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독서, 두마리 토끼 잡기

책읽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교육 당국은 중등과정의 독서교육을 대폭 강화해 5년 후부터는 대학입시에 독서활동을 반영한다는 계획을 짜고 있다. 언론매체들도 열심히 독서 캠페인에 나서고 있다. 독서가 이처럼 사회적 화두가 된 것은 성장세대가 점점 책과 멀어지는 데 대한 불안감, 그리고 독서 빈곤이 위험사회를 초래한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이런 우려는 충분히 근거 있고 타당하다.

문제는 위기 타개의 방법이다. 교육 당국은 독서교육을 강화하겠다지만 공교육장에서 독서교육이 무너진 것은 학생들의 책 읽을 권리, 시간, 동기를 교육 자체가 박탈했기 때문이다. 상당수 아이들이 게임 중독에 빠져 심각한 ‘폐인 신드롬’을 보이는 동안 정보기술 산업의 어두운 그늘에 대해서는 어떤 대책도 세우지 못한 것이 우리 사회다. 국민이 책 읽을 수 있는 공공 인프라와 콘텐츠 제공에 한없이 인색했던 것이 우리 역대 정부다. 어린이, 청소년, 성인의 독서활동을 지원할 변변한 법규 하나 없는 것이 우리나라다. ‘책맹(冊盲)’ 사회의 위기를 타개하자면 이런 조건들을 바꾸는 일이 시급하다.

당국의 독서교육 강화안은 위험 요소들을 안고 있다. 독서능력인증제, 독서력시험제, 독서활동기록제 등이 검토되고 있다는 소식인데, 이런 방법들은 신중히 검토돼야 한다. 책읽기가 또 하나의 시험과목으로 강요되면 독서교육조차 사교육 시장으로 넘어갈 것이 뻔하고, 아이들에게 책은 증오와 기피의 대상, 심할 경우 평생 원수가 될 수 있다. 자발성이 발휘되고 호기심 자극에 의한 발견의 즐거움이 경험될 때에만 교육은 성공한다. 독서교육은 더더구나 그러하다.

독서를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경쟁력, 실용성 같은 것에만 연결시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왜곡된 실용주의는 책읽기의 경우에도 점수, 입시, 성공 같은 ‘실리’를 계산한다. 실리도 물론 동기 부여의 한 요소다. 책을 읽어 성공하고 부자가 된다면 나쁠 것 없다. 경쟁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책읽기의 가장 중요한 실리는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경쟁력, 곧 인격과 가치의 형성이라는 소득이다. 사회, 기업, 조직은 인격체이기 어려운 반면 개인은 인격체이고자 하며, 이 인격존재는 그의 삶을 안내하고 지탱할 기본 가치와 원칙들을 필요로 한다. 이런 원칙들을 부단히 만나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 책읽기의 즐거움이다. 인격존재를 지향하는 개인과 비인격적 사회조직 사이에는 가치 충돌이 자주 발생한다. 이런 경우의 위기관리 능력도 근본적으로 인격에서 나온다. 물론 돈을 벌어야 살지만 그렇다고 “돈 되는 일, 성공에 필요한 일이면 모두 오케이”라는 지침만으로 행동원칙을 삼는 일은 아주 파괴적이다. 성적과 상장을 돈으로 거래하는 사태는 몰가치적 돈 지상주의가 어떻게 사회를 망가뜨리는지 잘 보여 준다.

해도 될 일과 안 될 일을 분별하는 자율능력의 발휘체가 인격이다. 몽테뉴가 시민의 ‘자기 법정’이라 부른 것도 그런 자율인격체다. 독서사회를 향한 우리의 집단적 노력이 이 인격존재의 대목을 망각하면 독서행위는 결국 자기 목표를 배반한다. 해법은 무엇인가. 경쟁력도 키우고 인격존재도 길러내는 일은 ‘두 마리 토끼 잡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지금 우리는 실용과 즐거움을 결합하는 방법적 지혜를 모을 때다.

(도정일 경희대 교수·영문학·‘책읽는사회국민운동’ 대표)=동아일보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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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툰키즈 “우린 공부도 만화로 해요”  [05/02/14]
 

5급 한자자격증시험을 준비하는 이민흠 군(9·경기 성남시 분당구 미금초등학교)은 부모를 졸라 한자학원에 다닐 정도로 한자를 좋아한다. 학습만화책 ‘마법천자문’에 푹 빠진 탓이다. 매주 3000원인 용돈을 아껴서 1∼7권을 모두 샀고 요즘엔 바둑을 배우러 기원에 갈 때마다 1층 서점에 들러 8권이 나왔는지 확인한다.

