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05. 03. am. 12:55

 

엉겁결에 따라나선 조카 세모의 소풍.

아무리 생각해도 따라다니기만 할 것 같아 책 한 권을 집어들고 갔다.

 

무라까미 하루키..

늘 시간이 많아진다 싶으면, 읽게 되는 사람..

읽으면 읽으수록 빨려들어가고야 마는 사람..

언젠가 종로서적에서 그의 책을 찾다가 아직도 읽을 게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안도했었는데... 그래서 다작하는 작가들이 좋다 했었는데..

다시 하루키를 읽게 되었다..

[도쿄기담집]...

부자가 되기로 마음먹으며 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했었는데..

결국 빨려들어가 버렸다..

그의 책은 하루키가 주인공으로 서술되는 작품들이 훨씬 매력적이다..

하루키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따라다니던 아그들 무리를 여러번 놓쳤다..

 

다시 하루키를 만나야겠다..

근데 그때 읽었던 책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몇권밖에 남아 있지 않네..

다시 읽어봐야겠다..

천천히.. 한장한장 읽을 쪽이 줄어드는 걸 다시 안타까워하면서..

읽고시푸다..

하루키.. 하루키..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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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05. 02. am. 3:26

 

0.

읽기에 잠시 삐리 꽂혔다.

닥치는 대로, 보이는 대로 읽고 있다.

이 컨디션이 쭉~ 갔음 싶다..

근데 이렇게 저렇게 자꾸 할 일이 생긴다.

이런이런..

 

1.

드디어 때지난 베스트셀러 [블루오션 전략]을 집어들었다.

1/6밖에 안 읽었는데, 재밌다..

제거/감소/증가/창조/제거/감소/증가/창조..

다 읽고 나면 새로운 걸 많이 알게 되었음 좋겠다.

제거/감소/증가/창조..

 

2.

조카 세모와 함께 읽으려던 그림책을 그냥 읽어버렸다.

[틀려도 괜찮아]

글쓴이가 일본 공립학교 교사인데, 교육자다운 책이다. 좋다.

조카 세모보다 세모 샘께 줘야겠다고 맘먹었다.

마침 낼 세모가 울 옆동네로 소풍온다했으니 잠깐 들러 샘께 전해드려야겠다..

 

3.

낼은 할일이 많은데.. 모래도 글피두...

컨디션 유지해야 하는데, 음... 걱정이다..

 

덧.

세모야, 넌...

그냥 하던 대로 해..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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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울 것이 남아 있어 다시 태어난다_임영태
p. 24
(티베트 밀교와 관련하여 윤회 사상을 설명하는 책에서 인간이 계속 새로 태어나며 윤회를 거듭하는 이유에 대해)
"배울 것이 남아 있어 다시 태어난다."
p. 25
무엇을 배울 것인가, 무엇을 배우라 하는가, 고통 앞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자기 삶의 목적과 정면으로 마주 서게 되는 것이다.
 

나를 기관 단총처럼 써먹게_안도현
p. 33
"의료 행위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그 의료비를 감당할 여유가 없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다." _ <닥터 노먼 베쑨> 재인용


아파, 나도 아프다고_김용석
p. 81
플로베르는 하등 동물에서 고등 동물로 갈수록 '고통을 견디는 능력'이 커진다고 했다.
 

사랑하라, 희망 없이_이명원
p. 101
"사랑하라, 희망 없이." 이 말은 소설가 윤영수 씨의 창작집 제목에서 온 것이다. 내게 이 말은 사랑을 둘러싼 현재의 남루아 통증들을, 지금 이 순간 즐겁게 긍정하고 자극하게 껴안으라는 말로 들린다.
 

