 새> 제일 좋아해요. 황 선생님은 영화적 작법을 써요. 감정을 묘사하는 대신 정황으로 묘사를 해요. 외로움을 묘사하는 대신 우두커니 서 있는 빗자루, 우산을 쓰죠. 그게 단편에서 두드러지는데 객관적이고 냉정한 묘사를 해요. 저는 '그때 혼자 있는 게 어땠다'는 식으로 써버리거든요. 그분의 문학과 사회에 대한 자세들이 좋아요. 상복도 없어요. 그 다음은 박경리 선생님. 그 분도 상을 하나도 못 받았어요. 그래서 좋아한 것은 아닌데, 하도 상 때문에 말이 많아서 찾아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박경리 선생님은 김성종 문학상인가 하나 받았어요. 젊은 작가는 박민규. 저는 <카스테라> 좋게 봤어요. 저는 젊은 작가들이 좀 더 도발적이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이미 늙어서 아이들을 부러워 하는 형편이니까 형식 내용 모두 도발적으로 가면 제가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 같고. 그의 소설은 상당히 슬퍼요. 그래서 연민이 크다는 점이 좋았어요. 다른 작가들은 읽고 나면 이들이 나보다 젊은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장편은 주목을 받았지만 단편은 기억되는 게 없는 듯해요.

"세계적으로 유명 소설가들이 단편으로 주목받은 경우는 거의 없어요. 단편으로 주목받은 건 일본 정도. 주로 장편을 좋아한 후 단편을 좋아하는 식이죠. 우리 문단의 폐해일 수 있는데 이것도 시각의 차이인 것 같은데, 서사고 로망이고 하는 것은 장편이 아니면 생각할 수 없어요. 누가 단편으로 주목 받나? 에쿠니 가오리, 코엘료 다 장편이에요. 전 그 짧은 순간 그 사람을 다 표현할 수 없어요. 김유정의 경우는 단편을 잘 쓰는데, 당시엔 기자를 말한다면 떠오르는게 있어요. 그런데 현대는 너무 달라요. 조선일보 기자, 한국일보 기자, 한겨레 기자 다 다른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을 묘사하면 길어지고. 상황을 묘사하면…, 쉽지 않아요.

잘 쓴 단편의 경우는 일부를 떼고 보면 한 편의 시 같아요. <몰개월의 새>의 경우도 그랬고. 그 작품은 이성복의 시 같아요. 그런 부분은 장편에서는 그렇게 쓸 수는 없어요. 장편과 단편 소설은 서로 다른 장르라고 생각해요. 김유정 이후에도 김승옥 <무진기행> 하나 빼면 와 닿은 것은 별로 없더라. 단편으로 노벨상 받은 사람은 없어요."

-소설이 밥 벌이이기 때문에 쓴다고 했는데, 다른 밥 벌이를 사용할 수도 있잖아요.

"아니죠. 그 때도 난 얼굴 팔리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아요. 소설이, 독자들이 나를 이 영역에서 내쫓는다면 모를까, 내가 소설 쓰다 폐병 걸리고 우리 애는 아파서 울고 그러면 몰라도 그렇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 쪽으로 갈 필요는 없으니까.요 아직은 나를 그래도 밥은 먹게 하니까, 지금은 잘 먹고 있지만, 예전에도 밥은 먹게 했으니까. 저는 할 줄 아는 게 소설 쓰는 것하고 국수밖에 없어요."

-소설에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그런 비판이나 죄의식을 받아온 것을 풀기 위한 것인가요?

"그런 면도 없지 않아요. 제 중 1학년때 웃긴 얘기가 있어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아주 가난한 사람에 대한 연민이 많았어요. 제가 서울여중이라는 서강대 옆 중학교를 다녔는데 공덕동에서 48번을 타고 다녔어요. 그때 우리 엄마가 연보라색 벙어리 장갑을 짜 줬는데, 어느날 한 아저씨가 길을 물어보는데 손을 보니까 손이 터져서 막 피가 나는 거예? 그래서 제가 버스 타기 전에 손이 아플 것 같다며 그걸 억지로 드리고 창피해서 막 뛰어서 버스를 탄 기억이 있어요. 지금 생각하면 돈을 주든지 왜 그 이쁜, 할아버지가 낄 수도 없는 것을 드렸을까. 이것이 어떤 상징일 수 있겠다 싶어요.

사형수 문제도 그런 연민이 기본적으로 깔리고요. 22살에 첫 결혼을 했는데 그 때부터 제 인생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더라구요. 제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아무리 인내를 해도 어쩔 수 없는 방향으로, 너무 끔찍하고 슬프고 진짜 어디 가서 하소연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이런 부분들이 나로 하여금 <우행시>의 사형수 만나러 가게 했어요. 내가 사형선고를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던 것 같아요.

나중에 생각하니까 더 이상 물러설 데도 없고, 나는 왜 여기까지 왔나, 나는 왜 이런 낙인을 줄줄이 달고 있나. 도대체 난 뭔가. 난 한번도 이런 걸 원한 적도 없고, 난 별로 잘못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난 왜 여기까지 왔을까. 난 왜 전과 기록처럼 이런 걸 줄줄이 달고 서 있어야 하나, 이런 게 너무 절망스러웠어요. 사형선고를 받은 기분, 사회적 사형선고 받은 느낌이었죠. 그래서 사형수에게 갔고 가서 그들의 삶이 독자들이 보는 것과 전혀 다르게 나하고 너무 닮아있었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감정이입이 무지무지 잘됐던 듯해요. 너희들도 이런 걸 원치 않았겠지, 어느날 보니까 자기가 이런 처지가 돼 있었겠구나 싶었어요. 각도는 다르지만 감정이입하긴 좋았죠.

그 모든 것이 결국은 내가 소설가로 만들어지게 된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게으르고 놀기 좋아하고, 나를 좋은 환경에 놔두었다면 밤 새워 내가 굳이 글을 쓸 이유도 없었겠죠. 돈 있고 남편이 등 따시고 배부르게 해주면 내가 뭐 하러 글을 써요. 그땐 아, 아름다운 백합화, 막 문체 신경 쓰고, 솔직히 그랬을지도 몰라요. 근데 너무나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삶이 극한으로 내몰렸던 마음의 경험을 했기 때문에, 내 인생이 정말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체험들을 했기 때문에 나는 사형수들에게 감정 이입을 할 수 있었어요. 그건 독자가 어떻게 보든 상관없이 소설가로서의 나의 자부심이에요. 나는 그곳에 갔었고, 내가 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함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확신, 소설가로서 자부심이 생겼어요.

-공지영이라는 작가에 대한 관심에는 파란만장한 사생활에 대한 호기심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데요.

"제가 두 번째 이혼하고 있었을 때 너무나도 안티들이 나를 상처 주더라구요. 친구에게 '나 너무 불쌍하지 않냐. 난 심지어 이혼까지 이렇게 많이 해서 진짜 힘들다' 했더니 '너 이혼했다는 사실 때문에 미움 받는 거야' 하는 거예요. 아니 요즘 이혼이 그렇게 큰 죄도 아니고 '나도 이거 어쩔 수 없었는데, 너도 어떤 상황인지 알잖아' 그랬더니 '나도 네가 미워. 넌 이혼도 했잖아" 그래요. 아니 난 항상 하늘이 몇 조각이 나는 경험을 하는 건데, '야 너 여자들이 너 같은 경우라고 다 이혼하는 게 아냐. 너는 능력 있으니까 이혼했어' 그러더라구요.

