씀씀이의 절약

 

『목민심서』는 고위 공직자가 청백한 공직생활을 할 수 있는 요령을 제대로 가르쳐주는 책입니다. 씀씀이를 절약한다는 한자어는 ‘절용(節用)’입니다. 절용의 중요함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아봅시다. “목민관 노릇을 잘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자애로워야 하고, 자애롭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청렴해야하고, 청렴하고 싶은 사람은 반드시 검약해야 한다. 씀씀이를 절약하는 일은 목민관의 첫째가는 임무다.”(善爲牧者必慈 欲慈者必廉 欲廉者必約 節用者 牧之首務)<節用條>

이런 원칙을 천명한 다산은 어떻게 해야 씀씀이를 절약할 수 있고, 절약해질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도 제대로 밝혀줍니다. “재물을 낭비하는 근본은 언제나 아내와 첩(妾)을 데리고 임지에 부임하고 자제(子弟)를 왕래하게 하며, 권세 있고 귀한 집안과 결탁하여 자주 오고가게 하며, 진귀한 보물들을 수집하기 좋아하는 일에서 생긴다”라고 하여 낭비의 요소를 줄이고 없애야만 절용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폈습니다.

“절약한다는 것은 한계를 두어 절제한다는 것이다. 한계를 두어 절제하는 데에는 반드시 법식(法式)이 있어야 한다. 법식이란 절용의 근본이다.” 사용할 재물의 한계와 정도를 정해 놓은 법식대로 재화를 사용해야만 절용이 가능하고, 절용만이 바른 목민관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의복과 음식은 검소한 것으로써 법식을 삼아야 한다. 조금만 법식을 넘어도 그 씀씀이에 절도가 없어져버린다.”(衣服飮食 以儉爲式 輕踰其式 斯其用無節矣) 이렇게 명확한 원칙을 정해놓고 세부적으로 법식을 열거했습니다. 의복은 성글고 검소한 것을 입도록 힘쓸 것이며, 아침저녁의 식사는 밥 한 그릇, 죽 한 그릇, 김치 한 접시, 장 한 종지(一飯一羹一齏一醬) 외에는 네 접시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법식을 지키지 않고 어떻게 재물을 절약해서 사용할 수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조금 잘 산다고 지나치게 낭비가 심한 오늘의 세상, 다산의 절약정신에도 마음을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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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전이과정 밝혀졌다
입력: 2005년 12월 08일 22:55:02 : 3 : 0
 
암이 최초 발생 부위에서 신체의 다른 부위로 전이하는 방식이 규명됨에 따라 암의 전이를 차단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코넬대 데이비드 라이든 박사 연구팀이 영국 과학전문지 네이처 최신호(12월8일자)에 발표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암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달리 암세포가 혈관을 타고 제2종양 부위로 이동하는 것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팀은 암세포는 직접 이동하기 며칠 전에 일종의 화학적 신호를 발산, 정상 골수세포를 ‘선발대’로 전이할 부위로 먼저 보내서 암세포가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게 한다고 설명했다.

라이든 박사는 쥐의 피부에 폐암세포를 주입했지만 암세포가 폐로 직접 이동하기 며칠 전에 골수세포가 먼저 폐로 이동하는 것이 관찰됐다면서 이같이 전했다. 2차 종양 부위의 세포들은 끈끈이와 같은 피브로넥틴이라는 물질을 만들어 ‘특사’로 옮겨온 골수세포를 억류, 암세포가 서식할 ‘착륙장’을 만든다는 것이다.

〈경향신문 김진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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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연재를 들이밀어서 '말잔치'의 느낌이 없지 않지만, 이제부터 제 전공 분야인 철학의 키워드를 가지고 현대의 문제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유명한 사조나 철학적 발언일 수도 있겠지만, 오로지 현대의 문제에 기탁하여 키워드를 만들어가는 것이 이 연재의 큰 줄기입니다.

徐子曰 仲尼稱於水曰 水哉水哉여하시니 何取於水也시니잇고 孟子曰 原泉이 混混하야 不舍晝夜하야 盈科而後에進하야 放乎四海하나니 有本者如是라 是之取爾시니라
맹자 이루 하 18장
※ 科 구덩이 과, 盈 찰 영, 而 말이을 이(어조사 이), 後 뒤 후, 進 나아갈 진

(맹자의 제자) 서자가 묻습니다. "중니(공자의 자)께서 도도한 물줄기 앞에서 '물줄기로구나! 물줄기로구나!' 하고 두 번이나 탄성을 자아냈는데, 도대체 이 물에서 어떤 뜻을 취하신 것입니까?"
맹자가 답합니다. "샘의 근원은 졸졸 흘러 밤낮 가리지 않고, 구덩이를 다 채운 다음에야 나아가 (마침내) 큰 바다(사해)에 이르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근원이라는 것이다. 이 점을 취하신 것이다.""

