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복궁에서 너무 늦게 나오는 바람에 채 반도 둘러보지 못했습니다. 1층 로비에 자리잡은 카페며 기념품을 파는 상점, 중간중간에 마련된 휴식공간도 굉장히 예쁘게 마련되어 있는데 미처 담아오지 못했구요, 박물관 마당에 자리한 약재점, 포목점과 같은 옛 점포의 모습도 훑듯이 보고 나와야했습니다.

- 다음에 꼭 시간을 내어 다시 들러야겠습니다. 박물관 구성에 대해서도 파악하고, 전시물들도 꼼꼼히 둘러보구요.



- 도저히 지나칠 수 없어 몇 장만 담았습니다. 민속박물관의 좋은 점은, 지난 생활 양식에 대해서 단순히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과정까지 꼼꼼하게 소개하고 있다는 점인데요, 빛깔도 빛깔이지만, 재료가 되었던 식물들과 제작 과정을 소개하고 있어 참 좋았습니다. 저 빛을 내려고 낸 것도 아닐진데, 다섯 가지 모두 참으로 곱습니다.



- 조각보를 비롯한 몇 가지 물품들을 통해 전통 문양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복잡하지만, 아름답다는 생각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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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에 다녀왔습니다. 얼마 전 서울의 5대 궁궐을 돌아보겠노라고 다짐하고는, 첫 발걸음이었습니다. 사진기를 빌리는 것 부터 시작해서, 우중충한 날씨에 스물일곱 백수와 함께 고궁을 거닐 친구를 찾는 것도 예사 어려움이 아니었으니, 제법 괜찮은 발걸음이었습니다.

-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너무 늦게 출발하고 너무 일찍 떠나는 바람에, 안내 표지판도 느긋하게 훑어보지 못하고 한번 둘러보는 수준에 그쳤다는 점과, 볼거리 많은 민속박물관 마감 시간에 걸렸다는 것인데요, 4월이 되면 좀 더 여유가 날 터이니 한번 더 발걸음 해야겠습니다.



- 근정전입니다. 신하들이 무릎 꿇고 앉아있을 장면을 상상해봤는데, 찬 기운이 도는 바닥이며 높은 임금의 단상 때문에, 어전회의가 꽤나 불편했을 것 같더군요.



- 근정전을 나서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둘러봐야 할지가 걱정이었습니다. 매표소에서 안내 팸플릿이라도 한 장 들고올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다시 돌아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라, 일단 근정전을 시작으로 끝까지 올라가 북문을 본 후, 양쪽을 훑으며 내려오기로 했습니다.



- 근정전의 후문이기도 한 사정문. 일전에 어떤 TV 프로그램에서 어전회의에 참석하기 전, 생각을 가다듬는다는 의미에서 '사정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했던 기억이 얼핏 났습니다.



- 여긴 소회의실 정도 되려나요. 근정전 보다는 신하들의 고초가 조금 덜 했을 것 같습니다.



- 모르는 한자입니다. 임금의 숙소 입구였던 것 같아요.





- 사방으로 나 있는 문이 인상적입니다. 열려있으면서도 닫혀있는 공간, 일상적인 주거공간 과는 아주 다른 느낌입니다.



- 대부분의 건물 하단에 이와 같은 시설이 있는데, 나중에 친구에게 물어보니 아궁이라고 합니다. 아궁이 아닌 것 같은데.



- 작고 아담한 출입문이 줄곧 인상적이었습니다.



- 이것이야 말로, 아궁이로 들어가는 문이 아닐까요. 문을 개방해두었더라면 좋았을텐데.



- 부러 저렇게 지은 것인지, 양쪽 복도의 높이 차이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 기단으로 부터 널찍히 떨어뜨려 집을 짓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 줄곧 보아왔던 문과는 다소 달리보이는 문이었습니다.



- 문 옆에 방을 냈다는 것도 그렇지만, 어김 없이 마루와 오름돌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아기자기합니다.