그런 말 많이 들어요. "나도 당신만큼 능력이 있으면 당장 이혼했어"라는 말도 들었어요. 솔직히 그때 화가 많이 나서 조금만 어렸으면, "저 있잖아요. 제가 이혼했을 때 천만원에 10만원 하는 지하방에 살았거든요. 난 그때 소설 수입도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랬을 텐데 지금은 죽음의 시간 같은 것들을 넘어왔기 때문에 이제는 생각해요. 각자의 길이 있고 자기 몫의 짐을 지고 걸어가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의 짐이 가벼워 보이는 것이고. 내가 보기에는 그 여자들 팔자가 더 좋아보이기도 하고, 가끔 나도 그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내 길이니까 내 운명이고 내 짐이니까 걸어간다 생각하면 너무 평안하고 감사해요.

이 얘긴 꼭 써주세요. 요즘은 너무 행복하냐고 물어보는데 정말 행복해요.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성모상 앞에 촛불을 켜고 내가 생각하는 사람 이름을 하나씩 불러요. 우리 애들 이름부터요. 집이 너무 따뜻해서 감사해요. 건강하고 밤에 아이들이 잘 자는 것 감사해요. 내가 기도할 수 있는 것도 감사해요. 그 세 가지 기도를 할 수 있어 감사하고. 그것을 하고 나면 하루가 기쁘고 즐거워요.

94년에 이보다 더 많은 돈을 벼락같이 벌었어요. 하나도 안 행복했어요. 정말 지옥 같았어요. 지금은 빚도 좀 갚고, 저축 조금 하고, 열심히 하면 막내도 대학 보낼 수 있을 것 같고 너무 행복해요. 아주 해피하게 살고 있어요."

-큰 딸이 소설을 쓰면 엄마에 관한 걸 쓴다고 했다면서요?

"내가 엄마가 이혼 너무 많이 해서 미안해, 너한테 이런 모습 보여줘서 미안해 얘기하니까 자기는 그거 잘 모르겠대요. 왜냐면 자기가 오직 항의할 수 있는 건 단 한 가지, '우리 아빠랑 왜 이혼했어'는 항의할 측면이 있는데, 나머지는 엄마의 사생활이고, 자기는 인정하는데, 대신 내가 엄마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엄마는 엄마 차의 시동을 한 때 껐지만 엄마의 열쇠를 던져버리지는 않았잖아"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무슨 소리야. 열쇠를 던지는 엄마가 어딨어" 했더니 "아냐, 엄마. 내 친구 엄마들은 다 던져버렸어. 강물 속에다. 다시 못 찾게. 그래서 다신 못 떠나. 누가 밀어주기 전에는. 근데 엄마는 그것을 주머니 속에 감춰두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시동을 켜고 떠났잖아" 그러더라구요. 이제는 안 버려요. 이제는 버릴 생각도 없고, 시동을 끌 생각도 없어요.

저는 결혼이란 제도를 상당히 좋아해요. 저는 집안이 우리 엄마 아버지가 동네 첫사랑이었어요. 14살에 만난. 아버지는 보통 한국 남자들이 그 시대에 저지를 수 있는 죄책사유를 하나도 저지르지 않았고, 지금도 손 잡고 우리 다음에 태어나도 또 만나자 이런 쓸데없는 소리하고, 더군다나 언니 오빠 다들 처음 만난 사람들과 결혼했어요.

지금까지 다 무난하게 살았고. 난 사람이란 다 저런 건 줄 알았어요. 그래서 처음 만나면 빨리 결혼해야 하는 건지 알았고, 그렇게 하면 결혼이란 게 아무 문제가 없는 건 줄 알았고. 그런데 내가 해보니까 나는 왜 안 되는 거야. 그래서 엄청 갈등을 했죠. 그래서 저는 아직도 결혼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많이 갖고 있어요. 내 주변에 좋은 결혼생활을 보여주는 사람이 많으니까. 특히 엄마는 아직도 '김장 했는데 아버지가 하루종일 마늘만 까고 파는 안 까주셨다' 뭐 이런 푸념도 해요.

그런 것만 보고 살다가 이런 세계가 있다는 걸 우리 가족들도 나 때문에 안 거예요. 대신 가족들이 한 번도 나를 비난한 적이 없었어요. 그건 너무나 큰 힘이에요. 너무나 이해해줬고, 그 집 귀신 되라 이런 얘기 절대 한 적 없어요. 하루 빨리 탈피해라, 오히려 밍기적거린 건 나였고, 지금도 굉장히 어떤 의미에서 자랑스러워해 주시고. 그게 큰 힘이죠. 우리 애들도 아빠가 없으니까 오빠가 아빠노릇 비슷하게 놀이공원이라도 한 번 더 데려가려고 하고. 농담으로 이 모든 게 나를 소설가로 만들려는 하느님의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고 말해요."

 

 

 

 

-아이러니하게 이 과정을 겪고 사랑에 대한 소설을 썼어요.

"죽는 줄 알았어요. 츠지의 제안이 너무 매력적이라서 쓰기로 했는데 너무 겁이 나더라고요. 구상을 하는데 필이 전혀 안 오는 거예요. 이건 순전히 필로 해야 하는 건데. 옛날 필 살리려고 7080 노래를 받아서 매일 들었어요. 내가 사랑을 아직 믿었던 시절의 느낌을 다시 가져보려고 무지무지 애를 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 리뷰에 "이 여자는 연애를 안 했나 보다"라는 게 있었는데 그걸 보고 "어머, 너무 정확하다" 했어요.(웃음) 사형수를 취재하는 게 훨씬 쉬웠어요. 그러니까 얼마나 좋아요. 앞으로 진짜 사랑을 하면 앞으로 연애소설을 얼마나 잘 쓰겠어."

-사랑을 믿어요?

"지금은 진짜 믿어요. 사형선고를 받은 기분으로 사형수에게 갔는데, 저는 남녀간의 사랑이 따로 분류되는 사랑이라고 생각지 않아요. 사형수 보면서 사랑을 믿게 되었어요. 사형수들은 어쩜 개만도 못한 사람이었는데 교화위원들이 10년 넘게 그렇게 돌보면서 교화가 된 거예요. 그러면 왜 나에게 그런 사랑을 주냐고, 나 너무 힘들다고 하는 윤수 같은 상황이 온대요.

처음엔 빵이나 얻어 먹고 그러다가 그들의 진심을 읽고 화를 내고 그 후부터 변하는 식으로요. 야, 이거 정말 인간이 변하는 것이구나. 그 아줌마들은 봉사하러 오는 천주교 신자들일 뿐인데 그냥 와서 '이거 먹어봐. 이거 방에 들어가면 못 먹어 어서 먹어' 엄마처럼 그런 것 뿐인데 사형수들은 한번도 못 받아본 사랑을 접하면서 금방 변하는 거예요. 사람들은 '그렇게 당하고도 또 사랑을 하고 싶어?' 물어보는데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래요.

