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한국예종 교수 된 ‘상계동 올림픽’ 김동원 감독 
 
1988년 2월, 김동원 감독은 27분짜리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을 완성했다. 올림픽 준비로 온나라가 들떴을 때 서울 상계동 달동네 주민들은 집을 빼앗겼다. 2년6개월 동안 상계동에서 명동 성당으로 다시 부천시 자투리 땅까지 철거민들이 내몰리는 과정을 좇으면서 다큐멘터리 속 나레이션의 주어는 “그들”이 아니라 “우리”가 됐다.

<상계동 올림픽>은 우리 영화계에서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기념비가 됐다. 마지막 장면, 성화봉송 때 보기 좋지 않다는 이유로 가건물을 세우는 것도 허가받지 못한 주민들은 허허벌판에서 <출전가>를 불렀다. 지금 그들은 어디에 있을까? 김동원(52) 감독은 최근 <상계동 올림픽 20년 후>를 찍기 시작했다.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는 목적도 없이 철거 현장에 넋이 나가 카메라를 돌리던 31살 초짜 감독 김동원은 그 뒤 20년 동안 독립다큐멘터리를 떠나지 않았다. 1991년 그가 변영주, 오기민 등과 만든 제작집단 ‘푸른영상’을 지키며 <또 하나의 세상-행당동 사람들 2> <명성, 6일간의 기록> <송환> 등을 내놓았다. 그렇게 극영화를 비롯해 ‘제도권’과 거리를 뒀던 그가 올해 한국예술종합대학 방송영상학과 교수가 되어 국내에 처음 생기는 다큐멘터리 전문사 과정을 맡게 됐다. 그는 작품 제작보다 교육 쪽에 무게중심을 두게 되는 걸까? 제도권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어떤 것일까? 18일 푸른영상 사무실에서 김 감독을 만나 그의 새 작품 이야기, 그리고 교수가 된 사연과 심경을 들어봤다.

<상계동 올림픽> 그후

다큐멘터리가 나간 뒤 상계동 철거민에겐 공동체를 꾸릴 터전이 생긴 듯했다. 재개발 건축업체, 천주교, 서울시가 기금을 모아 부천에 땅을 사고 아파트를 올려 철거민들에게 거처를 마련해줄 계획이었다. 관리가 복잡해지자 일단 8평 남짓씩 주민들에게 나눠줬다. 그런데 땅값이 1년새 8배가 뛰면서 되레 액운이 몰려왔다. 주민들 사이, 대표자들 사이 신뢰가 틀어져버린 것이다. 3년 동안 가족처럼 연대했던 사람들이 서로 꼴보기 싫어하는 사이가 되어갔고, 결국 40가구 가운데 3가구만 남고 모두 땅을 팔아 흩어졌다. 절반은 억척스럽게 일해 살림이 나아졌다. 애초에 노동력이 없었던 사람들은 추락해 노숙자가 됐다. 몇몇은 투쟁의 기억을 긍지로 가지고 있고 몇몇은 철거민이었다는 사실 자체를 숨긴다.

그는 다큐멘터리들에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희망을 담뿍 담아왔다. 아직도 믿고 있을까? “예전처럼 낙관하지 않는다. 저마다 욕망과 본성이 달라 공동체는 실패하기 쉽다는 걸 안다. 하지만 어떤 공동체는 세상의 빛이 된다. 나나 상계동 주민이나 꿈꾸는 공동체의 모습이 예전과 달라졌다. 그건 어떤 모습이며 우리에게 남은 최선은 뭘까?” 주민들은 여전히 송년회를 연다. 2세들 가운데 3분의 1은 매년 2~3차례 모인다. 그는 그 불씨의 구심력인 “긍지의 기억”을 조명하려 한다.

