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자의 정신 (반양장)
도로시 세이어즈 지음, 강주헌 옮김 / IVP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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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세이어즈는 그녀의 추리소설로 더 많이 알려진 작가이다. 하지만 이 책은 어느 신학자나 영성가도 넘볼수 없는 깊이를 가지는 영적 세계의 신비에 대한 통찰을 준다. 세이어즈가 소설이나 희곡을 쓰는 작가라는 사실이 하나님의 창조정신과 그 삼위일체적 창조과정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배경이므로 어쩌면 그녀만이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인간이 따르는 것과 상관없는 법칙이 존재함을 보이며, 그 중 신앙고백이라는 信經이 얼마나 우주의 원리와 일치하는지를 보이고자한다. 인간이 갖는 창조의 욕망과 능력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고백과 일치한다. 그리고 실제 한 작가가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모든 내용이 하나님의 구속사에 그대로 반영되어있다. 아이디어에서 시작하여, 에너지를 통해 표현되고, 영향력으로 인간의 내면과 사람들 사이로 퍼져나가는 힘. 우리는 작품을 통해 작가를 알며, 창조물은 창조자의 의도안에서 무한히 자유로와지며 생명을 얻는다. 창조자는 창조물을 사랑하여 자유를 주고 자발적 반응으로 사랑에 응답하길 기대한다. 

이런 창조의 과정에 대한 이해가 하나님 三位중 한 방향으로 치우칠때, 아이디어에 매몰된, 행위에 집착하는, 혹은 감정을 중심삼는, 왜곡이 나타난다. 한 창조자인데 분리되어 어느 하나에 흡수된 때문이다. 성부을 위주로 하면 인간의 자유를, 성자 중심성은 하나님의 원래 뜻를, 성령을 강조하면 창조자의 존엄함을 손상 당한다. 삼위가 일체가 될때야 우리의 신앙고백은 온전하여질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문제의 해결이라는 정신구조는 너무도 독재적이어서 여기서 우리는 벗어나지 못하한다. 하지만 이 도식은 또한 우리를 해결될 수 없는 문제에 매몰시키고 만다. 모든 삶의 경험을 문제로 받아들인 결과로 풀 수 없는 문제로 둘러싸이고 마는 것이다. 삶을 문제가 아닌 창조의 매개체와 그 여유의 시공간으로 보는 것이 예술가의 시각이고 창조자의 시각이다. 언제나 해결되며 완벽히 해결되고 주어진 조건내에서 해결되는 유한한 문제는 추리소설에만 존재한다.  

이제 창조의 정신이 문제해결이라는 모더니즘적 시대정신의 대응점에 서 있다. 조직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새로운 해결은 새로운 문제를 유발하는 악순환일 뿐이다. 인간은 문제를 해결하는 존재가 아닌 문제를 통해 새로움을 창조하는 존재로 자신을 바라보아야한다. 논리 안의 문제풀이가 아닌 대전제의 창조만이 문제를 소멸한다. 그럴려면 [사람은 하는 일이 적어야 현명해지는]지도 모른다.

많은 일들과 해결책의 모색, 프로토콜의 확립, 반복과 경험의 전문성의 세계에서 창조성은 늘 잊혀지는 부분이다. 인간의 됨됨이와 자유의 목적이 새로움을 만드는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재생산에 매달려 있다. 그리고 불행함을 어렴풋이 느낀다.  라따뚜이의 레미가 말하듯 [나는 더 이상 take 하길 원치않고 make 하길 원해!]라는 것은 우리 세대의 공통된 내면의 소리이다. 나는 나의 내면의 일그러진 삼위일체를 보며 나를 새로이 창조한 그 창조를 따라 나를 새로이 지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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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거인들의 학교 - 위대한 나를 찾는 비밀을 배우는 곳
전병국 지음 / 토네이도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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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자들은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존재다. 학교, 출신국가, 인종에 따라 이런 존재규정이 주어진다는걸 살면서 알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이 그런 존재인 것에 분노하기도, 낙담하기도, 무시하기도, 타협하기도 하는 반응을 오간다. [왜 날 무시하는가? ] 죽을 존재인 우리에게 이런 자존심은 필요한것이기도 하지만 또 스스로 생각에도 이것만 서로 없다면 좀더 평화롭게 지내지 않을까 싶기도하다. 우린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으며 매일 살고 있으니...