아울북이 2003년 11월 출시한 ‘마법천자문’ 1권은 지난해 말까지 7권을 내놓으며 200만 권 이상이 팔렸다. 아이세움의 과학상식 학습만화 ‘∼에서 살아남기’ 시리즈도 첫판을 내놓은 지 3여 년 만에 300만 권이 팔렸다.

만화에다 지식을 결합한 학습만화. 웬만한 초등학생이면 누구나 서너 권씩 갖고 있을 만큼 인기가 높다. 아이들이 공부에 재미를 붙이는 것 같아 학습만화를 사주면서도 한편으론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 학습만화 열풍… 교과서도 만화로

학습만화 열풍은 덕성여대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 이후 불기 시작해 2000년 말 가나출판사가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신화’를 내놓으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대형서점 아동 코너에는 학습만화가 절반을 넘고 있다.

최근엔 줄거리를 만화로 옮기는 형식에서 벗어나 교육과 오락을 가미한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 개념이 본격 도입되고 있다.

아울북 김진철 상무는 “과거의 아동용 한자만화책은 만화로 한자를 설명하는 수준이었다”며 “반면 마법천자문은 손오공의 이야기에다 마법이라는 장치를 결합해 아이들이 놀면서 한자를 배울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에서 살아남기’도 주인공인 어린 소년이 동굴 사막 지진 등의 자연환경에서 살아 남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풀어가면서 과학지식을 곁들였다.

지난해에는 언어 역사 과학뿐 아니라 ‘만화로 배우는 교과서’에 이르기까지 6000여 종의 신간 학습만화가 쏟아졌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박성식 과장은 “2001년부터 학습만화 시장이 커지면서 연 10% 안팎의 성장세를 보였다”며 지난해 시장 규모는 7500억 원으로 추정되며 이 가운데 40% 정도가 학습만화”라고 말했다.

○ 만화 읽으면 공간지각 능력 높아져

‘좋아해야 잘할 수 있다’는 말처럼 학습문화의 장점은 신세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이다.

주부 이순정 씨(32·경기 고양시 화정동)는 아들 윤호 군(9)을 위해 과학 역사 분야의 학습만화를 동네 도서관에서 자주 빌려 온다. 만화과학책을 본 뒤 “우유는 왜 흰색이죠”라고 묻는 등 주위 사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만화책에 있는 뉴턴의 위인전을 사달라고 한 적도 있다.

서울 당산초등학교 5학년 배성호 교사는 “사회에서 ‘세종대왕의 한글창제’가 나오면 ‘만화, 살아 있는 한국사 교과서’의 관련 부분을 복사해 아이들에게 나눠 주고 만화에서처럼 한글 창제를 둘러싼 찬반 토론을 시킨다”고 말했다.

만화의 학습효과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고려대 김성일 교수(교육학)는 “만화를 읽으면 생각이 단순해지고 상상력이 떨어진다는 일반의 오해와 달리 장면을 상상하게 돼 공간지각 능력이 높아진다”며 “30년 전과 비교하면 교과서도 만화에 가깝게 진화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만화학습지는 한두 명의 전문가가 만들기 때문에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에서 살아남기’ 시리즈에서도 CD에 고기를 구워 먹는 장면이 나왔는데 “고기가 구워지기 전에 CD가 녹는다”는 독자의 지적을 받고 수정했다.

서울 방배초등학교 최정옥 교사는 “만화를 많이 본 학생들은 글자가 많은 책은 싫어한다”며 “학습만화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만화로만 공부하려 들기 때문에 부교재로 쓰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4학년 딸을 둔 김미정 씨(40·서울 양천구 목동)는 “마법천자문 1권엔 새로운 한자가 20개 정도여서 한자를 배우는 데는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 “초등 4학년까지 효과” vs “어휘력 떨어진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이 크게 엇갈린다.

연세대 최유찬 교수(국문학)는 “만화는 영상세대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학습도구의 하나”라며 “일단 만화로 재미를 느끼면 원작소설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말했다.

그러나 한국독서교육개발원 남미영 원장은 “만화가 책에 익숙해지게 하는 효과는 있지만 계속 만화책만 찾는 아이도 적지 않다”며 “만화 때문에 어휘와 상상력이 부족해져 책을 읽으면 재미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일반 책의 어휘는 평균 3000여 개이지만 같은 내용의 만화는 100여 개에 불과해 어휘와 사고가 편협해질 수 있다는 것.