이건 제 의지의 노력이었는데, 내가 만난 것은 저 사람이었지 남자 일반은 아니다. 제가 싫어하는 말은 남자는 다 그래. 저 그런 말 되게 싫어해요. 그것은 여자는 다 그래란 말과 똑같다고 봐요. 심수봉 노래는 가끔 부르기도 하지만. 저도 남자들 좋아해요. 아가페와 에로스라는 이분법을 잘 모르겠어요. 에로스만의 사랑이 있나요? 그런데 저는 플라토닉 러브는 너무 싫어하거든요. 저는 그게 제가 그렇게 싫어하는 하룻밤 사랑과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어떻게 플라토닉만 해요? 난 이해가 안 가."

-난 남녀간의 사랑이 다시 온다면요?

"그럼요. 기꺼이."

-현재 준비하고 있는 작품은요?

"우리집을 모델로 한 <즐거운 나의 집> 써야 합니다."

-작품 쓸 때 시간관리는?

"저도 노동자인데 낮에 쓰고 일과 시간에 써야죠. 밤에는 자거나 술 마시거나 놀아야죠. 애들이 크고 나서 바뀌었어요. 엄마 노릇이라도 하려면 아침에는 일어나야 하니까. 밤에 하면 애들을 못 챙겨주고. 그러니까 밤에는 일찍 자려고 하고. 그러다 보면 점심때 시간이 남아요. 애들 재우고 새벽 3~4시까지 하기도 했는데. 주로 2시부터 5~6시까지 쓰죠. <우행시>는 너무 잘 써져서 단 두 시간만 자면서 쓰기도 했어요. 출판사에 일정보다 일찍 넘겨줄 정도였죠."

-또래 작가들과 친분은?

"아무도 안 친해요. 전에 친해지려고 노력한 적 있었는데 내가 한 말이 바로 소설로 나오더라구요. 작가들은 친해지면 안돼요. 먼저 쓰는 게 임자인데 난 게으르니까. 시인들은 더 심하답니다."

-애들은 말은 잘 들어요?

"어휴. 지옥 같은 날들이에요.(웃음) 엄마 말을 끝끝내 안 듣는 이 아이들. 큰 딸이 제일 말을 안 들어요."

-연말연초 계획은?

"집에 있어요. 애들 다 키우고 나면 봉쇄 수도원에 가서 한 일년 동안 가고 싶어요. 국내로요. 아무리 서로 묵언을 해도 그렇지 굳이 말도 안 통하는 해외 가서 어쩌자는 거예요. 애들만 크면 맘대로 여행도 다니고. 아이들이 제 쓸데없는 욕망의 발목을 잡는, 현실에 묶어주는 족쇄이기도 하고, 하나의 축복이고 행복인 것 같아요.

우리 애들은 제가 가장 축복인 게. 우리 애들이 무지 밝아요. 학교 가서 볼 때 애들이 밝나 안 밝나 그런 것을 봐요. 나의 죄책감이 있기 때문에. 근데 애들이 다들 에미 닮아서 대책없이 밝아요. 애들에게 상처 주는 선생님들이 있잖아요. 막내의 경우도 왔어요. 저는 '니가 이런 선생님을 만났단다'하고 솔직히 말해요. 선생님이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야 라고 하고 싶진 않아요. 선생님이 우리 막내를 너무 애정 결핍으로 보는 것에 대해 상처받았어요. 엄마가 너무 바쁘니까 우리 애들을 그렇게 보시는 거죠. 제가 학교 가면 선생님들이 그런 얘기해요. 바쁜 것 가지고 말이죠. 전 우리 부모 세대처럼 다 널 위해 하는 거란 말하지 않고 1년간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다고 말했어요. 난 애들에게 거짓말로 감싸고 싶지 않았어요."

-솔직한 것도 하나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부르주아의 건강성이랄까요,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저에요. 저."

07. 01. 02.

P.S. 공지영 소설을 별로 읽은 바 없다. <인간에 대한 예의>(창비사, 1994/2006)의 초판을 읽으며 '좋은 인상'을 받은 게 거의 전부이다.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풀빛, 1989/ 푸른숲, 1998)은 제목부터 유치하다고 생각해서 서평을 읽는 걸로 대체했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문예마당, 1993/ 푸른숲, 2006)는 영화감상으로 대신했다(거기 모스크바의 풍경이 등장하고 아는 선배도 출연했다).그리고는 '고등어'와 '봉순이 언니' 신드롬이었다. 견문에 평론가들로부터 가장 호평을 받은 작품은 <별들의 들판>(창비사, 2004)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중의 압도적인 지지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푸른숲, 2005)으로 쏠렸으며 그러한 '사회적 현상'이 '우리들의 행복한 공지영'을 낳았다. 작가가 <즐거운 나의 집>을 차기작으로 꼽아두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징후적이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아무튼 편집하느라 애먹었다. 아무리 인터뷰 정리기사라지만 이렇게 뒤죽박죽으로 중복이 심한 기사는 처음 봤다. 기자가 편집을 하다 나가떨어진 게 아닌가 싶다. 기사에서 내가 건진 건 세 가지이다. 먼저, 중1 때의 에피소드. "서강대 옆 중학교를 다녔는데 공덕동에서 48번을 타고 다녔어요. 그때 우리 엄마가 연보라색 벙어리 장갑을 짜 줬는데, 어느날 한 아저씨가 길을 물어보는데 손을 보니까 손이 터져서 막 피가 나는 거예? 그래서 제가 버스 타기 전에 손이 아플 것 같다며 그걸 억지로 드리고 창피해서 막 뛰어서 버스를 탄 기억이 있어요. 지금 생각하면 돈을 주든지 왜 그 이쁜, 할아버지가 낄 수도 없는 것을 드렸을까. 이것이 어떤 상징일 수 있겠다 싶어요." 맞다, 상징이다. 그것도 그녀의 작가적 세계관을 집약해주는.

그리고 산도르 마라이 소설에 대한 열광: "내가 왜 그렇게 좋아하나 봤더니, 그 사람이 운명과 싸우더라구요. 현대 유럽작가와 다르게 운명이나 비극을 담고 있다는 평을 봤어요. 아마 그런 것이 나를 매료시킨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제 자신이 마흔이 넘어갈 무렵에 운명이란 게 있구나, 너무 강력해서 내가 피할 수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굉장히 많이 들었거든요. 나의 노력, 의지, 선의와 상관없는 그런 일들이 내 인생에서 일어나고 있는 꼴을 보는 순간들이 있었어요. 운명이란 것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수도원 기행> 같은 게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밥벌이'로서의 글쓰기: "나는 진짜 밥을 벌기 위해서 밤 새워가며 앉아서 글 썼어요. 이제껏 결혼을 3번 했지만 지금까지 제가 생활비를 대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23세 이후부터 현재까지 내가 집안의 가장이었고, 사력을 다해 글 쓰는 게 내 밥벌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내가 독자들이 좀 더 좋아할 수 있는 책을 써서 생활비를 댈까 이것이 오직 나의 관건이었죠." 둘러대지 않아서 좋다. 그것이 공지영의 힘이다. 비록 허구를 꾸며대는 소설가이지만, 그녀의 삶과 소설 사이의 관계는 아주 투명해 보인다. 액면 그대로이다. 이 작가는 아직도 쓸어갈 판돈이 더 남아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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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모 예방과 모발 클리닉
장정훈 외 지음 / 가림출판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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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정수리에 머리카락이 조금씩 빠지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탈모이시니 만큼 언젠가는 겪어야 할 일이었지만, 스물일곱에 탈모는 조금 빠른 편이지요. 미용실 직원들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간헐적으로 정보를 얻긴 했는데,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 확실하지 않아 더 혼란스럽기만 했습니다. 서점에 들러 발췌독 해봅니다.

