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특별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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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책에서 인간의 정체성 문제를 화두로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인간이란 정말 선하고 아름다운 존재인가? 이 문제에 대해 그는 깊은 반성과 성찰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그가 설정한 여러 가지 풍경 속에는 인간의 적나라한 여러 가지 본성들이 나타나고 있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라는 작품에서는 삶의 끝이자 죽음의 공간인 페루 해변에서의 인간의 절망을 보여주고 있으며 [벽]이라는 작품에서는 벽을 사이에 두고 처절하게 외롭고 고독한 젊의 처녀의 죽음과 그 죽음을 벽으로 인해 오해하고 또 다른 절망으로 삶을 버린 한 청년의 이야기 속엔 삶의 또 다른 절망이 있다.

전체주의 국가에서의 인간성의 변질과 왜곡을 다룬 작품이 있는가 하면, 순수성을 찾아 헤매는 순수주의자의 마음속에 일그러진 물질주의와 이기심이 잠재되어 있는 자기 기만을 보여주고 있으며, [가짜]라는 작품에서는 진짜와 가짜의 구분 속에 담겨진 인간의 거짓된 욕망과 이기심과 더러운 본성의 거친 호흡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우리 고매한 선구자들에게 영광 있으라]는 작품에서는 과학 기술 문명과 인간성이 엮어낸 참담한 미래의 상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인간이 가진 좋은 면은 보지 못했을까? 그의 눈으로 본 인간과 세상은 왜 그토록 자신이 이 세상에 몸담고 호흡하기를 힘들게 한 것일까? 결국, 이 모든 것에 대한 그의 극복할 수 없는 절망과 고독과 모욕과 패배감과 배반과 역겨움은 그를 기어코 자살로 내몰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가 그의 작품에서 그리고 그의 자살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과학기술의 발달과 문명의 이기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더러운 본능들과 이기심, 욕망과 저급의 쾌락과 인간 자체에 대한 정체성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까발림으로써 우리에게 인간의 존엄성과 휴머니즘과 아름다움과 온화함으로 가득 찬 세상을 희망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즉, 그의 적나라한 인간의 자기 기만과 세상에 대한 고발과 풍자를 통해 그는 이 무섭고도 절망에 가득찬 세상에 대한 저항의 화살을 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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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알 유희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29
헤르만 헤세 지음, 박환덕 옮김 / 범우사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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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작품세계는 늘 성장해가는 개인의 자아의 성장에 관심을 두고 있다. 유리알 유희 역시 이러한 과정을 담고 있는 거대한 작품이다. 유리알 유희는 정신적 삶의 부활 및 보존을 중요한 목표로 삼는 하나의 종단에 관한 이야기이다. 유리알 유희란 삶의 무궁무진한 의미를 음악적으로 재생하고 명상과 사색에 잠겨 그 의미를 파악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유희를 통하여 이기적이고 타락한 개인의 정신과 불안하고 위태로운 현실의 세계에 맞서 도덕적인 순화와 정신적 정결함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헤세는 요제프 크네히트라는 한 인물의 성장과정을 통하여 완전하고도 진실한 깨달음은 도덕적이고 순결한 정신적 유희로 상징되는 카스탈리엔의 세계뿐만이 아니라 이와 대비되는 현실의 삶의 세계를 깊게 체험함으로써만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그의 생각에는 개인적으로는 집안의 기독교적인 분위기를 거부하고 신학교를 버리고 뛰쳐나온 자신의 성장과정에 대한 정당화이자 그 속에서의 자신의 깨달음이었고, 사회적으로는 1차 세계대전을 겪은 세상 사람들의 불안과 존재의 불확실성과 위태로운 상황의 반영이었을 것이다.

그렇다. 깨달음이란 어쩌면 현실의 모든 것들 - 아름다움과 경건함과 도덕성과 정신적 순결함뿐만이 아니라 미움과 시기심과 질투와 쾌락과 욕망과 죄와 벌 -을 개인이 가지고 있는 오감을 통하여 깊이 인식함으로써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미워하는 개인의 눈에 비친 그 모습이라기보다는 그 개인의 마음속에 있는 그 어떤 것이라는 말은 인간의 오감이 갖고 있는 그것 자체가 어떤 좋고 나쁨과 선악을 구분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대상을 인식하는 개인 자신의 의식일 따름이다. 따라서 자아의 의식을 깊이 성찰하고 반성하는 과정속에서 그것을 극복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유리알 명인인 요제프 크네히트가 느낀 문제의식은 정당한 것이며 바로 헤세 자신이 느낀 문제의식인 것이다. 선이라고 하는 것을 정확하고 깊이 인식하기 위해서는 악이라고 하는 것도 깊이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듯이 한 인간이 진정한 자아의 완성을 이루려고 한다면 정신적 순결함의 보호구역에서만 머물러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 점, 그래서 현실의 삶속에서 자신이 직접 체험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때에 비로소 절대적 진리이자 자아완성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헤세는 깨우쳤던 것이고 이 시대의 진정한 작가는 바로 이런 현실적 상황(전쟁후의 불안하고 불확실한 어두운 상황)속에 있을 때에만 비로소 그 가치가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그의 작품은 직접적으로 사회적 현실 비판과 정치적 의식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우회적으로 그런 것을 지적한다는 느낌을 나는 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첫 인상에 뭔가 탐탁하지 않았던 이 작품의 결말(진정한 현실세계를 맛보기도 전에 데시뇨리의 아들 투루와의 사제관계가 정착되기도 전에 호수에서 죽는 결말)은 바로 요제프 크네히트가 현실세계의 직접적인 체험을 통하여 진정한 깨달음과 자아완성을 가질 수 있다는 태도, 그래서 그 체험에 언제든지 뛰어들 자세가 되었다는 준비로 이미 완성된 것임을 보여주면서, 실타래처럼 꼬여버린 나의 의문은 비로소 해결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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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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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 넘은 나이에 왠 '데미안' 할 것이다. 하지만, 자아가 완성되지 않은, 그래서 고통과 갈등과 방황을 통하여 자아를 형성해가는 젊은이뿐만 아니라 자아의 완성에 좀 느린 나같은 느림보들은 읽어보아야 하는 그런 책이 아닐까 한다.