또 소설책에선 ‘슬프다’, ‘안타깝다’, ‘애틋하다’ 등 다양한 표현이 만화에서는 단 한 단어로 사용되며 대부분 구어체다.

남 원장은 “어휘능력이 완성되는 6∼12세에 읽고 쓰는 능력을 최대한 키워야 한다”며 “자신이 알고 있는 어휘만큼 생각하고 느낀다”고 말했다.

서울교대 양태식 교수(국어교육)는 “학습만화는 4세에서 초등 3, 4학년까지는 효과가 있다”며 “이후에도 독서의 대부분을 만화책으로 하려한다면 비디오 인터넷 등으로 관심을 돌려 교육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학습만화 시장 3000억 원대▼

학습과 만화를 결합한 학습만화가 ‘나홀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국내 출판시장의 규모는 1조6000억원대. 만화 시장은 7500억 원 정도이고 이 가운데 학습만화는 3000억 원에 이른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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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초점] 2000~2004년 문광부 추천도서 분석 [05/02/14]
 
지방대출판부 약진 두드러져…良書의 길밖에 없다

국내 대표적인 저술지원사업의 하나인 문광부의 추천도서 제도는 어려운 학술교양 출판사들에게 가뭄에 보슬비 같은 존재다. 지난 1967년부터 진행되어온 이 사업의 가장 큰 목적이자 의의는 ‘출판사의 양서출판 의욕을 고취한다’는 것이다. 출판불황이 운위되는 요즘, 특히 학술출판사들은 정부의 지원에 목말라하지만, ‘양서출판’이라는 정공법을 외면한 채 지원을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양서를 걸러내는 일은 서평문화의 일이다. 하지만 서평문화가 빈약한 우리는 부족하나마 문광부 추천도서목록에 등재된 출판사들의 면면들을 통해서 양서를 추구하는 출판인들의 의지와 그 변동추이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5년간 문화관광부 추천도서목록을 분석해보면 대학출판부의 약진이 두드러진다는 점이 가장 먼저 드러난다. 2000년, 2001년, 2002년 6종, 5종, 3종에 머물렀던 대학출판부 실적이 2003년 28종, 2004년 30종으로 껑충 뛰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문광부 추천도서가 2003년부터 1백종에서 3백50종으로 3배 이상 늘어났다는 점이 그 직접적인 원인이다. 하지만 양서의 비율 10%를 대학출판부에서 담당하게 되었다는 점은 고무적인 측면이며, 그 밑에는 변화를 모색하는 대학출판부의 노력이 숨어있다.

그 외에 두드러지는 점은 지방대 출판부들의 약진이다. 전통 강호에 해당하는 서울대, 이화여대, 성균관대 역시 발전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서울대의 경우 2004년 무려 7종이나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지만, 그보다는 작년 신규 진입한 경성대출판부가 무려 3종이나 채택됐다는 사실, 재작년 2종과 작년 3종을 연속적으로 만들어낸 경북대출판부, 재작년 3종 작년 1종의 수확을 거둔 영남대출판부 등 영남권 대학들에 시선이 머무른다.

특히 부산의 경성대출판부가 학교에서 예산을 대폭 인상 편성 받아 전국대학 교수들을 대상으로 번역, 저술 공모를 해 펴내고 있는 ‘경성대문화총서’는 시리즈로 펴낸 4권 중 3권이 선정돼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보인다. 특히 다른 학교 교수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점, 교수기획위원회를 구성해서 교수들을 기획에 적극 참가시켜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고전번역, 흥미로운 저술분야를 개발할 수 있었다는 점은 벤치마킹의 대상이다.

또 하나 짚어지는 사실은 대학출판부의 마케팅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사실 경성대, 영남대, 경북대, 서울대의 도서 가운데 70% 이상이 교수신문의 서평 지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책들이라는 점을 무시할 수 없고, 이는 전문 서평문화는 양서지원의 통로로 기능한다는 점을 증명한다.