- 흔치 않은 정사각형의 건물입니다. 옆으로 돌아가면, 위에서 보이는 것 처럼, 마루를 내어 넉넉한 느낌을 줍니다. 아름답군요.



- 문이 여럿 나있는 담벽입니다. 담벽에 만들어 둔 공간을 무엇에 쓰였을지 궁금합니다. 안내원이라도 있었으면 할 정도로 궁금함 투성이었어요.



- 조신하게 걸어야 될 것 같은, 아름다운 복도입니다.



- 아기자기함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곳입니다. 두 걸음 간격으로 작은 문이 나있죠.



- 북문까지 갔다가 왼쪽으로 돌아내려오는 길이었습니다. 멀리 경복궁의 서문이 보이는군요. 제법 좋아보이는 사진기를 들고 다니던 중년의 아저씨들을 계속 마주쳤습니다. 함께 사진을 찍고, 뉘엿뉘엿 지는 해를 뒤로 하며 근처 대포집에서 소주 한 잔 하실 아저씨들의 모습이 참 훈훈하고 부럽습니다.





- 공간을 만들어 둔 담벽이 있는가 하면, 한 쪽을 완전히 틔워둔 담벽도 있었습니다. 계단은 왜 옆으로 나있는걸까요.



- 궁궐의 왼편을 돌아 다시 근정전에 도착했습니다. 어느덧 해가 지고, 맑지 못한 하늘이나마 담아갑니다.



- 이제 반대편으로 돌아서면 경회루를 볼 수 있습니다. 연희와 뱃놀이를 즐겼던 곳이라고 하는데요, 참 운치가 넘치는 곳입니다.



- 아쉽게도 경회루로 향하는 문은 닫혀있었습니다. 경회루를 지나 다시 북문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다른 곳에 비해 상대적으로 좀 닫혀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는데요, 문득 <마지막 황제>에서 푸이 황제가 자금성 정문을 향해 달려가던 그 곳이 떠올랐습니다.



- 담벽에도 공간을 내다보니, 불가피하게 이런 문도 나오는군요.



- 연못도 아닌 것 같고, 안압지 처럼 호사스러운 연희를 즐기기에는 너무 구석진 곳이었습니다.



- 함화당 집경당은 한참 복원 공사중이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이 머물렀다던 이곳은 내후년이나 볼 수 있겠군요. 언제 소실된 것일까요?



- 복원 공사 울타리에 걸려있는 발굴현장 사진입니다.



- 고종 황제와 명성황후가 흥선대원군을 비해 북문 가까이 건물을 내면서 사이에 만든 연못입니다. 이름을 외워둘걸 그랬습니다. 팔각정과 다리가 아름답지요. 봄에는 더욱 장관일겝니다. 이곳에 배를 띄워두고 방문한 이들도 탈 수 있게 한다면 참 좋을텐데요. 왜 보기만 해야하죠.



- 고종 황제와 명성황후의 궐도 공사중이었습니다. 소실되고 남은 담벽과 울타리에 걸린 담벽 그림, 웃어버렸습니다.







- 공사 중인 궐 오른편에 서있습니다. 청나라를 비롯해 외국의 사신을 접대하거나, 고종 황제의 개인 책방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경복궁 내에서 유일하게 청나라 풍을 하고 있는데, 양쪽으로 모두 복도가 나있습니다. 궐 뒷편에는 경복궁의 북문이 지나칠만치 바짝 붙어있습니다.

- 여기까지 둘러보고 반대편 끝에 세워진 민속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꼼꼼하지는 못했지만, 한 바퀴 제대로 둘러본 셈입니다. 어서 두 개의 궐이 마저 복원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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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도와(필명·26)는 지난달 하순 소설책을 출판해 작가로 정식 데뷔했다. 작품은 순애보를 주제로 한 <클리어네스>이다. 그러나 그가 글을 쓴 곳은 원고지나 노트북 컴퓨터가 아니다. 휴대전화 번호판이 그의 키보드였다. 엄지손가락으로 휴대전화 번호판을 눌러 글을 써서 휴대전화 소설사이트에 올린다. 그의 소설은 지난해 11월 제1회 일본 휴대전화 소설 대상을 수상했다.

