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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조선 2005-12-29  




[BOOKS OF 2005] 올해의 책|명사들이 읽은 책
노무현 ‘칼의 노래’, 부시 ‘수용소의 노래’, 고이즈미 ‘노부나가의 관’...


지난 11월 1일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은 조류인플루엔자 확산을 막기 위해 71억달러의 긴급자금 지원을 의회에 요청했다. 특히 이날 미국 국립위생연구소에서 가진 연설에서 부시 대통령은 20세기 초 스페인독감 사례와 같은 역사적 사례까지 나열하면서 조류인플루엔자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부시 대통령이 조류인플루엔자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보인 데 대해 USA 투데이 등 미국의 주요 언론은 부시 대통령이 최근에 읽은 ‘The Great Influenza’란 책이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에서 올 2월에 출간된 이 책은 1918년 발발해 세계적으로 1억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독감이 어떻게 전파되었고 이에 대한 당국의 대처방식은 어떠했는지에 대한 과정을 마치 카메라가 목표물을 좇아가듯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저자 존 배리는 뉴욕타임스, 뉴스위크 등에 글을 기고해 온 저널리스트 출신 역사작가다.

‘수용소의 노래’ 저자 백악관 초청

부시 대통령은 또 10년간의 북한 정치범수용소 체험을 바탕으로 쓴 ‘The Aquariums of Pyongyang’(국내제목 ‘수용소의 노래’)을 읽고 지난 6월 저자인 탈북자 출신 조선일보 기자 강철환씨를 백악관에 초청해 담화를 나누기도 했다. 미국에서 2000년 출간됐던 이 책은 부시 대통령이 읽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직후부터 판매에 불이 붙기 시작해 미국 지방의 한 대형서점에서는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처럼 명사가 읽은 책은 정책결정자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쳐 사회적으로 파장을 불러일으키는가 하면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켜 단번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우정국(郵政局) 민영화를 둘러싸고 국회가 해산된 뒤 지난 9월에 열린 총선을 앞두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탐독했다는 책 한 권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책의 제목은 ‘信長の棺(노부나가의 관)’. 이 책에는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武將)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당시 귀족들의 인습을 타파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고이즈미 총리 스스로 기자들에게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었다”고 밝혔다. 우정국 민영화를 관철시키려는 고이즈미 총리의 모습이 귀족들의 인습에 맞서 싸운 오다 노부나가와 대비되면서 이 책 또한 일본에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국내에서도 유명인사가 읽은 책이 곧장 화제의 중심에 올라서는 일이 일상화되고 있다. 그 중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은 여러 차례 화제가 된 바 있다. 지난 2003년 대통령이 MBC 프로그램 ‘느낌표’에 출연해 “뭐라고 표현할 수 없다. 굉장하다”라고 치켜세운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는 방송 직후 10만부 이상이 팔려나갔다. 

이 책은 대통령이 탄핵 기간에 다시 꺼내들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또 한차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 5월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초청한 청와대 만찬에서는 참석자들에게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가 지은 ‘노동의 미래’를 선물해 이 책이 세간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올해에는 ‘한국의 개혁과 민주주의’(강원택 지음)라는 서적이 대통령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린 글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이 책은 교수나 대학원생을 겨냥해 지은 학술서적인 까닭에 초판을 500부밖에 인쇄하지 않았지만, 대통령과 인연을 맺으면서 초판이 모두 팔려나가고도 주문이 쇄도해 추가로 1000부를 더 찍어냈다.

박근혜 대표 ‘블루오션 전략’ 전도사

청와대 홈페이지의 ‘대통령의 요즘 생각’이라는 게시판에는 종종 대통령이 읽은 책 소개가 올라온다. 지난 10월 2일 게시된 글에선 ‘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라는 책을 소개하고 있다. 올해 5월에 출간된 이 책은 지난 2000년에 걸친 한국과 동아시아의 흥망사를 조망하면서 앞으로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 있다. 저자 배기찬씨는 노무현 대통령의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부터 대통령을 보좌해온 측근으로, 현재는 세종리더십개발원 소장을 맡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공직자가 읽은 책’이라는 게시판도 마련돼 있어 이해찬 국무총리와 각부 장관들이 자신이 읽은 책을 소개해 놓았다. 이 중 올해 출간된 책으로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추천한 ‘대화’(리영희 외 지음), 변양균 기획예산처 장관이 꼽은 ‘런치타임 경제학’(스티븐 랜즈버그 지음) 등이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올해 각종 행사에서 연설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블루오션 전략’에 대한 언급을 빠뜨리지 않았다. 지난 9월 숙명여대에서는 ‘블루오션 정치’를 주제로, 11월 영남대에서는 ‘선진한국 건설을 위한 블루오션 전략’이란 주제를 가지고 학생들 앞에서 특강을 하기도 했다. 지난 4월 출간돼 올해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인 이 책은 지금까지 수많은 아류작을 쏟아낸 올해 최고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다. 이 책이 출시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생소했던 ‘블루오션’이란 말은 어느덧 일상어가 되어 버렸다. 박 대표는 “블루오션이란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그동안 찾지 못했던 새로운 시장을 찾아내는 것”이라며 “정치, 경제 등 국가 전략에서도 블루오션을 찾는다면 선진한국 건설에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청계천 복원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다시 한번 특유의 추진력을 뽐낸 이명박 시장은 유려한 에세이를 추천했다. 이 시장이 꼽은 책은 어릴 적 소아마비로 하반신이 마비된 서강대 영문과 장영희 교수가 올해 3월 펴낸 ‘문학의 숲을 거닐다’. 장 교수는 작년 말부터는 척수암 선고를 받고 투병 중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2001년부터 3년여간 조선일보에 연재했던 문학작품에 대한 에세이를 추려담은 것이다.

책은 문학의 고전들을 작가 본인의 삶과 접목시켜 쉽지만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문장에 담았다. 이 시장은 “머리가 복잡할 때마다 한 편씩 읽으면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정말 문학의 숲을 거니는 것 같은 감흥을 느꼈다”며 “아울러 장애와 질병이라는 난관을 극복하고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 장영희 교수를 통해 많은 이들이 희망과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CEO 추천서는 경영전략서

최고경영자(CEO)들이 어떤 책을 읽느냐는 해당 기업의 기업전략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하루가 다르게 기업환경이 변하는 요즘, 불확실성을 탈피해 안정적인 경영을 꾸려나가려는 것이 모든 CEO들의 소망일 것이다. 재계 지도자들은 독서를 통해 불확실성에 대한 리스크(위험)를 줄여나가려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다.