한가지 아쉽고 불만스러운 점은 서강대, 중앙대, 경희대, 동국대 등 수도권의 순위권 대학 부산대, 전남대를 제외한 전라권, 충청권, 강원권의 전멸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다. 이광래 교수가 애써 키워놓은 강원대출판부는 이어받는 교수가 없어서인지 예전의 명성을 잃었다. 이들 대학들이 지난 5년간 단 한번도 문광부 우수도서에 선정되지 못했다는 것은 출판부가 이름만 걸어놓고 있다는 이야기이며, 좀더 나가면 교수들의 저술의욕을 고취시키고 학술서를 생산해내야 할 의무를 대학이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 문광부 추천도서에서 현재 구분하고 있는 학술서와 교양서의 기준이 다소 모호하다는 점도 드러났다. 가령 김욱동 서강대 교수의 ‘강용흘: 그의 삶과 문학’, 홍성욱 서울대 교수의 ‘과학은 얼마나’(이상 서울대출판부 刊)는 누가 봐도 전문학술서이며 관련 학계에서 매우 뜻깊은 학술적 의미를 갖는 저서임에도 ‘교양’으로 분류돼 있다는 점은 앞으로 좀더 면밀한 심사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교수신문)


<지난 5년간 문광부 추천도서 중 대학출판부 선정현황>

2000년 : 총 1백종 가운데 6종(이화여대 1, 성균관대 1, 전주대 1, 연세대 1, 성균관대 1)

2001년 : 총 1백1종 가운데 5종(방통대 1, 서울대 2, 고려대 1, 외국어대 1)

2002년 : 총 1백1종 가운데 3종(경남대 1, 서울대 1, 고려대 1)

2003년 : 총 351종 가운데 28종(고려대 2, 서울대 4, 영남대 3, 경북대 2, 삼육대 1, 이화여대 4, 외대 2, 한양대 1, 건국대 2, 단국대 1, 전남대 2, 성균관대 2, 연세대 1, 숙명여대 1)

2004년 : 총 351종 가운데 30종(경성대 3, 고려대 2, 경북대 4, 서울대 7, 영남대 1, 이화여대 3, 방통대 1, 외대 1, 한양대 2, 연세대 2, 가톨릭대 1, 성균관대 2, 단국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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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수요와 당위 사이의 줄다리기  [05/02/14]
 
[문화컬럼] 도서관, 수요와 당위 사이의 줄다리기

도서관은 책의 집이다. 어떤 도서관이 좋은 도서관이냐를 판가름하는 일차적 기준은 아무래도 어떤 책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될 것이다. 그래서 도서관은 사람들이 읽어야 할 책, 또는 읽으면 좋은 책을 소장하려고 하는 노력을 꾸준히 기울여 왔다.

문제는 도서관으로서는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도서관들은 오랜 시간 책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것이 과연 도서관이라고 하는 사회적 장치를 통해 여러 사람들에게 읽히고 보존될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 왔다.

일차적으로는 도서관 사서들이 직접 책을 살펴본다.

그러나 한정된 인력으로 수많은 책을 다 점검할 수는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서 다음으로는 대중적이거나 학술적인 잡지나 신문 등 다양한 매체에 실린 서평을 꼼꼼하게 살펴 책 고르기에 참고한다. 나름대로 전문가들의 서평은 많은 도움이 된다.

물론 요즘에는 인터넷 서점 등에 올려지는 일반독자들의 평가도 많은 참고가 된다. 또한 이러한 목적에 맞는 좋은 서평잡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서평잡지가 제대로 살아남지 못하고 있다.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절박함 속에서 그래도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것은 여러 기관이나 단체 등에서 발표하는 권장도서 또는 추천도서 형태의 목록이다. 어린이 책의 경우라면 어린이도서연구회라는 시민단체의 목록은 매우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연말에 많이 발표되는 올해의 책이라든가 문화관광부의 우수도서 목록, 간행물윤리위원회나 출판단체 등에서 발표하는 이 달의 책 등과 같은 목록들은 도서관에는 더운 여름날 한 모금 시원한 물과 같다.