일본에서는 몇년 전부터 도와처럼 작가지망생도 아닌 평범한 젊은이가 쓴 휴대전화 소설 붐이 일고 있다. 수십만부의 베스트셀러가 속출해 불황에 허덕이는 일본 출판계에 숨통을 열어주는 활력소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이 자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지난해 문예부문 연간 베스트셀러 1~10위 중 휴대전화를 발신지로 한 소설책이 3위 <연공>(124만부), 5위 <날개꺾인 천사>(120만부), 6위 <천사가 준 것>(40만부), 10위 <라인> (22만부) 등 4권이나 된다. 프로작가도 1만권을 넘기기 힘든 활자이탈 시대에 간단히 수십만권의 판매부수를 올리는 휴대소설이 수두룩하다.

휴대전화 소설을 지배하는 ‘작법’은 간단명료하다. 휴대전화 화면에 표시할 수 있는 문자가 일본어로 100자 정도이기 때문에 문장이 짧고 정경묘사도 적다. 대신 많은 경우 회화나 독백으로 구성된다. 내용은 대개 비련 끝에 연인이 죽는다는 순애보가 많다.
“나는…살아 있어도 좋은 것인가? 나는 이제 한번, 웃어도 좋을까?” <또 만나고 싶어서>라는 제목의 휴대전화 소설은 한 중학생이 씩씩한 소녀와 만나서 밴드활동이라는 삶의 보람을 맛보았으나 소녀의 죽음으로 다시 거친 세계로 빠져든다는 내용이다. 폭주족 출신의 24살 남자가 쓴 이 소설은 지난해 8월 출판돼 2개월만에 가볍게 10만부를 돌파했다.
휴대전화 사이트 ‘마법의 도서관’(http:4646.maho.jp/)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을 포함해 약 70만타이틀이나 되는 소설이 게재돼 있다. 반 년만에 두 배 늘고 서적화된 작품이 차례차례 이어지고 있다. 일반 소설과 다른 점은 전파력이 빠르다는 점이다. 중·고교 교실에서 누군가 소설을 보고 있으면 “뭐야, 뭐야”라고 물어보고 마음에 들면 그 자리에서 곧바로 전송받는 경우가 많다. 다시 책으로 출판되면 금방 팔리는 것도 이런 신속한 습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묘사력이나 표현이 대부분 치졸해 “소설도 아니다”라는 비판이 만만찮다. 이 때문에 동일 작가가 두 번째, 세 번째 작품을 쓸 수 있느냐가 휴대전화 소설이 작품으로서 정착하는 가늠자라는 얘기도 나온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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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한국방송>(KBS)이 수선스럽다. 평소라면 꽤 사이가 나쁠 대통령과 뉴라이트 쪽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성토발언과 시청료 거부운동을 쏟아낸다. 대선 마그마가 부글부글 끓어가는 신호탄으로 보인다. 한국방송 쪽 사람들, 무척 속이 탈 것이다. 앞으로 장장 몇 개월이 남았는가. 대선 회오리의 한가운데 서 있는 방송사가 평상심으로 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시기가 유난히 힘들 한국방송 사람들이 있다. 내 생각에 직접 펀치를 맞는 보도부서나 경영진이 아니다. 가령 본사 신관 5층에 근무하는 기술분야 제작 인프라팀. 전세계적으로 불꽃 튀는 속도전에 돌입한 방송의 디지털 전환작업의 주역들이다. 기자재며 제작 시스템까지 최고급 인력과 돈을 퍼붓듯이 써야만 따라잡을까 말까 한 엄청난 사업이다. 그밖에도 장애인 방송, 국제방송, 문화사업 등 공적기능에 해당되는 영역이 무수히 많다. 주목도가 높을 뿐이지 ‘정치뉴스’는 방송기능의 일부분일 따름이다.