상계동의 기억

그는 <상계동 올림픽 20년후>에 자신의 이야기도 담을 예정이다. 상계동에서 그의 인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중산층 출신으로 한량처럼 지내다가 군 제대 뒤 영화 연출부로 일했고, 비디오카메라로 결혼식 촬영을 해주며 용돈을 벌었다. 1985년 그는 상계동에서 계고장도 없이 집을 부수는데 증거자료를 찍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간단한 일인 줄 알고 하루 촬영하러 갔는데 철거반이 들이닥쳤다. 철거민들은 사지를 들려 닭장차에 실려갔다. 그는 정신없이 찍었다. 어둠이 내린 뒤 주민들은 폐허 위에 큰 천막을 쳤다. 라면을 끓여먹고 술판을 벌였다. “내가 반쪽짜리 위선적인 세상에서 살았구나….” 도저히 천막을 들추고 혼자만 나갈 수 없었다. 하루를 보내기로 했고 다음날도 비슷했다. 그는 그때부터 1990년 1월까지 상계동 철거민들과 살았다. 그래서 상계동 철거민들은 그를 아직도 “김 감독님”이 아니라 “민기 아버지”라고 부른다.

가난의 힘

“어떤 주장을 하는데 힘을 실으려면 그렇게 살아야 한다. 가난한 사람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자신이 가난해야 떳떳하다. 세상을 낮은 데서 봐야 정확하다. 나에게 다큐멘터리는 주류 삶의 방식과 기치관에 딴죽을 걸고 저항하는 것이다.” 그렇게 믿고 필요한 것만 지니려 애쓰지만 그는 “악착같지 못하고 끊임없이 흔들린다”고 고백한다. 생활 자체가 협박이다. 늘 가난하게 살아왔는데, 세 아이들 앞에선 조금씩 점점 양보하게 됐다고 한다.

그가 떠맡아야 할 생활의 짐이 있고 교수직을 맡아 좀더 안정될지 모르지만, 마음은 복잡해졌다. 다큐멘터리가 영화와 저널리즘과 사이에서 제 영역을 굳건히 하려면 교육방법도 개발해야 하고 다큐멘터리를 모아 아카이브(* 정보창고)도 만들어야 한다. 자신이 주먹구구로 공부해서 더 필요를 느낀다. 할 일을 하는 것뿐이지만 그는 자신이 지켜야 할 자리를 벗어나는 건 아닌지 회의한다.

긍정을 위한 질문

전문적인 다큐멘터리 교육과정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는 교수가 된 것에 대해 “위기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제도권 안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다. 옆길로 샌 듯한….” ‘지금 나는 어디에 있을까?’ 그는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그러나 “결국 내 자리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들 때문이다. 천도교빈민회 회원들 가운데 힘들지만 의심 없이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보면 힘이 나고 날 보면 맥이 빠진다. 내가 정상 상태가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 주는 사람들이다.” 생활공동체에선 쓴맛을 봤지만 그의 곁엔 제작공동체인 푸른영상이 남아 있다. 감독 7명은 한달 활동비 50만원으로 버티며 미군기지에 반대해 싸우는 대추리로 가고 해고된 학습지 교사들을 만난다.

그의 작품을 보려면 푸른영상(02-823-9124)의 회원이 되면 된다. 3월30일부터 4월3일까지 열리는 인디다큐페스티벌(sidof.org)에서 <명성, 6일간의 기록>과 <송환>을 볼 수 있다.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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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지난 16일 저녁 경북 문경의 <에스비에스> 드라마 ‘연개소문’ 촬영장에서 병사, 백성으로 출연하는 보조출연자 40여명이 밀린 출연료를 달라며, ‘고구려 의상’을 벗어던지고 시위를 벌였다. 이 때문에 촬영은 2시간 동안 중단됐다.
이들이 지난 2일까지 받기로 한 출연료 총액은 모두 1억4천만원이다. 이 중 1억원을 보름이 지나도록 받지 못한 것이다. 이들은 이날 4천만원을 우선 받고서야, 다시 ‘병사’와 ‘백성’으로 돌아가 야간촬영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 돈은 이날 촬영 현장에 있던 보조출연자에게만 돌아갔을 뿐이다. 19일에도 출연료 일부가 들어왔지만, 아직도 보조출연자 30여명은 밀린 돈을 받지 못하고 있다.

