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친구의 직업은 카피라이터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맨날 야근하는 직업 있잖아요.

그런데 다니던 직장에서 좀 좋다는 회사에 이력서를 넣고, 턱 허니 붙어서

회사를 옮겼습니다. 그게 서너달 전의 일이죠 아마..

전의 회사에서는 일을 많이 시켰지만, 인정을 해주는 분위기였어요.

그런데 친구의 사표는 충격이었나 보죠.

그 욕 다 받아먹어 가면서 회사를 옮길 때는 분명 후생이나 복지를 포함해서

좀 더 비전이 좋다고 해서 그렇게 결정을 한 것인데..

그런데 석달 만에 회사에서 구조조정으로 나가라고 했다는 겁니다.

물론 잘 다니던 회사 접고 새로운 일자리로 옮긴 제 친구도 친구죠,.

회사를 잘 선택하지 못한 책임이 크죠.. 

당장 집값과 카드값이 막막하게 되었네요.

고용 보험금도 회사가 해줘야 된다는데, 그럴 것 같지도 않고

그야말로 '나가'라고 통보만 하면 그만인 거죠.

구제를 받을 길도 없고, 참 안타깝군요.

새 직장을 알아봐야지 별 수 있겠습니까.

남 이야기가 아니군요. 제가 다니던 직장에서도 단칼에 베어버리면 할 말 없는 세상이니까요.

'일구야! 형 말 오해하지 말구 들어~

대한민국에서 되는 게 어디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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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너넷 생활을 오래하다보니, 즐겨찾기가 하나씩 둘씩 쌓입니다.

그런데도 많이 모자라다고 생각하는 까닭은 내가 원하는 주소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혹시 나의 즐겨찾기가 누군가 애타게 찾던 즐겨찾기가 될 수도 있겠죠.

그런 의미에서 '즐겨찾기 대 공개'를 제안합니다.

자신의 즐겨찾기 목록을 정리할겸 한 번 보여주세요.

혹시 내가 애타게 찾던 사이트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제가 먼저 시작해볼게요.

내용구성

 우리말

국립국어원 : http://www.korean.go.kr/

한국언어정보처리연구실 : http://klpl.re.pusan.ac.kr/

우리말바루기(중앙) : http://news.joins.com/general/today/t_korean/list/general_today_t_korean_list.html

디지털 한글박물관 : http://www.hangeulmuseum.org/renew/

국어인증시험 : http://www.goket.com/

한국어능력시험 : http://www.klt.or.kr/

 

언론

경향(블로그) : http://blog.khan.co.kr/97dajak

분수대(중앙) : http://news.joins.com/opinion/opinionews/boon/list/opinion_opinionews_boon_list.html

프레시안 : http://news.joins.com/opinion/opinionews/boon/list/opinion_opinionews_boon_list.html

연합뉴스 : http://www.yonhapnews.co.kr/

민언련 : http://www.ccdm.or.kr/

교수신문 : http://www.kyosu.net/

중앙프리미엄 섹션(교육) : http://service.joins.com/asp/list_brand.asp?serv=brand§=bn_premium&cont=bn_pedu

비교만평(한겨레포청천) : http://bbs2.hani.co.kr/board/ns_euthanasia/List.asp?Stable=NSP_005066000&rp=43

오마이뉴스 : http://www.ohmynews.com/

조선일보 : http://www.chosun.com/

언론재단 : http://www.kinds.or.kr/

신문가게 : http://www.newspaper.co.kr/

스포츠투데이 : http://www.stoo.com/

iMBC : http://icash.imbc.com/FreeTicket/FreeTicketAgreement.asp

교육관련기사스크랩(서울시교육청) : http://www.sen.go.kr/

국정홍보처(언론종합) : http://www.allim.go.kr/warp/webapp/news/list?category_id=now_news

 

도서

알라딘(서재) : http://www.aladin.co.kr/blog/mylibrary/wmyroom.aspx

마북(책가격비교검색) : http://www.mabook.com/main2/index.html

광진정보도서관 : http://www.gwangjinlib.seoul.kr/Slima/

100권의 책(동아일보) : http://www.donga.com/fbin/moeum?n=book100$j_665

yes24 : http://www.yes24.com/Main/default.aspx

교보문고 : http://www.kyobobook.co.kr/main.jsp

인터파크 : http://www.interpark.com/bookPark/html/book.html?mbn=gnb&mln=book

책과 지성(한겨레) : http://book.hani.co.kr/

돛단책(북크로싱) : http://sailingbook.com/main.html

북데일리 : http://www.bookdaily.co.kr/bookdaily/

헌책사랑 : http://www.usedbooklove.com/

예문서원 : http://www.yemoon.com/

한길사 : http://www.hangilsa.co.kr/

문학동네 : http://munhak.com/

반디엔루니스 : http://www.bandibook.com/

영풍문고 : http://www.ypbooks.co.kr/ypbooks/WebHome/crm/pointcrm.jsp

리브로 : http://www.libro.co.kr/books/index.asp?mall_id=1

 

영화

우리폴더 : http://www.wfolder.co.kr/

모나리오(영화자막) : http://www.monario.com/main/inside.asp

 

대학입시지원센터

경희대학교 : http://iphak.khu.ac.kr/

아주대학교 : http://www.iajou.ac.kr/

인하대학교 : http://admission.inha.ac.kr/

한양대학교 : http://www.hanyang.ac.kr/admission/index.html

홍익대학교 : http://ibsi.hongik.ac.kr/

서울대학교 : http://admission.snu.ac.kr/index.html

 

입시사이트

유니드림 : http://www.unidream.co.kr/

메가스터디 : http://www.megastudy.net/

라이브티쳐 : (접속불가, 망한 것 같음)

시사이트 : http://www.sisite.co.kr/

진학사 : http://www.jinhak.com/

이투스 : http://www.etoos.com/Home/

비타에듀 : http://www.vitaedu.com/

에듀스파(박문각) : http://www.eduspa.com/

EBSi : http://www.ebsi.co.kr/

랭키닷컴(웹사이트 분석 평가 전문) : http://www.rankey.com/index.php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학진학정보센터) : http://univ.kcue.or.kr/

 

사전

두산세계대백과사전 : http://www.encyber.com/index.html

구글영어번역기 : http://www.google.co.kr/language_tools?hl=ko

동아경제용어사전 : http://www.donga.com/dict/stock.html

매일경제용어사전 : http://dic.mk.co.kr/dic_index.html

 

금융

국민은행 : http://ibn.kbstar.com/quics?page=s_ibn

비씨카드 : http://www.bccard.com/

우리은행 : http://www.wooribank.com/

ok 케쉬벡 : https://doorman.okcashbag.com/user/auth/jsp/userLogin.jsp?sid=PORTAL&returnurl=687474703A2F2F7777772e6f6b636173686261672e636f6d3A38302F6d792F696e6465782e6a7370

인터넷지로 : https://doorman.okcashbag.com/user/auth/jsp/userLogin.jsp?sid=PORTAL&returnurl=687474703A2F2F7777772e6f6b636173686261672e636f6d3A38302F6d792F696e6465782e6a7370

 

학문

철학아카데미 : http://www.acaphilo.or.kr/

디지털문화예술아카데미 : http://www.artnstudy.com/main.asp

사이언스올 : http://www.scienceall.com/index.html

진중권의 ex libris : http://phya.snu.ac.kr/~sk_eah/ex_libris.htm

한국철학사상연구회 : http://hanphil.or.kr/index.htm#

각종공모전(아이좋아학교) : http://www.iloveschool.co.kr/frame/frame.asp

연구공간 수유+너머 : http://www.transs.pe.kr/

대학생지식포털 : http://www.reportbay.com/Text/Main.asp

과갤(과학갤러리) : http://kr.dcinside13.imagesearch.yahoo.com/zb40/zboard.php?id=science

부릭 : http://gene.postech.ac.kr/bbs/zboard.php?id=job

싸이엥 : http://www.scieng.net/zero/zboard.php?id=now

국가기록유산(왕조실록 검색) : http://www.memorykorea.go.kr/

무한공유더디스크팟 : http://diskpot.chol.com/museum

문화재청 유구라 연재 : http://www.cha.go.kr/

 

국가ㆍ시민

경실련 : http://www.ccej.or.kr/

국세청 : http://nts.go.kr/

청와대 : http://www.president.go.kr/cwd/kr/index.php?_sso_id_=511cbbfeecbe43647ae2c2dc5df3cafd

인터넷참여연대 : http://www.peoplepower21.org/

인권운동사랑방 : http://www.sarangbang.or.kr/kr/new/index.php

한국소보원 : http://www.cpb.or.kr/

 

개인

책말ㆍ북C(氏) : http://bookc.net/

울회사(거인의어깨) : http://www.estudycare.com/

네이버 블로그 : http://blog.naver.com/dajak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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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1-11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너무 많아서 정리 못합니다 ㅠ.ㅠ

승주나무 2006-01-11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특이한 사이트라도 올려 주시지요. 남들이 잘 모를 것 같은 그런 거요^^
 

압축독서

압축독서는 오래된 말로 '초록(抄錄)'이라고도 하고, 발췌(拔萃)라고도 하는데, 책의 내용 중에서 관심 깊게 읽어서 표시해둔 부분을 그대로 올리는 것을 말합니다.

압축독서 콘텐츠는 다음과 같은 점에 효과가 있습니다.

 1. 압축독서는 책 읽는 시간이 없는 분들을 위해 만들었습니다.

 2. 압축 독서는 독서 효과를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3. 시간에 쫓기는 학생들에게 원작에 대한 이해를 도와줍니다.

 4. 논술 제시문으로 출제될 수 있는 고전 저작입니다.

바쁜 현대인의 일상 속에서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읽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으며, 거기에 '의지'의 문제까지 덧붙이면, 한 권의 책이란 그야말로 요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압축 독서를 통해 그 책에 대해 관심은 있으나, '완독'할 자신이 없으신 분들에게 책의 향기를 조금이나마 맡을 수 있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책을 멀리 하게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이렇게 공청회까지 열게 된 이유는 몇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1. 원 저자의 책을 1/5에서 1/10까지 분량만큼 올리는 일이기 때문에 저작권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물론 상업적인 목적으로 시작하려는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2.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나, 이 연재로 인해 독자들이 정작 책을 멀리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입니다.

3. 이 연재의 대상은 알라디너들이기 때문에, 여러분들(혹은 그들)의 의향을 먼저 묻는 것이 순서일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 연재는 저의 독창적인 글이 아니고, 한 작가의 작품 중 제가 주시했던 문장을 조금 보여드리는 것일 뿐이기 때문에, 제가 완전히 독립적으로 글을 올릴 수 있는 성격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콘텐츠를 연재하고 싶은 것은, 그 책의 주옥같은 부분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그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며, 책의 핵심 주장이 담겨 있기 때문에, 신문에서 보는 서평이나 여러 서평과는 다른 방식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위의 장점과 단점으로 헤아린 이유 외에 다르게 문제될 수 있는 점이 있으면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아래에는 하나의 표본을 제시하겠습니다.

※ 첨부파일로 올리면 깔끔한데, 굉장히 어지럽군요. 어지러우시더라도, 독서에 도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보시기에 정 그러시다면,  복사해서 한글에 붙여넣기하시면 좀 더 편합니다.

일러두기

저자의 지문은 큰따옴표(“”)로, 다른 인물들은 대화에 앞서 문맥상이나 괄호를 통해 명시하였고 ‘<>’으로 표시하였다.


부분과 전체


머리말



과학은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사람들이 다시 한번 새겨본다면 때때로 한탄하고 있는 정신과학-예술 분야와 기술-자연과학 분야라는 두 문화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단절을 메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자연과학이란 실험에 그 근거를 두고 있으며, 바로 그 실험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실험의 의미에 관해서 서로 숙고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성과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토론이 이 책의 주요한 내용이 되고 있으며, 과학은 토론을 통해서 비로소 성립된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밝혀질 것입니다.

……

토론과 대화에 있어서 원자물리학이 항상 주역을 연출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적이고 철학적이며 정치적 문제들이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이는 자연과학이 이와 같은 문제들과 분리되어서는 성립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토론이 이루어졌던 당시의 분위기를 정확하고 생생하게 묘사하는 데 역점을 두었습니다. 그와 같은 묘사를 통하여 과학의 생성과정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여러모로 서로 다른 부류의 사람들의 공동체가 결국에 가서는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가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현대원자물리학 분야와는 거의 관련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분들에게도 이 학문분야의 탄생과 그 발전의 역사에 수반되었던 사고활동에 관한 인상을 어떻게든지 전달하고 싶은 것이 저자의 의도이기도 합니다.

……

현대원자물리학은 철학적이며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문제점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하이젠베르크





1 원자론과의 만남


1920년 봄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1차 세계대전의 종결은 독일 청년들을 불안과 동요의 상태로 몰아넣는 결과를 가져왔다. 크게 실망한 앞선 세대들의 손에서 고삐는 빠져나갔고, 따라서 젊은이들은 자기 자신들이 새롭게 나아갈 길을 찾기 위해, 또는 이미 부서진 것처럼 보이는 낡은 나침반 대신 사람들이 표준으로 삼을 수 있는 새로운 나침반을 발견하기 위하여, 크고 작은 여러 종류의 단체와 그룹으로 모이기 시작하였다.

……

피어나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넓게 펼쳐져 있는 가운데서, 그리고 한 순진한 젊은이들의 그룹 안에서 이와 같은 대화가 전개될 수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이 상기되어야 할 것이다. 평화스러운 시기에 젊은이들을 감싸주는 가정과 학교의 보호가 시대의 혼란 속에서 멀리 사라져버렸으며, 그 대신 비록 근거는 불충분하더라도 자신들의 판단을 신뢰하는 경향이 젊은이들 사이에 생겼다는 점이다.

                                                                       7


나는 쿠르트에게 물리학 교과서가 있는 도해(圖解)가 완전히 무의미하게 생각되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화학결합의 경우 두 개의 균일한 원소가 결합하여 새로운 다른 균일한 물질의 원소가 되는 화학의 기초과정에 관한 것이었다. 가령 탄소와 산소로부터 탄산가스가 형성된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관측되는 규칙성을 이해하기 위하여 가장 좋은 방법은 다음과 같이 가정하는 것이라고 이 책은 가르치고 있었다. 즉 그 규칙성은 한 원소의 가장 작은 부분인 원자가 다른 원소의 원자와 소위 분자라고 불리는 작은 원자단(原子團)으로 결합되는 데서 오는 것이라고. 그래서 탄산가스 분자는 탄소원자 하나와 산소원자 둘로 이루어지는데, 이 책에서는 그러한 원자단들을 설명하기 위하여 도해가 되어 있었다. 즉 탄소원자 하나와 산소원자 둘이 왜 항상 탄산가스 분자를 형성하는가를 더 명확하게 설명하기 위하여, 도해자(圖解者)는 원자들은 호크와 고리를 가지고 있어서 바로 이 호크와 고리로 연결되어 분자를 형성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설명은 나에게 아주 무의미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 까닭은 호크와 고리 같은 것은 사람들이 임의로 자기들의 기술적 합목적성(合目的性)에 따라 만들어놓은 형성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자는 엄연한 자연법칙의 결과이며 분자도 역시 자연법칙에 따라 형성되어야 하는데, 이와 같은 사람의 임의성이 개입할 수 있는 호크와 고리 같은 것으로 분자가 설명될 수는 없다고 나는 믿고 있었던 것이다.

                                                                       8 ~ 9


“두 종류의 원자 사이에 인력이 존재한다면 왜 때때로 산소원자 세 개가 결합되어서는 안될까?”

<아마도 탄소나 산소의 원자들은 산소원자 세 개가 결합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어떤 공간적인 배열 형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런 가정이 그럴 듯하지 않게 들리는 것은 아니지만, 네가 말하는 것도 교과서의 호크와 고리의 이론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교과서의 도해자도 네가 말했던 바로 그러한 점을 표현하려고 하였을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원자들의 정확한 형태를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의 탄소원자가 항상 세 개의 산소원자가 아니라 두 개의 산소원자와 결합할 수밖에 없는 어떠한 형태가 있다는 것을 다소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호크와 고리를 사용하였음에 틀림없다.”

                                                                       9 ~ 10


<너희처럼 자연과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항상 너무나 쉽게 경험적 사실에 의지해 버리고, 또 그것으로 진리를 얻었다고 믿어버린다. 그러나 사람들이 경험에서 실제로 무엇이 일어나는가를 고찰한다면 너희들이 취하는 방식은 나에게는 매우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너희들이 말하는 것은 요컨대 너희들이 사고하는 방식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너희들이 알고 있다는 것은 그런 사고방식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고는 물론 사물 안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물들을 직접 인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표상(表象)으로 변화시키고 마침내 그것들로부터 개념을 형성해야 한다. 감성적인 인지를 통해 외부로부터 우리에게 몰려드는 것은 매우 다양한 종류의 인상들의 무질서한 혼합물이다. 우리가 나중에 인지한 형태나 성질들은 직접적으로 그 인상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11


(로베르트)

<나는 최근 철학자 말브랑슈의 저서를 연구하였는데, 그 책에서 바로 이 문제와 관련된 부분에 마주친 일이 있다. 말브량슈는 본질적으로 표상들의 생성 가능성을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그 하나는 바로 네가 언급한 것이다. 즉 대상은 감각인상을 통하여 직접적으로 인간의 영혼에 그 표상을 생기게 한다는 것이다. 말브랑슈는 감각인상은 사물 또는 그 사물과 관련되어 있는 표상들과는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이 견해를 거부하고 있다. 둘째는 인간의 영혼은 처음부터 표상을 소유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에는 감각인상을 통해서 이미 존재하고 있는 표상만을 기억해 내게 되거나 감각인상에 의해서 표상들을 형성하도록 자극을 받는다는 것이다. 셋째는―말브랑슈는 이것에 찬의를 표하고 있지만―인간의 영혼은 신적 이성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즉 신과 결합된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신에 의해 인간의 영혼에 표상력이 주어지고 상이나 이념들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이와 같은 것들을 가지고 잡다한 감각인상들을 정리할 수 있고 개념적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12


<말브량슈는 아마도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즉 세계에서 눈에 띄는 질서 또는 자연법칙 즉 화학적 원소들의 생성과 그것들의 특성, 결정의 형성, 생명의 생성 등 모든 것에 책임성 있게, 동일하게 질서를 세우려는 경향은 인간 영혼의 생성과 그 영혼 자체에도 작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물에 표상을 대응시키고 개념적 분류의 가능성을 부여한다. 이와 같은 경향이 바로 실제로 존재하는 구조를 가능케 하는 것이며, 그 구조를 우리의 인간적인 관점에서 고찰할 때, 그리고 그것들이 우리의 사고에서 고정될 때 비로소 하나의 객체―즉 사물―와 주체―즉 표상―가 서로 분리되어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모든 표상이 경험에 기인한다는 너희들의 자연과학에서 가장 그럴 듯하게 보이는 견해와, 외계(外界)에 대한 유기체들의 관계를 통하여 발전사(發展史)에 있어서의 표상형성(表象形成)의 능력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브랑슈의 명제(命題)와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말브랑슈는 동시에 단순한 인과론(因果論)을 가지고는 일련의 개체과정(個體過程)에서 설명될 수 없는 연관성이 문제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즉 결정(結晶)이나 생명체의 생성에서와 같이 원인과 결과라는 한 쌍의 개념을 가지고는 파악할 수 없는, 보다 더 형태학적인 특징과 같은 상위의 구조들이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

다만 원자에 관해서 경험을 토대로 너무 단순하게 말하는 것을 경고하고자 했을 뿐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항상 직접 관찰할 수 없는 원자와 같은 것들은 단순한 물체도 아닐뿐더러, 표상과 사물을 따로 분리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는 보다 기본적인 구조에 속하는, 그러한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

내가 아까 말했던 「원자의 형태」라는 개념을 좀더 조심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형태」라는 말을 공간적인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내가 사용한 「구조」라는 말과 별로 다른 의미를 갖지 않는 그러한 일반적인 의미로 이해할 때 어느 정도 이 개념과 친숙해질 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13 ~ 14


자연현상들의 거의 풀 수 없는, 그리고 통찰할 수 없는 조직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 안에서 수학적 형식을 발견할 때만 가능하였던 것이다.

                                                                       17


여전히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속에 바이올린을 가진 한 젊은이가 성의 앞뜰 발코니에 나타났다. 주위가 조용해지자 바하의 작곡인 <샤콘느>의 라단조의 협화음이 우리 머리 위에 울려 퍼졌다. 바로 이때를 계기로 하여 중심으로의 재결합이 갑자기 회복되었다. 우리의 눈앞에 전개되어 있는 달빛이 흠뻑 젖어 있는 알트뮐 계곡이 낭만적인 분위기로 매혹되는 데 충분한 풍경을 이루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그 원인은 아니었다. <샤콘느>의 분명한 음형(音形)은 찬바람과 같이 안개를 갈라놓았고 그 안개 속에 가려져 있었던 예리한 구조의 모습을 드러내게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음악의 언어로써, 철학의 언어로써, 그리고 종교의 언어로써 중심적인 영역에 관해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플라톤과 바하에서도 가능하였고, 지금도 미래에도 가능할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이와 같은 사실을 체험했던 것이다.

                                                                       19 ~ 20


말브량슈에 관한 로베르트의 언급은 나로 하여금 원자에 관한 실험사상은 참으로 간접적인 것에 불과하며, 원자는 아마도 실재(實在)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을 확신케 하였다. 플라톤이 《티마이오스》에서 진술하고 있는 것도 분명히 이와 같은 사실을 말한 것이며 그가 정다면체에 관하여 광범하게 언급한 사변(思辨)들도 이렇게 해석함으로써 대강 이해되는 것이었다. 또한 현대 자연과학에서 원자의 형태에 관해 이야기할 때에도 형태란 말은 가장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공간과 시간구조로서, 힘의 대칭성(對稱性)으로서, 그리고 다른 원자들과의 결합 가능성으로서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러한 구조들을 결코 직관적으로 서술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까닭은 원자는 물체의 객관적인 세계에 일의적(一義的)으로 속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학적인 고찰은 그곳에 접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었다.

                                                                       21


<가령 네가 한 마리의 고양이를 본다고 하자. 이때 너는 그 고양이로부터 나오는 광선만을 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고양이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의 작용을 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설사 네가 고양이의 털을 쓰다듬는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하등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22 ~ 23




2 물리학을 연구하다



(조머펠트 교수)

<학생은 너무나 야망이 크군요. 가장 어려운 것부터 시작하였다고 해서 더 쉬운 문제가 저절로 이해된다고 말할 수 없지요. 나는 학생이 상대성 이론의 문제영역에 매혹되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현대 물리학은 다른 영역에서도 철학적 기본명제가 문제되고 있으며, 또한 가장 자극적인 종류의 인식을 문제삼고 있는 영역으로 진출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곳으로 가는 길은 지금 학생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 먼 곳에 있습니다. 따라서 학생은 전통적인 물리학의 영역에서부터 겸손하고 세심한 작업을 해나가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학생이 물리학을 전공한다면 우선 실험물리를 할 것인지 이론물리를 할 것인지 선택이 앞서야 할 것입니다. 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니 이론물리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것 같군. 학생은 고등학교 시절에 가끔 도구를 사용하여 실험을 해본 적이 있을 터인데……>

나는 고등학교에 다닐 때 조그마한 실험장치나 모터, 그리고 유도 코일 등을 즐겨 만들어보았다고 말하였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는 실험장치의 세계와 친숙하지 못한 편이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데이터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데 지불해야 하는 세심성이 아주 견디어내기 어려운 일이었다는 것도 말했다.

<그러나 학생이 이론물리를 한다 하더라도, 학생에게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되지 않은 작은 문제들도 역시 세심하게 다뤄야 합니다. 가령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나 플랑크(Max Planck, 1858~1947)의 양자론(量子論)과 같은, 철학에까지 미치는 큰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도 초보를 넘어선 사람들 정도가 해결해야만 하는 작은 문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문제들을 포괄하는 전체 안에서 비로소 새롭게 개척되는 영역의 한 상(像)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때 “그러나 저는 그같이 사소한 문제들보다는 그 뒤에 가로놓여 있는 철학적 문제에 훨씬 더 흥미를 느끼고 있습니다.”라고 수줍게 반박하였지만, 조머펠트 교수는 좀처럼 납득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학생은 실러가 칸트와 그의 주석자(註釋者)들에 대하여 한 다음과 같은 말을 기억하겠지요. 「왕이 공사에 착수하면 비로소 일꾼들에게 할 일이 생긴다」 처음에는 우리들은 모두 일꾼입니다. 학생도 보다 작은 일을 세심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해나가서 그 결과로 우리가 바라는 무엇인가 뜻 있는 일이 생긴다면 그때 참다운 기쁨을 알게 될 것입니다.>

                                                                       28 ~ 29


(발터의 어머니)

발터의 어머니는 내게 왜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학생은 그 연주 솜씨로 보나 음악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투로 보나 자연과학이나 기술보다 예술에 더 소질이 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리고 학생은 근본적으로 그와 같은 음악의 내용을 기구(器具)나 수식(數式) 또는 정교한 기술적인 장치에서 표현되는 정신보다 더 아름답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학생은 왜 자연과학을 공부하려고 결심하였는지 알고 싶군요. 이 세계가 나아가는 길은 젊은이들이 무엇을 하고자 원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젊은이가 아름다움을 선택하면 이 세상은 그만큼 아름다워질 것이고, 젊은이들이 유용한 것을 선택하면 이 세상에는 유용한 것이 더 많이 생길 것입니다. 따라서 한 사람 한 사람의 결정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인간사회에도 큰 뜻을 갖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변명하였다.

“음악의 경우, 최근의 작곡가들은 옛날의 작곡가에 비해서 충분히 이해가 가지를 않습니다. 17세기의 음악은 그 당시의 생활 속에 깔려 있었던 종교적인 핵심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18세기의 음악에선 개개인의 감정세계로의 이행(移行)이 성취되었고, 낭만주의적인 19세기의 음악은 인간 영혼의 가장 깊은 곳까지 침투해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음악은 이상하게도 불안감이 짙으며 도리어 허약한 실험단계에 빠진 것 같이 느껴집니다. 이 단계에서 이미 정해진 궤도를 따라서 전진하려는 확실한 의식보다는 이론적인 고찰이 더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자연과학, 특히 물리학에서는 상황이 다릅니다. 그곳에서는 이미 설정된 궤도의 추구―2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 목표는 전자기적(電磁氣的) 현상(現象)의 이해였음에 틀림없었지만―는 저절로 공간과 시간의 구조라든가, 인과법칙의 타당성과 같은 철학적인 근본적 위치가 문제되는 그러한 곳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바로 앞조차 분명히 내다볼 수 없는 신천지가 열렸으며, 따라서 명확한 대답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물리학자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활동하지 않으면 아니 되리라고 믿어집니다. 이러한 분야에서 내가 무엇인가 공동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매력 있는 일로 생각됩니다.”

                                                                       30 ~ 31


(발터)

<네가 그렇게 흥미 있어 하는 상대성이론만 하더라도 세기의 전환기에 공간에서의 지구의 운동을 빛의 간섭현상(干涉現象)을 이용해서 증명하려고 시도하였을 때 경험한 어떤 사실에서 발단되었다는 것을 어떤 대중과학 서적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런데 이같은 증명이 실패하였을 때 사람들이 이 새로운 경험이 그것을 새로운 내용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표현 가능성의 확장, 다시 말해서 물리학의 개념체계의 확장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는 공간과 시간과 같은 그렇게 기본적인 개념이 철저하게 변화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예견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에 시간과 공간에 관한 개념에 무엇인가 변화가 있어야 하고 또 변화되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것을 처음으로 인식하였던 것은 아인슈타인의 위대한 발견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너의 물리학에 대한 이야기를 18세기 중엽의 음악의 발전과 비교하고자 한다. 당시 개개 인간의 감정세계는 더딘 역사적 과정을 통하여 우리들이 루소 또는 괴테의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시대의 인식 안으로 들어왔고, 그래서 저 위대한 고전파(古典派)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등이 표현수단을 확장함으로써 이같은 감정 세계의 적절한 표현을 성공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음악에서는 새로운 내용의 빈약성을 걱정하기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표현 가능성의 과잉 상태는 오히려 나를 불안하게 할 뿐이다. 오늘의 음악은 지나치게 부정적인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 느낌이 든다. 사람들은 옛날의 조성(調性)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 조성(調性)을 가지고는 더 이상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새로운 강한 내용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은 그 영역은 이미 다 소진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 조성을 버린 후에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음악가들 사이에 정설이 없다. 다만 더듬는 시도만이 있을 뿐이다. 현대자연과학에 있어서는 문제설정이 뚜렷하며 그 설정된 문제의 해답을 찾는 것이 과제이다. 현대예술에 있어서는 바로 그 문제설정 자체가 애매하다.>

                                                                       32 ~ 33


“이웃에서는 어째서 물질세계에서는 항상 반복되는 같은 형태와 성질이 존재하느냐 하는 근본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면 물이라는 액체는 얼음이 녹는다든지 수증기가 액화할 때, 또는 수소가 연소할 때도 항상 그 모든 특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똑같은 것이 새롭게 형성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냐 하는 근본적인 물음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물리학에서는 이와 같은 사실이 항상 전제되어 왔으나 한번도 이해되어 본 일은 없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물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가정한다면, 화학(化學)은 이 개념을 효과 있게 사용해 왔지만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뉴턴의 운동법칙을 가지고는 그 같은 물질의 최소부분의 운동의 안전도를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곳에서는 원자들이 항상 반복하여 같은 상태로 배열되고 운동하고, 그 결과 동일한 안정된 특성을 가진 원소들이 반복해서 형성된다는 말이 된다. 이와 같은 새로운 자연법칙에 관해서는 20년 전에 발표된 플랑크 양자론(量子論)에서 최초로 시사된 바가 있다. 그리고 덴마크의 물리학자 보어(Niels Bohr, 1885~1962)가 플랑크의 아이디어를 영국에서 러더퍼드가 발전시켰던 원자의 구조에 관한 표상과 결부시켰다. 그때 그는 처음으로, 내가 지금 이야기한 원자세계에서의 기이한 안정성에 대하여 빛을 던질 수 있었으나 조머펠트가 생각하는 바와 같이 이 영역을 명백하게 이해하기에는 아직 거리가 멀다. 따라서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이 영역에서 사람들이 새로운 관련성을 발견할 수 있는 신 개척지가 열려 있다고 생각된다. 아마도 사람들이 이 영역에서 자연법칙을 올바로 정식화한다면 화학 전체를 원자물리학으로 귀속시킬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영역을 올바르게 찾을 수 있는 정확한 새로운 개념을 찾아내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날에 있어서는 사람들이 음악에서보다는 원자물리학에서 더 중요한 연관성과 더 중요한 구조를 추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부터 150년 전에는 상황이 정반대였다는 사실을 나는 또한 기꺼이 인정한다.”

발터가 대답하였다.

<그렇다면 너는 그 시대의 정신적 구조에 기여하려고 생각하는 개인은 역사적인 발전이 바로 그 시대에 그에게 설정해 준 가능성에 따라야 한다는 말이냐? 모차르트가 우리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도 역시 오늘날의 작곡가들과 같이 무조(無調)의 실험적 음악만 작곡하고 있었을까?>

“물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아인슈타인이 12세기에 살았다면 그는 확실히 별다른 중요한 자연과학의 법칙을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33 ~ 35


(롤프)

<음악가의 경우 우선 악기의 기술적 숙달을 위해서 무한히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가령 그것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이미 수백 명의 음악가들의 해석을 거친 곡목을 반복해서 연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네가 물리를 공부하는 데 있어서도,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이 이미 고안해 놓은 장치를 끈기 있게 힘들여서 만들지 않으면 안 될 것이고, 이미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예리하게 통찰된 수학적인 고찰을 뒤따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우리가 「일꾼」에 속하는 한 우리는 끊임없이 훌륭한 음악과 접촉해야 할 것이며, 그러다가 가끔 어떤 해석이 특별히 잘 되었다는 데 만족을 느끼는 것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이 될 것이다. 너의 경우에는, 때로 어떤 관계를 종전보다 더 잘 파악한다든가 어떤 현상을 선배들보다 더 정확하게 측정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좀더 중요한 것에 기여할 수 없는지, 또는 어느 결정적인 자리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다든지 하는 것을 너무 지나치게 계산해서는 안 될 것으로 생각한다. 아직 개발될 여지가 많이 남아 있는 신 개척지가 있는 영역에서도 지나친 계산은 금물이라고 생각한다.>

깊은 생각에 잠겨 귀를 기울이고 있던 발터의 어머니가 우리를 향해서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타이르듯이 입을 열었다.

<아마도 「왕의 일꾼」에 대한 비유는 항상 잘못 해석되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우리들에게는 모든 영광은 왕의 행위로부터 나오고 일꾼의 노동은 다만 보조적인 부속물같이 생각되고 있지만 사실은 그 반대가 아닐까요? 왕의 영광은 근본적으로 일꾼의 노동에 그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일 겁니다. 도대체가 그 영광이라는 것은, 오로지 일꾼들의 다년간에 걸친 힘든 노동과 그 노동으로부터 나오는 기쁨과 성과가 거두어질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지요. 아마도 바하나 모차르트 같은 인물들이 음악의 왕으로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은 수많은 무명의 음악가들이 200년에 걸쳐 최고의 세심성과 성실성을 가지고 그들의 사상을 재현하고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청중들에게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

역사적인 발전과정을 보면 모든 분야에 「긴 침묵의 시대」와 「천천히 발전하는 시대」가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시대에 있어서도 가장 세부적인 데 이르기까지 성실하고 정확한 작업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35 ~ 36


나는 연로한 린데만 교수와의 대화, 그의 애완용 검은 삽살개, 그리고 바일의 책 《공간(空間) 시간(時間) 물질(物質)》의 독서에 대하여 말하였다. 볼프강은 나의 이 말에 몹시 재미있어 했다.

그는 말하였다.

