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월간DVD)

Hip Hop 'Flims': 다섯 편의 힙합 DVD
양재영 cocto@hotmail.com

흔히들 힙합 음악과 문화의 정수는 '배틀(battle)'에 있다고 얘기한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전투', '투쟁' 그리고 '투쟁에서의 승리'가 모두 이 단어 속에 녹아들 것이다. 말하자면, 힙합 음악과 문화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전장에 나가 장렬한 한판 승부를 벌이는 전사의 이미지를 어느 정도 지니고 있다고 보면 된다. 실제로 힙합의 4가지 요소를 이루는 '엠씨잉(MCing)' 혹은 '래핑(rapping)', '디제잉(DJing)', '브레이크댄싱(breakdancing)'과 '그래피티 라이팅(graffiti writing)'은 모두 개인간의 혹은 집단간의 지속적인 경쟁과 대결을 통해 발전해왔다. 4반세기전 뉴욕 브롱스의 게토 흑인들을 중심으로 싹이 텄던 이 언더그라운드 문화와 음악이 오늘날 전세계 젊은이를 사로잡는 보편적인 문화 아이콘으로 성장하게 된 것은 힙합 특유의 배틀이 자양분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힙합의 핵심 요소들을 거대한 문화상품으로 변모시킨 치밀한 문화산업의 전략이 없었다면 이 모두가 무용지물이었겠지만 말이다.

그간 힙합에 아예 무관심했거나 혹은 힙합을 그저 장신구나 주렁주렁 달고 랩을 도구로 욕설이나 퍼부어 대는 마초들의 표현물 정도로 생각해왔던 이들에게 아마도 당대 최고의 래퍼 에미넴(Eminem)이 주연한 [8 Mile]은 신선한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밑바닥 생활과 지역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의 치열한 엠씨잉 배틀에서 생존해 그가 오늘의 위치에 이르렀음을 상상하면서 힙합 문화와 음악의 새로운 매력에 빠져든 이도 상당수였으리라. 물론 [8 Mile]이 국내에 처음 소개된 본격 힙합 영화이긴 하지만, 최초의 힙합 무비는 아니다. 힙합 문화와 음악의 오랜 역사와 광범위한 인기를 상기한다면 힙합이 꾸준히 영화의 소재 혹은 주제로 다루어져 왔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치열한 배틀이 힙합의 정수이기에, 힙합만큼 '극적인(dramatic)' 이야기 거리도 드물지 않나 싶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힙합을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는 의외로 많지 않은 편이다. 특히 극영화에 한정한다면 말이다. 물론 갱스터 래퍼로 명성을 떨치던 아이스 큐브(Ice Cube)나 DMX가 영화배우로도 어느 정도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최근에는 뉴욕의 대표적인 언더그라운드 엠씨 모스 데프(Mos Def)까지 할리우드 영화판에 뛰어들었다. 아쉽게도, 다수의 힙합 뮤지션이 영화판을 기웃거리지만, 이들이 출연한 영화는 대부분 힙합을 직접 다루지는 않는 것 같다. 이제는 전설이 된 갱스터 래퍼 투팍(Tupac)이 주연한 [Juice](1992)나 [Above The Rim](1994) 같은 영화가 비교적 힙합 냄새가 물씬했지만, 이 또한 본격적으로 힙합을 파고든 영화들은 아니었다. 그나마 그래피티를 소재로 한 [Beat Street](1984), 브레이크댄스를 다룬 [Breakin'](1984), 마리오 반 피블스(Mario Van Peebles)가 '정의의 래퍼'로 등장하는 [Rappin'](1985) 같은 극영화가 초창기 힙합을 직접적인 소재로 다루긴 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너무 감상적이고 겉 핥기 식으로 힙합 문화를 보여줄 뿐이었다. [8 Mile] 이전에 힙합을 제대로 다룬 극영화는 없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지니는 것은 바로 이런 연유다.

다행히 힙합의 본고장 미국에서는 근년에 실로 시, 공간을 초월해 다양한 내용과 형식을 담은 힙합 DVD들이 꾸준히 출시되고 있다. 이 중에는 20여 년 전의 고전을 재 포장한 것도 있고, 최신 힙합 트렌드를 직설적으로 다룬 기록영화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물론 다큐라마(docurama)나 애니메이션 형식의 독특한 힙합 영화들도 눈에 띤다. 쉴 틈 없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힙합 DVD 중에서, 힙합 음악과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보고 듣는 재미도 쏠쏠한 DVD를 취사선택하는 것은 그래서 즐거운 고민이었다. 어쨌든, 갈등에 갈등을 거듭한 끝에, 다소 무리하고 주관적인 기준으로 근래 미국 시장에서 발매된 5편의 볼만한 힙합 DVD를 골라보았다. (앞서 언급한 이유로 픽션 극영화는 이 선정에서 제외되었고, 아울러 뮤직 비디오를 잔뜩 담은 음악 DVD들도 논외로 했음을 우선 밝혀둔다.)

1. [Wild Style](2002/Rhino)



힙합 사가들은 대부분 1982년을 힙합 역사의 가장 중요한 해로 꼽는다. 1970년대 후반 뉴욕 브롱스의 게토에서 막 싹이 텄던 힙합은 1980년대 초반, 정확히 말해 1982년에 미국 청년문화의 최전선인 뉴욕 맨해튼 다운타운까지 진출해 새로운 청년 하위문화로 꽃피기 시작한다. 1980년대 중반 이후 힙합이 대중 친화적인 대중음악 상품으로 변모하기 직전의, 소위 뉴욕 '올드 스쿨' 힙합의 모든 것을 담은 영화가 바로 찰리 애헌(Charlie Ahearn) 감독의 [Wild Style]이다.

1982년에 16mm 필름으로 처음 제작된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형식이 중첩되는 일종의 다큐라마 성격을 띤다. 주인공인 그래피티 청년 조로(Zoro)와 레이디벅(Ladybug)의 로맨스, 그리고 힙합 브로커 페이드(Phade)의 종횡무진 활약상을 기본 골격으로 다양한 볼거리와 음악으로 살을 붙였다. 브롱스의 낡은 지하철로에서 맨해튼 다운타운 클럽에 이르는 변화무쌍한 공간을 배경으로 그래피티, 브레이크댄스, 엠씨잉과 디제잉에 이르는 힙합 문화의 초기 풍광을 80여분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실제로, 전설적인 힙합 디제이 그랜드 마스터 플래쉬(Grand Master Flash), 환상의 코러스를 들려주는 엠씨 패거리 콜드 크러쉬 브라더스(Cold Crush Brothers), 브레이크댄스의 최고봉 록 스테디 크루(Rock Steady Crew)의 라이브 공연 장면을 한꺼번에 감상하는 것은 이 영화가 아니면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영화 마지막의 대규모 야외 잼(jam)은 단연 압권이다. 이들 올드 스쿨 힙합 명인 외에, 뉴 웨이브 밴드 블론디(Blondie)의 여걸 데보라 해리(Deborah Harry)의 젊은 시절을 지켜보는 것도 즐겁다. 한편 그래피티 아티스트로 이 영화의 주연을 맡았던 '리' 퀴넌스('Lee' Quinones)와 산드라 '핑크' 파바라(Sandra 'Pink' Fabara)가 이후 뉴욕 아트 시장에 진출해 '스타급' 화가가 되었다는 얘기는 익히 알려진 일화다.

