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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용섭 <orange@ilgan.co.kr>  일간스포츠

  일본 경제학자, 리더십 관련 책 선물
  한국서도 출판사·신문사 연일 인터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세계 4강을 이룩한 김인식 한화 감독(그림)의 인기는 여전하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30일 마산 롯데전에 앞서 모 경제신문에서 김 감독의 리더십을 경영과 관련시켜 와이드 인터뷰를 실시했다. 김 감독은 인터뷰를 마치고 "일본에서 웬 사람이 리더십 관련 책을 보내왔다"며 웃었다.

# 인터뷰에 감명받았대, 허허.

김 감독은 "며칠 전에 일본에서 소포가 왔는데 무슨 경영 리더십을 담은 책과 편지가 들어있었다"고 소개했다. 보낸 이는 에가와 토시오(71). 자세히 보지 않았지만 경제연구소 소장쯤 되는 사람이 자신이 쓴 리더십 책을 보낸 것 같다고 했다.(에가와 토시오는 경제학자로 1998년 에가와 국제연구소를 설립했고 그가 쓴 <미래를 경영하는 리더십> 등 이 국내에 소개돼 있다) 더불어 야구 관련 책도 3권 보내왔다. 김 감독은 "그런데 책을 보낸 이유가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지고난 뒤 내 인터뷰 내용을 듣고 감명받아서 선물을 보냈다"고 편지 내용을 설명했다. WBC 기간 내내 김 감독은 뛰어난 성적을 더욱 빛내는 인터뷰 발언을 했고 준결승 후에는 외신 기자들로부터 기립 박수를 받기도 했다. 참고로 책은 운영팀으로 보내져 번역 중이다.

# 전화 한 통화는 해줘야지.

이야기는 자연스레 국내에서 김 감독의 리더십을 쓴 책으로 이어졌다. 김 감독은 "내용 중 절반만 맞다"고 웃었다. 책이 자신을 너무 추켜세운 것 같아 부담스러운 눈치. 한편 김 감독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많이 팔려도 감독 본인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다. 김 감독은 "나는 (책에 대해) 아무런 권리도 없는 건가"라고 묻더니 "그래도 출판사에서 전화 한 통화쯤은 해서 고맙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농반 진반 섭섭함을 토로했다.

# 신비주의를 파헤친대.

한편 또 다른 출판사에서 김 감독의 리더십과 관련해 책을 준비하고 있다. 김 감독은 "내가 무슨 리더십이 있냐고 했더니 신비주의 파헤친다며 계속 연락이 오고 있다"고 말했다. 쇄도하는 인터뷰에 일일이 응대하느라 피곤하지만 그래도 싫지만은 않은 표정이었다. 출판사에서 파헤칠 감독의 신비주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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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2006-03-28

황우석 사태의 교훈을 다룬 책 <황우석의 나라>가 언론계와 과학계에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저자 이성주(전 <동아일보> 의학담당 기자)씨는 28일 <오마이뉴스>에 보내온 기고문을 통해 책의 집필 경위와 최근 논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오마이뉴스 편집자 주>

책은 출간되는 순간 독자의 몫이라는 출판계의 금언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저자의 집필 의도와 360도 가까운 방향으로 오독(誤讀)이 진행될 때 저자가 침묵하고 있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 필자의 졸저 <황우석의 나라>(바다출판사)가 언론계와 과학계에 논란을 던지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출판 무렵부터 딸들에게 "낯선 사람을 따라가면 안된다"고 주의를 줄 만큼 이 책 출간의 여파에 대해 걱정했지만, 일부 영역에서는 졸저에서 "제발 이러지는 말자"고 주장한 방향으로 논의가 전개되고 있어 집필 의도를 밝혀야만 할 듯하다.

나는 2005년 여름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연수를 마치고 한국에 올 때 미국에서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황 교수 신드롬에 대해 어떻게든 대응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귀국 후 인사가 나기 전까지 틈만 나면 관련 전문가를 만나며 이에 대해 준비했지만 신문사 사정으로 내 전공 분야와 무관한 곳으로 발령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에도 황 교수 사건에 대해 관심을 뗄 수가 없었다. 이는 기본적으로 황 교수 신드롬이 아무런 반대없이 진행되면 수많은 환자가 고통 속에서 숨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이후 다행히 올곧은 언론인과 과학자들 덕분에 황 교수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고 나서는 한 사람의 기록자로서 이 사태를 정리하고픈 욕심이 나를 가만 두지 않았다.