포스코 강창오 사장은 ‘폭풍에 대비하라’란 책을 추천했다. 이 책은 지난 3월 ‘폭풍에 대비하라’란 제목으로 한정출간되었다가 7월에 ‘제목으로 재출간되었다. 저자 폴A로디시나는 다국적 컨설팅회사인 AT커니의 부사장으로서 이 회사의 글로벌 경영정책위원회 위원장 역할을 맡아 경영진과 정부 지도자들에게 기업환경 변화에 대한 자문역을 하고 있다. 책은 내일의 기업환경에서 예견할 수 있는 흐름과 이를 토대로 한 예상 시나리오를 소개하고 있다. 강 사장은 “(이 책은) 우리가 막연히 짐작하고 있던 경영환경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예시함으로써 업종을 막론하고 CEO들이 불확실성을 헤쳐나가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LG 전자 김쌍수 부회장은 ‘잭 웰치, 위대한 승리’를 필독서로 꼽았다. 이 책은 세계적인 가전기업 GE의 CEO였던 잭 웰치가 지난해 결혼한 자신의 세 번째 부인 수지 웰치와 공동저술했다. 웰치는 전 부인과 이혼하는 대가로 1억8000만달러의 위자료를 지급해 한때 ‘가족 경영에는 서툴다’는 비아냥을 사기도 했다. 이 책에서 웰치는 2001년 은퇴 이후 총 25만명이 넘는 사람 앞에서 강연하며 받은 질문에 대해 자신의 40년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답변한 내용을 들려준다. 김 부회장은 “잭 웰치의 가르침이 담긴 이 한 권의 책이 회사나 개인의 삶에 대해 가지고 있는 열정을 더욱 북돋울 수 있는 촉진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영전략에 대한 실무서를 추천한 앞선 두 명의 CEO와 달리 SK네트웍스의 정만원 사장은 감성적인 시집을 올해 읽은 최고의 책으로 꼽았다. 1년에 100여권을 읽는 독서가인 정 사장의 추천도서는 올해 3월 출간된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이 책은 시인 류시화씨가 마음을 치유하는 시를 주제로 동서고금의 시들을 엮어낸 시집이다.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 서기관에서부터 노벨 문학상 수상자에 이르기까지 4000년에 걸쳐 유명·무명 시인들의 시를 소개하고 있다. 정 사장은 “과거의 경험이나 환경을 두려워하고 안주하려는 대신 그것을 통해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어야 한다”며 “회사 정상화와 글로벌라이제이션을 통한 성장을 위해 많은 과제를 추진해 나가야 하는 나에게 (이 책은) 많은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고 말했다.

독서광 전유성씨 소설 ‘맛’ 추천

끊임없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공급해야 하는 문화계에는 유난히 독서가가 많다. 개그계의 ‘아이디어 뱅크’로 불리는 전유성씨는 한 달에 열 권 이상의 책을 읽을 정도의 독서광으로 알려졌다. 전씨가 추천한 책은 지난 5월 국내에 출간된 ‘맛’이라는 단편소설집이다. 이 책의 저자는 얼마 전 미국의 팀 버튼 감독이 만들어 국내에도 개봉한 영화 ‘찰리의 초콜릿 공장’의 원작자인 . 책의 제목이기도 한 ‘맛’이란 작품은 한 골동품 수집업자가 시골 마을을 다니다 마음에 드는 탁자를 발견하고는 물건값을 깎기 위해 벌이는 해프닝을 다루고 있다. 전씨는 “반전의 묘미가 있는 책”이라며 필독을 권했다.

가수 조영남씨는 지난 11월 월간 ‘톱클래스’에 기고한 글에서 “단호하게 말하건대 목숨 바쳐 사랑하는 지고지순한 사랑은 없다”며 “내가 집에서 혼자 그림 그리고, 피아노 치며 노래하고, 친구들 만나서 히히덕거리는 사소한 일상, 이것들이 진정한 사랑임을 뒤늦게야 깨달았다”고 적었다. 조씨가 자신의 사랑론을 수정하게 된 데는 얼마 전 읽었던 한 권의 책이 큰 영향을 끼쳤다.

조씨는 한 달 전쯤 절친한 친구 사이인 서강대 영문과 장영희 교수로부터 장 교수가 번역해 올해 2월 출간된 ‘슬픈 카페의 노래(The ballad of the sad cafe)’라는 책을 선물받았다. 미국에서 1951년에 출간된 이 책은 작은 마을의 카페를 무대로 육척 장신의 괴팍한 카페 여주인, 꼽추 그리고 흉악범 사이의 기이한 삼각관계를 그리고 있다. 조씨는 “이 책을 읽고 모든 게 해결되는 느낌이었다”며 “내가 먹고 자고 친구들 만나는, 누구나 갖고 있는 사소한 삶이 우리가 추구하는 전부”라고 말했다.


지난 8월 3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 ‘장외인간’을 출간한 소설가 이외수씨는 “이철환의 ‘행복한 고물상’을 읽었습니다. 그의 언어들은 모두 눈물에 젖어 있지만 읽을수록 가슴이 따뜻해집니다”라고 했다. 이씨는 이메일로 올해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해 적어주었다. 이씨는 처음엔 “이런 작가들이 있기 때문에 아직도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라고 썼다가 “끝문장이 이상해 다시 수정했다”며 재차 이메일을 보내 “… 인류가 멸망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라고 고쳐 썼다. 평소 조사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고 한 문장을 두고도 보통 수십 번 많게는 백 번씩 고쳐쓴다는 이씨의 작문 습관을 엿볼 수 있었다.

개그우먼 김미화씨도 소문난 다독가. 최근 본업인 개그를 접어두고 MBC에서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이란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을, KBS에서는 작가 장정일씨와 ‘TV 책을 말하다’ 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김씨는 특히 책 소개 프로그램을 맡으면서 “방송과 관련해서만 매주 2권 이상의 책을 읽는다”고 말했다. 김씨가 추천한 책은 ‘쾌도난마 한국경제’.

이 책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장하준 교수와 국민대 경제학자 정승일 교수가 한국 경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나눈 대담 내용을 월간 말지(誌)의 전 편집장 이종태씨가 정리한 것이다. 저자들의 ‘TV 책을 말하다’ 출연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는 김씨는 “자유주의 경제의 개혁과 개방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주고 우리 사회가 직면한 정치 사회 경제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깊은 성찰을 가져다준 점을 높이 사고 싶다”고 말했다.

김재곤 주간조선 기자(truman@chosun.com)


 

 

 










최근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선조들의 늠름한 기상과 호연지기를 본받으라"
며 유럽 리그에서 활약중인 박지성, 안정환 선수 등에게 선물해
주목받은 책 "삼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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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잔의여유 2005-12-30 0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정국민영화가 미국에게 좋다는 소리도 있는데 음모론인지 사실인지 모르겠네요.^^; 물론 우정국은 일본병폐인 관료주의를 나타내지만요.
 

주간조선 2005-12-29 [BOOKS OF 2005] 올해의 책|해외 출판시장

팩트와 픽션이 결합한 팩션류의 역사추리물 강세... 앤 라이스의 ‘구세주 그리스도’도 주목

비소설 분야는 `목적이 이끄는 삶` `긍정의 힘` `괴짜경제학` `블링크` 등 꾸준한 관심 끌어

2005년 한 해 동안 나라 밖 출판가에서는 어떤 책들이 주목 받았을까? 가장 화제가 됐던 책은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한 점검은 한 해 동안 세계 독자들이 가장 관심을 기울인 분야는 어떤 것이었으며, 독자들은 또 어떤 정보를 책을 통해 얻으려 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세계 출판시장의 중심인 미국 출판시장을 중심으로 올 한 해의 해외 출판시장을 되돌아보고자 하며, 크게 소설과 비소설 분야로 나누어 살피고자 한다.

소설 분야는 크게 몇 가지로 정리된다. 우선 올해의 최대 화제작이라고 이렇다하게 내세울 만한 소설이 없는 가운데 수없이 많은 소설이 등장했다가 퇴장하는 양상을 보였다는 점이다.

둘째로, 이런 가운데 댄 브라운 소설에 대한 열기는 여전히 식지 않은 채 거의 3년째 순위 상위권에서 내려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아직까지도 팩션(팩트+픽션·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것)류의 소설이 강세를 띠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실례로, 과거 10여년 간에 걸쳐 줄곧 뱀파이어에 대한 소설을 써오고 있던 베스트셀러작가 앤 라이스(Ann Rice)가 이번엔 전례를 깨고 이례적으로 분위기를 바꿔 팩션소설을 선보였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셋째로 2003년과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역사추리소설 분야에 대한 관심이 계속 강세 이어졌으며 이런 흐름은 앞으로 선보이게 될 몇몇 주요 소설을 미루어볼 때 내년까지도 이어질 전망을 낳게 한다.