1980년대를 풍미한 일본 <엔에이치케이>(NHK)의 ‘실크로드’나 ‘4대 문명’, 영국 <비비시>(BBC)의 ‘살아있는 지구’ 같은 역작을 우리는 언제나 가져볼 수 있을까.

방송사를 최첨단의 현장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십여년째 여러 방송사를 전전하며 프리랜서로 일해 온 내 경험으로 볼 때 우리나라 방송환경은 그저 중견기업 정도나 될까 싶은 수준으로 보인다. 그나마 여건이 가장 낫다는 ‘공영’ 한국방송의 형편을 해외 경쟁사와 비교하면 답답함을 금할 수 없다. 가령 비비시는 6천만 수신인구를 대상으로 7조3천억원의 예산을 쓴다. 이중 5조6천억원이 수신료 수입이다. 본사 근무자는 2만명에 육박한다. 엔에이치케이의 지난해 예산은 5조4천억원에 1만9천명이 일하는데, 약 5조원이 수신료로 충당된다. 독일과 이탈리아 공영방송의 형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반면에 ‘공룡’이라는 한국방송의 올해 예산은 1조3천억원에 직원 수가 약 5300명이며 지난해 수신료 수입은 정확히 5246억원으로 집계되어 있다.
한국방송을 일반 기업체로 여긴다면 형편을 살펴줄 이유가 없다. 방송 품질 또한 돈과 사람 수에만 좌우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한 국가의 지적 문화적 산물의 집적지가 더이상 대학에 국한되지 않는 오늘날, 우리도 세계경쟁의 최선두에 서 있을 방송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국가 경쟁력이 곧 콘텐츠 생산능력에 달려 있다고 하는 세상이다.

관건은 막힌 구멍 두 가지를 뚫는 데 있다. 첫째는 추억의 ‘땡전뉴스’에서 탄핵보도의 양에 이르기까지 정파적 이해를 대변한다는 오명을 벗는 일, 그리고 동시에 비현실적인 수신료를 정상화하는 일이다. 현행 월 2500원은 1981년 4월에 책정된 액수다. 장장 26년째 변동없는 이 놀라운 기록은 눈물겨운 서비스 정신이 아니라 여야 간에 서로 주고받아온 정치적 견제 때문이었다. 그 바람에 꾀를 부려 야금야금 늘린 것이 광고수입인데, 공영방송 예산의 절반 이상이 기업체에서 조달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때릴 때 때리더라도 키울 건 키워주면서 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공영방송’이 우리 자신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시청료 분리징수안이나 폐지론을 내세워 아예 싹을 죽여버리자는 발상은 눈앞의 정파적 이해에만 사로잡힌 단견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공영방송이 ‘정권의 나팔수 방송’이 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디어 월드컵에서 2류, 3류 방송은 더더욱 원치 않는다. 허물 많은 한국방송을 매우 쳐라. 단, 수신료는 당장 현실화하고서.

김갑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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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합뉴스)

지난해 3월 7일 뉴욕 오프 브로드웨이 미네타 레인 극장에서 한국 기자들을 만나 "꿈에 그리던 오프 브로드웨이 전용관을 갖게 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라며 감격스러워했던 송승환 PMC 프러덕션 대표. 딱 1년이 지난 지금 그는 "아기의 돌을 무사히 넘긴 딱 그런 심정"이라며 다시 한번 감회를 나타냈다.

한국의 대표 문화상품 '난타'(영어명 COOKIN')가 오프 브로드웨이 무대를 두드린 지 7일로 1년이 된다. 미네타 레인 극장과 '오픈 런'(종영 날짜를 정하지 않되 매출이 일정액을 밑돌면 막을 내림) 방식으로 계약, 지난해 3월 7일 첫 공연을 올린 후 벌써 450회 공연(2월 프리뷰 공연 포함)을 넘기며 장기공연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는 것.  