개미는 겨울을 잊지 않고 준비하여 행동하는 지혜를 가진 존재다. 그 겨울은 단지 불황이나 실직 혹은 노년만은 아니다. 인간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겨울은 죽음이다. 우리는 젊을때, 살아있을 때 죽음을 준비하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 그것이 판단하시는 자 앞에 서는 것이라 믿는다면 더욱이...

바위너구리는 움직이지 않는, 변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하고 목표로 하는 지혜이다. 돈과 명예는 가장 쉽게 사라지는 목표물이다. 요즘은 안정의 논리와 옳음의 윤리가 만드는 혼란이 만들어낸 도가니다. 나고 자란 곳이 만드는 정치적 견해들. 공리적 결과로만 목표를 삼는 인생관. 이 모든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이 어느 순간 변하고 또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만이 변하지 않는 진리인 것 같은 시대. 말씀이외에는 무엇도 우리를 닻을 내리도록 하여주지 못한다는걸 깨달아간다.

메뚜기는 같은 꿈을 가진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누리는 인생이란 걸 보여주는 존재들. 이순재 아저씨가 그러더라. 결국은 사람이라고...우리는 사람들과 함께 더 멀리나는 존재들이다. 나 혼자 되는 일이란 없다. 꿈을 나누어먹고 우리는 자란다. 혼자 경을 깨치고 깨끗케 하고 봉사하고 뿌듯해하며 결국 실패하는 인생이 되는 일은 얼마나 쉬운가...교제없는 인생은 기로에 선 인생이다.

거미는 작은 자기자신으로 사는 자유, 자기기술로 먹을 걸 구하는 삶이다. 40대의 유혹은 내 손으로 벌지 않고 누리려는 것이다. 네트웤의 마력은 작은 기술이라도 한가지 갖고 있을 때 오는 것이지 연결로 착취하려는 자에게 연결은 일회적일 뿐이다.  한번더 시도하는 자만이 한걸음을 나아간다. 좋은 교훈과 말씀들의 홍수 속에서 내 안에 말씀이 없고 한걸음 순종이 없다면 나는 결국 가난한 자다.

P.S 되지 않는 형편을 겪으며 초라한 자리에서 여기까지 걸어왔다. 실패들이 독인줄 알았는데 모두 약이 되는 이 신비로운 삶 속에서, 모든 실패와 치욕들이 나를 키워줄 양분이 될 것인가? 작은 자로 자기 손으로 마구간의 아들로 살아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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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가지 사랑의 언어
게리 채프먼 지음, 장동숙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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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서로와 화목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상대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라고 이 책은 답한다. 사랑의 항아리 채우기. 사랑이 상대가 원하는 형태로 채워질 때 관계는 원만하여지며 서로에게 만족스러운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리 채프먼 목사님이 이야기하는 인간의 욕구에 대한 다섯가지 구분- 1)인정하는 말 2)함께함 3)봉사 4)선물 5)스킨십-이 정당한가? 매슬로우(A.H. Maslow)는 욕구를 (1)생리(2)안전(3)소속감과 사랑(4)인정(5)자기 실현으로 구분했고, 알더퍼(Alderfer)는 (1)존재의 욕구 (existence needs) (2) 관계의 욕구(relatedness needs) (3) 성장의 욕구(growth needs)로 구분했다.  매슬로우의 욕구가 보편적이며 층위적이라면 이 책의 것은 구획적인 것이고 특수화된 것이다. 이런 구분은 그래서 다소 경험적이고 실용적 측면이 강한 구분법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인정하는 말을, 아내는 봉사를, 딸은 선물을, 아들은 함께하는 시간을 좋아한다. 이것은 그리 특수성이 강한 것은 아닌듯하다. 그래도 이것을 인지한 것만으로도 이 책의 도움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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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마을 문학과지성 시인선 46
최승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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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처럼 소풍가고 싶은 마음으로 살고 싶어도 삶살이는 고달프다. 차 타고 가던 친구들 여섯이 떼죽음을 당하고 어린 아이들이 납치와 성폭력을 당하며 날벼락 같은 불행이 엄습하는 하루하루. 고슴도치처럼 날을 세우고 살아야 할 수 밖에... 또 그런그런 무의미를 살다 결국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잔인한 운명. 최승호는 하늘을 원망한다. 그리고 무의미를 의미라 여겨보려 한다.

