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각의 감옥으로부터의 해방

이 땅에서 자유주의자로 산다는 것은

- 자유주의가 무엇인가
: 극우 세력들이 자유주의자를 참칭했기 때문에, 진정한 자유주의자들까지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좌익분자' '급진세력' 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했다.
: 자신과 다른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은, 어떤 '주의자'를 떠나서 기본적인 것이다.
: 유럽에서 '자유주의자'라고 하면, 신자유주의자를 의미한다.
- 자칫 자유주의자를 자처했다가, 스스로를 좌파라고 믿는 자유주의자들로부터 재벌 앞잡이와 한 패거리 라는 욕을 먹을지도 모른다.
- 자유주의자로서의 기본 덕목: (1) 시장경제의 유일성 (2) 시장경제와 조화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시스템은 다당제와 보통선거에 기반한 의회민주주의 (3) 자유는 분할할 수 없다

나는 국론통일이 싫다

- "국론 분열을 조장하는 행위를 발본색원하고 온 국민의 총화단결을 이루는 데도 결단코 반대한다. 그렇게 해서 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 "국민 개개인의 이익을 다 합친 것이 국익이라고 생각한다."
* 무엇이 국가의 이익인가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밝혀야.

'한국적 자유주의'의 비극

- 공병호, 복거일 비판
- 자유주의의 역사: 법치와 입헌정치를 강조하는 온건한 자유주의와 평등을 중시하는 급진적 사회주의로 분열

조지 오웰, 2000

- 안기부 대공수사 국장 정형근, 고문기술자 이근안 "없는 사실을 조작하는 것은 공산당의 전형적인 선전선동 수법이자 지리산 빨치산 수법이다."
- 조봉암, 김대중, 박종철, 김근태, 김성학

* DJ 정부
박정희 기념관 국고 100억 지원
출범 1년 동안 490명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

내가 아직도 악몽을 꾸는 이유, 보는 만큼 알게 된다

- 주사파가 생긴 두가지 이유: 경제와 정통성
- 강제전향이 아니라 주사파가 말하게 두어야: 유시민, 김영환, 조유식

국가안보를 위한 위험천만한 초능력

- 국가보안법 적용의 자의적인 잣대 "국가보안법은 행위 당사자의 생각과 의도가 중요하다.", 그리고 불고지죄
- 한국과 미국의 범인인도협정: 국가보안법 관련 대상자는 제외

'음험한 평화'에 도전하는 전투적 자유주의자들

- 자유주의자의 글쓰기: 홍세화, 진중권, 손석춘, 강준만, 김정란

우리가 '미련한 인간들'에게 진 빚

- 민주화유공자보상법, 광주보상법
- 자백 거부 징역 3년, 자백 1년, 괘씸죄 20년
- 애덤 스미스 이후 주류경제학이 연구의 대상으로 선택한 인간은 이기적 개인.
- 이기적 욕망만을 추구하는 개인으로 이루어진 자유방임 체제는 필연적으로 환경을 파괴한다. 따라서, 이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해주어야 한다.

2. '시장'의 미덕과 악덕

시장경제는 들꽃이 아니다
그 많던 경제전문가들은 다 어디로 갔나?
U.S.A 경제학의 한계
성공한 화폐 위조는 범죄가 아니다?
수출은 악이요, 수입이 선이다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우리 나라엔 신문배달부가 너무 많다
사회적 협약은 '화장'에 불과한다?
정작 구조조정의 대상은 경제 권력이다
'과소비'도 때로는 미덕이다
손해는 나누고 이익은 독차지하겠다?
'현대'에서 벌어진 중세의 비극

3. 정치에도 자유경쟁을

정당은 없다
투표하지 않을 권리
더 낮게, 더 천천히, 더 가까이
"넌 좋겠다. TK라서!"
'일해(日海) 대사'의 행복 찾기
깨끗한 절망을 위하여
해바라기는 있다
개인적 원한과 비판은 다르다
그 사건은 제발 들추지 마세요?
비전향 장기수에 관한 단상
"통일하지 맙시다!"
탈북자의 인권과 위험한 이웃, 중국

4. 낡은 권위와의 결별

인문 정신은 누구의 몫인가?
대학 개혁,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희한한 '총단결'의 우울한 여운
'후안무치'는 힘이 세다
웬 군사부일체?
이유 있는 반항
전문성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238<61?
얼굴 있는 '박노해'의 거품
난폭한 화해
나도 때로는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
아직도 '개 옆구리'가 필요하십니까?
지나친 여성화, 지나친 남성화

에필로그 / 다시 슬픔과 노여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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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기념관, 이젠 거두라
 
이달 말로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 사업이 시한 만료된다. 기념관 건립 허용 조건을 보면, 이 사업을 주도하는 박정희대통령 기념사업회에 대한 국고 지원 계획도 철회돼야 한다. 기념사업회가 500억원을 모금하면 200억원을 국고로 보조해 주기로 약속했으나, 모금액이 108억원에 그쳐 공사가 초기에 중단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기념사업회 쪽은 다시 시한 연장을 요구하며 국고 지원에 매달리고, 정부는 정치권 등의 눈치를 보느라 머뭇거리고 있다. 정부는 간명하게 국고 지원을 철회해야 한다.
정부는 애초 2002년 2월까지 기념관을 완공하도록 했다가 기념사업회의 요청으로 시한을 올 10월로 연장해줬다. 별다른 진전 없이 이제 그 기한이 다가온 것이다. 정부가 기한을 재차 연장해주면 또다시 편법을 허용하는 것으로, 이는 국고를 사용하는 최소한의 요건에도 어긋난다. 기념사업회 쪽은 규모를 줄여 구미에 215억원 규모의 기념관을 짓겠다는 대안을 제시했는데, 어떻게든 국고를 타내겠다는 편법에 지나지 않는다.

박정희 기념관은 2000년 총선을 앞두고 대구를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약속한 것으로, 처음부터 무리한 정치적 결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일제와 유신독재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시점에, 친일과 독재의 전력이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기념관만을 서둘러 국고로 지원해 지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박정희 기념관은 현정권이 역점을 두어 추진하고 있는 역사 바로세우기와도 모순된다. 과거사 진상규명의 길이 열려 한쪽에선 친일·유신의 공과를 열심히 파헤치는데, 다른 한쪽에선 미화 일색으로 기념관을 짓는다면 꼴이 우습게 된다. 국민적 합의가 없는 기념관 사업에 혈세를 써서는 안 되며, 굳이 짓는다면 역대 대통령의 사료관이나 현대사 자료관이 먼저다. 이번 기회에 역사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인물에 대한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 사업을 재검토해야 한다.

“박정희기념관 국고보조금 줘야”
행정법원 “지급취소 부당” 판결
 
 
  김태규 기자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안철상)는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가 ‘기부금이 목표치에 미달됐다고 해서 국고보조금 지급을 취소한 것은 부당하다’며 행정자치부를 상대로 낸 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했다고 1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보조금법에서는 ‘사업자 자신이 부담할 경비를 조달하지 못한 경우’를 국가보조금 지급 취소 요건에서 제외하고 있다”며 “기념사업회가 모금해야 할 기부금 500억원도 결국 사업자 자신이 부담해야 할 경비이므로, 이를 근거로 국고보조를 취소한 것은 부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정부가 2002년 7월 ‘100억원을 모금하면 100억원을 보조금으로 집행하겠다’는 수정된 방침을 제시했으나, 사업회가 100억원을 모은 뒤에도 보조금 집행 승인을 미뤄왔다”며 “박정희 기념사업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되고 추진된 사업이라는 견해가 있지만, 행정에 있어서 신뢰보호의 원칙과 비례의 원칙은 모든 행정객체에 동등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선공약으로 시작된 박정희기념관 건립사업은 기부금 500억원이 모이면 208억원의 국고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하고 2002년 1월 착공됐으나, 기부금이 목표치에 미달되자 3월 보조금 지급이 취소됐다.