보조출연자들이 출연료를 제때 받지 못하는 것은 제작사의 재정난 때문이다. ‘연개소문’의 외주제작사인 디에스피엔터테인먼트의 서주상씨는 “대규모 전투장면인 ‘안시성 전투’ 2회분을 촬영하는 데 5~6회분의 제작비가 들어가는 등 제작 초반부의 주요 전투장면에 돈을 쏟아부어 후반부로 갈수록 재정 압박을 심하게 받고 있다”고 말했다. 서씨는 “사극은 워낙 보조출연자가 많아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제작사가 아무리 쪼들려도 배우들은 꼬박꼬박 출연료를 받는다. <문화방송> 드라마국의 한 조연출은 “배우들은 한 명만 촬영을 거부해도 제작이 중단되기 때문에 제작사들은 배우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며 “결국 드라마 제작 구조에서 가장 약자인 보조출연자와 스테프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한 ‘연개소문’의 한 보조출연자는 “주요 배우들이 한 달에 받는 출연료가 수십명의 보조출연자들이 받는 출연료보다 많다”며 “출연료에 생계가 달려 있는 보조출연자들의 돈을 먼저 챙겨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제때 지급된다 하더라도 보조출연자들의 출연료는 너무 낮다. 새벽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꼬박 12시간을 일하고 받는 돈은 3만6천원이다. 대부분 촬영장이 지방이기 때문에 촬영 전날 밤 12시께 방송사에 모여 3~4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움직여야 하지만, 이동시간에 대한 보상은 없다. 새벽 6시 촬영이 시작되기 전 분장하고 의상을 챙겨 입으며 대기하는 1~2시간에 대해서도 대가가 없다.

지난해 12월 설립된 서울지역 보조출연자 노동조합은 제작사와 보조출연자 파견업체를 상대로 출연료를 여름철 5만400원, 겨울철 7만5천원으로 올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문계순 노조위원장은 “허허벌판에서 촬영할 때는 임시화장실도 없고, 의상도 제대로 빨지 않아 냄새가 나는 등 기본적인 환경조차 마련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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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내일신문)

2007-03-02

서울시 강남구 일원동에 사는 최 모양(중3)은 지난해 여름방학을 이용해 가까운 청소년 수련관에서 운영하는 진로체험 프로그램 중 ‘실내디자이너’에 참가했다. 현직 실내디자이너에게 직업의 구체적인 내용을 소개받고 평면도와 투시도도 직접 그려보고 미니룸을 만들어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여 미니룸의 가구도 만들었다. 최 모양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실내디자이너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얻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올해는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분야인 패션디자이너 프로그램을 해볼까 생각 중이다.

◆ 백번 듣는 것 보다 한번 체험이 좋아 = 놀토나 방학을 맞이해 관내 청소년수련관이나 고용지원센터, 서울시립 청소년직업체험센터 등 에서는 청소년들의 자아인식능력을 향상시키고 일과 직업 세계에 관한 종합적 이해를 돕기 위해 진로체험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강남구 수서청소년수련관에서는 2006년도에 청소년들을 위한 다양한 진로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해 많은 청소년들에게 빠르게 변화하는 다양한 직업세계를 소개함으로써 진로선택에 폭넓은 시각을 갖도록 했었다. 2007년에도 진로체험 클럽과 탐방, 체험교실 등을 운영한다.

