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나는 이론가다. 나만을 향하는 이론일지는 모르겠지만, 영감이 떠오르면 어떨 때는 시가, 어떨 때는 이론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나중을 위한 일종의 메모이다.

 

빛은 지속적이지는 않지만, 순간 강렬히 빛난다.

빛에는 저장이나 전승, 패거리 등의 집합, 인위적 구성이 불가능하다.

역사와 철학도 나를 향하는 하나의 빛이다.

나는 챙겨둔 지식의 척도로 사물을 보지 않고,

오로지 끊임없이 일신하는 한줄기 빛과 같은 직관으로

현실의 어떤 문제를 향해 빛을 보낸다.

그 때의 철학과 지식은 그 문제와 나를 위해서만 존재한다.

그리고 스팩트럼을 뽐내며

여러 사람을 향하여 명멸한다.

누군가 그 빛을 기억하고자 한다면

스스로 강렬한 빛이 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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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넷'이라는 곳에 회의적인 생각이 드는 때도 없었다. '넷'이 없었을 때는 멱살잡고 싸우더라도 논리가 있었고, 경청이 있었고, 마무리가 있었다. 그렇지만 '넷'의 세계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뱉는 것도 아니고, 싸는 것이다'라는 누군가의 말과 같이 구역질이 난다.

친구들과의 대화 중 나는 이 사태를 '신 전체주의'로 규정했다. 독일이 2차세계대전을 시작하기 전 독일 사회는 국가사회주의가 횡행했고, 실업률이 비상식적으로 떨어져 빈부격차가 심했다. 그들에게는 '상식'보다는 '전설' , '인생 역전', '영웅' 등의 환상적인 기대가 마치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아래 네티즌의 말과 같이 이 문제는 이미 언론의 윤리, 과학의 윤리, 과학은 커녕 상식의 수준도 떠나 있는 것 같다.
짧은 시간 내에는 이렇게 취약한 여론과 언론 환경, 절망적인 관계 등의 분위기가 개선될 것 같지 않다.
아무래도 '넷'이 우리를 병들게 하는 것 같다.
'우리들의 넷 윤리'는 내게는 세상 어떠한 윤리보다 더 실현 불가능하고 기대 불가능한 일일까. 오늘은 잠보다 절망이 앞선다.


문제는 황박사는 이미 추종자에게 종교 입니다. 예를 들면 성경에서 예수가 행한 기적을 말이 안된다며 증명해보라고 한다면 신도들과는 절대 대화가 통하지 않을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 믿음에 관한 문제 즉 종교에 관한 문제이기때문이죠.. 마찬가지로 이글 역시 참 좋은 글이지만.. 이글을 읽고도 황빠들은 아무 감흥이 없습니다. 왜냐면.. "믿으면 되는것을 이런 골치 아픈 고민을 할 이유가 없는것이죠" 즉 황우석은 종교란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과학으로 접근하고자 하기에 충돌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 과학 갤러리의 한 네티즌

우리가 저명인사를 통해서 재확인하고 싶어하는 심리가 있는 것만큼, 커다란 성과나 인물을 통해 이미지의 편승을 시도하는 심리도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월드컵 4강국이라는 고착된 이미지가 한국 축구에 장애적 요소와 압박으로 작용했듯이, 세계 최초 줄기세포 복제, 개 복제라는 성과는 분명 자랑할 만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 자체가 우리들의 이름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영원히 4강을 할 수도 없고, 세계 최초의 역사를 계속 쓸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황우석이라는 하나의 종교를 가지게 되었고, 황우석 씨도 그것을 적절히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의 발언은 다분히 정치적이고 정략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숫눈) 위를 건너듯이'나 '내가 여자였어도 난자를 제공했을 것이다' 등의 발언은 격정적인 한국인의 심리를 제대로 이용한 고도의 전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황우석 씨와 그 과학적 발견 등 이 주제와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2002년 '정몽준을 대통령으로!' 하고 열광하던 그때와 지금 대상만 바뀐 황우석 열풍, 그리고 3-4년 후. 어떤 분위기일지는 예측할 수 없겠지만, 지금과는 굉장히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알리딘에 남긴 나의 댓글

과학하는 것이 벼슬이 아닙니다. 그리고 Ph.D 이것도 벼슬이 아닙니다.
과학자 소위 전문가들은 머나 먼 옛날 부터 일종의 고급 사회 계층을 형성해 왔습니다. 물론.. 현 사회도 그렇지만 ..