출판전문 주간지인 ‘퍼블리셔스 위클리’ 베스트셀러 집계에 따르면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는 2005년 11월 말 현재 138주째, 그리고 그의 또다른 소설 ‘천사와 악마’는 135주째 각각 베스트셀러 10위권 안팎에 머물며 그 위력을 3년째 과시해오고 있다. 그러나 댄 브라운의 소설이 이처럼 지속적인 강세를 이어오고 있는 반면 다른 소설들은 유명 작가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5주에서 10주 정도 베스트셀러에 머물다가 뒷심 없이 자리에서 물러나기를 반복하는 현상을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올해 주목 받은 소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올해 출간되어 올 3분기까지 강세를 보인 소설로, 수 몽크 키드(Sue Monk Kidd)의 ‘머메이드 체어(The Mermaid Chair)’를 들 수 있다. 제시 셜리반이라는 한 중년 여인의 억눌린 꿈과 욕망이 불편한 어머니를 돌보는 가운데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난다는 영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은 9월 말까지 24주간 소설 부문 상위에 랭크됐다.



그리고 지난 10월 말까지 18주에 걸쳐 소설 부문 1위에서 15위권을 오르내리며 판매순위 상위권에 머물렀던 엘리자베스 코스토바(Elizabeth Kostova)의 ‘히스토리언(The Historian)’ 역시 올 한 해 동안 세계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소설로 분류된다. 이 소설 역시 팩션류의 역사소설로 현재의 소설 트렌드를 반영한 소설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이 분야에 속한 작품으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앞서 잠시 언급한 앤 라이스가 쓴 ‘구세주 그리스도(Christ the Lord)’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 소설이 미국은 물론 특히 그 밖의 여러 나라 출판사 및 독자들로부터 더욱 주목 받은 이유는 이 소설을 쓴 작가인 앤 라이스가 오랜 세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한 뱀파이어 소설에서 벗어나 새로운 분야로 방향을 틀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사렛 예수의 숨겨진 유년시절을 소설적 구성으로 새롭게 끌어올려 흥미롭게 조명한 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면서 그 속에서 치유자로서의 예수, 선지자로서의 예수를 신비로우면서도 미스터리한 장치를 통해 조명하고 있다.

11월에 출간된 이 소설은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12월 현재에 이르기까지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올라있다. 각국 출판 관계자들은 앤 라이스의 외도가 일단은 성공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 새로운 시도가 그의 작품세계의 영역 확장으로 지속되기 위해서는 이 소설이 아무래도 분수령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 주위의 일반적인 평이다.

한편 역사적이고 인문학적인 지식과 정보의 기반에 소설적 구성을 덧입힌 형식의 소설에 대한 반응은 내년에도 계속 꾸준히 이어질 전망이다. 이는 내년에 선보일 소설들이 현재 원고만 준비된 상황에서도 세계 각국의 수십여 개 출판사가 치열한 판권확보 경쟁을 벌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내년 가을 미국의 헨리 홀트 사가 출간할 예정인 제드 루벤펠드(Jed Rubenfeld)의 ‘네임 오브 액션(The Name of Action)’은 벌써부터 한국을 포함하여 11월 말 현재 22개국에 해외번역판권이 팔린 상황이다. 이 소설은 1909년 프로이트와 융이 실제로 미국을 처음 방문했던 역사적인 사건을 기반으로 전개된다. 뉴욕에서 발생한 연쇄살인사건을 두고 두 학자가 서로 다른 자신의 정신분석학 이론을 사건에 적용하여 풀어간다는 내용으로 일련의 살인사건을 바라보는 두 학자의 고도의 이론이 허구와 맞물려 전개된다는 것이 이 소설의 핵심 줄거리다.

그리고 또 하나의 소설은 레이먼드 커리(Raymond Khoury)의 ‘최후의 템플 기사단(The Last Templar)’이다.  이 소설은 지난 7월 영국에서 출간되어 좋은 반응을 보였으며 미국과 기타 수많은 나라의 출판인들이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이 소설의 해외 판권 역시 미국과 유럽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치열한 판권경쟁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11월 말 현재 33개국에 판권이 팔린 상태이고 미국에서는 내년 1월에 출간될 예정이다.

바티칸 공예품들이 전시되고 있는 한 박물관에 기사단 복장을 한 네 명의 사내가 난데없이 나타나 거침없이 경비요원의 목을 베는 한편, 또 다른 사람들에게 총을 쏘아대는 것은 물론이고, 그곳에 전시된 물품들을 약탈해가는 사건이 발생한다. 템플 기사단은 적잖은 부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로 어떤 이유에서 그것도 꽤나 낯선 방식으로 여러 사람을 살상하고 또 거기에다 값도 나가지도 않는 공예품들을 약탈해 갔을까? 이 사건을 고고학자인 테스와 FBI(미국 연방수사국) 요원인 숀 라일리가 그들의 비밀을 벗겨간다. 이것이 이 소설의 대략적인 줄거리다.

미 출판계, 기독교 관련서 강세

작년에 이어 올해도 소설 부문에서 역사추리물이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해외출판시장에서 강세를 보였다면 비소설 부문에서는 종교적인 메시지가 기반이 된 자기계발서와 인문학적인 요소가 가미된 경제·경영서가 두각을 드러냈다.

먼저 기독교 분야의 책으로 비소설 전체시장에서 ‘다빈치 코드’처럼 출간 이후 3년에 걸쳐 장기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는 책이 있다. 릭 워렌(Rick Warren)의 ‘목적이 이끄는 삶(The Purpose-Driven Life)’이 그것이다. 이 책은 11월 말 현재 무려 145주 동안 베스트셀러 15위권을 고수하고 있는 책으로 ‘가장 위대한 지도자는 타인을 섬기는 이들이다. 훌륭한 지도자는 사람을 위해 존재하지 또 다른 어떤 것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이 책 다음으로 올해 최장수 비소설 부문 베스트셀러는 미국의 신예 목사인 조엘 오스틴(Joel Osteen)의 책 ‘긍정의 힘(Your Best Life Now)’이다. 워너북스의 판권담당자인 레베카 올리버에 따르면 이 책은 지난해 10월 말에 출간된 이래 지난 11월 말까지 13개 나라에 해외판권이 팔렸으며 11월 말 현재 57주간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는 가운데 미국에서 팔린 부수만 360만부에 달한다. 오스틴 목사는 이 책을 통해서 크게 일곱 가지의 가르침을 전한다. 비전을 키우고, 건강한 자아상을 키우고, 생각과 말의 힘을 발견하고,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나고, 역경을 통해서 강점을 찾으며, 베푸는 삶을 살고, 끝으로 행복하기를 선택하라는 것이 그의 일곱 가지 가르침이다.

그렇다면 미국 출판계에서 기독교 분야의 도서가 일반 도서시장에서 크게 어필하고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그것은 각 책 속에 담긴 메시지가 일반 독자에게도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가운데 성경의 가르침과 일상의 상황이 호소력 있게 진행되고 있어 치열하고 숨가쁜 현대 독자에게 편안한 안식과 동기부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 비소설 분야에서 세계 독자들에게 꾸준한 주목을 받아오고 있는 책을 꼽으라면 누구라도 이 두 권의 책을 꼽을 것이다. 하나는 출간시점부터 11월 말 현재까지 줄곧 32주 연속 부동의 베스트셀러로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스티븐 레빗이 쓴 ‘괴짜경제학(Freakonomics)’이다. 또 하나는 말콤 글래드웰이 쓴 ‘블링크(Blink)’다. 블링크가 히트친 덕분에 그가 5년 전에 써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던 ‘다시 한번 동반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다.