무엇보다 [Wild Style]은 당시 힙합 문화가 흑인 뿐 아니라 라틴계 이민이나 백인까지 포용하는 다인종적인 문화 현상임을 생생하게 증명한다는 점에서, "힙합은 흑인들만의 고유한 발명품이다"라는 편견을 지우기에 더할 나위 없는 영화다. 그간 거친 화질과 사운드의 VHS 비디오로만 접할 수 있었던 이 영화는 작년에 라이노(Rhino) 레이블을 통해 마침내 DVD로 발매가 되었다. 원작의 풀 스크린 포맷을 유지하고 있지만 화질이 훨씬 선명해졌고, 5.1채널 서라운드 오디오는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클럽이나 야외 무대 공연의 현장감을 살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포토 갤러리 말고 건질게 없는 서플리먼트(supplement)가 아쉽긴 하지만, 본 영화 자체로도 구매가치는 충분한 셈이다.

2. [Downtown 81](2000/ZeitGeist)



기왕 올드 스쿨 힙합 얘기를 꺼낸 김에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자. 1980년대 초 뉴욕 힙합에 대한 또 다른 소중한 기록물로 [Downtown 81]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굳이 따지자면 이 영화는 힙합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다. 정확히 얘기한다면, 1980년대 초 뉴욕 맨해튼 다운타운의 청년문화 전반에 대한 간접적인 보고서에 가깝다. 감독인 에도 베르토글리오(Edo Bertoglio)는 포스트 펑크, 노 웨이브와 뉴 웨이브 그리고 힙합이 제각기 뉴욕 청년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던 시절에 이 모든 것이 공존하는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내는데 주력하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으로 1981년의 뉴욕 맨해튼을 휘젓고 다니는 이는 그 유명한 장 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다. 28세의 나이로 요절한 천재 화가, 시인, 뮤지션 혹은 그래피티 아티스트 장 미셀 바스키아가 이 영화에 출연했을 때 나이는 불과 19세였다. 자신의 그림을 팔고자 맨해튼의 로어 이스트 사이드(Lower East Side) 거리와 클럽에 나선 그가 래퍼, 스트리퍼, 예술상, 모델들을 만나며 겪는 에피소드들이 영화의 주 내용인데, 솔직히 다소 지루한 감이 있다. 하지만 [Downtown 81]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희귀' 게스트와 까메오들을 연쇄적으로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가치는 충분하다. 가령 온갖 흑인 음악과 라틴 리듬을 자유로이 섞어내던 퓨전 마술사 키드 크레올(Kid Creole)의 공연 장면을 어디서 다시 볼 수 있겠는가. 물론 당시 맨해튼 다운타운 클럽 가를 풍미했던 노 웨이브 혹은 뉴 웨이브 아티스트들의 모습 역시 그 자체로 '감동'이다. 플라스틱스(Plastics), 턱시도문(Tuxedomoon), 라운지 리저드(Lounge Lizards), 그리고 DNA... 무엇보다, 지금은 음반조차 찾을 수 없는 그레이(Gray)의 쇼케이스는 압권이다. 10대 시절의 쟝 미셀 바스키아와 빈센트 갈로(Vincent Gallo)가 함께 활동했다는 이유만으로 어느덧 전설이 되어버린 이 밴드가 들려주는 "Drum Mode"는 전율마저 느끼게 한다.

[Downtown 81]은 디제이, 엠씨, 브레이크댄서,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이 미국 청년문화의 최전선 뉴욕 맨해튼에서 다양한 백인 예술가, 뮤지션들과 어울렸던 짧고 굵은 역사를 제대로 포착해낸 몇 안 되는 기록물 중 하나다. 앞서 말했든 비록 '정통 힙합'을 다룬 영화는 아니지만, 뉴욕 올드 스쿨 힙합 성장기의 사회 문화적 공간과 그 맥락을 이해하기 위한 또 하나의 지침서로 전혀 손색이 없을 것이다. 20여 년간 사장되어있던 [Downtown 81]은 지난 2000년에 뒤늦게 대중들을 위해 다시 개봉되었고 DVD로도 재빨리 발매가 이루어졌다. 투박한 2채널 오디오가 다소 아쉽지만, 원본에 충실한 와이드 스크린 화면은 꽤 만족스럽다. 일견 조잡해 보이는 서플리먼트 역시 의외로 속이 알찬 편인데, 1980년대 초 맨해튼을 조감한 인터액티브 지도나 뉴욕 아트 씬 갤러리는 특히 흥미롭다. 아마도 마돈나(Madonna), 빈센트 갈로, 데보라 해리, 앤디 워홀(Andy Warhol) 같은 이들의 당시 모습은 또 다른 즐거움을 안겨 줄 것이다.

3. [Biggie And Tupac](2003/Lafayette Films)



힙합에 문외한이라도 1990년대를 풍미했던 갱스터 래퍼 투팍과 노토리어스 바아이지(Notorious B.I.G.)의 이름은 아마 친근할 것이다. 그리고 1996년 가을과 1997년 봄, 6개월 간격으로 이들 슈퍼스타가 차례로 살해를 당했다는 얘기도 여러 차례 접했을 것이다. 사실 이들이 죽은지 벌써 6년이 지났지만 그 사인과 진상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그저 당시 미국 웨스트코스트를 대표하던 래퍼 투팍과 이스트코스트 간판 노토리어스 비아이지 양측이 증오와 복수를 이유로 서로 상대방을 살해했다는 추측만이 떠돌 뿐이다.