서울강남종합고용센터에서는 학교와 대학, 기업과 연계하여 청소년직업체험프로그램(Job School)과 미래직업탐색교실을 작년에 이어 올해도 운영할 계획이며, 서울시립 청소년직업체험센터(하자센터)에서도 직업체험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 청소년진로체험클럽 = 수서청소년수련관에서는 3월~7월 둘째, 넷째 토요일에는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패션디자이너클럽과 만화일러스트에 대한 ‘청소년진로체험클럽’을 운영한다. 수련관에서 강의로 진행되면서 실습을 통해 간단한 작품 구성을 해 볼 수 있는데, 7회 이상 참석할 경우 자원봉사시간 5시간을 인정해 준다. 개강은 3월 10일이며 현재 접수 중이다.

수서청소년수련관 목적사업팀 김정하 씨는 “진로체험을 하기 전에 청소년 상담팀과 협력하여 MBTI를 통한 자신의 성격판단을 먼저 한다. 이는 단순한 실습위주나 체험보다는 자신을 먼저 알고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접근하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번 7월 방학 중에는 현장체험활동 등과 연계한 진로체험활동을 통하여 진로설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청소년체험탐방’을 법원과 경찰체험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또한 9월~12월에는 강의형식의 ‘청소년진로체험교실’이 열리는데 전반적인 진로고민을 함께하면서 모듬별 진로설계를 통해 직업의 세계를 탐색하게 된다.

작년 진로체험 프로그램을 수강한 학생들의 반응을 보면 모든 분야에서 프로그램 만족도는 80%이상이었으며, 직업을 이해하는 데는 거의 100%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문의 : 02-2226-6229)

◆ 서울시립 청소년직업체험센터 하자센터 = 하자센터(www.haja.net)는 청소년들의 창의적인 자기 개발을 위하여 ‘자기주도적 학습’과 ‘프로젝트형 학습’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직업체험 교육 프로그램들을 기획, 운영 하고 있다.

하자센터에서는 현재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3월~4월 ‘창의적 직업체험 프로젝트’의 참가신청을 받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청소년들이 현재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직접 해보며, 경험을 통해 직업선택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1주일에 1~2번의 참여로 진행된다. 이번 직업체험 프로젝트의 자기개발 프로젝트로는 힙합, 영상/디자인, 요리 등의 다양한 기획이 마련되어 있다.

힙합에서는 힙합을 자기개발과 타인과 소통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여 새로운 형태의 힙합을 만들기 위한 기획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는 유명 힙합 뮤지션들이 직접 강사들로 참여한다. 영상/디자인에서는 최근 UCC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청소년들의 영상 제작 능력이 강조되고 있어 사진, 영상제작, 그래픽 디자인, 웹디자인 등 청소년들 스스로 비주얼 이미지를 만들 수 있도록 한다.

하자센터 기획부 한영미씨는 “이러한 직업 프로젝트가 단기적 강좌에 그치지 않고 참가자들이 강사들과 함께 지속적으로 관심분야의 영역을 심화하여 확장시킬 수 있도록 인턴쉽 프로젝트와 자기고용 프로젝트를 연계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청소년들이 자신에 알맞은 직업들을 찾아가고 알아갈 수 있는 과정으로 활용된다”고 말한다.(문의 : 02-2677-9200)

◆ 청소년직업체험학습프로그램 Job School = 서울강남종합고용지원센터에서는 다양한 산업분야의 현장직업체험교육을 제공하여 건전한 직업관을 형성할 수 있는 Job School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주로 학교와 연계하여 수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2일 동안 진행되는데 직업정보 및 진로탐색 강의 후 해당 학과 강의로 직업체험 후 기업체견학, 현장 직업인의 강의, 직업체험으로 진행된다.