남들 보다 이 분야에 대해 조금 더 많이 배워 조금 더 많이 알 뿐인 것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자연과학 특히 순수 과학을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인문과학과 같이 가야 하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중요성도..
Ph. D 라는 것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죠.

한국내의 인문 과학의 몰락과 현 사회의 패러다임의 부재는 같은 맥락을 취하고 있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정신적인 과학을 바탕으로 해야 순수 과학이 나오고 실용 과학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니까요. 과학자라 불리는 사람들은 과학자 나름데로의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어야 겠죠.

그것이 현 사회의 패러다임와 일치하지않을 수도 있고 공통된 부분을 가질 수도 있지만, 이 이데올로기는 권위가 아닙니다.

과학자 소위 전문가라 해서 누구의 위에 있는 것이 아닌 것이죠. "감히 누가 나한테." 라는 권위는 매우 조심해야 하고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과학자의 자존심이 권위를 세우는 것은 절대 아니고 이 권위 자체가 과학자의 이데올로기가 될 수 없습니다.

물론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각자의 유전적인 영향, 환경, 민족성 등등에 영향을 받아 각자의 고유한 가치관을 바탕으로 하여 형성되겠죠. 이러한 각자 개인나름의 독특한 이데올로기는 모두 진리를 추구하는 조그마한 점에 수렴됩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 이 사실들이 진실이 아니고 또한 진실이라고 해서 모두 사실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실수하는 것 중에 하나가 사실과 진실의 혼돈입니다.


그냥 이번 사태를 바라보면서 Ph.D의 Ph는 역시 소중하다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껴봅니다.
- Bric의 한 네티즌

좋은 전망과 자신감을 갖되 균형감각도 함께 견지해야 한다는 말이다. 윤리와 학술적 검증과 이성과 합리성을 충족시켜가면서도 충분히 국익을 구현하는 연구를 할 수 있다. 너무 서두르지 말고 국민적 사랑과 신화 속에 당연히 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방기되지 않았는지 성찰해봐야 하는 것이다. 환상적 이익을 보면서 오히려 견리사의(見利思義)의 정신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 경향 언바세바의 네티즌 칼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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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5-12-08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정보의 접근성을 용이하게 해 준 반면에 수 많은 지식, 생각들을 노이즈처럼 여기게 만드는 것 같아요. 가령 검색을 하면 내가 찾는 정보만 찾고, 나머지는 버리듯이 점점 '대화'가 힘들어진다 라는 느낌을 받고 있어요.. 문제는 유사의견만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부류들이 덩어리가 되면서 타인의 의견을 압도하고 관철시키려는 폭력성을 드러낸다는 점이죠. 가령 방송국이나 특정사이트를 '방법'하는 형태로... 이게 또 무지 가벼워서 유행처럼 퍼지고 놀이로 정착되는 경향도 있는 것 같고... 백색테러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흐..

승주나무 2005-12-08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생각이 박혀 있는 네티즌이라면 언제나 '짜증나는 퍼즐'을 하듯, 수많은 말의 형상 중에서 '말'을 찾아야 하는 일이 생깁니다.
문맥을 인식해서.. 모든 댓글에 '반말'을 금지시키고, '존댓말' 시스템을 정착시키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봅니다.
그러면
'참 개아들이시군요.'
ㅡㅡ; 똑같나요?
 