데미안은 데블(devil)즉, 악마, 악령을 떠올리게끔 한다. 즉, 선과 악의 대립적 구분,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도덕적 구분은 세상을 이해하는데 절반의 진리밖에 주지 못한다는 것을, 그래서 다른 반쪽의 진리인 데미안을 통해서 우리는 세상의 진리의 참모습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헤세의 작품은 대부분이 비슷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깨달음이라는 것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에게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선한 것만으로 신이라는 존재에 가까워지려고 하지만 헤세는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시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어떤 신성을 통해서 진정한 절대자에 도달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완성된 자아가 바로 그 목표이다.

숫나비가 암컷에게로 그 향기만으로 수킬로미터의 반경에서 무수히 날아드는 것은 바로 숫나비가 자신의 온 신경을 집중해서 그런 능력을 갖게끔 스스로 만들어가듯이, 동물의 영장인 인간이 어떤 스스로의 욕구에 의해 모든 몸과 마음을 집중하면 그 욕구를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자아의 성장을 위해 지금 갈등하고 고통스러워하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바로 데미안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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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 헤세전집 5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5
헤르만 헤세 지음 / 민음사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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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태초의 신비를 안고 있는 우포 늪에서 내가 본 것은 시간의 소멸이었다. 그것은 태초에도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접하게 된 이 싯다르타라는 책은 바로 이 우포 늪에서 내가 느낀 시간의 소멸을 내 생각속으로 가져다 주었다.

싯다르타가 겪은 수많은 인간적 쾌락과 욕망과 거짓과 탐욕과 허무와 고통은 어쩌면 그가 완성된 자아를 형성하기 위하여 반드시 거쳐야만 하였던 과정은 아니었는가 하고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자아완성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이 모든 것을 순간과 동시에 영원으로서 느낄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갖게 해 준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그가 내면적인 수도과정에서 단절시켜버린 인간적 현상(인간의 고통, 쾌락, 돈, 명예, 등의 일련의 사회현상)은 좀 더 높은 수련의 과정에서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수용하고 이미 현실과 순간이라는 그 속에 담긴 영원성과 단일성을 파악하게 됨으로써 그는 이미 현실의 삶속에서 깨달음이 있다는 사실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완성된 싯다르타의 얼굴을 알아차린 고빈다의 눈에 보인 그 미소는 바로 고빈다 자신과 인간의 모든 감정들과 사건들과 강과 자연에 대한 평온하고도 완전한 사랑을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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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눌프 - 헤세선집 8
헤르만 헤세 지음, 이노은 옮김 / 민음사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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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내가 접하게 된 것은 한 여자 때문이었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으려 하던 내게 그녀는 이 책을 함께 권한 것이다. 두 책을 놓고 무엇을 먼저 읽을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내 삶에 드리워져온 그녀의 삶을 수용하듯이 선뜻 이 책을 먼저 잡게 되었다.

이 책은 나에게는 나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지금의 내 모습을 다시 생각하게끔 한다. 어쩌면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인 크눌프라는 인간이 끌렸던 이유는, 이루어지지 못했던 첫사랑의 아픔으로 인해 내가 잃어버린 사랑의 아름다움의 한 단편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인물을 거울삼아 나의 모습을 비추어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나는 너무나도 평범한 한 시민으로 살고 있지만....

헤세가 결혼을 하고 자녀를 가지게 되고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면서 또한 한편으로는, 예술가를 꿈꾸면서 느끼는 갈등을 크눌프라는 인물을 통하여 보여주려 하였듯이 나 역시 평범한 시민과, 물론 예술가는 못되더라도 뭔가 의미있는 삶과 세상의 진리에 접근하고자 하는 배움의 길에 있는 사람과의 갈등을 그를 통해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크눌프보다는 속세의 미련이 훨씬 더 많은 나는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갈 자신은 없다. 하지만 그의 삶을 통해서 나의 삶을 비추어보고 반성할 수 있는 작은 지혜는 다행스럽게도 갖고 있다. 비록 그는 어떤 직업도 가져보지 못하고 이곳 저곳을 배회하며 사회화가 요구하는 개인의 삶은 살지는 못했으나. 그에겐 다른 직장인들의 삶을 인정하고 진지하게 관심을 갖고 보면서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삶이라고 해서 배척하지 않으며 오히려 따뜻한 이해와 사랑을 통해 자신의 삶을 실현하려 하였던 것이다.

결국은 그의 이런 삶을 죽음의 순간에 신과의 대화를 통해서 인정받고 늘 신과 함께 했음을 알게 되는 결말은 비록 다른 사람과는 다른 삶을 살지라도 그 다른 삶을 이해하고 인정하면서 세상을 이해와 관심을 통하여 아름답게 살아가자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사랑이 숨쉬기 더욱 곤란해지는 이 세상에서 적어도 그녀만은 더욱 사랑하며 살아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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