<그것은 내가 상상한 대로이다. 린데만 교수는 말하자면 수학적인 엄정성(嚴正性)에 대한 광신자(狂信者)이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는 모든 자연과학, 특히 수리물리학(數理物理學)은 허튼 수작에 불과하다. 바일은 확실히 상대성이론에 관해서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있다. 까닭에 린데만 교수에게 있어서는 바일은 정통적인 수학자의 반열에서 제외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상대성이론과 원자론의 의의에 대한 나의 질문에 대하여 볼프강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소위 특수상대성이론(特殊相對性理論)은 이미 완전히 완결되었으며, 따라서 사람들은 예부터 내려오는 물리학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쉽게 배우고 또 응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그것은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더 이상 흥미거리가 안 된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 또는 중력이론(重力理論)은 그런 의미에서 완결되었다고 생각할 수 없다. 가장 어려운 수학적 유도식(誘導式)을 가진 100페이지가 넘는 이론인데도, 그 이론에서 단 하나의 실험만이 나왔다는 사실만 가지고도 그 이유는 불충분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아닌지를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이론은 새로운 사고의 가능성을 열었으며, 따라서 사람들은 그것을 매우 신중하게 다뤄야 할 것이다. 나는 최근 일반상대성이론에 관하여 논문을 하나 썼는데, 바로 그 때문에 나는 원자론을 근본적으로 훨씬 더 흥미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원자물리학에 있어서는 아직 이해되지 않은 실험결과들이 얼마든지 나뒹굴고 있다. 한곳에서는 자연을 이렇게 진술하고 있는데 다른 곳에서는 전혀 모순된 진술이 나오고 있다. 현재로서는 불충분한 대로라도 어떤 연관성을 갖는 모순 없는 상을 그릴 수가 없는 상태에 놓여 있다. 덴마크의 닐스 보어는 외계로부터의 교란에 대한 원자들의 기묘할 정도의 안정성과 플랑크의 양자가설(量子假說)을 결부시키는 데 성공하였으며―물론 그것도 충분한 것은 못되지만―극히 최근에 보이는 원소들의 주기적 체계와 개체원소(個體元素)들의 특성을 완전히 이해하는 데 성공했다고 듣고 있다. 그러나 그도 앞서 말한 모순들을 완전히 극복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그가 어떻게 이것을 성취해 나갈 것인지는 나도 알 수가 없다. 그러니까 이 모든 영역에 걸쳐서 사람들은 암중모색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바른 길을 찾기까지는 아직도 몇 해가 더 걸릴 것이라고 생각된다. 조머펠트 교수는 사람들이 실험을 근거로 하여 새로운 규칙성을 추측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옛날 피타고라스 학파의 학자들이 흔들리는 현(弦)의 진동(振動)의 조화를 믿었던 것과 같이 조머펠트는 수의 관계를 믿고 있으며, 일종의 수의 신비교(神秘敎)를 믿는 신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의 과학의 이와 같은 측면을 「원자신비(原子神秘)」라고 즐겨 부르고 있지만, 지금까지 아무도 그 이상은 모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마도 지금까지의 물리학의 커다란 폐쇄성을 잘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더 쉽게 올바른 길을 찾아낼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마도 그러한 뜻에서 너는 유리한 자리에 서 있는지도 모르지.렇다고 모른다는 것이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지.>

이렇게 말하면서 볼프강은 짓궂게 미소지었다.

이와 같이 약간 무례한 말을 하면서도 내가 지금까지 물리학을 전공하기 위하여 기초로서 준비한 모든 것을 대체로 잘된 것으로 인정해 주었다. 나는 순수수학 쪽을 전공으로 택하지 않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린데만 교수의 사무실에 있는 그 검은 강아지는 「끊임없이 악을 원하는, 또 끊임없이 선을 창조하는 저 힘의 한 부분」이라는 파우스트의 글로서 항상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게 되었다.

                                                                       39 ~ 40



3 현대물리학에서의 「이해(理解)」라는 개념



볼프강은 나에게 조머펠트의 세미나에서 대단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이해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물었다. 나는 도대체 자연과학에서 「이해」란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분명치 않았기 때문에 알지 못한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성이론의 수학적 구조는 나에게 그다지 어려움을 주지는 않았으나, 어째서 운동하고 있는 어떤 관찰자는 「시간」이라는 말을 정지하고 있는 관찰자와는 다르게 생각하는지를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시간개념의 혼란은 나에게는 아직도 불분명한 것으로 남아 있었다.

볼프강이 반박하였다.

<그러나 네가 수학적 구조를 이해한다면 너는 어떠한 실험에서도 정지하고 있는 관찰자와 운동하고 있는 관찰자가 각각 지각하고 또한 측정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계산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너는 우리가 계산이 예언하는 것과 동일한 실험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가정(假定)을 뒷받침하는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너는 그 이상의 무엇을 또 요구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이 바로 나의 어려움이다.”

나는 대답하였다.

“사람들이 무엇을 더 이상 요구해야 하는지를 나도 모르고 있다는 점이 나의 어려움인 것이다. 나는 수학적 구조를 움직이고 있는 그 논리에 내가 기만당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너는 내가 그 이론을 머리로써는 이해하고 있지만 아직 가슴으로는 모르고 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물리를 배우지 않고서도 우리는 「시간」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고 믿고 있다. 우리의 모든 사고와 행위는 항상 이같이 소박한 시간개념을 이미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다음과 같이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사고는 이 시간개념을 사용할 수 있으며, 이것은 그것으로 우리가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고. 따라서 우리가 지금 이 시간개념이 변해야 된다고 주장한다면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와 사고도 바른 길을 찾는데 필요한 작업도구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데, 나는 이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 경우에 나는 공간과 시간을 직관형식(直觀形式)으로서 천적으로 표현하고, 또 그럼으로써 그것들이 이전의 물리학에서도 타당한 것으로 보였듯이 이 기본형식에 절대적인 권리를 부여할 것을 바라는 칸트를 인용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다만 그렇게 기초적인 개념을 변화시킬 때 우리의 사고도 언어도 불확실한 것이 되고 만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을 뿐이다. 바로 이 불확실성은 이해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44 ~ 45


(볼프강)

<「철학은 오로지 이 목적을 위해서 고안된 명명법(命名法)의 조직적인 남용이다」라는 정의(定義)도 명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절대성의 요구는 처음부터 거부되어야 할 것이다.

……

아인슈타인은 그의 상대성이론에서 시간은 시계로부터 읽어내는 것이라는 평범한 확인에서부터 출발하였다. 네가 그와 같은 평범한 의미를 받아들인다면 상대성이론에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한 이론이 관찰의 결과를 정확하게 예고하는 것이 허용되는 한 그 이론은 이해를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게 된다.>

볼프강은 이에 대하여 몇몇 조건들을 덧붙였다.

<그러나 네가 말한 것은 사람들이 꼭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매우 중요한 몇몇 전제 하에서만 타당한 것이다. 첫째로 이론의 예언은 전후 모순이 없이 분명하게 일관되어 있다는 것이 확실해야 한다. 상대성이론의 경우에 있어서는 이것은 간단하게 내다볼 수 있는 수학적 구조에 의해서 보증되고 있다. 둘째로는 그것이 어떤 현상에는 적용될 수 있고 어떤 것에는 적용될 수 없다는 한계가 이론의 개념적 구조에서부터 나와야 한다. 왜냐하면 한 이론이 세계의 모든 현상을 예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전제가 다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사람들이 그 영역에 속하는 모든 현상들을 예언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완전한 이해와 통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나는 확신이 가지 않는다. 즉 어느 경험 영역을 완전히 이해하였다고 하더라도 미래의 관찰의 결과를 정확하게 미리 계산할 수 없는 그러한 역(逆)의 결과도 생각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

“너는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 아리스탈코스가 이미 태양이 우리 행성계(行星系)의 중심에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생각했던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생각은 히파르코스에 의해 거부되었고 그 후로 잊혀지고 말았다. 그래서 프톨레마이오스는 중심에 정지하고 있는 지구로부터 출발하여 행성(行星)의 궤도를 많은 원궤도(圓軌道)의 중첩, 즉 대원(大圓)과 이 대원(大圓)의 주위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소원(小圓), 즉 주전원(周轉圓)의 조합으로 구성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는 이와 같은 이해를 바탕으로 일식(日蝕)과 월식(月蝕)을 미리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었고, 그의 학설은 무려 1500년 간이나 천문학의 확실한 기초로서 중요시되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프톨레마이오스가 행성계를 정말로 이해하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관성(慣性)의 법칙을 알았고 또 운동량의 변화에 대한 원인으로서 힘을 도입하였던 뉴턴이 비로소 중력에 의해 행성의 운동을 실제로 설명한 것이 아닌가? 그가 최초로 이 운동을 이해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것은 바로 나에게는 아주 결정적인 물음으로 생각된다. ”

……

(오토)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은 아주 훌륭한 것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것이 1500년 동안이나 지속됐을 리가 없다. 뉴턴의 천문학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그렇게 훌륭한 것은 아니었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비로소 사람들이 뉴턴의 역학(力學)으로써 전체의 움직임을 프톨레마이오스의 원(圓)과 주전원(周轉圓)에 의한 것보다 더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졌을 뿐이다. 나는 본래 뉴턴이 프톨레마이오스보다 원칙적으로 더 좋은 어떤 것을 만들었다고 인정할 수 없다. 그는 다만 지구의 운동에 대하여 다른 수학적 서술을 하였을 뿐이며, 그 후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보다 더 결실이 풍부한 것임이 증명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볼프강은 이 같은 견해를 너무 지나친 실증주의 일변도의 주장으로 보았다.

<나는 뉴턴의 천문학은 원칙적으로 프톨레마이오스의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뉴턴은 문제 설정에 변화를 가지고 온 것이다. 그는 운동을 주된 문제로 삼은 것이 아니라, 먼저 운동의 원인을 문제삼았다. 그는 그 원인을 힘에서 찾았고, 행성계에서는 힘이 운동보다 간단하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그것을 그의 만유인력(萬有引力)의 법칙으로 기술하였던 것이다. 우리가 뉴턴 이후에 행성의 운동을 이해하였다고 한다면 정확한 관측에 의해 행성의 매우 복잡한 운동을 대단히 간단한 것, 즉 중력에 귀착시킴으로써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프톨레마이오스에 있어서는 사람들은 그 복잡한 것을 원과 주전원(周轉圓)의 중첩을 통하여 서술할 수 있었으나 그것은 단순한 경험적 사실을 받아들인 데 불과했던 것이다. 뉴턴은 그밖에도 행성의 운동에도 던져진 돌의 운동, 진자의 진동, 또는 팽이의 춤 등에서와 같은 운동과 본질적으로는 같은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뉴턴의 역학에서는 이 같은 일련의 상이한 현상들을 동일한 토대 위에, 즉 「질량 × 가속도 = 힘」이라는 유명한 공식에 귀착시킬 수가 있었던 데서 행성계에 관한 뉴턴의 설명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설명을 훨씬 능가하고 있는 것이다.>

                                                                       45 ~ 48


(볼프)

<도대체 자연을 이해한다는 것은 자연의 상호연관성을 구체적으로 통찰하고 그 바닥에 깔려 있는 기구를 인식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지식은 개개의 현상이나 일정한 그룹의 현상에 관한 지식만 가지고는―설사 그곳에서 어떤 질서를 발견하였다 하더라도―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 경험사실들을 서로 연관된 것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어떤 단순한 하나의 근거에다 귀착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때의 확실성이라는 것은, 바로 이 엄청나게 많은 경험사실에 기인되는 것이다. 현상들이 풍부하고 다양할수록, 그리고 이와 같은 현상들을 귀착시킬 수 있는 공통적 원리가 간단할수록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위험성은 적어진다.

……

뉴턴이라든지, 내가 언급한 패러디에 있어서의 결정적인 한 걸음은 그때그때의 새로운 문제설정이었고, 또 그 결과로서의 새로운 명백한 개념형성이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그 결과로서의 새로운 명백한 개념형성이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이해」한다는 것은 그것으로 굉장히 많은 현상들을 통일적으로 연관된 것으로 인식할 수 있는, 다시 말해서 파악할 수 있는 표상이나 개념을 갖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48 ~ 49


외부로부터의 작용에 대하여 물질이 갖는 놀랄 만한 안정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고전적인 의미를 갖는 역학이나 천문학과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는 부가적인 요청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할 그러한 것이었다. 1900년의 저 유명한 플랑크의 연구 이후에 그와 같은 요청을 양자조건(量子條件)이라고 불렀다. 이 조건이 바로 이미 앞에서 언급된 「수(數)의 신비(神秘)」라고 말할 수 있는 기묘한 요소를 원자물리학에 도입하게 되는 것이다. 즉 궤도로부터 계산할 수 있는 어떤 양의 크기는 「플랑크의 작용양자(作用量子)」라고 불리는 어떤 기본단위의 정수배(整數倍)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규칙은 고대의 피타고라스 학파의 학자들이 관찰한 것을 상기시켰다. 그들에 따르면 두 개의 진동하는 현은 같은 장력(張力)아래서 그 길이의 비가 정수비(整數比)를 이룰 때만 화성적(和聲的)으로 울릴 수 있다는 것이다.

……

이와 같이 이해되지 않는 수의 신비와 의심할 수 없는 경험의 성과의 혼합은 우리 젊은 대학생들에게 매우 매력 있는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51


“나에게는 보어의 물리학은 모든 난점에도 불구하고 역시 대단히 매력적인 것으로 보인다. 보어 자신도 그 자체가 모순을 내포하고 있어서 그 형식을 가지고는 잘 맞을 수 없는 그러한 가정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틀림없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와 같이 근거 없는 가정으로 진리의 일부를 내포하고 있는 원자현상에 관한 묘상(描像)에 도달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확실한 직관(直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보어는 어떤 화가가 붓과 물감을 사용하듯이 고전역학이나 양자이론을 이용하고 있는 데 불과하다. 붓과 물감이 바로 그림은 아니며 그림물감이 결코 실재는 아닌 것이다. 그러나 예술가와 같이 심안(心眼)에 미리 어떤 묘상(描像)을 가지고 있다면 붓과 물감을 통해 불완전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는 어떤 것을 그리게 된다.

                                                                       53 ~ 54


북유럽 사람 특유의 몸매를 가지고 있는 덴마크 사람인 이 물리학자는 가볍게 머리를 기울인 채 약간 당황한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단상에 나타났다. 단 위로 활짝 열린 창문을 통해 괴팅겐의 여름빛이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보어는 조용하고 매우 부드러운 덴마크의 액센트로 말하였다. 그가 자기 이론의 가정(假定)을 하나하나 설명할 때는 조머펠트 교수의 말씨보다 훨씬 주의 깊고 조심성 있게 신중하게 말하는 것이다. 조심성 있게 표현되는 한마디 한마디 뒤에는 긴 사색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

보어는 그 결과를 계산과 증명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관과 추측을 통해 얻은 것이라는 것, 그리고 괴팅겐의 고도로 앞서 있는 수학자들의 아성 앞에서 자기의 이론을 변호하는 것이 그에게는 매우 어려운 과제였다는 것을 나는 바로 감지할 수 있었다.

                                                                       55


(보어)

<내 출발점은, 지금까지의 물리학의 관점에서 볼 때는 그야말로 경이(驚異)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물질의 안정성이었습니다. 내가 안정성이라는 말로써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물질이 항상 반복하여 같은 성질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 또 같은 결정(結晶)을 반복 형성한다는 점, 그리고 항상 같은 화학종합(化學綜合)이 생긴다는 점 등등입니다. 이것은 외부의 작용에 의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난 다음에도 철원자(鐵原子)는 결국 같은 성질을 갖는 철원자(鐵原子)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고전역학(古典力學)을 가지고는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것이며, 더욱이 한 원자가 어떤 행성계와 유사하다는 생각을 가지고는 이해될 수 없는 일입니다. 따라서 자연에는 특정한 형식을 형성하고자 하는 하나의 경향이 있으며―여기서 나는 「형식」이라는 말을 가장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지만 이 형식이 방해를 받든지 또는 파괴되었다 할지라도 항상 다시 새롭게 그 형식을 성립시키려고 하는 경향이 분명히 있습니다.

……

통일적인 물질의 존재, 그리고 고체의 현존, 이 모든 것은 원자의 안전성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특정한 기체로 채워진 형광등으로부터는 항상 같은 색깔의 광선 즉 정확하게 같은 스펙트럼선(線)을 갖는 발광(發光) 스펙트럼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도 같은 이야기입니다. 이와 같은 모든 사실은 결코 자명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뉴턴의 물리학의 원칙, 즉 사건의 엄격한 인과론적(因果論的) 결정론(決定論)을 받아들인다면 지금의 상태는 바로 그 직전의 상태에 의해 분명히 결정되어야 하는데, 이와 같은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되지가 않습니다. 일찍부터 이와 같은 모순이 나를 괴롭혔던 것입니다. 물질의 안정성에 대한 놀라움은, 지난 수십 년 사이에 다른 종류의 몇몇 중요한 실험들에 의해서 각광을 받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주목을 끌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학생이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플랑크는 원자계의 에너지는 쉽게 불연속적으로 변화한다는 것, 즉 그러한 체계에 의한 에너지의 방출에 있어서는 내가 후에 정상상태(正常狀態)라고 불렀던 특정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정류소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러더퍼드는 훗날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원자의 구조에 관한 실험을 하였습니다. 나는 맨체스터에 있는 러더퍼드의 실험실에서 이와 같은 모든 문제점을 배웠습니다. 나는 그 당시는 학생과 같이 젊은 나이였고, 그래서 러더퍼드와 이에 관한 이야기를 참으로 많이 나누었습니다. 근자에 이르러 빛의 현상이 더 정확하게 연구되었고, 사람들은 각 화학원소(化學元素)의 특정한 스펙트럼선을 측정하였으며, 여러 가지의 화학적 경험사실들은 또한 원자의 작용에 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하였습니다. 내가 당시 직접 체험하였던 이 모든 발전을 통해서 사람들이 이 시대에서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하나의 문제가 설정되었습니다. 즉 이 모든 것들이 어떻게 연관되느냐 하는 물음입니다. 따라서 내가 한 것이 있다면 이와 같은 연관성을 어떻게 제시할 수 있느냐 하는 것 이외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본래적으로 아주 희망 없는 과제입니다. 즉 이 과제는 이 영역 이외의 과학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와는 전혀 성질이 다른 것입니다. 그 까닭은 지금까지의 물리학에서 또는 다른 모든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사람들이 하나의 새로운 현상을 설명하려고 할 때 이미 현존하는 개념과 방법을 사용하여서 그 새로운 현상을 이미 알려진 현상이나 법칙에 소급시키는 시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원자물리학에서는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개념으로는 결코 충분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뉴턴의 물리학은 물질의 안정성 때문에 원자의 내부에서는 적용이 될 수 없으며, 기껏해야 경우에 따라 하나의 거점을 제공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원자구조에 대한 직관적 서술도 불가능합니다. 직관적이어야 한다는 그 자체가 벌써 고전물리학의 개념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현상은 이미 그와 같은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본래 불가능한 것을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학생은 잘 알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원자의 구조에 대해서 어떤 것을 서술한다고 하지만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말하자면 먼 나라로 표류한 항해자와 같은 상태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56 ~ 58


“그렇다면 선생님이 지난 며칠 동안 강의에서 설명하시고, 더 나아가서 그렇게 생각하시게 된 이유를 말씀하신 바로 그 원자(原子)의 상(像)은 도대체 무엇을 뜻합니까? 선생님은 이 점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보어는 대답하였다.

<이 상(像)은 확실히 경험에서부터 나온 것이며, 학생이 원한다면 추측된 것이라고 말해도 좋지만, 여하튼 이론적 계산에서부터 얻어진 것은 아닙니다. 나는 이 상이 원자의 구조를 잘 서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고전물리학의 직관적 언어론 가능한 범위 내에서 잘 서술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한 가지, 여기서의 언어는 시(詩)에서의 언어와 같이 사용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시에서는 언어란 어떤 사실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청중의 의식 속에 어떤 상을 형성케 하고 그 상에 의해서 사람들 사이에 마음의 결합을 가져오게 하는 것입니다.

……

우리는 양자이론의 역설(逆說)이나 물질의 안정성과 관련되어 있는 이해할 수 없는 특징들이 여러 가지 새로운 경험으로써 점점 더 예리한 빛이 조사(照射)되기를 기대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에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면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원자 안의 이와 같은 비관적인 현상들도 어떻게든지 파악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이 형성되리라고 기대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

                                                                       59 ~ 60


“만약에 원자의 내부구조가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과 같이 그렇게 직관적 서술로써는 접근하기 어렵고, 또 우리가 이 구조에 관해서 말할 수 있는 언어를 소유하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도대체 언제나 원자를 이해할 수 있단 말입니까.”

보어는 잠시 머뭇거린 다음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그때에 동시에 「이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도 배우게 될 것입니다.>

                                                                       60



4 역사에 관한 교훈


나는 적어도 학문만큼은―내가 뮌헨의 시민전쟁에서 아주 싫증이 나도록 들었던―정치적 의견의 싸움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있을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성격적으로 약한 사람들이나 병적인 인간들을 이용하면 학문의 생활도 악의 있는 정치적 격정에 의하여 오염되고 일그러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목격한 것이다.

……

뮌헨의 시민전쟁에서 경험한 사실들을 통하여 나는 오래 전부터 정견(政見)은 큰소리로 선전하거나 실지로 달성하려고 노력하는 그 목표에 의해서 판단할 것이 아니라 다만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한 수단에 의해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부당한 수단은 이미 그 수단을 사용하고 있는 장본인부터 그 명제의 설득력을 스스로 믿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었다. 여기서도 한 물리학자가 상대성이론에 반대하여 사용한 수단은 아주 잘못된 것이고 비현실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 반대자는 분명히 상대성이론을 학문적으로 논박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

이런 에피소드를 얘기하는 것은 망각 속에 잊혀지는 편이 훨씬 좋았을 불유쾌한 사건들을 다시 밝혀보려는 의도에서가 아니라, 후에 닐스 보어와의 대화에서, 학문과 정치 사이의 위험한 공간에서 내가 취했던 태도에서 이때의 일들이 어떤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여하튼 라이프치히에서의 그 경험이 학문 전체의 일반적 의미에 대하여 깊은 실망과 의심을 남긴 것은 사실이었다. 학문에서도 진리가 아니라 이익의 투쟁이 문제가 된다면 학문에 바치는 노력이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하인베르크의 산보에 대한 나의 기억은 결국 이와 같은 비관적인 기분을 억눌러주었다. 나는 보어가 그렇게 자발적으로 제안한 초대가 언젠가는 실현될 것이고, 그러면 그곳에 오래 머물면서 많은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간직할 수 있었다.

                                                                       64 ~ 65


(보어)

<지난 세기에 독일이 획득할 수 있었던 세력의 확장은 너무나 쉽게 진척되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선 독일은 1864년에 우리들에게 많은 쓰라린 추억을 남겨준 덴마크와의 전쟁을 했고, 1866년엔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계속해서 1870년에는 프랑스를 이겼습니다. 이런 사실들은 독일 사람들로 하여금 순식간에 「거대한 중구라파 제국(中歐羅巴帝國)」을 건설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의 제국을 건설하려면―설사 그것이 무력 없이는 성취되기 어렵다고 할지언정―무엇보다도 통합된 새로운 형태의 인심을 얻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프러시아 사람들은 그들의 탁월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이런 인심을 얻는 데는 성공하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독일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너무 엄격하였기 때문에, 그리고 규율에 대한 그들의 개념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납득이 가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독일 사람들은 그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을 더 이상 설득시킬 수 없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작은 나라인 벨기에에 대한 침략은 오스트리아 황태자의 살해에 대한 보복으로서 결코 정당화될 수 없었던 순수한 폭력행위로밖에는 나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실상 벨기에 사람들은 이 암살기도와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었으며, 또 그들은 독일을 반대하는 어떠한 동맹에도 가입한 일이 없었습니다.>

                                                                       68 ~ 69


“우리는 전쟁의 발발에 대하여 이야기하였고, 전쟁이 일어난 첫 시간과 첫날에 세계가 온통 변했던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때에는 그때까지 우리 생활의 중심과제였던―예를 들면 부모와 친구들에 대한 개인적인 관계 같은 것들은 공동운명에 내맡겨진 모든 사람들에 대한 일반적이고 보다 직접적인 관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집, 거리, 그리고 숲, 이 모든 것들이 전과는 전혀 다르게 보였으며, 야곱 부르하르트가 말한 것처럼 「하늘조차도 다른 색조를 띠게」 되었습니다. 나보다 몇 살 위이며 가장 가까운 친구이기도 한 사촌이 군인이 되었습니다. 그가 징집됐는지 자원했는지는 분명치가 않습니다. 지금도 저는 확실하게 알지를 못합니다. 어쨌든 커다란 결정이 내려졌고, 그래서 신체적으로 건전한 모든 사람들은 군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친구는 전쟁을 좋아하지도 않았으며, 독일을 위한 정복전쟁에 참여하고자 하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다는 것을 입대 전에 나눴던 대화로 알고 있습니다. 그가 승리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도대체 그 승리에 대해서는 생각조차도 해본 일이 없었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때 자기 생명의 희생을 요구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것은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매일반이었습니다. 그는 잠시 마음속으로 두려워했는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그는 모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예」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때 나이를 몇 살 더 먹었더라면 나에게도 그와 같은 사건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친구는 얼마 후에 프랑스에서 전사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와 같은 일은 난센스이며 도취이고 암시에 불과하며, 이 같은 생명의 희생요구에는 응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야 합니까? 도대체 어떤 법정이 이와 같은 말을 할 권리를 가질 수 있습니까?”

<아무 의심도 없이 선한 일이라고 확신하고 출전하였던 젊은이들이 느꼈던 것은 아마도 사람들이 체험할 수 있는 가장 큰 인간의 행복에 속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학생이 언급하였던 그 시점에서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어떤 법정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무서운 진리가 아닙니까? 학생이 체험하였던 그 움직임은 가령 가을에 남쪽으로 향하여 떠나는 철새들의 움직임과도 같은 유사성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 철새들 중 어느 한 마리도 누가 남쪽으로 행렬을 결정하였는지, 또 왜 이와 같은 움직임이 일어났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개개의 새들은 일반적인 자극에 의해서, 즉 그 자리에 다른 새들과 같이 있으려는 욕망에 사로잡혀서, 비록 그 움직임이 멸망을 가져온다 할지라도 같이 날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행복한 것입니다. 이 일반적인 움직임에 참가한 젊은이들은 일상생활에서 느꼈던 사소한 근심과 걱정은 다 내동댕이쳐 버릴 수가 있었습니다. 생사(生死)가 문제되는 곳에서는 평상시에 생활을 좌우했었던 사소한 생각들은 이미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

젊은이들의 이와 같은 독특한 상황을 실러의 《발렌시타인의 기사의 노래》만큼 훌륭하게 묘사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학생도 그 마지막 행은 기억하겠지요. 「너희가 생명을 걸지 않으면 결코 생명은 얻어질 수 없을 것이다.」

                                                                       69 ~ 71


<학생은 산이 가까운 뮌헨에서 자랐고, 따라서 학생은 등산여행에 관해서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산이 많은 나라에서 산 사람들에게는 우리나라가 너무나 얕은 평지이기 때문에 학생이 우리나라와 쉽게 친숙해지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이 바다가 매우 중요합니다. 바다를 멀리 바라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무한대의 한 부분을 파악한 것 같이 느껴지곤 합니다.>

“말씀하시는 뜻을 잘 알겠습니다. 어제 해변가에서 본 어부들의 얼굴에서 여기 사람들의 시선은 먼 곳으로 향해 있으며 아주 조용하다는 것을 저는 매우 인상깊게 느꼈습니다. 우리 산사람들은 전연 다릅니다. 그곳에서는 시선이 가장 가까이 있는 조그마한 개체들로부터 아주 복잡한 형태를 하고 있는 바위 덩어리나 빙산을 이루고 있는 산봉우리 너머로 곧 하늘을 향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산사람들은 매우 쾌활한지도 모르겠습니다.”

                                                                       75


“우리는 자주 여러 주일에 걸치는 도보여행을 합니다. 예를 들자면, 지난 여름의 경우 우리는 뷔르쯔부르크에서부터 뢴을 지나 하르쯔 산맥의 남쪽 끝까지 갔다가 거기서 예나와 바이마르를 넘어 다시 돌아 튀링숲을 거쳐 밤베르크까지 갔었습니다. 날씨가 따뜻하면 간단하게 노숙을 할 때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는 텐트에서 자며, 날씨가 지나치게 나쁠 때에는 농가의 헛간을 빌어 건초 위에서 자기도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런 숙소를 얻기 위하여 추수하는 농부들을 도와서 일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큰 도움이 되면 그 대가로 먹을 것을 굉장히 많이 얻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를 제하고는 우리는 숲 속에서 모닥불에 스스로 취사를 합니다. 그리고 밤에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글을 낭독하기도 하고, 노래부르며 악기를 연주하기도 합니다. 많은 옛 민요를 수집하여 바이올린과 플루트의 반주가 붙은 중창곡으로 편곡한 음악을 즐기기도 합니다. 우리는 중세 말엽의 유랑민을 꿈꾸며, 최근의 전쟁과 그에 따르는 내부혼란을, 가장 비참하였으면서도 훌륭한 민요들을 많이 속출시킨 30년 전쟁 당시의 혼란과 비교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시대의 유사성이 독일의 각처에 있는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76


<영국에서는 잘 패할 수 있다는 것이 최고의 덕에 속합니다. 독일에서는 패한다는 것은 치욕에 속합니다. 물론 그들은 패자에 대해서 관용을 베푸는 것을 승자의 덕으로 존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패자가 자기의 패배를 인정하고 모든 쓰라림을 참아내고 승자에 대하여 의연할 수 있는 패자를 존중합니다. 이것은 아마 승자의 관용보다 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이 태도를 끝까지 관철하는 패자는 그럼으로써 다시 승자의 위치로 올라가게 됩니다.>

……

<사람들이 어떻게 팔을 움직여야 하는가를 깊이 생각하면서 돌 던지기를 시도할 때는 적중할 확률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모든 이성(理性)을 무시하고 혹시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단순한 생각 아래 던지면 사정은 좀 달라지게 됩니다. 지금 바로 그것이 일어난 것입니다.>

                                                                       80 ~ 81



5 아인슈타인과의 대화


원자물리학은 닐스 보어가 하인베르크의 산책에서 나에게 예언하였던 바와 같이 결정적인 시기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원자와 그 안전성에 대한 이해를 곤란하게 하고 있었던 난점과 내부의 모순들은 도대체 완화되거나 제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점점 더 예리하게 이 문제를 극복해보려는 어떠한 시도도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하리라는 것이 명약관화하게 내다보였다.

                                                                       82


나는 이렇게 형성된 일반적인 수학적 도식이 자기모순에 빠지지 않고 통용될 수 있다는 아무런 보장도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특히 이 도식에서 에너지 보존법칙이 그대로 적용되는지를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에너지 보존법칙을 무시하고서는 이 도식 전체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내가 여러 가지로 계산을 하는 과정에서 에너지의 법칙을 증명할 수가 있다면 내가 고안한 수학이 실제로 아무런 모순 없이 일관성 있게 발전할 수도 있겠다는 힌트도 얻었다. 그래서 나는 이 에너지의 법칙이 성립되는지의 여부를 더욱 집중적으로 검토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에너지의 표(表), 즉 오늘날의 언어로 말하면 에너지 행렬(매트릭스)의 각각의 항(項)을 오늘날의 척도로 보면 매우 복잡하고 번잡하지만 계산에 의해서 표현할 수 있는 경지에까지 도달하였다. 최초의 1항으로서 에너지의 법칙이 확증되었을 때 나는 일종의 흥분상태에 빠져서 다음 계산이 자꾸만 틀리곤 하였다. 그래서 그 계산의 종국적인 결과가 나온 것은 새벽 3시가 가까웠기 때문이었고, 모든 항에서 에너지의 법칙이 타당한 것으로 증명되었다. 즉 모든 항에서 별다른 무리 없이 문제가 풀려 나갔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수학적으로 하등의 모순이 없는 완전한 양자역학(量子力學)이 성립되었다는 사실을 더 이상 의심할 수가 없었다. 처음 순간, 나는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원자현상의 표면 밑에 깊숙이 간직되어 있는 내적인 미(美)의 근거를 바라보는 그러한 느낌이었다. 나는 이제 자연이 내 눈앞에 펼쳐 보여준 수학적 구조의 풍요함을 추적해야 한다는 데 생각이 이르자 현기증을 느낄 정도였다. 흥분의 도가니에 빠진 나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새벽의 여명을 뚫고 여관이 자리잡고 있는 고지의 남단에 있는 산봉우리를 향해 걷기 시작하였다. 그곳에는 바다에 돌출하여 고고하게 서 있는 바위 탑(塔)이 있었고, 그것은 지금까지 항상 내게 등반의 유혹을 안겨주곤 했었다. 나는 큰 어려움 없이 그 탑에 올라가 꼭대기에서 일출(日出)을 기다렸다.

                                                                       85 ~ 86


<당신이 토론회에서 우리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비상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당신은 원자 안에 전자가 있다고 가정합니다. 그 점에서 당신은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전자의 궤도를 안개상자 안에서는 직접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당신은 전자의 궤도를 전적으로 무시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 기이한 가정의 근거를 좀더 정확하게 설명해 줄 수 없습니까?>

“사람들은 원자 안에 있는 전자의 궤도를 관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방전(放電) 과정에서 한 원자가 방사하는 복사(輻射)로부터 진동수와 원자 내에 있는 전자의 진동수에 해당하는 진폭(振幅)을 유도해 낼 수는 있습니다. 진동수와 진폭 전체에 관한 지식은 지금까지도 물리학에 있어서 전자궤도의 지식에 대한 대용품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관찰 가능한 양들만을 한 이론에 받아들이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에 이 전체를 전자궤도의 대표로서 도입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생각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관찰이 가능한 양만을 물리학의 이론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진지하게 믿어서는 아니 됩니다.>

나는 놀라서 물었다.

“나는 선생님이 바로 이 생각을 선생님의 상대성이론의 기초로 삼으셨다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선생님께서는 사람들은 절대시간에 대해 말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은 절대시간을 관측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운동계(運動系)에서든지, 정지계(靜止系)에서든지 간에 다만 시계가 표시하는 시간만이 시간을 결정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인슈타인이 대답하였다.