 한글 맞춤법의 특징 중 유달리 중요시되는 것은 하나의 형태에 이질적인 의미를 가진 낱말을 무척 싫어한다는 점입니다. ‘부치다’라는 단어처럼 하나의 단어에 여러 가지 뜻이 달려 있을 수도 있지만, 그와 발음이 비슷한 ‘붙이다[부치다]’가 ‘부치다’와 혼용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글맞춤법 제6장(그밖의 것) 중에서도 마지막 손님인 57항에 그에 관한 방침을 명시해 놓았습니다. 언중들이 이 용어들을 혼용하는 이유는 1. 발음이 비슷하고, 2. 두루뭉수리로 써버리거나 3. 사동/피동형태를 모르거나, 의미를 분별하지 못할 때 등의 이유가 있습니다. 맞춤법에 명시된 것이나 일상적으로 쓰는 단어 중 빈번한 것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놀랠 정도로 → 놀랄 정도로

☞ 놀래다 → 놀라다의 사동형(놀라게 하다)



마음으로 바래다 → 마음으로 바라다

☞ 바래다 → 색이 바래다



세 살박이 → 세 살배기

☞ 박이다 → 살이 박이다(굳은살이 생기다)

※ 살이 배기다(백이다) → 살이 박이다



조리다 / 졸이다

조리다

☞ 어육이나 채소 따위를 양념하여 간이 충분히 스며들도록 국물이 적게 바짝 끓이다. (생선을 조리다, 생선조림)


졸이다( 졸게 만들다(사동형) / 초조해하다)

☞ ‘졸다’의 사동형

※ 졸다 : 찌개, 한약 따위의 물이 증발하여 분량이 적어지다. / 겁먹어 기를 펴지 못하다(‘쫄다’는 구어체)



부딪히다 / 부딪치다

무딪히다

☞ ‘부딪다’의 피동형 (~에, ~와 등 다른 사물이나 현상 등에 당하다는 의미)


부딪치다

☞ ‘부딪다’를 강조하여 이르는 말 (내가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뚫고 가거나 마주치다 등 나의 행위가 능동적으로 문장에 드러나는 경우)



가름 / 갈음

가름

☞ ‘가르다’의 명사형(분별이나 구분을 뜻함)

예 : 이 일에 대해서는 가름이 잘되지 않는다

※ 판가름

갈음

☞ ‘갈다’의 명사형(대신하다 또는 바꾸다의 뜻)

예 : 저를 도와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로 축사를 갈음합니다.



든/던의 차이


'-든'은 선택적 상황에 대한 표현에 활용된다. 다만 반드시 둘 이상의 대상이 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 : 내가 무엇을 하든 무슨 상관이야!

예 : 네가 그것을 하든 말든. (하던 말던 X)

 

이에 비해 '-던'은 과거의 상황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선택적 상황은 올 수 없습니다.

예 : 공부를 하던 교실이다. (하든 X)


이 외에도 시대와 세대에 따라 문화와 지역에 따라 변천하여 구분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죽음 / 주검, 놀음 / 노름 등이 그 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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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1-29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져갑니다

승주나무 2006-01-29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니까, 두 번 가져가셨더군요. 좀 더 정진해서 연재 횟수를 늘리도록 하겠습니다.^^
 

[건강]연말 술자리 이것만은 지켜라


2005년 을유년도 한달이 채 안 남았다. 이맘 때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한 잔 술로 지난 한 해 동안 이루지 못했던 계획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고 안 좋았던 일들을 털어내려 한다. 그러나 번번이 한 잔으로 시작했던 술은 한 병이 되고 두 병이 돼 연말을 술로 허덕이며 보내기 일쑤다. 물론 적당한 음주는 스트레스를 씻어주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독이 된다.

무엇보다도 간이 가장 큰 타격을 입는다. 간은 각종 영양분의 대사는 물론 뇌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고 독성물질들을 해독시키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그 해독능력을 넘어설 만큼 과음을 하게 되면 알코올 분해 과정에서 생긴 아세트알데히드라는 독성에 의해 상처를 받게 된다. 특히 장기간 과음을 하면 혈압이 높아지고 심장과 혈관 질환 등이 발생할 수 있고 남성호르몬 감퇴로 성욕이 줄어들고 발기부전을 유발할 수도 있다.

