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2006-03-30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긍정의 힘’ ‘마음 탓이다’ 등 자기수양과 더불어 살기 일깨워
베스트셀러를 살펴보면 그 해를 특징짓는 키워드가 있게 마련이다. 2004년에는 ‘아침형 인간’ ‘팩션’ 같은 키워드가, 2005년에는 ‘일류’ ‘심리학’ ‘리메이크 출판’ ‘블루오션’ 등이 한 해 동안의 출판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키워드였다. 출판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대부분의 키워드는 객관적 현상과 맞물리지만 감성적 키워드도 존재한다. 객관적 키워드와는 다른 독자의 무의식 혹은 심리적 키워드로 이해할 수 있다.
감성적 키워드의 계보는 작지만 따뜻한 이야기, 불교 에세이, 자기계발서가 이어오고 있다. 1997년 큰 인기를 얻었던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이레)와 같은 책이 어두운 시대 분위기로 지친 독자에게 따뜻함을 전달해 공감을 얻었다면 2001년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동문선)는 속도가 경쟁력인 디지털 시대에 ‘느림’이라는 화두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005년의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위즈덤하우스)는 따뜻한 이야기 모음집이지만 ‘감동 실천’을 통해 책이 지닌 상투성과 교훈성을 넘어섰다.
최근에는 종교적 가르침을 담았지만 궁극적으로는 마음 다스리는 법을 전하는 두 권의 책이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법정 스님이 출가 50년을 기념하여 출간한 잠언집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조화로운삶)와 현재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목사로 인정받고 있는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두란노)이다. 한 사람은 불가의 수행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입장이지만 막상 책을 읽어보면 두 사람이 종교를 떠나 대중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놀랍게 일치하고 있어 더욱 흥미롭다.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를 엮은 류시화 시인은 서문에서 유대교 하시디즘(경건주의)의 우화를 꺼내며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적절한 비유로 전달한다. 우화에 따르면 죽은 사람의 영혼은 천국의 문 앞에 있는 슬픔의 나무로 가게 된다. 막 천국에 도착한 사람은 나무에 자신의 삶에서 겪은 슬픈 사연을 걸어 놓고 나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다. 하나하나 읽다가 마지막에 이르면 천사는 나무에 걸려 있는 이야기 중 어떤 것을 선택해서 다음 생을 살고 싶은가를 묻는다.
영혼이 가장 덜 슬퍼 보이는 삶을 선택하면 다음 생을 그렇게 살게 해주겠노라는 약속을 한다. 그러나 우화는 어떤 영혼이든 결국에는 자신이 살았던 삶을 선택하게 된다고 전한다. 자신이 살았던 삶이 가장 덜 슬프고 덜 고통스러웠다는 이야기인데, 법정 스님이 책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 역시 다른 삶을 탐내거나 소망하지 않고 이 순간을 감사할 때 자신의 삶이 날마다 새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멈추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것은 지나갈 뿐이다. 내가 겪고 있다면 그만큼 고통스러운 일이 없지만 지내고 보면 나름의 이유와 의미가 있을 뿐이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고 작은 것에 감동하며 과거나 미래로 한눈을 팔지 말고 현재의 삶을 열심히 살 때만이 모든 존재가 행복해질 수 있다.
조엘 오스틴 역시 ‘긍정의 힘’에서 과거야 어쨌든 오늘은 새로운 날임을 잊지 말라고 한다. 무조건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나고 삶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받기만 하는 인생이 아니라 남에게 베푸는 인생으로 삶을 바꿀 수 있다. 조엘 오스틴이 이야기하는 인생의 기적이란 베푸는 삶이다. 자신에게서 눈을 떼고 주위 사람에게 시선을 돌리면, 불가사의하게도 자신의 문제는 더 이상 걱정거리로 남지 않으며 남에게 베푸는 모든 선이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법정 스님과 조엘 오스틴의 책은 같은 목소리로 세속적 성공이란 미래 완료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과, 무엇을 이루고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아는 일 그리고 성공보다는 나눔과 베풂을 통해서만이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세상은 소비를 통해 행복을 살 수 있다고, 경쟁을 통해 성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지만 어느 새 우리 곁에는 자기수양과 나눔이라는 감성적 키워드가 다가와 있는 것이다. 한비야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푸른숲) 역시 혼자 잘사는 법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법과 나눔을 강조한 책이다. 책은 오지여행가에서 월드비전의 긴급구호팀장으로 변신한 한비야 씨가 겪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의미 있고 가슴 뛰는 일을 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감동하는가 하면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난민현장에서 신나고 즐겁게 일하는 그의 모습에서 나눔과 베풂이라는 명제를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는 부지런히 일하고 역경을 딛고 성공하는 것을 지상과제로 삼고 살아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삶은 채워지지 않는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직업이 되기 힘든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 한 개인이 자신의 성공과 안위 그리고 생존이 아닌 다른 목표를 갖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을 찾아서 읽은 독자의 마음 역시 경쟁에서 나눔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외에도 홀로 깨우쳤지만 더불어 나누는 삶을 지향하는 지누 스님의 ‘마음 탓이다’(시공사), 인생의 교사 크리슈나무르티가 전하는 삶에 관한 이야기인 ‘생활의 기술’(황금나침반), 매 순간 행복하고 매 순간 후회 없이 살라는 정목 스님의 ‘마음 밖으로 걸어가라’(랜덤하우스중앙) 등 마음 다스리기를 화두로 삼은 책이 여럿 출간됐다. 이 책들은 이구동성으로 자기만족에 갇히지 말고 자기수양을 통해 나눔과 베풂으로 삶을 풍요롭게 가꿀 것을 권한다. 친절은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고 나눔과 베풂은 결국 자신을 돕는 일이 된다는 것이다.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