미국, 영국, 캐나다, 한국 등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판매순위 정상에 오른 ‘괴짜경제학’은 2003년 포춘지가 선정한 ‘40세 미만의 혁신가 10’으로 꼽히기도 했던 젊은 천재 경제학자 스티븐 레빗의 명저(名著)다.
이 책은 일반 상식과 통념을 깨는 기발한 문답을 제공하고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레빗은 이 책을 통해 일상에 숨겨진 사실들을 기초로 구체적이고 치밀한 논증을 통해 우리가 간과했던 부분들을 명쾌하게 파헤치면서 그 속에서 새로운 진실을 끌어내고 있어 지금까지 우리의 사고를 지배해 오던 고정관념을 일거에 허물어버린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레빗의 사냥감은 이국적이고 신비한 장소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데이터 속에 들어 있다. 그의 천재성은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이는 숫자들 속에서 일련의 의미 있는 패턴을 찾아내고 그 의미를 파악하는 데 있다”라고 이 책을 평한 바 있다.

‘블링크’는 사전적인 정의로는 ‘무의식적으로 눈을 깜박이거나 반짝임’이란 뜻이다. 저자 글래드웰은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나 긴급한 상황에서 신속하게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첫 2초 동안 우리의 무의식에서 섬광처럼 일어나는 순간적인 판단을 뜻한다는 의미로 썼다. ‘블링크’는 11월 말 현재 41주 연속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머물고 있다. 글래드웰은 올해 ‘더 타임스’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하나로, 우리의 일상은 물론 비즈니스세계에서 우리의 순간적인 통찰에서 나오는 직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래서 순간의 선택이 긴 시간의 고민 끝에 나온 선택보다 더 나을 수 있다는 사례들을 이 책을 통해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이구용 출판칼럼니스트(josephlee@imprim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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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도 다양한 역사추리물들이 많이 쏟아질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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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의 시대를 꿈꾸는 출판인

김현미_동아일보 출판팀 차장
khmzip@donga.com

짐 꾸리기의 마지막 절차는 책을 고르는 일이다. 쌓아놓고 바라보기만 하던 책들을 이번 기회에 몽땅 읽을 듯한 기세로 서가를 훑어보지만, 트렁크의 빈 공간이 허용하는 책은 기껏해야 두세 권. 이제 미인대회 심사를 하듯 요모조모 따진다. 휴가지에서 읽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운 내용이어서 탈락, 하드커버는 무게 때문에 탈락, 책이 너무 커도 탈락.

역시 작고 가벼운(무게도, 내용도) 책이 제격이다. 짧은 여행일수록 심사기준은 더 엄격해진다. 이렇게 해서 지난여름 퍼트리샤 콘웰의 『사형수의 지문』 『카인의 아들』 『시체농장』이 차례로 나의 여행에 동반했다. ‘스카페타 시리즈’라고 불리는 콘웰의 소설들은 작고, 가볍고, 재밌어서 위의 기준을 다 통과한다. 깔개 하나 들고 한강변에 나갈 때도 부담 없이 콘웰의 소설에 손이 간다. 신간이 나오면 재빨리 챙겨두기 시작했다. 슬슬 중독의 조짐이 보인다.

그러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노블하우스’라는 낯선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2004년 2월 11일 출판등록. 올해로 2년째를 맞는 신생출판사다. 하지만 갖고 있는 목록이 만만치 않다. 법의학 스릴러 분야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퍼트리샤 콘웰 외에도 테크노 스릴러의 거장 톰 클랜시, 현재 일본 최고의 추리작가로 꼽히는(그러나 한국에는 알려지지 않은) 히가시노 게이고, 영화 <본 컬렉터>의 원작자로 알려진 서스펜스의 대가 제프리 디버. 추리소설 마니아들이라면 한껏 군침이 도는 이런 작가들을 한 지붕으로 끌어들인 출판사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허 사장은 인터뷰 제의에 펄쩍 뛰며 손사래를 쳤다. 1년 조금 넘은 출판사가 무슨 자랑거리가 있겠느냐, 목표는 원대하나 실현된 게 별로 없으니 올해를 넘기고 보자는 정중한 거절이었다.

노블하우스의 목록을 보면 다양성이나 종수 면에서 빈약하다는 말이 맞다. 하지만 허윤형 사장의 출판 경력을 알고 나면 꼭 만나고 싶어진다. 300만 부를 기록한 『연탄길』시리즈가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면 설명이 필요 없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잔뜩 호기심으로 무장하고 무작정 노블하우스를 방문했다.

묻혀있던 『연탄길』을 화려하게 부활시키다
김현미(이하 김)
노블하우스의 탄생을 설명하려면 사장님의 삼진기획 시절부터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먼저 올해로 출판 입문 몇 년째이신가요?

허윤형(이하 허) 9년이네요. 저는 시 전문 출판사에서 시작했어요. 제가 시에 대해 관심이 많았거든요. 아니 너무 좋아했고 한 때는 종교였죠. 저희 할아버지 두 분이 시인이셨고요.
그런데 막상 출판계에 들어와보니 아니다 싶은 관행들이 눈에 띄더군요. 그래서 다른 문학 출판사로 갔다가 전통적으로 문학이 강한 삼진기획으로 옮겼습니다. 거기서 제가 정말 만들고 싶었던 책을 발견한 거죠. 『연탄길』.

   『연탄길』은 여러 출판사에서 거절당한 원고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삼진기획에 출근했는데 당장 진행되고 있는 원고가 없어서 답답했습니다. 입수된 원고라도 있으면 검토나 하자 했는데 『연탄길』이 눈에 쏙 들어오는 거예요. 6개월 동안 출판사에서 잠자고 있던 원고라고 하더군요. 한 꼭지 한 꼭지 클리어파일에 끼워져 있어 참 희한하다 싶었죠. 원래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제목으로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으나 출판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작가가 인세도 제대로 못 챙겼다는 말을 들었죠.
다른 출판사에서 검토를 했었다는 말을 들었지만 개의치 않고 집으로 가져가 읽기 시작했습니다. 새벽 4시까지 꼼짝 않고 읽고 감동을 먹었죠. 살림이 넉넉지 않았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고 눈물도 나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다음날 저자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또 운이 좋았던 게, 원고를 읽으면서 삽화가 들어가면 좋겠다 싶어 저자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마침 자기가 직접 그려놓은 게 있다는 겁니다. 다른 출판사에서 이 원고를 검토해 주신 분이 그림을 넣으면 좋겠다고 조언을 해서 저자가 준비해 두었다는 말을 듣고 ‘이건 운명’이라고 생각했지요. 그 뒤 저자 이철환 선생과 원고를 다시 쓰다시피 해서 『연탄길』이 나온 겁니다.

   『연탄길』이 처음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것은 아니었죠? 밀리언셀러가 되기까지 어떤 계기가 있었을 텐데요.