- '털'의 범위가 머리카락에 국한되지 않더군요. 전반부에는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 외에 다양한 탈모 사례를 간단히 소개하고 있구요, 중반부에는 인체의 구조에서 본 털의 성장과 퇴화 과정을, 후반부에는 탈모 치료와 예방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 [탈모의 원인] "거세된 남성에게는 탈모가 일어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했던 말이라고 하는데요, 과학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 탈모가 남성 호르몬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지요. 남성 호르몬은 근육이나 성기와 같은 남성으로서의 신체 변화는 촉진하지만, 머리카락의 성장은 억제하는, 이중적인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 물론, 남성 호르몬 일반이 탈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고, 특별히 강한 성질의 남성 호르몬 일부를 지칭합니다. 전자를 "프로테스테론", 후자를 "'다이하이드로'프로테스테론"이라고 부릅니다. 전자는 특별한 경우에만 후자로 변환된다고 하는데요, 백인들의 경우 흑인이나 황인에 비해 이런 변환이 활발하다고 하네요. 그래서, 중년의 백인 60% 이상이 탈모를 겪는다고 합니다.

- 하지만, 다이하이드로프로테스테론 만으로 탈모가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랬다가는, 남성들 대부분이 탈모를 면하지 못할테니까요.) 이 남성 호르몬이 탈모를 유발하는 유전적 인자와 만났을 때에 비로소 탈모가 시작됩니다. 즉, 탈모는 특별한 남성 호르몬과 유전적 인자, 두 가지가 모두 갖추어져야 일어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 [탈모의 과정] 탈모에도 여러가지 유형이 있지만, 가장 많은 경우를 '남성형 탈모' 라고 합니다. 정수리와 앞이마에서 부터 탈모가 시작되는 것이 그 특징입니다. 특이한 것은, 뒷머리는 호르몬의 영향을 받지 않아 아무리 탈모가 심한 사람이라고 해도 탈모되지 않는다고 하네요.

- [탈모의 치료] 임상 실험을 통해 공인되어 있는 탈모 치료제는 두 가지 밖에 없다고 합니다. 모두 미국 제약회사의 것인데, '미녹시딜'은 바르는 치료제이고 '프로페시아'는 먹는 치료제입니다. 전자는 초기에 탈모의 진행 과정을 멈추는 데에만 일시적인 효과가 있지만, 후자는 상대적으로 폭넓게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다만, 두 치료제 모두 치료 가능 여부를 판단하는 검사가 필요하고, 장기간(적어도 1년 이상) 꾸준히 사용 또는 복용해야 합니다. 이 경우 부작용은 거의 없습니다.

- 재밌는 것은, 두 치료제 모두 본래 탈모 치료제로 개발된 것이 아니라 호르몬 분비에 관련된 약품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약의 복용 과정에서 털이 자라는 부작용이 발생해, 이를 연구하다가 탈모 치료제로 개발되었다고 하는군요.

- 두 치료제는 탈모를 예방하거나 진행 과정을 멈출 수 있지만, 탈모가 어느 정도 진행된 이들에게는 소용이 없습니다. 이들에게는 더 근본적인 치료가 필요합니다. 과거에는 두피를 이식하는 방법이 사용되었지만, 최근에는 다른 부위의 머리카락을 이식해 심는 수술이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머리카락이 시작되는 '모낭' 이라는 부분은, 이식을 하더라도 계속 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하네요. 따라서, 이 수술을 받으면, 처음 2~3달 동안 이식한 머리카락이 빠지면서 그 이후에 새 머리카락이 난다고 합니다. 물론, 뒷머리와 같이 남성 호르몬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에서 이식한 모낭이기 때문에 이후 탈모 걱정도 없구요.

- 그동안 입소문으로 전해 들었던 두피 마사지에 대해서도 짧게 언급되어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의 믿음과 기대와는 다르게 입증된 효과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 [탈모의 예방] 머리를 자주 감아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지 않으면, 두피에 발생한 먼지나 기름에 의해서 모공이 막혀 탈모를 더 심하게 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예방과 관련해서 흥미로웠던 것은, 염색이나 퍼머와 관련한 설명이었는데, 퍼머 과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의 머리카락에는 복원력이 있다고 합니다. 퍼머는 일단 알칼리 수를 통해서 이 복원력을 없애고, 원하는 모양으로 만든 후 산성 수를 통해 중화시키면서 변화된 모양으로의 복원력을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퍼머가 퍼머넌트(permanent, 영구적인)의 약자라는 사실은 좀 우습기 까지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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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프레시안)

"백과사전이 인터넷 때문에 없어져? 그건 아냐!" 
[인터뷰] <인간>, <지구> 낸 DK의 조너선 메트칼프
 

백과사전이 달라지고 있다. 넉 달 간격을 두고 출간된 <인간(Human)>, <지구(Earth)>는 21세기 백과사전이 어떻게 바뀔지를 예고한다. 이 책들은 '인간', '지구'와 같은 하나의 열쇠말을 통해서 그간 인류가 쌓아올린 온갖 지식을 한 권의 책에 총망라하고 있다. 책 전체에 걸쳐 실린 내용의 이해를 돕는 사진은 세계의 출판 수준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인간>(김동광·이용철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은 몸, 마음, 인생, 사회, 문화, 민족, 미래의 일곱 섹션으로 나뉘어 각각에 대한 그간의 학문적 성과를 집대성한 책이다. 온몸의 구석구석을 훑는 '몸' 부분부터 250종 이상의 민족, 언어, 풍속을 소개한 '민족' 부분까지 책장을 넘기기만 해도 잘 정리된 정보에 뿌듯할 정도다. 동양, 한국에 대한 정보는 특별히 역자들의 노고로 정확도를 기했다.

<지구>(김동희·이동찬·이상훈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역시 제목대로 '우리별 지구'에 대한 모든 것을 담았다. 육지, 해양, 지하, 하늘을 넘나들며 지구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자연 현상을 생생한 사진 및 정확한 정보와 함께 소개했다. 특히 지구 온난화에 대한 명쾌한 서술은 이것이 왜 과학계에서는 '공인된 진실'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 책은 모두 영국의 출판사 DK(The Dorling Kindersley)에서 나왔다. DK는 도감, 백과사전, 어린이 책에 관해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30년 전통의 출판사다. DK의 영향력은 '동해'의 표기를 놓고 한일 양국 정부가 신경전을 벌일 때, DK가 '일본해'와 '동해'를 병기하기로 한 결정이 언론에 널리 보도된 것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21세기가 시작하자마자 DK는 <동물(Animal)>(2001), <지구(Earth)>(2003), <인간(Human)>(2004)을 차례로 내놓았다. 새로운 세기에 걸맞는 출판의 새로운 방향을 의욕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프레시안>은 <인간>, <지구>의 국내 번역·출간에 맞춰 21세기 출판의 한 경향을 선도하고 있는 DK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기로 했다.