한 말씀만 하소서, 내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_노혜경
p. 105
그러다가 세상 안으로 조금씩 들어오면서 세상의 일들이 나를 사로잡고 아프게 하기 시작했을 때, 내가 맨 처음 깨달은 것은 말의 힘이란 보잘것없다는 것이었다.(중략)

사람들이 말의 직설적 지시 능력을 믿지 못하고 행간을 찾아 헤매는 시대는 괴롭다.
p. 106
어느날 미사에서, 늘 듣던 말이 갑자기 내게 다가와 크나큰 위안으로 나를 사로잡은 것이다. "한 말씀만 하소서, 내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내 영혼이 낫는다 - 그렇다, 영혼이 병들 수밖에 없는 시대에는 어떤 말인들 상하지 않을소냐. 두 주먹 불끈 쥐고 싸우고 또 싸우자. 그렇게 젊음은 갔다.
 

몰락에 직면함으로써 자신에게 더 가까워질 수 있다_윤성희
pp.112-113
열아홉 살 되던 무렵, 나는 최승자의 시집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했었다.
"상처받고 응시하고 꿈꾼다."


가슴 뛰는 일을 하라_한비야(<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에서 본듯)
pp. 127-128
그 이동 병원에 40대 중반의 케냐인 안과 의사가 있었다. 알고 보니 대통령도 만나려면 며칠 기다려야 할 정도로 유명한 의사인데 이런 깡촌에 와서 전염병 풍토병 환자들을 아무렇지 않게 만지며 치료하고 있는 것이었다. 궁금한 내가 물었다.
"당신은 아주 유명한 의사면서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런 험한 곳에서 일하고 있나요?"
이 친구, 어금니가 모두 보일 정도로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재능을 돈 버는 데만 쓰는 건 너무 아깝잖아요? 무엇보다도 이 일이 내 가슴을 몹시 뛰게 하기 때문이죠."
(중략)
나는 이 일을 하는 데는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기술을 습득하느냐보다 어떤 삶을 살기로 결정했느냐가 훨씬 중요하다고 믿는다고 답했다.
예컨대, 자기가 가진 능력과 가능성을 힘 있는 자에게 보태며 달콤하게 살다가 자연사할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힘없는 자와 나누며 세상의 불공평과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선생님처럼 그리지 않을래요_박재동
p. 142
"전 선생님처럼 그리지 않을 거예요. 선생님 그림엔 삶도 역사도 없어요"
(중략)
이 아이가 던진 한마디는 서서히 내 마음에 균열을 일으키더니 이윽고 오롭고 비현실적이며 고집스럽던 나의 성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입시 준비생이던 그에게 나는 한편으로는 태산이기도 했는데 그 태산이 허무하게 무너진 것이다.
철저하게 '삶의 철학'을 예술관으로 가진 제자에 의해 나는 무너져 갔던 것이다. 그것은 나의 오랜 방황을 끝맺는 계기가 되었고, 차츰 나는 나와 이웃의 삶ㅁ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할 수 있는 일이면 과감히 행하라_김신명숙
p. 145
중요한 것은 누가 나를 '알아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느냐' 그리고 '진실로 하고 싶은가' 하는 것이었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를 그만 부려 놓고 오로지 '할 수 있는가', '하고 싶은가' 하는 물음에만 집중하니 나도 모르는 새에 자신감이 생겼다.
 

머뭇거리지 말고 시작해_이희재
pp. 158-159
하지만 완전한 것이 어디 있을가? 수영을 잘하기 전에는 수영장에 들어가지 앟겠다는 식의 각오라니, 배신이 두려워 친구를 사귀지 않거나 이별이 두려워 사랑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비바람을 맞으며 다져지고 상처를 통해 익어가는 불완전한 길 위의 여정이 청춘인 것이다.
"자, 머뭇거리지 말고 박을 내딛어."
 

