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비둘기라고 믿은 까치
김진경 지음, 이상권 그림 / 문학동네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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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알고 보니 백조 새끼네!(미운 오리 새끼)
아니 이런 왕자를 닮은 거지였어?(왕자와 거지, 거지같은 왕자였나.. 가물가물)
너는 인간에게 길들여진 사육된 닭이 아니라 푸른 창공을 훨훨 나르는 새들의 왕 독수리야!(날고 싶지 않은 독수리)

사실 이런 류의 글들은 많다. 일명 '알고 보니' 시리즈 라고나 할까? 이런 류의 책들엔 책이 말하고자 하는 건강한 힘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오류가 있다.

하나는 동물의 세계조차도 열등과 우등으로 가르고야 만다는 것. 오리보다는 백조가, 닭보다는 독수리가, 거지보다는 왕자가, 비둘기보다는 까치가 마치 우월한 존재임을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다. 아무리 부정해도 한 줄로 세우고야 말면서, 우리네 무의식 속까지 먹어치워버린 경쟁 이데올로기가 자기검열도 걸른채 작동되고 있는 건 아닐가 생각해 본다.

또 하나는 이 책의 논리를 밀고 나가다 보면, 환경적인 요소보다 본성, 선천적 기질의 우위를 너무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보다는 타고난 재능이 우위를 점하는, 태생이 천하면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다는 주홍글씨를 새겨 넣는 듯 읽혀, 읽는 내내 불편했다. 물론 저자는 의도치 않았겠지만.

이 책의 배경이 된 [스스로 비둘기라고 믿는 까치에게]를 무리하게 도식화시킨 탓이 아닐까 한다. 맥락을 상실한 채, 이야기만 덜렁 떼어 내 만든 동화. 배경이 된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이 책을 어찌 받아들일 수 있있까. 까치 부모를 두지 않은 수많은 비둘기들은 '나는 주워온 아이일거야, 언젠간 서쪽에서 삐까리 뻔쩍한 내 진짜 부모가 나타날 거야.. 그때까지만 참자..'하며 여전히 지속되는 현실을 절대로 부끄러워하지 말고 눈 내리 깔고 있으란 말인가.

아니면, '너는 비둘기, 또 너는 까치, 니들은 원래 이러이러한 성질을 지닌 넘들이야! 그 틀에 맞게 살아~!'하며 좀더 운신의 폭이 좁아진 세계를, 현실의 당위를 옹호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리 이 글에서 하고픈 말이 이게 아니라고 해도, 이런 류의 책들은 너무도 거북스럽다.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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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 인명사전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세계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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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 노통의 글은 엽기적이다.
아멜리 노통의 글은 발랄하다.
아멜리 노통의 글은 유쾌한 상상력의 산물이다.

노통의 글은 평범함 속에서 괴이함을 드러내며 허무하게 끝난다. 간결한 문체와 생소하지만 낯설지 않은 상황으로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하다, 그 호기심이 끝간데까지 가면, 노통은 여지없이 그 호기심을 뭉게 버린다. <오후 4시>에서도 그랬고 <로베르 인명사전>에서도 그랬다. 이야기가 한껏 부풀어 올라 '그래, 그 다음은? 그 다음은~'하고 독자가 보채도록 궁금하게 만들어 놓고는 '이런 결론은 어때?' 하며 조롱하듯, 이미 내가 생각한 결말 쯤은 자신도 알고 있었다는 듯, 혀를 낼름거리며 황당한 결론으로 끝을 맺는다.
이 책도 부제가 없었다면, 아무도 노통이 책 속에 등장하리라곤 생각치 못했을 것이다.(사실 주의깊지 않은 나는 책을 덮고 나서야 이 부제를 발견했다.)

어떤 이는 이 책이 글쓰기에 대한 작가들의 강박을 노통식으로 표현해 낸, 너무도 노통스런 글이라 이야기 하지만, 내 생각엔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그녀가 스토리 라인을 준비했을 것 같진 않다. 의식의 흐름을 쫓아 쓰고 쓰고 또 쓰다, 여느 재즈 아티스트들이 애드립을 연출해 내듯, 그녀 또한 글맺음을 그 순간 솟아나는 유쾌한 상상력으로 맺었을 거라고 상상하고 싶다.