   네, 초반에 책이 정말 조금씩밖에 안 움직였어요. 『연탄길』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초판이 나오고 1년쯤 지나서였어요. 2-3만 부 선에서 답답하게 팔릴 때, 나는 중요한 것은 ‘이 책을 꼭 팔아야겠다는 의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의 내용도 좋았지만 작가가 미워할 수 없는 분이었어요. 뭔가 한 가지라도 더 해주고 싶어지는….도저히 애정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어찌 보면 편집자를 괴롭히는 저자죠. 전 이철환 선생의 인간적인 면모에 푹 빠졌고 오로지 『연탄길』을 띄워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문화관광부 추천도서로 선정됐지만 판매가 확 오르지 않았어요. 출간 후 1년 쯤 되는 시점에서 책이 4만 부 선에서 끝나버릴 것 같아 이런 제안을 하기도 했죠. “선생님, 이번 연말에 리어카에 책 200권 정도 싣고 명동으로 나가서 나눠줍시다.” 『연탄길』에 리어카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그리고 직원들에게 이 책에 ‘올인’하자고 했죠. 대한민국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을 몽땅 뽑았더니 300개가 넘어요. 이렇게 많았나 하고 놀랐죠. 직원들과 함께 각 프로그램에 ‘연탄길 사연 보내기’를 했습니다. 저자가 7년 동안 주위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감동이 커서 방송국에 사연을 보내면 틀림없이 채택될 거라고 확신했죠. 그리고 각 학교 교감선생님들과 중학교 도서지도 교사 분들에게 책을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책을 받고 의아해 하는 분들이 많았지만, 곧 널리 알려지기를 원하는 저희 뜻을 이해하셨죠. 이런 노력이 보람이 있어서 KBS 에 소개되면서 매출이 다시 올라가기 시작하더니, MBC <느낌표>에 등장해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어요. 에도 여러 편이 애니메이션화 되고요. 여기서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이 있는데, 『연탄길』을 ‘느낌표’ 선정도서로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은데, 선정도서가 된 적은 없고, 저자가 ‘느낌표’의 ‘길거리 특강’에 출연해 하신 말씀이 감동적이어서 효과가 아주 좋았어요. 꺼져가던 불이 다시 확 타올랐죠.

   그 효과가 자연스럽게 『연탄길』 2권, 3권으로 이어졌겠네요.

   저는 ‘연탄길’ 시리즈를 만들면서 독자의 힘을 실감했어요. 『연탄길』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화잖아요. 대부분 저자가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제자들로부터 들었거나 직접 겪은 이야기인데,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을 실제로 만나니까 묘하더라고요. 그 친구들이 인터넷 카페도 만들고 한 달에 한 번씩 MT도 가고 하거든요. 모두 『연탄길』의 충성독자였죠. 한 친구는 지금까지 구입해서 주위에 선물한 『연탄길』이 280권이라고 했어요.

제가 “사재기야”라고 농담을 했지만, 정말 고마웠죠. 또 그 친구들은 중학교 시절 선생님(저자)이 기타 들고 와서 노래와 시를 들려주던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고 그때 선생님이 들려준 이야기를 다 모아두었다가 다음 책을 만들 때 참고하라고 제게 주기도 했어요. 열 명의 고객보다 한 명의 충성고객이 낫다는 말을 실감했어요.

   편집자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군요. 저자와 어떤 관계를 설정할 것인가, 또 책 한 권에 얼만큼의 에너지를 쏟을 것인가, 고민스러울 때가 있거든요.

   제가 출판일을 시작할 때는 기획과 편집을 분리하는 게 유행이었어요. 기획자들이 출판피디, 출판프로듀서라고 찍힌 명함을 가지고 다녔죠. 하지만 저는 기획이나 편집이 맞물려야지 분리시키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냥 에디터라는 말을 좋아하죠. 작가를 섭외하는 일부터 저작과정을 도와주고, 책을 프로듀싱하고 마케팅까지 다 같이 해야지 어느 단계까지만 기획자의 일이고, 다음부터는 편집자의 몫이라고 할 수가 없잖아요.

어쨌든 저는 책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스타일입니다. 그래서 책 한 권 만들면 3일 정도 앓아누워요. 『연탄길』 2권까지 만들고 말 그대로 뻗어버렸습니다. 책이 징글징글하더라구요.

그래서 회사에 양해를 얻고 거창의 한 절로 들어갔습니다. 책을 몇 권 챙겨가긴 했는데 글자를 보기도 싫었어요. 그런데 3일 지나니까 책이 읽고 싶어요. 가져간 책을 단숨에 읽어버리고 빈둥거리기가 싫어서 스님 책 빌려 읽고 옆 방 고시생들 책 빌려다 읽고. 아, 이게 활자중독이구나 싶더군요. 그 절에 서른 중반과 마흔 살 정도된 고시생이 있었는데 이분들과 어울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기획이 막 떠오르는 겁니다. 야, 이거 책 되겠다. 책 만들다 보면 만나는 사람이 다 저자로 보이잖아요. 책에 푹 빠져있던 시절이죠.

원 소스 멀티 유즈로 문학 출판 살리고파

   이제 노블하우스 창업으로 이야기를 옮겨가죠. 잘 나가던 기획자가 왜 갑자기 독립을 선언했나요?

   삼진기획 목록을 보면 소설 쪽이 탄탄해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도 제일 처음 냈고,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소설 목민심서』와 박완서의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도 있고 한수산 선생의 책도 꾸준히 냈어요. 전 출판사가 소설과 에세이로 특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발행인은 더 장르를 다양화하기를 원했죠. 다른 출판사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도 있었지만 출판시스템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 싶어서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이걸 설명하려면 출판비평모임(이하 출비) 이야기부터 해야 하는데….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에서 만든 출판계 모임이 ‘출비’였습니다. 출판계에 편집자 중심의 소모임이 적던 시절이라 꽤 생산적인 논의를 이끌어냈습니다. 그런데 이 모임에서도 제가 답답했던 게 출판의 엄숙주의였습니다. 인문·교양 아니면 책으로도 안 쳐주는 듯한 분위기. 하지만 이 모임을 통해 만난 선후배들에게 직간접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죠. 그분들이 책을 대하고 만드는 자세를 지켜보며 에디터로서 좀 더 성숙할 수 있었습니다.

어려울 때마다 그 시절을 생각하곤 합니다. 그 와중에 좀 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출판 마케팅을 시도해서 한국 출판의 관행을 바꿔 보고 싶었습니다. 지금 출판마케팅 분석이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기획해서 냈더니 이렇게 팔렸다’ 식의 후일담 수준의 이야기이지 제대로 예측해서 마케팅을 하는 것을 별로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저는 출판이 대기업 마케팅 전략을 배워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출판 창업만 해도 기획자로 경력을 쌓으면 기획아이템 5-10개쯤 챙겨서 있는 돈 다 털고 부모님 돈까지 끌어 모아 출판사를 차리는 식이잖아요. 그게 싫었어요. 언제까지 출판업은 이렇게 영세하게 할 거냐. 제대로 한 번 해보자 했죠. 그때 마침 투자제안을 받아서 독립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노블하우스’의 주력 분야가 장르문학이라는 것은 뜻밖이에요. 처음에는 발행인이 추리소설 마니아여서 취미생활을 하는가 보다 생각했죠.

   제가 독립해서 소설을 한다니까 선배들이 “문학은 죽었다” “왜 시장도 어려운데 하필 소설을 내려고 하느냐”며 말렸어요. ‘1쇄 작가’라는 말이 나올 만큼 소설 시장은 침체였거든요. 트렌드를 좇아서 경제·경영서를 내라고 충고하더군요. 하지만 전 소설을 고집했습니다. 내가 출판을 하는 이유는 출판밖에 모르기 때문이고,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소설·문학이니까 당연히 그걸 해야죠. 오래 전에 시인의 꿈은 접었지만요.