<인간>, <지구>는 물론 국내에 아직 소개가 안 된 <동물>을 직접 기획·편집한 DK의 조너선 메트칼프 편집인이 인터뷰에 응했다. 메트칼프 편집인은 DK에서 20년 이상 편집인으로 근무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이메일(email)을 통해 진행됐다. 다음은 그가 직접 작성해 보내준 이메일 인터뷰 전문.

"편집자와 디자이너의 대등한 파트너십이 필수적이다"

프레시안 : <인간>, <지구>는 몇 개 나라에서 번역·출간되었는가?

조너선 메트칼프 : 영국,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영어권 국가 이외에도 <인간>은 17개 언어로 19개국에서 출판됐다. 그리고 <지구>는 23개 언어로 29개국에서 출판됐다.

프레시안 : 영어권 국가에서 <인간>, <지구>의 반응은 어떤가? 영어권 국가와 비영어권 국가 사이에 반응에 차이가 있는가?

메트칼프 : 사실 처음부터 이들을 시리즈로 출판할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나온 책 중 가장 광범위한 내용을 권위 있게 다루면서도, 가장 비주얼한 방법을 통해 일반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참고서를 만들고자 했을 뿐이다.

그러나 시리즈의 첫 번째에 해당하는 <동물>이 전 세계적으로 100만 부 이상 판매되는 믿을 수 없는 성공을 거두면서, 우리는 '지구'와 '인간'처럼 다른 핵심 주제에 대해서도 동일한 편집, 표현 방식을 적용하게 되었다.

영어권과 비영어권 사이의 차이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주제부터 보편성 있는 것들을 택했고 내용도 전 세계인에게 유용하면서도 공감할 만한 것들로 채운 탓이다. 물론 영어권 국가에서 판매량이 더 많다. 이 지역의 성숙한 출판 시장은 전체 판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프레시안 : <인간>, <지구>의 출간 작업에는 다양한 저자와 많은 스태프가 참여했다. 그들의 협력 작업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과정을 간단히 설명해 달라.

메트칼프 : 어떤 주제가 주어지면 우리는 그 주제에 대해 폭넓은 지식을 갖춘 편집장을 찾으려 노력한다. 책의 청사진을 그리기 위해 DK의 편집자와 디자이너는 편집장과 함께 책의 구조와 내용에 대해 아이디어를 짜낸다. 그 결과물을 DK의 간부, 미국의 스미스소니언박물관 같은 제3의 권위 있는 기구, 전 세계 출판 파트너들이 평가를 한다. 평가를 반영해 수정한 청사진에 따라 편집장은 섹션별로 저자와 전문 자문위원을 추천·지정한다.

그 뒤 섹션별로 함께 일할 편집자, 디자이너를 지정한다. 이들은 섹션별로 생생하면서도 세밀한 레이아웃을 마련하기 위해 저자, 전문가와 직접 접촉한다. 일단 레이아웃이 확정되면, 그것에 맞춰 들어갈 본문, 사진이 준비된다. 이렇게 준비된 것을 다 종합한 후 다시 한 번 DK의 간부, 권위 있는 기구의 전문가, 편집장(의견이 조율되지 않을 때 최종 결정을 내린다)에게 교정지가 보내진다. 이 과정은 마지막 단계까지 두세 차례 반복될 수 있다.

프레시안 : <인간>, <지구>와 같은 협력 작업을 진행할 때 가지고 있는 특별한 원칙이 있는가?

메트칼프 : 대등한 파트너십이 그 원칙이다. 흥미롭고 유익한 정보를 담고 있으면서도 독자층에게 주목을 받는 책을 내기 위해서는 편집자, 디자이너가 대등한 파트너십에 입각해 함께 일해야 한다. 이들은 서로의 견해를 수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이들은 이 책의 전반적인 기획 의도,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DK의 간부, 자문에 응한 전문가의 견해도 존중해야 한다.

프레시안 : 그런 원칙을 구현하는 데 가장 필요한 자질은 무엇인가? 특히 편집자에게 있어서 어떤 자질이 필요한가?

메트칼프 : 물론 탁월한 편집 능력과 독창성을 추구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유머 감각을 강조하고 싶다. 이것은 편집자와 동등한 당사자인 디자이너에게도 해당된다.

"확인, 확인 또 확인만이 양질의 책을 만드는 방법"

프레시안 : <인간>, <지구>와 같은 책은 정보의 정확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을 어떻게 보장하는가? 원서에는 한국을 비롯한 동양과 관련해서는 소소하지만 부정확한 정보도 보인다.

메트칼프 : 우리는 확인, 확인, 또 확인한다. 해당 분야에서 전 세계에서 최고의 전문가를 선정해 함께 작업을 하려고 노력한다. 또 세부사항에 대해서 전문가, 편집장 또 객관적이며, 이상적으로는, 문화적으로 다른 관점을 지닌 제3자의 입장을 반영하기 위해 권위 있는 기구 등을 동원해 다양한 단계에 걸쳐 점검한다.

불가피하게 일부 실수 또는 의견이나 강조점의 차이가 포함된다. 인쇄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그리고 그 뒤 전 세계에서 인쇄가 들어간 직후부터 우리는 평가와 수정을 하려고 노력한다. 또 이 과정에서 DK와 국제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출판 파트너와의 관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다른 언어로 번역될 때마다 DK는 해당 국가의 출판 파트너와 함께 그 국가와 관련된 특수성을 책에 어떻게 반영할지를 놓고 논의하고 있다.

프레시안 : 사실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책이라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가치중립적일 수는 없다. 예를 들어 환경 위기 문제는 어떤 입장을 가지고 접근하는가?

메트칼프 : 우리는 이 시리즈에서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강하게 부각시키려고 항상 노력했다. 그러나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와 절망뿐인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은 역효과를 초래한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그런 접근보다 더 많은 사람이 우리의 행성과 이 행성에 살고 있는 생물의 아름다움과 다양성에 대해 인식하도록 했다. 그들이 더 많이 이해하게 됨에 따라 우리의 행성을 소중히 여기고 보호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프레시안 : DK는 판형의 변형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비영어권의 경우에는 번역 과정에서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메트칼프 : DK의 비즈니스 모델은 전 세계로부터 많은 고객과 시장을 끌어 모아 가능한 한 야심찬 대형기획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핵심이다. 공동 제작 비즈니스 모델로 달성된 규모의 경제에 힘입어 DK는 다른 방식보다 훨씬 더 널리 우리의 책을 출판할 수 있다. 최소의 비용으로 공동 제작을 하기 위해서는 모든 출판 파트너에 있어서 이미지와 레이아웃은 동일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다른 언어로 번역될 때 본문 길이가 늘어나는 현상은 여러 언어에서 나타나는 문제다. 독일 지사에서는 영어가 독어로 번역될 때 3분의 1 정도 더 늘어난다는 점을 늘 제기한다. 우리는 이미지 주변에 충분한 여백을 두어 번역으로 늘어난 본문이 들어갈 공간을 확보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적절한 부수적 편집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점을 인정한다.