<아마 나는 그런 철학을 이용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좀더 신중하게 표현해 보면, 실제로 관찰이 가능한 것을 생각해 내는 것은 발견의 순서로서는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원칙적인 관점에서 말한다면, 관찰할 수 있는 양만을 가지고 한 이론을 세우려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사실은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관찰할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이론입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관찰이란 일반적으로 매우 복잡한 과정입니다. 그 결과 장치 안에서 또 다른 현상이 발생하게 되고, 그것이 돌고 돌아서 결국은 감각인상(感覺印象)을 만들어내어 우리의 의식 안에 현상에서부터 우리의 의식 안에 그 결속을 정착시키게 됩니다. 정착되기까지의 이 전체적인 긴 과정에서 자연이 어떻게 기능하고 있느냐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관찰하였다고 주장하려면 우리는 적어도 자연법칙을 실질적인 면에서 알고 있지 않으면 아니 됩니다. 따라서 이론, 즉 자연법칙에 대한 지식만이 감각인상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관찰할 수 있다고 주장할 때에는 좀더 정확하게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할 것입니다. 즉 우리가 지금까지의 것들과는 일치하지 않는 새로운 자연법칙을 정식화하려고 준비하고 있을지라도, 관찰되어야 할 현상에서부터 우리의 의식까지의 과정에서는 지금까지의 자연법칙이 정확하게 작용하고 있으며, 따라서 종전의 자연법칙에 의지하여 관찰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허용되어 있다고 말입니다. 예를 들어 상대성이론에서도 운동계(運動系)에 있어서 시계로부터 관찰자의 눈까지 이르는 광선은 이전의 이론으로 기대하였던 대로 정확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당신의 이론에 있어서도 당신은 진동하는 원자로부터 스펙트럼 장치에 이르는, 그리고 눈에 이르는 광선의 복사에 관한 모든 기구는 본질적으로 맥스웰의 법칙에 따라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가 않다면 당신이 관찰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양(量)은 전혀 관찰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관측이 가능한 양만을 도입한다는 당신의 주장은 사실은 당신이 정식화하려고 노력한 그 이론의 성격에 대한 하나의 추측인 것입니다. 당신의 이론은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그 시점에서 지금까지의 복사현상(輻射現象)의 기술을 손상하지 않는 것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서는 정당할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절대로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88 ~ 89


<매우 복잡하기는 하지만 어떻게든지 관련성 있는 하나의 감각인상을 하나의 말, 예컨대 「공」이라는 말을 통해 표현하는 가능성을 인식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아이들은 그것을 어른들에게 배우고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면 만족감을 느낍니다. 말의 형성과 그 말에 의한 「공」이라는 개념의 형성은 상당히 복잡한 감각인상을 간단하게 총괄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그것을 일종의 사유경제(思惟經濟) 행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90


“현재까지 우리들은 어떠한 언어로 원자내의 사건을 설명할 수 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확실히 수학적 언어 즉 수학적 도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의 도움을 빌어서 원자의 정상상태나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이행하는 확률을 계산할 수 있지만 이 언어가 우리의 통상적인 언어와 일반적으로 어떻게 연관이 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론을 실험에 적용시키기 위해서는 이 연관성이 무엇인가를 알아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실험결과에 관해서는 아직도 항상 일반적인 언어 즉 고전물리학에서 지금까지 사용되어 온 언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직은 양자역학을 이해하였다고 말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닙니다. 수학적인 도식은 이미 형성되었다고 하더라도 일반적인 언어와의 연관성은 아직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일단 형성되기만 하면 사람들은 안개상자 안에서의 전자의 궤도에 대해서도 아무런 내부모순이 없이 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선생님께서 지적하신 난점을 해결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생각됩니다.”

                                                                       91 ~ 92

아인슈타인이 경고하였다.

<즉 당신은 당돌하게도 사람이 자연에 관해서 알고 있는 것을 이야기하고 자연이 실제로 작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과학에서는 자연이 실제로 작용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입니다. 당신이 자연에 관해서 내가 알고 있는 면과는 다른 면을 알고 있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누구에게 흥미 있는 일입니까? 아마도 당신과 나 정도일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은 아무런 관심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당신의 이론이 옳다는 것을 주장하려면 당신은 나에게 원자가 한 정상상태로부터 빛의 복사를 통해 다른 정상상태로 이행할 때에 그 원자가 실제로 무슨 작용을 하고 있는가를 말해야 할 것입니다.>

                                                                       94


“자연이 갑자기 어느 한 사람 앞에 이때까지 전혀 예상조차 할 수 없었던 현상간의 단순성과 완결성을 펼쳐 보여주었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두려움에 가까운 놀라움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95




6 신세계(新世界)로의 출발


미국 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롬버스의 위대성은 지금까지 동쪽으로만 한정됐던 인도(印度)로의 항해를 지구가 구형(求刑)이라는 데에 착안하여 서쪽으로도 갈 수 있다고 착상한 데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아이디어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생각해 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그의 탐험여행에 대한 세심한 준비도 전문가적인 장비도 아니었다. 이런 일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 역사적 항해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알려져 있었던 모든 육지를 떠나, 그때 보유하고 있던 지식으로는 되돌아간다는 일이 불가능해지는 바로 그 지점에서 더 멀리 서쪽으로 뱃머리를 돌린 바로 그 결단에 있었다고 말하여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과학에 있어서도 실질적인 신세계는 어느 결정적인 자리에서 지금까지의 과학이 의존하고 있었던 그 토대를 박차버리고, 말하자면 허공에 뛰어들 각오가 되어 있을 때에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그의 상대성이론에서 그때까지의 물리학이 확고한 기반으로 삼고 있었던 동시성(同時性)의 개념을 포기하였다. 그리고 많은 지도적인 물리학자나 철학자들은 동시성에 관한 종전의 개념을 포기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여서 상대성 이론의 격렬한 반대자가 되었던 것이다. 과학의 진보는 그 종사자들에게 새로운 사고 내용을 받아들여서 그것을 구체화하는 것을 요구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를 위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신세계에 들어가려면 새로운 사고 내용을 받아들여야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 사고구조를 바꾸어야 할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거나 받아들일 위치에 놓여 있지 않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결정적인 한 발짝을 내딛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나는 라이프치히의 자연과학자대회에서 처음으로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양자론에 있어서도 본질적으로 어려운 난관이 눈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각오해야만 했다.

                                                                       97 ~ 98


1925년에 프랑스의 루이 드 브로이는 빛의 현상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한때 불가능하게 했던 파동적 표상과 입자적 표상 사이의 기묘한 이동성이 물질―예컨대 전자―의 경우에서도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었다. 슈뢰딩거는 이 생각을 더욱 발전시켜서 물질파(物質波)가 전자기적(電磁氣的) 역장(力場)에서 전파될 수 있는 기본법칙을 파동방정식(波動方程式)이라는 하나의 수학적 형식을 빌어 정식화한 것이다. 이와 같은 표상에 따라서 원자각(原子殼)의 정상상태를 어느 한 계, 예를 들어 진동하는 현의 정상진동과 비교할 수 있었다. 이 경우, 보통은 정상상태의 에너지로 생각되었던 양들이 여기서는 정상진동의 진동수로서 나타났다. 슈뢰딩거가 이 방법을 써서 얻어낸 결과들은 새로운 양자역학의 결과들과 매우 잘 일치하고 있었다. 더 나아가 슈뢰딩거는 그의 파동역학이 수학적으로는 양자역학과 동등한 것이며, 따라서 같은 사실에 대한 두 가지 상이한 수학정식화가 문제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 성공하였다. 우리는 이 같은 새로운 발전에 매우 흐뭇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이 새로운 수학적 정식화의 정당성에 대한 우리의 신뢰도를 강화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슈뢰딩거의 방정식을 사용하여 이때까지 굉장히 복잡하였던 많은 계산을 간단히 처리할 수도 있었다.

……

물질파(物質波)란―사람들이 전자파나 음파의 경우에서 이미 익숙해져 있는 바와 같이―공간의 시간 내에서 직관적 현상들이어야 하며 「양자비약(量子飛躍)」 이라든가 그와 비슷한 이해하기 어려운 불연속성 따위는 이론에서 완전히 사라져야만 했다. 나는 이와 같은 해석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우리 코펜하겐 학파의 표상과는 완전히 사라져야만 했다. 나는 이와 같은 해석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많은 물리학자들은 이와 같은 슈뢰딩거의 해석에서 일종의 해방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불안해졌다. 여러 해에 걸쳐서 닐스 보어, 볼프강 파울리, 그리고 많은 다른 사람들과 교환한 대화를 통해서 우리는 원자 내 현상들을 직관적 시공적으로 서술하는 것은 불가능함을 확신하고 있었다.

……

우리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공간과 시간 내에서 일어나는 객관적 표상으로부터는 탈출해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슈뢰딩거의 해석은―이것은 큰 놀라움이지만―결과적으로 불연속성의 존재를 간단히 부인해 버리고 있었다. 원자가 한 정상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이행할 때 그 에너지가 갑자기 변하여 아인슈타인의 광양자(光量子)의 형태로 에너지가 복사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그와 같은 현상에서는 방사가 두 개의 정상적인 물질파를 동시에 야기해 쌍방의 진동의 간섭이 전자파, 예컨대 광파(光波)의 복사를 야기시키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었다. 이 가정은 너무나 대담한 것이며, 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나에게는 생각되었다. 나는 불연속성인 실제적인 사실의 고유한 특징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모든 방증을 긁어모았다. 가장 가까운 논증은 물론 플랑크의 복사공식(輻射公式)이었다. 그것이 실험적으론 옳다는 것을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플랑크의 명제 자체가 불연속적인 정상에너지였던 것이다.

                                                                       97 ~ 99



슈뢰딩거는 파동역학의 수학적 원리를 우선 수소원자의 경우를 예로 들어 논술하였는데, 볼프강 파울리가 매우 어렵고 복잡한 양자역학적 방법으로 해결해야 했던 문제를 통상적인 간단한 수학적 방법으로 훌륭하게 풀어내는 데 모두 황홀할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슈뢰딩거는 마지막에 내가 믿을 수 없었던 파동역학에 대한 물리학 해석에 대해서도 설명하였다.

강의에 이어지는 토론에서 나는 이의를 제기하였다. 특히 나는 슈뢰딩거의 방식으로는 결코 플랑크의 복사공식(輻射公式)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이 반론은 전혀 성공을 거둘 수가 없었다. 빈이 이제는 양자역학은 종언을 고하게 되었으며, 양자비약(量子飛躍)이라든가 그와 비슷한 무의미한 것들에 대해서는 더 논할 필요조차 없게 되었고, 내가 제기한 난점도 조만간 슈뢰딩거에 의해서 틀림없이 해결될 것이라고 날카롭게 대답한 것이다. 슈뢰딩거 자신은 빈의 말처럼 확신을 갖지 않았으나 내가 제기한 문제를 그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다만 시간문제라고 자신하고 있었다. 나의 논박은 아무에게도 더 이상의 인상을 줄 수가 없었다. 내게 호의를 가지고 있던 조머펠트조차도 슈뢰딩거 수학의 설득력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약간 우울하게 집으로 돌아왔고, 그 날 밤에 토론의 경위에 관하여 보어에게 편지를 썼던 것 같다. 아마도 내가 보낸 편지가 계기가 되어서 보어도 슈뢰딩거에게 초대장을 보냈다. 양자역학이나 파동역학에 관한 해석을 철저히 검토하고 토론하기 위하여 9월의 한두 주일 동안 코펜하겐을 방문해 줄 것을 권하였던 것이다. 슈뢰딩거는 이 초청에 동의하였고, 나도 이 중요한 대결에 동석하기 위하여 코펜하겐으로 갔다.

보어와 슈뢰딩거의 토론은 코펜하겐의 역에서부터 시작되어 연일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계속되었다. 슈뢰딩거는 보어의 집에 머물렀기 때문에 그들의 토론은 외부의 방해를 전혀 받지 않았다. 평상시의 대화에서는 매우 사려 깊고 친절했던 보어가 이 토론에서는 상대방에게 한 치의 양보도 없고 아주 적은 불명확성도 용서하지 않는 거의 광인 같은 가차없는 태도로 임하고 있었다. 이 토론이 얼마나 정열적으로 전개되었고, 그 대화의 바탕이 되고 있는 보어와 슈뢰딩거의 확신이 얼마나 뿌리깊은 것이었는가를 여기서 재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아래에 소개하는 대화는 자연에 대한 수학적 표현의 해석을 둘러싸고 두 사람이 열정을 퍼부었던 토론 정경의 극히 퇴색된 일부분이다.

(슈뢰딩거)

그러나 보어 선생, 당신은 양자비약(量子飛躍)이라는 표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한 원자의 정상상태에 있는 전자는 어떤 궤도를 복사하지 않고 주기적으로 회전하고 있다고 주장되고 있는데, 왜 방사하지 않느냐에 대해선 아무런 설명이 없습니다. 맥스웰의 이론에 따르면 전자는 필연적으로 복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자는 한 궤도로부터 다른 궤도로 뛰어 옮겨갈 때 복사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일어나는 전자의 이동은 갑자기 일어나는 것입니까, 아니면 서서히 일어나는 것입니까? 만약 서서히 일어나는 것이라면 전자도 서서히 그 회전에 진동수(振動數)와 에너지를 변화시킬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그때 스펙트럼선(線)의 예리한 진동수가 어떻게 주어지는 것인지에 관해선 아무런 설명이 없습니다. 또 전자의 이동이 갑자기 일어난다면, 즉 비약에서 기인되는 것이라면―그것은 아인슈타인의 광양자(光量子)라는 표상으로 빛의 정확한 진동수에 도달할 수 있지만―이와 같은 비약이 일어날 때 전자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를 문제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 경우에 왜 전자는 전자기현상(電磁氣現象)의 이론이 요구하는 직속적(直續的)인 스펙트럼을 복사하지 않는 것인지, 또 그 비약은 도대체 어떠한 법칙에 의하여 그 운동이 결정되는 것인지를 말입니다. 따라서 양자비약(量子飛躍)이란 도대체가 무의미하다는 결론밖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보어)

<네, 그건 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양자비약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양자비약이라는 현상을 표상할 수 없음을 증명할 뿐입니다. 즉 우리의 일상생활과 지금까지의 물리학의 실험을 서술하는 직관적 개념은 양자비약이라는 현상을 서술하기에는 불충분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을 뿐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문제삼고 있는 현상은 우리들의 직접적인 경험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 다시 말해 우리가 그것을 직접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개념들은 그 현상을 설명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렇게 이상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슈뢰딩거)

<나는 당신과 개념 형성에 대한 철학적 토론을 전개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런 문제는 후에 철학자들이 문제삼을 것입니다. 나는 다만 원자 내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느냐를 알고 싶을 뿐입니다. 그때 그 현상을 어떤 언어를 써서 설명하느냐 하는 문제에는 별로 흥미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해 왔던 바와 같이 원자 안에 입자인 전자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운동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운동을 정확하게 기술하는 일은 지금으로서는 그리 중요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전자가 한 정상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움직일 때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결국은 해명하게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파동역학이나 양자역학의 수학적 형식 안에는 이런 물음에 대한 합리적인 답변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입자로서의 전자가 아니라 전자파(電磁波) 또는 물질파(物質波)가 있다고 그 표상을 바꿀 용의를 갖추는 바로 그 순간에 모든 것은 달라 보이게 됩니다. 그때에는 진동의 예리한 주파수(周波數)에 대하여 놀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빛의 복사는 발진기(發振器)의 안테나에 의한 라디오파(波)의 발송과 같이 간단히 이해될 수 있으며, 전에 해결될 수 없는 것같이 보이던 모든 모순도 사라지게 됩니다.>

(보어)

<아닙니다. 그 말씀은 유감스럽게도 옳지 않습니다. 모순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옮겨진 것뿐입니다. 당신은 이를테면 원자에 의한 빛의 방사에 대하여, 또는 더 일반적으로 원자와 그 주위에 있는 복사장(輻射場)과의 상호작용에 대하여 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당신은 물질파는 있지만 양자비약은 없다고 가정함으로써 난점이 해결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원자와 복사장(輻射場) 사이의 열역학적인 균형에 관한 사항, 가령 플랑크의 복사법칙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유도방법만을 생각해 보십시다. 이 법칙의 유도에서는 원자의 에너지가 불연속적인 수치(數値)를 취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 불연속적으로 변화한다는 사실은 움직일 수 없는 것입니다. 고유진동(固有振動)의 불연속적인 수치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당신은 양자이론의 모든 기반을 문제시하시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슈뢰딩거)

<물론 나는 이 관계를 완전히 이해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당신도 양자역학에 대해 만족할 만한 물리적 해석을 내린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물질파의 이론을 열이론에 적용하는 것이 결국 플랑크의 공식에 대한 훌륭한 설명으로 유도될 수 있으리라고 희망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를 나는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보어)

<아닙니다. 그것을 기대해서는 아니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이미 1925년이래 플랑크의 공식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이 불연속성, 즉 원자현상 내에서의 비약현상을 신틸레이션(scintillation)의 영상막(映像幕)이나 안개상자에서 직접 봅니다. 갑자기 한 섬광이 영상막에 나타나거나 전자가 안개상자를 관통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 같은 비약현상을 간단히 밀어붙이고 마치 없었던 것처럼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슈뢰딩거)

<이 저주스러운 양자비약에서 물러설 수가 없다면 나는 일찍이 이 양자이론에 손을 댄 것을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보어)

<그러나 우리는 당신이 파동역학을 고안해 주신 데 대하여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파동역학에 있어서 그 수학적 명쾌성과 단순성은 양자역학의 형식에 대한 거대한 진보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토론은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장시간 계속되었다. 며칠 후 슈뢰딩거는 발병하고 말았다. 아마도 극도의 긴장에서 온 것이었을 것이다. 그는 고열을 수반하는 감기로 자리에 누워 있어야만 하였다. 보어의 부인이 그를 간호하면서 차와 과일을 날라다주곤 하였는데 보어는 여전히 병상 모서리에 앉아서 슈뢰딩거에게 <당신은 역시 당신은……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라고 되풀이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두 사람 중 누구도 완전한 이해에 도달할 수는 없었다. 두 사람 모두 상대방에게 보여줄 시종 일관된 완전한 양자역학적 해석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슈뢰딩거의 방문 끝머리에 가서 우리 코펜하겐 사람들은 우리가 올바른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 원자현상의 시공적(時空的) 기술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훌륭한 물리학자에게조차 확신시키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또 한 번 인식하였던 것이다.

                                                                       100 ~ 104


나는 막스 본의 명제는 옳다고 생각하였으나 거기에는 아직도 해석에 대한 어떤 자유가 있을 수 있는 것 같이 보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본의 명제는 양자역학에서 어떤 특수한 양에 대한 이미 확인된 해석으로부터 불가피하게 나오는 결과일 것이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

안개상자 안에서의 전자의 궤도와 같이 매우 간단한 현상이 양자역학이나 파동역학의 수학적 형식에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양자역학에서는 처음부터 궤도개념이란 있을 수가 없었고, 파동역학에서는 폭이 좁은 일정방향을 가진 물질복사(物質輻射)는 있을 수 있었지만 그것은 전자의 직경보다는 훨씬 큰 공간영역으로 점차적으로 확대되어 가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실험적 상황은 확실히 이와는 다른 것으로 생각되었다. 우리의 대화는 자주 자정 넘어 늦게까지 계속되었고, 이와 같은 노력이 몇 달에 걸쳐 강행되었지만 여전히 만족스러운 결과에 도달할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우리는 기진맥진한 상태에 이르렀고, 때로는 서로 상이한 사고방면에서 오는 긴장상태도 불러일으키곤 하였다.

그래서 보어는 1927년 2월에 노르웨이로 스키 휴가를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나 역시 모처럼 코펜하겐에 홀로 남아서 이 가망이 없어 보이는 어려운 문제를 안고 혼자 씨름해 볼 기회가 온 것을 내심 매우 기뻐하였다. 나는 안개상자 안에서의 전자의 궤도가 수학적으로 어떻게 표현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물음에 전노력을 집중시켰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극복할 수 없는 매우 어려운 난관에 봉착한 내게는 혹시 우리가 문제를 잘못 제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

그러나 어느 날 밤 자정쯤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나는 갑자기 아인슈타인과의 대화 중에서 아인슈타인의 말, 즉 <이론이 비로소 사람들이 무엇을 볼 수 있는가를 결정한다>는 말을 기억해 냈다. 그렇게 오랫동안 닫혀 있었던 현관문의 열쇠가 여기에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아인슈타인의 이 표현의 귀결을 숙고 음미하기 위해 팰레트 공원으로 심야 산보를 강행하였다. 우리는 안개상자 안에서 전자의 궤도를 볼 수 있다고 너무 경솔하게 말해 온 것이 아닐까? 아마도 사람들이 실제로 관찰한 것은 훨씬 적은 것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며, 부정확하게 결정된 전자의 위치의 불연속적인 한 줄기 결과만을 인지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확실히 사람들이 본 것은 안개상자 안의 물방울이었을 뿐이고, 이 물방울은 전자보다는 훨씬 확대된 것임에 틀림없었다. 따라서 올바른 설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어야 할 것이다. 즉 사람들은 양자역학에서 한 전자가 대략―즉 어떤 부정확성으로서―주어진 장소에 있을 수 있고, 그때 대략―즉 어떤 부정확성으로서―이미 주어진 속도를 가지고 있는 그런 한 상태를 서술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리고 실험에서 어려움에 부딪치지 않도록 이 부정확도(不正確度)를 아주 작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연구소로 돌아온 나는 간단한 계산을 통해 사람들이 그런 상태를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 부정확성이 후에 양자역학에서 불확정성원리(不確定性原理)로 불리게 된 그런 관계가 성립한다는 것도 증명했다. 즉 위치와 운동량(질량과 속도의 곱을 운동량이라고 한다)의 곱은 플랑크의 작용양자(作用量子)보다는 더 작아질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안개상자 안에서의 관찰」과 「양자역학의 수학」 사이의 결합이 결국 이루어진 것으로 나에게는 생각되었다. 이제는 어떠한 임의의 실험에서도 이 불확정성 관계가 성립되는 상태만 나타난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한다. 그러나 실험에서 관찰과정 그 자체가 양자역학의 법칙을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나는 이 문제는 처음부터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따라서 사람들이 이 점을 전제한다면 실험에서 양자역학에 적합하지 않은 상태란 발생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론이 비로소 사람들이 무엇을 관찰할 수 있는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나는 다음날 간단한 실험들에서 이것을 개별적으로 철저하게 계산하는 데에 착수하였다.

                                                                       104 ~ 107


원자 안에서의 전자궤도에 대한 표상과 관련되는 어려운 문제들의 토론에서 부르크하르트 드루데는 사람들이 전자의 궤도를 직접 볼 수 있게 분리능력이 극히 높은 현미경을 만들 수 있는 원천적인 가능성을 주장하였었다. 그러한 현미경은 물론 가시광선(可視光線)으로써는 불가능하지만 강한 감마선을 사용하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원리상으로는 원자 안에서의 전자의 궤도를 이 현미경으로 촬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그러한 현미경도 결국 이 불확정성 관계가 주는 한계를 넘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증명도 성공함으로써 넘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증명도 성공함으로써 이 새로운 해석이 시종일관하고 있다는 나의 확신을 더욱 굳혀 주었다. 이 방법에 따르는 몇 가지 계산을 더 시도해 본 후에 그 결과를 요약해서 볼프강 파울리에게 긴 편지로 보고하였다. 그리고 함부르크에 있던 그에게서 동의한다는 편지를 받고 나는 매우 격려되었다.

닐스 보어가 노르웨이에서의 스키 휴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또 한 번 어려운 토론이 전개되었다. 그는 자기의 생각을 계속 추구하면서 파동상(波動像)과 입자상(粒子像)의 이중성을 해석의 기반으로 삼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의 고찰 중심에는 그가 이번에 새롭게 고안해 낸 상보성원리(相補性原理)가 있었다. 이 원리는 하나의 사건을 두 가지의 다른 관찰방식으로 파악할 수 있는 상태를 서술하는 것이었다. 이 두 관찰방식은 서로를 배척하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서로 보충하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 관찰방식을 병행시킴으로써 비로소 하나의 현상의 직관적 내용이 완전히 풀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불확정성 관계도 상보성원리의 일반적인 상황 중의 어떤 특수한 경우라고 느꼈던 모양이고, 따라서 그는 불확정성 관계에 대해서 몇 가지 유보조건들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당시 코펜하겐에서 일하고 있던 스웨덴의 물리학자 오스카 클라인의 도움으로, 쌍방의 해석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둘은 합의를 보았다.

……

물리학자들과의 공개적인 대결은 1927년 가을 두 학회에서 이루어졌다. 그 중의 하나는 이탈리아의 코모에서 개최된 일반물리학회였으며, 여기서는 보어가 새로운 상황에 대한 총괄적인 강연을 하였다. 또 하나는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있었던 소위 솔베이 회의였다. 이 회의에서 솔베이 재단의 관례에 따라 전문적인 작은 그룹만이 초대되었고, 거기서 양자론에 관한 상세한 토론이 교환되도록 되어 있었다. 우리는 모두 같은 호텔에 머물렀기 때문에 가장 예리한 토론은 회의장에서가 아니라 식사시간에 이루어졌다. 보어와 아인슈타인은 새로운 양자이론의 해석을 둘러싼 논쟁의 주역을 담당하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이 새로운 양자이론의 원칙적인 통계학적 특징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물론 관계되는 체계의 모든 결정적 요소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는 곳에서 확률론적인 진술을 하는 것에 반대하지는 않았다. 이전의 통계역학이라든가 열역학에서도 역시 이와 같은 진술이 그 기초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현상의 완전한 결정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결정요소들을 아는 것이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사랑하는 하나님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는 말은 그가 이 토론에서 즐겨 쓴 표현이었고, 그는 불확정성 관계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는 이 관계가 더 이상 성립될 수 없는 실험을 생각해 내려고 노력하였다. 대결은 대부분 이른 아침식사 때부터, 불확정성원리가 성립될 수 없다고 단정한 그의 사고실험(思考實驗)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되었다. 우리는 물론 아인슈타인이 제안한 사고실험에 대한 분석에 바로 착수하였고, 회의장에 가는 노상에서―대개의 경우 나는 보어와 아인슈타인을 동반하였다―문제설정과 그의 주장에 대한 토론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루가 지나가는 동안에 많은 대화가 오갔으며, 대체로 그 날 저녁 공동식사 때 보어가 아인슈타인이 제안한 실험에서도 불확정성 관계는 피할 수 없다는 점을 증명하기에 이르곤 하였다. 그러면 아인슈타인은 그 자리에서는 약간 난색을 표명하곤 했지만 다음날 아침 식사 때는 전날의 것보다 훨씬 복잡한―불확정성 원리의 불가능성을 증명하는―새로운 사고실험을 들고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저녁때가 되면 이 새로운 제안도 전날의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게임이 며칠 간 계속된 후에 아인슈타인의 친구인 네덜란드의 라이덴에서 온 물리학자 파울 에렌페스트는 아인슈타인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인슈타인! 나는 자네에 대하여 부끄러운 생각이 드네. 자네는 마치 자네의 상대성이론에 반대했던 사람들처럼 이 새로운 양자이론에 반대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 같은 친구의 권고도 그를 설득할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사고의 근거가 되어왔고 과학적인 연구의 기반이 되어 왔던 표상들을 포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나는 새삼 뼈저리게 느낄 수가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저 외계(外界)의 시간과 공간 안에서 우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이 확고한 법칙에 따라 진행되는 물리학적 현상들의 객관적인 세계를 연구하는 것을 필생의 사업으로 삼았다.

따라서 그에게는 이론물리학의 수학적인 기호들은 이 객관적인 세계를 묘사해야 하며, 이에 근거해서 그 세계의 미래적인 행태(行態)에 대한 예언이 가능하여야만 했던 것이다. 이제 사람들이 원자계까지 내려간다면 공간과 시간 안에서의 그 같은 객관적인 세계는 전연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이론물리학의 수학적인 기호들은 실존적인 것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것만을 묘사한다는 사실이 주장될 수 있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그의 발이 디디고 서 있는 발판을 제거해 버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 후 양자이론이 이미 물리학의 확고한 구성요소가 되어버린 지 오랜 때까지도 아인슈타인은 평생 동안 자기 입장을 변경하지 못했다. 그는 양자이론을 잠정적인 과도적 설명으로서는 받아들였지만 그것을 궁극적인 설명으로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하나님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는 주장은 아인슈타인에게 있어서는 흔들릴 수 없는 확고한 원칙이었으며, 그 원칙이 누구에 의해서든 침범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보어는 이런 아인슈타인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을 뿐이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어떻게 다스리실 것인가를 지시하는 것은 우리들의 과제가 될 수 없습니다.」

                                                                       107 ~ 110

7. 자연과학과 종교에 대한 첫 대화(1927)


<아인슈타인이 「사랑하는 하나님」에 대하여 저렇게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는데 이 사실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인슈타인 같은 자연과학자가 종교적인 전통에 저렇게 강한 유대를 갖는다는 것은 참으로 상상하기가 힘드는 일인데 말입니다.>

그러자 누군가가 <그것은 아마 아인슈타인보다 막스 플랑크가 더 심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종교와 자연과학에 관한 플랑크의 발표가 있었는데, 거기서 그는 종교와 자연과학 사이에는 모순이 없으며 서로 잘 조화되어 있다는 견해를 표명하고 있었습니다.>

                                                                       111


“자연과학은 객관적인 물질세계를 다룹니다. 따라서 자연과학은 객관적인 실재에 대한 올바른 진술과 그 연관성을 이해하는 과제를 우리에게 부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는 가치의 세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우리가 마땅히 행해야 하는 것이 무엇이어야 하느냐에 관해서는 얘기되지만 그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습니다. 자연과학에서는 옳으냐 틀리느냐가 문제되고 종교에서는 선이냐 악이냐, 또는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됩니다. 자연과학은 기술적으로 합목적적인 행동에 대한 기반이고 종교는 윤리의 기반이 됩니다. 18세기 이래로 이 두 영역 사이에 발생하였던 충돌은 사람들이 종교에서 말하는 상징과 비유를 자연과학적인 주장들로써 해석하려 할 때에 생기는 오해에 기인하였던 것으로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내가 집에서 양친으로부터 터득한 바에 의하면 이 두 영역은 서로 분리되어 이 세상의 객관적인 측면과 주관적인 측면을 잘 대응시키고 있습니다. 자연과학은 말하자면 「우리가 현실의 객관적인 측면에 어떻게 대응하며 또 어떻게 대결하느냐」라는 방식인 것이며, 종교적인 신앙이란 반대로 주관인 결단의 표현이고 우리는 이 결단에서 가치를 설정하고 그 가치는 우리 생활에 있어서의 행동을 방향지어 줍니다. 이 결단은 대개의 경우 우리가 속해 있는 공동체―그것이 가정이든 민족이든 또는 문화권이든지 간에―에 잘 조화되는 방향에서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 결단은 교육과 주위환경에 의해 가장 강하게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옳으냐? 틀리느냐?」라는 기준에 맡겨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다면 플랑크는 분명히 이 자유를 잘 이용하였으며, 그래서 그는 기독교적인 전통을 선택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사고와 행위는, 인간적인 관계에 있어서도 바로 이 전통의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지며, 어느 누구도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서는 세계의 객관적인 면과 주관적인 면이 아주 훌륭하게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분리는 나에게는 그렇게 잘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인간공동체가 지식과 신앙의 이 같은 날카로운 분열 속에서 언제까지나 살아갈 수 있는지 매우 의심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112 ~ 113


(볼프강)

<종교가 성립되었던 당시에는 그 사회가 가지고 있던 모든 지식이 바로 그 종교의 가치와 이념의 핵심을 이루는 영적인 형태를 구성하고 그 형태로 집합되어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 영적 형태는 그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가장 평범한 사람에게도 어떻게 해서든지 잘 이해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비록 그 비유와 상징이 그가 이해하고 있는 가치와 이념에 막연하게 불확실한 감각으로밖에는 전달되지 않았을지라도 그는 이 영적 형태를 잘 이해하였음에 틀림없다. 평범한 사람이 자기 생활에서 그 가치기준에 따라 결단을 내려야 할 때 그 영적인 형태가 자기가 속해 있는 그 사회의 모든 지식을 대신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확신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믿는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는 「옳게 생각한가」가 아니라 「이 가치들에 의해 인도에 자신을 맡긴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사가 흘러감에 따라 얻어진 새로운 지식이 예부터 내려오는 영적인 형태를 파괴하려고 위협할 경우에는 커다란 위험이 발생하게 된다. 지식과 신앙의 완전한 분리는 아주 한정된 시대를 위한 비상수단에 불과하다. 예를 들면 서양문화권에서는 멀지 않은 장래에 지금까지의 종교의 비유와 상징이 아무런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의 윤리가 단시일 내에 붕괴해 버리고, 지금은 전연 상상할 수도 없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

아인슈타인은 사물의 중심질서(中心秩序)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 질서를 자연법칙들의 단순성에서 감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 단순성을 그의 상대성이론의 발견에서 직접적으로 느꼈으리라고 생각된다. 물론 여기서부터 종교의 내용에 이르기까지는 아직도 먼 거리에 있기는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어떤 종교적 전통에 매여 있지도 않으며, 어떤 인격적인 하느님의 표상과도 전혀 무관한 분이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그에게는 과학과 종교 사이에 어떠한 분리도 있을 수 없으며, 중심질서는 주관적인 동시에 객관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입장이 나에게는 더 좋은 출발점이라고 생각된다.>

                                                                       113 ~ 114


(볼프강)

<보어가 지금 양자이론의 해석에서 저렇게 강조하고 있는 상보성(相補性)의 개념은, 아직은 그렇게 분명하게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정신과학이나 철학에서 결코 미지의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개념이 정밀과학에서 나왔다는 것은 실로 결정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실을 통해서 사람들은 비로소 관찰하는 방법에 예속되지 않은 물질적인 객체의 표상은 실재와는 정확하게 상응하지 않는 「추상적인 외삽(外揷)」을 표현하고 있는데 불과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동양의 철학과 종교에는 대치할 객체가 전혀 없는 인식의 순수한 주체에 관한 상보적인 표상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표상도 영적 정신적인 실재와는 정확하게 상응하지 않는 하나의 추상적인 외삽(外揷)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우리가 지금 이 커다란 연관성이라는 것을 숙고해 본다면 우리는 장래에―예컨대 보어의 상보성에 의해서 지시될 수 있는―중용(中庸)을 지키도록 강요될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을 받아들인 과학은 종교의 여러 가지 형식에 대하여 관대할 뿐만 아니라 전체를 잘 내다보기 때문에 가치세계를 위해서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114 ~ 115


“어떻든지 간에 이 세상에는 항상 인간의 공동체가 존재할 것이고, 죽음과 삶 그리고 그 공동체 안에서 형성되는 생활과 연결되는 위대한 연관성을 기술할 수 있는 공통적인 언어를 발견해야만 한다. 이와 같은 공통적인 언어를 찾는 가운데 역사 안에서 발전된 정신적인 형태는 수세기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그에 따라서 자기 생활을 이뤄왔기 때문에 커다란 설득력을 소유하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네가 지금 말한 바와 같이 그렇게 쉽게 종교가 폐지되지는 않을 것이다.”