김태규 기자
 
[사설] 시대착오적인 주체사상 소동
 
[경향신문 2004-11-1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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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이, 북한 주체사상 위협론이 등장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원들이 주체사상으로 무장 중이고, 김일성 방송대학의 인터넷 사이트가 개설돼 체제방어선이 무너졌다는 ‘어머어마한’ 주장이 제기됐다. 보수언론은 대서특필하고, 한나라당은 “철책선 침투보다 위험한 상황”이라고 아우성이다.

진상은 무엇인가. 전공노 조합원 80여명을 상대로 한 외부인사의 강연 내용 일부가 주체사상과 유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일성 방송대학 사이트를 통해 주체사상 원문을 접해볼 수 있게 돼서라고 한다. 설령 강연 일부가 주체사상과 비슷하다 치더라도, 어떻게 그게 전공노 전체의 사상적 성향과 연결되는가. 김일성 방송대학 사이트는 당장 열어보면 안다. 조악한 정지 화면과 ‘김일성동지 로작’ 등으로 짜여 있다. 인터넷 세대에게는 되레 ‘반공교육장’이 될 수도 있는 구성이다.

더욱이 이런 내용은 새삼스러운 것도, 비밀스러운 것도 아니다. 북한 관련 인터넷 사이트는 이외에도 많다. 현행법상 남쪽 주민은 북한 사이트에 회원 가입은 안되지만, 접속은 할 수 있다. 성인이면 누구나 서울 광화문 우체국 6층에 가서 ‘로동신문’을 읽을 수 있다. 정부가 북한 위성TV 시청을 허용한 것은 5년 전이다. 어지간한 서점에서는 주체사상 원문이 담긴 연구서를 구할 수 있다.

이래서 체제가 흔들렸는가. 일련의 북한 자료와 방송 개방 결과는 북한의 일방적 사상 선전이 우리 체제를 흔들 위협이 되지 못함을 웅변한다. 이미 야당도 ‘사상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국가보안법의 단순 찬양고무죄 폐지에 공감하는 상황이다. 이런 판에 인터넷에서 주체사상을 접할 수 있게 된 게 체제를 붕괴시킬 것처럼 떠드는 것은 정치적 의도이거나 아니면 시대착오다. 보수세력들이 인정하듯, 체제경쟁의 승부가 끝난 것이라면 더욱 두려워할 게 없다. 오히려 적나라한 북한 사상의 실체를 접하고, 그 허구성을 비교·판단할 수 있게 하는 게 체제의 건강성을 강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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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박물관 별난이야기 산하어린이 88
허완 외 / 산하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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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전국의 박물관 여행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제목만 보고 구입했더니, 어린이들을 위한 책이더군요. 글자가 시원스럽게 크다는 점과 곳곳에 자리한 귀여운 삽화를 빼면, 꼭 어린이만을 위한 책이라고는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어른들도 잘 모를 법한, 충분히 좋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전국의 박물관을 주제 - 생활 양식, 역사, 기타 - 별로 간단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역사 박물관의 경우 관련된 역사적 사실과 설화들도 간단히 소개하고 있구요. 박물관의 위치와 관람 정보도 짧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지역 별로 가고싶은 박물관을 간단히 정리해 봅니다.

-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서울 종로) - 한민족 생활사실, 농경, 일상
농업박물관(서울 중구) - 선사시대, 삼국시대, 고려 조선시대, 농가월령가, 농기구, 협동유적, 현대농업
명가김치박물관(서울 삼성동) - 김치 종류, 김치독
태평양박물관(서울 신대방동) - 화장문화
전쟁기념관(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서울 종로) - 고구려, 백제, 신라, 불교조각실, 금속공예실, 고려자기실, 서화실, 중앙아시아실
삼성어린이박물관(서울 신천동) - 신체 표현과 도전, 과학 탐구실, 어린이 방송국, 인체 탐험실, 멀티미디어, 창의적 미술
한국잡지박물관(서울 청진동)
경찰박물관(서울 종로)
국악박물관(서울 서초)
롯데월드민속박물관(서울 잠실동)
삼성출판박물관(서울 영등포)
서울디자인박물관(서울 방배동)
석주선기념민속박물관(서울 용산)
숭실대학교부설한국기독교박물관(서울 동작구)
LG사이언스홀(서울 영등포구)
외교박물관(서울 서초구)
우정박물관(서울 중구)
절두산순교기념관(서울 마포구)
한국현대의상박물관(서울 중구)

- 경기권

강화역사관(인천 강화) - 선사시대 유물, 강화의 역사와 문화, 몽고 침입, 한말 서양 침입
광릉수목원산림박물관(경기 포천시) - 원시림, 산림의 역사, 세계의 입업, 한국 임업의 역사, 산 야생초
철도박물관(경기 의왕시) - 철도의 역사, 모형실, 신호 통신실, 철도망 표시판
신세계한국상업사박물관(경기 용인시)
중남미문화실(경기 고양시)
청구세계민속관(경기 성남시) - 세계의 주거문화

- 충청권

독립기념관(충남 천안)
보령석탄박물관(충남 보령)
한독의약사료실(충북 음성)
한밭교육박물관(대전 동구)

- 강원권

선교장민속자료박물관(강원 강릉) - 조선 양반 주거문화

- 전라권

국립공주박물관 - 백제 문화, 동학운동
국립부여박물관 - 백제 문화
동진수리민속박물관(전북 김제) - 수리 시설, 김제 평야
보석박물관(전북 익산)

- 경상권

국립경주박물관 - 신라 문화
국립진주박물관 - 가야 문화
거제박물관(경남 거제) - 선사시대 유물, 포로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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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다슬 고려대학교 법학과 4년 나우누리 힙합동아리 Dope Soundz 활동)

1.힙합의 개요

I. 힙합의 개요

[1] 글쓰기에 들어가며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아직 생소했던 "힙합"이란 단어가 이제는 음악 그리고 패션을 선두로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오고 있다. 가요계에서는 많은 가수들이 소위 "정통 힙합"을 표방하며 앨범들을 내놓고 있고, 거리에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 "힙합패션"의 물결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나라에도 힙합이 일개의 문화적 주류로서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불행히도 위의 질문에는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아직 힙합이라면 현란한 춤동작만을, 혹은 청소년들의 헐렁한 차림새만을 떠올리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힙합은 하나의 독립된 문화로 인정받기 보다는, 특정 연령층의 사회저항적이고 counter-culture적인 성향을 대변하는 청소년기의 문화적 외도 내지는 유행으로 밖에 인식되지 못한다. 기성세대 속에서 힙합은 그 문화적 가치를 부정당하며, 설사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도 힙합의 어느 한면만을 바라보고 편협된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현상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에 힙합 음악의 잘못된 유입과정을 그 첫번째 원인으로 들 수 있겠다.