무엇을 반성할 것인가

의학 분야를 맡고 얼마 동안은 특종이 가장 큰 보람이었지만, 이 분야에 대해 어렴풋이 뜨이고 난 뒤에 내가 쓴 기사가 독자들에게 실제로 도움을 주었거나 학교에서 교재로 쓰일 때를 알게 되는 순간이 가장 큰 기쁨이었다. 이런 생각이 잘못된 정보와 기록이 그득한 황우석 사건을 어떤 식으로든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이 책의 집필로 이어졌다고도 할 수 있겠다.

나는 황우석 사태가 대한민국의 언론, 과학, 정치 및 사회의 그림자가 투영된 사건이라는 전제를 깔고 이 사태를 통해 무엇을 배우고 반성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책을 집필했다.

2005년 11월 필자와 출판사는 황 교수에 대한 책을 내기로 처음 합의했고, 책의 기획 단계에서 비난, 고발보다는 '이번 사태가 한국 사회에 요구하고 있는 성찰'에 주안점을 두기로 뜻을 모았다. 여러 분야의 취재원으로부터 황 교수의 학창시절이나 언론, 정치계와 관련한 제보를 숱하게 받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성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무시했다.

필자는 이번 사건이 황 교수를 비롯한 과학계·언론계·정치계 중 어느 한 곳의 문제가 아니고, 그들의 문제도 아니며, 바로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봤다. 여기에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포함돼 있고 물론 나도 포함돼 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 나를 몇 년 동안 가위눌리게 하고 부끄럽게 한, 기자 시절 내가 저지른 여러 잘못을 고백했다.

민주주의가 없던 신드롬, 언론과 정치도 닮은꼴

필자는 이번 사건이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의 부재에서 왔다는 다소 생뚱맞은 진단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할 수 있는 유한한 존재이며 이 때문에 반증과 토론이라는 절차를 통해 오류를 수정하는 것이 민주주의 시스템이지만 이번 사태에서는 정부, 언론, 과학계 모두에서 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과학은 사람이 언제나 잘못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가설의 제기→반증 또는 확증→오류의 수정'이라는 절차에 따라 진실에 접근하는 학문이다. 하지만 황우석 교수는 애국심, 원천기술, 국가기밀 유출 등을 도구로 자신의 연구영역을 비(非)과학으로 만들어버렸고 그의 추종자들은 아직도 이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이 책에서 과학은 어떤 곳을 정복하고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리는 그런 학문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성과에서부터 여러 가지를 배우는 과정이라는 점에서도 황 교수의 업적이 허점투성이라는 점을 입증하려고 했다.

황 교수 사태를 진단할 때 언론 역시 빼놓을 수 없다. 100여 년 전 프랑스의 '드레퓌스'사건과 마찬가지로 황 교수 사태에서도 언론이 줄기세포처럼 똬리를 틀고 있었다. 나는 기존의 선악·피아의 개념으로 언론을 보는 대신, 신문사의 편집국 간부와 기자 대부분이 좋은 보도를 위해 사생활을 반납하는데 왜 보도는 독자의 수준에 못 미치고 사회의 조화와 발전에 훼방꾼이 되곤 하는가에서 논의를 출발했다.

나는 언론도 유한한 인간이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이므로 과학과 마찬가지로 합리적인 반증과 자유로운 토론이 보장돼야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기사를 제안해서 채택돼 지면이나 화면으로 나가는 언론의 과정이 과학의 반증 시스템과 닮았지만 황 교수 사태는 이런 언론의 민주주의의 원리에 입각한 제작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발생했다는 내 주장에 많은 동료들이 공감했다.