프레시안 : DK가 공동 제작을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DK의 출판 노하우를 배우고 싶은 한국의 출판사 입장에서 이런 DK의 태도는 다소 이기적으로 여겨진다. (DK는 번역 과정에서 판형의 변형을 허락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든 책을 직접 제작해 공급한다.)

메트칼프 : 공동 제작 모델은 위에서 설명한 대로, 우리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적인 제작 방식이다. 이런 방식을 취하지 않고는 우리가 추진하는 프로젝트들에 필요한 자금을 적절하게 조달할 수 없을 것이다. 공동 제작은 긴밀한 협력이 요구되고, 그 속성상 DK가 노하우를 출판 파트너와 공유함으로써 최선의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21세기에도 책의 미래는 낙관적이다"

프레시안 : 기존의 유명한 백과사전이 종이 기반에서 인터넷 기반으로 옮겨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인간>, <지구>와 같은 책을 왜 기획했는가?

메트칼프 : 학술서적이라기보다 상품을 제작하는 출판사로서 우리는 이런 유형의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만큼 수입을 올리는 온라인 모델이 없다. 또 종이가 아닌 다른 매체를 통해 <인간>, <지구>같은 제목을 단 책이 나올 때, 그 영향과 질에 대한 충분한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프레시안 : <인간>, <지구>의 가장 큰 장점은 텍스트와 그래픽의 결합을 통해 효과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데 있다. 그러나 이런 형식의 정보 전달은 이미 월드 와이드 웹과 같은 인터넷 환경에 가장 적합하다. 굳이 종이 책에서 이런 방식의 정보 전달을 고집할 이유가 있는가?

메트칼프 : 위에서 말한 것에 덧붙인다면, 나는 정보가 화면상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책의 형태로 제공되는 종이에 찍힌 본문과 이미지 정보를 우리가 섬세하게 결합해 인식하는 방식을 염두에 둘 때, 또 우리가 쪽을 옮겨가며 참조할 수 있는 속도를 고려할 때 아직까지 책보다 더 나은 수단은 없다.

프레시안 : 앞의 질문과 연관 지어서 과연 앞으로 백과사전 더 나아가 종이 책은 어떤 운명에 처할 것으로 보이는가? <인간>, <지구>가 과연 백과사전, 종이 책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가?

메트칼프 : 막대한 정보를 취급하고, 실시간으로 변하고, 새로운 연구로 인한 잦은 수정이 불가피한 학술적인 백과사전의 경우 인터넷의 등장으로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매력적인 이미지와 함께 정제되고 철저하게 검증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면 <인간>, <지구>와 같은 책의 미래는 매우 밝다고 생각한다.

이런 요소로 인해 이 책은 학습을 즐겁게 만들고, 특히 가정에서는 지식을 집약한 소중하고 감사한 선물로서 건네질 수 있을 것이다. <인간>, <지구>는 21세기의 인터넷 시대에도 여전히 책상의 한 쪽에 놓여질 것이다.

프레시안 : 당신은 책의 미래에 대해 낙관하는가? 책의 미래는 어떨 것 같은가?

메트칼프 :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나는 DK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이다. 물론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우리가 정보를 수집하고 분류하는 방식은 항상 변화하고 있으며, DK도 항상 변화해야만 한다. 현재 우리는 우리 자신을, 모든 자료를 디지털화해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출판할 것인지 선택할 여지가 넓다.

변화가 필요하지만 책의 미래는 낙관적이다. 일단 더 전통적인 형식의 책을 선호하는 베이비붐 세대와 그 위의 세대가 여전히 있다. 더 나아가 권위가 있으면서 정보가 풍부할 뿐 아니라 아름답고, 즐겁고, 사고의 확산을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책을 계속해서 만들어 낸다면 보다 젊은 시장 역시 확보하고 유지할 수 있다고 낙관한다.

한국에서도 인기…열흘 만에 1000부 팔려

메트칼프 편집인의 낙관은 한국 시장에서도 어느 정도 입증되고 있다. 지난 9월에 먼저 나온 <인간>은 언론의 조명을 크게 받지 못했음에도 입소문만으로 인터넷 서점을 중심으로 넉 달 만에 3000부가 팔렸다. 5만5000원이나 되는 책값을 염두에 두면 보통의 책 2만 부가 팔린 것과 비슷한 효과다.

최근 출간된 <지구>는 거의 모든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열흘 만에 1000부가 팔렸다. 역시 5만9000원이라는 고가를 염두에 두면 의미 있는 판매량이다. 돋보이는 기획과 양질의 정보가 뒷받침된다면 책값의 고저와 상관없이 찾는 독자층이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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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프레시안)

"뒷거래 구조 청산에 가장 완강히 저항하는 집단이 언론" 
노대통령, 언론 맹렬비판…"기자들이 기자실서 기사 방향 담합"
 

2박3일의 해외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노무현 대통령이 건강 이상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17일, 2007년 들어 3번째 국무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뒷거래 구조의 청산에 가장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는 집단이 바로 언론집단"이라고 다시 언론을 맹공했다.

또한 노 대통령은 "어떤 정책이 대선용이냐 아니냐를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대선용이다 아니다는 시비에 대해 전혀 위축되지 말고 각 부처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란다"고 국무위원들에게 당부했다.

노 대통령 "해외 기자실 실태 파악해 보고하라"

이날 노 대통령은 "우리가 하는 모든 정책을 다 대선용이라고 이렇게 꼬리표, 딱지를 붙여 비방하고 있다"고 포괄적으로 언급한 것 외에는 4년 연임제 개헌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대신 언론으로 화살을 돌렸다.

노 대통령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보고 받은 '국민건강증진계획'이 어제 TV에 나올 때는 단지 그냥 '출산 비용지원' '대선용 의심' 수준으로 폄하되고 말았다"며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방송사의 보도방향에 대해 노골적 불쾌감을 표시했다.

노 대통령은 "역사적 맥락에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안타까운 (언론) 상황을 평가할 수 있고, 작게 보면 기자실이란 것이 이런 기사를 획일화하는 부작용이 있다"며 " (다양한 보도가 나올 수 있는데) 획일적으로 출산비 부담으로 나온다. 이게 어디서 만들어졌냐면 기자실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부처 기자실로 책임을 돌렸다.

노 대통령은 "보도자료를 갖고 충분히 브리핑을 할 때는 많은 내용이 있는데, 그것을 하나로 어느 방향으로 보도할 것이냐를 딱 압축시키는 작용을 어디서 하냐면 기자실이라는 곳에서 한다"고 덧붙였다. 부처 기자실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보도 방향을 담합하고 있다는 것.

이어 노 대통령은 "특히 외교부 장관에게 부탁드리는데, 각국의 대통령실과 각 부처 기자실의 운영 상태를 보고해 달라"고 지시했다.

노 대통령은 "몇몇 기자들이 딱 죽치고 앉아 가지고 기사의 흐름을 주도해 나가고 만들어 나가는, 있는 것을 보도하는 것이 아니고 보도자료를 가공하고 만들어 나가고 담합하는 구조가 일반화 되어 있는 것인지 보고해 달라"며 이같이 지시했다.

노 대통령은 "보고를 한 번 더 다시 해 주시고, 남은 1년 동안이라도 필요한 (언론) 개혁은 할 것은 다 하도록 그렇게 방향을 잡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언론과의 갈등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갈 뜻을 분명히 했다.