최근에 서울대학교에서 재학생을 위한 ‘권장도서 100선’을 발표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 읽었음직한 책들은 제외하여 입시에 쓰일 목록이 아니라는 단서를 달았다고 하지만, 이 목록을 두고 여러 언론매체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서울대학교에서 발표한 목록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관심을 크게 받는 것 같다. 다른 대학에서도 이런 유사한 목록을 발표한 적도 있었는데 그 때에도 이런 관심을 받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서울대학교가 그래도 재학생들이 읽어야 할 책 목록을 공들여 작성했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 너무 책을 읽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를 극복하는데 일정한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이 목록을 보면서 몇 가지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물론 도서관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우선 목록은 작가와 작품만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고전이나 번역본의 경우 같은 저작이라도 많은 판본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거기에다가 2004년 2월 영미문학연구회가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 번역 출간된 영미 문학 고전을 평가해 본 결과 거의 대부분이 표절 또는 오역된 것이라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예를 들면, 서울대학교 권장도서에 호손의 ‘주홍글씨’가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영미문학연구회의 평가에 따르면 ‘주홍글씨’의 경우 출간된 52종 중 75%인 39종이 표절이라고 한다. 대신 추천할 만한 판본은 겨우 2종(4%)에 그쳤다. 도서관으로서는 그 많은 판본 중에 어떤 책을 사야할까 고민할 때, 그래도 이런 평가(이 평가가 반드시 옳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의 옳고 그름은 영문학자들의 몫일 것이다. 다만 도서관으로서는 다양한 정보를 활용할 것이며, 그 때에 이런 정보도 의미있게 활용될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여기에서 검토되지 않은 책이라면 도대체 어떤 번역본이 좋은 책인지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물론 이같은 점은 이번 서울대학교 목록뿐 아니라 이와 같은 목록의 대부분에 있어 기본으로 깔려있는 문제이다. 앞으로 도서관을 포함해서 출판계는 물론 관계 전문가, 나아가 우리 사회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풀어가야 할 문제이다. 다양한 권장도서 목록은 구체적으로 책 한 권 한 권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함께 따라야 제대로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권장도서를 고르고 발표하고자 한다면 좀 더 많은, 그리고 더 정확한 목록을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그래야 도서관들이 목록에 포함된 좋은 책을 사서 도서관 장서에 넣어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도록 하고, 오래 보존하여 다음 세대가 읽을 수 있도록 하거나, 아니면 세대간 대화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고민거리(?)는 권장도서와 도서관의 인기대출 서적과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문화일보 기사(2005.2.5.)에 따르면 서울대학교가 4일 발표한 권장도서 목록과 지난 해 같은 대학 중앙도서관 대출 순위 상위 100권을 비교해 본 결과, 둘 사이의 거리가 상당히 멀었다고 한다.

권장도서 목록은 고전 중심인데 비해 대출 상위도서는 주로 소설, 팬터지, 무협지가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권장도서 100권 중 박경리의 ‘토지’와 ‘그리스·로마신화’ 단 2권이 포함되었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도서관 입장에서는 이러한 두 양극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다.

도서관은 서점이나 도서대여점이 아니기 때문에 무조건 이용하는 사람들의 요구에만 따를 수도 없으나, 그렇다고 무조건 교양이나 전문성만을 강조해서 이용되지도 않은 책만을 쌓아둘 수도 없다. 문제는 이 양극 사이에서 균형을 맞출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 사실 균형을 갖춘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이 보다 더 큰 문제는 이같은 도서관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도서관이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특히 요즘과 같이 도서관까지도 경제성을 따지고, 거의 맹목적이라고 할 정도로 고객만족을 따지는 시대에 읽히지도 않는 책을 소장하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되고 있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는 관건은 도서관을 둘러싼 모든 사람들의 이성적 판단과 균형잡힌 이용행태라고 할 수 있다. 도서관 운영자는 고객들이 거의 찾지 않는다고 해도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인정된 고전이나 좋은 책은 갖추도록 도서관 직원들을 격려해야 한다. 그것은 한 사회의 지적 균형을 유지하는데 있어서도, 그리고 출판산업으로 대표되는 지식과 문화산업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고객들은 도서관이 개인의 선호에만 맹목적으로 따라야 하는 그런 기관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보존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와 합의를 위해 존재하는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기관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사적인 관심이나 즐거움을 위한 책보다는 좀 더 사회적 가치를 가진 책을 읽는데 도서관을 활용해야 한다. 그럴 경우에 비로소 도서관은 그 나름의 전문성으로 두 극단적인 가치의 균형을 맞추면서 사회적 효용을 증대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도서관에 대한 이용자들의 불만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중 하나가 읽을만한 책이 없다는 것이다. 일종의 머피의 법칙이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읽고자 하는 책만 없다!’ 그러나 도서관으로서도 한정된 예산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최대한 유용한 책을 골라 갖추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도서관이 어떤 책들을 갖추면 좋은지를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합의하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으면 좋겠다. 도서관은 수많은 사상과 지식, 정보가 옳고 그름을 떠나, 맞고 틀림을 떠나 무수히 서로 투쟁하는 공간일 수 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지 않고, 또는 사적인 관심으로만 대한다면 도서관은 마치 잡다한 쓰레기장이 될 수도 있다. 도서관은 밀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광장에 있어야 하는 기관이다.