커트 코베인(Kurt Cobain)과 커트니 러브(Courtney Love)를 다룬 다큐멘터리 [Kurt And Courtney](1998)로 성과를 높였던 영국 출신 감독 닉 브룸필드(Nick Broomfield)의 최신작 [Biggie And Tupac]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이들 슈퍼스타의 죽음을 본격적으로 파헤친 기록영화다. 브룸필드는 홀로 카메라를 매고 미국 동부와 서부를 오가며 이들 래퍼의 사망과 직, 간접으로 관련 있는 이들에게 마구 마이크를 들이민다. 부모, 보디가드, 당시 사건을 담당한 LA의 형사와 경찰 뿐 아니라, 투팍이 당시 소속된 음반회사 데쓰 로(Death Row) 사장 슈즈 나이트(Suge Knight)와 그의 '잔당'에게도 과감히 접근한다. 때론 위험스러워 보이는 이 취재과정에서 그간 공공연한 비밀로 치부되거나 감춰졌던 새로운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는 과정은 참으로 흥미롭다. 특히 갱 조직과 연계된 LA 경찰의 부패한 모습이나 슈즈 나이트의 의문스러운 범죄 행적들을 보고 있노라면, 재능 있는 청년 투팍과 노토리어스 비아이지의 죽음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사실 투팍이나 노토리어스 비아이지에 관한 DVD는 이외에도 다수가 출시되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들의 뮤직비디오를 담고 있거나, 이들의 삶을 영웅적으로 포장하는데 급급하다. 최근 DVD로 출시된 [Biggie And Tupac]은 이들의 비극적 죽음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뿐 아니라, 이들의 개인사에 대해서도 보다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참으로 소중한 영화다. 물론 노토리어스 비아이지 가족의 입장이 많이 반영되었다는 편견을 지울 순 없지만 말이다. 또한, 생생한 와이드 스크린 화면으로 담은 작품 자체는 탁월하지만, 부실한 서플리먼트와 2채널 오디오는 여전히 불만스럽다. 더욱이 다수의 흑인들이 인터뷰 대상으로 출연한다는 점에서, 영어 자막이 없는 것은 감상에 치명적인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4. [Scratch](2002/Palm Pictures)



무대 전면에서 랩을 하는 엠씨들과 온갖 묘기를 벌이는 브레이크댄서들을 보노라면, 이들이 진정한 힙합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열혈 힙합 팬들은 무대 뒤켠에서 묵묵히 이들을 위한 사운드를 주조하는 디제이를 숨은 영웅으로 칭송할 것이다. 항상 그림자처럼 조연에 머물던 이들 힙합 디제이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새로운 스타로 부상하고 있다. 이미 디제이 섀도(DJ Shadow) 같은 슈퍼스타의 이름은 익숙할 것이고, 보다 관심이 높다면 디제이 큐버트(DJ Q-Bert), 컷 케미스트(Cut Chemist) 같은 디제이에 대한 소문도 접했을 것이다. 이들은 더 이상 무대 뒤에 머물지 않고 스테이지 전면에서 턴테이블을 '연주'하거나 스튜디오에서 프로듀서로서 음악작업을 전두 지휘하며 새로운 디제이 세상을 만들고 있다. (이웃 일본에서는 이미 악기로서 턴테이블의 판매량이 전기기타 판매를 능가한지 오래일 정도다.)

디제이 중심의 이 새로운 힙합 음악 경향 그리고 관련 현상들을 통틀어 흔히들 '턴테이블리즘(turntablism)'이라 칭한다. [Scratch]는 바로 힙합 디제잉의 역사와 턴테이블리즘을 본격적으로 고찰하고 있는 다큐멘터리다. 1990년대 초 시애틀 그런지 씬을 담은 기록영화 [Hype!](1996)으로 익히 알려진 덕 프레이(Doug Pray)가 감독한 이 영화는 실로 올드 스쿨과 뉴 스쿨의 거물 디제이들이 총 망라되어 인터뷰와 실제 연주를 통해 힙합 디제잉의 모든 것을 낱낱이 드러낸다. 디제잉 기술의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는 스크래칭(scratching)을 우연히 개발한 그랜드 위자드 테오도르(Grand Wizard Theodre)나, 비트 저글링(beat juggling)이라는 혁신적인 기법을 디제잉에 도입한 롭 스위프트(Rob Swift) 같은 이의 사연은 그 자체로 흥미만점이다. 물론 아프리카 밤바타(Afrika Bambaataa)나 그랜드 믹서 디엑스티(Grand Mixer DXT) 같은 전설적인 디제이의 모습을 보는 것도 가슴 뭉클하다.

무엇보다 당대 턴테이블리즘을 주도하는 스타 디제이들의 연주 모습과 디제잉에 대한 생각을 한꺼번에 살필 수 있다는 점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인 듯하다. 믹스 마스터 마이크(Mix Master Mike), 디제이 바부(DJ Babu), 컷 케미스트와 누 마크(NuMark)를 무대에서 한꺼번에 보기가 쉽지 않기에, [Scratch]는 마치 힙합 디제이들의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 공연을 방불케 한다. 특히 당대 최고의 디제이인 디제이 섀도와 디제이 큐버트의 잼 세션 장면이나, 디제이들이 중고 음반가게를 뒤져가며 레코드판을 수집하는 모습은 디제이 지망생 누구에게나 큰 감흥을 줄 것이다.

그간 힙합 디제잉에 관한 DVD는 다수가 있었지만, 대부분은 디제이 지망생을 위한 유명 디제이의 학습용 실습과 강연이거나 ITF, DMC 같은 디제이 경연대회를 다룬 게 주를 이루었다. 따라서 힙합 디제잉의 대한 본격적인 기록영화라는 점만으로도 [Scratch] DVD는 매력적인 상품임에 틀림없다. 더욱이 역동적인 와이드 스크린 화면과 5.1채널 서라운드 오디오는 실제 공연장에서 디제이들의 연주를 보고 듣는 듯한 현장감을 제공하며, 보너스 디스크의 다양한 서플리먼트는 구매가치를 배가한다. 특히 디제이 큐버트의 디제잉 독학 레슨, 디제이 지트립(DJ Z-Trip)의 파티 디제잉 요령에 대한 인터뷰는 꽤 유익한 부록들이다.

5. [Style Wars](2003/FlexiFilm)



[Scratch]가 디제이를 소재로 한 영화인데 반해, [Biggie And Tupac]의 주인공 노토리어스 비아이지와 투팍은 래퍼였다. 그럼 브레이크댄서나 그래피티 아티스트를 집중적으로 다룬 기록영화도 있을까? 물론 몇 편의 영화들이 이미 DVD로 출시되었다. 가령 [Freshest Kids](2001)는 브레이크댄서 혹은 비보이의 생생한 거리 생존 역사를 담고 있다. 그리고 지난 4월에 DVD로 출시된 [Style Wars]는 그래피티 아티스트에 대한 최상의 기록영화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토니 실버(Tony Silverz)와 헨리 챨펀트(Henry Chalfant) 콤비가 1983년에 만든 [Style Wars]는 당시 미국 교양방송 PBS에서 방영되어 큰 반향을 일으킨바있다. 뉴욕의 그래피티 청년들과 그들의 문화를 집중적으로 다룬 이 영화는, 힙합이 여전히 소수 집단의 하위문화로 간주되던 시대에 그 실상을 제대로 보고한 최초의 공식 기록물로 평가된다. 제목이 암시하듯 지하철과 거리를 전전하는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의 작업 대부분은 개인간 혹은 집단간의 지속적인 '전쟁' 혹은 배틀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가령 그래피티 청년들에 대한 공적 기관의 탄압과 그에 대한 이들의 비폭력적인 역공이나, 백인 아티스트와 흑인 아티스트간의 미묘한 갈등 장면은 흥미를 고조시킨다. 더불어, 당시 뉴욕 시장이던 에드 코치(Ed Koch)가 인터뷰에서 그래피티를 범죄 행위로 규정하고 탄압을 정당화하는 모습 역시 자못 인상적이다. 그래피티 청년들과 뉴욕 시장이나 경찰의 엇갈린 주장들은 실제 미국 대도시의 사회 문화적 지형 변화와 그래피티 행위간의 상관관계를 자연스레 반영한다.