처음 힙합이란 장르가 대중들에게 소개될 때, 그 방법은 간접적일 수 밖에 없었다. 즉, 라이센스된 힙합음반이 정식으로 유통되지 않던 상태에서 외국(미국)의 힙합음반을 구하는 방법은 몇 않되는 레코드점에서 직접 수입해 들여온 고가의 시디를 구입하는 수밖에 없었으나, 이는 일반인들에게 손쉽지도 널리 알려져 있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대중은 일부 국내가수들이 배워온 후 이를 한국적으로 변형시켜 내놓은 소위 "힙합"을 진짜 "힙합"으로알고 들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왜곡된 힙합을 듣고 잘못 끼운 첫 단추는 계속하여 옷모양새를 흐트려 놓았고, 이를 유행시켜 상업적으로 이용 하려는 대중매체가 가세함으로서 이러한 현상을 부추겼다.

그 후 한국에서의 힙합은 본토의 힙합과는 어느정도 거리가 있는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로 발전해 갔다. 그러나, 한국적으로 변형된 힙합은 이미 그 순수한 의미의 힙합일 수 없다. 주체적 수용이 반드시 무조건적 변형을 의미할 수는 없듯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제라도 힙합의 진정한 의미를 올바르게 파악하는 것이다. 한국화 작업은 그 본질을 이해하고 파악한 후의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이 네티즌들이 힙합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미 이러한 작업은 가요계에서도 많은 부분에서 그 성과를 드러내고 있기에 한국에서의 힙합은 그 미래가 어둡지 않다.

[2] 문화로서의 힙합

힙합은 음악만도 춤만도, 그리고 패션만도 아닌 이들 모든 요소를 포괄하는 문화로서의 개념이다. 힙합을 춤으로만, 음악으로만, 또는 패션취향으로만 이해하는 사람은 힙합의 어느 일면만을 바라보는 것이다. 철학가이자 DJ, 또 MC이기도 한 KRS-One은 힙합을 "미국에서 독자적으로 만들어진 유일한 문화"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렇듯, 힙합은 하나의 문화 로서, 그 요소를 모두 나열하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나, 일반적으로 MCing, DJing, Tagging, 그리고 B-boying을 그 대표적 네 요소로 든다. MC는 Mic Checker 또는 Mic Controller의 약자로 말 그대로 관중들 앞에서 랩을 하는 사람을 가르킨다. 그러나 MC는 단순히 랩을 하는 사람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자신이 직접 가사를 쓰고, 그것을 관중들에게 선보이며, 이로써 평가받는 사람을 MC라고 한다. 그래서 유명한 MC인 Rakim은 MC를 "Move the Crowd(관중을 감동시키는 -자-)"라고 하기도 했다. 이 MCing의 요소가 바로 힙합음악에서 가장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DJ는 Disc Jockey의 약자로 MC에게 음악을 제공하는 사람이다. 과거에는 요즘과 같이 디지털음악재생기구가 발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행사가 있으면 DJ들이 두 대의 턴테이블과 믹서로 음악을 틀어주었고 중간중간에 MC가 랩을 함으로서 힙합음악이 발달하게 되었다. 그래서 80년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MC들은 DJ와 함께 팀을 이루곤 했다(Eric B. & Rakim, Salt'n Pepa, RunDMC, GangStarr등). 물론 DAT와 같은 매체의 발달로 최근 DJ의 중요성이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아직 많은 DJ들은 프로듀서로 활동하거나 DJing을 하나의 음악적 장르로 발전시켜 Turntablist란 명칭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Tagging은 Graffiti Artist들이 작품을 완성하고 자신들의 이름이나 별칭(initial)을 그리는 것을 말하며, 이들을 tagger라고 부르기도 한다. Graffiti Art는 벽이나 전철 또는 다리교각 같은 곳에 에어스프레이 페인트로 독특한 모양의 글자라던가 그림, 또는 문구를 그려 넣는 것을 가르키며, "범죄와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의 형태이다. 오늘날에 와서는 Graffiti Artist가 더 이상 범죄자가 아닌 예술가로서 명성을 떨치기도 한다. 실제 미국에서는 각 도시마다 대표적인 Graffiti Artist들이 작품전을 열기도 한다.

B-boy(B-girl)에서의 "B"는 breaking (break dance)를 가르키며, 곧 B-boy는 Break Dance를 전문적으로 추는 사람을 일컫는다. DJ들은 간혹 음악을 틀다가 break(노래 중간에 비트만 나오는 구간)부분을 계속하여 들려주는데, b-boying은 이 때 이 break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원래 그 기반은 디스코 댄스이며, 차츰 독자적인 breakin 만의 기술 개발로 80년대 그 전성기를 이루었다. 미국에는 'breakin'을 전문으로 하는 댄스팀(Rock Steady Crew등) 이 구성되어 있으며 매년 패스티발을 열어 서로의 실력을 과시하기도 한다. 90년대 들어서는 힙합스타일이라고 하여, 보다 자유스럽고 즉흥적인 형태의 춤을 선보이기도 한다.

위에서 힙합의 대표적인 네가지 요소를 살펴보았지만, 이 외에도 패션이라든가 언어와 같은 많은 부문이 모두 힙합문화를 구성한다. 그러나 역시 이들 모든 요소를 일축하는 것은 바로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DJing과 MCing 모두 힙합음악을 그 대상으로 하고, B-Boying도 음악을 기초로 할 뿐 아니라, 패션등도 모두 음악을 기반으로 발전하였다.

다음 회부터는 힙합음악의 간략한 역사와 분류, 그리고 그 특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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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를범 딴따라분석 전문기자, 딴지일보)

"어떤게 진짜 힙합이냐?"
이 질문은 듀스가 무지막지한 춤을 추며 원류에 가까운 힙합을 처음 선보였던 92년부터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제기되고 있는 논쟁의 화두다. 간단명료하게 말하면 이런거다.

"흑인음악인 힙합을 그 스타일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옳은 거냐, 아님 한국식으로 소화하는 게 옳은 거냐?"

이 쌈은 업타운과 드렁큰 타이거가 본토 출신임을 강조하며 가요계에 등장하면서부터 더욱 가속화 되었다.지금은 걔들이 약 때문에 콩밥을 먹는 관계로 다소 수그러들었지만 그래도 짚고 넘어갈 건 짚고 넘어 가야 한다. 큰데, 감방에서도 인터넷 되나? 걔들도 같이 함 봐봤으면 좋겠는데..

암튼, 업타운을 비롯한 교포 출신들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힙합은 미국 뒷골목 흑인들이 지네들끼리 주저리주저리 마음 속에 담은 얘기들을 지껄이면서 시작된 음악이다. 그 속엔 흑인들의 리듬감각과 분노와 모든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고로, 그 음악을 제대로 하려면 미국 뒷골목에서 흑인들이랑 뒤엉켜서 빠구리도 해보고 약도 해본 우리 같은 인간들이다…."

반대로 이현도부터 시작해 김진표, 허인창, 조pd, 거리의 시인들을 아우르는 국내파들의 주장은 이런거다.