이 외에도 한 학급 단위로 이어지는 ‘미래직업탐색교실’에서는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신문 속 직업 찾기’를 통해 신문잡지 등을 이용해 우리 주변의 직업세계를 탐방한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고민 속 직업 찾기’를 통해서는 청소년들의 직업 고민에서 출발하여 직업나무를 만들며 직업 간의 연계성을 파악할 수 있는 시간들로 구성된다.(문의 : 02-3468-4788)

김미성 리포터 miskim9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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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6회 인디다큐페스티벌에서 네 편의 영화를 볼 생각입니다. (각각의 상영일이 모두 떨어져 있어 무척 난감하군요.) <글래스톤베리>를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은 모두 (나와) 다른 삶, 소수자의 삶 이라는 다큐멘터리 고유의 매력 때문에 선택한 것이구요, <글래스톤베리>는 '축제' 라는 내용 자체도 흥미롭지만, 개인적으로 이번 문화센터 강좌에서 기획하려는 작품과 맞닿는 부분이 있어, 촬영기법이나 이야기 전개방식을 유념해서 보려고 합니다. 아래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제공하고 있는 시놉시스와 감독에 대한 소개입니다. 크레딧을 비롯한 몇몇 부분은 임의로 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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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츨처: 인디다큐페스티벌 공식 홈페이지)

<글래스톤베리 Glastonbury>
감독 : 줄리언 템플 / 영국 / 컬러 / 138분
     
[시놉시스] 1970년, 마이클 이비스라는 젊은 농부는 1,500명의 사람들로 하여금 1파운드의 가격에 주말 내내 팝과 포크 가수들의 공연을 볼 수 있도록 150에이커에 달하는 자신의 농장을 개방했고 그것은 글래스톤베리 음악축제가 탄생하는 순간이 되었다. 다음해, 윈스턴 처칠의 손녀를 비롯한 몇몇 돈 많은 히피들은 이 이벤트가 커질 수 있도록 기금을 모았고, 12,500명의 사람들이 존 바에즈와 데이빗 보위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지난 30년 동안 글래스톤베리의 이 부유한 농장은 7월말 가장 더운 주말에 수천의 사람들이 광적인 야외 콘서트를 즐길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해왔다.

줄리안 템플 - 섹스 피스톨즈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를 연출한- 감독은 글래스톤베리 축제가 담긴 모든 촬영분을-니콜라스 로그의 다큐멘터리 작품(1971)부터 참가자들이 직접 찍은, 수년간 다락방이나 벽장 속 구석에 묵혀져 왔던 홈비디오들까지- 수집하기 위해 지난 몇 년을 고생해 왔다. 이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글래스톤베리>는 즉흥적인 예술행위들, 그것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지역 주민들, 신화적인 뮤지션들의 잊을 수 없는 공연은 물론, 세대를 거쳐 내려온 젊은 음악팬들의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까지 아우르며 세상에서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음악 페스티벌의 연대기를 솜씨 있게 엮어내고 있다.

[감독] 줄리언 템플. 1953년 런던 출생. 줄리언 템플은 ‘로큰롤 영화계의 <시민 케인>’이라는 찬사를 받은 <위대한 로큰롤의 사기>(1979)로 데뷔하여, 뮤지컬과 음악다큐멘터리는 물론이고, 롤링 스톤즈, 데이빗 보위, 믹 재거 등의 뮤직비디오 연출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글래스톤베리>는 2006년 선댄스 다큐멘터리 부문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위대한 로큰롤의 사기>(79), <완전 초보>(86), <비고>(98), <글래스톤베리>(2006)

<쿠바, 천국의 가치 Cuba, the Value of Utopia>
감독 쟈나라 구아쟈사민 Yanara Guayasamin / 2006 벨기에, 에콰도르 / 칼러 / 116분 
     