결국, 뉴욕의 지하철 시스템을 자신들의 전장이자 캔버스로 삼아 자기 자신과 공동체를 표현했던 이들 그래피티 청년의 작업은 힙합 문화의 진정한 본질을 대변했다고 볼 수 있다. 최초 방영 20주년을 기념해 발매된 2장 짜리 [Style Wars] DVD는 원작의 이러한 매력을 그대로 보전한 풀 스크린에 생생한 5.1채널 서라운드 사운드와 다양한 서플리먼트를 보강한 알찬 기획물이다. 특히 영화의 제작자와 감독 뿐 아니라 이 영화에 출연했던 그래피티 청년들 대부분을 20년 후에 다시 만나 인터뷰를 하고 근황을 살피는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출연진 중에 '메어139(Mare139)'처럼 지금 잘 나가는 상업 예술가로 변모한 이가 있는 반면, 그래피티 아티스트들 사이에 '바밍(Bombing: 이미 완성된 다른 이의 그래피티에 몰래 덧칠 그래피티를 하는 행위)으로 악명 높던 '캡(Cap)' 같은 인물은 별 볼 일없는 부랑아 신세로 전락해 보는 이를 애처롭게 한다. 꼼꼼하게 보관해놓은 당시 그래피티 작품 사진들을 갤러리 형태로 다시금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이 DVD의 또 다른 매력일 것이다.

소개한 5편의 DVD는 힙합 팬 뿐 아니라 힙합에 관심을 막 갖게 된 '초보자'에게도 길라잡이로 손색이 없는 영화들이다. 물론 이 밖에도 찾아보면 볼만한 힙합 DVD는 얼마든지 더 있다. 가령 미국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의 음악과 생각을 동시에 담은 [Crooked](2002), 대도시의 힙합 마케팅 과정을 치밀하게 묘사한 기록영화 [King Of The Streets](2002), 턴테이블 마법사 디제이 큐버트의 재기 넘치는 애니메이션 [Wave Twisters](2001)도 힙합 문화와 음악의 다양한 면모를 이해하는데 도우미 역할을 충실히 해줄 것이다.

근년에 미국 시장에서 출시되는 힙합 영화 DVD들을 보노라면 괜히 배가 살살 아파 온다. 이들 힙합 DVD 대부분이 아직 국내에서는 공식적으로 출시가 되지 않은 것들이라 여전히 그림의 떡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국내에도 이런 힙합 DVD들이 발빠르게 소개되고, 아울러 국내의 힙합 문화를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들까지 DVD로 감상할 수 있는 날이 서둘러 찾아오길 기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제 그만 보내줘
어디로?

어디든.. 여기 아닌데로

이 사람, 이렇게 보내는 걸로 뭐가 해결됐어?
아직은.. 아무 것도.

그런데, 꼭 보내야 했어?
아직이라고 말했잖아. 아직은 몰라.

그럼, 언제쯤이냐고 친구는 묻는다.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대답한다.
어쩌면 끝이 없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고..

먼저 간 친구는 말했다.
그 다음이 문제야, 그러고 난 다음에 어떻게 사는지. 그걸 잊지 말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로쟈 > '8급 좌파'의 진보 생각

오랜만에 좌파 운동가 김규항씨의 인터뷰를 옮겨온다(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6390). 레디앙에서 이번 대선과 민주노동당을 주제로 한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중인데, 그는 그 세번째 파트너이다. 한때 그의 칼럼들을 탐독했던지라 반가운 마음도 없지 않다. 한데, 그 반가움은 내 경우엔 1880년대(우리의 1980년대가 아니라!) 러시아의 인텔리겐치아들이 전제주의와 혁명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를 돌이켜보게 만드는 반가움이다(더불어 착잡함이다. 그 착잡함은 물론 '8급 좌파'의 착잡함보다는 '온건한' 것이겠지만). 아래는 편집자주와 나대로 정리한 인터뷰이다.

대선과 민주노동당. 민주노동당 밖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레디앙>은 민주노동당에 비판적이든, 지지를 보내든 '무관심하지는 않은' 민주노동당 밖의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기로 했다. 다양한 시선과 입장이 이 자리를 통해 유쾌하게 소통되기를 기대해본다. 개그맨 노정렬씨와 <딴지일보> 김어준씨에 이어 'B급 좌파' 또는 '8급 좌파'로 불리고 있는 김규항씨를 만나봤다. '개량주의'라며 민주노동당을 쳐주지 않는 운동권 좌파 '노동자의 힘' 회원인 그는 예상보다는 덜 쎄게 당을 비판했다. <편집자 주>

레디앙(07. 05. 21) "좌파 10년 후 패배 준비하고 있다"

민주노동당보다 조금 더 왼쪽에 위치한 '8급' 좌파 김규항(44).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개량주의적' 성격 때문에 참여하지 않거나 비판적인 '노동자의 힘' 회원이자 '인민'이라는 단어를 즐겨 쓰는 김씨는 자신의 이름 앞에 'B급' 보다는 '8급'이 붙여지기를 더 선호한다. 이는 사람들이 그의 책 『B급 좌파』의 'B'를 '8'로 많이 읽는 것에서 힌트를 얻은 것으로, 9급인 완전 초짜에서 막 벗어났지만 아직 멀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여담이지만 내 바둑급수는 20년째 7급이다). 