"어느 민족의 문화건 다른 토양으로 옮겨졌을 때는 다른 모습의 - 그러나 근본은 같은 - 꽃을 피우게 마련이다. 힙합이 비록 흑인음악이나 우리에겐 우리만의 정서가 있고, 우리만의 표현방식이 있다. 고로, 한국에서 자라 한국인들의 고민과 문제를 잘 이해하는 우리가 하는 힙합이야말로 제대로다…."

다른 민족이 시작한 음악을 고대로 똑같이 따라 해야 할까, 아니면 우리식으로 변형해서 해야 될까… 어떻게 보믄 유치한 질문인데, 해답을 찾기는 의외로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럼 이렇게 함 질문을 바꿔 보면 어떨까? 로버트 할리와 DMX 중 판소리를 가르치면 누가 더 잘할까? 이다도시와 휘트니 휴스턴 중에 창을 배우면 더 잘 할만한 사람은? 업타운이나 드렁큰 타이거 관점이라면 식으로라면 당연히 로버트 할리와 이다도시일 거다. 한국에서 한국인들과 뒤엉켜 살면서 한국인들의 리듬감각과 분노와 모든 희로애락을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반대로 국내파들의 주장대로라면 판소리의 음악적 요소를 자신들 민족의 정서에 접목 시킬 수 있는 DMX와 휘트니 휴스턴 쪽이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되는거다.

아직 잘 이해를 못하겠다구? 이제 좀 더 실증적으로 설명해 보자. 일단 힙합음악이 갖춰야 할 요소가 무엇인지부터 짚고 넘어가야할 필요가 있겠다. 힙합의 음악성을 가름하는 요인은 랩퍼들이 발휘하는 Rhyme과 flow와 skill의 조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Rhyme... 요즘은 태사자나 엔알지 따위 그룹도 다 라임 정도는 맞춰가며 랩을 하고 있는 형편이니 더 말할 필요도 없고, 꼭 100% 지킬 필요는 없지만 점차 당연시되어가고 있으니 필수요소로 취급해도 별 무리는 없을 듯 하다.

그리고 Flow. 그렇게 정신없이 라임을 맞춰가면서도 전체 메시지가 분명하고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즉,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한다. 라임은 잘 맞는데 뭘 말하려고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랩이 된다면 낙제점이란 얘기다.

그리고 Skill. 숨을 쉬는 타이밍, 소리를 크게 내지르는 강약의 조절, 랩을 하는 톤의 분방함 등 랩을 듣는 이가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그에 대한 전달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게 만드는 테크닉을 의미한다.

근데 이런것들보다 더 중요한 건 랩을 하는 인간의 사상 전달인데, 라임이나 스킬이나 플로우가 아무리 훌륭해도 이게 미달된다면 랩퍼로서는 낙제다. 말하자면, 듣는 이가 공감할 수 있고 함께 분노할 수 있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야기를 랩으로서 풀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랩퍼의 사상이나 사회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얘기.

이건 미국 랩퍼들만 봐도 대충 짐작 가능한 부분인데, 에미넴 처럼 동료 연예인을 찢어 밟는다거나, DMX처럼 세상에 피범벅을 한다거나, Dr. dre처럼 빠구리와 약물 얘기로 도배를 하는 등 자기의 주관적인 생각을 강하게 밝혀야 한다.

다른 이들에게 공감 내지는 반발을 살 수 있는 무게중심이 있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윌 스미스 마냥 흔해빠진 사랑타령이나 시시껄렁한 내일의 희망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말이다. 자... 그럼 이런 관점을 정리해놓고 지금부터는 힙합음악의 본질에 어느 인간들이 더 가깝게 접근해 있는지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먼저 기술적 측면. 물론 미국에서 살면서 걔들이랑 빠구리도 많이 해보고 약도 해본 교포파 애들이 테크닉에선 약간 앞서는 면도 있을거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영어로 랩을 할 때의 얘기다. 미국에서 온 애들은, 그 중요한 한국어 발음이 기초조차도 안 된다. 김인문 아저씨가 고함지르는 소리처럼 들릴 정도다. 이러니 당연히 가사를 직접 써서 라임과 플로우를 살리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얘네들은 아예 한국어가 안되는거다...

드렁큰 타이거 1집 가사는 김진표가 쓴거다. 물론 2집 가사는 지네가 썼다고 하지만 '카마카마' 내지는 '라샬락붐'과 같은 자아도취식 라임운용에 '가나다' 순차식 랩에서 '카'와 '타'의 순서를 뒤바꾸는 엄청난 실수(타오르는 열망으로 취한 나의 타령 카마카마카마카마 make a million.. 분명 '타'와 '카'가 바뀌었다.)를 저지르는 등 수준면에서 낙제점이다. 기성체제에 대한 반발의식의 표현으로 가나다 순서를 바꿨다고 하던데 그런 개소리는 앨범 속지에 적던가 발매 초기부터 미리 말했어야지 않겠나.

여하튼, 영어 랩을 하면 히어링 안되는 한국애들이 못 알아듣고, 한국어 랩을 해도 발음이 안 좋으니 알아듣기 힘든, 그런 비극적 상황을 연출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반면, 국내파 랩퍼들의 경우 간혹 감각이 다소 처지는 측면도 있지만 한국어 라임에 있어서는 이미 경지에 도달했고(이현도가 보여준 '삐에로'의 ㄱㄴㄷ 라임을 떠올려 보라. ~겼어, ~녔어, ~됐어, ~라서... 예술의 경지다), 한국말을 잘하니 플로우도 큰 문제가 없으며 기술의 측면에서는 나날이 발전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 이번엔 음악에 담긴 메시지의 측면. 과연 업타운이나 드렁큰 타이거는 특출난 비판적 메시지를 음악 속에 담아 왔는가? 그들의 역대 대표곡들을 살펴보자. 업타운 1집 타이틀 곡 '다시 만나 줘' …후속곡 '서두르지 말아요'… 2집 타이틀곡 '내 안의 그대' … 죄다 사랑타령이다. 게다가 음악적으로도 베이직한 힙합이 아닌 뉴잭스윙 내지는 R&B 계열의 음악들이다. 간혹 '내일을 위해'가 사회비판적이라고 우기는 인간들도 있는데 그런 인간들을 위해 여기 특별히 그 가사를 준비해 봤다.

KOREA에는 여자rapper가 별로 없어 그래서 내가 왔다 그래서 미래가 여기 왔다. 모두 나를 따라 해봐 (하) 나의'rap'을 들어봐. (yeah...) 'rapper'라면 'beat box'도 할줄 알아야지. 잘 하지도 못하면서 잘난척하는 모든 'rapper'들은 이제 사라져.. 그런 사람들은 다 사라져. 쓸데없는 걱정은 모두 꺼져버려 사기치며 사는 놈들은 모두 사라져 버려 'back'도 필요 없고 법도 필요 없는 제대로 된 세상은 찾아온다 돈 없는 사람들도 힘 없는 사람도 다 같이 대접받는 행복하게 살수 있는 그런 세상이 찾아오는 그날까지 우린 노래한다 original gangsta rap 이 여기 있다.. 나는 가짜 rapper가 아니야 나는 studio gangsta rapper 가 아니야 나는 UPTOWN에 gangsta rapper-hectic 이다...