필자는 한국 언론이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결국 언론 조직부터 대화와 토론이 부족한 비민주주의 시스템이기 때문에 엉터리 기사를 양산했다고, 그러므로 시스템 개선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과학과 언론뿐 아니라 정부에도 책임이 크다고 봤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황 교수 사태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알려지지 않은 여러 사례를 들어 비판했다. 나는 정부의 의사소통구조가 비판을 거부하는 한, 정부가 관변과학을 포기하지 않고 '먹고살기 위한 과학'에서 '개인의 행복을 위한 과학'으로 눈을 돌리지 않는 한 다음 정부에서도 똑같은 잘못이 벌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진행형인 황우석 사태, 통과의례로 승화시켜야

그러나 책 출간 이후 논의는 엉뚱하게도 책에 인용된 특정 언론과 개별 기자들의 에피소드에 대한 것으로 넘어갔으며 필자가 책에서 "제발 이러지는 말자"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됐다. 작은 황우석 사태가 필자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는 것 같았고 필자는 토론과 성찰의 소재가 아니라 전쟁의 무기를 제공한 셈이 된 것이다.

이런 모든 사태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을 따지자면 깜냥을 넘는 거창한 주제에 대해 책을 쓴 저자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원하는 부분을 자기 식으로만 읽는 오독의 주체에게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책에서 누누이 밝혔고 언론사와의 인터뷰 때마다 강조했듯, 이 책은 특정집단을 공격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 그런 목적이었다면 다른 식으로 정색을 하고 거기에 맞는 재료로 썼을 것이다.

나는 우리가 황 교수 사태의 피아에서 벗어나서, 마치 프랑스가 드레퓌스 사건을 뼈아프게 반성하며 이성적 사회로 승화했듯, 이번 사태에서도 사건의 실마리 하나를 놓치지 말고 반성과 토론을 통해 보다 성숙한 사회를 위한 통과의례로 삼을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황우석 사건이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듯, 이 사건에 대한 토론과 반성도 진행형이라고 믿고 싶다. 나의 졸저가 언론학·과학철학·사회학·역사학·정신의학·심리학·정치학·경제학 등에서 다양한 후속 연구를 촉발하기를 빈다. 나의 책 역시 진행형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졸저에서 다음 질문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며 끝을 맺었다.

"현대사회에서 자아가 영웅 없이도 충족감을 갖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널리즘을 회복시키기 위해 소비자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생명 경시 풍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국민의 집단히스테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과학 발전과 경제 발전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과학은 사람의 행복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하는가. 우리는 황우석 사건을 국사 또는 과학 교과서에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다수의 목소리 속에서 소수의 의견을 존중할 방법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교육을 통해 개인의 인격과 이성을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떤 지도자를 골라야 할까. 애국이 우선인가 개인의 행복이 우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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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2006-03-28

▨ 이슈의 배경

지난 달 발간된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이 역사 인식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해방 전후사에 대한 해석을 놓고 진보와 보수 진영의 격돌도 시작됐다. 80년대 진보적 역사해석을 대표했던 ‘해방 전후사의 인식’ 필진인 조동걸 국민대 명예교수가 최근 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 포럼에 기조강연자로 나서는가 하면, 뉴라이트 성향의 자유주의연대는 다음 달까지 전국 주요 도시를 돌며 ‘재인식’ 저자들의 순회강연을 열 계획이라고 한다.

1979년 첫 발간돼 1989년까지 10년 동안 총 6권으로 마감된 ‘해방 전후사의 인식’은 군사독재정권이 반공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현대사 연구를 억누르던 시절에 빛을 보았다. 대학가에서 이른바 ‘해전사’로 불리던 이 책은 반공 이데올로기를 넘어 광복에서부터 미군정, 단독정부 수립, 한국전쟁 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고취시켰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재인식’은 ‘인식’에 대한 안티테제로 정립됐다. ‘인식’이 기성관념을 극복하기 위해 일방에 경도되고 친일/반일, 애국/매국, 수탈/핍박이라는 이분법에 매몰된 측면 등을 지적하고 있으나 이는 책의 한계라기보다는 당시 한국사회의 한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시대적 한계를 넘어 새로운 ‘인식’을 쟁취하려는 모습은 결과 여부를 떠나 신선해 보인다.