지난 17일 어린이 교양잡지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인 그를 만났다. 그는 인터뷰 중간 중간에 "노동자의 힘 동지들이 나를 욕 할 텐데….(웃음)"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는 "계급적인 현실을 민족이라는 틀로 은폐하는 사람들은 진보운동 내 굉장히 위험한 사람들”이라며 "가능하면 ‘피해야 할 방법’이지만 최악의 경우 당이 쪼개진다고 해도 진보정당의 정체성과 활동 자체를 훼방하는 내부 세력을 온전시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면서 당내 특정 정파와 좌파의 분리도 '불사'해야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김씨는 또 우파개혁 세력과의 확실한 분리도 강조했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의 세 후보는 우파개혁과 좌파진보의 ‘차이’를 누가 더 선명하게 보여주고 강력하게 말하는지 경쟁을 벌여야 한다"면서 범우파개혁 세력과 좌파 진보정치의 '분리'를 주문했다. 김씨는 또 진보 진영의 위기에 대해 "진보 진영이 (그들의) 자녀들을 우파진영과 똑같이 교육시키면서 자기 자식만은 노동자로 안 만들려고 발악을 한다"면서 “모두가 진보 운동의 위기를 논하지만, 사실 진보 진영은 (아이들이 성장한) 10년 후 패배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음은 김규항씨와의 일문일답.



-김규항씨가 ‘B급 좌파’라면 민주노동당은 무슨 급인가.

민주노동당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한국 제도 정당 내 가장 진보적인 정당이라는 것과 또 하나는 범좌파 운동을 통틀어 제도 공간에서 활동하는 좌파들이라는 거다. 민주노동당 전체가 그렇지는 않고 당내에서 계급을 위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기는 한데, 급을 나누기에는 패러다임이 달라 좀 애매하다. 또 무엇보다도 내가 감히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나 싶다. 그런 얘기를 할 때 좌파들이 가져야 하는 태도는 겸손이라고 생각한다. 안 그래도 좌파들은 죄가 많지 않은가?(웃음)

80년대 우리에게 공간과 기회가 주어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시대의 변화를 잘 활용하지 못해 소위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에게 밀렸다. 그럴 수밖에 없던 상황을 설명하거나 이유를 말하자면 충분히 말 할 수 있지만, 그러기에 앞서 어쨌든 좌파들이 제대로 못한 건 사실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에게 B급 좌파라고 하는데, 그건 내가 한 말이 아니라 일전에 『B급 좌파』라는 책이 나왔었다. 근데, 사람들이 보기에 서체가 ‘B’가 아니라 ‘8’로 보여 ‘8급 좌파’라고 하는데, 난 그 말이 더 마음에 든다.(웃음) 뭐든지 9급에서 시작하는데, 8급은 완전 초짜는 아니고 그래도 어느 정도 도장에 다니고 있는 사람으로 보면 될 것 같다.

- 글을 쓸 때 '국민', '시민' 등의 단어 대신, '인민'을 쓰는 이유는.

국민이라는 말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그냥 ‘피플’이라는 말을 쓸 뿐. 국민이라는 말은 나치나 파시즘 치하에서 쓰는 말이다. 시민이라는 말도 그냥 서울시에 살면 시민이라고 얘기하지만, 사실 시민이라는 말은 계급적 함의가 들어간 말이다. 시민의 권리나 지위를 전혀 확보하지 못한 하층민에 가까운 사람들이 스스로를 시민이라고 하는 건, 그들이 농락당하는 거다. 그에 반해, 인민이라는 말은 아주 광범위한 일반적인 말이다. 예전에는 금어였지만, 이제는 ‘인민’을 쓴다고 잡아가지도 않는데, 사람들이 지레 불편해 한다. 어느 나라나 피플이라는 말을 쓰는데, 이는 곧 인민을 말한다. 그리고 국민이라는 말은 우리가 거부해야 한다. 개인이 국가의 부속물이라는 뜻을 의미하는 나쁜 말이다.

- 댓글 등 부담스러운 요소가 많은데, 인터뷰에는 왜 응했나?

그냥. 특별히 크게 안 해야 된다는 이유가 없어서.(웃음) 또 인터뷰를 한다 해도 댓글은 안 본다. 기본적으로 인터넷의 댓글을 존중하지 않는다.

-김어준씨 기사의 댓글은 봤나?

안 봤다. 나는 사람과 사람이 소통 할 때는 최소한의 도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오프라인에서 사람을 사귀고 어떤 일을 할 때, 어떤 사람이 뒤에서 뒷담화를 깐다고 하면 그 사람의 인격을 의심한다. 그런데, 인터넷 댓글은 뒷담화 형식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인터넷 공간에서는 구어체처럼 쉽고,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파악할 수 있는 언어들과 논리들이 횡행한다. 물론 나 또한 글을 어렵게 쓰고 개념어를 쓰는 것은 싫어한다. 하지만 그것과 별도로 좌파 진영에서는 한 번 더 곰곰이 생각해보고 깨우쳐야 할 문제들이 많은데, 인터넷 공간에서는 그런 과정과 소통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한국 사회의 온라인 공간은 진보 진영에게 활용되기에 불리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흥미로운 견해이다). 인터넷 공간은 ‘조선일보=수구꼴통’이라는 단순 공식으로 모든 문제를 윤리적으로 치환해 '나쁜 놈'이라고 간단히 말하는 열린우리당 개혁파들에게 유리하다. 하지만 진보진영은 단순히 ‘나쁜 놈’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 ‘어떤 계급과 어떤 사람들 편에 서는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좀 복잡한 얘기를 하는 거다. 그런 면에서 인터넷 언어는 개혁우파 자유주의자들에게 유리한 언어라고 생각한다.

-<레디앙>은 보나?

어쩌다 가끔 본다. 기존의 좌파 매체와 달리 부드럽게 읽을 톤의 기사들이 있고 좀 세련된 것 같다. 그렇다고 <레디앙>이 만족스럽다거나 훌륭하다는 얘기를 하는 건 전혀 아니다. 다만, 좌파 진영의 현실에서 볼 때 그나마 대중적이고 세련된 편이라고 본다. 저도 좌파 진영 내 어려운 개념어는 사용하지 말자는 입장이지만, 가끔 운동권 사투리에 대한 비판이 구경꾼의 논평 수준으로 존재하는 것에는 거부감이 있다. 현장 사람들이 대중과 소통하고 싶지 않아 그런 언어를 쓰는 게 아니고, 그들 또한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눈물 겨울만큼 애를 쓰고 있다. 또 요즘엔 20대 활동가들이 선배 활동가들과 달리 문화적으로 풍부한 지식과 식견을 갖고 있어 좌파가 좀더 부드럽고 재미있어졌다. 나는 그런 20대 활동가들의 모습이 긍정적이라고 보는데, <레디앙>의 언어는 바로 그런 진전의 일환으로 보인다.

- 최근 '민노, 너 안찍어' 시리즈 기사는 어떻게 봤나?