#장면 1

수영복 세트를 만드는 A중소기업은 2002년에 여성용 수영복 세트를 9만원 전후로 공급했지만 올해는 7만원대에 공급한다. 인건비와 물가는 올랐는데 납품가는 3년새 20% 정도 빠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기간에 할인점이 챙기는 판매수수료(마진율)는 20%에서 25%로 오히려 늘어났다. 할인점 간에 가격경쟁이라도 붙는 때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할인점의 세일 경쟁이 붙으면 가격 하락 요구는 더욱 거세진다. ㄱ마트에서 20% 세일하면 ㄴ마트는 30%로 해달라고 요청한다. 혹은 납품업체가 판매 과정에서 발생하는 매장 청소비, 광고비·판촉행사비, 매장 직원 인건비를 할인점 대신 부담하는 게 백DC다. 보통 매출액이나 납품가의 5~15% 정도 된다.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할인점은 납품업체의 피를 빨아먹는 통에 납품업체는 할인점을 '흡혈귀'라고 부른다.

“물건을 창고에 쌓아둘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매출의 98%가 할인점에서 이뤄지니 하나라도 더 팔려면 할인점에 들어가야 해요. 치사하지만 할인점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어요. 그렇지 않으면 망하니까요.”(수영복 제조업체 ㅎ부장)

"납품업체와 거래가 공평치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이를 부담하더라도 납품하겠다는 업자가 한참 줄을 서 있습니다. ‘갑’인 할인점이 손해볼 장사를 할 이유가 없어요. 이게 바로 경제잖아요.”(할인점 MD 김모씨)

기사출처 : 경향신문 '05년 9월 13일자 기획기사
[대형할인점 빛과 그림자] 3. 납품업체는 할인점의 ‘봉’ 중에서

#장면 2
 
현대자동차의 하도급 업체 횡포도 유명하다. 이들은 하도급 업체 B 중소기업에게 납품을 받으며 납품 원가를 첫 해에는 2.5%, 두 번째 해에는 2% 인하했다. 이 결과 B 중소기업은 12억원의 손해가 발생했는데, 전 직원의 한 달 임금이 2억원이므로, 6개월 임금을 상납한 것이다.
때문에 하도급 업체 사이에서는 현대자동차를 위시한 대기업에게 "마른 수건을 쥐어짠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하도급 업체는 현대자동차 측에 납품 원가를 깎지 말아줄 것을 호소했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사운(社運)이 기울 판이기에, 공정위에 제소하여, 공정위는 하도급법 위반 혐의가 중대하니 원가 삭감에 대한 시정 조치를 명령했다. 이듬해 B 중소기업은 도산하고 말았다.

자료 출처 : KBS 특별기획 '양극화사회 희망의 로드맵(3)'('05.12.8일자 방영분)

이 결과 대형 유통점(할인점은 무슨 놈의 할인점!)과 대기업의 순이익의 급상승하는 반면, 하도급 업체, 납품 중소기업의 매년 순이익은 급감하여, 도산하는 경우가 많다. 혹은 무리한 투자를 해서라도 해외로 터전을 옮기는 일도 잦다.
이것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중소기업의 공동화 현상(空洞化現狀)이다. 이것은 우리의 경제기반은 잠식하는 동시에 대기업 할 것 없이 공멸로 가고 있는 형국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노동자의 87%가 중소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중소기업이 떠나간다면 엄청난 사회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대기업의 폭리 → 대기업,중소기업 간 영업이익 편차 극대화 → 중소기업 잠식, 혹은 해외이전 → 중소기업 공동화 현상 → 경제 성장동력 정지 → 대규모 실업 사태 → ?

위의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까? 이러한 현상이 대기업의 이익이 될까. 그런 의미에서 그들에게 정신적 물질적으로 가장 완숙하다는 '大'라는 글자를 허락할 수 있을까?