#몸 축나지 않게 술 마시기

몸무게가 60㎏인 성인의 경우 간에 무리를 주지 않는 알코올 양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하루 80g 정도이다. 이는 소주 2홉들이 1병, 맥주 2,000 포도주 600㎖ 기준 1병, 양주 750㎖ 기준 1/4병에 해당한다. 술을 마시는 횟수는 1주일에 2회를 넘지 않는 것이 좋다. 섭취한 알코올을 해독하고 간이 제 기능을 회복하는데 적어도 2~3일이 걸리기 때문이다.

술자리는 대개 속이 빈 상태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공복에 술을 마시면 알코올 흡수속도가 빨라지고 혈중 알코올 농도도 급격히 상승한다. 뿐만 아니라 직접 위 점막을 자극하므로 급·만성 위염이나 위출혈을 유발할 수도 있다. 따라서 가벼운 식사나 담백한 안주를 먹으면서 술을 마시는 것이 위를 덜 상하게 하는 방법일 수 있다.

술은 되도록 천천히 마시는 것이 좋은데, 소주 한 병을 30분 동안 마시는 것이 소주 두 병을 2시간 동안 마시는 것보다 더 해롭다. 술 마시는 속도를 늦추면 늦출수록 뇌세포에 전달되는 알코올 양이 적어지므로 간이 알코올 성분을 소화시킬 수 있는 충분한 여유를 부릴 수 있다.

술은 섞어 마시면 좋지 않다. 술은 각 종류마다 알코올 농도와 흡수율, 대사 및 배설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섞어 마실 경우 술끼리 상호 반응을 일으켜 더 취하게 만든다. 또 사이다나 콜라 같은 탄산음료수와 섞어 마시는 것도 삼가야 한다. 술과 탄산음료수를 섞어 마시면 술의 쓴맛이 없어지고 알코올 도수가 낮아져 마시기는 쉽지만 이는 위 속의 염산과 작용, 탄산수소가 발생하면서 위 점막을 자극해 위산 분비를 촉진시켜 결국 탄산수 자극으로 위산 과다를 발생시킨다.

#술과 함께 먹는 음식, 내장과 간에 그래도 쌓여

술에 의해 얻어지는 에너지는 축적되지 않으므로 우리 몸의 대사과정에 필요한 모든 에너지를 술에서 얻어지는 에너지로 쓰게 된다. 따라서 함께 먹게 되는 음식은 대부분 지방 형태로 전환되어 주로 내장과 간, 혈액 내에 축적됨으로써 복부비만과 지방간, 고중성지방혈증과 같은 고지혈증을 유발하게 된다.

을지대학병원 가정의학과 최희정 교수는 “술과 함께 먹는 음식이나 안주는 대부분 칼로리가 높으며 늦은 시간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먹고 마시게 되므로 위장질환이나 간질환이 생기기 쉽고 복부비만의 원인이 된다”며 “주 3~4회 음주를 하다보면 운동을 하지 못하게 되고 충분한 휴식이나 수면을 취할 수 없으므로 생활 리듬이 깨지면서 만성피로를 유발하게 된다”고 조언한다.

#당뇨병, 고혈압, 관절염 환자 특히 조심

만성질환이 있는 환자들은 되도록 술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겠으나, 피치 못할 경우 보다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약물치료를 하지 않는 당뇨환자의 경우 과음과 과식은 혈당 상승으로 이어지며, 혈당강하제를 복용하는 당뇨환자의 경우에는 간에서 글리코겐을 분해하거나 포도당을 생성하는 과정이 저하되므로 저혈당이 발생하기 쉽다.