그 대신 노 대통령은 현 정부의 정책 기조에 대해서는 강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노 대통령은 "우리가 87년 체제를 마무리하고 21세기 새로운 시대로 들어간다"며 "국민의 정부에서부터 경제 체제는 87년 이전 체제를 다 청산했고 참여정부가 정치영역에서 87년 체제를 마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소위 특권과 유착, 반칙과 뒷거래의 구조를 청산하는 것인데 여기에 가장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는 집단이 바로 언론집단"이라고 덧붙였다.

"대선용이라는 시비 개의치 말고 일하라"

한편 노 대통령은 "요새 우리 한국 정가에는 '대선용'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상당히 심기를 어지럽히고 있다"면서 "실제로 있지도 않은 남북 정상회담을 꺼내서 '그것은 대선용 아니냐?'라고 몰아치고 시비를 한다"며 남북정상회담 추진에 관한 각종 '설'들을 부인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어차피 정당이, 정치인이 국정을 주도하고 있는 마당이니까 어느 것이 대선용이고 어느 것은 대선용이 아니라고 어떻게 구별할 수 있냐"며 " (그런 비판은) 현대 정당정치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대선용이라고 시비 걸릴 것 아니냐' 이런 데 일체 개의치 말고 국민을 위해 '옳은 일이냐 아니냐' 이것만 판단해서 일을 해 주시기 바란다"고 국무위원들에게 당부했다.

이는 야당이나 언론의 '정략적 비판'에는 개의치 않고 각종 의제들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노 대통령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남은 1년 기간' 동안 언론과의 전면전을 선언함에 따라 청와대는 물론 다른 정부 부처들의 대언론 긴장감도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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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말 말 - 대한민국사를 바꾼 핵심 논쟁 50
권오문 지음 / 삼진기획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 정부 수립 직후 부터 오늘날까지 한국사회의 논쟁들을 두루 갈무리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논쟁들을 신문기사 위주로 갈무리해 놓은 강준만 교수의 <한국 논쟁 100>과 비교해 볼 때, 시간의 범위는 더 넓고 분야는 더 압축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크게는 정치, 문학, 종교를 다루고 있고, 분야와 상관 없이 근래의 논쟁을 따로 묶어놓았습니다. 책의 특성상 발췌독하심이 좋을 듯 합니다. 기억에 남는 부분만을 짧게 기록합니다.

3. 좌익 간의 대립 - 통일국가의 혁명방식은 무엇인가

- 대부분의 책들은 해방 이후 통일정부 수립과 관련한 논쟁과 쟁투를 다루면서, 너무나 간단히 '공산주의 세력' 또는 '좌익세력' 이라는 분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정 정치 세력에 대해 이름을 붙이는 것은 굉장히 정치적인 행위일진데, 이들의 이런 방식은, 모두어 '공산주의 세력'이라 불리우는 다양한 정치조직 내의 다양한 견해를 전혀 표현해주지 못할 뿐더러, 심지어 왜곡하고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 해방 직후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어떤 정치조직도 사회주의 혁명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이 정치조직들은 해방 직후 조선사회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달성했다고 결론 내리면서, 그 이상 정치활동을 밀고나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필자가 다루고 있듯이, 조선공산당과 조선인민당, 조선신민당과 같은 공산주의 표방 조직들의 논점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을 어떻게 완수할 것인가" 였습니다. 러시아에서 1917년 (부르주아 민주주의) 2월 혁명 이후, 레닌의 귀국과 함께 볼셰비키당이 연속혁명(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에 곧이은 사회주의 혁명)을 선택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이들은 미군정을 모종의 진보세력으로 인정하거나, 최소한 협조를 약속합니다. 많은 책들이 이런 내용을 정확하게 다루지 않고 있지요.

- 개인적으로는 백남운 교수의 행적이 인상깊었습니다. 백남운 교수는 일본의 식민지배 시절 역사관과 관련해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도 등장하는데, 실증사관, 민족사관과 더불어 사회경제사관을 주도한 인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의 책 <조선사회경제사>는 변증법적 유물론 사관에 입각해 조선사회를 기술한 것이라고 하는데, 한번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여튼, 해방 전 그는 연희전문과 경성제대 교수였는데, 해방이 다가올 무렵 중국 화북지방의 공산주의 세력들이 만든 조선독립동맹에 참여하게 되고, 이 조직은 이 후 조선신민당으로 조직 전환을 하게 됩니다. 그는 조선신민당 남측지부의 책임자였죠.

- 그는 해방 직후 정부 수립과 관련된 논쟁에서 '연합성 신민주주의' 를 주창하며 논쟁의 핵심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연합성 신민주주의란, 여운형 선생이 주도한 좌우합작, 김구 김규식 선생이 주도한 남북연합과 같은 맥락에 있는 것으로, 당장의 최우선적 과제를 민주주의 통일정부 수립에 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 점에 대해서는 조선공산당 역시 같은 의견이었으나, 조선공산당의 경우 우익세력과의 연합에 있어서 더욱 원칙적이었다고 보여집니다. 이를테면, 친일파나 한국민주당의 참여 같은 부분에서 이견이 있었겠지요.

- 백남운 교수는 조선공산당과 대립했고, 이 후 (조선공산당과 한국민주당, 한국독립당은 참여하지 않았던) 근로인민당의 좌우합작운동과 남북연석회의를 주도하다 월북하게 됩니다. 초대 북한정부의 교육상을 거쳐 이후에는 노동당에서 꽤 높은 서열까지 올라갔던 것으로 되어 있군요.

4. 찬탁이냐 반탁이냐 -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 문제

- 찬반탁 논쟁과 관련해서도 대부분의 책들이 너무 도식적으로 소개한다는 생각입니다. 이 책들은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을 신탁통치로 결정내리고, 이후 치열하게 벌어진 논쟁 역시도 신탁 찬성/반대로 도식화하고 있지요. 당시 찬탁운동을 주도했던 민주주의민족전선(민전)의 주된 구호는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 지지' 이지 '신탁통치 찬성' 이 아니었습니다.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사항에는 신탁 혹은 후견 문제와 더불어 조선의 통일정부 수립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미소공동위원회를 개최한다는 내용 역시 포함되어 있었고, 회의의 결정사항이 신탁이냐 후견이냐를 두고 미군정의 공식채널 조차도 혼선이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미군정의 고의적인 정치술수이냐 아니냐를 논외로 하더라도 말입니다.

- 김구 선생이 주도했던 국민회의(?)가 경찰지휘권을 접수하려 했던 사실은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군요. 당시, 경무부장이 조병옥이었다고 합니다.

6. 가짜인가 진짜인가 - 김일성의 항일투쟁 진위를 둘러싼 논란

- MBC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 할 수 있다> 에서도 다루고 있는 내용인데, 역시 확실한 결론을 내리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이승만 정부, 박정희 정부를 거쳐 1980년대까지 오래도록 지속된 논쟁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승만, 박정희 정부 시절 '김일성 가짜론' 을 주창했던 이들이 한국민주당 간부, 만주 봉천 고등계 형사, 국가재건최고위원회 공보실 기획관 출신이라는 사실은 별로 놀랍지 않군요.