재미있게 봤다.(웃음) 현재 인민들의 의식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읽어보니 사람들이 '아마추어적이다', '집권 능력이 없다', '아직도 저런 사람이 있나?'이런 얘기를 많이 하는데, 얘기의 패러다임이 잘 못 됐다는 것을 분명히 짚어주고 싶다. 이건 아마추어냐 프로냐의 그런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민주노동당을 기반으로 삼아야 할 서민들이 삼성의 이건희, 세계의 자본과 이익을 지지하는 정권을 향해 운동권 출신의 아마추어리즘 때문에 우리를(서민을) 힘들게 한다고 말하는 건 어이없는 일이다.

다시 한번 분명히 얘기하는데, 개혁은 진보가 아니다. 그런 맥락에서 확실하게 짚어줘야 한다. 기술이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이 정권이 누구의 편이냐?'는 게 바로 문제의 핵심이다. 예를 들면, 일본을 위해 뛰는 일본 축구팀에게 한국 사람들이 '너네는 왜 기술이 그것 밖에 안 되냐?'고 말하며 실망하는 것과 같다. 즉, ‘번지수’가 틀린 거다.

일단은 우리를(서민) 지지하는 팀(정권)을 먼저 만들어 놓고, 그 다음 기술을 논하는 게 순서이다. 그런 면에서 노무현 정권은 정말 큰 공을 세웠다. 진보를 완전히 몽땅 다 갈아 엎어버렸다. 우리에게 노무현 정권은 치가 떨릴만큼 문제를 일으킨 정권인데, 우리가 기반으로 삼는 서민을 대변하지 않는 정권이 프로이고 집권 능력이 있으면 오히려 더 큰일날 일 아닌가? 문제는 노무현 정권 덕에 인민들이 ‘이젠 진보고 개혁이고 간에 다 필요 없다’라고 생각하는 거다. 우파 쪽에서 일부러 진보를 없애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도 노무현 정권만큼 그렇게 성공하지 못했을 거다.



-그런 면에서 열린우리당과 뚜렷한 차별을 보이지 못한 민주노동당의 책임도 거론되고 있는데.

민주노동당의 책임이 있다. 하지만 당위와 실제 책임을 묻는 것은 다르다.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채 무작정 민주노동당의 책임을 물으며 매도하는 건 안 된다. 지금까지는 완전히 노무현, 유시민 등이 지휘하는 개혁 우파의 단독 드라이브였다. 개혁 우파들이 몇십 년 동안의 민주화 성과를 몽땅 싸들고 신자유주의로 질주했다. 바로 그러한 제도 정치에 온건한 좌파들이 들어갔는데, 그 상황에서 과연 뭘 할 수 있기를 기대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의원들 개개인이 특별히 무능하고 불성실한 모습을 보인 사람도 없다. 민주노동당은 노무현, 유시민 등의 우파 개혁주의가 준비한 무대에 대본도 없이 올라섰던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왜 쇼를 성공하지 못했느냐?’며 책임을 묻고 무능하다고 비난하는 것은 너무 야박하다.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무대 공간도 아니었으며, 의원들이 주류적 의견과 추세에 업혀가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또 인민들의 반공 콤플렉스를 건드리면 안 되는 등 여러 가지 각종 제약과 불편함이 가해진 그런 환경이었다.

음... 내가 이러면 우리 '노동자의 힘' 동지들이 나를 욕할 텐데(웃음). 왜 내가 민주노동당 의원들을 애써 이렇게 옹호해 주는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왜 그리 그들을 인색하게 평가하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좌파 진영이 제도권 정당에 들어가는 것이 진보운동을 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건 맥락이 다른 문제이다. 민주노동당이 진보정당의 구실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에 실패한 건 맞다. 하지만 생각 있는 사람들은 이미 이 정도 수준일거라고 예측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다만 민주노동당이 지난 반세기 동안 우파가 만들어 놓은 제도 정치권 안에 들어갔는데, 좀더 정체성을 분명히 해 불온함의 경계를 가끔은 넘어서야 했다는 아쉬움은 있다.

꼭 그래야 된다거나 전략적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좌파 정치를 처음 인민들에게 각인시킬 때는 어느 정도 충격이 필연적이다. 의원들이 좌파의 언어가 아닌, 제도 정당권내에서 개혁우파의 언어를 빌려 쓰며 지나치게 인민들의 시선을 의식하다 보니 결국 조금 윤리적인 개혁우파들과 차별성을 드러내지 못한 채 소극적으로 보인 건 아쉬운 부분이다.

-민주노동당의 가장 큰 문제는 뭐라고 생각하나?

개인적으로 진보정당은 계급을 기반으로 둬야한다고 본다. 사회를 민족이나 국가로 나누기보다는 계급으로 나눠야 한다. 우파들은 대한민국이나 국익을 말하며, 한미 FTA도 국익 때문에 체결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FTA를 해서 좋은 한국 사람도 있지만 싫은 한국 사람도 있다. 각각 상황에 따라 별 사람들이 다 있는 건데, 마치 모든 한국 사람의 국익이라고 말하는 것은 공상이고 실제가 아니다. 이렇듯 국익이나 민족은 실제하는 계급적 현실을 은폐하기 위해 우파가 만들어 놓은 단어인데, 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분들이 진보정당 내 있다는 것은 불행하다. 그것이 바로 민주노동당의 문제이다. 물론 민족 문제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활동하시는 분들은 존중한다. 하지만 민족도 계급 문제의 체로 걸러지지 않는다면 우파적인 것으로써 결코 진보적인 것이 아니다.

- 지난 해 "주사파가 문제인 건 그들이 남한인민도 북한인민도 아닌 북한정권을 무작정 따르기 때문이다...(중략)....민주노동당이 진보정당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가장 큰 이유도 주사파 때문이다"라고 쓴 적이 있는데(http://gyuhang.net/archives/2006/11/#000983).

자주파 혹은 민족주의자를 모두 주사파라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스스로 구별짓지 않는다면 주파사의 맥락이나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이미 이러한 지적이 문제가 되기 시작한 지도 아주 오래 된 문제인데, 존중 할 수 있는 민족주의자들은 스스로 주사파의 활동과 구별해냈어야 한다. 근데, 사람들이 너무 착해서 같이 운동했던 사람들에게 매몰차게 그렇게 못한다. 그러나 진보운동은 자기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편들고 지지하는 계급을 위한 운동이다. 계급적인 현실을 민족이라는 틀로 자꾸 은폐하는 사람들을 동지라고 하는 건 진보 운동하는 사람으로서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다. 물론 민주노동당의 지도부나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분들에게는 이 문제가 결코 쉽지 않은 문제일 것이다. 안 그래도 작은 세에 당을 쪼갤 수도 없고 또 인민들에게 (서로 싸우는)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게 거부감을 줄 수 있어 쉽게 풀기 어려운 문제이다.

-당을 쪼갤 수도 있다는 얘긴가.