걸을 때는 걷는 생각만 하라_박완서
pp. 181-182
(생략)걸을 때는 걷는 생각만 하라(생략)
그 말씀을 그리도 자주 들었건만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었다. 건강한 사람이 걷는 건 숨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절로 되는 것이지 내가 지금 오른발을 내놓아야지, 다음에는 왼발을 내놓아야지 하고 걷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몇 발자국은 그럴 수도 있겠지만 곧 잡념이 생기게 된다.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일을 지루하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은 딴 생각을 하는 재미 때문인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생략)
거의 안 넘어지게 된 것은 예순을 넘기고부터이다. 어머니 말씀을 알아듣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딴 생각을 하더라도 너무 골똘하게 하지 않는다. 목적지에 빨리 가려고 허둥대지 않는다. 걷는 것 자체를 즐긴다. 그게 가장 중요하다. 두 다리가 멀쩡해서 걸을 수 있는 것을 감사한다.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걷는다. 사는 데 있어서도 천천히 걷듯이 특별한 목적 없이 산다는 과정 자체를 즐기고 감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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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기러 가세 불리러 가세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
굽어 보살펴 잘 도와줄 때
정한 마음으로 원수가 있거든
내리 사랑하고 잘 도와주어라
불리러 가요 외기러 가요
닫은 문을 열러 갈 때 나를 따라오너라
나를 따라올 때
험하고 머나먼 길이니라
대신명님을 뫼시고 올 때
가도 끝이 없고
가고 또 갈 때
나만 좇아오거라
오다가 보면 돌부리가 있다
또 가시덤불이 있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라
깊은 물 옅은 물 찬물 더운물 수없이 있느니라
건너다 지치면
힘을 내고 용기를 얻어라
모든 시련과 싸워 이기고 극복하여라
멀리 보고 힘을 갖고 결심하여라
네가 가고 있는 길을 잊지 말고
명심하여야 한다
높이 보고 가거라
깊이 생각하며 가야 하느니라
옆눈을 뜨지 마라
생각을 해보아라
높고 옅고 깉은 데가 있으니
마음을 다져야 한다
다 겪고 겪다 보면 지친다
지치면 넘어진다
넘어지면 일어나거라
일어나면 또 넘어진다
또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야 하느니라
다시 넘어진다
다시 딛고 일어나거라
수없이 넘어지고 수없이 일어나거라
넘어지고 넘어지다 보면
네가 설 곳이 있느니라
이리 오너라 가까이 오너라
이만치 오너라
잘 받아라 잘 받아야 한다

- 신어머니 무당(김금화 선생)이 내림굿을 하며 새롭게 탄생하는 새끼 무당의 치마폭에 무구를 던져 주기 전 축원한 내용 p. 14

누구에게라도 사는 일은 험하고 머나먼 길일 것이었다. 가시덤불을 헤쳐 가야 하고, 깊고 얕고 차고 더운 물을 건너야 하고, 높은 산과 수없이 만날 것이었다. 그때 멀리 보고 시련과 싸워 이기고, 가는 길을 잊지 말고, 높이 보고, 옆눈을 뜨지 말고, 마음을 다져야 했다. 그래도 지칠 것이며 지쳐서 넘어질 것이었다.
넘어지면 일어나고 다시 넘어지면 또다시 일어나라, 수없이 넘어지고 또다시 일어나라고, 그러면 설 곳이 있으리라고 신어머니 무당이 말했다. 방금 두터운 알을 깨고 나온 새끼 무당에게.(p. 15_이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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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은 날로부터 사십구일만에 지내는 제사 祭祀 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중략) 사십구재는 우리나라에서 보편화된 제례문화制禮文化로 자리 잡았습니다만 그 의미의 근본 뜻은 제사라고 하는 제制가 아니라 재공양 齋供養이라고 할 때의 재齋라는 것입니다. 이 글자는 불교에서 사용하는 전문 용어로써 부처님이나 또는 도덕이 높은 스님들께 무엇인가 공양물을 받들어 올린다는 의미의 글자입니다. 그래서 사십구재란 돌아가신 영가(죽은 사람의 영혼)에게 공양물을 받들어 올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pp. 22-23
칠일마에 한번씩 재를 올리는 것은 몸을 벗어버린 영가가 몸을 가지고 있을 때 지은 업에 따라 다음 생을 받아 돌아가야 하는데 그 기간이 7일을 일주기로 하여 7주 기간 동안 계속되며 그 기간 동안 중음(죽어서 새로운 몸을 받지 못한 상태)을 면하고 다음 생을 받을 인연이 정해져 본생처로 가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p. 25
(불교에서는 사십구재를 지내면 동시에 탈상을 한다) 49재를 지내고 탈상을 하는 것은 이미 영가가 천도를 받아 극락왕생을 했거나 아니면 다른 생을 받아 환생처로 갔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중략) 사십구재의 기본 정신은 영가를 천도하여 부처님의 나라로 인도하고 나아가 무명無明을 벗고 해탈解脫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 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재공양물을 많이 차리고 싶은 것은 영가를 위하는 마음에서 누구나 바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지극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특히 부모님의 천도재는 재를 올리는 자식의 정성이 부모님의 영가에게 전달되어 감동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pp. 43-46
윤회는 오늘 나의 현실은 과거에 지은 업의 결과이며, 오늘 내가 하는 행위는 업이 되어 미래의 나의 삶을 결정짓게 된다고 하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p.111