▨ 해방 전후사를 재인식하는 데 남는 문제점들

‘재인식’은 식민지 역사를 천편일률적인 착취 피착취 관계로 해석하는 데 반대하고 있다. 몇 개의 주제는 ‘인식’에서 나타난 시대 정신을 배경으로 학술적 다양성을 모색하기도 한다. 그러나 ‘재인식’은 근본적으로 ‘인식’에서 보여준 역사인식을 통째로 바꾸겠다는 의도 때문에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최종 판단은 성급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시대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치열함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우리 시대가 갈구하는 것은 단순히 역사의 ‘재인식’이 아니다.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비교해보면 상당히 잘 되어온 나라”라는 식의 ‘재인식’은, 비록 균형감은 없었지만 시대를 비판적으로 ‘인식’하려했던 선배들보다 오히려 못하다. 차라리 소박한 차원에서 과거를 당대의 입장에 맞춰 “따뜻하게 이해하고 싶다”는 것이 ‘재인식’의 진정한 목표였다면 훨씬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옛 ‘인식’을 ‘따뜻하게 이해’해주는 대신 현재의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비판과 직결시키고 있는 점을 미루어볼 때 그 진정성을 신뢰하기 힘들다.

우리 시대의 역사학이 추구해야 할 것은 과거의 진실에 대한 독점권 주장이 아니라 오히려 진실에 대한 접근을 민주화하는 것이다. 이는 역사가가 학문적 연구의 치밀함을 포기해도 좋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다만 ‘나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안이하게 과거를 대하던 형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이제 역사는 인터넷을 위시한 각종의 매체들 속에서 활발히 생산·유통·소비되고 있다. 역사가는 이 전반적 현상에 대해 깊이 성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재인식’이 사회적 파장을 도외시하고 단순한 객관성을 추구했다면 이는 직무유기이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언론을 활용하여 특정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려 했다면 이는 떳떳하지 못하다. 역사논쟁은 근본적으로 이데올로기 논쟁일 수밖에 없다. 이데올로기 논쟁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시의성도 없는 (냉전)이데올로기를 걸고 논쟁하는 것이 나쁘며 더구나 그것을 위장하는 것은 더 나쁘다.

사실 ‘재인식’에 수록된 28편의 글 중에는 인상적인 것들이 여럿 있기에, 이들이 내포하는 다양한 분석적 층위를 하나의 논리로 ‘재단’하는 것은 궁색해만 보인다. 예를 들어 일제 식민지시대 조선인들의 삶을 분석함에 있어서 단순히 협력과 저항이라는 이분법이 아니라 제국에 대한 혐오와 선망이 공존했음을 복합적으로 밝혀내려는 시도는 매우 고무적이다. 또한 총독부가 조선어학회의 활동을 지원했던 사실에서 드러나듯이, 일제 식민통치가 단수한 수탈이 아니라 보다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제국 건설의 아젠다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밝힌 것도, 비록 아주 새롭지는 않지만 흥미롭다.

그러나 ‘재인식’이라는 강박적 목표 아래서 논의는 조야한 ‘수탈론’을 비판하고 그 대안으로 이후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으로 이어지는 ‘근대화론’을 제기하는 차원으로 협소화되고 만다. 왜 그렇게 급한 것일까? 차라리 결론을 유보하는 편이 더 낳았을 지도 모른다. 그저 양적 경제수치에 의존한 성장론이나 국가의 일체화된 ‘파시즘적’ 지배 형태가 지닌 연성을 규명하는 것만으로 모더니티라는 다면적 현상을 논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모더니티(modernity)를 거론하기 위해서는 제국의 권력과 자본, 욕망이 식민지에 유입되고 충돌하며 식민지적 굴절을 거쳐 일정한 형태를 이루고, 또한 그 안에서 탈구되는 다층적 메커니즘을 시공(時空)의 맥락에서 밝힐 수 있어야 한다.

수탈이냐 근대화냐 논의는 이제 너무 진부하다. 이미 ‘재인식’안에도 이러한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담겨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제하 법치와 권력」을 다루면서 필자 이철우는 “수탈-저항 이분법과 진화론적 근대화 담론(을) 모두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본질주의적 거대서사”를 경고한다.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연구의 잣대에 따라 구별하는 것 또한 우리가 극복해야 할 선악 이분법적 역사 서술에 지나지 않는다.”