# 장면 3

오늘날의 포스코가 있기 위해서는 수많은 중소 협력업체와의 동반성장이 있었다. 포스코는 공정에 있어서나 제품 생산 등 핵심 개발 업무에 중소기업을 적극적은 파트너로 대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한 해 얻는 이익은 수십억 원에 이르고 있으며, 세계에서 1,2위를 다투는 철강업계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포스코를 그림으로 그린다면 거대한 기업 안에 개미만한 기업들이 앞, 뒤, 양옆, 속까지 받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얻은 이익은 중소기업의 개발 투자비로 책정된다.
(포스코는 수익을 거둔 첫 해의 이익을 모두 중소기업에 배당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현대중공업도 마찬가지이다. 중소기업 C는 현대중공업의 판매 유통망과 인지도를 이용해 세계 각국에 커다란 매출 실적을 올리고 있는데, 그것은 현대중공업의 인지도 상승과 기업 실적에 적잖은 도움이 된다. 꼭 현대중공업의 힘이 아니더라도 중소 업체가 그 길을 통해 소비자에게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준다면, 그 이익은 모두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대우조선은 아예 협력업체 직원을 데려다 교육시키고, 이윤 보장을 확실히 해주고 있다. 이 투자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료출처 : KBS 위의 프로그램

이와 같이 중소기업과 대기업은 우리 경제의 주축이기 때문에 서로를 이윤의 도구로 보느냐, 공영의 동반자로 보느냐는 국가의 운명을 바꿀 정도로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 우리 사회에는 이 두 가지 인식이 존재한다. 그 정도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人無遠慮 , 必有近憂 (사람이 넓게 사려하지 않으면, 근심거리가 가까워진다-논어)라는 말과 같이, 우리 기업들이 넓은 사고를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눈앞의 이익에만 어두운 모습이 안타깝다. 기회가 있으면 사마천 사기열전의 '화식열전'이라도 한 편 봤으면 한다.
"큰 장사꾼은 큰 장사를 한다."
제발 큰대 자를 부끄럽게 만들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위의 몇 가지 사례만으로로 '盈科而後 進'(과영이후에 진)의 의미가 밝혀졌다. 구덩이 중에는 큰 구덩이와 여러 개의 작은 구덩이가 있다. 하지만 물은 큰 구덩이에만 머무르지 않으며, 작은 구덩이가 차지 않으면 반드시 나아가지 않는다. 이 물은 특히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많은 부분에 적용해볼 수 있다. 이 키워드처럼 스펙트럼이 넓은 것도 없으며, 사회 문제의 많은 열쇠를 쥐고 있기 때문에 '마수걸이'로 정했다.

나는 이 키워드를 우리 사회의 경제 문제, 특히 대기업과 하도급 간의 공생관계의 측면에서 이야기했지만, 정치, 사회, 역사적으로 이 키워드를 적용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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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논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초기 중독 증세를 보이고 있다.

우선 알 만한 분은 아시겠지만, 책을 많이 사게 된다.

그렇지만 나의 지갑이 파산 지경에 이르지 않는 까닭은

내가 아주 운 좋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즉, 공적으로도 살 수 있고 사적으로도 살 수 있고,

혹 운이 좋으면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암튼 지난 주와 이번 주에 구매한 것만 10만원 가까이 된다.

그 중독 현상에 일조한 책들을 헤아린다면

 

 

 

 

'21세기의 동양철학' 을유문화사 60주년을 기념으로 60개의 주제로 풀어낸 기획작이다. 내가 을유문화사를 좋아하는 까닭은 을유년을 좋아하기 때문인데, 을유년은 내 사상의 어른인 맹자가 태어난 갑자이며, 을유년에 해방되었고, 기억할 만한 일이 을유년에 많이 일어났다. 그리고 내가 배운 동양 사상이나 동양사 등 학술적인 분야의 책을 성실하게 만들어왔으므로, 을유문화사를 아끼는 편이다. 그렇다. 내가 가장 감동적으로 읽었던 서양철학사도 을유문화사 '램프리히트'의 서양철학사였다. 책과는 관계없이 을유문화사 이야기만 해버렸당.