왜 사냐고 묻지만 않는다면 그래도 살만한 인생인지도 모른다. 삶의 의미를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인가? 모더니티의 유산인가? 모더니티의 유산은 그것에 의미를 객관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삶의 의미는 주관적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쉽사리 잡던 것조차 모두 손에서 놓쳐버린 채 이를 악물고 살고있다. 원망치 않으려하고 의미를 찾아야함을 알기에...

삶의 의미에 대한 저울은 분명 돈이나 명예, 권위와 억압은 아니다. 그것을 벗어던지자 이번에는 무의미가 왔다. 패배감과 억울함. 카프카의 정처없는 발걸음을 본다.  도달할 수 없는 길을 가는, 들어갈 수 없는 입구를 두드리는...길이 없다면 비켜서 서있어야하나? 그저 자연에 녹아지려하고 시간에 부서지며 웃으려한다. 그러려니한다. 언젠간 열매가 있으려니 한다.  

우리가 사는 동안 어떻게 그 산의 모든 모습을 알까마는 우리는 보이지 않아 안달한다. 그걸 써야하는 것이 그나마 자기 삶의 이유라면 더 속을 볶는다. 언젠가는 열매가 있으리라. 내가 맺는 열매는 애시당초 아니었으니까. 그저 벼락같은 소리. 번쩍이던 섬광 아래 보였던 그 기억을 믿는다. 스스로 그걸 진짜 내가 보았던가 할 때에도 나는 웃는다. 그리고 차가운 샘물에 얼굴을 씻어 잠을 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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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와 기독교적 지성
알리스터 맥그래스 지음, 김선일 옮김 / IVP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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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스터 맥그래스가 알기 쉽게 쓴 모더니즘, 후기 자유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종교 다원주의에 대한 명쾌한 이해와 복음주의의 대비.
 

우리시대를 이해하는 것은

1. 나 자신을 이끌어가고 있는 힘의 정체의 일면을 알려준다.

2. 나의 신념과 다른 이들의 생각들의 뿌리를 이해하고 또 소통할 수 있는 근거를 준다.

3. 내가 옳다고 믿는 혹은 나의 신념 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 것이 얼마나 시대의 산물인지를 알고 이것을 서로 구별하게 해 준다.

 
나 자신에 대한 이해는

1. 나의 성공신학적 사고는 모더니즘에 기초한다.

2. 나의 포스트모더니즘적 생활 방식은 간접적 선전과 광고, 주위사람들의 트렌드와 맞물린 또래압력으로 형성되었다.

3. 이성적 신앙이해와 삶과의 괴리는 여호와를 포획하려는 모더니즘적 기획과 다원주의적 포용의 외적 과시라는 포스트모던적 정서의 결합물이다.
 

나의 부르심은

1. 이웃을 돕는 자로 먹고 살게 하신다.

2. 가족을 돌보고 자라도록 서로 의지케 하신다.

3. 주어진 사람들과 기구, 조직을 활용하여 의학지식의 증가와 오류제거를 통해 고통과 슬픔을 더는 일을 하게 하신다.

 

맥그래스는 자신을 어디로 부르셨는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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