부족함 마저도 이미 예견하고 있었을, 그래서 그 부족함 마저도 기꺼이 즐겁게 읽어 낼 수 있도록 하는 그녀를 나는 좋아한다. 비록 이것이 나의 상상 속에서만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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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과 못된 나무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64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 외 글, 그림 | 김선애 옮김 / 시공주니어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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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2003 어린이 책 한마당에서 책 구경하다 눈에 든 책. 제목 보고 낄낄대다 읽게 된 책. 어릴 적 명작만화영화로 접했던 [재크와 콩나무]의 엽기 패러디 버전인가 보다, 라고 생각하며 무심코 집어 든 책. 패러디 버전인건 맞았는데, 엽기적이지는 않았다. 원전이 다소 황당한 판타지라면 오히려 이 패러디는 개연성 짙은 생태철학동화라고까지 할 수도 있을 듯. 별 노무 책이 다 있네, 에서 헉~하고 한방 얻어 맞은 느낌이다. 원전과 비교해 가며 읽어도 재밌겠지만, 이 자체로도 꽤 훌륭하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채소가 빨리 자라는 방법을 실험을 통해 알아낸 주인공이 결국 그 유전자 변이로 공포스러워진 나무 때문에 지구 전체가 위험에 처하다가 자연의 힘으로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아가면서 다시는 그런 뻘짓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교훈적인 이야기. 인간만 뻘짓하지 않으면 자연은 스스로 알아서 한다는, 매우 건강한 생태철학이 담겨 있는 책이다. 특히나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문명의 이기나 편리성을 좋은 것으로만 받아들이는데 반해, 그 이면의 위험성을 암시하고 있는 듯도 해 이 책의 깊이는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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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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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를 읽다.(열린책들, 1992) 96년 누군가에게 추천받아 한 번 읽었던 책. 그러나 다시 읽기 전까지 내게 남아 있던 이 책의 이미지는 좀머 씨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긴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 두시오!'라는 말 뿐이었다.

6년이 흐른 뒤 다시 읽은 이 책. 이 책으로부터 떠올리게 되는 이미지는 '단절'과 '집착', '현대인', '일상성'과 같은 단어들이 주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이 책에는 '좀머 씨'보다는 '나'라는 주인공(이 주인공 이름이 모였지? 있었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군!)의 유년기에 대한 기억/회상이 주로 담겨 있다. 그 속에서 좀머 씨 이야기는 아주 간간히 나타나다가 좀머 씨의 죽음을 목격했던 주인공에게 깊게 남겨진 그 기억, 그 특이한 인생(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스런 기억)으로 끝이 난다.

'버터 바른 빵과 물만이 들어 있는 배낭을 짊어지고 기다랗고 이상하게 생긴 지팡이를 갖고 다니며 겨울에는 검은 색의 폭이 넓은 외투에 빨간색 털모자를 쓰고 고무 장화를 신고 여름에는 까만색 천으로 띠를 두른 밀집모자에 카라멜색 셔츠와 반바지 등산화를 신고 다니며....'

여디까지 쓰고 나서, 다시 책에서 좀머 씨를 언근한 페이지들을 읽으며 코멘트를 덧붙였다. 각각이 상징하고 있는 것들을... 조합해 볼 때... 좀머 씨는 현대인의 변형된 모습인 것 같다. 걷기 중독에 빠진 좀머 씨와 일중동에 빠진 현대인... 이 둘은 너무도 닮은 꼴이다. 쥐스킨트의 작품들을 다시 읽어 봐야겠다. 96년도에 난.. 이이의 책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는 것을 깨달았다.

덧붙여.. 걷기 중독증 좀머 씨- 흔적, 그가 남겼을 발자국. 도대체 그 따위가 모란 말인가? 같은 사이즈의 같은 신발을 신은 사람이 같은 길만 가면 '똑같이' 남겨질 그 발자국.. 삶은 역시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여정을 즐기는 게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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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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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에 왠지 꼭 읽었어야 할 것 같았던 책. 읽어야 한다는 시기를 놓친 바람에 세계문학전집 류의 책들은 왠지, 언젠간 꼭 마스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콤플렉스를 느끼곤 한다. 모 그런 콤플렉스의 연장선에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었는데... 조금도 재밌지 않았다. 적어도 이 책으로부터는 왜 괴테의 명성이 그토록 높은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직 작품해설은 읽지 않았는데 그다지 읽고 싶단 생각도 안든다. 단, 베르테르가 자살을 하기 이전 괴테는 이곳저곳에 복선을 많이 깔아두었는데, 로테의 남편(이름이... 알베르트였던가?)과 자살에 대한 논쟁은 꽤 읽을만 했다. 그밖에 특별한 것도 없고... 특히나 수사가 너무 많아 읽기 거추장스런 글이었다.(02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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