 

 

 

 

'글쓰기의 전략' 나는 글쓰기 방법론을 믿지 않는 편이다. 소설 창작 강좌, 시 창작 강좌를 들으면서 그 생각은 더욱 굳혀졌다. 하지만 논술 선생을 하면서 글쓰기의 방법이 필요하게 되었다. 좀 불온한 구석이 없지 않지만, '가르치기' 위해서는 도식과 방법이 있어야 하겠고, 나는 그들을 가르치며 도식과 장막을 쳐놓는다. 그들은 아프락사스의 새처럼 나의 도식을 쳐부숴야 하리라. 흐흐흐

 

 

 

 

 

'대담' 나는 도정일 선생을 좋아한다. 현대적 감각의 평론가이자 정감 있는 어른 같다. 내가 이야기를 트는 신문사의 기자가 또 존경하는 마음의 스승이 사회학자 도정일이다. 그에게 처음으로 '냄비근성'에 대해 들었다. 어떤 현상을 이론으로 키워드로 표현하는 방법은 그에게 배운 것이다. 이번에 그와 과학자가 편안하게 이야기를 한다길래 구미가 당겨서 '긁었다'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1~2권 세트 , 이건 순전히 충동구매로 사는 것이기도 하고, 이때까지 우리의 스승(그것은 언어학도의 스승이라는 의미로)이 쓴 학술적 저작을 한줄도 보지 않았다는 죄송스러움이 마음에 가득 남아 있었고, 내가 분개하는 미국이란 나라의 비판적 지식인의 '참여적'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은 데 따른 미안함도 있다. 촘스키는 여러분들이 아시듯 '변형생성문법'이란 언어학의 지평을 연 언어학자이지만, 비판적 지식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마침 위 세 권의 책을 받고 나면, 마일리지가 10,000원이 되고, 결국 내 사비가 1만원 대로 드는 데다가, 요즘 이벤트 기간이라 3권의 책을 더 주는 이베트 기간이므로, 나는 고도의 속어림에 따라 '긁고 말' 것이다.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하나, 둘'

이것은 순전히 알라딘에 대한 고마운 마음의 표현이자, 나의 기본적 역사 소양을 만족시키기 위해 산 책이다. 얼마 전 알라딘 서평단에 선정되어 '세계사 교과서'를 공짜로 보게 되었다. 그 때의 감동이 다시 찾아온다. 늦지 않게 서평을 썼고, 그 서평이 호응이 좋은지 4개의 추천 별딱지도 받았다. (그 후로 9개의 추천과 땡큐를 받아서 마일리지가 두둑해졌습니다. 서평 하나 잘 쓰면 읽고 싶은 책 한 권 정도는 얻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서평 강추!)

쇼펜하우어가 그랬다지 않은가. 그가 헤겔에게 도전해 그 영광을 빼앗을 요량으로 같은 학기에 강좌를 마련했다. 하지만, 헤겔의 강좌에는 수강생이 미어터진 반면 쇼펜하우어의 강좌에는 수강생이 2~3명뿐이었다고 한다. 쇼펜아우어 왈 "너, 헤겔 선생의 강좌에 가지 않고 어째서 이 강좌를 신청했냐?" 그의 제자 왈, "헤겔 교수님의 강좌는 너무 사람이 많아서 들을 수가   없었..." "예끼 이놈아!" 하고 강의실 문을 걷어차며 나가버렸다는 이야기.

또다른 이야기.. 쇼펜하우어가 드디어 뜨기 시작했다. 신문에 대서특필 보도가 되고, 평론가들의 찬사는 연일 계속되었다. 그 일을 기록한 철학사가의 말이 더욱 재미있다. '철학가로서 생전에 이렇게 영광을 누릴 수 있었던 사람은 철학사적으로 드물다. 그리고 광적인 탐식가처럼 관련 기사마다 스크랩해서 기쁨을 숨기지 않으면서까지 꼴불견이었던 철학자도 그 열에서는 그가 처음이 아닌가 한다.'

뭐 쇼펜하우어 이야기는 한담이고, '세계사 교과서'를 보기 얼마 전에는 서중석 교과서의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래서 한국사, 현대사, 세계사의 교과서적 소양을 마무리하겠다는 의지의 '구매 행위'였다.

이 모두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졌으며, '긁혔다.'

여기서 한 가지 명언이 나온다.

한 번 긁는 순간은 짧지만, 그것을 다 소화하려면 그보다 좀 길게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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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5-12-09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견물생심이란 말이 딱이여요. 하루에도 몇번씩 가게를 들락거리는 꼴이니 오죽하겠어요^^

승주나무 2005-12-09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한 번 다니면, 자꾸 새롭고 흥미로운 게 눈에 밟히니까.. 어찌 고양이가 생선을 마다하겠어요..^^
 
 전출처 : 라주미힌 > [펌] 물리학자가 바라본 황우석 논란

 


몇 달 전 SCI급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을 발표하는 세미나를 한 적이 있었다. 끝날 무렵에 누군가가 이렇게 질문했다.
“그 계산 결과를 내가 도대체 어떻게 믿을 수 있죠?”