설사 손실이 있더라도 진보정당의 정체성과 활동 자체를 훼방하는 내부 세력을 온전시킨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가능하면 ‘피해야 할 방법’이지만 최악의 경우 당이 쪼개진다고 해도 그 방법밖에 없다면 그래야 된다. 또 이미 이런 문제가 내부에서 봉합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게 계속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이는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의 차이 같은 그런 수준이 아니다. 바로 그렇기에 민주노동당이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독도에 무슨 군대를 파견해야 된다’는 등의 얘기를 하는 거다. 그때는 정말 창피해서 죽는 줄 알았다. 세계 진보 운동사에 아마 그런 예는 처음일거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개방형민중경선제' 를 놓고 논란이 있었는데.

상당히 기술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제가 코멘트하기에는 주제넘은 일이다.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노총에서 활동을 하거나 기여한 것도 아닌데,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인민의 한 사람으로서는 어떻게 보나?

원론적인 차원에서는 당연히 여는 게 좋다. 하지만 여는 걸 주장하는 사람들과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맥락을 다 아울러 생각해 봤을 때 그렇게 단순히 말하고 책임지기엔 내 자격이 부족하다. 참 묘한 모양이다. 열자는 얘기는 너무나 옳은데, 그 뒤 맥락을 보면 쉽게 말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이는 마치 박근혜나 이명박하고 싸우는 것처럼 모양이 흉하기도 하고 좀 그렇다.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나?

지금은 완전히 반동의 시기이다. 노무현 정권의 '혁혁한 성공'으로 이제 인민들은 대선에서 후보나 정당을 선택 할 때 이념, 정치, 생각, 성향 등 이런 것들은 전혀 보지 않는다. 오로지 ‘지금 내가 먹고 사는 데 누가 더 도움이 되나?' 라는 식의 무이념 시기이다. 민주노동당이 이번 대선이나 총선 공간에서 약진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못 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지금의 현실을 냉정하고 정확하게 봐가면서 뭔가를 기대하고 또 실망했으면 좋겠다.

-그런 상황적 한계를 돌파할 대안은 없나?

이번 시기를 놓고 볼 때는 어렵지 않나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짜 진보와 가짜 진보에 상관없이 진보 개혁이라는 말을 듣는 것조차 싫어한다. 진보에 관심을 갖고 호기심이 있는 상태에서 진보에 대해 얘기를 해도 넘어갈까 말까하는데, 듣기 싫은 얘기를 하는 게 쉽지 않다. 게다가 앞으로 인민들의 삶이 더 고단하고 힘들어질 텐데, 그럴수록 인민들은 ‘진보, 운동권 때문’이라며 더 화를 내고 환멸을 느낄거다. 게다가 인민들은 민주노동당이 활동하고 있는 제도 정치권 내 한정된 상황에 대한 이해나 고려 없이 보수 우파의 패러다임으로 민주노동당을 무능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근데, 그런 평가를 좌파라는 놈들이 똑같이 하고 있는 걸 보면 화가 난다. 굳이 좌파가 안 해도 저쪽(우파)에서 이미 충분히 하고 있는데, 잘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은 안 하고 왜 그런 비판을 우파와 똑같이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 다만, 개혁에 대해 비판적 지지를 하다가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우리에게는 굉장히 소중한 자산이 될 거다.

-민주노동당 내 대선 후보 사이 첫 경선이 진행 중이다. 흥행 성공 조건은.

같은 맥락으로 크게 흥행이 될 거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들 서로는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인민들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차별성에서도 변별력을 느끼기에 지쳐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인민들에게 이 세 후보의 현미경적 차이를 봐달라고 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 세 명이 서로를 향해 차이를 말하는 것 보다 범우파 개혁 세력인 열린우리당을 향해 그들과 좌파 진보의 차이를 강력하게 말해야 한다. 그것을 누가 더 선명하고 분명하게 말하느냐가 경쟁이 돼야 한다고 본다. 그들과 우리의 ‘차이’를 드러내, 인민들이 진보정치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이 바로 민주노동당의 비전이다. 이러한 상황을 전제하고 세 후보가 거시적 차원에서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발언을 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세 후보 가운데, 누가 본선 경쟁력이 있는 것 같은가?

모르겠다.(웃음) 그건 도토리 키재기라. 글쎄, 난 오히려 심상정 후보 같다. 좀더 알맹이가 있다고 생각 한다. 알맹이가 있다는 것은 내 입장에서 보면 좀더 선명한 진보성을 띠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더 말을 하면 마치 심상정 후보를 지지하는 홍세화 선생님처럼 될 것 같은데(웃음)..... 음.... 좀 더 선명한 진보성을 가진 것 같고 아직은 그 사람의 가치가 제일 덜 개발된 상태여서 앞으로 더 개발의 여지가 많아 보인다.

또 여성이라는 것도 강점인 것 같고. 나는 경쟁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 오히려 누가 더 나은가 그런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웃음) 셋 중 진보성이나 이념적으로 선명한 게 마음에 든다. 특히, 출마 선언 발표 할 때 뒤에 걸어놓은 걸개(가난한 사람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보면 인민들이 보기에는 꺼려지는 말일 수 있다.

근데, 우리한테는 우리의 자긍심이 있어야 한다. 현실에서는 계속 인민이나 우파의 눈치를 보며 인민들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는 언어를 사용해야 된다는 강박이 있다. 물론 그런 부분도 전술적으로 필요하지만 거기에 자꾸 매달리면 곤란하다. 그래서 제가 볼 때 그런 모습이 예뻐보였다.

-집권 정당이 되기 위한 조건이 있다면?

인민들에게 어떤 정치가나 정당이 내 편을 들어주는지 알 수 있는 의식을 먼저 생기게 만들어 줘야한다. 이는 민주노동당 뿐 아니라 전체 진보 운동의 과제이다. 또 노무현 정권이 출발할 때 저 사람들은 진보가 아니라, 그들의 ‘개혁’은 사회를 반동시키기 위한 가장 세련된 방법이라는 걸 좀더 집중적으로 공세를 펼쳤어야했다.

그런 부분은 참 아쉽다. 이제야 그런 얘기가 최근 벌어진 진보 논쟁을 통해 나오는데, 노무현 정권 초부터 그 사람들이 진보 행세를 하기 전에 먼저 ‘가짜’라고 강하게 얘기 했어야 했다. 이제는 우리가 우리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우리의 이름표와 정체성을 열린우리당 우파개혁세력이 다 빼앗아 갔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파개혁과 좌파진보 정치가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면서 그들이 빼앗은 진보 명찰을 다시 가져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사민주이자이든, 사회주의자이든, 트로츠키주의자이든, 다함께이든 간에 이젠 그런 구분 없이 전부 결집해야 될 문제이다. 여기서 더 밀리면 정말 끝장이다.