                                                                       116


(보어)

<논리적 언어로 명백하게 표현된 것에 대하여 타협을 보이지 않고 가차없이 대치해 나가는 폴 디랙의 태도는 참으로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의견은 「대략적으로 진술되는 것은 분명하게 진술되어야 한다」, 즉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빌면 「사람들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마땅히 침묵을 지켜야할 것이다」라는 것일 것입니다. 디락이 내게 가져오는 논문은 수정된 곳이 하나도 없이 명쾌하게 또박또박 쓴 것이기 때문에 그 논문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하나의 심미적인 즐거움이 될 정도입니다. 경우에 따라 내가 이런저런 부분을 수정할 것을 제안하면 그는 매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개의 경우 수정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여하튼 그의 논문은 아주 뛰어난 것이었습니다. 최근에 나는 디락과 함께 조그만 미술전람회에 갔었는데 그곳에는 모네의 이탈리아 풍경화가 걸려 있습니다. 그 그림은 훌륭한 회청색의 색조를 띤 바다 풍경이었는데, 전경(前景)에는 보트 한 척이 그려져 있었고 바로 그 옆 물 속에 잘 이해할 수 없는 암회색의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때 디락은 그 그림을 바라보면서 「이 점은 허용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예술의 감상으로서는 좀 기이한 방법이긴 하지만 그는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훌륭한 예술작품에서도 훌륭한 과학연구에서와 같이 모든 세부적인 부분이 일의적(一義的)으로 확립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지, 그곳에 우연적인 것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118


(보어)

<나에게는 세계를 객관적인 면과 주관적인 면으로 완전히 구분하는 것은 지나친 강제성을 띤 것으로 생각됩니다. 모든 시대의 종교에서 상징, 비유, 그리고 역설이 말해지고 있는 것은 종교에서 말하고자 하는 진실을 파악하는 다른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진실성이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리고 이 진실의 객관적인 면과 주관적인 면을 나누는 일은 별로 쓸모가 없는 것이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최근 10년 동안 우리가 물리학의 발달과 더불어, 「객관적」이라든가 「주관적」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문제성을 지니고 있느냐를 배웠다는 것을 사고의 해방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상대성원리에서 시작되었으며, 이것에는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진술은 언어를 통해서 일의적으로 전달되었으며, 어떠한 관측자에게도 검증될 수 있는 객관적인 확증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엔 정지하고 있는 관측자에게는 동시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야 하는 두 사건이 움직이는 관측자에게는 반드시 동시적이 아니라는 점에서 「동시각(同時刻)」이라는 개념이 다분히 주관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

사진의 건판이 검게 되어 있다든가 여기서 안개방울이 형성되었다는 진술은 가능하지만 원자 그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확인을 근거로 하여 미래에 관해서 추론하는 것은 관측자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실험적인 문제설정에 달려 있습니다. 여기서 관측자가 사람이든 동물이든 또는 장치이든 그것은 문제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래적 사건에 대한 예언은 관측자나 관측수단과의 관련 없이는 진술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한에 있어서 모든 물리학적인 사실은 객관적인 특징과 주관적인 특징을 같이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19 ~ 120

(보어)

<생물이 어떠한 상처를 입었을 때의 치료과정을 예로 들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합목적적 해석은 잘 알려진 물리화학적 혹은 원자물리학적인 서술과 전형적인 상보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그곳이 소기의 목적 즉 생물의 정상적인 상태로의 재생(再生)으로 통하고 있는가를 묻고, 다른 한편에서는 분자적 현상의 인과론적인 경위에 대해서 묻고 있습니다. 이 두 측면의 서술방식은 서로 배타적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모순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생물체에서도 죽은 물질에서와 똑같이 양자역학의 법칙들의 정당성을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모든 가정에 대한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목적론적인 서술 또한 절대로 옳은 것입니다. 나는 원자물리학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지금까지보다 더 세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단적으로 가르쳐주고 있다고 믿습니다.>

나는 반대하였다.

“우리는 항상 너무 쉽게 종교의 인식론적 측면으로 돌아가버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디락의 종교에 반대하는 변론은 처음부터 윤리적인 측면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디락은 무엇보다도 불성실성을 비판하려 하였으며, 그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자기기만, 즉 모든 것을 종교적 사고와 너무 쉽게 결부시키는 것을 비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지나치게 합리주의의 광신자가 되어버렸고, 나는 합리주의만 가지고는 충분치가 않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8. 원자물리학의 실용주의적 사고방식(1929)


브뤼셀에서의 솔베이 회의 이후의 5년 간은 당시 원자이론의 발전에 종사하였던 젊은 사람들에게는 매우 휘황찬란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우리는 이 5년 간을 「원자물리학의 황금시대」라고 불렀다. 이 무렵에는 몇 년 전만 해도 우리들에게 온 정력을 쏟을 것을 요구했던 커다란 난관들이 모두 극복되고 있었다. 원자각(原子殼)의 양자역학이라고 불리는 새로 개척된 영역으로의 문이 활짝 열려 있었으며, 이곳에서 연구하며 참여하고 이 정원에 열려 있는 열매를 따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제는 새로운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는 수많은 문제들이 제공되고 있었다. 이전에는 순수한 경험법칙과 불확실한 표상과 불명확한 예감들이 실질적인 이해를 대신하였던 여러 곳―즉 고체물리학(固體物理學)이라든가 자성체(磁性體) 및 화학종합(化學綜合) 등의 물리학―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물리학은 철학적인 관점으로서도 이전의 것보다는 결정적으로 우수하였고, 상세하게 연구를 진행시키면 보다 넓고 크고 풍요한 결과가 나타나리라는 예감을 주었다.

                                                                       126


이곳에서 이야기는 미국에서의 학술강연에서 항상 나를 놀라게 하였던 현상에 이르게 되었다. 유럽에서는 새로운 원자이론의 비직관적(非直觀的) 특징들, 입자와 파동 개념 사이의 이중성, 자연법칙들의 순수한 통계학적인 성격들이 매우 백열적인 토론의 대상이 되고, 때로는 새로운 사상이 극심하게 거부당하는 경우까지 있는 데 반하여 미국의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새로운 고찰방식을 아무 거리낌없이 받아들일 용의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나는 버튼에게 그런 차이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버튼은 대략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당신네 유럽 사람들, 특히 독일 사람들은 그와 같은 인식을 지나치게 원리적으로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짙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훨씬 간단하게 생각하지요. 지금까지는 뉴턴의 물리학이 관찰된 사실들에 대한 충분하고도 정확한 기술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전자기현상(電磁氣現象)을 알게 되었고, 뉴턴의 역학을 가지고는 이 전자기현상을 설명하는 데 충분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그렇지만 맥스웰의 방정식이 이 현상을 설명하는 데 우선은 족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원자현상에 관한 연구에서, 고전역학이나 전자역학을 적용해 가지고는 관찰된 결과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전의 이론이나 방정식들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그 결과 양자역학이 성립되었습니다. 근본적으로는 물리학자는 이론가이지만 여기서는 교량을 건설해야 하는 엔지니어와 같이 단순하게 행동합니다. 사람들이 지금까지 사용해 온 정력학적(靜力學的)인 공식이 그의 새로운 건설작업에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가정한다면―예컨대 풍압(風壓)이라든가, 물질의 노화(老化) 또는 온도의 변화 등에 대한 고려를 추가하여 이 공식을 수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더 나은 공식을 만들게 되고, 따라서 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건축설계를 할 수 있게 되어서 모두가 그 발전을 기뻐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때 본질적으로는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요. 물리학에서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당신네들은 자연법칙을 절대적인 것으로 설명하려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당신들은 그 법칙이 변경돼야 할 경우에 봉착하면 놀라는 것 같습니다. 나에게는 이미 「자연법칙」이라는 표현 그 자체가 근본적으로는 해당 영역에서 자연과 교제할 때의 실용적인 하나의 처방에 불과한 것인데, 그와 같은 하나의 형식에다 신성화된 미심쩍은 찬양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여 보는 때가 있습니다. 까닭에 나는 사람들이 모든 절대성의 주장을 포기할 것을 요청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그곳에는 어떤 난관도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127 ~ 128


버튼의 이와 같은 전체적인 고찰방식은 나에게는 전혀 분명치가 않았다. 내 얘기를 보다 잘 이해시키려면 좀더 정확한 표현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이렇게 요점적으로 대답하였다.

“나는 뉴턴의 역학은 대체적으로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 말은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즉 사람들이 어떤 현상을 뉴턴의 물리학의 개념, 즉 위치․속도․가속도․질량 그리고 힘 등으로써 기술할 수 있는 한에 있어서는 뉴턴의 법칙들은 엄격하게 타당한 것이며, 이런 점에서는 앞으로 10만 년이 지난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할 것입니다. 즉 뉴턴의 법칙은 현상이 뉴턴의 개념으로써 기술될 수 있는 정도의 정확성을 가지고 성립됩니다. 이 정확성의 정도가 한정된다는 사실은 이전의 물리학에서도 이미 알려져 있습니다. 그 까닭은 아무도 임의적으로 정확성을 결정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확정성 관계에서와 같이 측정정확성(測定正確性)에 원리적으로 한계가 설정된다는 것은 원자영역(原子領域)에서 사람들이 처음으로 마주친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이야기는 논할 필요가 없겠지요. 측정정확성에 관한 한 뉴턴의 역학은 완전무결한 것이고 장래에 있어서도 충분히 타당할 것이라는 점만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버튼이 대답하였다.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요. 그렇다면 상대성이론의 역학은 뉴턴 역학의 개량이 아니란 말입니까? 그리고 상대성이론은 불확정성 관계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말입니까?>

“네. 말씀대로 불확정성 원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시간과 공간의 구조에 관해서는, 특히 공간과 시간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는 논의가 되었습니다. 관측자의 위치와 운동상태와는 관련이 없이 외관상의 절대시간에 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한에 있어서, 또 우리가 일정한 외연(外延)을 가지고 있는 강체(剛體) 또는 실질적으로 강체라고 볼 수 있는 물체를 문제삼는 한에 있어서는 뉴턴의 법칙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나는 말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매우 고도의 속도를 갖는 현상이 문제될 경우에 그것을 아주 정확하게 측정하려 한다면 뉴턴 역학의 개념으로써는 더 이상 우리의 경험과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운동하고 있는 관측자의 시계가 정지하고 있는 시계보다 느리게 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 등으로 우리는 거기서 「상대성이론의 역학영역(力學領域)」으로 이행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됩니다.

……

뉴턴의 역학으로부터 상대론적 역학 또는 양자역학으로의 이행에서 나타나는 근본적인 변화를 엔지니어의 개량과 동렬에다 두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엔지니어들이 개량이라고 할 때는 모든 말들이 이때까지의 의미를 그대로 지니고 있으며 다만 이전에 등한시하였던 영향들을 보완하기 위하여 공식에다 새로운 보조항을 첨가한 데 불과한 것입니다. 즉 기술자에게 있어서는 도대체가 지금까지의 개념을 바꿀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종류의 변화는 뉴턴의 역학에서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며, 그런 변화에 접근하는 실험이란 도대체 존재하지를 않았습니다. 뉴턴의 역학은 그 통용범위에 있어서 어떤 조그마한 변경에 의하여 개량이 이루어질 수 없으며, 이미 옛날에 그 법칙의 궁극적인 형식을 발견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바로 뉴턴 역학의 영원한 절대성의 주장이 타당하다는 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뉴턴 역학의 개념 자체로써는 도저히 꿰뚫을 수 없는 경험영역이 존재합니다. 바로 이와 같은 새로운 경험영역을 위해서는 새로운 개념구조가 필요하며, 이 새로운 개념구조를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 등이 제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뉴턴의 물리학은 이미 자기 완결성을 가지며, 따라서 엔지니어의 물리적 도구가 개량할 수 있는 어떠한 여지도 결코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주 새로운 개념체계로의 이행은 가능한 것이며, 이 경우에 낡은 체계는 새로운 체계의 극한의 경우로서 이 새로운 체계에 포함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130 ~ 132


“하나의 자기 완결적인 폐쇄영역에 대한 가장 중요한 규준은 아마도 정확하게 표현된, 자체 모순 없는 공리계(公理系)의 존재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동시에 개념들과 그 체계 내에서의 합법적인 관계들을 확고하게 합니다. 이와 같은 공리체계가 어느 정도로 실제성에 적합한지는 물론 경험적으로만 결정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커다란 경험영역이 어떤 이론에 의해서 서술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그 이론은 이론으로서 성립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판단규준을 타당하다고 한다면 지금까지의 물리학을 네 가지의 완결된 영역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봅니다. 즉 뉴턴의 역학, 열의 통계학적 이론, 맥스웰의 전자기역학(電磁氣力學)을 포함한 특수상대성이론, 그리고 새로 성립된 양자역학일 것입니다. 이 각자의 영역들은 이 같은 개념들로 서술될 수 있는 경험영역 내에 우리가 머물고 있는 한, 그 진술이 엄격하게 타당한 개념과 공리에 의해서 정확하게 정식화되는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까닭은 아직도 그 공리계가 불명확하고 우주의 문제에 있어서 아직도 많은 종류의 해답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아직도 미해결의 문제가 많이 남아 있는 「열려 있는 이론」이라고 간주해야 할 것입니다.

버튼은 내 대답에 반쯤 만족하면서도 완결된 체계에 관한 이론의 동기에 관해서 더 알기를 원하였다.

<당신은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의 이행, 말하자면 뉴턴의 물리학에서 양자이론으로의 이행이 연속적이 아니라 어느 정도 불연속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의 확인에 왜 그렇게 큰 가치를 두는 것입니까? 당신의 주장은 분명히 옳습니다. 분명히 새로운 개념이 도입되었고 새로운 영역에서의 문제제기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까? 결국 과학의 발전이란 보다 넓은 자연의 영역을 이해한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이와 같은 발전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든 불연속적으로 개체적인 단계에서 일어나든 나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말입니다.>


“그것은 결코 적은 일이 아닙니다. 소위 엔지니어가 말하는 연속적인 진보라는 당신의 표상은 우리 과학에서 모든 힘을, 다시 말해서 모든 엄정성을 빼앗고 맙니다. 그래 가지고 어떻게 정밀과학을 운운하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요. 만약 사람들이 물리학을 이와 같은 순수한 실용주의적 방법으로 추구해 나가려고 했다면 그들은 그때그때 실험적으로 잘 접근할 수 있는 어떤 부분영역(部分領域)만을 문제삼고, 또 거기서 나타나는 현상들을 근사식(近似式)을 통해서 서술하려고 노력하였을 것입니다. 그때 그 표현이 지나치게 부정확하다고 생각되면 수정항(修正項)을 추가해서 보다 더 정확성을 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위대한 연관성 같은 것에 대한 물음은 도대체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고, 물어야 할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뉴턴의 역학을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보다 뛰어나게 한 아주 단순한 연관성조차 도달할 가능성을 전혀 갖질 못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학문의 가장 중요한 진리규준, 즉 자연법칙에서 항상 빛나고 있는 단순성이 결국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132 ~ 133


다행히도 우리들의 주말은 그렇게 어려운 대화들로만 메워진 것은 아니었다. 첫날밤은 끝없는 호수와 숲으로 둘러싸인 어느 한적한 오두막집에서 보냈다. 다음날 아침에 우리는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로 끼니를 대신하기로 하고 한 인디언의 안내를 받으며 낚시를 나섰다. 그가 안내해 준 수역(水域)에서 우리는 한 시간 안에 굉장히 큰 민물고기 여덟 마리를 잡을 수 있었는데, 이것으로 우리들뿐만 아니라 그 인디언의 가족들에게까지도 풍성한 저녁 식사를 제공할 수가 있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이번에는 인디언의 안내 없이 어제의 그 장소로 다시 낚시를 나갔다. 일기나 바람은 전날과 거의 다를 바가 없었고 우리는 분명히 어제와 같은 수역을 헤매었는데도 불구하고 온 종일 한 마리의 물고기도 낚지를 못했다. 마침내 버튼은 전날 있었던 우리의 대화로 되돌아가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마도 원자세계도 이 한적한 곳에 있는 호수와 물고기 같은 것인지도 모르지요. 인디언이 스스로는 그것을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지 간에 바람과 일기와 물고기의 생활습성에 익숙해 있는 것과 같이 원자세계에 정통하지 못하면 원자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34 ~ 135


새로운 원자물리학의 비직관적 특징들을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받아들이는 미국의 물리학자들의 태동에 대하여 폴은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도 역시 과학의 발전은 다소를 불문하고 연속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으며, 각 과정의 각 단계에서 나타난 개념구조를 문제시하기보다는 가능한 한 확실하고 급격한 진보를 위해서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문제시하는 편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것은 만약 사람들이 실용주의적인 사고방식에서 출발한다면 과학의 발전은 끊임없이 확대되는 실험적 경험사실에 우리 사고를 적응시키는 과정이 되며, 이것은 끝이 없는 것 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시적인 결말이 너무 원칙적인 것으로 생각되어서는 아니 되겠지만, 그 적응방식 자체는 허용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136


자연은 이해될 수 있게끔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었다. 반대로 말을 바꿔 우리의 사고능력은 자연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타당할지도 모르겠다. 이 같은 확신에 대한 기초는 이미 시타른베르크호에서 이루어진 대화 속에서 로베르트가 표명한 것이었다. 자연을 그 본연의 형태대로 형성시키고 우리의 영혼의 구조―따라서 우리의 사고능력의 구조―를 책임지고 있는 힘은 바로 언제든지 같은 질서를 만들려는 그 힘인 것이다.

……

폴과 나는 이 방법론적 문제와 미래의 발전에 관한 우리들의 희망에 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기서 우리 둘 사이의 견해차를 요약해서 표현한다면, 폴의 말은 「사람은 결국 한 번에 한 가지 이상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반대로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결코 한 가지의 어려움만을 해결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항상 많은 고난을 한꺼번에 해결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폴은 특히 많은 어려움을 한번에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건방진 생각이라는 점을 표명하려고 했다. 그는 원자물리학처럼 우리의 일상경험에서 동떨어져 있는 영역에서 어떤 발전을 이룩하려고 할 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편 나는 한 가지 어려움이라도 그것이 정말로 해결되었다면 반드시 그 자리에서 간명하고 위대한 연관성에 봉착하고야 만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한 때에는 처음에는 전혀 상상치도 못하였던 다른 어려움들도 자연히 해결을 보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쌍방의 표현양식은 진리의 한 중요한 부분을 내포하고 있음에 틀림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의 외면적인 모순은 닐스 보어가 자주 말하는 다음과 같은 말에서 우리는 위로를 받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올바른 주장에 대한 반대는 하나의 잘못된 주장이다. 그러나 심오한 진리일 수가 있는 것이다.」

9. 생물학과 물리학 및 화학의 관계에 대한 대화(1930~1932)


저녁때가 되면 우리는 자주 벽난로 주위에 둘러앉았다. 그런데 그 난로를 피우기가 그렇게 쉽지가 않았다. 거실의 창문이 닫혀 있으면 연통으로 바람이 역류하여 연기를 몹시 피우곤 하였기 때문에 적어도 창문 하나를 열어 놓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면 통풍이 잘되면서 난로 불이 잘 타올랐지만 열린 창문을 통해서 불어닥치는 찬바람이 방을 몹시 춥게 만들었다. 역설적인 표현을 좋아했던 보어는 「이 벽난로는 방을 덥히기 위한 것이 아니고 방을 춥게 하기 위해서 설치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140


오스카 클라인이 시작하였다.

<아인슈타인의 원자물리학에 있어서의 우연성의 역할을 받아들이는 데 그렇게 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는 누구보다도 통계역학적인 열이론을 잘 알고 있고, 자신이 플랑크의 열복사에 관한 법칙을 통계역학적으로 훌륭하게 유도하고 있으면서 말입니다. 따라서 그는 이와 같은 생각에 결코 낯설 까닭이 없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양자역학에서 우연성이 원리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양자역학을 거부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내가 다음과 같이 말을 받았다.

“바로 그를 방해하는 것은 그 원리적이라는 데 있을 것입니다. 가령 사람들이 물로 가득 찬 컵 속에서 물분자 하나하나가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보험회사가 그 회사와 계약한 많은 피보험자들의 여명(餘命)을 통계적인 방법으로 계산하는 것과 같이 우리 물리학자들이 통계학적인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데는 아무런 이론을 제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전물리학에 있어서는 개개의 분자의 움직임을 추적하여 뉴턴 역학의 법칙에 따라 그것을 결정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다음 순간에도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양자역학에서는 차원이 전혀 다릅니다. 즉 관찰되어야 할 현상을 교란하지 않고서는 관찰을 할 수 없으며, 따라서 관찰수단에 작용하는 양자효과(量子效果)는 스스로 관찰되어야 할 현상 안에 불확정성을 도입하게 됩니다. 아인슈타인은 이와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바로 그 사실 때문에 만족을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는 우리가 현상의 완전한 분석은 불가능하다고 해석하고 있는 것에 불만인 것입니다.”

                                                                       141


(보어)

<원자물리학의 전체적 구조들, 즉 원자, 분자, 그리고 결정(結晶), 이 모든 것들은 통계학적인 형체들입니다. 그것들은 기본 구성요소, 즉 원자핵과 전자의 일정한 수로써 형성됩니다. 그것들은 외부로부터 방해를 받지 않는다면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아무런 변화를 보이지 않습니다. 설사 외부적인 방해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일단 교란에 대하여 반응하다가도 교란이 너무 크지 않으면 그 교란이 사라진 후에 다시 그 출발상태로 되돌아갑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유기체들은 통계학적인 형체들이 아닙니다. 태고 때 했던 생물과 불꽃과의 비교는 살아 있는 유기체가 불꽃처럼 물질이 그것을 「꿰뚫고 부어지는」 그러한 형태라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측정에 의해서 어떤 원자는 생물에 속하고 어떤 원자는 생물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간하는 일은 확실히 불가능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질문은 다음과 같아야 할 것입니다. 즉 그 형태를 통하여 매우 복잡한 화학적 성질을 가진 어떤 물질이 어느 한정된 시간 내에 「꿰뚫고 부어지는」 그러한 형태를 형성하려는 경향을 양자역학으로 이해할 수가 있는 것인가 라고.>

키비쯔가 반박하였다.

<의사는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에 전혀 관여할 필요가 없습니다. 의사는 한 유기체의 정상상태가 교란 당했을 때 사람이 그 유기체에다 회복의 가능성만 부여한다면 유기체는 정상적인 관계를 회복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시에 의사는 그 과정들이 인과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 즉 역학적 또는 화학적인 침해가 생기면 정확히 물리학이나 화학적인 결과가 일어난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관찰 방식이 본래 전혀 조화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은 대부분의 의사들에게는 안 알려져 있습니다.>

                                                                       148 ~ 149


(보어)

<원리상으로 우리는 한 세포 내에 있는 모든 원자의 위치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측정이 살아 있는 세포를 죽이지 않고서도 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살아 있는 세포가 아니라 죽은 세포에서의 원자들의 배열이 됩니다. 우리가 그때 양자역학에 따라서 관측한 원자의 배열을 기초로 해서 그 다음에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를 계산하였다고 하면,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부르든지 간에 그 세포는 붕괴하고 부패하기 시작한 상태가 되고 말 것입니다. 역으로, 세포를 살아 있는 상태로 유지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매우 한정된 관찰만이 허락될 것이며, 여기서 얻어진 결과는 역시 좋은 정보이기는 하겠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그 세포가 살아 있는지 파괴되었는지를 결정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상보성을 통해서 생물학적인 규칙성이 물리화학적인 규칙성에 의해 제한을 받는다는 것은 잘 이해가 됩니다.”

라고 나는 대화를 계속하였다.

“그러나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과 많은 자연과학자들에게 대단히 견해가 다를 수 있는 두 가지 해석의 선택여지를 남겨놓았다고 생각됩니다. 오늘날의 양자역학이 물리학과 화학을 완전히 융합하고 있는 것과 같이, 생물학이 물리나 화학과 잘 융합된 자연과학의 미래상을 그려보십시오. 그때에 선생님은 이 전체 과학에서의 자연법칙이 마치 뉴턴의 역학에다가 온도라든가 엔트로피 같은 통계학적인 개념을 부가한 것과 같이 생물학적인 법칙을 부가한 단순한 양자역학의 법칙들이라고 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통일적인 자연과학에서 뉴턴의 역학이 양자역학의 극한적인 경우라고 생각되듯이 양자역학이 특별한 극한의 경우로 나타나는 더 포괄적인 자연법칙이 성립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첫 번째 주장의 경우,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은 유기체들을 설명하기 위하여 양자역학적인 법칙에다 어떻게든지 간에 지구의 역사적 발전의 개념과 자연도태의 개념을 첨가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역사적인 요소를 첨가한다 해서 원리적인 어떤 어려움이 나타난다는 이유를 발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유기체들은 자연이 수십 억 년 동안 지구상에서 양자역학적인 법칙의 테두리 안에서 연습시키고 익힌 그러한 형태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견해에 대한 논쟁도 물론 있을 수 있습니다. 예컨대, 항상 변하는 물질을 통해서 매우 특정한 화학적 성질을 일정한 시간 동안 유지시키려는 전체적 형태가 형성되는 경향에 대하여 지금까지 양자역학에서는 아무것도 발견한 것이 없다는 점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두 가지 견해에 대한 논쟁이 어느 정도의 무게를 갖는 것인지를 알 수 없습니다.”

                                                                       150 ~ 151

(보어)

<자연과학에서는 가능한 한 보수적이어야 하며, 관찰의 결과에 대하여 더 이상 설명할 수 없게 되는 경우에 관해서만 확장을 시도하는 것이 항상 최상책이 될 수 있습니다.>

“「우연적인 돌연변이와 도태과정을 통한 선택」이라는 다윈의 현대판 이론은 지구상에 있는 여러 가지 유기적인 형태를 설명하기에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비전문가(非專門家)에게는 우연적인 돌연변이가 일어난다는 사실, 따라서 해당되는 종류의 유전자질(遺傳資質)이 때에 따라서는 이렇게 다른 때는 저렇게 변화한다는 것, 또 환경조건 여하에 따라서 이 변화된 몇몇은 우대되고 몇몇은 저지된다는 것을 생물학자로부터 배우기만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여기서는 일종의 자연도태 과정이 취급되고 있으며, 다윈이 「가장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고만 설명해도 사람들은 이 말을 즐겨 믿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문장에서 하나의 주장이 문제되고 있는지 그렇지 않으면 「강한」이란 말의 정의가 문제되고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주어진 상황 아래서 특히 잘 번성하는 종을 「강한」이라든가 「적합한」 또는 「생활력이 왕성한」 것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 자연도태라는 과정을 통하여 특히 적합하거나 생활력이 왕성한 종이 생긴다는 것을 이해하였다고 할지라도, 가령 사람의 눈과 같이, 이렇게 복잡한 기관들이 그런 우연적인 변화를 통해서만 점차적으로 생겨났다고 믿기란 더 어려운 일입니다. 많은 생물학자들은 확실히 그와 같은 일은 가능하며, 지구의 역사를 통하여 단계적으로 눈이라는 최종적 산물에 이르게 되었는가를 명시할 수 있는 입장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51 ~ 152


“생물학자들 사이에서도 다윈의 도태과정이 복잡한 유기체들의 생성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되는가의 여부에 관한 통일된 견해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보어)

<오늘의 형태에서 다윈의 이론은 두 가지의 독립된 주장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유전과정에서 항상 새로운 형태들이 시도되며, 그 중에서 대부분은 주어진 외적 환경 아래서 다시 사용할 수 없는 것으로 제거되어 버리고 소수의 적합한 것들만 생존하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경험적으로 확실히 옳은 얘기일 것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견해는, 새로운 형태들이 유전자 구조의 순수하고 우연적인 교란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가정됩니다. 그러나 이 두 번째 명제는 우리가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기가 매우 어렵기는 하지만 첫째의 명제에 비하면 훨씬 더 많은 문제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노이만의 논지는 충분히 긴 시간 후에는 거의 모든 것이 우연히 생겨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그런 우연에 의해 설명에서는 확실히 자연이 결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말하자면 어리석을 만치 불합리한 긴 시간이 결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말하자면 어리석을 만치 불합리한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밝히고자 하였던 것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여하튼 우리는 물리적․천체물리학적인 관찰에서 이 지구상에 원시적인 생명체가 발생한 지 기껏해야 수십 억 년밖에는 경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기간 내에 가장 원시적인 생명체로부터 가장 고도로 발달한 생물에 이르는 전체적인 발전이 이루어졌음에 틀림없습니다. 여기서 우연한 돌연변이와 도태과정에 의한 선택작용이 이 시간 내에 가장 복잡한, 고도로 발달한 유기체를 형성하는 데까지 이르는 데 충분한지 여부는 새로운 생물종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생물학적 시간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나는 사람들이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하여 신뢰할 만한 답변을 하기에는 이 시간에 대해서 아는 것이 너무 적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당분간 이 문제는 그대로 방치할 수밖에는 없다고 봅니다.>

내가 계속하였다.

“때때로 양자이론의 확장 필요성이 언급되는 것은 위에서 말한 것 이외로 인간의 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의식」이라는 개념이 물리학과 화학에서 나타나지 않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양자역학에서 무엇인가 이에 흡사한 것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느냐도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유기체까지 포괄하는 자연과학 안에서 의식에겐 그것이 소속될 장소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의식은 실제로 존재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보어)

<그 논증은 일견 매우 설득력 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 우리는 물리학과 화학의 개념들에서 의식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것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의식은 자연의 한 부분이며,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실재의 일부분입니다. 까닭에 우리는 양자역학 안에 깔려 있는 물리학과 화학의 규칙성 이외에 전혀 다른 종류의 규칙성을 기술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153 ~ 154

10. 양자역학(量子力學)과 칸트 철학


젊은 여류 철학자 그레테 헤르만이 철학적인 대화를 위한 특별한 기회를 마련하였다. 그녀는 우리들의 주장이 틀린 것이라고 철저히 믿고 있었으며, 따라서 원자물리학자의 철학적 주장과 대결하기 위하여 라이프치히를 방문했던 것이다. 그레테 헤르만은 괴팅겐의 철학자 넬슨을 중심으로 한 학파에서 공부하고 공동연구를 하였으며, 19세기 초의 철학자이며 자연과학자인 프리스가 해석했던 바와 같은 칸트 철학의 사고방식 속에서 성장한 사람이었다. 철학적인 고찰도 다른 분야에서는 근대수학에서 요구되는 정도의 엄밀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 소위 칸트에 의해서 주어진 인과율이라는 형식이 흔들릴 수 없다는 것을 그 같은 엄밀성을 가지고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양자역학이 인과율의 이 형식을 문제삼았기 때문에 이 젊은 여류 철학자는 이 싸움을 끝까지 결말지으려고 결심하였던 것이다.

<칸트의 철학에서 인과율이란 경험에 의해서 기초가 설정되거나 반증될 수 있는 그러한 경험적 주장이 아니라 반대로 모든 경험을 위한 전제이며, 칸트가 아 프리오리(a priori, 선천적(先天的))라고 부른 사고범주(思考範疇)에 속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계를 파악하는 감각인상은, 그 인상이 선행하는 과정에서 결과되는 어떤 법칙이 없다면, 어떤 객체도 대응할 수 없는 감각의 주관적 유희 이외의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이 법칙 즉 원인과 결과의 일의적인 연결은 사람들이 어떤 지각(知覺)을 객관화하려고 할 때에, 또 사람들이 어떤 것―사물이 아닌 과정―을 경험하였다고 주장하려 할 때에는 이미 이 법칙을 전제하여야 합니다. 또 한편에서는 자연과학은 경험을, 바로 객관적인 경험을 취급합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 의해서도 제어될 수 있는 것이고, 엄밀한 의미에서 객관적일 수 있는 경험만이 자연과학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자연과학은 인과율을 전제해야 하며, 이로부터 인과율이 성립되는 한에 있어서 자연과학이 성립될 수 있다는 결론이 불가피하게 내려집니다. 그러므로 인과율이란 어떤 의미에서 우리들의 감각인상의 소재를 소화하여 경험에 이르게 하는, 말하자면 사고의 도구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일이 이루어지는 범위 내에서만 우리는 자연과학의 대상을 가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양자역학이 이 인과율을 해이케 하면서 여전히 자연과학으로 남아 있겠다는 것은 허용될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나는 여기서 양자이론의 통계학적인 해석에 도달할 때까지의 경험을 우선 설명하려고 했다.

“우리가 지금 라듐 B라는 개개의 원자를 취급하고 있다고 가정하십시다. 한번에 많은 수의 이 원자를, 즉 소량의 라듐 B를 가지고 실험하는 편이 한 개 한 개의 원자를 가지고 실험하는 것보다 쉬울 것은 확실하겠지만, 그렇다고 원리상으로는 하나하나의 원자의 행태를 연구하는 데 어떤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조만간 라듐 B원자가 어떤 방향에서 전자 하나를 방출하고 라듐 C라는 원자로 이행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평균적으로 꼭 반시간 후에는 이러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원자에 따라서는 어떤 것은 1초가 되기 전에 그런 전이가 일어나고, 하루가 지나서야 비로소 일어나는 것도 있습니다. 여기서 평균적이라는 말은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가 많은 라듐 B원자를 취급하는 경우 30분 후에는 대략 절반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인과율의 어떤 파탄을 보게 됩니다. 즉 개체적인 라듐 B원자가 나중이나 이전이 아니라 바로 이 방향에서 전자를 방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원인을 지적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많은 다른 근거로부터 그와 같은 원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레테 헤르만이 반박하였다.

<바로 거기에 원자물리학의 과오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명확한 결과에 대하여 어떠한 원인도 찾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원인 그 자체가 없다는 결론을 유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여기서 나는 아직도 미해결의 문제가 많이 남아 있으니까 원자물리학은 그 원인을 찾을 때까지 계속 연구를 거듭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158 ~ 159


(그레테 헤르만)

<우리 지식이 동시에 불완전하면서 완전할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그것은 도대체가 무의미한 이야기입니다.>


(칼 프리드리히)

<여기서 문제가 되고 있는 외관상의 대립은 마치 우리가 라듐 B 「자체」에 관하여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취급하고 있는 데서 야기되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명한 것도 아니고 본래적으로 옳은 것도 아닙니다. 이미 칸트에 있어서도 물자체(物自體)(Ding an sich)라는 것이 문제성이 있는 개념입니다. 칸트는 우리들이 물자체에 대해서 아무것도 언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것은 다만 지각의 객체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칸트는 지각의 객체를 사람들이 물자체의 모델과 결부시키든가 혹은 정리가 가능하다고 가정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는 본래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익숙해져 있으며, 나아가서 정밀한 형태로 고전물리학의 기초를 형성하고 있는 저 경험의 구조를 아 프리오리로서 주어진 것으로 전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세계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변화하는 공간 안의 물체와 일정한 규칙에 따라 차례차례로 일어나는 사건으로 성립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원자물리학에서 지각은 이미 물자체의 모델로 연결되거나 그것으로서 정리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라듐 B원자 「자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레테 헤르만)

<칸트에 따르면 물자체는 현상 안에서는 비록 간접적으로라도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 개념은 자연과학에서나 전체적인 이론철학에 있어서 사람이 전혀 알 수 없는 것을 표시하는 기능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

또한 선천적인 인식도 「사물들이 그 존재하는 자체 그대로」와는 관계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인식의 유일한 기능이 경험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161 ~ 162


(프리트리히)

<양자이론에서는 칸트가 마치 생각할 수 없었던 지각을 객관화하는 새로운 방법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경험이 지각에서부터 결과되는 것이어야 한다면 모든 지각은 이미 정해져 있지 않으면 안 되는 하나의 관찰상황과도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지각의 결과는 그것이 고전물리학에서 가능하였던 바와 같은 방식으로는 더 이상 객관화되지가 않습니다. 여기서 지금 라듐 B원자가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한 실험이 이루어졌다면, 그럼으로써 얻어진 지식은 이 관찰상황 아래서는 그것으로써 완전한 것입니다.