한편으로 생각하자면 남의 계산 결과를 의심하는 것이 상당히 무례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런 질문은 사실 학계에서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만약 내가 거기다 대고 “이미 학술지에 실린 논문인데...” 라고 대답한다면, 웃음거리가 되지는 않더라도 아마 질문자에게 충분한 해명이 되지는 않았을 터이다. “제 계산 노트 보여 드리죠.” 라는 한마디로 상황은 끝났다.


물리학을 전공한 내가 박사과정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은 “모든 것을 의심하라”는 것이었다. 흔히 교과서라고 불리는 출판서적들은 물론 유명 학술지의 ‘검증된’ 논문조차도 자기가 직접 확인해 보기 전에는 “절대로 믿지 말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르침 중의 하나였다. 실제로 과학이 발전해 온 역사를 보더라도 이런 의심과 회의야 말로 과학의 성공을 보장해 준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의심과 회의는 필연적으로 기존의 권위와 상식에 대한 도전일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 도전받는 권위는 이런 갖가지 도전을 이겨냄으로서 자신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해 낸다. 그래서 귄위에 대한 도전과 의심, 공격과 방어는 매우 자연스러운 과학 활동의 일부분이다.





천하의 아인슈타인도 양자역학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은 과학자로 남았다. 스스로가 생애 최대의 실수라고 인정했던 우주상수는 근래에 와서야 그 중요성이 다른 이유로 인해 다시 주목받고 있는 실정이다. 현존 최고의 물리학자라는 스티븐 호킹도 블랙홀에서의 정보 상실이라는 자신의 주장이 무수한 공격을 받았지만 아무도 그런 의심과 도전을 ‘흠집내기’라는 식으로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최근에 그는 자신의 이론을 일부 수정하기에 이른다. 실험과학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비교적 큰 규모로 이루어지는 실험 결과를 놓고서도 저건 잘못된 실험이라는 주장들이 언제나 제기된다. 그 결과가 어느 학술지에 얼마나 비중있게 실렸나 하는 사실 자체는 과학적인 근거와 관련해서는 큰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과학자가 자신의 양심과 과학적 근거에 비추어 납득되지 않으면 의문을 제기하고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그들의 본능에 가깝다. 과학자들은 수년에 걸쳐 그렇게, 어지간해서는 “절대로 믿지 않도록” 철저하게 교육받기 때문이다. 과학이 지금까지 성공한 학문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과학적 방법론이 그 활동의 모든 과정에서 철저하게 관철되기 때문이다.


최근 황우석 교수팀의 인간 배아줄기 세포와 관련된 논란을 보면서 한 가지 매우 안타까운 점은 그 어디에서도 문제해결을 위한 과학적 방법론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사이언스나 네이쳐라는 학술지가 연구결과 혹은 진실의 최종 잣대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과학자들에게는 그저 이름있는 학술지 중의 하나일 뿐이다. 단지 거기에 실렸다는 이유만으로 그 논문을 믿는 과학자는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래서 논란의 초기에 황우석 팀에서 ‘사이언스에 실렸으니 검증이 다 되었는데...’라고 주장하는 것은 적어도 과학자의 상식으로 봤을 때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그런 주장을 대한민국 최고의 과학자 집단에서 했다는 사실, 과학계에서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권위에 대한 도전과 의심과 회의를 흠집내기로 몰아가는 태도 등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일반인들의 여론과는 달리 젊은 과학자들이 모이는 인터넷 게시판들(scieng나 kids, 혹은 bric)에서는 황우석 팀의 이런 대응방식에 많은 의혹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정말 ‘과학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윤리를 위해 취재과정에서의 최소한의 윤리를 어겨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과학적 논란을 해결하는 과정이 비과학적이거나 심지어 반(反)과학적이어서는 결코 안 된다. 젊은 과학자들은 바로 이 점 때문에 국민 대다수의 여론과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왜 황우석 팀은 이 사건을 ‘과학적’으로 해결하지 않는가.


온 국민을 며칠간이나 혼란에 빠뜨린 이번 사건은 전 세계는 물론 인류 전체의 과학 발전에 중대한 획을 그은 위대한 성과에 관한 것임에 반해 그 대응방식에서 ‘과학’ 혹은 ‘과학적 방법론’은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더군다나 해당 연구집단이 일반 대중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반면 같은 과학자 집단으로부터는 큰 신뢰를 얻지 못한다는 점이 매우 이례적이다.