Q & A

Q. 출가외인이 친정어머니 사십구재를 해도 되나?
A. 출가했다고 해서 외인이라고 하는 것은 조선시대의 유교적인 관점입니다. 조선시대도 여인을 출가외인으로 취급한 것은 중기 이후의 일이라고 말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불교가 크게 부흥했던 신라시대나 고려시대에는 극심하게 남녀를 차별하지도 않았고, 결혼한 여인이라고 해도 친정에 대하여 의무과 권리를 빼앗지 않았습니다. (중략) 남녀의 차별을 두지 않는 것은 재를 올릴 때 영단에 자을 올리고 절을 할 때도 불교는 남녀의 차별이 없습니다.

Q. 위패는 어떻게 써야 하는가
A. 유교에서는 제사를 지낼 때 위패를 지방이라고 해서 제사 상 위에 써서 붙여 놓는데, 이것이 문제가 많습니다. 벼슬을 하지 않은 사람은 아예 사람으로 취급을 안합니다. 심하게 말하면 벼슬하지 않은 사람은 위패가 없다고 보면 됩니다. 왜냐하면 국록을 먹는 벼슬이 없으면 천편일률적으로 모든 사람의 위패(지방)를 현고학생부군신위 顯考學生府君神位 라고 합니다. 그야 말로 성도 없고 이름도 없습니다. 이것은 벼슬하지 못한 사람은 사람으로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어머니의 위패를 쓸 때는 현비유인은진임씨신위라고 하여 성씨는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벼슬을 한 사람은 그 벼슬의 명칭을 씁니다.
위와 같은 것은 그야 말로 구시대적인 것이고,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위패는 특별한 양식이 있다기보다 정중하고 정확한 글씨로 아버지의 이름을 써 놓기만 해도 됩니다. 아니면 그냥 사진만 놓고 위패를 안 써도 됩니다. (중략)
간단하고 모범적인 예를 든다면 '선부친홍길동영가'라고 하면 됩니다.
(중략)
우리의 전총 제사는 유교식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각 지방마다 약간씩 다르고 집안마다도 약간씩 다릅니다. 이것은 결국 자기 방식대로 하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공연히 까다로운 법식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말에도 '남의 제사에 감 놓아라, 대추 놓아라하다'는 속담이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집 식으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제사는 첫째도 둘째도 정성입니다.

Q. 사십구재는 어떤 옷을 태우는가
A. 옷을 태우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육신이 소멸하여 저승으로 간 영가에게 옷을 소멸하여 저승에서 입고 가라고 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두번째는 살아 있는 이승의 사람이 돌아가신 영가의 옷을 태우므로 해서 이승의 인연을 마무리 짓는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반드시 어떤 특정한 옷을 소각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소각용으로 시장에서 파는 값싼 옷을 사다가 소각해도 좋고요. 더욱 좋은 의미를 가지려면 살아 있을 때 입든 옷 중에서 하나를 소각하면 좋습니다. 가장 좋은 의미를 가지려면 옷을 태우지 말고 깨끗한 옷을, 옷이 없는 사람에게 보시하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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