▨ 해방 전후사의 올바른 인식법

다양한 접근의 시도는 응당 필요하지만 구조적 악과 의도적 범죄의 차이를 간과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위험성을 극복하는 길은 역사의 윤리적 가치를 인식론적 가치와 동등하게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이는 “민족에 앞서 인권과 자유가 먼저”라는 편집자의 말이 진정한 설득력을 얻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재인식’이 궁극적으로 비판하고자 하는 ‘과거 청산’이라는 사안이 새롭게 조망될 수 있다. 현재 정부의 과거 청산 정책에 대한 평가와는 별도로, 역사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역사가의 몫이며 정치판에서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라는 고정된 사고방식은 재고되어야 한다. 역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은 역사의 인식론적·정치적·사회문화적·윤리적 가치들의 다양성 및 이들의 장애 없이 상호 소통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들과 결합되지 못할 때 공허할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 명백한 인권 유린에 대한 논의가 인식의 다양성이라는 미명 하에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이 책이 소모적인 정쟁을 넘어서 보다 치열하고 반성적인 역사 논쟁의 기폭제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용어설명>

▲ 뉴라이트

‘신우익’이라는 의미로 1980년대 영국과 미국의 정책 사상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자유주의와 보수주의가 결합된 형태의 이데올로기를 추구한다. 인간의 기본 적인 평등과 복지보다는 시장 경제와 전통을 중시한다. 또 인간의 인권이나 평등보다는 사회적 규칙이나 도덕적 윤리를 강조하며, 그 어떤 인권보다 개인의 재산권을 중시해 분배보다는 성장을 우선시 한다.

▲반민특위

일제 강점기 36년간 자행된 친일파의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기 위해 1948년 제헌국회에 설치되었던 반민족행위자특별조사위원회를 줄여 부르는 말.

▲모더니티

‘근대성’이나 ‘현대성’이라는 말로 번역될 수 있는 것으로, 주로 역사적인 개념이거나 철학적 개념이다. 모더니티의 특징을 보면 공통된 언어와 전통에 기초를 둔 단일 민족국가의 성립을 탄생시켰으며, 인간의 문제에서 이성의 권위를 가장 우위에 두었다. 또 대자연과 인간의 본성을 규명하는 데 무엇보다도 자연과학의 권위에 의존했다. 이밖에 자유 시장 경제체제를 도입하고 그것에 수반되는 임금 노동과 도시화, 생산 수단의 개인 소유를 적극 장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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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06.03.24]  Why? 

   

 

 


2000원으로 밥상을 차리는 것은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2003년 11월에 출간돼 60만부 이상 팔린 '2000원으로 밥상 차리기'는 귀가 솔깃할 만큼 '2000원'이 매력적인 액수임을 말해준다. 게다가 후속편인  차리기'는 20만부, '500원으로 밑반찬 차리기'는 20만부, '1000원으로 국, 찌개 만들기'는 18만부가 판매되는 등 시리즈 전체가 120만부 가까이 팔리는 반응을 얻었다. 가히 폭발적이다.

책이 성공한 가장 큰 이유는 요리책의 정석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보통 요리책은 비주얼 비중이 크다 보니 푸드 스타일리스트나 전문 사진작가를 동원해 그럴듯한 완성 요리를 강조한다. 그러나 '2000원으로 밥상 차리기'는 '백수'인 저자가 요리를 했고 디지털 카메라로 직접 촬영한 사진을 실었다. 요리책으로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이렇게 한 이유는 '서민의, 서민에 의한, 서민을 위한 요리책'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보통 요리책이 하듯 값비싼 그릇, 본 적도 없는 재료와 조리기구를 사용하지 않고 한 끼 식사가 가능한 평범한 요리를 강조했다. 요리책치고는 너무 '꾀죄죄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늘어난 독신자들에게는 특히 호소력이 컸다. 3000원짜리 자장면 한 그릇 시켜먹느니 직접 요리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따라할 수 있도록 요리 과정을 보여주고, 엄마가 하듯 감(感)으로 계량하는 법을 일러주는 등 부담은 줄이되 따라하기는 쉽게 만든 것이 장수의 비결이다.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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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03-26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를 위한 요리책인데 정작 저는 안샀으니....
-조크였어요-
 

중앙일보 2006-02-17

 
시오노 나나미 역사쓰기 점검

“삼국지 견줄 역사로망” vs
“프로 흉내내는 아마추어”