1년 간 총 10만 명의 관객이 다녀갔다. 관객 분포는 뉴욕 현지인이 75%, 한국인이 10%, 관광객이 15% 정도로 현지인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처음 공연을 올린 땐 과연 얼마나 갈 수 있을지 걱정했던 것도 사실이었죠. 흥행이란 게 변수가 많아서 마음을 놓을 수 없었는데, 일단 1년을 넘겼다는 사실이 무척 고무적입니다." 진입도 어렵지만 장기공연을 이어가는 것은 더 어려운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송 대표의 말대로 1년을 버텨왔다는 것 자체가 대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난타'는 오프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첫 동양권 작품이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현재 오프 브로드웨이에 이렇다 할 히트작이 없습니다. '난타'처럼 1년 이상 장기공연 중인 작품도 별로 없구요. 넌버벌 퍼포먼스 '스톰프'가 유일한 경쟁작이랄 수 있는데, 매출면에서 우리가 앞선 지 이미 오래됐어요."

지금까지 총 매출액은 약 590만 달러(약 59억원). 송 대표는 "투자액을 거의 회수하긴 했지만 당분간 수익은 마케팅에 재투자해야 할 것 같다"며 "이 상태로 올해를 넘기면 내년부터는 흑자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1년 간 몇 차례의 고비도 있었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지난해 8월 말에서 9월 초 뉴욕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로 브로드웨이 전체 관객이 크게 줄어 타격을 입었다. 공연 초반엔 주당 지출비용이 8-9만 달러인 데 비해 수입이 밑돌아 주당 1-2만 달러씩 손해를 보기도 했다. 송 대표는 "안 되겠다 싶어 작년 여름 쯤 주당 지출비용을 5만 3천 달러로 확 줄이고 배우들이 묵는 아파트도 싼 곳으로 옮겼다"며 "몇 번의 고비를 넘기고 이젠 평균 70%의 객석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1-2월은 전통적인 비수기이지만 2월 들어 매출 실적은 오히려 좋아지고 있다. 지난 2월 19일에는 400석 객석이 매진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더욱 안정적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앞으로의 관건은 현재 관객 분포에서 15% 수준인 관광객 비율을 끌어올리는 것. "뉴욕 현지 관객에겐 어느 정도 인지도를 심어줬다고 생각해요. 브로드웨이 관객 대부분이 해외 혹은 미국 내 다른 지역에서 온 관광객인 만큼 관광객 관람비율이 70-80%로 올라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홍보, 마케팅에 좀더 집중할 생각이에요."  

'난타'의 성공을 계기로 브로드웨이, 혹은 오프 브로드웨이 진출을 준비 중인 국내의 다른 작품들도 계속 생겨나고 있다. 송 대표는 작품 자체가 경쟁력을 갖추고 현지의 좋은 파트너를 만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작품의 질도 중요하지만 좋은 현지 파트너를 만나는 것도 아주 중요해요. 우리도 홍보, 마케팅을 현지 회사와 계약해서 성공한 것이지 아마 우리가 직접 했다면 한국 교포 관객을 대상으로 몇 달 공연하고 막 내렸을 겁니다." 공연 1주년을 기념해 곧 뉴욕을 방문할 계획이라는 송 대표는 "그동안 현지에서 수고한 배우들을 위해 조촐한 자축 파티를 열어줄 예정"이라며 "앞으로 10년, 20년 공연이 계속되기를 꿈 꾼다"고 말했다.  

한편 대학로 자유극장에선 25일부터 4월 10일까지 1주년 기념 '난타' 특별공연도 펼쳐진다. 자유극장은 PMC 프러덕션이 건물주로부터 5년 간 장기임대해 이번에 뮤지컬 전용극장으로 새롭게 문을 여는 270석 규모의 소극장. 
현재 정동극장에서 상설공연 중인 팀이 번갈아가며 출연할 예정이다. 공연시각 화-금 7시 30분, 토 4시ㆍ7시 30분, 일ㆍ공휴 3시ㆍ6시. 4만-5만원. ☎1588-7890, 1544-1555.