……

두 가지의 서로 다른 관찰상황이 보어가 「상보적」이라고 불렀던 그러한 관계에 있다면 한 관찰상황을 위한 완전한 지식은 동시에 다른 관찰상황에 대해서는 불완전한 지식을 의미합니다.

……

칸트는 어떻게 해서 실제로 경험이 얻어지는가를 매우 정확하게 관찰하였으며, 나는 그의 분석이 본질적으로 옳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칸트가 공간과 시간이라는 직관형식(直觀形式)과 인과성(因果性)이라는 범주를 경험을 위한 선천적인 것으로 나타냈을 때, 그는 그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설정했으며, 동시에 그것이 내용적으로는 현상에 관한 어떠한 물리이론에 있어서도 같은 형식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위험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상대성이론과 양자이론에 의하여 증명된 바와 같이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면에 있어서는 칸트는 완전히 옳은 것입니다. 물리학자가 설정한 실험들은 우선은 항상 고전물리학의 언어로 서술되어야 합니다. 다른 물리학자들에게 무엇이 측정되었느냐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은 이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전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써 비로소 다른 사람이 그 결과를 검증할 수 있는 상태로 옮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칸트의 「선천적」이라는 개념은 근대물리학에서 결코 극복되지 않았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로는 상대적이 되고 말았습니다. 고전물리학의 개념, 즉 「공간」「시간」, 그리고 「인과율」과 같은 개념들도 그것들이 실험의 기술(記述)에 사용되어야 하는―좀더 신중하게 말한다면 실제로 사용되는―그런 의미에서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이론에 대한 선천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그것은 이  가지 새로운 이론에서 역시 변경되고 있습니다.>

                                                                       162 ~ 163


(헤르만)

<당신들은 이 탐구는 해서는 안 된다고 말은 하지 않지만, 그 이상의 결정요소들이 없기 때문에 이 탐구는 계속하더라도 도로에 그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정식화할 수 있는 불확정성은 다른 실험장치에 대해서 일정한 예언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또한 실험에 의해서 실증되고 있습니다. 만약 이와 같이 이야기를 진행한다면 불확정성이란 말하자면 물리학적인 실재로 나타나며, 그것은 객관적인 특징을 갖게 됩니다. 그런 반면 일반적으로 불확정성은 단순히 미지(未知)의 것으로 해석되고 있으며, 이러한 한에 있어서는 참으로 주관적임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

“원자적인 현상으로부터 법칙성을 추론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공간과 시간 안에서의 객관적인 사건들을 법칙적으로 연결시킬 수 없으며, 그 대신―좀더 신중한 표현을 사용한다면―관찰상황이라는 것과 마주치게 됩니다. 다만 이 관찰상황을 기술하는 데 사용하는 수학적 기호는 사실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가능성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아마도 통계역학적인 열이론에서 온도에 관해서 말해지고 있을 정도의 의미에서 객관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다른 표현으로 간단히 말한다면, 원자는 더 이상 사물도 아니고 대상도 아니라는 것을 칸트는 예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원자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것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이 언어는 일상경험에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원자란 일상경험의 대상이 아닙니다.”

……

(프리드리히)

<언어적 표현의 어려움에 대한 현대물리학에서 끌어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우리가 경험을 기술하는 데 사용하고 있는 모든 개념들은 다만 어떤 한정된 적용범위밖에는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일 것입니다. 「사물」「지각의 객체」「시점」「동시성」「외연」 등과 같은 개념의 경우에 우리는 이런 개념을 가지고는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는 실험상황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개념들이 모든 경험의 전제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항상 비판적으로 분석되어야 하는 그러한 전제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와 같은 전제로부터는 절대적인 주장은 유도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

<당신들의 견해에 따른다면 사람들이 확고하게 설 수 있는 인식의 토대는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까?>

여기서 칼 프리드리히는 매우 대담하게 자연과학의 발전에서부터 좀더 낙관적인 이해에 대한 정당성을 취할 수 있다고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칸트는 그의 선천적인 것으로써 당시 자연과학의 인식상황을 정확하게 분석했지만 오늘의 원자물리학에 있어서는 우리는 새로운 인식론적 상황 앞에 서 있습니다. 그것은 아르키메데스의 지레의 법칙이 당시의 기술적 측면에서는 중요한 실제적 규칙성의 정확한 정식화를 나타내고 있었지만, 오늘의 기술, 말하자면 전자기술에 있어서는 이 법칙은 이미 충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비슷합니다. 아르키메데스의 법칙은 불확실한 의견이 아니라 「참지식」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레에 관해서 말해지는 한에 있어서는 어떤 시대에도 통용될 것이며, 저 멀리 어딘가 있는 다른 성운계(星雲系)의 행성에도 지레가 존재한다면 거기서도 아르키메데스의 주장은 옳을 것입니다. 인류가 자기 지식의 확장과 더불어 지레의 개념만을 가지고는 이미 충분치 않은 기술의 영역에 돌입한다고 하는 진술의 제2부분은 본래적으로 지레의 법칙이 역사적인 발전과정에서 보다 포괄적인 기술체계의 일부가 되고, 따라서 그 법칙이 처음에 가지고 있던 중심적 의의가 그 이후에는 이미 통용될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고 있을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칸트의 인식의 분석은 단순한 불확실한 의견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참지식이며, 반응할 수 있는 생물이 그 외계에 대하여, 우리들 인간의 입장에서는 「경험」이라고 불리는 그러한 관계에 서게 될 때에는 칸트의 철학은 어디에서나 정당한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칸트의 「선천적인 것」도 후에는 그 중심적인 지위에서 추방되고 인식과정의 보다 포괄적인 분석의 일부분이 되고 말 것입니다. 「자연과학적인 또는 철학적인 지식이 어느 시대에도 그 본래적인 진리를 갖는다」는 명제로서 완화하려고 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입니다. 그러나 역사의 발전과 더불어 인간의 사고구조도 변화한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과학의 진보란 다만 단순히 우리들이 새로운 사실을 알고 그것을 이해한다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해한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는 것을 항상 되풀이 새롭게 배워나감으로써 성취되는 것입니다.>

11. 언어에 대한 토론(1933)


「원자물리학의 황금시대」는 이제 급속도로 그 종말을 향하여 달리고 있었다. 독일에서는 정치적인 불안이 증가하고 있었다. 우익과 좌익의 과격분자들이 거리에서 데모를 강행하고, 빈민가의 뒷골목에서는 총격전이 벌어지고, 공개집회에서는 서로를 선동하기에 바빴다. 이와 같은 불안은 눈에 띄지 않게 확산되어 갔으며, 대학생활과 교수회의에까지도 파급되고 있었다. 얼마 동안 나는 이와 같은 위험을 멀리 밀어내고 거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을 무시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가 바랐던 것보다 더 심각하였으며 결국 이 같은 현실은 꿈의 형태를 빌어 나의 의식 속으로 파고들었다.

                                                                       168


프리드리히와 나는 교대로 발자국을 내면서 브륀시타인하우스로 가는 새로운 길을 냈다. 거기서부터 오버라우도르프까지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산을 내려가면서 한 줄기 길을 낼 수가 있었다. 이 길은 오후까지는 보존될 것 같았다.

약속대로 정오쯤 도착하는 기차를 맞이하였는데 보어 일행은 아무도 보이지를 않았다. 그 대신 한 차칸에서 매우 많은 짐이 내려졌다. 그 짐은 스키와 배낭과 외투들로서, 틀림없이 우리 손님들의 것으로 보였다. 이윽고 우리는 역장으로부터 저 짐의 임자들이 어느 역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다가 기차를 놓쳤기 때문에 오후 4시에 도착하는 다음 기차로 올 것이라는 전갈을 받았다. 대부분이 오르막인 대단히 어려운 눈길을, 그것도 해가 진 어두움 속에서 오두막까지 올라가야 할 것이 걱정되었지만 도리 없는 일이어서 나는 주인 없는 짐을 챙기면서 불필요한 짐을 분리시켰다. 체력을 되도록 아껴야 하기 때문이었다. 손님들은 4시 정각에 도착하였다. 나는 보어에게 1미터 이상의 강설로 우리가 내려오면서 길을 내놓지 않았더라면 도저히 등산을 불가능할이만큼 상태가 험하며, 오두막집까지 상당한 모험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보어가 한참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하였다.

<그것 참 이상하군. 나는 산이라는 것을 항상 밑에서부터 올라가는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후에 이 말은 내게 광범위한 고찰을 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미국에서 그랜드 캐년을 방문하였을 때 「역등산(逆登山)」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사람들은 침대차를 타고 해발 2,000미터의 고지인 대평원의 끝에 도착하여 거기서부터 콜로라도강까지 내려가야 하며, 침대차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물론 2,000미터를 다시 오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170 ~ 171


“우리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고전물리학의 개념을 사용해 왔습니다. 마치 개념의 한계나 불확정성 관계는 전혀 들은 적도 없었던 것 같이 말입니다. 우리는 어디에선가 과오를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보어가 대답하였다.

<아니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관찰한 것을 고전물리학의 개념으로 기술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실험이라는 것의 본질에 속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곳에 양자이론의 패러독스가 숨어 있기는 하지만. 한편에서는 우리는 고전물리학과는 다른 법칙을 정식화하면서도 다른 한편―측정하고 사진을 찍는 것과 같은 관측단계―에서는 고전적인 개념들을 아무 주저 없이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얻은 결과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언어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한 측정장치란, 그 장치를 사용해서 얻어진 결과로부터 「관찰될 수 있는 현상」에 대한 일의적인 결론이 유도될 수 있을 때에 한해서, 즉 엄밀한 인과관계를 전제로 할 수 있을 때에 한해서 측정장치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의 원자적인 현상을 이론적으로 기술할 때에는 어떤 지점에서 현상과 관찰자의 사이, 또는 그의 장치 사이에 선을 그어야만 합니다. 이 선의 위치는 아마도 다양할 수가 있겠지만, 관찰자 측에서는 고전물리학의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결과를 표현할 수 있는 다른 어떤 언어도 가지고 있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어의 개념이란 부정확하며 실제로 그 언어들이 한정된 응용범위밖에는 갖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우리는 이 언어에 의지할 수밖에는 딴 도리가 없으며, 결국은 그 언어에 의해서 현상을 간접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펠릭스가 끼어 들었다.

<사람들이 양자이론을 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고전적 개념을 포기하고, 새로이 얻어진 언어로써 원자적 현상을 좀더 쉽게 표현할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요?>

<그것은 전혀 우리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지요.>

보어의 대답이었다.

<자연과학이란 우리가 어떤 현상을 관찰하고, 거기서 얻은 결과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여 그것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데에서 성립하는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무엇이 일어났으며 또 규칙적으로 항상 무엇이 일어나느냐에 관해서 의견이 일치하였을 때에 비로소 사람들은 이해를 위한 기반을 갖게 됩니다. 관찰과 전달의 이 일련의 과정은 실제로 고전물리학의 개념 안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안개상자는 하나의 측정장치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 사진을 보고 플러스 전기로 하전되어 있다는 점 이외에는 다른 전자들과 똑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는 입자가 상자를 통과하였다는 사실을 일의적으로 결론지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이 측정장치가 올바르게 설치되었다는 점, 이 장치는 탁자 위에 나사로 단단히 죄어져 있었다는 점, 카메라로 촬영하는 동안에 흔들리지 않도록 단단히 조립되어 있었다는 점, 그리고 렌즈가 정확하게 맞추어졌다는 점 등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고전물리학에 따라 신뢰할 수 있는 측정이 이루어지도록 모든 조건이 갖추어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확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측정에 대해선 일상생활적인 경험을 말할 때와 본질적으로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는 언어를 사용하여 말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전제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언어가 우리들에게 정도를 찾게 하거나 이해를 시키기에는 매우 불완전한 도구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 도구는 수리과학적인 전제인 것입니다.>

                                                                       173 ~ 175


밤에는 포커놀이를 하면서 즐겼다. 우리들의 포커놀이는 보통 하는 방법과는 약간 다른 것이었다. 우선 거는 돈의 액수를 결정하는 카드의 짝수를 큰 소리로 발표하고 선전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이쪽 카드의 짝수를 신용하게끔 만드는 설득력이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보어에게는 이 놀이 방법이 다시 한 번 언어의 의미에 대하여 철학적인 사색을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가 말하였다.

<여기서 사용하는 언어는 학문에서 사용하는 것과는 아주 판이한 것이 확실하군요. 여기서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실을 속이는 일이 더 중요한 게 분명합니다. 사실 이 놀이에서는 공갈이 한층 더 필요하며, 사람을 어떻게 속일 수 있는가가 문제입니다. 말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상을 그리게 하고 그 표상으로부터 행동을 유발케 합니다. 그리고 냉철한 고찰에서부터 도달할 수 있는 추측보다는 속임수에 의해 생긴 표상이 더 강한 법입니다. 그러나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사고 속에서 충분히 강도를 가지고 이 같은 표상을 발생하게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이것은 우리가 큰소리로 외쳤다고 해서 되는 것은 분명히 아닙니다. 그것은 너무나 단순한 생각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노련한 상인이 몸에 지니고 있는 일종의 숙련에서 오는 상술도 아닐 것입니다. 우리 중엔 그런 상술을 몸에 지닌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우리 중에서 누군가가 그런 상술에 빠진다고 생각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런 확신을 일으키는 능력은 단순히 상대방을 그렇게 믿게 하는 카드의 짝수를 우리 자신이 얼마나 강하게 머리 속으로 생각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176


그렇다면 태초에 무엇이 있었단 말인가? 자연법칙? 수학? 대칭성? 「태초에 대칭성이 있었다」, 그것은 《티마이오스》에서 논한 플라톤 철학과 같은 느낌이 들면서, 1919년 여름 뮌헨의 신학교 지붕에서 읽었던 책이 기억에 떠올랐다.

                                                                       179


“나는 빈 학파에 속해 있는 지나치게 열광적인 실증주의자와의 서신왕래에 약간 다른 것을 주장하였기 때문입니다. 나는 실증주의들이 모든 말은 반드시 완전히 결정된 의미를 가지며, 따라서 그 정해진 의미 외의 말은 사용은 허락될 수 없는 것처럼 주장하는 데 화가 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한 가지 예를 들어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가 존재하는 사람이 방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방안이 환해졌다」고 말하였다며 이의 없이 이해될 수 있을 것이라고 편지를 썼었습니다. 물론 그 경우에 광도계(光度計)상으로는 아무 차이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밝다」라는 말의 물리학적인 의미를 본래적인 것이라고만 받아들이고 달리 사용하는 것은 전용된 것일 뿐이라고 간주하는 태도에 저항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말씀드린 것이 후광의 광륜에 대한 발견에도 어디선가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이야기는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보어가 대답하였다.

<언어란 독특한 문제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한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결코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뜻은 그 말의 문장에 있어서의 연결, 그 문장이 말하여지는 전후 맥락, 그리고 우리가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많은 부수적인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

그는 우리가 듣는 모든 말은 우선 그 말의 주된 의미가 듣는 사람의 의식 속에서 밝게 빛나지만 동시에 별로 확실치 않은 그 밖의 의미도 부수적으로 감지되고, 그래서 다른 개념들과도 결부되면서 그 작용이 무의식의 세계에까지 확산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반적인 언어에서도 그렇지만 시인들의 언어에서는 특히 타당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자연과학의 언어에도 어느 정도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해 왔던 개념들의 적용범위가 얼마나 제한되어 있는가를 바로 원자물리학에서 싫증이 날 정도로 배워왔습니다. 이것은 「위치」라든가 「속도」와 같은 개념만 생각해 보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언어를 논리적인 연결추리(連結推理)가 가능해질 정도로 이상화할 수 있고, 또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와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그 같은 정확한 언어란 일상적인 언어보다는 훨씬 협의적(狹義的)이기는 하지만 자연과학에서는 매우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실증주의의 대변자들이 그와 같은 언어의 가치를 충분히 강조하고 논리적으로 예리하게 정식화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날 때 그 언어가 내용을 상실하게 될 위험성에 대하여 경고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참으로 옳은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자연과학에서 이 이상에 기껏해야 아주 가깝게 접근을 할 수 있지만 절대로 거기 도달은 할 수 없다는 점은 간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까닭은 우리가 실험결과를 묘사할 때 사용하는 언어가 이미 그 통용범위를 정확하게 말할 수 없는 개념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80 ~ 181


“실증주의자들은 언어적으로 진지하게 분석을 시도하면 그곳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되는 가상적인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수없이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비판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보어)

<그와 같은 비판도 진리의 한 부분을 내포하고 있는 점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여기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실증주의에 대한 나의 반론은 내가 거기에 대해 덜 회의적이라는 데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자연과학에 있어서도 근본적으로는 별반 나을 것이 없다는 것을 두려워하는 데 기인하고 있습니다. 좀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종교에서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말에 일의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포기하고 있지만, 자연과학에서는 말에 일의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먼 훗날에는 가능하다는 희망에서, 또는 그와 같은 환상을 갖는 데서부터 출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지만, 사람들은 실증주의자들의 이와 같은 비판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

                                                                       182


(보어)

<설거지는 마치 언어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더러운 설거지물과 더러운 냅킨을 가지고도 접시와 컵을 깨끗이 씻는 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불명확한 개념과 적용범위도 뚜렷하지 않은 논리를 가진 언어를 사용하여 자연에 대한 이해를 명백하게 하는 데 성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

어느 날 오후 내가 프리드리히와 같이 트라이텐의 가파른 언덕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 알프스 영양의 무리를 카메라에 담아보려고 하였을 때 우리 사이에 다시 한 번 언어문제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다. 우리는 나름대로 책략을 썼지만 그 영양 떼에 충분히 접근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사람들의 아주 사소한 낌새나, 눈 위에 나 있는 자국, 나뭇가지가 꺾이는 작은 소리, 아주 미미한 바람이나 냄새 등을 청각이나 후각으로 감지하고 이 모든 것을 위험신호로 간주하여 안전하게 도망치는 동물들의 본능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실은 보어에게 지능과 본능의 차이를 고찰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알프스 영양들이 당신들을 잘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들이 사람들과 같이 생각을 하거나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의 모든 기능은 산악지대에서 어떠한 공격을 만나도 몸을 안전하게 피할 수 있도록 특수화되어 있습니다. 어떤 동물종(動物種)은 자연도태의 결과로 어떤 특정한 육체적 기능을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동물종(動物種)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바로 이러한 특수화된 기능에 의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까닭에 외계의 조건이 심하게 변하면 이들은 변화된 환경에 순응하지 못하고 죽고 맙니다.

……

인간은 어느 의미로는 동물보다 훨씬 더 융통성이 있고 환경에 잘 순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와 같은 융통성으로 특수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사고와 언어의 우선적인 발달로 인하여―보다 일반적인 표현으로 말하자면 지능의 과중한 발달로 인하여―개체적인 목적에 따르는 본능적인 동작에 대한 능력은 오히려 위축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많은 점에서 동물보다 열등한 것입니다. 인간은 동물처럼 예민한 후각을 갖지 못하고 있으며, 저 알프스 영양들같이 마음대로 산을 뛰어 오르내릴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이와 같은 결점을 공간적 시간적으로 광범위한 영역을 지배함으로써 보충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경우에 언어의 발달은 아마 결정적인 제일보였을 것에 틀림없습니다. 그 까닭은 언어란, 그리고 사고한다는 것은―다른 모든 육체적인 능력과는 달리―개체적인 개인 개인 안에서 발달한 능력이 아니라, 개체들 사이에 발전된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어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웁니다. 따라서 언어란 인간들 사이에 펼쳐진 그물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는 자기의 사고 즉 자기의 인식의 가능성으로써 이 그물이 매달려 있는 것입니다.>

                                                                       184 ~ 185


프리드리히가 토론을 계속하였다.

<다시 한 번 알프스 영양과 우리 사이의 차이점으로 되돌아가면, 아까 선생님의 말씀에서는 지능과 본능은 서로 배제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도태과정을 통해서 이 능력이나 저 능력, 즉 하나의 능력만 고도로 발달할 수 있는 것이지 동시에 두 가지 능력이 같이 발전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하시는 것인지, 또는 하나의 가능성이 다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상보성의 순수한 관계를 생각하고 계시는 것인지, 그 어느 편인지요?>

(보어)

<나는 세계에서 적응해 나가는 두 가지 방법이 철저히 다르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행동도 본능에 의해서 취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사람을 평가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사람의 외관과 용모를 토대로 그가 지성적인지, 우리와 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지를 판단할 때에는 우리의 경험뿐만이 아니라 본능도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보어)

<내 제안은 아마도 언어의 힘을 과대평가한 데서 왔던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언어란 실제와의 결합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짜 포커놀이에서는 어쨌든 카드 몇 장이 반드시 탁자 위에 놓여 있게 됩니다. 이때 언어는 한 상의 실제적인 한 부분을 가능한 한 많은 낙관론과 설득력을 가지고 보완하는 데 사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어가 전혀 실제와 동떨어져서 출발할 때에 다른 사람을 믿게 할 만한 암시를 주기란 도저히 불가능한 것입니다.>

                                                                       187

12. 혁명과 대학생활(1933)


1933년 여름 학기초에 내가 라이프치히 연구소에 돌아왔을 때 파괴는 한참 진행되고 있었다. 나의 세미나에 참석하던 유능한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미 독일로부터 망명을 하였고 나머지의 상당수가 망명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의 뛰어난 조수인 펠릭스 블로호도 이민을 결심하고 있었고, 나 자신도 독일에 남아 있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스스로 자문자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189


(혁명가 학생)

<저는 선생님의 강의에 출석하는 것밖에는 선생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피아노를 치시는 것을 경청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가 아니면 음악을 들을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저는 또한 선생님께서 청년운동에 관계하고 계셨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저도 그 운동에 가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국가사회주의의 학생회합이나 히틀러 유겐트의 모임 또는 그보다 더 큰 모임 같은 우리 청년들의 어떠한 모임에도 참석하신 일이 한번도 없으십니다. 저 자신이 히틀러 유겐트의 지도자이기 때문에 선생님을 꼭 한번 우리 모임에 모시고 싶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보수적인 늙은 교수들과 굳은 유대를 가지고 있는 서클에 소속되어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계십니다. 그들이야말로 어제의 세계에서만 살 수 있는 무리들이고, 그 사람들은 지금 새롭게 소생하고 있는 신생독일과는 증오까지는 아니더라도 전혀 인연이 없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처럼 젊으시고 그와 같은 아름다운 음악을 생생하게 연주하시는 분이 오늘날 새로이 건설되고 있는 나라, 또 새롭게 이 나라를 재건하려는 청년들과 그렇게 담을 쌓고 아무런 이해 없이 대립되어 있다는 것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189


<지난번의 패전 이후 사태는 해마다 악화일로를 걸어왔습니다. 우리들이 전쟁에 진 것도, 상대방이 강하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우리가 거기서 무엇인가를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졌습니까? 나이트 클럽이 생기고 카바레가 마구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근면과 노력과 희생적 봉사는 전부 조롱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무엇 때문에 일을 해야 하느냐, 모두가 난센스다, 전쟁에 졌다, 놀아라, 술이 있고 미녀들이 있지 않으냐……그리고 경제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하고 말았지요. 지불해야 하는 배상금 때문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세금을 지불하기에는 지나치게 빈곤한 탓인지는 몰라도 정부는 재정이 어려워지면 마구 돈을 찍어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 나쁘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래서 많은 노약자들이 마지막 재물을 사취당하고 설상가상으로 굶주림에 허덕이게까지 되었는데 어느 누구도 이를 진지하게 걱정해 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정부는 충분한 돈을 가졌고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의 현상은 자꾸만 늘어갔습니다. 그리고 최근의 가장 심한 배덕한 스캔들에는 유태인들이 반드시 끼여 있었다는 사실은 선생님도 잘 아시는 것입니다.

……

사법(司法)은 오래 전부터 정치재판소가 되어 과거의 부패를 영속시키려고만 하였고, 민중의 복지는 아랑곳없이 오로지 지배계급만을 보호하려고 하였습니다. 보십시오! 저 가장 악질적인 부패 스캔들에 얼마나 관대한 판결이 내려졌는가를. 그리고 퇴폐의 풍조는 다른 많은 곳에서도 두드러지게 눈에 띕니다. 현대미술전람회에서는 정신적으로 혼란을 야기하는 터무니없는 작품들이 가장 예술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단순한 일반사람들이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 「당신은 이 작품을 이해하기에는 지나치게 수준이 낮군요」라고 낙인이 찍힙니다. 그리고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무엇을 했습니까?

                                                                       191


“우리도 군비확장을 단념하고 그 대신에 경제적 협력으로 우리를 둘러싼 이웃 나라들과 우호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하는 편이 우리나라의 안전을 위한 더 좋은 방책이 될 것입니다. 군비의 증강은 이웃 나라들의 안전을 위한 더 좋은 방책이 될 것입니다. 군비의 증강은 이웃 나라들의 저항력을 촉진시킬 뿐이며,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의 안보를 해치는 일밖에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보다 큰 정치적인 공동체에 소속한다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안보책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결국 먼 장래에 놓여 있는 목표달성을 위한 정치적 계획에 대한 가치판단은 항상 매우 어려운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을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정치적 운동이란 큰소리로 외치며 실지로 달성하려고 하는 그 목표에 따라서 판단할 것이 아니라, 그 실현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는 수단에 의해서 판단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국가사회주의자의 경우나 공산주의자의 경우에는 유감스럽게도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수단은 참으로 졸렬한 것이며, 장본인들조차도 자기의 이념의 실현을 위한 설득력을 믿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 두 가지 주의로부터 파생되는 어떠한 운동에도 기대를 걸 수는 없으며, 이 두 가지 주의로부터는 독일에 불행만 가져올 뿐이라는 것을 유감스럽지만 확신하고 있습니다. ”

                                                                       195


“학생은 야콥 부르하르트가 혁명의 외교적 최종결과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썼는지를 알고 있겠지요? 「만약에 하나의 혁명이 불구대천의 원수를 만들지 않는다면 이것만으로도 하나의 커다란 행복이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독일인이라고 이런 흔히 있을 수 없는 행복을 차지할 것이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습니까?”

                                                                       196


<선생님께서는 옛 것, 지나간 것, 어제의 것만을 원하시는군요. 선생님의 견해에 따르면 그것을 변화시키려는 모든 시도는 다 잘못된 것이니까, 그러한 생각으로는 젊은이를 설득하기는 이미 틀렸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이 세상에는 새로운 것이란 절대로 일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선생님께서는 선생님의 학문분야에서 새로운 혁명적인 이론을 시작하실 수 있으셨습니까? 도대체 무슨 권리로 말입니다.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이론은 철저하게도 이전의 모든 것을 단절하고 있는데요……>

“플랑크의 양자이론을 생각해 보십시오. 플랑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의 물리학을 변화시키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던 아주 보수적인 정신의 소유자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는 다만 극히 제한된 특정한 문제를 해결할 것을 결심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열복사의 스펙트럼을 이해하고자 하였습니다. 물론 그는 이전 물리학의 모든 법칙을 총동원해서 이를 해결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전의 것을 가지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여러 해가 필요했습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그는 이전의 물리학 테두리를 벗어나는 하나의 가설을 제안했던 것입니다. 그런 이후에도 그는 부가적 가설로써 자기가 옛 물리학을 둘러싸고 있는 벽에다 뚫은 구멍을 막아보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후 계속되는 플랑크의 가설의 추구는 물리학 전체를 근본적으로 개조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러나 개조 후에 있어서도 역시 고전물리학의 개념으로 완전히 파악할 수 있는 물리학의 영역 내에서는 변화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말을 바꾸면, 과학에서는 사람들이 가능한 한 적게 변화시키려고 노력할 때, 즉 우선 좁고 윤곽이 확실한 문제의 해결에만 한정시킬 때, 그때에만 결실 있는 혁명이 관철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기 마음대로 변화시키려는 시도는 터무니없는 난센스에 이르게 됩니다. 확립되어 있는 모든 것을 뒤집어엎으려는 깃은 자연과학에선 다만 무비판적인 반미치광이 같은 광신자―예컨대 영구기관(永久機關)을 발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들만이 시도하고 있을 뿐입니다. 물론 그런 시도로부터 무엇이 나올 까닭이 없습니다.

                                                                       196 ~ 197


“2,000년 전의 저 위대한 혁명을 생각해 보세요. 그 혁명의 주모자인 그리스도는 「나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러 왔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면, 하나의 중요한 목표에만 한정시키고, 가능한 한 작은 범위에서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 적은 것이, 어쩔 수 없이 변화되어야만 했던 그 적은 부분이 나중에는 거의 모든 생활양식을 자연히 변화시키고야 마는 그와 같은 큰 힘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

고전물리학의 공식들은 지금까지 항상 옳았을 뿐만 아니라, 미래나 어떠한 시대에도 올바른 형식으로 남아 있어야 할 하나의 옛날의 경험적 지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양자역학은 이 해박한 경험지식에 형식적으로 다른 형태를 부여했을 따름입니다.”

                                                                       198


(플랑크)

내가 라이프치히 대학의 파탄을 듣기 며칠 전에 히틀러와 교환하였던 대화 이야기부터 해야 하겠습니다. 나는 유태인 동료들을 추방하는 것이 독일의 대학과, 특히 물리학 연구에 얼마나 막대한 손실을 가져오는가에 대하여 그를 설득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태인들에 대한 그러한 취급이 얼마나 무의미하며 얼마나 비인도적인 처사인지, 그들도 독일인이라는 자각을 가지고 그 대부분이 지난 대전에서 다른 독일사람들과 같이 독일을 위해서 생명을 바쳤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누누이 설명하였지만, 히틀러로부터 아무런 이해도 구하지 못했습니다. 좀더 심하게 말한다면 그런 인간과는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대화의 언어가 없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그는 이제는 완전히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되었으며, 누가 무슨 말을 하면 그것을 다 번잡하고 성가신 것이라고 느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과거 14년 간의 정신생활의 파탄과 그 타락을 마지막 순간에 저지해야만 했었던 필요성 등을 반복해서 큰소리로 외치면서 남의 이야기를 무찔러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그가 그 같은 터무니없는 엉터리를 믿고 있으며 폭력을 써서 모든 외부의 영향을 배제함으로써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는 숙명적인 인상을 받게 됩니다. 그는 소위 그 자신의 이념에 사로잡혀 있으며, 어떠한 합리적인 항의도 용납하지 않으면서 독일을 파멸로 이끌어갈 것이 틀림없습니다.>

나는 요사이 라이프치히에서 일어난 사건들과, 거기에 대해 젊은 교수들이 논의한 계획, 즉 교수직을 시위적으로 사직하면서 큰소리로 분명하게 「이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우리의 태도를 밝힐 계획을 보고하였다. 그러나 플랑크는 그와 같은 계획은 처음부터 아무런 성과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 당신이 젊은 사람으로서 그와 같은 대처로써 파국을 저지할 수 있다고 낙관적으로 믿고 있는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당신은 대학이나 정신적으로 교양 있는 사람들의 영향력을 너무 과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반사회에서는 당신들의 항의를 사실상 아무도 모를 것이며, 신문들은 물론 그런 사실을 보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악의 있는 논조로써 당신들의 사직을 보도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

당신들의 계획은 이 파국이 끝날 때까지 당신들에게 반작용만 미칠 것이고―당신들에게 이미 희생에 대한 각오가 충분히 되어 있을 줄은 압니다만―기껏해야 이 재난이 다 지나간 후에나 어떤 힘을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목표를 그곳에다 설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은 만약 사직한다면 최상의 경우에 외국에서 어떤 자리를 찾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불행한 경우에 대해서는 길게 말하고 싶지 않군요. 그럴 경우 당신은 외국에 이민을 가 정착하게 되겠지만, 당신보다 훨씬 더 곤경에 처할 사람들을 계산에 넣어야 할 것입니다. 당신 경우는 외국에 가면 이 같은 재난 밖에서 안주하면서 조용하게 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파국이 종언을 고할 때 당신은 나는 저 무법자들과는 타협하지 않았다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상태에서 귀국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경과해야 할 것이며, 당신은 지금의 당신과 많이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이곳 사람들도 많이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그때 과연 당신이 많은 변화가 일어난 이 땅에서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요? 한편 사직을 하지 않고 그대로 머문다고 하더라도 여러 가지 문제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결국 이 파국을 저지할 수는 없을 것이고, 따라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떠한 형태로든지 타협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때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불변의 고도(孤島)들을 형성하는 시도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젊은 사람들을 당신 주위에 모을 수 있고, 그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학문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줄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그들의 의식 속에 옛날의 올바른 가치척도를 심어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재난이 끝날 때까지 이와 같은 고도(孤島)들 중에서 몇 개가 살아남을 것인지는 물론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정신을 가지고 이와 같은 공포시대를 끝까지 헤쳐나갈 수 있는 재능 있는 젊은이들―그것은 극히 작은 그룹일지라도―이 있다면, 그들은 파국이 끝난 후 이 나라의 재건에 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나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

인종문제로 인하여 이 땅을 떠나도록 강요당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 땅에 머물러 먼 미래를 위해서 무엇인가 준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의견입니다. 이런 일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며 위험이 반드시 수반될 것입니다. 여지없이 강요되는 타협 때문에 후에 비난을 받을지도 모르며, 때에 따라서는 법의 제재를 받는 일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은 행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무법의 세계에서 자행되는 불의를 막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단순히 방관만 할 수도 없으니,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외국으로 이민을 가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해서 아무도 그를 책망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언어도단적인 상황에서 사람들은 산다는 것 자체가 옳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결국은 자기 자신만을 의지할 수밖에는 별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충고를 한다든가 그 충고를 받아들인다든가 하는 것이 모두 의미를 가질 수 없습니다. 까닭에 당신이 무슨 일을 하더라도 이 파국이 끝날 때까지 여러 가지 불행을 피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지 말라는 충고밖에는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결단을 내리든 간에 이 파국이 지나간 다음의 시대를 생각해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200 ~ 203


라이프치히로 가는 기차 안에서 플랑크와의 대화에서 오고간 말들이 나의 머리를 끊임없이 맴돌았다. 나는 내가 이민을 결심해야 할 것인지 여부에 몹시 진통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독일에서 강제적으로 생활기반을 빼앗겼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우리나라를 떠나야만 하는 친구들이 부럽기조차 하였다. 그들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고난을 당하고 지독한 물질적인 곤경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으나 적어도 그들에게는 선택에 대한 결단의 고통은 없었다.

나는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판단하기 위하여 문제를 여러 가지 새로운 형태로 설정해 보았다. 만약 자기 집에서 가족 한 사람이 전염병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그 전염병의 감염을 더 이상 확대시키지 않기 위해서 집을 떠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희망은 없을지라도 그 병자를 끝까지 간호하는 것이 옳은가.