고정 팬 10만 명을 끌고 다니는 인문서, 1995년에 첫 선을 보인 뒤 통권 200만 권 이상이 팔린 책, 무엇보다 국내 오피니언 리더가 즐겨 읽는 책…. 출판계의 빅 타이틀인 시오노 나나미의'로마인 이야기'시리즈 중 제14권 '그리스도의 승리'(김석희 옮김, 한길사)가 출간됐다. 올해 말로 예정된 마지막 권인 제15권 출간을 코 앞에 둔 시점에서 '행복한 책읽기'는 시오노 식 역사쓰기의 공과를 검증한다. 과연 우리를 역사 로망의 세계로 끌어주는 서술인가, 아니면 힘(권력)과 제국주의적 복선을 깔고 있는 아마추어의 소설일까. 지병인 당뇨에도 불구하고 '로마인 이야기' 대미(大尾)장식을 위해 로마에서 고군분투하는 시오노의 근황도 함께 소개한다.


“삼국지 견줄 역사로망” - 이광주 인제대 명예교수.서양지성사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시리즈 제14권 '그리스도의 승리'가 나왔다. 1995년에 첫 권이 번역 출간된 지 10여 년, 고대 로마를 무대로 하는 역사 이야기를, 그것도 서양인이 아닌 일본작가에 의해 쓰인 이 책이 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것일까. 우선 지적하고 싶은 점은 그의 '로마인 이야기'는 역사상 세계최대의 로마 제국을 무대로 드라마틱하게 전개된 역사 로망이라는 사실이다. 방대한 사료 해석에 작가적 상상력을 담은 문장, 그리고 주제에 알맞은 필치는 독자들을 놔주지 않는다.

책상에 앉아야 할 시간을 번번이 뺏는 이 시리즈의 재미를 나는 20세 전후에 밤을 새며 읽은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견줘본다. 역사소설의 공덕은 우리를 일상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로망의 세계로 비상하게 한다. '로마인 이야기'가 롱셀러로서 행세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보다도 역사를 읽는 재미다. "인물을 묘사하며 시대를 묘사하는 것이 내가 지향하는 목표다." 시오노의 말대로 '로마인 이야기'는 인물 중심이다.

이 점에서도 유비.관우.장비 그리고 제갈공명을 중심으로 다룬 '삼국지연의'와 맥을 함께 한다. '로마인 이야기'의 대주역은 단연 율리우스 카이사르이다. 저자에게 카이사르는 연인이자 이상적 남성이다. 나는 안다. '로마인 이야기'에는 힘(권력) 지향적이니 영웅주의니 하는 비판이 따른다. 그러나 시오노의 인물들은 국가나 한 종파가 간계를 부려 급조한 영웅들과는 딴판이다. 관우.장비가 한족(漢族) 민중의 영웅이듯, 제갈공명은 사대부 계층의 이상적 인간이다. 걸출한 정치가.장군이자 키케로와 함께 라틴어 고전의 모범으로 일컬어지는 교양인 카이사르는 전통적으로 유럽 민중의 영웅이 아니었던가.

그러한 그를 중심에 설정한 것은 자연스럽다. 생각해보면 역사가 시대의 거울이듯 좋은 역사소설이란 메시지를 전하기 마련이다. '로마인 이야기'로부터 정치가나 기업가는 리더십, 혹은 경영 전략을 배운다고 한다.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뒤떨어지고 체력에서는 켈트인이나 게르만인보다,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도 뒤떨어진 로마인이 어떻게 팍스 로마나를 누릴 수 있었을까.

저자는 이미 유명해진 이 물음을 제기하면서 그 해답을 로마인의 현실주의와 관용성에서 찾는다. 그리고 그러한 로마적 예지를 그리스도교의 도그마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 그들의 다신교(多神敎)와 관련지어 밝혀준다. "(그리스도교적)일신교와 다신교의 차이는… 남의 신을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에 있다. 남의 신을 인정하는 것은 남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가톨릭 본산 이탈리아에 40년이 넘도록 거주하면서도 비(非)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 자유인으로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것이다.