8. 남침인가 북침인가 - 한국전쟁 발발 원인을 둘러싼 견해 차이

- 한국전쟁의 원인과 관련한 논쟁구도를 적절하게 잘 소개하고 있습니다. 대립적인 전통주의와 수정주의로 큰 축을 나누고(소련의 세계 제패야욕 - 미국의 팽창주의 정책 내지 전쟁유도설), 수정주의에서 파생되긴 했지만 두 가지 입장을 절충하고 있는(누가 먼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후기 수정주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알라딘 검색에서는 최근 발간 순서대로 책이 정렬되니 브루스 커밍스, 존 할러데이와 같은 후기 수정주의 학자들이 주로 눈에 띄지요.

한국 문화계를 달군 격렬 논쟁들

- 문학계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보니, 괜시리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것 같아 흥미를 잃었습니다. 주된 논쟁의 축은 '현실 참여'를 둘러싼 것이라 보여집니다. 작가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현실에서 밥벌어먹는 작가라면 소재를 선택하는 순간 이미 사회와 연관을 갖게 되는 것 아닐까요. 차이는 '정도' 에서 발생한다고 생각되어 집니다. 작품을 두고 이루어진 문학 논쟁이라기 보다는, 정치 논쟁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 올바를 듯 합니다. 문학 논쟁이라면, 다소 소모적으로 느껴지는군요.

논쟁을 통해 본 한국종교

- 기독교, 불교, 유교를 폭넓게 다루고 있고 각 종교 내적인 논쟁 뿐만 아니라 종교들간의 논쟁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습니다. 가장 흥미진진했던 부분입니다. ^^

21. 신에 대한 헌신인가, 성추행의 원인인가 - 가톨릭의 독신제도 시비

- 독신제도가 가톨릭 사제들의 성추행의 원인이라고 보는 것은 참으로 웃지못할 분석이군요.

22. 타종교 비판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 '종교정신'을 놓고 촉발된 종교계 갈등
31. 타종교에도 구원은 있는가 - '종교다원주의'와 감리교의 종교재판

-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입니다. 몇일 전에 읽었던 아놀드 토인비 교수의 <젊은이들과의 대화>가 문득 생각나는 대목이었습니다. 묶어서 읽는 편이 좋을 것 같군요. 논쟁의 시작은 종교 다원주의와 포스트모던 실학을 주장하다가 감리교 교단 내에서 종교재판을 받고 출교 처분을 받는 사건입니다. 출교 처분을 받은 당시 감신대 변선환 학장은 훗날, 출교 처분 덕분에 특정 교단에 연연하지 않고 더욱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다고 씩씩하게 말씀하셨다는 군요. "종교의 우주는 기독교도 다른 종교도 아니고 신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

- 종교 다원주의는 전혀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유일신 사상을 가진 다른 종교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정도에 따라, 절대주의 포괄주의 다원주의로 구분할 수 있는데, 1965년 가톨릭의 2차 바티칸공의회에서는 포괄주의를 결정내렸다고 하는군요. 다원주의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서, 그리스도 중심이 아닌 신 중심의 사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삼위일체와의 마찰은 당연한 것이었겠죠.

- 하지만, 변선환 학장의 말에 따르면, "기독교가 유일신 사상 때문에 종교 다원론을 용납할 수 없다."는 일반적인 시각은 무지의 소산이라고 합니다. 유대교 처럼 특정 민족만을 위한 신이 아닌 이상, 한분 밖에 없는 신은 특정 종교를 대상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이죠. 매우 인상적입니다.

34. 현실참여 vs 교리적 정당성 - 불교도 민중에 눈을 돌려라

- 불교도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1980년대, 적극적으로 현실에 참여하고자 하는 흐름이 있었다고 합니다. 1985년에는 민중운동불교연합이라는 단체를 조직하고 기관지 <민중법령>까지 발행했습니다.

- 논점은 '민중불교' 라는 명칭, 정토사회의 성격, 구제의 문제, 폭력성에 관한 문제까지 폭넓게 형성되었는데, 정토사회의 성격과 관련한 논쟁이 웃지못할 정도입니다. 민중운동불교연합 측에서는 무소유에 초점을 맞추어 계급적 불평등과 착취가 없는 사회를 강조한 반면, 교단 측에서는 재가자의 사적인 소유를 인정했다는 점을 들어 불교에는 자본주의적 요소가 더 많다고 했다니.. 허허 웃을 일입니다.

38. 다름과 차이 - 여성해방론을 둘러싼 갈등

- 해방 이후 좌파 비평가들과 노천명, 조연현 문학가들 사이에 벌어진 논쟁 부터 1990년대 조직된 여성주의 모임과 단체들까지 여성운동 전반을 폭넓게 훑고 있습니다. 1930년대 여성주의 문화활동가로 알려진 강경애, 나혜석, 백신애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큰 기쁨이었습니다. 알라딘에서 찾아보니, 저만 모르고 있었을 뿐, 꽤 많은 책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 여성의 특성이 배제된 남녀평등과 특수성이 인정되는 평등 간의 갈등도 간략하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강준만 교수의 <한국 논쟁 100>을 읽으면서도 느낀 점이지만,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분야에 '여성 할당제'가 있지요. 저는 이런 제도들에 대해서 비판적이지는 않지만, 다소 기형적이라고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성장과 사회화 과정에서의 차별만 없다면 분명 여성들도 남성들과 다를 바 없는 능력을 발휘할진데, 이런 제도들을 시행하더라도 후자에 확실하게 방점을 두고 보완적으로 시행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특수성을 인정하는 남녀평등은, 출산과 육아와 같은 신체적 특징과 관련된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시행되어야 하겠죠. 아 여성문제만 나오면 너무 부끄럽군요.

43. 과학 vs 생명윤리 - 인간복제를 둘러싼 논란

- "유일무이한 존재로서의 인간이라는 개념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는 걱정 보다는, 인간 복제 역시 시장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활용 영역의 설정이 무위로 돌아갈 것이라는 비관이 앞섭니다. 유이한 인간일지언정, 인간 복제 사회 이전의 인간일지언정, 존엄성이란 끊임 없이 위협받고 있는 것 아닐까요. 유일무이한 인간도 노동시장에서는 대부분 이윤의 도구로 계산되고 활용되고 있으니까요. 확실한 것은, 인간 복제가 시작되는 순간 의학의 영역에서만 그것을 활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전쟁을 위한 병사를 만들고 판매하던 스타워즈가 생각나는군요. 제도적인 금지는 반드시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도적인 금지는 한시적인 효과만 발휘할 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겠죠.

44. 한글 vs 한자 - 전용이나 혼용이냐

- 한글 전용과 한자와의 혼용을 두고 오락가락하는 과거 정부의 행적을 보며 웃음을 감추기 힘들었습니다. 일관성 없다는 비판 보다는, 그저 정부의 의지가 부족했거니 생각됩니다.

- 언어 문제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만, 언어와 관련해서는 제도를 통한 규제에 대해 다소 회의적입니다. 언어는 어디까지나 의사소통의 도구로서 사회의 큰 흐름에 종속적인 것이 아닐런지요. 끊임 없이 변화하고 또 변화하는 것이겠죠. 기존 문화의 장점을 보존하려는 이들과, 새로운 문화의 장점을 소개하려는 노력을 함께 권장하면서, 선택의 문제로 남겨두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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