최호현 한마루커뮤니케이션 부회장

국내 관객을 겨냥한 <굿모닝 비보이>와 해외시장을 타깃으로 <비보이 춘향전>, <비보이 흥부놀부전>
등을 준비 중인 최호현 한마루커뮤니케이션 부회장은 공연계에 비보이 바람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비보이 열풍의 원조 격인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를 직접 기획하고 이를 위한 ‘비보이 전용극장’을 설립했다.
“이전에 한국의 비보이가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했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실력이 이 정도일 줄 몰랐습니다. 직접 보니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보자마자 ‘이것은 훌륭한 문화상품이 되겠다’는 감이 왔죠.”

이에 최부회장은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피아노 연주와 보컬, 비보이를 결합해 장기공연을 노리는 <굿모닝 비보이> 준비에 한창인 것. 현재 서울 강남이나 명동 등지를 중심으로 700여석의 전용극장 설립을 추진하는 등 비보이 바람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이어가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비보이 퍼포먼스를 처음 시작한 주체인 만큼 해외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는 게 그가 새 퍼포먼스 <굿모닝 비보이>를 기획하게 된 계기다.
“우리나라 비보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습벌레’입니다. 자연히 좋은 비보이가 탄생할 가능성도 높겠죠. 비보이들의 퍼포먼스도 반드시 예술적인 장르로 굳건히 자리를 잡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최부회장은 이렇게 한국의 비보이가 각광받는 지금이야말로 좀더 나은 작품으로 시장 선점 효과에 쐐기를 박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미스사이공> 등 뮤지컬 빅4 같은 작품을 만들지 않곤 비보이 퍼포먼스가 아무리 인기라고 해도 살아남기 어려울 것입니다. 작품성을 가미한 작품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퇴출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비보이 공연 제작 붐이 이는 것은 어찌 보면 바람직한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비보이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앞으로 4~5년간 계속되리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하지만 공연은 재미 위주로만 만들면 오래갈 수 없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그는 “비보이의 잠재적 가치는 엄청나다”면서 “결국 이들 비보이의 설자리를 어떻게 마련해 줘야 할 것인지는 기성세대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비보이 자체가 오래 유지되는 트렌드라기보다 공연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그 작품이 롱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찬서 PMC프러덕션 공연제작부 부장

넌버벌 퍼포먼스(무언극) <난타>로 세계무대에서 명성을 떨친 PMC프러덕션 역시 최근 비보이 공연 트렌드에 동참했다. <난타> 이후 뚜렷한 성과를 보인 후속작품이 없었던 PMC프러덕션은 비보이 공연을 통해 <난타>의 영광을 되살려 보겠다는 각오다.

PMC프러덕션의 비보이 퍼포먼스 <비트 앤 비보이>(Beat & B-Boy·가제)를 총괄하는 김찬서 공연제작부장은 “비보이와 타악을 결합해 상식을 뛰어넘는 작품을 만들 것”이라면서 “이제 막 시나리오 작업을 마친 단계인데도 벌써부터 해외 파트너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2002년에 이미 비보이 댄스와 유사한 댄스 퍼포먼스를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야심차게 공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댄스공연이 지나치게 앞선 트렌드인데다 춤만으로는 15분을 넘기기 어렵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결국 어떤 넌버벌 퍼포먼스라도 드라마가 탄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김부장은 “공연의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꾸민 퍼포먼스로 세계시장을 공략할 것”이라고 말했다.
“<난타> 해외투어로 유럽에 갈 때면 비보이의 거리공연이 활성화돼 있는 것을 보고 감명받았습니다. 이를 극화하면 좋겠다고 생각할 즈음 공연계를 이끄는 주요 세력인 젊은층의 춤에 대한 열기가 뜨겁더군요.”