'로마인 이야기'는 종파나 국가, 이데올로기로부터도 자유로운 한 정신이 역사소설 형식을 빌어 써내려간 로마사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탈리아 문화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공로로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국가훈장을 받았다. 그 소감을 이렇게 토로했다. "나는 훈장보다도 파워를, 독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생각을 갖도록 하는 파워를 원합니다." 이 말이 세계시민 시오노가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프로 흉내내는 아마추어”

- 김경헌 고려대 교수·로마사


전문 역사가는 대체로 대중 취향의 역사책을 쓰는 데 소질이 없다. 식자우환이라고 할까, 전문성은 대중을 위해 쉽고 간명하게 글을 쓰는 데 오히려 거리낌과 죄책감의 원천이 된다. 역설이다. 성공한 역사책은 대개 아마추어리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대중의 즐거움을 위해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요리하려면, 아는 것 못지않게 모르는 것도 많아야 한다. '로마인 이야기'시리즈의 성공도 그렇게 시작된다. 작가는 1권에서 아마추어리즘을 천명한다.












"확실한 사료의 뒷받침이 없으면 다룰 수 없는 학자나 연구자와는 달리 우리는 아마추어다. 아마추어는 자유롭게 추측하고 상상하는 것도 허용된다." 그렇게 추측.상상으로 쓴 방대한 책의 구석구석에서, 내가 전문가랍시고 작은 허물들을 들춰내는 것은 어색한 일이다. 내가 아는 일본의 로마사학자들 십중팔구가 그 책을 화제로 삼기를 피했던 것처럼 말이다. 도쿄대의 모토무라 료지 교수만은 예외였다. 그는 시오노가 "천하 국가인 로마를 훌륭하게 그려낸, 역사가에 버금가는 작가"라며 경외감을 표했다.

모토무라와 달리 나는 시오노의 아마추어리즘에 보이는 한 가지 기묘한 특징에 주의를 환기시키고 싶다. '로마인 이야기'는 차츰 각 권 말미에 수록되는 참고문헌의 분량이 늘어난다. 과연 그처럼 방대한 참고문헌은 필요했으며, 또 작가는 실제로 그것을 모두 활용했을까? 나는 그것을 상당부분 작가의 수집목록이거나 장식품쯤으로 생각한다. 장식품이란 물론 전문가와 같은 권위의 효과를 겨냥한다. 역사소설이 아니라 통사를 써서 대중의 호응을 얻자, 처음 천명과 달리 자신이 그저 아마추어에 불과하지 않음을 과시한다.

그래도 참고문헌 가운데 사료는 활용도가 높은 편이었고 또 그것이 장점이었지만, 뒤로 갈수록 사료의 향기가 옅어진다. 노령의 작가가 역시 장기전에 힘이 달리는 징후인가? 가령 최근 나온 14권 '그리스도의 승리'에서는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의 문집을 충실하게 읽은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좀더 리얼하게 읽히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어쨌거나 '로마인 이야기'는 이제 15권으로 완결된다. 이 대하 역사서에 대해 나는 줄곧 근본적인 의문 하나를 갖고 있다. 거기에 통일된 역사인식이 있는가?

처음에는 있는 듯 보였다. 5권까지를 꿰뚫는 로마사의 주요 양상은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공화국과 엘리트에 대한 평민층의 복종과 충성, 지중해 제국으로의 눈부신 성장이다. 그리고 그를 통해 작가는 독자에게 현실주의.영웅주의.성공제일주의.제국주의 같은 가치가 우월하다는 교훈을 준다. 그 책이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호응을 받은 것도 그런 메시지 때문이었다. 그러나 로마의 팽창, 그것은 누구와 무엇을 위한 것인가? 과연 로마 인민은 조직과 엘리트를 따르고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었는가? 카이사르의 사후 로마사가 전개되는 모습은 그런 물음을 갖게 한다.

그것은 황제 권력을 위협하는 궁정과 군대의 음모, 그리고 제국방위에 시달리던 대부분의 무능한 황제들의 이야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6~15권). 아쉽게도 작가에게 그런 문제의식이 없으며, 그래서 5권까지와 달리 6권 이하 '로마인 이야기'에는 일관된 역사인식이 거의 없다. 작가는 다만 스스로 설정한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계속 썼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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