                                                                       203


빌헬름 텔이 지방장관의 모자에 절하는 것을 거부하였을 때 결국 그는 아들의 생명을 극단적인 위험상태로 몰고 가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빌헬름 텔의 행동은 옳았던가 글렀던가. 그는 그때 타협을 해서는 아니 되었던가. 만약에 그때의 대답이 「아니다」라고 나온다면 지금 독일에서는 어떻게 타협을 해야 한단 말인가.

……

결국 사람이란 출생과 언어, 그리고 교육에 의해서 어느 특정한 나라에 소속되게 마련이다. 이민을 간다는 것은 결국 정신적인 균형을 잃어버리고 독일을 도저히 장래를 바라볼 수 없을 정도의 파국으로 몰고 가려는 광신적인 무리들에게 아무런 투쟁도 없이 넘겨주는 격이 되고 마는 게 아닌가.

                                                                       204 ~ 205



13. 원자기술(原子技術)의 가능성과 소립자(素粒子)에 관한 토론


독일의 혁명과 그에 따르는 이민으로 야기된 혼란에도 불구하고, 원자물리학은 이 무렵에 놀라운 속도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영국의 케임브리지에 있는 러더퍼드 경의 실험실에서 코크로프트와 월튼은 고전압장치를 건립하고 이 장치를 사용하여 수소의 원자핵인 양자를 가속시켜서 그것을 가벼운 원자핵을 향해 발사, 이때 전기적인 반발로 생기는 에너지의 장벽을 극복하고 원자핵에 명중시킴으로써, 그 원자핵을 변화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었다. 이와 비슷한 장치, 특히 미국에서 개발한 사이클로트론(cyclotron)을 사용하여 많은 새로운 핵물리학 실험을 할 수 있게 됨으로써, 원자핵과 그 안에서 작용하고 있는 힘의 성질에 대하여 매우 명확한 상(像)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원자핵은 원자 그 자체와는 달리 중심에 있는 무거운 물체로부터 나오는 인력이 주위를 돌고 있는 가벼운 물체의 궤도를 결정하는 소형행성계와 비교할 수는 없었다. 여러 종류의 원자핵은 도리어 같은 수의 양성자와 중성자로 형성되고 있는, 말하자면 같은 종류의 핵물질로 구성된 여러 크기의 입자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양성자와 중성자로 형성되는 핵물질의 밀도는 대략 같은 것이었으며, 다만 양성자에는 강한 정전기에 의한 반발력이 작용하기 때문에 무거운 원자핵에서는 중성자의 수가 양성자의 수보다 약간 많아지고 있었다. 핵물질을 결합시키고 있는 강한 힘은 양성자와 중성자를 교환하더라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이 가정은 이미 증명되고 있었다.

                                                                       207


(러더퍼드)

<만약에 더 큰 고압장치나 다른 어떤 가속장치를 조립하여 더 높은 에너지와 속도를 가진 양성자를 무거운 원자핵에 충돌시킨다면, 어떠한 일이 생긴다고 생각합니까? 이와 같이 빠른 속도의 탄환은 원자핵을 별로 다치지 않고 간단히 통과해 버릴 것인가, 아니면 이 탄환은 원자핵 안에 걸려서 그 안에 남게 되고 결국 그 탄환이 가지고 있는 모든 운동 에너지가 원자핵 안에 이양되고 말 것인가. 만약 보어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원자핵의 구성요소간의 상호작용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라면, 그 탄환은 아마도 원자핵 안에 걸려서 남아 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양성자와 중성자가 상호간에 그렇게 많은 영향을 끼치지 않고 거의 독립적으로 원자 핵 안에서 운동하고 있다면 그 탄환은 아마 별다른 장애를 받지 않고 원자핵에 관통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보어)

<나는 그 탄환이 원칙적으로 원자핵 안에 남아 있고, 그것이 가지고 있던 운동 에너지는 결국 그 핵의 구성요소에 어느 정도 균일하게 분배된다고 확신합니다. 그 까닭은 상호작용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원자핵은 이와 같은 충돌에 의해서 쉽게 뜨거워질 것이고, 그때의 온도상승은 핵물질의 비열(比熱)과 탄환 내에 포함되어 있는 에너지로부터 계산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9


(러더퍼드)

<미국의 미래소설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있다고 합니다. 즉 한 사람의 물리학자가 정치적으로 한창 긴장하고 있을 때 그의 조국을 위해서 원자폭탄을 발명하고, 마치 「도깨비 방망이」와 같은 그것으로 모든 정치적 난국을 해결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물론 희망적인 꿈이겠습니다만, 베를린의 물리화학자인 네른스트는 지구는 본래 일종의 화약고이며 사람들이 아직 이 화약을 폭발시킬 성냥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라고 주장하였다고 합니다. 이 말은 사실이라고 생각됩니다. 만약 사람들이 바닷물의 수소 원자핵 네 개를 융합해서 하나의 헬륨 원자핵을 만들 수 있다면 그야말로 굉장한 에너지가 방출될 것이기 때문에 이 네른스트의 말을 터무니없는 엉터리라고 과소평가할 수만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210


그 당시 달렘에 있는 오토 한의 연구소에서 리제 마이트너의 조수노릇을 하고 있던 칼 프리드리히는 가끔 우리 세미나에서 열리는 경연에 참석하기 위하여 베를린에서 왔으며, 이때의 어느 한 모임에서 태양과 별의 내부에서의 원자핵 반응에 관한 그의 연구결과를 우리에게 보고하였다. 별들의 가장 뜨거운 내부에서는 가벼운 원자핵들 사이에 일정한 반응이 일어나고 있으며 별들로부터 끊임없이 발사되는 저 막대한 에너지는 분명히 핵반응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이론적으로 증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베테도 이와 유사한 연구결과를 발표하였으므로 우리는 별들을 거대한 원자로도 보는 데 익숙해지고 있었다. 즉 별이라는 원자로 안에서는 원자핵 에너지의 획득은 기술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과정으로서가 아니라 실로 하나의 자연현상으로서 우리 눈앞에 항상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원자핵 에너지의 기술적 이용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었다.

                                                                       212


“입자의 수와 종류가 그렇게 무턱대고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표현되어야 할 입자에 대한 가능한 기술로서 고려될 수 있는 것은 원래의 입자와 같은 대칭성을 갖는 입자의 배위(配位)뿐인 것이다. 대칭성이라는 말 대신에 좀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그 밑에서 자연법칙이 불변적인 것으로 유지될 수 있는 연산(演算)에 대한 변환성(變換性)이 문제될 뿐이다. 우리는 이미 양자역학에서 원자의 정상상태는 그 대칭성에 의해서 특징지워진다는 것을 배웠다.”

                                                                       215


(오일러)

<만약에 한 광선 안에 잠재적으로―즉 가능성으로서―전자와 양전자의 쌍이 존재한다면 다른 광선은 이들 입자 때문에 산란(散亂)을 받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빛에 의한 빛의 산란(散亂), 즉 쌍방의 광선에 있어서 상호간에 산란이 있을 것이 틀림없으며, 그것은 디락의 이론으로도 계산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들이 실험적으로도 관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와 같은 현상을 관측할 수 있느냐의 여부는 물론 이 상호간의 간섭이 얼마나 큰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자네는 이 문제를 꼭 한 번 계산해 보는 것이 좋겠군. 그러면 아마도 실험물리학자들도 그 현상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발견하게 될 걸세.”

<여기서 작용하고 있는 「마치~처럼」이라고 말하는 이 철학은 매우 신기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광양자는 많은 실험에서 「마치」 그것이 하나의 전자와 하나의 양전자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언뜻 보기엔 아주 불확실하고 모호한 물리학으로 빠져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역시 디락의 이론으로부터 하나의 일정한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확률을 충분히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으며,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실험들이 나타나게 되니 말입니다.>

나는 여기서 「마치~처럼」의 철학을 좀더 부연해 보려고 시도하였다.

“자네는 실험물리학자들이 최근에 중간무게를 가진 소립자의 일종, 즉 중간자를 발견한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밖에도 원자핵을 결합시키고, 입자성(粒子性)과 파동성(波動性)의 이중성이 적용되면서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소립자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 소립자는 수명이 대단히 짧다. 따라서 오늘까지 우리가 모르고 있던 많은 소립자가 존재하리라는 것은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때에도 사람들은 바로 「마치~처럼」의 철학을 적용시키면서 소립자도 원자핵이나 분자 같은 것들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사람들은 하나하나의 소립자를 여러 종류의 많은 소립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어떤 덩어리처럼 생각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여기서 나는 러더퍼드 경이 최근 코펜하겐에서 나에게 제기하였던 원자핵에 관한 질문을 다시 던질 수 있다. 즉 「대단히 에너지가 큰 소립자를 다른 소립자에 충돌시키면 어떠한 일이 일어날 것인가? 그때에 많은 입자들이 포개져서 한 입자를 구성하고 있는 명중된 소립자 안에 탄환 격인 소립자는 걸려서 그 안에 남아 있으면서 명중된 소립자를 가열시키고 다음에는 증발시키고 말 것인가, 또는 별다른 장해를 받지 않고 작은 입자더미인 그 소립자를 관통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물론 개개의 과정에서 상호작용의 강도와도 관계되겠지만 현재로서는 이에 관해서는 아무도 모르고 있다. 그러나 당면과제로서는 이미 알고 있는 상호작용에만 국한시켜서 그때 나오는 결론이 어떠한 것인지를 확인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 당시에는 아직 소립자의 실제적 물리학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다만 우주선(宇宙線) 안에서만 어떤 실험적인 근거가 몇 가지 존재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영역에서의 체계적인 실험에 대해서는 아직 논해 본 일이 없었다. 오일러는 원자물리학의 이 분야에 대한 나의 생각이 낙관적인지 비관적인지를 가름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물었다.

<디락의 발견에 의하여, 즉 반물질(反物質)의 존재에 의하여, 전체적인 상이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복잡해졌습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세 개의 기본요소, 양성자, 전자, 그리고 광양자만으로 전세계를 구성할 수 있는 것같이 생각해 왔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단순한 표상일 수 있었고 본질적인 것은 곧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상이 점점 더 복잡해져 가고 있습니다. 소립자는 이제는 더 이상 「소(素)」가 아니며 적어도 「잠재적」으로 매우 복잡한 형성물입니다. 따라서 전에 바라고 있었던 것보다는 훨씬 이해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까닭은 세 개의 기본요소를 가지고 있었던 이전의 상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런 세 개의 임의적인 단위가 존재해야만 하는가 말이다. 그 단위 중의 하나―양성자―는 다른 단위―전자―보다 1836배의 무게를 가져야 하는지, 도대체 이 1836이라는 숫자는 어디서 근거를 찾을 수 있는 것인지, 또 이 숫자는 왜 파괴되어서는 안 되는 것인지를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단위들을 임의의 높은 에너지로써 서로 충돌시킬 수 있게 되었다. 내부적인 견고성이 어떤 한계라도 견디어낼 수 있다는 것은 믿을 만한 사실일 수 있는 것일까. 이제야 디락의 발견에 의하여 비로소 모든 것이 보다 합리적으로 보이게 되었다. 원자의 정상상태와 같이 소립자도 그 대칭성에 의해서 결정되고 있다. 보어가 당시에 이미 그의 이론의 출발점이며 양자역학에서 최소한 가장 원리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형체의 안전성」은 소립자의 존재와 안전성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이 형체는 화학에서의 원자들처럼 파괴되면 또다시 반복해서 새롭게 형성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실은 대칭성이 자연법칙 자체 안에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데 확고하게 연결지어져 있다. 우리들은 아직도 소립자의 구조를 책임 있게 표현할 수 있는 자연법칙을 정식화할 수 있는 단계와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나는 머지않아 그 자연법칙에서 1836이라는 숫자의 근거도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대칭성이 입자보다 더 기본적이라는 생각에 매혹되고 있다. 그것은 항상 보어에 의해서 파악되고 있는 양자이론의 정신에도 부합된다. 그것은 또 플라톤의 철학에도 부합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이런 데까지 신경을 쏟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우리는 지금 당장 조사 연구할 수 있는 것으로 문제를 한정시켜 보자. 따라서 당신은 빛의 산란에 대해서 계산해 보기로 하고, 나는 보다 더 일반적인 문제인, 대단한 에너지가 높은 소립자가 충돌하였을 때에 어떠한 일이 발생하는지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그래서 우리 둘은 그 다음 몇 달 동안을 이러한 계획에 따라서 연구를 계속해 나갔다. 그래서 내 계산 결과에서는 원자핵의 β붕괴의 경우 표준적인 상호작용이 높은 에너지에 의해서 매우 강한 상호작용으로 될 수 있다는 것, 따라서 에너지가 높은 두 소립자는 아마도 많은 새로운 소립자를 발생시키리라는 것이 밝혀졌다. 소위 소립자의 다중발생에 관해서는 당시 우주선(宇宙線) 안에서는 그와 비슷한 징후가 있었으나 믿을 만한 실험적 증명은 없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나서야 이 과정을 커다란 가속장치 내에서 직접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오일러는 나의 세미나의 다른 멤버인 코켈과 같이 빛의 산란에 대해서 계산을 하였다. 실험적인 증명이 아직도 직접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오늘날 오일러와 코켈에 의해서 주장된 빛의 산란이 실존한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216 ~ 219




14. 정치적 파국에서의 개인의 행위


내가 독일에서 보냈던 2차 세계대전 직전의 몇 년간은 항상 무한한 고독 안에서 시달리는, 그러한 기간이었다. 국가사회주의 정권은 점점 더 경직되어 갔으며 내부로부터의 개선 같은 것은 도저히 기대할 수도 없었다.

……

설상가상으로 독일 내에서는 개개인의 고립화가 심해지고 있었으며, 상호간의 이해는 점점 어려워져만 갔다. 극히 제한된 친구들간에서만 마음놓고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했으며, 그 밖의 사람들에게는 무엇을 알린다기보다는 더 많은 것을 은폐하려는 듯한 매우 조심스런 언사들만이 오가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불신사회가 주는 생활은 나로서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것이어서, 내가 플랑크를 방문하였을 때 이와 같은 사회현상의 종말은 결국은 파멸밖에는 없다면서 한탄하던 그의 통찰과 그가 나에게 제기하였던 과제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었다.

여기서 나는 1937년 1월 어느 음산하게 추운 겨울날의 아침을 연상하게 된다. 그때 나는 라이프치히의 중심가 어느 노상에서 동기빈민구제사업기장(冬期貧民救濟事業記章)을 팔고 있었다. 이런 활동도 그 시기를 참고 견디어야 했던 사람들의 굴종과 타협에 속하는 것이었다. 비록 빈민을 위하여 모금을 한다는 것이 결코 나쁜 일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지라도…… 나는 모금상자를 들고 서성거리면서 완전히 절망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었던 강요에 못 이긴 나의 굴종적인 제스처 때문이 아니라, 지금의 내 활동과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완전한 무의미성과 더 이상 희망을 가질 수 없었던 내 심정의 원인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상하게 무시무시한 정신상태로 빠져들어갔다. 좁은 거리에 있는 집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것같이 느껴졌으며, 이미 그 거리는 전부 파괴되어 버린 앙상한 그림같이만 느껴졌다. 아무것도 실제적인 것으로 보이지를 않았다.

                                                                       220 ~ 221


1937년 여름, 나는 비록 짧은 기간이기는 하였지만 정치적인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그것은 첫 번째의 구속신문(이때 하이젠베르크는 유태인인 아인슈타인을 변호했다고 해서 비밀경찰 게슈타포의 신문을 받음-역주자)이었는데, 여기서는 이 문제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하겠다. 나의 많은 친구들은 더 지독한 시련을 극복해야만 했었으니까.

……

“사람들은 다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때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며, 그때까지는 자기가 살고 있는 작은 영역에서 질서를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222 ~ 223


그 해가 다 지나갈 무렵 과학계에서는 거의 기대하지 않았던 예상 밖의 사건이 일어났다. 우리들의 라이프치히 화요(火曜) 세미나에 베를린에서 칼 프리드리히가 한 가지 뉴스를 가지고 달려왔다. 그것은 오토 한이 우라늄 원자에 중성자를 충돌시켜서 바륨 원자를 얻었다는 보고였다. 이 사실은 우라늄이 거의 크기가 같은 두 개의 부분으로 분열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곧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원자핵에 관한 지식을 토대로 이와 같은 결과가 이해될 수 있는 현상인지 아닌지를 토론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원자핵을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되는 액체의 방울과 비교하고 있었으며, 칼 프리드리히는 이미 몇 년 전에 용적(容積) 에너지, 표면장력, 그리고 내부에서의 정전기적(靜電氣的)인 반발력을 경험적인 데이터로부터 평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전혀 기대하기 있지 않았던 핵분열 현상이 원래부터 당연한 것이었음이 밝혀진 일이었다. 따라서 대단히 무거운 원자핵에서는 분열현상은 이 현상을 일으키기 위하여 외부에서 작은 충격만 가하면 자동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리고 원자핵에 명중한 한 개의 중성자도 분열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 같은 가능성에 대하여 이때까지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고찰은 더 나아가서 매우 자극적인 결론으로 유도되는 것이었다. 즉 일단 분열된 두 부분은 분열 직후에는 아마 완전한 구형(球形)이 아닐 것이며, 따라서 추가적으로 표면에서 어떤 증발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과잉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을 것이 예상되었다. 즉 분열 직후 분열된 두 부분의 표면에서 중성자가 방출될 수 있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방출된 중성자는 다시 다른 우라늄 핵(核)들과 충돌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다시 우라늄의 핵분열이 일어나는 소위 연쇄반응이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상상을 실질적인 물리학 실험에서 직접 관찰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많은 실험들을 거쳐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충분한 가능성은 우리를 매혹시켰으며, 한편으로는 두려움조차 일으키는 것이었다. 실제로 1년 후에 우리는 원자 에너지를 가계 또는 원자무기로 응용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던 것이다.

                                                                       224


전쟁이 폭발하기 전에 처리해 두어야 할 일들이 있었다. 나는 미국에 많은 친구를 갖고 있었는데, 아직 여행이 가능할 때에 그들을 한 번 만나볼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정치적 파국 후에 내가 만약 다시 재건사업에 종사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 그들의 도움을 기대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1939년 여름 나는 미국으로 가서 앤아버 대학과 시카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였다. 이 기회에 나는 학생시절 괴팅겐의 막스 본 세미나에서 같이 공부했었던 페르미를 만났다. 페르미는 그 후 오랫동안 이탈리아 물리학의 지도적 인물로 활약했으나 다가오는 정치적 파국을 눈앞에 두고 미국으로 이민했었다. 페르미를 그의 집으로 방문하였을 때 그는 나에게 미국으로 이민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의사를 타진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당신은 독일에서 무엇을 더 바라는 것입니까. 당신은 물론 전쟁을 저지할 수는 없을 것이고, 하기를 원치 않는 일들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또 책임지기를 꺼리는 일을 책임져야만 할 것입니다. 당신이 그곳에서 모든 불행을 함께 함으로써 어떤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당신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영에 가깝습니다, 이곳에서 당신은 모든 것을 새로이 시작할 수 있습니다. 보십시오, 이 나라는 유럽에서 고향을 등지고 피난 온 사람들에 의해서 건설된 나라입니다. 그들은 그곳 유럽의 협소한 환경과 작은 나라들 사이의 끊임없는 분쟁과 싸움, 억압, 그리고 해방과 혁명들, 이 모든 것들로부터 파생되는 비참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 광막하고 자유로운 신천지에서 역사적인 과거로부터 밀려오는 모든 사슬을 풀어버리고 살기를 원했습니다. 나는 이탈리아에서는 위대한 존재였지만 이곳에서는 한낱 젊은 물리학자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얼마나 시원스러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째서 당신은 그 모든 짐을 던져버리고 이곳에서 새출발을 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까. 이곳에서 당신은 훌륭한 물리학에 전념할 수 있으며, 이 나라에서의 자연과학의 커다란 비약에 참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왜 이런 행복을 포기하려 하시는 것입니까.>

“당신이 말씀하시는 것은 모두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나 자신 바로 그러한 질문을 천 번이나 스스로에게 반복하였습니다. 저 협소한 유럽에서 이 넓은 나라로 이민을 올 수 있는 가능성은 저에게는 끊임없는 유혹의 씨였습니다. 아마도 그때에 나는 이민을 했어야 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곳에 머물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곳에서 과학에서의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데 공헌하고, 전쟁 후에 독일에서 훌륭한 과학을 재건코자 하는 뜻 있는 젊은이들을 나의 주위에 모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이 젊은이들을 버린다면 그들은 나에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들은 이곳으로 이주한다는 것은 우리보다는 훨씬 더 어려울 것이고, 이곳에서 쉽게 직장을 찾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만약 지금 내가 이와 같은 나의 이점을 단순히 나를 위해서만 이용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불공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이 전쟁이 그렇게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가을의 위기 때 나도 소집을 당했었는데, 그때 나는 이 전쟁을 원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총통(總統)이라는 사람의 소위 평화정책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엉터리라는 것이 드러난다면 그때 독일 민중은 자각하여 히틀러와 그의 신봉자들을 추방하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너무 안이한 생각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225 ~ 226


(페르미)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독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입니까?>

“나로서는 아직도 그것이 그렇게 문제가 되는지 알 수 없군요. 나는 사람들은 그 결단에 있어서는 시종일관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어떤 일정한 주위환경과 일정한 언어와 사고영역에 태어나서 매우 어릴 때 그곳을 떠나지 않는 이상 그는 그 영역에서 가장 적절하게 생장할 수 있으며 또 그곳에서 가장 능률적으로 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경험에서 미루어본다면 어느 나라든 조만간 혁명과 전쟁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그때마다 미리 이민을 해야만 한다는 것은 확실히 합리적인 충고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실상 모든 사람이 이민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가능한 한 비극을 미연에 방지하려고 하여야 하며, 도망갈 생각부터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반대로 모든 사람들이 자기 나라의 파국을 자기들 스스로 해결해 달라고 요청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이와 같은 요청은 모든 파국을 미리 방지해야겠다는 노력에 박차를 가하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요구가 부당한 것이라는 점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제 아무리 개개인이 노력을 한다 하더라도 대다수의 민중이 완전히 잘못된 길로 휩쓸려 가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경우에 그 자신의 탈출도 단념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니까요. 다만 내가 말하고 싶었던 점은 이런 경우에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하는 일반적인 규칙은 존재할 수 없으며,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결단을 자기 스스로 내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때 그 결단이 옳았는지 틀렸는지는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아마도 둘 다 옳을 것입니다. 나는 몇 년 전에 독일에 남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아마도 그 결심은 잘못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제 와서 그 결심을 변경시켜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엄청난 불의와 불행이 초래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때 이미 알았으며, 그러한 결정에 대한 전제들이 아직도 전혀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그는 간곡하게 미국으로 이민오라고 권고했다. 그 호의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귀국하려는 동기를 확실히 이해해 주지 않는 데 좀 섭섭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전쟁에 패배할 것을 뻔히 내다보면서, 그리고 그 전쟁이 바로 폭발 직전인데도 불구하고 구태여 귀국길에 오를 것을 고집하는 사람을 그들은 아마도 이해할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1939년 8월 1일 나는 유럽호(號)를 타고 독일로 돌아왔다. 그 배는 거의 비어 있었고 그것은 페르미와 페그람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었다.

……

며칠 후에 나는 소집영장을 받았다. 예상과는 달리 지난번에 복무하였던 산악돌격대가 아니라 베를린의 육군병기국(陸軍兵器局)에 출두하라는 명령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다른 물리학자들과 함께 원자 에너지의 기술적인 이용에 관한 문제에 대하여 연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칼 프리드리히도 같은 소집영장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베를린에서 만날 수 있었고, 우리가 처해 있는 입장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228 ~ 229


“자연계에 존재하는 우라늄을 가지고는 빠른 속도의 중성자에 의한 연쇄반응은 어쨌든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원자폭탄도 그렇게 쉽게 만들어질 것 같지는 않다. 이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같은 연쇄반응이 일어나려면 아주 순수한 우라늄, 또는 매우 순도를 높인 우라늄 235만이 사용될 수 있는데 그것을 생산하려면―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막대한 기술출자(技術出資)가 필요할 것이다. 우라늄 235가 아니더라도 이에 소용되는 다른 물질이 존재할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그렇게 용이하게 얻어질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런 종류의 원자탄은 영국인이나 미국인에 의해서도―그리고 물론 우리측에 의해서도―그렇게 가까운 장래에 만들어질 것 같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만약 분열과정에서 방출된 모든 중성자를 급격하게 감속시켜 열운동(熱運動)의 속도 정도로 변환시킬 수 있는 제어물질(制御物質)과, 자연의 우라늄을 혼합시킬 수만 있다면 제어 가능한 방법으로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연쇄반응을 일으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제어물질이 중성자를 포착해 버리면 안되기 때문에 이 제어물질로써는 중성자흡수계수(中性子吸收係數)가 매우 작은 물질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따라서 물은 안 될 것이고 중수(重水)라든가 아주 순수한 탄소 즉 흑연 정도의 탄소가 적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바로 실험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이 같은 우라늄로(爐)에서의 연쇄반응을 우선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우라늄 235 생산문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일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이유는 이 동위원소의 분리는 설사 성공한다 하더라도 대단히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며, 그것도 기술적인 성과만이 얻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그와 같은 우라늄로(爐)에 대한 기술출자는 원자폭탄보다는 훨씬 적게 든다고 믿고 계신 것입니까?>

“그것은 거의 확실한 이야기라고 나는 생각하는데……그렇게 무겁고 매우 근접해 있는 우라늄235와 238의 두 동위원소를 분리시키는 것과, 적어도 몇 킬로그램 정도의 우라늄 235를 제조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엄청난 기술적 문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라늄로(爐)의 경우는 화학적으로 매우 순수한 천연 우라늄과, 흑연 또는 중수(重水)를 몇 톤 정도 생산하면 끝나는 문제가 아닐까? 따라서 비용 면에 있어서는 100분의 1이나 1000분의 1이면 되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자네들의 카이저-빌헬름 연구소나 우리 라이프치히 연구 그룹도 우선은 우라늄로(爐) 연구를 위한 준비작업에 한정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가 밀접한 협동작업을 추진해야 할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칼 프리드리히가 대답하였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점은 분명하게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매우 안심이 됩니다. 우라늄로(爐)에 대한 연구는 전쟁이 끝난 다음에도 매우 유용한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평화적인 원자기술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우라늄로(爐)에서 출발할 것이 틀림없으며, 그때 우라늄로(爐)는 발전소나 선박을 움직이는 동력이나 이와 비슷한 목적을 위하여 이용되리라고 생각됩니다. 전시에 이루어지는 연구를 통해서, 젊은이들로 구성되는 한 연구진이 양성될 것이고, 그들은 원자기술에 정통하게 되어 장래의 기술적 발전에 있어서 맹아의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우리들이 이 방향으로 연구를 추구하려면 육군병기국 당국자들과의 토의에서는 원자폭탄에 대한 가능성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든가, 다른 이야기 끝에 아주 부수적으로나 언급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상대방이 이 일을 추진하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우리도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항상 주의하고 있지 않으면 안되겠지요. 하여튼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번 전쟁은 원자탄의 발명으로 결판이 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 전쟁은 젊은이들의 몽상적인 희망과 일부 연장자계층의 사악한 복수심에서 나오는 불합리한 힘에 의해 지배되고 있기 때문에 원자폭탄의 힘에 의한 결정은 자각이나 피폐에 의한 결정보다는 문제해결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여튼 전쟁이 끝나면 다음 세대는 원자기술이나 다른 기술진보로 특징지워지는 시대가 될 수 있겠습니다.>

                                                                       231 ~ 233


프리드리히는 끝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선생님 말씀이 옳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자기도 모르게 어떤 희망적인 생각에 빠져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물론 히틀러의 승리를 희망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갖가지 무서운 결과를 안겨줄 우리나라의 완전패배를 바랄 수도 없는 일입니다. 히틀러가 살아 있는 한 어떤 타협적인 평화를 얻을 수도 없을 것이고요. 그렇지만 우리가 전쟁 후의 재건을 위해 대비해야 한다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실험계획은 라이프치히와 베를린에서 착수하게 되었다. 나는 특히 되펠이 라이프치히에서 정성들여 준비한 중수(重水)의 특성을 측정하는 연구에 가담하였는데, 달렘에 있는 카이저-빌헬름 물리학연구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연구를 알아보기 위하여 베를린에도 자꾸 가게 되었다. 그곳에는 프리드리히 외에도 지난날의 나의 공동연구자들과 친구들이 있었으며 특히 칼 뷔르쯔가 가담하고 있었다.

라이프치히에서 한스 오일러를 우라늄 프로젝트의 공동연구진의 일원으로 가담시킬 수 없었던 것은 내게 있어서는 커다란 실망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좀더 상세히 기록해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전쟁이 폭발하기 직전에 미국에 몇 달 있었던 동안에 나의 박사과정 학생이었던 핀란드 출신의 그뢴블롬과 그는 친밀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뢴블롬은 매우 혈색이 좋은 건장한 청년이었다. 그는 세계는 결국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며 자신도 그 안에서 무엇인가 좋은 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낙천적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판란드의 대기업가의 아들로서, 공산주의를 확신하고 있는 오일러와 그렇게 의기가 투합할 수 있게 되었다는 데 처음에는 놀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무슨 사상이나 신조 따위보다는 인간의 성품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에 아무런 구애를 받지 않고 오일러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전쟁이 발발했을 때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이 폴란드를 분할하기 위하여 히틀러와 동맹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 오일러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몇 달 후 소련 군대가 핀란드를 공격하자 그뢴블롬도 소집되어 조국의 자유를 위하여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러한 사건들이 있은 다음부터 오일러는 완전히 사람이 변하고 말았다. 그는 도대체가 말이 없어졌고,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다른 친구들까지도 멀리하고 있었으며, 더 나아가서는 전세계와 아주 동떨어져버린 듯한 인상을 풍기게 되었다.

그때까지 오일러는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병역에는 소집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라도 소집될 위험성이 없지 않으므로 나는 어느 날 그를 우라늄 프로젝트의 공동연구원으로 신청해도 좋겠느냐고 그의 의견을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공군에 자원하였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내게는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나의 놀라운 표정을 알아차렸는지 상세히 그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선생님은 제가 승리를 위해서 지원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저는 승리의 가능성을 전혀 믿을 수 없으며, 둘째로는 국가사회주의 정권인 독일의 승리는 핀란드를 점령한 소련의 승리만큼이나 가공스러운 일입니다. 권력자들이 단지 좋은 기회가 왔다고 해서 자기들이 국만 앞에 선포한 모든 원칙을 하루아침에 뒤집어버리는 그 후안무치한 행동에는 더 이상 아무런 희망을 걸 수 없었습니다. 물론 저는 사람을 살상하여야만 하는 그러한 부대에 지원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복무하고자 하는 정찰비행대는 저 스스로가 격추 당하는 일은 있어도 제가 사격을 하거나 폭탄을 투하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무의미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제가 원자 에너지의 이용에 대해서 연구한다 해서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저는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내가 반박하였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파국에 대해서는 아무도 어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자네도 무력하고 나도 무력할 뿐이다. 그러나 파국이 지나간 다음에는 여기서도, 소련에서도, 그리고 미국이나 어느 곳에서도 다시 생활은 계속될 것이지만, 그때까지는 매우 많은 사람들이 파멸할 것이 틀림없다. 유능한 사람, 무능한 사람, 그리고 죄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들이 수없이 죽어갈 것이다. 그렇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때에 더 나은 세계를 재건하기 위하여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별반 좋은 세상이 온다고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은 전쟁은 거의 어떠한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적어도 몇 가지는 개선할 수 있을 것이고, 몇 가지 잘못은 시정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째서 자네는 그러한 자리에 있으려 하지 않는단 말인가?”

<저는 그런 과제를 자기 스스로 부과하고 있는 사람에게 비난을 퍼부을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일찍부터 모든 상황의 불충분함을 느끼고, 대규모의 혁명보다는 끊임없는 개선을 위하여 힘드는 작은 일부터 조금씩 수행해 나가는 사람들은 그들의 인내가 옳았다는 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에 대하여 견해를 달리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저도 한때는 공산주의적인 이념이 사람들의 공동생활을 근본부터 개혁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져 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지금 폴란드는 핀란드에나 어디서든지 간에 전선에서 희생되고 있는 죄 없는 많은 사람들보다 더 안이하게 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이곳 라이프치히에 있는 연구소에서 나찌의 완장을 두르고 병역에서 면제되어서, 그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는 전쟁에 대하여 어딘지 좀더 죄책감을 느끼는 표정을 짓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미칠 때 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감정이 폭발해 올라옵니다. 저는 적어도 자신에 관한 한 저의 희망에 충실하고자 합니다. 만약 사람들이 이 세계를 용광로로 만들기를 원한다면 자기 스스로를 그 용광로에 던질 마음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을 선생님께서는 이해해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자네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용광로 이야기에 부연해서 말한다면, 바로 그 용광로가 한 번 냉각되어 응고될 때에는 그 사람이 원하였던 그대로의 형체를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응고할 때 가장 강하게 작용하는 힘은 어느 개인의 소원에서 유래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소원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제가 여전히 그런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면 저는 다르게 행동을 취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이 현실의 무의미성은 미래를 위해서 용기를 갖기에는 너무나 지나친 것으로 느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그런 일을 하신다는 것은 참으로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오일러의 마음을 더 이상 돌릴 수가 없었다. 그는 오래지 않아 훈련을 받으러 빈이라는 곳으로 갔다. 그의 편지는 처음에는 우리의 대화처럼 매우 무겁고 우울한 것이었으나 달이 지나감에 따라 점점 자유롭고 여유가 있어 보였다. 오일러는 그 해에 생산된 포도주를 대접하겠다고 한 언덕 꼭대기에 비어 있는 비어홀로 초대하였다. 그는 전쟁에 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는 눈치였다. 우리가 그 비어홀의 정원에서 시가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 갑자기 비행기 한 대가 우리 머리 위 몇 미터 정도까지 내려왔다가 윙윙거리며 멀리 날아가 버렸다. 오일러는 저 비행기는 자기 비행중대 소속으로서 우리에게 인사차 왔다 가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1941년 5월 말에 오일러는 다시 한 번 남쪽에서 편지를 보내왔다. 그의 비행중대가 그리스로부터 크레타 섬과 에게해(海)에 걸친 지역의 정찰비행 임무를 맡은 것이었다. 그 편지는 과거의 일도 미래의 일도 전혀 언급하지 않았으며 현재만을 바라보는 매우 자유롭고 명랑한 기분으로 씌어 있었다.

<그리스에서 2주일간을 지낸 오늘 우리는 이 찬란한 남쪽 나라의 밖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잊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심지어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조차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엘로이시스만(灣)에 있는 몇몇 별장에서 기거를 하고 있습니다. 비번인 경우에는 푸른 파도와 빛나는 태양 밑에서 그야말로 멋진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요트를 한 척 입수하였는데, 이 요트를 사용하여 고기를 잡거나 오렌지를 따러 다니는 원정은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영원히 머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옛날의 대리석 기둥 사이에서 꿈을 꾸는 시간은 별로 많지는 않지만 이곳에서는 과거와 현재 사이에 아무런 구별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오일러의 심중에 어떠한 변화가 일었을까 하고 생각에 잠기고 있을 때 나의 머리에는 외레 해협에서 보어와의 사이에 오갔던 대화와 함께 그때 보어가 인용했던 실러의 시구가 떠올랐다.