그리고 좀 따져보고 싶은 게 장르문학이라는 애매한 용어에요. 언제부터 우리가 그런 말을 쓰게 됐는지 정체불명이잖아요. 전 그 말이 ‘주홍글씨’같아요. 넌 비주류다 하고 딱지를 붙이는 것. 장르문학 대신 ‘크라임픽션’이라는 말을 썼으면 해요. 아직도 서점에 가면 ‘공포·추리’로 한데 묶어 놓는데 정말 답답합니다.

어쨌든 왜 책이 책으로만 끝나야 하느냐, ‘원 소스 멀티 유즈’라는 개념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책이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게임도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려면 소설을 해야 하죠. 그것도 대중적인 소설로. 그때 에이전시로부터 톰 클랜시를 소개받았습니다. 톰 클랜시야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작가인데, 예전에 고려원에서 책이 나오다가 끊어졌잖아요. 그 후 8년 동안 국내에 톰 클랜시 책이 한 권도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거래하던 출판사가 문을 닫은 뒤 한국 시장 자체를 불신하는 것 같았어요. 몇몇 출판사가 톰 클랜시와 계약하려다 실패하고 신생출판사인 저희에게 넘어온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클랜시 전작을 내겠다는 제안 때문이었습니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저희는 한 작가의 작품을 모두 출판한다는 ‘전작주의’를 표방하고 있거든요.

 

 

 

 

 소스 멀티 유즈라는 개념에서 클랜시는 대단히 매력적인 작가입니다. 그의 소설 중 4편이 이미 영화화됐고, 그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게임만 30종 정도가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30대 중반부터는 클랜시를 소설가로 기억하는 분들이 많은데, 20대는 게임제작자인 줄 아는 사람이 많아요. 국내에서 처음 번역한 클랜시의 소설 『레인보우식스』만 해도 오래 전에 게임으로 나와 공식 카피만 30만 장이 팔렸다고 합니다. 네이버에 톰 클랜시 카페가 두 곳이 있는데 ‘톰 클랜시 마니아’는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 모임으로 회원이 300여 명이고, ‘톰 클랜시 마니아’는 회원이 2000명인데 모두 클랜시 원작의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죠. 소설이든, 영화든, 게임이든 클랜시 골수팬들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지금까지 나온 클랜시 책이 100권 정도 되는데 2008년까지 다 낸다는 계획이지만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소설·문학이 모든 문화의 기초라고 생각합니다. 『태백산맥』이 MBC와 판권계약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김영하의 소설이 프랑스에서 출간된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전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벅차요. 반면, 오래 전 허영만 선생으로부터 600만원에 『아스팔트 사나이』 TV판권 계약을 했다는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형편없는 대우를 받아도 작가들은 자신의 소설이 영상화된다는 기쁨과 파급효과 때문에 계약을 합니다. 아직까지 돈이 적다고 계약을 안 하는 작가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상물들이 얼마나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내는지 충분히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옥탑방 고양이』의 참신한 소재, 『내 이름은 김삼순』의 톡톡 튀는 캐릭터, 『불멸의 이순신』의 충실한 사료는 모두 원작의 힘에서 나옵니다. 요즘 한국 영화와 TV 드라마가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만드는 비율이 어느 정도일까 궁금해집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문학과 TV, 영화가 따로 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미국에 수출될 때 영화의 원작이 있었다면 책도 많이 팔렸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본은 영화와 TV 드라마란 원작이 있어야 한다는 개념이 강합니다. 그래서 드라마나 영화를 런칭하기 전에 출판계가 먼저 법석을 떱니다. 김형경의 『외출』이 지극히 일본적인 경우지요. 과정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지만요. 예전에 하지원 주연의 <폰>이라는 영화가 일본에 수출될 때 개봉 전 한국에는 없는 소설을 만들어 출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작가가 썼다고 하더군요. 말이 길어졌지만, 이것이 제가 소설을 고집하는 이유이며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작가를 찾는 이유입니다.





 



한 작가의 작품을 한꺼번에

   톰 클랜시의 지명도야 다 아는 바지만, 퍼트리샤 콘웰이 한국 시장에서 다시 부활한 것이 놀랍습니다. 얼마 전 10만 부 돌파 기념 이벤트를 시작했더군요. ‘스카페타’시리즈로 알려진 몇몇 작품은 몇 년 전 시공사에서 출간됐던 것으로 리바이벌 한 것이죠?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터져준 게 ‘스카페타’ 시리즈입니다.
톰 클랜시와 콘웰이 모두 펭귄 푸트남 소속이어서 저희가 클랜시 책을 계약하면서 자연스럽게 콘웰과도 계약을 하게 된 거죠. 콘웰 작품은 예전에 장원 출판사에서 한 권이 나오고 나머지는 시공사에서 출판됐는데, 판매는 매우 부진했습니다. 당시 존 그리샴 열풍이 불어 출판사의 관심을 덜 받은 것도 부진했던 이유죠. 이런 외부적 요인을 걷고 보면 콘웰의 소설은 상당히 작품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콘웰이 1차 런칭이 실패한 이유를 분석했습니다. ‘스카페타’ 시리즈를 로맨스 소설 분위기로 가는 것은 곤란하고, 본격 문학의 분위기를 내는 서정적인 표지, 그리고 전작 완간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일관된 표지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 번 표지를 수정했는데 27번 바꿔 28번째 시안으로 확정됐습니다. 정말 디자이너에게 미안했죠.

원래 한 권인 책을 2권으로 나눈 것을 두고 상업적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책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였습니다. 종이도 되도록 가벼운 것(이라이트)를 쓰고 톰 클랜시 것에 비해 판형도 작죠. 그리고 가격은 8000원입니다. 소설 특성상 대여점 시장을 염두해 두지 않을 수 없었고요 . 저는 판형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패키지라고 하는데, 패키지라는 말에는 가격 정책과 타깃을 포함한 디자인을 뜻합니다.

처음에는 국내에 전혀 번역되지 않은 새로운 작품부터 출간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가 나중에 시리즈 처음부터 다시 완전히 새롭게 번역해서 내는 쪽으로 바꿨습니다. ‘스카페타’ 시리즈 런칭을 위해 여러 가지 고민을 많이 했죠. 현재 ‘스카페타’ 시리즈는 전 세계적으로 1억 부가 팔렸고 일본에서만 1천1백만 부가 팔렸다고 합니다. 또 영화 판권도 팔렸는데 『사형수의 지문』『카인의 아들』이 가장 유력하다고 합니다. 이런 모든 것이 가능하려면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한 소설을 찾아내는 안목이 필요해요. 재미있는 것은 저희가 한국에서는 이름도 모르는 신생출판사지만, 해외에 나가 이런 작가들 작품을 낸다고 하면 눈의 휘둥그레져요.

예를 들어 일본에서만 해도 톰 클랜시 작품 판권은 일본 신초사, 콘웰은 고단샤, 제프리 디버는 문예춘추사가 가지고 있거든요. 이처럼 일본의 메이저 출판사들이 하나씩 갖고 있는 판권을 한국에서는 저희가 모두 갖고 있으니 무슨 대단한 힘이 있는 줄 알죠. 노블하우스는 작품보다 작가를 먼저 봅니다. 그래서 한 작품을 내보고 반응이 좋으면 계속 계약하는 게 아니라,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한꺼번에 계약하는 시스템입니다. 물론 위험부담이 크지만 그러기 전에 철저한 시장조사와 신뢰관계가 선행돼야 한다고 봅니다. 그 전략이 지금까지는 주효한 것 같습니다.

   작가에 따라 담당 에디터가 따로 있더군요. 책 판권란에 ‘담당 에디터 코멘트’가 짧게 들어가 있어서 신선했습니다.