[시놉시스] 현재 쿠바는 1959년 카스트로 혁명 이후 이루어졌다. 영화의 초중반부는 카스트로를 포함한 혁명의 목격자들의 증언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는 민중들 속 개인의 삶을 깊숙이 파고 들어가는데 덕분에 혁명에 대하여 발설되지 않았던 섬세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구술 기록을 통하여 다양한 쿠바인들이 압제와 폭력, 체포, 납치, 탈출의 과정을 겪었음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산에서 이루어진 게릴라 작전과 아바나에 입성하게 된 과정 등 혁명 당시의 생생한 삶을 쿠바 혁명의 전후세대들에게서 직접 들을 수 있다. 이러한 증언들은 현재 쿠바의 고요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는 자료화면들과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영화의 종반부에서는 혁명세대 쿠바인들이 회고하는 혁명 이후 47년간의 상황이 펼쳐진다. 쿠바인들은 화려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지만, 소련 공산주의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이데올로기적 슬로건이 아닌 구체적인 요구로서 공산주의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다. 자유의 대가는 너무나 비싸지만 그들은 미국이 전 세계에 강요하고 있는 값싼 소비사회와 자신들의 고귀한 삶을 맞바꿀 생각이 추호도 없다.

[감독] 쟈나라 구아쟈사민은 인류학, 생물학 그리고 정보과학을 전공했고 그 후 브뤼셀에 있는 I.N.S.A.S. 학교에서 영화 연출을 공부하였다.  (1988-92) 그녀의 첫 다큐멘터리 작품인 <죽음이 우리를 방문했을 때 When Death Visited Us>는 포스트 프로덕션부분에서 세계 카톨릭 교류 협회 (OCIC)가 증정하는 SIGNIS 상을 수상하였다.  이 작품은 비평가들로부터 평을 받으면서 칠레, 콜럼비아, 에쿠아도르, 스페인, 파나마, 페루에서 상영되었고 뉴욕에서 상영된 때에는 CinemaFe에서 수여하는 황금사과상(Golden Apple)을 수상하였다. 에쿠아도르에서 찍은 <천년의 직업들 Millenary Jobs>은 촬영부분에서 Ernesto Alban 상을 안겨주었고 다른 단편 모음인 <테이블 The Table>로 Augustin Cuesta Ordonez 상을 수상하였다. “Jusqu'au silence”는 벨기에, 이스라엘, 프랑스, 캐나다, 스페인 그리고 멕시코에서 상영되었으며 쿠바 영화제에서 실험적 영화부분 첫 Diva 상을 수상하였다. 쟈나라는 칠레의 발디비아 국제 영화제(Valdivia International Film Festval)와 콜롬비아의 Bogocine 영화제에서 초청 심사위원직을 수행하였다.  또한 캐나다의 세계 여성 영화제 (Mondial des films de femmes)과 에쿠아도르의 Watch out for Democracy 그리고 Cinememoria 영화제의 심사위원으로 선정되었다.  그녀는 현재 독립영화사 루시에르나가 필름의 감독이자 창립자로써 활동하고 있다. 

<영매: 산자와 죽은자의 화해 Mudang-Reconciliation between the Living and the Dead>
감독 박기복 / 2002 한국 / 105분 / 컬러     

[시놉시스] 먼 옛날 한국 무(巫)는 국가와 백성의 안녕을 주관하는 제사장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이 땅 어디선가에서 한국 무(巫)는 옛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이 작품은 경북 포항의 동해안 별신굿 풍어제를 시작으로 한강 이남의 세습무와 중부의 강신무 무당을 아우르면서 보여준다. 그리고 진도의 씻김굿을 당골 자매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무(巫)가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화해에 이르는 여정을 그려내고 있다.

"수천 년 이어져 온 한국의 무(巫)는 우리 삶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무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 밑바닥에 흐르는 종교적 심성에 다가서는 일이다. 하늘과 땅, 그리고 선조들의 음덕(陰德) 안에서 모두 하나(大同) 되어 한 판 멋들어진 영(靈)의 축제를 벌여 보는 것, 그것이 본 작품의 소망이다. 죽음을 통해 삶을 이해했던 무적(巫的) 사유 안에서는 한과 원, 그 모든 기억의 상처들에서 우리가 조금은 자유로와질 수 있지 않을까..." (감독 노트 중에서)