삶의 모든 근심을 던져버리고

이제는 어떠한 두려움도 불안도 없이

용감하게 운명과 맞서고 있다.

오늘 맞지 않으면

내일이면 맞으리

내일 맞는 것이라면

오늘 해가 지기 전에

아직 남은 귀중한 시간의 술잔을

마지막까지 기울여보세


몇 주일이 지난 후 소련과의 전쟁이 발발하였다. 아조우 해(海)의 첫 정찰비행에서 오일러가 탑승한 비행기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고, 그 이후에도 비행기와 승무원에 관한 아무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그로부터 몇 달 뒤에는 오일러의 친구인 그뢴블롬도 전사하고 말았다.

                                                                       234 ~ 239

15. 새로운 출발을 위한 길(1941~1945)


1941년이 끝날 무렵 우리 「우라늄 클럽」에서는 원자력의 기술적 이용을 위한 물리학적 기초가 상당히 광범위하게 해명되고 있었다. 우리는 천연 우라늄과 중수(重水)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원자로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것과, 그 원자로에서는 우라늄 235와 같이 원자폭탄을 제조하는 데 필요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우라늄 239라는 부산물이 생긴다는 것을 알아냈다. 처음 1939년 말에 나는 이론적인 근거로부터 중수 대신 아주 순수한 탄소를 제어물질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일찍이 포기되었다. 그 까닭은 한 저명한 연구소에서 측정한 탄소의 흡수성이 잘못 계산된 것임이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연구소의 발표를 믿고 더 이상 실험을 하지 않았던 것이 착오의 원인이었다. 우리는 당시 독일의 형편으로 기술출자가 가능한 범위에서 어느 정도의 양이 우라늄 235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다. 원자로로부터 원자폭탄을 제조하려고 하더라도 그 실현단계에 이르려면 거대한 원자로의 운전경험이 다년간 쌓아야 하기 때문에 원자탄을 제조하기까지는 엄청난 기술출자가 필요하게 된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야기를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당시의 시점에서 원리적으로 원자폭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제조 방법도 한 가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제조하는 데 기술상으로 소요되는 비용이 실질적으로 소용되는 비용보다 훨씬 더 많은 것으로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따라서 정부쪽에는 있는 그대로 성실하게 보고할 수 있었으나, 당시의 독일정부로서는 그 같은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원자폭탄의 제조를 반드시 성공시키라는 명령은 거의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오히려 이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성공하지 못할지도 모르는 미래의 목표에 대해서 그렇게 막대한 비용을 출자한다는 것은 전쟁중이라는 비상사태에 있는 독일정부에는 도저히 받아들여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매우 위험한 과학적 발전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졌으며, 나는 칼 프리드리히, 폰 바이쯔재커, 칼 바르쯔, 옌젠 호우터만 등과 함께 우리가 착수하고 있는 일을 계속할 것인지 중단할 것인지에 대하여 때때로 상의를 하곤 하였다. 달렘에 있는 카이저-빌헬름 연구소의 내 방에서 프리드리히와 교환한 대화를 나는 기억할 수 있다. 프리드리히는 다음과 같은 확인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는 지금 당장에는 원자폭탄에 관한 한 아직 위험지대에 들어서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 까닭은 기술개발에 소용되는 비용이 막상 착수하기에는 지나치게 크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도 시간이 흐르면 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뜻에서 우리가 이 일에 계속 종사하는 것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를 분간할 수 없군요. 지금 미국에 있는 우리 친구들도 원자폭탄 제조를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을까요?>

나는 되도록 그들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려고 힘썼다.

“미국에 있는 물리학자들, 특히 독일에서 이민을 간 물리학자들의 심리상태가 우리와는 완전히 다를 것은 확실하다. 그들은 바다 건너 저편에서의 권선징악(勸善懲惡)을 위하여 마땅히 싸워야 한다고 결의를 새롭게 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특히 이주자들은 손님으로 따뜻한 영접을 받았기 때문에, 미국을 위해서는 무엇인가 일을 해야만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것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폭탄 하나로써 10만 명의 인명을 앗아갈 그 원자폭탄을 다른 무기와 같이 취급할 수 있는 것일까. 예부터 내려오는 원칙, 즉 「악을 위해서는 허락되지 않는 수단이라도 선을 위해서는 허락할 수 있다」는 원칙이 여기서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일까? 즉 선을 위해서는 원자폭탄을 만들어야 하고, 악을 위해서는 그것을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세계사에서 유감스럽게도 되풀이 관찰되고 있는 이 견해가 여전히 옳은 것이라면 도대체 누가 선과 악을 결정하는 것일까? 확실히 히틀러와 국가사회주의자들이 행하는 일을 악이라고 규정하기는 쉬울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하는 일은 모두 선이란 말인가? 어떤 일이 선이냐 악이냐를 결정하는 것은 그 일의 성취를 위하여 사용되는 수단의 선택이 바로 그 규준이 된다는 원칙은 여기에서도 타당하지 않을까? 물론 전쟁이란 모두 악한 수단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뻔한 노릇이지만, 그러나 역시 어느 정도까지는 정당화될 수 있고, 그 정도를 넘어서면 정당화될 수 없는, 그러한 정도의 차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일까? 지난 100년 동안에 사람들은 조약에 의해서 악한 수단의 사용에 어떤 한계를 설정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 한계는 현재의 전쟁에서는 히틀러에 의해서도, 그 적들에 의해서도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미국에 있는 물리학자들이 원자폭탄 제조를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들도 혹시나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에 빠질 수는 있는 것이다. ”

                                                                       240 ~ 242


정부는 1942년 6월, 원자로계획에 대한 연구는 무리가 가지 않는 범위에서 계속되어야 한다고 결정을 내렸고, 원자폭탄 제조명령은 내리지 않았던 것이다. 물리학자들로서는 그 결정을 수정하도록 건의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따라서 우라늄 프로젝트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는 전후의 평화적 원자기술의 연구개발을 위한 준비가 되었으며, 그것은 전쟁기간의 황폐화에도 불구하고 매우 유용한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어느 독일회사에 의하여 최초로 외국―아르헨티나―에 수출된 원자력 발전소에 우리들이 전시 중에 계획하였던 천연 우라늄과 중수로 구성된 원자로가 장치된 것이었다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지사는 아니었던 것이다.

                                                                       244


(부테난트)

<합리적인 사고를 위한 교육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확실하며 이런 사고방식에 다시 한 번 보다 많은 기회를 부여하는 일은 전후에 우리가 담당해야 할 중요한 과제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확실히 이번 전쟁의 오늘날까지의 경과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현실에 대한 눈을 뜨게 했을 것은 틀림없습니다. 제 아무리 총통을 신뢰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은 없는 자원을 만들어주지도 않으며, 무시하였던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그것으로 도깨비처럼 급작스럽게 달성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그들은 충분히 깨달았을 것입니다.

……

냉철한 논리적 사고는 우리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확실히 지성인의 수가 적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 민족으로서의 우리는 지성보다는 어떤 환상을, 사상보다는 감정을 더 높이 평가하면서 꿈속을 헤매고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과학적인 사고방식이 존중되는 일이 무엇보다도 시급을 요하는 일이며, 이것은 전후의 궁핍 중에서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247


“우리들은, 자유는 이와 같은 속박에서 해방되는 곳 즉 환상의 세계, 꿈의 나라, 하나의 유토피아에 몰두하고 도취함으로써만 얻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든다면 예술에서 우리는 그 존재를 영감(靈感)하고 우리를 항상 최고의 업적을 이루도록 고무해 주는 절대적인 것을 궁극적으로 실현시키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실현시키는 일이 바로 법칙성의 속박에 종속하는 것을 의미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작용하는 것만이 현실이고, 모든 작용은 사실 또는 사고의 합법칙적인 연관성에 기인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독일사람들이 저 이상한 꿈과 신비를 향해 달음질치는 경향을 계산에 넣는다 하더라도, 어째서 이 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분명하게 냉철하고 과학적인 사고에 그렇게까지 환멸을 느끼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과학이라는 것이 논리적인 사고와 단단히 짜여진 자연법칙들의 이해와 적용만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올바른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실질적인 면에 있어서는 환상은 과학의 영역, 특히 자연과학의 영역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실을 얻기 위해서 냉철하고 세심한 많은 실험적인 작업이 필요하지만 종합정리는 사람들이 그 현상을 곰곰이 생각할 때보다는 도리어 그 현상으로 감정이입이 가능할 때에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독일사람들은 이 점에서도 분명히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독일사람에게 있어서는 절대적인 것이 그렇게도 매혹적인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독일 밖의 세계에서는 실용주의적인 사고방식이 지배적이며, 이 같은 사고방식이 기술과 과학과 정치에서 얼마나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었는가를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멀리 이집트와 로마, 그리고 앵글로-색슨 제국(帝國)과 같은 역사적인 사실과 더불어 우리 시대를 생각해 보아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과학과 예술에 있어서는―고대 그리스의 가장 위대한 형태에서 알고 있는 것처럼―원리원칙적인 사고가 여전히 큰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독일에서 세계를 변화시킬 만한 과학적 예술적인 성과가 이루어졌을 때는―사람들은 헤겔과 마르크스, 플랑크나 아인슈타인, 그리고 음악에서는 베토벤과 슈베르트를 생각할 수 있다고 봅니다만―역시 이 절대와의 관계, 바로 이 원리원칙적인 사고를 통해서만 마지막 결론에의 도달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곳에서는 절대적인 것을 향한 추구는 형식의 속박에 매여 있을 때에만, 즉 과학에서는 논리적인 냉철한 사고에, 음악에서는 화성학과 대위법의 규칙에 의존하고 있을 때에만 가능했었습니다. 즉 절대적인 것을 향한 이와 같은 극단적인 긴장관계에서만 자기의 실제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우리 눈앞에서 보고 있는 바와 같이, 그러한 형식이 파괴되자마자 혼란이 야기되고 맙니다.

                                                                       248 ~ 249



16. 연구자의 책임에 대하여(1945~1950)


1945년 8월 6일 오후 칼 비르쯔가 내게 오더니 일본에 히로시마라는 도시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다는 소식을 막 라디오에서 발표하였다고 말했다. 나는 이 보도를 우선 믿고 싶지 않았다. 원자폭탄의 제조를 위해서는 아마 수십 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기술개발 비용이 필요하다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심리학적으로도 내가 잘 알고 있는 미국의 원자물리학자들이 이 프로젝트를 위하여 그렇게 전력을 투입하였다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선전용으로 생각되는 아나운서의 말보다는 나를 신문하던 미국 물리학자를 더 믿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우라늄」이라는 말이 방송에서 나오지 않았었다고 들었기 때문에 「원자폭탄」이라는 말이 무엇인가 다른 것을 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그 날 밤 라디오에서 거기 소요되었던 막대한 기술출자에 대한 뉴스 해설자의 설명을 듣고서 나는 25년이라는 긴 세월을 통하여 우리가 심혈을 기울이던 원자물리학의 발전이 지금 10만 명을 훨씬 넘는 인간의 죽음의 원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엄연한 사실과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오토 한이 가장 깊은 충격을 받았다. 우라늄 핵분열은 그의 가장 큰 중대한 과학적 발견이었고,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던 원자기술론의 결정적인 제1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제1보가 바로 지금 대도시와 그 주민들에게―대부분은 전쟁에 대하여 아무 책임이 없고 무장도 하지 않은 그 많은 사람들에게―무서운 종말을 가져온 결과가 된 것이었다. 오토 한은 너무나 놀라고 당황하면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리는 그가 혹시 자살을 기도하는 것이나 아닐까 하고 걱정이 될 정도였다. 한 이외의 사람들은 그 날 밤에 흥분하여 경솔한 말들을 퍼부은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는 다음 날 아침에야 비로소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고, 일어난 사건을 심각하게 고찰할 수 있게 되었다.

                                                                       257


(프리드리히)

<오토 한이 자기의 최대의 과학적 발견이 오늘날 상상할 수도 없었던 대참사라는 오점으로 더럽혀졌다는 데 몹시 절망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까지 죄책을 느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지? 그가 원자물리학 분야에서 연구를 같이 해온 다른 물리학자들보다 더 죄책감을 느껴야 할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이와 같은 대참사에 대한 책임은 우리 전부에게 있는 것이 아닌지, 그렇다면 우리 죄는 도대체 어디에서 성립되는 것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다음과 같은 대답을 시도하였다.

“나는 우리가 이와 같은 전체적 인과관계에 어떠한 접점에서 연관이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여기서 「죄」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토 한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현대 자연과학의 발달에 참여해 왔다. 이 발달은 인류가, 최소한 유럽 인류가 이미 수백 년 전에 결정하였던―좀더 신중하게 표현한다면, 인류가 거기 종사하게 되었던―생활과정이다. 이 과정은 선에도 악에도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이것은 특히 19세기의 진보에 대한 신앙이기도 하지만―축적되는 지식은 거기서 파생될지도 모르는 악을 제어하고 선이 승리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한의 발견 이전에는 그 자신도, 다른 어떤 사람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 당시 물리학의 방향으로는 아무런 통찰도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이라는 생활과정에 참여하는 일을 죄악이라고 간주할 수는 없는 일이다.”

프리드리히가 대화를 계속하였다.

<과학의 발달이 이와 같은 재난과 연결될 수 있다는 이유로 이 과학의 발달과정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주장하는 극단적인 사상의 소유자들도 당연히 나타날 것으로 생각됩니다. 자연과학의 발전보다 더 중요한 사회적 학문적 정치적인 과제들이 있을 것이고, 또 그 점에 있어서는 그들의 생각이 옳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오늘의 세계에 있어서 인간의 생활이 광범위하게 과학의 발전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사람들이 조속하게 지식의 끊임없는 확장에서 전향해 버린다면 지구상의 인구는 단시일 내에 급격하게 감소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아마도 원자폭탄과 필적하거나 그보다 더 흉악한 파탄을 통해서만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258 ~ 259


“우리가 과학의 발전을 이 같은 방식으로 「세계적인 척도에서의 역사과정」으로 간주한다면 자네의 질문은 세계사에 있어서의 개인의 역할에 대한 옛날부터 있었던 문제를 상기시킨다. 이러한 경우에 개개인들은 근본적으로는 광범위하게 대치될 수 있다는 점을 확실히 가정해야만 할 것이라고 본다. 즉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발견하지 못하였다면 그것은 조만간 다른 사람들―아마도 포앙카레나 로렌쯔―에 의해서 정식화되었을 것이다. 한이 우라늄 분열을 발견하지 못하였다면 아마도 몇 년 후에 페르미나 졸리오가 이 현상에 봉착하였을 것이 틀림없다. 이렇게 말한다고 어느 개인의 위대한 업적을 깎아 내리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따라서 결정적인 한 걸음을 내디딘 개개인에게 그를 대신해서 할 수도 있었던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책임을 부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개개인은 역사적인 발전에 의해서 그 자리에 마침 놓여진 것뿐이며 그 자리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과제를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었던 것뿐이지,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따라서 그는 자기 업적을 통해서 그 후의 그 결과 이용에 다른 사람들보다 좀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는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사실 한은 우라늄 분열의 응용에 대하여 질문을 받았을 때 원자기술의 평화적 이용에 관해서만 언급했고, 적어도 독일에서는 전쟁이용을 어디까지나 만류하였었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발전에 대하여는―당연한 이야기이지만―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프리드리히는 그의 사고를 계속하였다.

<사람들은 여기서 발견자와 발명자를 구분해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발견자는 대체로 발견 전에는 그 이용가능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으며, 그 후에도 실제적 이용까지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그것을 예언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예컨대 갈바니(Galvani)와 볼타(Volta)는 후세의 전자기술에 대하여 아무것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후일에 이루어진 그의 발견의 실제적 이용에서 오는 이익이나 위험에 대한 책임이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발명자의 경우는 예측에 있어서 이와 다르다고 생각됩니다. 발명자는―나는 이 말을 다음에 말하는 그러한 뜻에서 사용코자 합니다―확실히 어떤 특정한 실용적인 목표를 계산하고 있을 것이고, 따라서 그는 그 목표달성이 하나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그것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발명자의 경우에는 원래가 한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큰 인간공동체의 위임 아래서 행동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예컨대 전화의 발명자는 그가 속해 있는 사회가 모든 연락을 좀 빨리 할 수 있게 될 것을 바라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또한 화약의 발명자도 자기 나라의 전투력을 강화시키기를 바랐던 호전적인 권력의 위임 아래서 연구에 종사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발명자에게도 그 책임의 일부만이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물론 개인도 사회도 그 발명 이후에 일어나는 모든 결과를 내다볼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예컨대 대규모의 농작물을 어떤 해충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화학물질을 발명한 화학자가 곤충세계의 변화로 말미암아 그 영역에서 어떠한 결과가 발생하는지 그 경작지의 소유주나 관리들처럼 예측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개인에게는 그의 목표를 대국적인 연관성에서 통찰하여야 한다는 것, 즉 어떤 작은 그룹의 이익만을 위하여 더 큰 공동체를 경솔하게 위험에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는 요구만은 내세울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기술적 과학적 진보가 이룩되는 커다란 연관성에 대한 세심하고도 양심적인 배려만이 요구될 수 있을 뿐입니다. 이 연관성은 또 그 자신의 이익과 직접 연결되지 않은 곳에서도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260 ~ 261


“우라늄 분열은 한에 의해서 독일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으며, 히틀러에 의하여 유능한 많은 물리학자들이 추방되기 전에는 우리나라의 원자물리학의 수준은 확실히 그들보다 높았던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따라서 그들은 원자폭탄에 의한 히틀러의 승리는 그야말로 위험천만한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며, 이 같은 파국을 피하기 위해서도 자기들의 원자폭탄 제조연구를 정당한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나찌의 강제수용소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생각한다면 이와 같은 일에 대하여 무어라고 반론을 전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독일과의 전쟁이 끝난 뒤에는 아마도 미국의 많은 물리학자들은 이 무기의 사용을 중지할 것을 건의하였겠지만, 그때에는 이미 그들의 영향력이 미치기에는 때가 늦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점에 관해서도 우리는 무어라고 비판을 할 자격이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우리도 우리 정부가 저지른 무서운 일들을 조금도 저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전모를 알 수 없었다는 것은 하등의 변명이 될 수 없다. 만약 우리가 좀 더 노력하였더라면 그것을 좀더 확실하게 알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전체적인 사고(思考) 과정에서 이 모든 일들이 얼마나 강제적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인식하게 될 때 우리는 참으로 몸서리를 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는 세계사에 있어서 선(善)을 위해서는 모든 수단이 허용될 수 있으나 악을 위해서는 허용될 수 없다는 대원칙, 좀더 나쁘게 표현한다면 목적은 수단을 신성화한다는 이 원칙이 항상 반복해서 실천에 옮겨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고과정을 저지시킬 수 있는 무엇이 존재할 수는 없는 것일까?

<우리는 이미 발명자는 그의 목표를 지구상의 기술적 진보라는 커다란 연관성에서 통찰해야 한다는 점을 그들에게 요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한 경우에 우선 어떠한 일이 나타날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이와 같은 재난이 있은 직후에는 아주 값싼 계산들이 쏟아져 나오게 마련입니다. 예컨대, 원자폭탄의 투입으로 전쟁이 빨리 종식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즉, 원자폭탄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전쟁은 더 오래 끌었을 것이고, 따라서 그러는 동안에 생기는 희생은 원자폭탄에 의한 희생보다 컸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나는 선생님이 어젯밤 이 문제에 대하여 언급하셨다고 생각됩니다만, 그러한 계산은 이 파국이 지나간 뒷날에 나타날 정치적인 결과들을 모르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다고 봅니다. 아마도 이 같은 사건의 결과로 빚어진 승리감으로 인하여 후일에 오늘보다 훨씬 더 큰 희생을 요구하는 전쟁을 준비하는 일도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말입니다. 새로운 무기로 인하여 세력의 이동이 생기고 나중에는 모든 강대국들이 이 무기를 지배할 수 있게 된다면 손실이 큰 상호협상 아래 다시 역행하는 결과가 초래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아무도 이와 같은 발전들을 미리 예측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 같은 논증으로 이야기를 시작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오히려 우리가 때때로 언급하였던 다른 명제, 즉 어떤 일이 선한지 악한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 일을 달성키 위하여 사용되는 수단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명제로부터 출발해 보고 싶습니다. 이 원칙은 여기서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일까요?>

나는 이 생각을 좀더 상세히 부연해 보려고 하였다.

“과학적 기술적 진보는 결과적으로는 틀림없이 세상에서 독립된 정치적 단위를 점점 크게 할 것이고, 따라서 그 수가 점차로 감소하면서 결국에는 하나의 중심적인 질서를 유지하는 관계를 지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중심적 질서로부터 여전히 개인과 전체적인 민족의 자유는 충분히 보장되기를 희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향으로 나가는 것을 나로서는 거의 불가피한 당연한 거취라고 보며, 다만 문제는 이와 같이 종국적으로 질서지어진 상태로 가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난관들을 통과해야만 한다는 것뿐이다. 따라서 이 전쟁 후에는 남아 있는 소수의 강대국들이 그들의 노력 범위를 가능한 한 확장하려고 노력할 것은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이와 같은 일은 본래 단순히 공동이익과 유사한 사회적 구조에 의해서, 또는 공통적인 세계관이나 경제적 정치적 압력에 의해서 생길 수 있는 동맹관계로 말미암아 실현되는 것이다. 강대국의 직접적인 영향권 밖에 있는 약소한 그룹들은 강자에 의하여 위협 또는 억압을 받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강대국들은 이 약소국들을 원조하게 되고 그로 인하여 약소국들도 세력 균형을 잡게 될 것이다. 그 결과로 강대국들이 이전보다 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미국이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에 개입하게 된 것도 이러한 각도에서 해석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이와 같은 방향으로 세계역사는 진행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에 반대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물론 이 같은 팽창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강대국들은 제국주의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바른 수단의 선택에 대한 문제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된다. 즉 영향력 행사를 매우 신중하게 조심성 있게 다루며 원칙적으로 경제적인 측면과 문화정책적인 측면에서만 그 수단을 사용하고, 상대국의 내정에 대한 폭력적 간섭이라는 인상을 주는 모든 수단은 회피하는 강대국은, 폭력을 사용하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 이 같은 비난을 쉽게 모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런 수단만을 사용하는 강대국의 세력권내에 있어서의 질서구조는 세계의 미래적인 통일질서의 구조를 위한 하나의 모범으로 간주될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미합중국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개인이 가장 용이하게, 그리고 매우 자유롭게 발전할 수 있는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는 자유의 본거지로 인정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어떠한 의견이라도 자유롭게 발표할 수 있으며, 개개인의 발의는 자주국가적인 법규보다도 더 중요시되며, 개인이 존중되는―예를 든다면, 전쟁포로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월등하게 인도적으로 취급되는 것―등, 미국의 모든 내부구조가 미래세계의 내부구조에 대한 모형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환기시키고 있다. 미국 사람들이 원자폭탄을 일본에 투하할 것인지를 숙고할 때에, 바로 이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대하여 가지고 있었던 희망을 고려에 넣었어야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원자폭탄의 사용으로 말미암아 이 희망에 일대충격을 가하는 결과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미국도 제국주의라는 비난이 미국과 경쟁하고 있는 강대세력에 의해서 제기될 것이고, 원자폭탄을 투하하였기 때문에 이런 비난은 설득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원자폭탄의 투하가 꼭 필요하였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단순한 힘의 과시로밖에는 이해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여기서부터 어떻게 세계적인 자유질서를 향한 길이 열릴 것인지 매우 곤란한 문제가 제기되리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

<승리가 이미 결정되어 있었던 단계에서 원자폭탄을 사용하였다는 사실은 결국 세력확장을 위하여 서로 투쟁하고 있는 민족국가 시대로의 역행을 의미하며 결국은 세계의 통일을 위한 자유질서라는 목표로부터는 한 발짝 물러서게 된다는 점을 고려했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장점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고 미국이 지니고 있었던 세계적 사명에 대한 신용을 추락시켰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262 ~ 265


“과학적 내지는 기술적 진보에 기여할 것을 일생의 중요한 과제로 세운 개인들은 이 과제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이와 같은 문제에 참여할 때에는 그 해결을, 그가 분명하게 긍정하는 커다란 발전의 한 부분으로 간주하고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반적인 연관성을 동시에 고려한다면 그는 쉽게 정당한 결단을 내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프리드리히가 말을 계속하였다.

<그것은 올바른 것을 생각할 뿐만 아니라 행동에 옮기고 자기 생각을 실현시키고자 할 때에는 공적인 생활과의 결합을 위하여, 나아가서는 국가적인 행정에까지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 이와 같은 결합은 결코 불합리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아까 우리가 논한 일반적인 발전과도 잘 조화되는 이야기입니다. 과학적 그리고 기술적인 진보가 일반사회에 대하여 지니는 중요성에 비추어 그 진보를 직접 담당하는 자들의 공적인 영향력도 확대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물리학자나 기술자가 중요한 정치적인 결정을 정치가보다 더 잘 내릴 수 있다고 가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학문적인 연구활동에서 객관적으로, 그리고 사실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배웠으며 특히 커다란 연관성 안에서 사물을 생각하기를 배운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정치가들의 작업에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논리적인 정확성과 넓은 시야, 그리고 엄격한 청렴 등의 건설적인 요소들을 부여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이렇게 생각한다면, 미국의 원자물리학자들은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너무 소극적이었는데, 즉 원자폭탄의 사용의 결정권을 너무 손쉽게 손에서 놓아버렸다는 비난을 모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원자탄 투하의 역효과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266 ~ 267


나는 과학도 공적인 일에서는 어떤 주도권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나는 당시 자주 접촉을 하고 있던 아데나워에게서 이러한 계획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같은 시기, 1920년대에 시미트-오토가 지도하고 1차 세계대전 후 독일의 과학발전에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커다란 공헌을 한 독일연구진흥협회를 부활시키려는 노력도 진행되고 있었다. 이 계획은 대학과 주(州) 정부의 대표자 사이에서 추진되고 있었는데, 나는 이 움직임에서 어딘가 복고적인 냄새가 강하게 풍기고 있어서 일말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학문연구에 대한 후원을 공개적으로 얻어가자는 데는 전적으로 동감이지만, 정치와 과학 두 분야의 완전한 분리를 호소하는 사고방식은 이 시대에 적합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나는 이 문제를 놓고 법률학자인 라이저―그는 뒤에 여러 해 동안 학술원의 의장직을 맡았다―와 세부적인 대화를 가졌다. 나는 라이저에게 그가 추진하고 있는 진흥협회는 이 「용사 없는 현실세계」로부터 등을 돌리고 상아탑 안에 유리되어 자기 마음에 흡족한 꿈에만 도취하는 그러한 사고를 다시 불러일으키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두렵다는 점을 밝혔다. 이에 대하여 라이저는 「그러나 우리 두 사람의 힘으로 독일 사람들의 국민성을 변화시킬 것을 바랄 수는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나는 분명하게 그가 옳게 파악하고 있다고 느꼈다. 개개인의 선한 의지만을 가지고는 어쩔 수 없으며, 항상 외적 관계에서 오는 강력한 강요만이 많은 사람들의 사고구조를 필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아데나워의 지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나의 힘을 가지고는 대학의 대표자들에게 이 새로운 필연성을 설득하기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결국 본질적으로 이전 촉진단체의 옛 전통을 계승받은 학술연구진흥회가 성립되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외부적인 필연성으로 인해 과학연구부가 연방정부 안에 설치되는 것이 강요되었고, 그 안에 자문위원회를 설치하게 됨으로써 우리 계획의 일부분이 실현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새로 설립된 막스 플랑크 연구협회는 현대사회의 필연성에 보다 쉽게 적응할 수 있었으나, 대학은 먼 훗날에 가서야, 그것도 격심한 논쟁과 싸움을 거쳐서야 비로소 필연적인 혁신과정을 밟으리라고 자위할 수밖에 없었다.

                                                                       270 ~ 271



17. 실증주의, 형이상학, 그리고 종교(1952)


(보어)

<얼마 전 이곳 코펜하겐에서 특히 실증주의적 경향이 농후한 철학자들이 모인 철학회가 열렸었습니다. 그때 빈 학파의 대표자들의 주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나는 이 철학자들을 앞에 놓고 양자이론의 해석에 대하여 강연을 하였는데 그 강연이 끝난 후 별다른 반대도, 어려운 질문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바로 이 사실이 가장 두려운 것이었다는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까닭은 양자이론에 관해서 이야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내 강연이 너무 서툴러서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가 되고 맙니다.>

볼프강이 말을 받았다.

<그것은 절대로 선생님의 강연이 서툴렀던 탓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을 별로 조사도 해보지 않고서 덮어놓고 받아들이는 것이 실증주의자들의 신앙고백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에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세계는 일어난 일의 전부다.」「세계는 사실의 총체이지 사물의 총체가 아니다.」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나가기로 한다면, 사실을 서술하고 있기만 하면 어떤 이론도 받아들여져야 할 것입니다. 실증주의자들은 양자역학이 원자현상을 올바르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거기에 반항할 아무런 이유도 갖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들이 거기에다가 상보성이라든가, 확률의 간섭, 불확정성 관계, 또는 주체와 객체 사이의 절단 같은 따위의 것들을 제아무리 덧붙여서 언급하여도 실증주의자들에게는 불명확한 서정시적인 사족으로밖에는 들리지 않을 것이고, 과학 이전의 사고로의 역행으로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소리로밖에는 간주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러한 말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으며, 기껏해야 그저 무해무득한 것으로 여길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와 같은 식의 이해는 그 자체로서는 논리적으로 완전히 앞뒤가 맞을 것입니다. 다만 저로서는 자연을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모를 뿐입니다.>

“실증주의자들은”

하고 내가 보충설명을 시도하였다.

“이해란 예측능력과 같은 뜻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어느 특수한 사건들만 예측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어떤 단편만 이해할 것이고, 여러 가지 결과를 예측할 수 있으면 이해를 더 넓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단편적인 이해와 전면적인 이해 사이에 하나의 연속적인 척도가 존재하지만, 예측능력과 이해 사이에는 어떤 정성적(定性的)인 구별은 없는 것입니다.”

……

“우리가 하늘에서 비행기가 날고 있는 것을 볼 때 그것이 1초 후에는 어디에 있을 것인가를 어느 정도 확실히 예측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선 그 비행기가 날고 있는 구도를 직선적으로 연장할 것이고, 만약 그 비행기가 커브를 돌고 있었다면 그 커브의 곡률(曲率)을 고려하여 계산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식으로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비행기의 궤도를 훌륭하게 예측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그 궤도를 완전히 이해하였다고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미리 비행사에게서 비행계획에 관한 설명을 들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 궤도를 실제로 이해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272 ~ 274


(보어)

<실증주의자들은 지금 근대 자연과학의 발달을 하나의 철학적 계기로서 기초짓고 어느 정도 정당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전의 철학에서 이용되었던 개념들이 자연과학에서 사용되고 있는 개념보다는 정확성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거기서 제기되고 토론되었던 문제들이 때때로 전혀 의미가 없는 것들이며, 아무런 생각할 가치가 없는 허위의 문제가 중요시되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모든 개념들이 아주 정확한 명백성을 지녀야 한다는 그들의 요구를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에서 명백개념(明白槪念)이란 없으므로, 보다 더 일반적인 문제들에 대해 사고하는 것을 금하는 것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까닭은 그러한 금지가 또한 양자이론에 대한 이해도 불가능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볼프강이 반문하였다.

<사람들이 양자이론을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면 선생님께서는 물리학이란 한편에서는 실험과 측정으로, 다른 한편에서는 수학적인 공식체계에 의하여 성립되어 있을 뿐만이 아니라, 두 가지 순수한 철학 사이의 접점(接點)에서 추진되어야 한다는 말씀이신지요? 즉 이 같은 실험과 수학 사이의 작용에서 야기되는 본래적인 것을 일반적인 언어로써 설명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나 역시 양자이론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증주의자들은 바로 이 점을 언급하지 않고 침묵으로 넘기고 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기에서 그렇게 정확한 개념들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실험물리학자들은 사실상 자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이미 널리 알려진 고전물리학자의 개념을 사용하여 그들의 실험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 점이 근본적인 딜레마이며, 이것을 간단히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실증주의자들은 이미 당신들이 언급한 바와 같이 전과학적(前科學的)인 성격을 지니는 모든 문제설정에 대하여 특히 민감한 것 같습니다. 나는 개체적인 문제설정이나 정식화는 형이상학적이고 전과학적이며 물활론적 시대의 낡은 사고의 유물이라고 간단히 비난하는 것으로 처리해 버리는 인과론에 관한 필립 프랑크의 책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거기서는 「전체성」이라든가 합목적적 생명력과 같은 생물학적 개념들은 전과학적인 것으로 거부당하고 있으며, 이런 개념들이 사용되는 기술(記述)은 증명할 수 없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이라는 증거를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형이상학」이라는 말은 말하자면 전혀 불명확한 사고과정들이라는 낙인이 찍힐 욕설에 불과합니다.”