봐라... 먼저 비판하려는 대상이 뭔지 알 수가 없다. 한국힙합인지, 사회인지, 왔다리갔다리 한다. '사기치며 사는 놈들은 모두 사라져 버려' 같은 소리는 지나가는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거다. 세상에 사기치는 놈이 한둘이냐?? '힘없는 사람도 다 같이 대접받는 세상'이라고? 공익광고나 찍어라 임마들아...

이번엔, 비슷한 넘들인 드렁큰 타이거의 가사를 함 봐보자.

다같이 외쳐봐 사고 팔고 떠도는 너의 영혼을 그들은 아 그 귀신처럼 덤벼 보고 되고있어 자존심까지 화장으로 지워버려 차별과 가식으로 너를 묻어버려 타오르는 열망으로 취한 나의 타령 카마카마카마카마 make a million 파란 하늘향해 겨뤄 babylon 하늘을 향해 주먹을 질러봐 가위 눌리는 현실에서 깨어나고 싶어 나는 나 너는 너 그들을 따라가기 싫어 모두 다 의지를 버리지 말고 앞으로 밀고 나가봐 라일락 향기보다 달콤한 독을 알아봐 마구 입을 놀리는 내 주먹의 맛을봐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있는 우리인생들 사슬에 묶여 함께 끌려가는 인생들 아무리 외쳐봐도 듣지않는 그이들 자신의 노예 속박에서 뛰어나와서 차가워진 마음 녹여 모두다 다가와 더 타오르는 열망으로 취한 나의 타령 카마카마카마카마 make a million 파란 하늘향해 겨뤄 babylon 하늘을 향해 주먹을 질러봐

사회체제 전복을 시도하는 가사로다. 이런 식이라면 '요즘 애들 버릇없어' 를 부른 공일오비는 감옥 가야겠다. 글고 역시 업타운이나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비판하는지, 아님 인생사를 비판하는지... 알 도리가 없다. '의지를 버리지 말고 앞으로 밀고 나가봐' 따위 구절은 초등학생 웅변대회나 가져가면 딱 아닌가. 이 가사들에서 종합적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은, 교포출신들은 사회의 어떤 특정한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얘기는 입도 뻥긋 못 하고 있다는 점이다. 설사 사회 이야기를 하더라도 간접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 애매모호한 이야기밖에는 하지 못한다. 날카롭게 확 도려내듯 사회의 문제와 사람들의 고민을 말하지 못하고 있는거다.

이들이 제대로 메세지를 전달할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아마 걔들한테 미국을 비판해 보라면 2시간은 떠들어 댈 지도 모른다. 하지만 걔들은 한국을 모른다. 설사 한국을 알아도 한국어를 잘 못한다. 미국 사람이 한국에 대한 불쾌감을 한국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 자연히 노래가사는 사랑타령 내지는 애매모호한 희망과 미래의 이야기 투성이일 수밖에 없다. 게 너희가 말하던 '정통힙합'이냐...

조PD. 반면 국내파들의 메시지는 지극히 시기적절하면서도 현실적이다. 조피디의 1집에서 '용의 눈물 '의 가사를 보자.

아시아가 지배했으면 좋겠어 생각해봐 아시아가 지배했다고 생각해봐 지금쯤 모두들 온돌에 앉아 있겠지 땅에 눕겠지 생각해봐 빵보다 밥이 많겠지 중도 많겠지 아시아에 유학 오는 이도 많겠지 틀림없겠지 잘 사는 나라 하 하 한국 차가 포르쉐보다 후까시 더 잡아 옆에 서면 기죽어서 쫄기까지해 레이스 못해 (아시아가 지배했으면 좋겠어)그러면 좀더 편하게 살지 우리식 대로라면 쟤넨 꼼짝 못하지 뭐가 뭔지 모르지 그래야 덜 좆같이 살지 하루 이틀 아니고 이러다 게임 끝나겠어 이 모든게 아메리칸 컬쳐 모든 게 미국을 거쳐 그렇게 찾아대던 세계화 다시 고쳐 말하자면 미국 문화 그렇게 되는 시대가 와 그러면 지금 우리 문화를 고쳐, 말어?

직접적이면서도 구체적이다. 절대 업타운이나 드렁큰 타이거가 하듯 모호한 소리는 하지 않는다. 비판하려는 대상 설정이 분명하고, 그 대상의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으며, 그 대상의 앞에서 쫄거나 몸사리지 않고 맘에 있는대로 다 내뱉는다.

거리의 시인들의 과격함은 또 어떤가?

야! 너 이리와봐! (왜요?) 돈있냐? (없어요.) 야! 너 까불래? (아니요.) 맞을래? (싫어요!) 거리의 시인들 어제 밤도 나는 애들과 술 마시고 놀다가 춤추고 여자 꼬시다보니까 시간이 금방 흘러가 해가 뜨는걸 감상하면서 담배 한대 피다가 애들하고 쭈그려 앉아서 폼 좀 잡고 있는데.. 저 멀리 새벽안개와 담배연기 사이로 중학생인가 고등학생인가 어색해 보이는 꼬마가 지가 뭔데 교복바지를 힙합으로 꽈악 걸치고 겁도 없이 우리구역을 지나가는 거잖아..? 요즘 우리 학원가 주위에 자칭 " 거리의 시인들 " 이라 불리는 불량집단 출몰한단 소문 도는데 이것들 오늘 겁도 없이 멍청한 놈 돈 뺏었다나? 내 교무주임 28년 경력 이런 놈들 놔둘 수 없다! (맞아) 자! 정의봉 나간다. 받아라! 반항 할 생각 말아라. 요즘 애들 영악해 손찌검 제대로 못하는데(망할 놈들!) 몸 좀 풀어볼까? 내가 사실 이 아이를 때릴려고 때린게 아니라, 이 녀석이 건방지게 침을 뱉고 가길래 그냥 충고 몇마디 할려고 했었던 것 뿐인데 아, 얘가 자꾸자꾸 불러도 안오더라… 이게 지혼자 겁먹고 도망을 가다가 자빠진걸 가지고 내가 때렸다 했나본데 그러면 내가 조금 곤란하지… 당신 자꾸 이런 식으로 일 처리를 하면 안돼지. 내가 당신 누구 누군지 알고나 있는거요? 내가 이래뵈도…아, 이거 참… 여기서 내 입으로 해야 되나? 내가 아는 분이 금뺏지 달고있소. 금뺏지.

어떤 대상과 현상을 비꼬고 있는지는 옆집 알츠하이머로 고생하시는 할머니도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군데군데 해학적이기까지 하며, 통쾌함마저도 자아내고 있는 가사다. 아무튼 국내래퍼들의 경우 대부분의 나날을 한국에서 보낸 관계로 한국의 실정과 그 뿌리깊은 문제들에 대해서는 교포들보다 107.4배 더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듣는 이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이야기하는 능력에서 현격한 우위에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힙합의 본래 취지가 그런 것이 아니던가?

결론적으로, 힙합의 본래적 의미에서 볼 때 국내파들의 그것이 해외파들의 거시기보다 훨씬 본질에 근접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놀랍게도 우리 고유의 음악인 판소리와 힙합 사이에는 신기하리만큼 닮은 요소가 많이 있다. 사회적 하층민들이 자신들의 생활과 감정을 '사운드'가 아닌 '언어'의 형태로 풀어놓았다는 것, 그 공격 대상이 사회체제와 기득권 세력이라는 점이 흡사한거다. 또 구성방식에 있어서도 경이적인 유사함을 보이고 있다. 이건 담에 자세히 설명하겠다. 기둘리시라...!