- 대선을 준비하는 민주노동당과 후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운동이 점점 천박화 되고 있다. 특히, 전통적 의미에서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노동운동이 천박하게 돼가는 것에 대해 좀더 냉정하고 분명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노동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이 사람으로서 해방되기 위해하는 것인데, 최근 근래의 몇 년을 뒤돌아보면 대공장 남성 정규직 노동자들 위주로 하는 임투가 주류 운동이 된 것 같다.

일련의 임투 과정이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그간 보여준 노동운동은 그 본질과 달리 똑같이 자본의 논리로 인간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 '제값받기 운동' 을 하며, 자본가와 같이 자본의 맥락으로 싸움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말을 하다 보니 선거에 도움이 되는 실무적인 얘기가 아닌 것 같은데, 사실 민주노동당이 얼마나 지지율을 얻고 표를 더 얻느냐는 진보 진영 내 위기의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은 물론 좌파 진영의 사람들이 우파와 똑같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도 모르는 새 뼛속까지 자본에 함몰돼 버린 것 같다. 돈이 모든 가치와 이념을 대변하는 시대인데, 좌파라면 오히려 그런 현실에 더 불안해야 한다.

빨간 띠를 두르고 제 아무리 힘들게 노동 운동을 하면 뭐 하나? 자기 자식만은 노동자로 안 만들려고 발악하는데. 그렇게 되면 자녀들이 성장한 10년 후 좌파 운동은 완전히 질 수 밖에 없다. 우파 자녀들과 똑같이 사교육 시장에 내몰리면서 자본의 가치관을 배우는데, 나중에 이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 과연 좌파운동을 할 수 있을까? 좌파들도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어쩔 수 없다고 하는데, 이는 결국 우파 진영에 백기를 들고 투항하는 거다. 모두가 진보 운동의 위기를 논하면서 사실은 10년 후 패배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것이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진영의 근본적인 위기이고 민주노동당이 아래로부터 대중의 힘을 공고히 받지 못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또 앞서 말한 진보정당 내 반진보주의자들의 문제에 대해서도 당의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어 80년대에는 거대 담론에 매몰 된 진보 운동이 문제였지만, 지금은 꼭 필요한 거대 담론이 너무 결핍된 게 문제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세 후보가 지엽적이고 정치적인 기술적 문제 혹은 제 각각의 차이에 집착하기보다는, 진보운동 전반이 가진 역사적 위기와 상황을 직시하고 그에 따른 거시적 안목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그분들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특별히 그런 건 없고 다들 나름대로 고생하고 있는데, 서로 너무 쉽게 비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 온건한 좌파와 조금 급진적인 좌파가 서로의 차이로 반목하고 까칠하게 비판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무리 그래도 우파보다 못 할까. (김은성 기자)

07. 05. 21.

P.S. 여전히 눈에 띄는 것은 '좌파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그의 자부심과 집착이다(그에겐 '진보의 명찰'을 다시 빼앗아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이다. 우파개혁과 좌파진보가 다르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흥미로운 건 온라인 공간은 진보 진영에게 불리하다는 그의 생각이고, 달라진 (것으로 보이는) 건 '조금 온건한 좌파'에 대해 덜 까칠해졌다는 것이며 변함없는 건 최종심급으로서의 '계급'에 대한 강조이다. 그리고 내가 동의하는 건 "좌파들도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어쩔 수 없다고 하는데, 이는 결국 우파 진영에 백기를 들고 투항하는 거다"라는 문제의식(그러니까 교육관에서 있어서만큼은 우파와 차별화되지 않은 좌파가 있다면 그는 '온건한 좌파'인가, 아니면 '무늬만 좌파'인가?). 한편 김규항에 대한 나의 생각은 예전에 '희망에 대하여'란 페이퍼에 정리해놓은 적이 있다(1년전 이맘때였군)...

http://www.aladin.co.kr/blog/mylibrary/wmypaper.aspx?CNO=0&PCID=2040596&CType=1&paperid=87299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당국의 무차별 단속에 피해" 2억 손배소  
연합뉴스 2000-07-14


신촌 대학가의 민속주점 `아름나라'의 주인 오환상(39)씨는 14일 "(당국이) 미성년자에 대한 주류제공을 무차별적으로 단속하는 바람에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2억원의 손실보상 청구소송을서울행정법원에 냈다.
오씨는 소장에서 "업주와 단속 공무원과의 뒷거래가 공공연히 이뤄지는 상황아래서도 지난 9년동안 정직하게 영업해왔다"며 "그럼에도 불구 당국의 무차별 단속으로 인해 타업소에 비해 막대한 영업손실을 봤을 뿐 아니라 집요한 단속대상이 됐다"고 주장했다.

오씨는 "모든 손님들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해 심한 거부감을 샀으며 그동안 5차례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며 "현행법은 대학생이 되면 선배.동료들과 자유롭게술자리를 갖는 보편적 사회통념과 현실을 반영하지 않고 있어 업주의 재산권과 생존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씨는 선배와 함께 온 대학 2학년 전모(당시 19세9개월21일)씨에게 술을 팔았다는 이유로 적발돼 과징금이 부과되자 지난해 2월 과징금부과처분 취소 청구소송을 내 승소했다.

오씨는 또 지난해 9월에는 대학생 3천여명의 서명을 받아 "법률상 청소년 연령을 연나이 19세 미만으로 조정해야 한다"며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한편 청소년보호위원회는 최근 청소년보호법상 청소년의 기준을 `만19세 미만'에서 출생연도를 기준으로 한 `연19세 미만'으로 개정키로 했다.

공병설기자 kong@yna.co.kr (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수건에서 아름다운 여인의 향기가 나부끼니.
하늘이 나에게 정다운 사람을 내렸도다.
은근한 정을 참을 수 없어 사랑의 시를 보내오니.
바라건대 홍사가 되어 동방에 들기를 바라노라.
                        
연월일 만생(晩生) 장필성


------

밤은 깊어 먼 곳 나무 희미하고
적적한 빈 방에 홀로 앉아

지난 일 생각하니 설움만 그득하고
산 밖이 태산이요 물 밖이 바다로다.

구의산 구름같이
바라도록 멀었는데

달 밝은 긴긴 밤을 나 혼자는 너무 외로워.
잠들어 꿈 속에서나 그리운 그 님 볼 수 있을까.

그러나 잠들려 해도 잠 못드는 이내 신세.
금강령 새벽달이 저편으로 기우는데

앉았다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 앉아
이리 생각해도 저리 생각해도

지는 달 새는 밤에 잠시도 쉬지않고
긴 소리 짧은 소리
소리없이 슬피 우네.

<추풍감별곡> 채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