   작가 한 명이 선정될 때마다 담당 에디터가 정해집니다. 미국에서는 가장 잘 나가는 에디터가 400억 원이 넘는 연봉을 받아요. 우리나라 에디터 중에 연봉 1억 원 이상 받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시장규모가 다르긴 하지만 문학이 출판의 꽃이라면 그 꽃을 키우고 가꾸는 사람인 에디터도 그만한 대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 에디터들은 작가에게 영감을 주고 걸작이 나오도록 유도하기도 하고 작가들의 뒤편에 서서 묵묵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줍니다. 문학 에디터들에게는 다른 장르에서 찾아볼 수 없는 잠재력이 있지요. 아무리 문학이 죽었다 해도 1980년 이후 베스트셀러 목록은 대부분 소설입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납세 순위 1,2위가 연예인이나 정치인, 경제인들이 아니라 추리소설 작가들이에요. 톰 클랜시 같은 사람은 초판 부수만 200만 권이죠. 퍼트리샤 콘웰은 100만 부. 그런데 콘웰의 일본판을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 시리즈가 14년 동안 계속 출간되는데 번역자는 한 명뿐이었어요. 저는 에디터뿐만 아니라 전담 번역자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 국내 번역자들은 대부분 매절형태로 계약을 했는데, 노블하우스는 번역자가 원치 않을 경우를 제외하고 100퍼센트 인세계약입니다. 책이 많이 팔릴수록 번역자도 이익을 나눠 갖는 게 맞다고 봅니다. 그렇게 해야 확실히 번역에 책임감도 생깁니다. 또 앞으로 노블하우스 재팬과 노블하우스 타이완을 설립하려면 번역자들과 함께 가야 합니다. 국내물을 해외에 알리려면 그분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죠.

이야기꾼의 시대를 꿈꾸는 허윤형 사장과의 대화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노블하우스 재팬과 노블하우스 타이완 설립이 결코 꿈으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기대감이 무럭무럭 커졌다.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 드라마를 보며 눈시울을 적시는 이 휴머니스트가 일을 낼 것 같다.

기사게재 : <기획회의> 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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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o 2006-01-02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블하우스는 번역자가 원치 않을 경우를 제외하고 100퍼센트 인세계약입니다." <= 아니던데...

kobe3528 2006-01-06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갠적으로 노블하우스 책은 사지 않습니다 250페이지짜리 분권을 만드는 상술때문에
 

오마이뉴스 2005-12-24 10  조은미 기자

초등학교 사회과 탐구 6학년 2학기 교과서 123쪽 '노벨상에 도전한다'는 제목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붙어있다. "오늘날 우리 나라의 과학 기술은 매우 발달하여 세계적 수준에 이르는 지식과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세계의 과학 발달에 이바지하고 있는 인물에 대하여 조사해보자." 그리고 황우석 교수 사진이 있다. 황우석 교수 사진 아래에는 "복제 송아지를 탄생시킨 생명공학자 황우석 교수"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황우석 쇼크, 어린이들이 더 위험하다

황우석 교수 바람은 어린이책 시장에도 불어닥쳤다. 속칭 '황우석 위인전'이다. 그동안 어린이 책을 내는 출판사들은 앞다투어 황우석 교수 관련 책을 쏟아냈다. 최근에 발간된 책만 보면 이렇다.

<황우석 박사의 아름다운 생명의 길>(이레미디어) 12월
<황우석 박사와 줄기세포2(줄기세포를 지켜라)>(학원사) 11월
<소를 사랑한 아이, 황우석(큰 인물 큰 이야기1)>(청개구리 펴냄) 11월
<소년 황우석1(세상을 바꾸는 과학자)(지엠디북 펴냄, 매일경제 과학기술부 지음) 11월
<만화 황우석(소몰이 소년의 꿈과 도전) 상·하> (동아사이언스) 10월
<애들아! 황우석 선생님 성공을 배우자>(동서문화사) 10월
<황우석 박사와 줄기세포1(줄기세포가 뭐예요?)(학원사) 9월
<황우석의 꿈>(동서문화사 펴냄·이상화·이지현 외 지음) 8월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이웃을 위해 꺾이지 않는 황소고집 황우석- 나도 이렇게 되고 싶어요 18>(파란자전거) 7월

제목엔 없지만 내용에 황 교수가 등장하는 책은 더 많았다. 어린이 과학책에서 황 교수는 빠지지 않는 '황금주'였다.

<인간복제에 대한 호기심 73가지(복제소 영롱이와 복제양 돌리의) (황매) 8월
<교수님 교수님, 줄기세포란 무엇인가요?>(태서) 8월
<애들아, 세상에서 가장 궁금한 게 뭐니?(과학기술편)>(토토북)- '세계 최초 인간 배아복제에 성공한 황우석 서울대 교수'
<생각쟁이 2005.2>(웅진닷컴)


이 책들은 어떤 내용일까? 초등학생을 겨냥한 책들은 대개 만화와 사진을 실었다. 내용은 비슷했다. 책 한 권을 보자. <만화 황우석>(동아사이언스)의 한 장면이다.

황우석의 죄, 어른들의 죄

외국인들이 돈 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외국인이 철컥 돈이 가득 든 가방을 열어보이며 말했다. "얼마 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줄기 세포 연구를 계속 하시죠! 모든 걸 책임지겠습니다!" 그러자 황우석 교수가 말했다.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이 연구는 절대 사고 팔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줄기세포의 특허권자는 황우석이 아니라 대한민국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구절도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얼마나 많은 열강의 침탈을 겪었고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을 경험했습니까?! 항상 눌려 지내던 우리나라가 이번에 세계에 어깨 한번 쭉 펴고 살아보라고 이런 천운이 주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여타 책들도 비슷하다. 황우석 교수는 우직하다. (별명이 '찍소'란 것도 빠지지 않았다) 어려서 집이 가난해 고생했다. 그러나 역경을 딛고 큰 꿈을 이뤘다. 줄기세포는 이렇다. 난치병을 고치는데 크나큰 획을 그었다.

<애들아! 황우석 선생님 성공을 배우자>(동서문화사)에서 황우석 교수가 말했다.

"우리 연구는 2막짜리입니다. 내년 후반쯤이면 1막이 끝나고, 국민들의 아낌없는 중간 박수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1막이 끝나면 2막은 그리 길지 않을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은 이랬다.

"황 교수의 목소리는 단단하고 우렁찼습니다. 국민들 모두 그의 눈에서 그의 입에서 그의 손에서 희망이라는 두 글자를 읽었습니다." (176쪽)

책은 시급히 회수하지만... 아이들에게 뭐라고 할 것인가

 

 

 

 


현재 황우석 교수 논문 조작 파문을 타고 이 책들의 판매가 뚝 끊어졌다. 교보문고 어린이 책 담당자는 "책이 나왔던 초기엔 다른 책보다 더 잘 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찾는 사람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만화 황우석>을 펴낸 동아사이언스 출판사는 현재 <만화 황우석>에 대해 모든 서점에 반품을 요청한 상태다. 동아사이언스 출판사 김재필씨는 "논란도 있고 인물의 신빙성이나 신뢰도에 문제가 있어 모든 서점에 회수를 요청했다, 회사 이미지 때문이라도 더이상 판매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모든 서점들이 가판에서 내린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논문 조작 사건이 터지기 전에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장래의 희망직업을 적어내라고 했다. 그러자 황 교수와 같은 과학자가 되겠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황 교수를 다룬 책 한 권은 이렇게 썼다. "황 교수가 요즘 어린이들의 꿈을 바꿔놓고 있다." 실제 2005년도와 2004년도 수의대 지원률은 대폭 상승했다.