여하튼, 별 상관 없어 보이는 흑인의 문화가 우리의 옛 것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은, 외국의 문화를 고대로 판박이처럼 긁어다가 소화하는 태도에 대해 자성의 파동권을 날리는 충격이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업타운이건 허인창이건 누구건 간에 결국 그들은 흑인이 아니며, 따라서 흑인이 하는 것을 아무리 따라해 봤자 유도지가 허준 따라잡는 것과 마찬가지란 사실이다. 한국사람은 흑인이 될 수 없다. 이현도의 말처럼, 한국에서 가능한 '완전힙합'이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리지널을 무작정 흉내낼 것이 아니라, 우리 식으로 발전시켜 나가려고 노력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로버트 할리가 10년을 연습한다고 조통달 선생만큼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깨닫게 되는 사실은, 어떤 문화의 형태도 다른 민족과 지역에게로 옮겨갔을때는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새롭게 표현될 수 있으며, 그것이 당연하기조차 하다는 사실이다. 또한 우리가 갖고 있는 문화와 다른 민족의 문화 사이에는 분명 어디엔가 겹쳐지는 부분이 생기게 마련이다. 모든 문화는, 또한 모든 음악은 하나로 통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힙합이건 어떤 음악이건, 본토의 것을 그대로 따라하려고 발버둥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스타일에 맞게 재창조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우리 문화와의 유사성을 찾아내어 그 만나는 접점에서의 발전가능성을 도모해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에겐 우리식의 힙합 표현법이 있고, 그것을 발전시켜 나가면 된다는 게 오늘의 교훈이다. 아무쪼록 부디 감방 안에서라도 업타운이 그 닫힌 사고방식을 털고 새인생을 시작하기 바란다. 영어랩을 하고 싶으면 미국에서 활동하란 말이다… 근데, 콩밥이 걔들 입맛에 맞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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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프레시안)

"조중동이 <시사저널> 사태에 침묵하는 이유는?"
[방담]전·현직 기자ㆍ언론운동가가 본 <시사저널> 사태

어찌보면 한 주간지의 내부 홍역으로 치부될 수도 있는 문제였다. 지난해 6월 <시사저널> 금창태 사장이 삼성 기사를 일방적으로 삭제하며 불거졌던 금 사장과 기자들 간의 갈등은 이윤삼 편집국장의 사표, 이 사태에 반발하는 기자들에 대한 잇따른 징계로 이어졌다. 기자들이 '편집권 독립'을 주장하며 제기했던 단체협상은 결렬됐다. 지난 5일부터 파업에 돌입한 기자들은 금창태 사장 퇴진과 심상기 회장의 사태 해결 노력을 요구했다.

그러나 <시사저널> 사태는 지난 9일 기자들이 빠진 채 잡지가 발행되면서 또 다른 국면을 맞았다.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있는 금창태 사장의 지휘 아래 편집위원 및 외부 필자들의 기고로 채워진 잡지가 지난 9일 899호에 이어 지난 16일에는 900호로 발행됐다.

기자들과 독자들은 이를 '짝퉁 <시사저널>'이라고 부르며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금창태 사장은 편집인인 자신이 지휘하는 이상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며 '짝퉁'이란 용어를 쓴 필자들과 언론들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이번에는 독자 및 일반 시민들이 '나를 고소하라'며 행동에 나섰다. 이들은 19일 저녁 서울 충정로 <시사저널> 사옥 앞에서 '부활하라! 진품 시사저널' 문화제를 열었다. 고종석 전 <한국일보> 논설위원, 홍세화 <한겨레> 시민편집위원,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 등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꾸린 독자 및 언론계 인사들은 앞으로도 사태 해결을 위해 앞장서겠다는 의견을 곳곳에서 밝히고 있다.

이번 사태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 이들은 모두 '초유의 사태'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시사저널>의 문제가 결코 우연히 발생한 일이 아니라고도 말한다. 또 결코 한 주간지의 내홍 정도로 치부할 일도 아니라고 한다.

<시사저널> 사태는 민주화 이후 언론을 통제하는 가장 막강한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는 자본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은 언론과 자본의 관계를 화두로 이번 <시사저널> 사태가 갖고 있는 함의 등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류이근 <한겨레21> 기자, 최성진 전 <뉴스메이커> 기자, 이송지혜 민주언론시민연합 기획부장, 신호철 <시사저널> 기자가 참석한 이 방담은 지난 16일 서울 마포의 한 사무실에서 열렸다. <편집자>

<시사저널> 사태 뜯어보기

프레시안 : 여기 모인 분들은 현재 <시사저널>의 사태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잘 알고 계신 분들이라 편하게 얘기했으면 한다. 다양한 각도에서 사태를 바라볼 수 있을 듯 하다. 이번 사태의 성격을 어떻게 보고 있나? 현재 발행되고 있는 잡지에 대한 소감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신호철: 지난 899호에는 '조중동 죽이려다 친여 매체 다 죽이나'라는 제목이 뽑혀 있었다. 이분법적으로 조중동과 친여매체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초등학생과 같은 사고다. <시사저널>이 산업잡지가 되는 것은 상관이 없는데 정치적인 성격이 변해가니까 문제가 있는 거다.

류이근 : '짝퉁' <시사저널>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기존 우리가 읽어 왔던 <시사저널>이 진품이었다는 얘기다. 지금의 <시사저널>을 메꾸고 있는 기사들이 진품과 어울리지 않게 돼버렸는데 앞으로도 이런 일이 되풀이 될 것 같다. 크게 보면 국민들이 원하는 잡지가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런데 <한겨레>도 자유롭지 못한 편인데 다른 언론들이 이 문제에 너무 침묵해 왔다. 어느 언론사도 지금 <시사저널>이 겪고 있는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즉,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미시적으로는 언론사 내 편집권 독립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지켜지고 있는지도 회의적이다. 대부분 언론들이 대기업 광고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

그래서 언론들이 스스로 발언할 용기도 없을 뿐더러 발언할 때 불이익을 겪을 수도 있다. 구조적으로 그런 것들을 기자들이 발언할 수 없는 위치에 처해 있다는 얘기다.

서명숙 전 <시사저널> 편집장과 김선주 전 <한겨레> 논설위원 등 전직 언론인 선배들이 칼럼 등을 통해 '이게 기사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게 기사가 되는 것이냐'며 직접적으로 현직에 있는 기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제 기자들이 답해야 되지 않나 생각한다.

이송지혜 : 저도 이번 사태가 참 가슴아프다. 언론재단이 지속적으로 기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과거에는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가장 큰 세력이 (정치)권력이라는 답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그러나 87년 이후 민주화 과정 속에서는 1위가 사주, 2위가 재벌 또는 광고주의 입김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다. <시사저널> 사태는 그것과 딱 맞닿아 있다. 삼성이라는 대기업의 외압을 경영진이 방어해줘야 할 텐데 오히려 기사를 빼고 편집권을 훼손했다. 그동안 언론재단의 조사에 나타났던 언론자유 침해의 가장 큰 두 가지 요소가 단적으로 드러난 것으로 본다.