특히 최근 해외 퍼포먼스의 흐름이 종합 엔터테인먼트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만큼 비보이와 국악, 마술 등 다양한 장르가 결합된 작품이 나오게 되리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국의 비보이는 일종의 역수출인 셈이죠. 한류가 항상 한국문화에 뿌리를 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비보이는 한국에서 시작된 문화는 아니지만 좋은 콘텐츠로 가공해 내놓으면 해외시장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그는 그럼 비보이의 잠재가치를 얼마 정도로 보고 있을까. “얼마나 진화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짤막한 대답이 돌아왔다. 김부장은 “비보이의 테크닉만으로 어필하면 금세 한계가 드러나는 만큼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고 훌륭한 퍼포먼스를 완성해야만 그 가치가 제대로 드러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우성 익스프레션 크루 단장

“예전에는 친척집에 방문하면 ‘가수 사인 받아달라’는 소리만 들었는데 지금은 비보이 자체를 인정해 주더군요.”
9월 오픈을 앞두고 연습에 한창인 비보이 뮤지컬 <마리오네트>의 연출을 맡은 이우성 익스프레션 크루 단장은 비보이의 달라진 위상을 단적으로 이같이 표현했다. 92년에 프로댄서로 데뷔, 97년에 비보이그룹 익스프레션 크루를 결성한 이단장은 한국 비보이 1세대 멤버다.

“그동안 수준 높은 비보이 공연을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그런 공연을 수용할 문화가 형성돼 있지 못했었죠. 그런데 최근 비보이 붐이 일면서 좋은 기회가 온 것 같습니다.”
춤을 좋아해 댄서의 길에 들어서 10년 넘게 춤추는 것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단장은 2002년에 세계 최대 규모의 댄스대회인 독일 ‘배틀 오브 더 이어’(Battle of the Year)에서 팀을 이끌고 아시아 최초로 우승하는 등 화려한 수상실적을 자랑한다.

그는 최근 브레이크댄스와 줄인형극을 결합한 퍼포먼스 <마리오네트>를 완성·공개하면서 새삼 떠들썩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익스프레션 크루가 선보인 <마리오네트>의 10여분간 동영상은 인터넷상에서 인기 콘텐츠가 됐다. 또 지난 5월에는 이 동영상 덕분에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투자자들이 참석한 세계 쇼 비즈니스 투자 포럼에 공식 초청되기도 했다. 그리고 바로 이 퍼포먼스가 오는 9월에는 1시간20분의 단독공연으로 거듭나게 됐다.
“한마디로 인형사와 관객의 교감을 그린 작품이죠. 인형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진짜 인형이 춤을 추듯 구성할 예정이어서 춤도 음악도 모두 새로운 무대가 될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새로운 공연에, 달라진 위상에 정신없이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는 이단장에게 비보이 붐이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는 한국의 비보이 문화가 댄서들의 힘이 아니라 스폰서인 기업에 의해 기형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본다. 특히 비보이를 동경하는 이들은 부쩍 늘었지만 기업들이 추구하고 있는 대형공연을 이끌어갈 만한 유능한 비보이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그의 말이다. 춤에 대한 기본 이해 없이 테크닉에만 치중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다.

그에 따르면 한국 비보이 문화의 뿌리는 얕은 채로 줄기만 커져버린 꼴이다. 특히 각종 댄스 배틀 성과가 강조되면서 기술이 중요한 하나의 스포츠처럼 취급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는 설명이다. 그는 비보이가 지금 같은 일시적 붐보다 꾸준한 하나의 문화코드로 자리를 잡아야만 관광상품으로서의 가치도 더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지금의 비보이에 대한 관심이 비보이가 문화코드가 되고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잡는 데 큰 역할을 해 비보이 퍼포먼스가 장기적으로 사랑받는 공연이 되길 기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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