[감독] 박기복. 1994년부터 95년까지 푸른영상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행당동 사람들>(1994), <우리는 전사가 아니다>(1994)를 연출했다. <냅둬>(1999)는 제3회 서울다큐멘타리 영상제에서 대상을 수상했으며 제15회 뮌헨국제다큐멘타리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192-399: 더불어 사는 집 이야기 192-399: The Story About the House Living Together>
감독 이현정 / 2006 한국 / 126분 / 컬러
     
[시놉시스] 2005년 10월부터 2006년 2월까지, “희망을 만드는 노숙인 생산공동체”를 모토로 하는 노숙인공동체 [더불어 사는 집]은 서울 정릉의 빈 집을 점거해서 함께 모여 살았다. 더불어 사는 집의 식구들은 무료급식사업을 하는 등 스스로의 노력으로 사회에 되돌아가겠다는 의지와 희망으로 충천했다. 그리고 유난히 추위가 가혹했던 겨울을 보낸 후, 더불어 사는 집의 면모는 상당히 바뀌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 집을 잃는다는 것은 일을 잃고 희망을 잃고 자존감을 잃는다는 의미이다. 빈집 점거를 통해 삶의 희망을 얻고자 했던 노숙인들의 일 년을 관찰하면서 인권은 주제가 아니라 태도임을 상기하게 된다. “무엇을 할 것인가” 가 중요했던 시기가 있었다. 이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가 중요한 시기이다. 그래야 “왜 하는가”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감독 노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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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연초부터 매스컴에 UCC(사용자제작콘텐츠) 바람이 불었다. 이때의 콘텐츠란 전적으로 동영상만을 의미한다. 인터넷 속도도 빨라지고 스토리지도 대형화되고 있는 데에다 디지털동영상 제작 환경이 대중화되었으니까 자연스러운 추세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추세에 참여니 민주주의니 자못 심오한 분석을 덧붙이는 것에는 닭살이 돋는다. 웹2.0을 거론하면서 웹(인터넷)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고도 말하는데 이것 역시 참여와 민주주의의 태그를 매달고 있다. 유행하고 있는 것은 UCC가 아니라 참여민주주의인가?

연초 UCC 바람의 효시를 이룬 지난 해 말의 <타임> 선정 그 해의 발명품과 인물은 유투브와 ‘유(You)’ 바로 당신이었다. 방점이 찍힌 쪽은 당연히 유가 아니라 유투브다. 타임은 UCC의 만개에 디지털민주주의의 개화라는 멋진 말을 붙여 ‘유’의 손을 들었지만 인터넷이 등장한 이래 ‘유’는 콘텐츠의 제작을 멈추어본 적이 없었다. 인터넷은 늘 당신의 콘텐츠로 홍수를 이루었으니까 이게 민주주의 개화의 이유라면 뜬금없이 2007년을 앞두고야 <타임>의 찬사를 받을 이유가 없었다. 결국 <타임>이 지목한 당신이란 ‘유투브에 정력적으로 동영상을 올려대는 당신들’을 의미했다. 이건 어떤 당신인가? 유투브란 새로운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에 현혹되어 금융자본과 결탁한 거대자본 야후가 16억5천만 달러를 지불했다는 인터넷 벤처업계의 오래된 신화에 새로울 것도 없는 신화 하나를 더 보태준 당신들이다. 멀리 돌아볼 것도 없다. 유투브의 성공신화를 모방해 동영상 바람이 불고 있는 우리네 인터넷의 동영상 바람이 수익모델의 창출에 혈안이 되고 있는 것은 화제의 주인공인 사용자제작동영상이 결국 돈벌이 수단에 대한 관심 이상이 아닌 것을 반증한다.