한 인터넷 서점에는 황우석 교수를 다룬 어린이 책 말미에 다음과 같은 리뷰가 붙어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인 우리애가 보았는데 어려운 용어가 종종 등장하지만 재미있게 읽고 황우석 교수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겠다고 하더라고요!"

이 글이 올라온 때는 논문 조작 사건이 터지기 전이었다.

이제 '황우석 위인전'을 읽은 어린이들에게 어른들은 무슨 말을 해야할까? 황우석 교수 논문 조작 파문이 터진 뒤에 황우석 교수를 다룬 책에 이런 덧글이 붙었다.

"후편이 하나 더 나와야겠네요. 세상을 속인 과학자 황우석."
.....................................................................................................................
황우석 이라는 제목으로 검색하면 12월 이후에 막 출간된 책들도 수두룩하다. 그런데 얼마나 버티다나 절판이 될지... 아쉬운 현실이다.  최근에는 과학과 윤리를 접목한 책들이 또 쏟아져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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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녀 2005-12-24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아들놈도 한표 있습니다. 광팬...
저 사람같은 과학자가 되고 싶어했고, 대한민국의 과학자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죠.
저 책들은 없지만, 빌려서든 서점에서든 많이 읽었고, 정기구독하는 어린이 과학동아 잡지에서도 수도 없이 다뤄서... 저보다 더 많이 알고 있더군요.
오늘 좀 길게 얘기했습니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는다, 처음 시작은 그렇게까지 큰 거짓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얘기였는데, 몹시 안타까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족들을 걱정하더군요. 혹시 아이가 왕따당하지는 않을까, 놀림당하지는 않을까 하면서요.

눈보라콘 2005-12-28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보기에는 언론에서 너무 크게 떠들었던 것 같습니다. 황우석이 영웅이 된 이유의 상당부분은 언론의 책임이죠... 그렇지 않았다면 황우석만 기다려온 분들의 충격이 덜했겟죠.

monstino 2006-11-20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우석 교수의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은 문제이죠.. 법적으로도 대한민국의 뛰어난 능력을 가진 검찰도 정확히 무었이 진실이고 무엇이 가시이다에 대한 어떠한 증거자료도 제시하고 있지 못하는 상황에서.. 언론과 관련된 분들이 이러한 댓글로 황우석 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책들만 골라다니며 비방하고 다니는 것 또한 바람직한 것은 아니죠.. 진실은 조용히 잊혀질수 있겠지만.. 없어질수는 없습니다.
전 아직도 제 아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우리나라에는 황우석이라는 위대한 과학자가 열심히 세상을 위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고...
 

문화일보 2005-12-23

(::키워드로 읽는 책 / 한기호 등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인터넷 검색업체 구글(google)의 파워는 그 검색엔진을 통해 실 시간으로 지구촌의 수많은 사람들의 욕망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데 있다.

모인 욕망들은 세상에 대해 분석과 전망을 가능하게 하며, 이를 잘 분류하고 그 허기를 채우고자 하는 과정 곳곳에서 경제적 가 치가 창출된다.

욕망들은 여러 테마로 나눠질테고 그것은 다른 말로 ‘키워드’ 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근래 우리 출판시장에서 화제가 된 책을 통해 우리나라 사람들의 욕망을 ‘키워드’로 나열해 준다.

하루가 다르게 덩치가 커져가는 인터넷 서점에서 독자들이 키워 드 검색을 통해 책을 구매하는 비율이 80%에 달한다는 얘기도 있 다. 독자들의 선택은 그들이 욕망하는 그 무엇이며, 출판인들로서 는 그것을 먼저 알고 따라잡느냐가 사활의 관건이다.

아래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소장 한기호)가 격주간으로 발행 하는 출판평론지 ‘기획회의’가 출판평론가와 출판편집자, 출판 기자 등 전문가들을 통해 키워드로 분류한 화제의 책들에 관해 연재했던 글을 모은 것이다. 그 중 30개의 키워드를 선정했다.

책을 통해 우리는 근래 특히 올해 출판계의 화제작이 무엇이었는 지, 사람들이 무엇에 목말라하는지를 들여다 볼 수 있다.

30개의 키워드를 찬찬히 살피면 전체를 관통하는 테마도 보일 듯 하다. 그것은 ‘불안’이 아닐까. 신자유주의와 테러로 상징되는 21세기의 세계사적 불안부터 이와 무관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불안들이 출판의 키워드 곳곳에 녹아 있다. 다양한 ‘심리학’ 서적에 기대고 ‘중년’과 ‘노년’을 걱정하면서 ‘10년 후’의 세상의 변화에 촉각을 세운다. 의지할 데 없는 마음들은 ‘팩션 ’(fact+fiction)으로 빠지거나 ‘이순신’같은 인간적인 영웅에 감동하고 ‘자기계발’ 또는 ‘요리’나 ‘여행’ 등 웰빙에 몰 두하게 한다.

존재 자체에 이미 불안이 스며 있고 그것이 어제 오늘의 테마는 아닐지 몰라도 하여간 대개 출판의 키워드 뒤에 불안이 숨어있는 것 같다. 그 점에서 사람들이 스스로 존재의 가능성에 희망을 거는, ‘자기계발서’와는 다른 차원의 ‘수행’이란 키워드가 빠진 게 아쉽다.

 

 


 



올해에 나온 키워드 몇개를 살펴보면, 먼저 ‘임파워먼트’(empo werment)에 눈길이 간다. 대표적인 책들로 이승복의 ‘기적은 당 신안에 있습니다’(황금나침반), 한비야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 라’(푸른숲), 박경철의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리더스북 ), 김영모의 ‘빵굽는 CEO’(김영사)를 꼽는다. 임파워먼트는 경영학에서 권한위임이란 의미로 사용되지만, 여기서는 ‘너 와 나, 우리’에게 힘을 주는 다소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의 자전 적 이야기라는 의미다. 개인적 한계나 자신에 머물지 않고 함께 하는 삶에서 성공하는 이들에게 독자들은 박수를 보내고 있다.

사람에서 ‘임파워먼트’라면 기업에서는 ‘블루오션’이다. 올 해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된 김위찬 등이 쓴 ‘블루오션 전략’( 교보문고)은 경영 분야에 새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점 이외에 출판계에도 경영전략서의 대중화라는 기록을 세웠다. 블루오션이 라는 단어는 이제 정치권 등 어디서나 인용되는 인기어가 됐다.

이 책의 성공은 경영전략이란 측면에서 신선하기도 했겠지만, 직장 인이나 기업인이나 ‘피튀기는 경쟁’에 진저리가 나 있다는 방 증이기도 하다.

‘요다형 책’이라는 키워드도 흥미롭다. 정보의 홍수 속에 사람 들은 선택을 못해 더 어지럽다. 요다(영화 ‘스타워즈’에 나오 는 제다이의 스승)형 책은 ‘정보 홍수 속의 지식 중계자’로서 의 책, ‘압축, 축약본’이라 얘기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비판적 시각도 있지만 지금 정보화 세계의 현실은 개인에게 정보를 흡 수하는 슈퍼파워를 요구하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은 출판인은 물론 책을 고르는 독자들에게 길잡이가 될 것 같다.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출판 키워드 30
1. 임파워먼트2. 심리학3. 여성4. 남성5. 중년6. 노년7. 장남8. 팩션9. 18세기10. 미시·생활사11. 고전12. 일본소설13. 리메이크 출판14. 영상과 책15. 요다형 책16. 블루오션17. 10년 후18. 땅테크19. 평전20. 이순신21. 코엘류22. 요리23. 여행24. 사진25. 육아26. 지도27. 자기계발서28. 공부29.한자30. 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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