고혈압이 있는 환자는 다음날 혈압이 상승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으며, 약물치료로 혈압 조절이 잘 되던 환자도 지속적으로 음주를 하는 경우 약물의 용량을 올리거나 다른 약을 추가해야 할 정도로 혈압이 상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관절염 환자의 경우는 소주 한 병 이상을 마실 경우 65%가 관절에 통증과 함께 부종이 생기고 28%는 아파서 걷기조차 힘들게 된다. 아세트알데히드가 관절로 가는 피의 흐름을 방해하고 그로 인해서 관절염이 더욱 심하게 된다. 특히 장기간 과음을 하게 되면 뼈를 만드는 세포가 파괴되고 칼슘 흡수가 저하되어 관절뿐 아니라 골다공증의 위험도 증가하게 된다.

#숙취 계속되면 지방간, 간경화로 이어져

많은 사람들이 과음한 다음날까지 구토를 하고, 머리가 무겁고 식욕이 떨어지는 것을 한번쯤은 경험한다. 이는 알코올이 대사되는 중에 생긴 산화물인 아세트알데히드라는 독성 물질이 혈액 내에 축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숙취 해소에 가장 좋은 방법은 보리차나 생수를 마셔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과 섭씨 38~39도 정도의 온수욕을 하거나 땀이 날 정도의 운동을 통해 알코올 대사산물을 빨리 몸밖으로 배출시키는 것이다.

따뜻한 물에서 목욕을 하면 혈액 순환이 좋아지므로 해독 작용을 하는 간의 기능이 활발해진다. 그리고 그 이후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어 숙면을 취할 수만 있다면 더욱 좋다. 간장은 잠을 자는 동안에 가장 활발하게 술 찌꺼기를 처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음 후에 사우나를 찾아서 섭씨 40도 이상의 뜨거운 물에 목욕을 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으며 오히려 해로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술을 많이 마시게 되면 탈수 현상이 생기게 될 가능성이 있는데 특히 사우나를 하거나 너무 뜨거운 물에 목욕을 하게 되면 알코올 배출이 조금 빠를 수는 있겠지만 과도하게 땀을 흘림으로써 탈수 상태가 더 심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출처 : 경향신문〈이준규 의학전문기자·보건학박사 jk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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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김용민 화백의 휴가

김용민 화백이 '또' 휴가를 떠났다.

경향신문을 보면서 내 신문보는 습관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스포츠면부터 보기 시작하다가,

혹시나 해서 1면부터 보는 거였는데,

이제는 만평부터 보게 된다.

그것으로도 성이 안차 전날 저녁에 몰래 다음날의 만평을 훔쳐보기까지 한다.

다른 신문도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인터넷 신문은 다음날 기사를 미리보기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런데 '다음날 만평'이 실리지 않은 날은 1. 토요일 저녁, 2. (앗! 갑자기 까먹었다), 3. 김용민 화백의 휴가이다.

특히 내가 얼마 전에 있었던 김 화백의 휴가일을 기억하는 것은 경향 만평을 그만큼 찾는다는 말도 된다. 군에서는 이런 경우를 '땡보'라고 하는데, 군 생활 내내 그런 소리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병 인사를 (겉으로만) 좌지우지하는 '병 인사 관리병'이었기 때문에..
아무튼 김 화백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괜한 걱정이 들기도 한다. 경향 관계자에게 몰래 물어볼까? 혹시 알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귀띔이라도 좀...

그런 의미로 최근 만평 중 기억나는 혹은 기억할 만한 김 화백의 만평을 하나 덧붙인다.



미국의 명언

워싱턴에서 전해오는 정동식 특파원의 칼럼을 즐겨 본다. 항상 똑같은 사진이라 아쉽지만, 근엄한 표정이 묻어난다. 주제도 다양하고 '글빨'도 차분하고 진중해서 좋다. 어제자 기사 말미에 미국의 유력 잡지 "TIME"이 공화당의 보수화 전략과 부시 35%, 공화당 77%의 지지율을 보여주며 "비가 올 때 비를 막어주는 것은 지붕인의 카리스마가 아니라 지붕"이라고 결론지었다고 했는데, 그 말이 참 명언인 것 같다. 그것을 한나라당에 적용하면 "한나라당이 별다른 쇄신 없이 죽쑤고 있어도 지지율이 올라가는 것은 한때 국시(國是)로까지 신성시되었던 반공의 은택이자, 극우 세력이 사회 모처에서 협력(?)하고 활약(?)하여 만든 핵우산" 때문이다.