"더 이상 상식과 선의에 기댈 수 없는 문제"

최성진: 899호 이후부터 굉장히 혼란스러워졌다. 그 이유는 기자가 마지노선으로 생각하고 의지해 왔던 부분은 법보다는 상식이라는 잣대였고 그것을 믿고 기사를 썼는데, 899호 만드는 시점부터 사측에서 상식을 가지고 잡지를 만들고 있는 건지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삼성 기사 삭제 문제가 불거져서 장기간 파행을 겪고 있는 이때에 삼성 측과 관련된 인사가 와서 편집에 개입한다든가, 전직 <중앙일보> 기자들이 와서 편집을 한다든가 하는 부분은 또 다른 문제인 것 같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현직 중앙일보 기자가 커버스토리 썼는데 이런 행태가 상식 수준에서 이해될 수 있는 건지 근본적인 회의가 든다.

류이근: 상식에 지나치게 기대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사실 899호를 이렇게 만들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우려했던 대로 만들었다. 자칫 상식에 기대하면 문제의 성격이나 사태의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1인 사주의 선의를 기대하긴 참 어렵기 때문이다. 1인 사주가 운영하는 매체들의 폐해를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봐 왔다. 정권, 자본의 압력이 그대로 편집국이나 기자들에게 투영되어 문제가 부각된 사례들은 많이 있었다. 사주들의 선의는 어디까지나 기업으로서의 매체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데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편집국과는 많이 다르다. 그것을 제도화시켜내지 못했을 때 편집권은 쉽게 위험에 노출된다. 최소한 사주가 갖는 소유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면 기자들은 편집권 문제를 제도화, 명문화 하지 않았을 때 사주의 선의에 쉽게 배반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최성진: 류 기자는 '선의'라고 했고 나는 '상식'이라고 말했다. 상식이면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것'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류이근: 취재 과정에서 금창태 사장을 만나서 깜짝 놀랐다. 편집국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기사를 들어낸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편집국 간부와 기자들을 징계조치 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었다. 형식 논리로 보면, 또 사주의 상식으로 보면 자신이 발행인 겸 대표이사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주장했다.

또 놀랐던 것은 지난번 899호 발행 뒤 사태가 새롭게 전개된 점이다. 초유의 일이라고 하던데, 일을 저지른 것에 대한 뒷감당을 할 수 없어서 그런지 현재 잡지를 만들고 있는 책임있는 사람들이 아무도 말을 안하고 언론을 피하고 있다. 그 이전까지 인터뷰 등에도 떳떳하게 응하던 태도에서 바뀌었다.

신호철: 폭풍이 지나가길 바라는 것 아닌가 본다.

류이근: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금 사장이 원하는 것이 이런 형태의 잡지가 계속 생산되는 것인지, 아니면 기자들로부터 양보를 받아내기 위해 강행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만약 전자라면 가장 비극적인 결과가 나올 것 같다.

이송지혜: 금 사장이 공동대책위원회로 꾸려진 시민단체들의 면담도 거부했다.

최성진: <중앙일보> 기자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류이근: <중앙일보> 계열사가 899호부터 많이 참여했다. 실제 만들고 있는 편집위원들의 상당수가 <중앙일보> 출신이고, 그런데 정작 <중앙일보> 지면을 통해서는 시사저널 사태를 볼 수 없다.

"언론의 자유 외치던 조중동은 왜 아무 말도 없을까?"

최성진: 899호가 나오기 전까지는 냉정하게 말하면 <시사저널>의 문제였는데, 이제 더 이상 <시사저널>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언론에는 '왠만하면 다른 회사의 문제는 그냥 넘어가거나 침묵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류이근: 경쟁사 혹은 타 언론사의 문제이기 때문에 침묵하는 것은 비겁한 태도라고 본다. 취재하면서 '이제 그만해라', '경쟁지에 대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침묵하는 것이 관행 아니냐, 이걸 깨도 되는 건가' 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굉장히 불편했다.

문제에 대해 방관, 동조, 침묵하라는 말이다. 기자가 갖고 있는 사회적인 역할이 사회 감시라면 그 사회라는 공간 안에는 언론도 들어간다.

최성진: 애초 이 사태의 발단이 삼성 기사에 있었고, 상식적으로 <중앙일보>와 삼성의 관계가 충분히 오해의 소지를 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사태의 와중에 <중앙일보> 기자가 <시사저널> 기사를 쓴다는 것이 문제다.

이송지혜: 언론의 자유에 대해 목소리 높이고 있는 조중동이 시사저널 사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는 것도 우습다.

류이근: <시사저널> 자체가 한국 사회 내에서 가지는 독특한 역할이 있었다. 그런 잡지가 없어지는 것에 대해 조중동은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지만 좋아하는 것 아닌가? 언론의 자유를 말했는데, 조중동은 이 문제를 언론의 자유라기보다는 자본의 자유로 인식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편집권은 기자의 근로조건이다"

프레시안: 이번 사태를 대강 아는 독자들은 '기자들의 파업은 결국 독자들의 손해가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류이근: 노사갈등으로 보더라도 <시사저널>의 행태는 문제가 있다. 임명된 적 없는 편집위원들의 기사는 독자들에게 손해가 되고 있다. 독자들에게 제대로 된 인식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 언론이다. 그런데 조중동은 정확한 정보 제공을 하지 않고 아예 악의적인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송지혜: 또 사측이 대화 자체를 거부하지 않나?

신호철 : 미온적이다. '이거 이거 안 받으면 너네 맘대로 하라'는 식이다.

이송지혜 : 답답한 것이, 지금 시사저널 기자들은 과도하게 월급을 올려달라거나 후생복지와 관련된 파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 문제로 하는 파업도 정당하지만, 이번 문제는 그것이 핵심이 아니라 삼성이라는 기업의 압력을 받아 편집권이 부당하게 유린당한 점이다. 문제의 본질이 제대로만 전달된다면 대부분의 국민들이 사측이 잘못됐다고 할 수밖에 없다.

신호철 : 편집인은 편집권을 경영의 문제로 본다. 그런데 편집권은 기자의 근로조건이며, 노동의 권리 중 하나다. 노사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근로조건이다.

류이근: 기자들의 요구사항이나 정당한 편집권에 대해 명시적인 장치를 <시사저널>에서는 갖고 있지 않았다. 이것이 문제가 될 수 있을 수 있는 경우에 대한 대비가 너무 소홀했던 것 같다. <한겨레>는 사장이 발행인까지 맡고 있다. 그러나 편집인과 편집국장이 따로 있고, 편집국장이 최후 보루로서의 역할을 하고 편집인은 징검다리와 같은 역할을 맡는다.

"오만하고 예민한 기업의 '언론 검열'"

프레시안 : 물론 편집인, 편집국장의 편집권 문제도 언급돼야 한다. 그러나 결국은 경영과 맞물리는 광고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을까?

류이근: 사실 현업에 있는 기자들도 거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사실 언론사의 광고국와 광고주는 통상적인 갑을관계가 역전돼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한 기업에 대한 기사가 크게 다뤄지면 광고국의 의견이 곧바로 기자한테 또는 데스크한테 간다. 이에 대한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 언제든지 그런 일이 재발할 수 있고, 가장 약한 고리 중 하나다.