이건 한편으로 좀 딱한 일이다. 한때 눈을 뜨면 새로운 신화 하나가 탄생하던 이 꿈의 업계에서는 유투브 정도의 아이디어가 아무것도 아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유투브 정도에 16억5천만 달러를 지불할 만큼 꿈이 희소해졌다. 상상력(꿈)이 빈곤해진 꿈의 세계에 그나마 최근의 성공으로 기록된 것이 유투브, 플리커, 딜리셔스가 만들어낸 (비즈니스)모델인데 요약한다면 이것들은 참여를 상품화한 모델이고 웹2.0의 실체이기도 하다. 결국은 독점자본의 블랙홀로 빨려들어가 이윤의 창출에 기여할 이 모델을 두고 민주주의 개화로 포장한다면 민주주의에도 여러 종류가 있으므로 이해 못할 것은 아니지만 음험하기는 매한가지다.

인터넷의 거대독점자본이 끊임없이 참여를 모색하고 부추기며 선동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구글과 야후, 네이버, 다음과 같은 검색서비스 자본들은 이런 종류의 참여에 의해 대량으로 생산된 콘텐츠와 데이터에 의해 유지되고 성장하는 자본들이다. 정보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이들의 독점력은 심화되며 수익성은 높아진다. 이때의 참여란 질보다 양이 우선이다. 정보의 양이 늘어날수록 검색의 중요성은 비례해서 높아지며 순위의 결정력은 강화되는데 그 순위는 (광고수입가 같은)자본의 이익에 의해 결정됨으로써 이윤을 창출한다. 이게 웹2.0 시대에 참여가 만개하는 원동력이다. 결과는 10년 전 움베르토 에코가 퍼부었던 악담대로 인터넷은 쓰레기더미가 되어버리고 그 위에서 피어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독점자본이 가꾸는 악취 풍기는 이윤의 장미일 뿐이다.

인터넷에서 민주주의의 현주소는 질식 직전이다. 인터넷이 등장한 이래 기술독점자본의 출현과 독점의 강화는 꾸준히 이 세계의 다양성과 민주주의를 억압하기를 멈춘 적이 없었다. 다중의 민주주의적 본성은 거미줄(웹)을 따라 이합집산하며 변증법적으로 발전하기보다는 자본의 토목으로 건설된 광폭, 고속의 하이웨이를 따라 정해진 방향으로 등을 떠밀려 왔다. 이 하이웨이에는 단지 몇 개의 톨게이트만 존재할 뿐이어서 인터넷의 공민들은 통행료를 징수당하지 않으면 빠져나갈 출구를 찾을 수 없다. 이른바 거미줄 네트의 민주주의적 가능성은 이렇게 지난 20년 동안 축소일로를 달려왔다. 이제 인터넷은 독점의 논리가 지배하는 거대한 닭장이다. 이 닭장에서 닭들에게 허용되는 것은 매일매일 (수익)의 알을 낳아주는 일이다.

인터넷에서 자본의 독점이 강화되는 구조는 서버-클라이언트로 표현되는 집중, 검색으로 귀결되는 대규모 데이타베이스의 축적일 것이다. 이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인터넷에서 민주주의를 모색할 수 없다.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구글적인 참여가 아니라 P2P적인 수평적 소통의 확대이다. P2P에 대한 독점자본의 과도한 적대감은 이윤의 기회를 훔쳐가기 때문이 아니라 이념적으로 자신들이 소망하는 종류의 참여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검열은 민주주의에 있어서는 이제 일상적인 위기인데 구글과 야후, 네이버와 다음의 검색순위는 저강도의 검열이며 부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정보의 차단이란 고강도의 검열 또한 언제라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위기이다. 웹2.0의 가장 건강한 모델인 위키토피아조차 그 앞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중국이 인터넷의 목을 대단히 효율적으로 조르고 있는 것을 상기할 만 하다. 이래저래 인터넷에서의 민주주의는 개화하기는커녕 위기의 수렁에 빠져 있다. 소극적인 저항의 형태로 참여를 거부하는 운동의 필요성이 절실해지고 있다. 당신이 아닌 우리들. 알 낳기를 멈추고 닭장을 빠져나갈 궁리에 몰두해보자. 특히 기술자들의 분발이 촉구된다.

유재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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