미국의 명언 하면 생각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2001년에 911이 터지고 나서 4년 만인 2005년에 911 최종보고서가 제출된 것으로 기억하는 데, 보고서를 브리핑하던 총 책임 장성이 자료를 덮으며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미국이 911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미국의 국력이 약해서도 아니고, 정보력이 취약해서도 아니다. 바로 상상력(想像力)의 부재다."

이를 보고 나도 상상력의 의미를 환기하는 기회로 삼았다. 상상력이란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판타지'가 아니다. 상상력에 관해서는 과학자들이 전문가인데, 과학자에게는 2개의 상상력이 있다고 한다. 인문학적 상상력 외에 과학적 상상력이 하나 더 있는 것이다. 상상력은 확인할 수 없는 것을, 확인할 필요가 없게 만드는 힘이다. '논리'는 사실 상상력의 도구일 뿐이다.

명언까지는 아니지만, 이번에 MBC 사건을 접하고 참 안타까웠다. 이 방송사가 뉴스데스크를 통해 사과방송을 한 것만도 올해 일곱 번째라고 한다. 그야말로 '사과방송 데스크'라는 오명을 쓸 판이다. 미스터 엠비(엠비 씨)가 오기를 갖고 분발하고 자진하고 쇄신하고 정신을 번쩍 차리라는 의미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명언(明言)
을 하고자 한다. 엠비 氏는 명심( 銘心)하여 이를 극복하고 더욱 분발해주기 바란다. (그런 의미로 아주 새빨갛고 선명하게...)

정당한 의문(을) 부당한 방법(으로)

프랑스와 일본의 역사 왜곡

이 뉴스를 접하면 아마 나같이 잘 모르는 사람은 깜짝 놀랄지도 모르며, 잘 아는 사람들은 그저 그런 생각이 들 것 같다. 프랑스는 '2005년 2월 23일 법' 가운데 역사 왜곡을 주장하는 한 조문을 다수결로 재확인했다고 한다. 그것은 곧 과거 식문 국가에서 프랑스의 '긍정적 역할'을 교과서에서 인정하자는 것이다. 사실 지금 유럽의 발전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아메리카의 피와 살점으로 이루어졌으며, '100원을 버는 사람이 있고 그 100배를 고스란히 갚아야 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처럼 오늘날 제3세계의 냉전과 갈등, 내전, 독재 등 분열과 고통의 정국은 제국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만들어놓은 것이다. '철없는 애 도토리묵 해집어놓듯이' 철없는 제국주의의 애들이 인류를 초월한 자연과 문화와 역사와 신과 철학에 모조리 제국주의의 빨간색을 칠해버린 것이다.
프랑스는 북아프리카 식민지(알제리 등) 국가에서 토지를 개간하고, 방역을 하며, 근대화 교육을 시켰다고 주장해 왔고, 이번 기회에 교과서에 정식(?)으로 올릴 심산인가보다.

우려할 만한 일은 내가 프랑스를 미워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프랑스의 우경화 추세는 차치해놓고서라도, 프랑스는 1차 세계대전 승전국으로 독일에게 방대한 배당금을 챙겨 독일 경제를 피폐하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독일은 그 가시밭길을 극복하며 점점 힘을 키웠고, 프랑스가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까지 자라나자 프랑스를 정복해버렸다. 이로서 프랑스는 세계의 웃음거리가 된 부끄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프랑스를 어떻게 봐야 할까? 혼란스럽다. 일본과 같은 수준으로 봐야 할 것인가? 프랑스 학생들이 힘겹게 치른다는 바칼로레아는 한낱 프랑스식 과시에 불과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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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나무 2005-12-08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우연히 김용민 화백과 통화를 했습니다. 또 휴가간 이유는 개인적인 일이기도 하고, 회사적인 일이기도 하답니다. 우려했던 '별일'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