최성진: 기자로서 재벌 관련된 기사 쓰는 것은 매우 어렵다. 보통 미담이나 선행으로 기사를 쓰는 경우가 아니라 재벌의 비리 문제 등에 관한 기사를 쓸 때면 필수적으로 해당 기업의 입장을 들어보기 위해 취재해야 한다. 그럴 때 홍보실을 통해 취재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인데 그렇게 되면 바로 광고국으로 접촉이 들어와 일종의 딜을 제의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서 기자 개개인 스스로도 일종의 자기검열 비슷하게, 최소한 귀찮아서라도, 재벌관련 기사는 잘 쓰지 않게 된다.

프레시안 : 예전에는 권력을 가진 기관이 검열을 했다면 이제는 결과적으로 재벌들이 검열을 하는 격인 것 같다.

류이근: 재미있는 것이 사람들이 부당한 권력에 대한 저항은 쉽게 받아들이지만, 자본의 횡포나 부당한 압력에 대해서는 조금 느낌이 다른 것 같다.

또 우리가 잡지를 만들어서 파는 과정도 일종의 자본의 행위이기도 하다. 자본주, 재벌들의 문제제기와 간섭에 대해 기자들이 체감적으로 가장 큰 압력 중의 하나라고 꼽기도 하지만 역으로 그에 대한 문제의식은 덜하다.

이송지혜: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삼성은 언론인들을 잘 관리하기로 유명하다. 쟁쟁한 언론인 출신들이 그 홍보실에서 활동하고 있고, 이렇게 밖으로 표출된 <시사저널> 사태 외에 드러나지 않은 삼성과 관련된 이런 일들이 굉장히 많을 것 같다. 어제 에버랜드에서 사고가 났는데 몇몇 언론에 의해 알려졌는데도 '모 놀이동산'이라고 한 언론도 있었다.

최성진: 심지어 몇몇 경제지는 이 에버랜드 사고를 쓰지도 않았다.

류이근: 대기업들이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기사를 막으려는 것은 본능에 가까운 몸부림이다. 당위적으로 그러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설득력이 없다. 결국 문제는 기자들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것 같다. 사주, 조직이 그런 압력을 이겨내야 한다. 모기가 들어오지 못하게 모기장을 촘촘히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최성진: 해당 기자가 대응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피땀 흘려서 생산한 기사를 끝까지 지켜내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기자 개인의 영역이나 시사저널처럼 상대적으로 작은 조직에서 그걸 지켜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일 수도 있다. 내 생각에는 민언련, 기자협회, 언론노조 등에서 기구나 제도적 차원으로 접근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송지혜: 그런 측면에서 공영방송이나 특정한 사주가 없는 <한겨레> 같은 매체에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다. 기업은 물론 자신의 이해관계와 관련해 회사에 불이익이 돌아가는 기사를 막는 데에 나설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지만, 삼성같은 그룹은 우리나라 최대의 기업이라는 점에서 그에 따른 사회적 책임도 분명 있다.

따라서 언론으로부터 감시받고, 사회의 여러 다른 관계 속에서 감시받고 견제받는 가운데 운영해 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이것을 부당한 개입이나 외압을 통해 해결하려 한 것은 삼성이 마땅한 비판 받아야 할 문제다. 삼성은 'X파일' 사건부터 시작해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는데 제대로 단죄받지 않고 유야무야 넘어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꾸 이런 식으로 편법으로라도 자신과 관련된 부당한 기사를 막으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 이런 기업이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이라는 것이 가슴아프다. 누구로부터도 비판받고 평가받지 않겠다는 태도는 정치권력보다 더 오만한 태도다.

최성진: 기업에 해가 되는 기사를 막는 것도 있지만 사주와 관련된 평범한 기사들마저도 무조건 내지 말라고 요구한다. 오만한 자세와 더불어 상식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예민한 자세라고 본다.

"실제보다 더 무서운 건 사람들이 상상하는 '삼성의 힘'이다"

프레시안 : 요즘 언론의 경제적 종속의 문제는 꼭 기업에 의해서만 제기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최근 <한겨레>나 <경향신문>이 금속노조의 의견 광고를 거절했던 일도 있다. 이미 언론 자체 내부에 상당히 기업 또는 재벌의 속성이 들어와 내면화된 결과가 아닌가 생각되는데….

류이근: 기본적으로 수입의 80~90%를 광고에 의존하니까 발생하는 문제다.

신호철 : 그 중에서도 삼성과 기타의 기업은 차원이 다른 것 같다. 이번 사태가 진행되는 가운데 사람들을 접촉하면서 곳곳에 삼성의 힘이 계측된다. '시사모' 등에 이름을 넣어달라고 얘기해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삼성을 의식하는가, '삼성 의식지수'가 나타난다. 삼성의 일이라 그런 일은 안 하겠다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다. 당장 오늘 방담도 섭외하는 과정에서 두 명이 안 됐다.

사람들은 삼성의 실제적인 힘을 의식하는 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있는 힘을 상상한다. 그래서 더 무서운 것이다. 다른 기업하고는 차원이 달라지는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명시적인 편집권 규약과 사회적 기구 마련, 대안 될 수 있다"

프레시안 : 삼성이라는 권력이 언론과 닿아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는 광고 때문 아니냐. 그 고리를 끊기 위해 언론사의 수익구조를 개편해야 하나?

류이근: 상당히 본질적인 문제다. 모든 잡지들 마찬가지일 텐데 삼성의 광고가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수익구조 개편은 현재의 사태를 해결하는 방식이 될 수는 없으며 대략 열 발자국쯤 앞서나간 생각인 것 같다. 삼성으로부터 광고를 받으면서 발생하는 긴장감, 이것을 어떻게 관리해 나가느냐의 문제다.

사주의 의지도 중요하고 편집권을 지켜내려고 하는 기자의 의지도 중요한 것 같다. 미시적으로는 광고주와 관련된 기사를 넣고 빼고, 톤을 조절하는 문제와 관련해 편집국과 광고국 간에 어떤 관계가 설정되어야 하는지 좀 더 명시적으로 규정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송지혜: 재벌의 언론관리가 단지 광고만 갖고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연수 등으로 언론인들을 관리하는 수단은 많다.

류이근: 어쩔 수 없는 현실적인 모순이다. 영세한 언론사에 종사하는 기자들의 경우는 자본주들이 제공하는 기회를 통해서 연수도 가고 때로는 그들의 협찬을 통해 취재를 할 수도 있다. 그런 것을 모두 떠나 청정지역에 살고 싶다? 현실성이 없다. 오히려 돈 많은 언론사는 현실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최성진: 지금 <시사저널> 사태와 같은 일을 어떤 개인의 영역이나 하나의 매체에서 막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것 아닌가. 연대의 틀을 모색해보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기자협회라든지 관련 단체들이 많이 있지 않나. 재벌 관련 기사로 인한 연대 같은 것을 하나 설치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다 생각한다.

이송지혜: <시사저널> 공대위가 사실 그 두 가지에 대한 고민을 같이 안고 있다. 당면해서는 '시사저널 편집권 독립'과 관련된 공대위이지만 그 공대위에서 근본적으로 고민하는 것은 '자본으로부터 언론 독립'이다.

<시사저널>의 건강한 기자들이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제기되고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로 던져진 것 같다. 암담하지만 쓰레기통에서 핀 장미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냥 묻히고 넘어갈 수도 있던 문제였는데 한가닥 희망을 본 것 같다.

프레시안: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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