독자들이 서점에서 좋은 책을 고르기 위해 고민하는 것보다 더 큰 무게의 고민을 안고 있는 기관이다. 이 점을 인정할 수 있다면 도서관에 있는 많은 책들이 좀 더 가까이 다가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잘 되었건 못 되었건 지금 도서관이 가지고 있는 책들은 우리 시대 우리 모두의 수준이며 고민의 결과물이다. 앞으로 도서관에 가시면 책꽂이 사이를 어슬렁거려 보시기를. 그리고 아무 책이나 꺼내 만져 보거나 훓어 보시기를 권한다.

그런 사이에 우연히 보물을 만날 수 있는 기쁨을 발견하실 수 있지 않을까? 보물을 발견했다면 그 책이 보물일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구해둔 도서관 직원의 노고를 한 번은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그런 행복한 시간들이 도서관에 가득하다는 것을 알아 주셨으면 좋겠다.

이 글은 신기남 의원 홈페이지(http://www.e-politics.or.kr)에 게재되는 '시선의 권리' 컬럼 란에 올라오는 글이며, 필자와 신기남 의원측의 허락을 얻어 게재합니다.


(이용훈 도서관협회 기획부장)=데일리서프라이즈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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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적 출판 경영..틈새 시장 노려' - 박근섭 민음사 대표 [05/02/14]
 
[박근섭 민음사 대표, "아이들 봐도 부끄럽지 않을 책 만들 것"]

"공격적 출판 경영… 틈새 시장 노려"
 
"아이들이 봐도 부끄럽지 않을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국내 대표적 출판사인 민음사의 박근섭 대표가 목에 힘을 준다. 미국 미주리대 MBA 출신으로 출판 2세 경영진의 대표주자인 박대표는 얼마전 아버지 박맹호 대표이사 사장이 그룹 회장으로 일선에서 한발 물러남에 따라 황금가지 대표이사를 겸해 민음사 대표이사 자리에 앉았다.
 
독자 성향파악
IMF시절 '부자아빠 가난한아빠' 성공 신화
홈쇼핑 판로 개척… 세계문학전집 11억5천 매출도

어깨가 무거울 법도 한데 표정이 밝다. "이제까지 해오던 일인데요. 뭐." 말이야 쉽게 나오지만 눈빛이 매섭다. 출판과는 무관한 경제 경영을 전공한 박대표는 그래서 그런지 흐름을 읽는 눈이 남다르다.
 
"요즘 힘들다 힘들다 하지만 힘들 때야 말로 틈새가 있는 법입니다." IMF 시절인 지난 2000년에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로 히트를 친 것만 봐도 그렇다.
 
이 척박한 독서 풍토에서 100만부 이상 팔리는 초대형 베스트셀러를 탄생시켰다. 오죽하면 책이 '올해의 히트 상품'까지 되었을까.
 
박 대표는 "만약 그때 우리가 IMF 사태를 겪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그 책이 인기를 끌지는 못했을 겁니다. 지난 몇년간 사회적, 경제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은 한국 독자들의 변화된 마인드를 제대로 공략한 거죠."
 
그럼 IMF이후 최대의 불황기라는 요즘은 또 어떤가.
 
민음사는 얼마전 한 케이블TV 홈쇼핑에서 1시간동안 50만원짜리 1000여 세트의 세계문학전집을 팔아치웠다.  첫 홈 쇼핑 판매에서는 이보다 많은 1300여 세트, 6억5000여만원을 팔아 모두 11억5000여만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TV의 홈쇼핑에서 아동 전집류와 학습교재는 이미 연간 수백억원 대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지만, 문학전집류가 이처럼 많이 팔린 것은 처음이란다.
 
"힘들다, 힘들다, 주저앉아만 있으면 뭐가 나오나요.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홈쇼핑이라는 시장을 개척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1970년대 '세계시인선'과 '오늘의 시인총서'를 통해 시집 붐을 일으키고, 오늘의 작가상을 통해 이문열, 조성기 등 대표적인 작가를 발굴하는 데 기여한 민음사. 편안함 안식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민음사의 미래는 박대표와 함께 끊임없이 현재진행형이다.

(스포츠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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