혹자는 <피디수첩>이라는 비전문가가 세계적인 과학적 업적을 검증한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하지만 이 또한 그리 과학적인 주장이 못된다. 과학적인가 아닌가는 그 주체가 누구인가와는 상관없이 주체가 벌이는 행위가 얼마나 과학적 방법론에 입각해 있는가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많은 젊은 과학자들은 다소 어설픈 <피디수첩> 제작진들에게 대한민국 최고의 과학자 집단으로서의 황우석 팀이 이번 기회에 과학이란 어떤 것인가를 제대로 ‘한 수 지도’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미 잘 알려진 대로 황우석 팀은 오히려 스스로 합의한 방법론을 거부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전혀 과학적이지가 않다. 기존의 방법이 과학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새로운 과학적 방법을 제시하면 된다. 황우석 팀의 뒤이은 언행은 이 땅의 많은 과학자들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줄기세포를 다시 시연해 보이겠다는 말은 예컨대 화살을 과녁의 퍼펙트 골드에 한 번 더 꽂아 넣어 보겠다는 말인데, 누구도 그런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 과녁에 꽂혀 있는 화살의 지문검사만 하면 그냥 끝날 일이다. 새로운 연구 성과를 내보이는 것으로 검증을 대신한다고 하는 말도 과학과는 거리가 멀다. 앞으로 나올 연구 결과와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배아줄기세포의 진위여부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지 나로서는 전혀 알 수가 없다. 이건 과학의 문제 이전에 상식의 문제다.


황우석 팀은 과학적인 방법론의 정도를 걷기보다는 언론플레이만 한다는 일각의 주장은 같은 과학자의 입장에서 매우 서글픈 일이다. 젊은 과학자들이 찾아낸 사이언스 논문의 동일한 세포사진도 황우석 팀의 주장과는 달리 이미 사이언스에서 검토 중인 게 아니라, 논란이 있고 나서야 황우석 팀에서 정정 이메일을 보낸 것으로 확인되었고, <피디수첩> 때문에 세계최초를 빼앗겼다는 일본의 그 논문은 취재 들어가기 전인 5월말에 벌써 제출된 상태였다. 연구팀의 핵심 관계자들이 과학의 정도를 걷는 대신 연이어 거짓된 주장들을 언론에 계속 내놓는 한 과학자 사회에서의 학자로서의 신뢰를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문제의 배아줄기 세포가 진짜라고 믿는다. 아니, 믿고 싶다. 그러나 과학은 종교가 아니다. 과학적인 믿음은 과학적인 근거가 있어야만 한다. 국익에 비추어 본다면 매우 매몰차 보일지 몰라도 과학자들은 매사에 의심하고 회의를 품고 0.1%의 의혹에도 문제제기하도록 그렇게 교육받고 훈련받은 사람들이다. 저자 중 한 명이 논문의 진위에 의혹을 제기한 점, 문제의 배아줄기세포 DNA를 공정한 제3자(사이언스를 포함해서)가 검증했다는 사실이 전혀 없다는 점, 후속 연구와 이 문제는 전혀 별개라는 점은 생명공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다 알 수 있는, 이미 알려진 ‘사실’들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적어도 ‘본능적으로 의심’하는 과학자들에게는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행위다. 그리고 이처럼 그다지 심오하지도 않은 뻔한 사실들을 놓고서 ‘과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을 하기가, 또 받아들여지기가 이렇게 어렵고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면, 나는 아마 과학자의 길을 걷지는 않았을 게다.


황우석 교수는, 나 또한 존경해 마지않는, 대한민국 최고 과학자 제1호다. 그런데,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가 이끄는 연구팀에 의해 대한민국의 과학이 실종되어 버리는 지금의 상황이 나는 너무나 안타깝다. 팀내 안규리 교수는 이번 일로 후배 과학자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많은 염려를 하셨지만, 정작 젊은 과학자들은 전혀 과학적이지 못한 선배 과학자들의 태도와, 의심하고 문제제기하는 과학자로서의 본능과 양심을 사회적으로 거세당한 참담함에 괴로워하고 있다. 이를 짓밟고 성취한 국익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과학입국을 꿈꾸는 대한민국을 정말 가치있는 나라로 만들 수 있을까...


과학도로 첫발을 내디딜 때 가슴에 품은 한 구절이 문득 떠오른다.


“진리는 나의 빛이니(VERI TAS LUX M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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