(보어)

<당신은 공자(孔子)의 격언이라는 실러의 시를 알고 있으며, 특히 내가 그 중에서「충만만이 명석에 통할 수 있으며 심연 속에 바로 진리가 숨어 있다」라는 구절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여기서 말하는 「충만」이란 경험의 충만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문제를 제기하고 어떤 현상을 말할 때 사용하는 여러 종류의 다른 개념들의 충만도 의미하고 있습니다. 양자이론의 형식적인 법칙과 관찰된 현상들 사이의 특이한 관계에 대하여 항상 여러 종류의 개념을 사용하여 반복해서 논하고 그것을 모든 측면에서 고찰하고, 그래서 외견상으로는 내부모순을 인지하게 될 때 비로소 양자이론을 이해할 수 있는 전제가 되는 사고구조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양자이론은 상보적인 개념인 「파동」과 「입자」로써 자연을 이중적으로 서술하는 것을 허용하였기 때문에 항상 불만족스럽다고 되풀이 말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양자이론을 정말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여기서 이러한 이중성을 다시 논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을 것입니다. 그는 이 이론이 원자현상들의 통일적인 기술(記述)이며 그것을 실험에다 적용시켜 일상언어로 번역할 경우에만 달리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양자이론은 어떤 사실의 관련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표현할 때에는 추상과 비유를 사용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놀라운 예입니다. 여기서 사용하는 추상이나 비유는 본질적으로는 고전적인 개념이고, 따라서 「입자」도 「파동」도 고전적인 개념임에 틀림없습니다. 따라서 이것들은 실제적인 세계에는 적합하지 않고, 부분적으로는 상보적이기도 하며 그렇기 때문에 서로 모순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현상을 기술하려면 일상언어의 영역에 머물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참된 사실에 접근하려면 이러한 추상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철학적인 일반문제, 특히 형이상학에 있어서도 아주 비슷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우리가 실제로 생각하고 있는 것과 딱 들어맞지 않는 상이나 비유를 사용하여 설명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모순을 피할 수 없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이와 같은 상을 통해 실제적인 사실에 어떻게든 접근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사실 그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심연 속에 바른 진리가 숨어 있다」는 그 시의 첫 부분과 마찬가지로 이 부분도 그야말로 진리입니다. 당신이 필립 프랑크와 그의 인과론에 관한 저서에 대하여 말하였지만, 바로 그 사람도 지난번 코펜하겐에서 열린 철학회에 참석하였고, 또 당신이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형이상학이라는 문제 영역에서 본래적으로 하나의 욕설이나 비과학적인 사고방식에 대한 예증으로서밖에는 취급되지 않는 그러한 강연을 했습니다. 나는 그의 강연 후에 나의 의견을 말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서 대략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습니다. 우선 나는 어찌하여 메타라는 접두어가 논리학이나 수학 같은 개념 앞에만 붙일 수 있고―프랑크가 메타논리학(論理學)이니 메타수학(數學)에 관해서 이야기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이야기한 것인데―물리학이란 개념 앞에는 붙여서는 안 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메타」라는 접두어는 그 다음에 오는 개념을 문제삼는다는 뜻, 즉 해당되는 영역의 근저에 깔려 있는 문제를 취급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사람들이 물리학이라는 영역의 배후에 숨어 있는 것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까?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나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하기 위하여 전혀 다른 각도에서 고찰해 보지요. 즉 「전문가」란 무엇이냐고 묻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전문가란 그가 관계하는 분야에 관하여 매우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 정의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원래 한 사람이 한 분야에 관해서 정말로 많은 것을 알 수는 결코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오히려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싶습니다. 전문가란 그가 전문으로 하는 분야에서 사람들이 범할 수 있는 가장 큼직한 몇몇의 오류를 알고 있는 사람이며, 따라서 그는 그 오류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필립 프랑크를 형이상학의 전문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것은 그가 확실히 형이상학에서 가장 큼직한 오류를 피할 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찬사를 프랑크가 좋게 생각하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이 말을 풍자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진지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게 있어서는 그와 같은 토론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점은 진리가 숨어 있는 심연을 단순히 제외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문제를 너무 안이하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276 ~ 279


“보어가 19세기 시민사회의 전통적 사고, 특히 그리스도교적인 철학의 사고과정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선 커다란 노력을 필요로 했던 시대에 성장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자신도 그런 노력을 하였기 때문에 그는 고대철학, 특히 신학(神學)의 언어를 아무런 주저 없이 사용하기를 항상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전혀 이야기가 다르다. 왜냐하면 우리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두 차례의 혁명을 거치는 동안 어떤 전통으로부터 해방되는 데는 노력이라는 것이 거의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나에겐―이 점에 있어서는 보어와 의견을 같이하지만―정확한 언어로 표현될 수 없다고 해서 이전의 철학 문제들이나 사고과정들을 금지하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다고 생각된다. 실제로 이 사고과정에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느낄 때도 물론 있지만, 이런 경우에 나는 그것들을 현대적인 언어로 옮기고, 그것으로써 새로운 대답을 얻을 수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옛 종교의 전통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데 아무런 저항을 느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옛날의 문제들을 다시 문제삼는 데에도 아무런 주저를 갖지 않는다. 종교에서는 의미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상들로 비유의 언어가 사용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근대 자연과학 시대 이전에 발생한 대부분의 옛 종교에서는 바로 이 상들과 비유에 의하지 않고서는 표현할 수 없지만 그 핵심에서는 가치문제와 결부되어 있는, 작은 내용과 같은 사태가 문제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에 있어서는 그 같은 비유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는 실증주의자들의 주장이 옳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현실의 결정적인 일부를 의미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의미를 이해한다는 과제, 또는 그 의미가 옛날의 언어로써는 표현될 수 없다는 그것을 새로운 언어로 표현해 보아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 있을 것이다”

……

“예측의 가능성에 대한 진리규준으로 본다면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은 후기의 뉴턴의 것과 비교해서 그렇게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날 뉴턴과 프톨레마이오스를 비교한다면, 뉴턴은 실로 천체의 궤도를 그의 운동방정식에서 더 포괄적으로, 그리고 보다 더 정확하게 정식화하였다. 따라서 그는 말하자면 자연을 구성하고 있는 의도를 올바르게 표현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280 ~ 281


전체적으로 세계 질서구조의 배후에서 그 질서구조 자체의 「의도」가 되어 있는 「의식」과 같은 것을 생각해 보는 것은 무의미한 노릇인가. 「의식」이란 말 자체가 물론 인간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제기된 문제도 결국은 문제의 인간화로 귀착되고 만다. 따라서 이 개념도 본래 인간적인 영역 외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엄격하게 제한해 버린다면 결국 한 마리의 동물의 의식에 관해서 운운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런 말의 방식에 어떤 뜻이 있는 것같이 느끼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의식」이라는 말을 인간의 영역 외에서 사용하려고 할 때 그 개념의 의미는 더 광범위해지고 더 모호해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실증주의자들은 이러한 경우 세계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침묵을 지켜야 할 부분이 있다고 간단하게 해결하는 한 가지 방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이러한 경우에 침묵을 지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무의미한 철학이 또 어디에 있을 수 있겠는가. 그 까닭은 사람들에게 어느 하나도 완전히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불분명한 것을 제거해 버린다면 아무 흥미도 없는 동어반복(同語反覆)만이 남게 될 것이다.

                                                                       282 ~ 283


“가치에 관한 문제, 그것은 말하자면 우리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려고 노력하며, 어떻게 행동하여야 하는가에 관한 물음이다. 따라서 이 물음은 인간에 의하여, 그리고 인간에게 제출된 문제이다. 그것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 나아갈 길을 찾을 때 그 방향을 지시해 주는 나침반에 관한 물음인 것이다. 이 나침반은 여러 가지 종교와 세계관 속에서 매우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이를테면 행복, 신의 의지, 의미와 같은 것들이다. 이와 같이 그 명칭이 서로 다른 것은 바로 그와 같은 이름을 부여한 인간 그룹들의 의식구조, 즉 그들이 가고 있는 나침반의 심각한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다. 나는 이 차이를 없애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역시 나는 이 모든 표현 안에서 세계적인 중심질서에 대한 인간의 관계가 문제되고 있다는 인상을 짙게 받고 있다. 물론 우리는 현실이 우리의 의식구조에 좌우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객관화할 수 있는 부분은 현실의 매우 작은 부분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주관적인 영역이 문제가 될 때에도 중심질서는 작용할 수 있으며, 이 영역의 형태들을 우연이나 임의의 작용으로 간주하는 권리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주관적인 영역에서는 개개인이든 민족이든지 간에 많은 혼란이 있을 수 있다. 말하자면 악마들이 행패를 부리며 지배할 수도 있다. 좀더 자연과학적인 표현을 한다면 중심질서와는 조화되지 않고 그것에서 멀리 떨어진 부분적인 질서가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은 항상 중심질서 즉 종교의 언어와 관련되어 있는 예부터 내려오는 말, 즉 「하나」가 그곳을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가치문제를 논할 때에는 분리된 부분질서에서 유발될지도 모르는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이 중심질서의 뜻을 따라 행동할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 하나의 작용은 이미 우리가 질서지워진 것을 선으로 보고 혼란된 무질서를 악으로 느끼고 있다는 데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원자폭탄에 의해서 파괴된 도시의 광경은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하지만, 이 황폐의 잿더미 우에 한 송이의 사과꽃이 피어 열매를 맺으면 우리는 거기서 환희를 느낀다. 자연과학에 있어서의 중심 질서는 결국은 「자연이란 이와 같은 계획에 의하여 창조되었다」라고 말해질 수 있는 그러한 은유(隱喩)가 통용될 수 있다는 데서 인식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나의 진리개념은 종교에서 의미되는 그 사태와 연결되는 것이다. 나는 이 전체적인 연관성을 양자역학을 이해하고 나서 더 잘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이유는 양자역학에서 추상적인 수학적 언어를 써서 광범위한 통일적 질서를 정식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상 언어로써 이 질서의 성과를 기술하려고 할 때에는 우리는 비유에 의지하거나, 역설(逆說)과 외견상의 모순을 감수해야만 하는 상보적 고찰방식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도 동시에 배웠던 것이다.”

                                                                       282 ~ 283


(볼프강)

<도대체 자네는 인격적인 신을 믿고 있나. 물론 이 질문 자체에 명확한 의미를 부여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내가 무엇을 묻고 있는지 잘 알 타제.>

“내가 그 질문을 좀 달리 표현해 보아도 좋다면 그것은 이렇게 될 것이다. 즉, 전혀 의심할 수 없는 사물이나 어떤 사건의 중심질서에―어떤 사람의 영혼이 가능했던 바와 같이―직접 대면하고 직접 접촉할 수가 있느냐라고. 나는 여기서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그렇게도 어렵게 생각되는 「영혼」이라는 단어를 일부러 사용하였다. 즉 자네가 이렇게 질문한다면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나 개인의 체험은 여기서 중요한 것이 못되지만, 파스칼이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던 「불」이라는 말로 시작된 저 유명한 구절(이것은 1654년 11월 23일 밤 파스칼이 경험한 종교적 체험을 기록하여 파스칼이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던 유명한 구절을 뜻한다―역자주)을 상기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 구절이 나에게 해당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그렇다면 자네는 중심질서가 어떤 사람들의 영혼과 같이 분명하게 현존한다고 생각한단 말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여기서 자네는 왜 「어떤 사람들」이라고 말할 것이지 「영혼」이란 말을 구태여 사용했는가?>

“그 이유는 「영혼」이라는 말이 존재의 중심을 나타내는 중심질서를 말하며, 그것이 외면으로 나타날 때에는 형태가 매우 다양해서 그렇게 간단히 개관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

<실증주의 철학은 자네에게는 전혀 낯선 것이 될 것이다. 만약 자네가 그 철학의 금지조항을 받아들인다면 지금까지 자네가 말한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니까. 그러나 자네는 이 철학의 가치의 세계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생각하나? 근본적으로 철학 안에서는 윤리가 태어날 수 없다는 것인가?>

“그것은 언뜻 생각하면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역사적으로는 바로 그 반대이다. 우리가 오늘 서로 토론하고, 또 우리가 만난 이 실증주의는 확실히 실용주의와 그에 속해 있는 윤리적인 태도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실용주의는 팔짱을 끼고 가만히 서 있지만 말고, 그리고 지나치게 거대하게 세계의 개선 같은 것을 생각하지 말고, 우선 자기 신변의 일부터 개개인의 책임을 가지고 처리해 나가기를 힘쓰고, 힘에 미치는 작은 영역에서, 보다 나은 질서의 개선을 위하여 일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나는 이 점에서 이와 같은 실용주의가 옛날의 많은 종교들을 훨씬 능가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옛 가르침은 자기의 힘을 가지고도 능히 해나갈 수 있는 그러한 자리에서도 언뜻 불가피한 것으로 보이는 어떤 힘에 그냥 자기 자신을 복종시키고 마는, 말하자면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사람을 유혹하기 쉽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큰 것을 개선코자 하였을 때, 작은 일부터 착수해야 한다는 것은 실제적인 행동영역에서 매우 훌륭한 원칙이다. 과학에 있어서도 사람들이 위대한 연관성을 상실하지 않는 한에서는 이 길은 넓은 영역에서도 정당한 것이다. 뉴턴의 물리학에 있어서는 개체성에 대한 세심한 연구와 전체에 대한 조망―이 양자가 함께 작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대판인 실증주의는 이 위대한 연관성을 보려고 하지 않으며―나의 비판이 좀 지나칠지도 모르지만, 내 식대로 말하면―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모호하게 만들려고 하고 있는―적어도 그것에 관해서 생각하는 것을 아무에게도 권하려 하지 않는―과오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285 ~ 287



18. 정치와 과학에 있어서의 대결(1956~1957)


1954년 가을 나는 정부의 위촉을 받고 워싱턴에서 열리는 연방공화국의 원자기술산업의 재개에 관한 최초의 교섭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다. 독일이 전쟁 동안에 원자폭탄 제조에 관한 원리적인 지식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대해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 회의에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여하튼 우리에게 하나의 작은 원자로 건설이 허용되었다. 그리고 독일에서의 원자기술의 평화적 이용에 대하 제한이 쉽게 풀릴 것같이 보였다.

                                                                       289


질서가 엄연히 존재하는 법치민주국가(法治民主國家)에서도 새로운 원자기술을 시작하는 결정과 같은 중요한 결단을 내리게 될 때에는 간단하게 그 합목적적 관점에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의 이익에 얽힌 복잡한 조정이 필요하며, 도무지 앞을 예측할 수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전혀 원래의 목적과는 어긋나는 일들이 계획의 추진을 방해한다는 사실은 나에게 있어서는 새로운 경험이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정치가를 비난할 수만도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서로 얽혀 있는 상반되는 이해를 생활공동체에 조화시키도록 하는 일이 정치가들의 중요한 과제일 것이며, 그들이 그것을 쉽게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경제적이나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일에 나는 매우 미숙하였다. 따라서 나는 생각하였던 것만큼은 기여할 수 없었다.

                                                                       290


칼스루이에서 새로 건설되는 평화적 원자기술센터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그 막대한 자력을 오히려 다른 목적에 사용하기를 더 원하고 있는 부류의 사람들에게 장악 당하는 것을 끝까지 피할 수 있을 것인지가 몹시 걱정스러웠다. 중요한 결정을 내린 사람들에게 평화적인 원자기술과 원자 무기기술 사이의 한계가, 원자기술과 원자의 기초연구의 경계와 마찬가지로 매우 유동적이었다는 것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291


(프리드리히)

<선생님이 많은 협의과정을 통해서 아시는 바와 같이, 대부분의 문외한에게 있어서 한편으로는 군사기술, 다른 한편으로는 기초연구라는 문제를 안고 있는 기술개발―이것이 지금 계획되어 있는 것입니다만―에 어떤 예리한 선을 긋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임에 틀림없습니다. 따라서 이 기술개발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기초연구 영역을 신설되는 연구센터 안에 포함시키려는 노력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것은 더 위험한 일이지만―평화적 원자기술에서 후일의 군사적 이용을 고려하는 방향―예컨대 플루토늄의 생산과 같은―으로 노력하는 경향도 나올 수 있는 문제입니다.

……

선생님은 지난해에 마이나우섬에서 일련의 물리학자들이 발표한 성명서에 서명하신 일이 있지 않습니까. 선생님은 그 성명에 만족하셨습니까?>

“내가 그때 협력한 것은 확실하지만 나는 근본적으로 그러한 성명을 내는 데는 반대다. 평화를 사랑하고 원자폭탄을 반대한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주장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리석은 도로에 불과하다. 오장육부를 제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평화는 사랑하고 원자폭탄은 싫어할 것인데 새삼스럽게 학자들의 성명이 필요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293 ~ 271


“내가 지난 몇 년 동안의 진전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사람들은 두 가지 즉 정치와 학문을 동시에 잘 해나갈 수는 없다는 점이다. 어쨌든 나에게는 그것은 도저히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한편 생각해 보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학문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치에서도 전력을 투입하는 자만이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다.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쫓을 수는 없는 법이다. 따라서 나는 완전히 학문으로 되돌아갈 것을 결심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정치는 정치 전문가들의 직업인 동시에, 우리들이 1933년과 같은 파국을 되풀이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정치는 또한 만인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선생님이 여기서 도망치실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적어도 그것이 원자물리학의 성과에서 빚어지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295


괴팅겐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핵무장 문제에 관한 정치적 토론이 위기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연방정부는 우리 물리학자들에게 일정한 정책 방향을 제시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그런 대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접어들 수 있다는 우리의 불안감을 높였다. 바로 그 무렵, 아데나워 수상은 어느 공적인 연설에서 원자무기는 근본적으로는 다른 화기의 개선과 개량에 불과할 뿐이며, 통상적인 무기에 비해서 정도의 차가 있을 뿐이라는 뜻을 밝혔다.

그와 같은 표현을 우리는 참아 넘길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독일국민에게 원자무기의 영향력에 대한 인상을 거의 강제적으로 그르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의무를 자각하게 되었으며, 특히 프리드리히는 공개성명을 발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발표하는 성명이 평화를 사랑하고 원자폭탄에는 반대한다는 일반적이고 우호적인 것에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데에 우리들의 의견이 재빨리 일치되었다. 오히려 주어진 상황 아래 우리가 이룰 수 있는 구체적인 목표설정이 필요하였다. 따라서 당연히 두 가지 목표가 설정되었다. 첫째는 독일의 국민들에게 원자무기에 대한 유화책이나 얼버무리는 모든 시도는 물리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둘째로는 핵무장 문제에 대한 연방정부의 태도를 변화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성명은 연방공화국에만 국한된 것이고, 원자무기의 소유는 연방공화국에 있어서는 국가안보를 증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태롭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을 명백하게 진술하는 것이어야 했다. 다른 나라 정부가, 그리고 그 국민들이 원자무기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문제에 관한 한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가 개인적으로 원자무기에 관한 어떠한 협력도 거부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 우리 성명이 한층 더 무게를 갖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이와 같은 거부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경위야 어찌 되었든 우리는 전쟁 중에도 원자무기 제조에 관한 연구는 계속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가 주로 세부에 걸친 내용을 여러 친구들과 논의하였다. 나는 당시에는 아직도 정양을 필요로 하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회의에서 빠지고 있었다. 그래서 성명의 원문은 칼 프리드리히에 의해서 기초되었고, 수정작업을 거쳐서 괴팅겐의 18인회에 의해서 의결되었던 것이다.

원문은 1957년 4월 16일 신문지상에 공표되었다. 그것은 분명하게 세상에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모든 분야에서 원자무기의 영향을 경시하는 경향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우리의 첫째 목표는 수일 내로 상당한 정도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였다. 그 당시 연방정부의 태도는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 아데나워는 그가 신중하게 숙고를 거듭한 계획이 위협을 받는 움직임에 당황한 것처럼 보였으며, 우리 괴팅겐 그룹 몇 명―그 중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지만―에게 본에서 회합을 갖자고 요청해 왔다. 나는 이를 거절하였다. 한편으로는 쌍방의 견해를 좁힐 수 있는 어떤 새로운 방안이 나올 것을 기대할 수 없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 건강상태가 이같이 힘든 대결을 이겨낼 자신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데나워는 재고를 촉구하기 위하여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래서 전화를 통해서 하나의 긴 정치적 대결이 전개되었다. 나는 그때의 줄거리를 본질적인 면에서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이때 하이젠베르크는 입각할 것을 강력히 요청받았지만 이를 단호히 거절하였다고 한다―역자주)

아데나워는 우선 지금까지 우리가 근본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서로 잘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연방정부는 평화적인 원자기술을 위하여 많은 공헌을 해왔다는 점을 말하고, 우리가 발표한 「괴팅겐 선언」은 그 대부분이 오해에 기인되어 있다고 지적하였다. 아데나워는 핵무장 문제에 있어서는 그에게 선택의 여지를 남겨두고자 했던 그 취지를 우리가 충분히 경청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취지를 충분히 이해하면 쉽게 합의점에 도달할 것이고, 그러면 그 합의된 것을 공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병중이며 핵무장과 같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를 놓고 대결하기에는 건강이 허락치 않는다고 대답하였다. 나로서는 그렇게 쉽게 합의점에 이르리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그가 우리들에게 설명할 취지라는 것이 연방공화국의 군사력의 취약점, 소련의 우월성, 따라서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희생을 각오하지 않는 한 미국에 원조를 기대해야 하는 부당성 이외에 다른 것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이와 같은 가능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그리고 철저하게 검토를 끝마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영국이나 미국과 같은 나라 사람들의 독일인에 대한 감정을 더 잘 알고 있었다. 과거에 있었던 나의 여행에서, 독일군의 어떠한 핵무기도 특히 미국에서는 항의의 선풍을 불러일으킬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되었으며, 따라서 그로부터 결과되는 악화는 그렇지 않아도 불안정한 정치풍토를 더욱 악화시킬 것인데, 이것은 어떠한 군사적 이점으로써도 상쇄할 수 없는 중대한 파국을 몰고 올 것이라는 것은 나에게는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아데나워는 우리 물리학자들이 이상주의자들이고, 인간의 선의를 믿고, 어떠한 폭력의 사용도 증오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핵무장을 중지하고 평화적 수단에 의해서 모든 이해의 충돌을 조정하는 노력을 호소하는 일반적인 성명을 모든 사람들을 향해 하는 것이었다면, 자기도 거기에는 서슴지 않고 동의하였을 것이며, 자기가 바라고 있는 바이기도 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우리들의 성명은 마치 우리가 연방공화국의 약화라도 바라는 듯한 느낌이 없지 않으며, 따라서 그 성명은 그러한 방향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비난하였다.

나는 이와 같은 그의 비난에 대해 매우 격렬하게, 그리고 거의 노기를 띠면서 우리를 방어하였다. 나는 우리가 이상주의자로서가 아니라, 냉철한 현실주의자로서 행동하기를 희망하였다고 말하였다. 우리는 바로 이 시점에서 독일연방군의 어떠한 핵무장도 연방공화국의 정치적 입장을 약화시킬 것이 틀림없으며, 그가 그렇게도 중시하고 있었던 국가안보도 핵무장에 의해 극도로 약화되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우리가 현재, 마치 옛날의 중세로부터 근대에 이르는 과도기와 같이, 안보문제에 관해서는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옛날의 사고방식에 따라 경솔하게 행동하기 전에 근본적으로 이 변화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나는 믿고 있었다. 이와 같은 방향에서 사람들을 충분히 의식화시키고 구식의 전략적인 배려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는 것을 저지하자는 것이 우리들의 성명이 의도하는 바였다.

이러한 나의 논지를 아데나워에게 설득하는 일은 심히 어려운 노릇이었다. 그는 작은 무리들―즉 이 경우에는 소수의 원자물리학자들―이 큰 정치공동체의 이익을 위하여 충분히 심사숙고해 작성한 계획에 감히 시비를 거는 것은 부당한 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우리 선언에 대한 반응과, 우리 성명이 독일내의 상당수의 사람들과 다른 나라의 많은 사람들의 의사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쉽사리 우리의 논지를 처리해 버릴 수는 없다고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는 좀 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재차 나에게 본에 나와 줄 것을 설득하려 했다.

                                                                       299 ~ 302


나는 우리의 억류생활 동안의 체험에 관해서 그와 나눈 대화의 한 토막을 기억하고 있다. 아데나워는 상당한 기간 동안 게시타포에 의해서 좁은 감방 안에 아주 나쁜 급식을 받으며 감금되었었다. 나는 영국에서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억류생활을 보냈기 때문에 그에게 그 기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아데나워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는 것이었다.

<아마 박사님도 아시겠지만 사람이 그같이 좁은 감방에 감금되어서 며칠, 몇 주, 그리고 몇 달 동안을 전화 한 통, 방문자 하나 없이 지내노라면 깊은 사색에 잠길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아주 조용히, 그리고 침착하게 오로지 혼자서만 지나간 일들과 장차 닥쳐올 일들에 대하여 깊이 숙고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얻기 어려운 훌륭한 기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303

19. 통일장(統一場)의 이론(1957~1958)


우리의 공동관심사는 중국계 미국인인 이정도(李正道)와 양진녕(楊振寧)의 발견이었다. 이 두 물리학자는 그까지는 거의 자연법칙의 자명한 구성요소로 간주되고 있었던 우(右)와 좌(左) 사이의 대칭성이, 방사능현상을 지배하고 있는 약한 상호작용에서는 방해를 받고 있을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실제로 우리는 실험에서 방사능의 β 붕괴시에 좌우대칭성에 강한 이탈현상이 일어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마치 β 붕괴에서 방출된 질량 없는 입자, 소위 「중성미자(中性微子)」(neutrino)는 우리가 좌형(左形)이라고 불렀던 한 가지 형태만 존재하고, 그 반면에 「반(反)뉴트리노」는 우형(右形)으로 나타날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미 20년 전에 파울리는 뉴트리노의 존재를 처음 예언한 바 있었으며, 따라서 그는 이 뉴트리노의 성질에 관해 특별히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 입자의 존재는 얼마 가지 않아서 바로 증명되었지만, 이 새로운 발견은 뉴트리노의 상(像)에 특징적이고 자극적인 어떤 변화를 가져왔던 것이다.

우리들, 즉 파울리와 나는 항상 가장 단순하고 질량이 없는 이러한 입자들에 의해 표현되는 대칭성은 동시에 그 밑바탕에 갈려 있는 자연법칙의 대칭성임에 틀림없을 것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와 같은 입자들에 좌우대칭이 결여되어 있다면 근본적으로 자연법칙에도 좌우대칭이 없는 것인데, 그것이 2차적으로―예컨대 상호작용과 그 작용의 결과로부터 생기는 질량과 같은 우회로를 거쳐서―비로소 자연법칙 안으로 들어온다는 가능성도 계산에 넣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수학적으로는 하나의 방정식인데, 그 방정식을 풀면 두 개의 정당한 값이 나오는 것과 같이, 수학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추가적인 배가(倍加)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만약 이와 같은 가능성이 정당하다면 이것이야말로 대단히 충격적일 수밖에는 없었다. 그 까닭은, 이것이 자연법칙의 단순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물리학 연구에 있어서 실험적인 경험에서 예상되지 않았던 단순성이 출현하였을 때에는 극도의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는 것을 옛날부터 배워왔던 것이다. 바로 그때에 사람들은 커다란 연관성을 접할 수 있는 한 장소에 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李)와 양(楊)의 발견의 배후에는 결정적인 통찰이 숨어 있지나 않을까 하는 느낌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304 ~ 305


나는 한번 파울리에게 어째서 그렇게도 2분할의 과정에 대하여 큰 가치를 부여하는지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지금까지의 원자각(原子殼)의 물리학은 고전물리학의 목록에 있는 직관적인 상들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비록 그 적용 가능성은 제한되어 있다고 하지만, 역시 보어의 소위 「대응원리(對應原理)」라는 것도 바로 그러한 상들을 주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원자각에 있어서도 실제로 나타난 수학적인 기술은 그 상들보다 상당히 더 추상적인 것이었다. 사람들은 심지어 입자상(粒子像)이나 파동상(波動像)과 같이 서로 판이한 대립되는 상들을 같은 실질적인 사태에 귀속시킬 수 있다. 그러나 소립물리학에서는 그런 상을 가지고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물리학은 사실상 훨씬 더 추상적이다. 따라서 이 영역에서의 자연법칙들의 정식화를 위해서는 자연계에 실현되고 있는 대칭성, 즉 다른 표현을 빌자면 「자연의 공간」에 뻗치는 대칭적 연산―예컨대 변위(變位)라든가 자전(自轉)과 같은―이외에는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사람들은 왜 대칭연산이 있어야 하며, 다른 것들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가 하는 문제에 필연적으로 봉착하게 된다. 여기서 내가 생각하는 2분할의 과정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자연의 공간을 아마 강제적이 아닌 방법으로 확장되고, 그럼으로써 새로운 대칭을 위한 가능성을 만들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자연의 대칭성은 이상적으로 말할 때 바로 이 2분할의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문제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는 그 회의에서 돌아온 후에 비로소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괴팅겐에서 내부 상호작용을 가지고 있는 물질의 장(場)을 기술하고, 가능하면 자연에서 관찰되는 모든 대칭성을 짜임새 있는 형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장의 방정식을 발견하는 데 온갖 노력을 집중시켰다. 그때 나는 모형으로서 β 붕괴에서 경험적으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상호작용을 이용하였는데, 이것은 이(李)와 양(楊)의 발견에 의하여 가장 간결하고 아마도 궁극적인 형태로서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1957년 늦가을이었다. 나는 주네브에서 이러한 문제에 관한 학술강연을 끝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의 시도에 관하여 파울리의 대화를 나누기 위하여 취리히에 잠시 체류하였다. 볼프강은 내가 이미 접어든 방향에서 계속 추구해 나갈 것을 권하며 나를 격려하였다. 그것은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계속되는 몇 주일간을 나는 물질장(物質場)의 내부 상호작용이 표현될 수 있는 여러 가지 형식을 되풀이 반복하면서 연구를 계속해 나갔다. 갑자기 흔들리는 상들 밑에서 이상하게도 높은 대칭성을 갖는 장의 방정식이 떠올랐다. 그것은 수학적 표현에 있어서 옛날의 디락의 전자 방정식보다 별로 복잡한 것은 아니었지만, 상대성이론의 시간과 공간의 구조뿐만 아니라, 양성자와 중성자 사이의 대칭도 내포하고 있는 것이었다. 좀더 수학적인 표현을 빌어서 말한다면 이 방정식은 로렌쯔군(群)과 더불어 아이소스핀(Isospin)군(群)도 포함하고 있어서, 분명히 자연에 나타나고 있는 대칭성의 대부분을 표현하고 있었다. 이것에 관하여 내가 써보낸 편지를 받아본 파울리도 즉시 대단한 흥미를 보여주었다. 그 이유는 이 방정식은 전체적으로 매우 복잡한 소립자의 스펙트럼과 그것들의 상호작용을 포괄하기에 충분하였고, 동시에 이 영역에서 단순히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이외에는 모든 것을 확정시킬 수 있는 하나의 틀이 발견된 것 같이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방정식을 소립자의 통일적인 장의 이론의 기초로 삼을 수 있는 것인지에 관한 문제를 공동으로 추구해 나가기로 결심하였다. 그때 파울리는 이 방정식에 여전히 결여되어 있었던 작은 부분의 대칭성은 2분할의 과정을 통해서 이 다음에 추가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이 방향으로 한 발짝씩 깊이 들어감에 따라 파울리는 거의 열광상태로 빠져들어갔다. 파울리가 이렇게 흥분상태에 빠져 있는 모습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그때까지의 연구과정에서―물론 그것은 소립자물리학의 부분적 질서에 관한 것이었지 전체적 연관성에 관한 것은 아니지만―그는 모든 이론적 시도에 비판적이고 회의적으로 임해 온 데 반하여 이번에는 새로운 장의 방정식의 도움에 힘입어 큰 연관성을 자기 자신의 힘으로 정식화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그는 확실히 단순성과 고도의 대칭성에 있어서의 유일한 형상을 갖추고 있는 이 방정식이야말로 소립자의 통일장이론의 올바른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확고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나도 역시 지금까지 오랫동안 찾아 헤매었던 소립자의 세계를 향한 닫혀진 문의 열쇠를 비로소 손에 쥔 것 같은 이 새로운 가능성에 매혹되고 있었다. 물론 나는 기대되는 목표까지 이르려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야 할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1957년 크리스마스 직전에 나는 파울리로부터 편지 한 장을 받았다. 수학적인 내용이 대부분인 그 편지에는 그 주간에 그가 느낀 고조된 기분이 여실히 나타나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삽살개의 정체(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인용된 것으로서, 어떤 일의 정체(正體)라는 뜻―역주자)다. 2분할이야말로 예부터 내려오는 악마의 속성인 것이다. 「의심(Zwifel)」이라는 단어는 원래 2분할(Zweiteilung)을 뜻하였음에 틀림없다.>버나드 쇼의 어느 작품 안에서 한 주교(主敎)가 <악마를 위해서 부디 페어 플레이를 해주시오>라고 말하고 있다. 까닭에 악마도 크리스마스 축제를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다. 두 사람의 거룩한 분들―그리스도와 악마―은 그 사이에 훨씬 더 대칭적이 되었다는 점을 깨닫게 되실 것이다. 이런 이단적인 가르침을 자네의 어린이들에게는 말하지 말도록. 그러나 폰 바이쯔재커 남작에게는 말씀하셔도 무방하지. 이제야말로 우리는 발견한 것이야. 정말로 충실한 자네의 볼프강 파울리.>

8일쯤 후에 쓴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인사말이 있다.

<신년에 자네의 가족에게 축복이 임하기를! 그리고 원컨대 금년에는 소립자물리학에 광명이 있기를 빈다.>

                                                                       306 ~ 309



20. 소립자(素粒子)와 플라톤 철학(1961~1965)


소립자의 통일장 이론 연구는 특히 한스-페터 뒤르가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독일에서 성장하여 미국에서 전문교육을 받았으며, 오랫동안 캘리포니아에서 에드워드 텔러의 조수생활을 하다가 다시 독일에서 연구를 계속하려고 했다. 그는 이미 캘리포니아에서 아마도 텔러에게서 우리들의 「라이프치히의 서클」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으며, 물리학과 철학 사이의 관련을 두절시키지 않기 위하여 가을마다 몇 주일씩 규칙적으로 뮌헨에서 우리 연구소에 와서 머무르곤 하였던 칼 프리드리히와의 대화에서 이미 우리들의 전통을 몸에 익히고 있었다. 그래서 새 연구소 안에 있는 나의 연구실에서 프리드리히와 뒤르 그리고 나 이렇게 셋 사이에서 통일장 이론의 물리적 철학적 관점이 대화의 대상이 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

                                                                       313


“「태초에 대칭성이 있었다」―이것은 데모크리토스의 「태초에 입자가 있었다」라는 명제보다 더 옳은 명제이다. 소립자는 대칭성을 구체화시킨 가장 단순한 표현이지만 그것은 또 비로소 대칭성이 이루어진 한 결과인 것이다.”

                                                                       316


그 날의 주제는 현대적인 형태를 지닌 다윈의 이론인 「돌연변이와 자연도태」에 관한 것이었으며, 이 학설을 기초짓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비교가 토론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즉 종의 발생은 아마도 인간의 도구(道具) 발생과 거의 같이 진행되었을 것이라고. 그래서 물 위에서 전진하기 위해서는 우선 노를 젓는 보트가 고안되었을 것이고, 사람들은 이와 같은 도구를 사용하여 호반이나 해변가에 살게 되었을 것이다. 그때 어떤 사람에게 돛을 달고 풍력을 이용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서 큰 바다에서는 돛단배가 노를 젓는 보트를 물리치고 말았다. 계속해서 증기기관이 만들어지고 기선이 모든 해상에서 범선을 추방하고 말았다. 한편 불충분한 노력의 결과는 발달되는 기술에 의해서 재빨리 도태되어 갔다. 예컨대 조명기술에서는 네른스트 전구가 바로 백열전구에 의해서 제거되고 말았다. 이와 같이 다양한 종류의 생물 종 사이에서의 도태과정도 이러한 식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돌연변이란 바로 양자이론이 규정하고 있는 바와 같이 순수하게 우연적인 것이다. 그리고 도태과정에서 자연에 있어서의 이와 같은 대부분의 시도들은 추방당하고 만다. 그리하여 결국은 주어진 환경조건 아래서 적응할 수 있었던 극히 소수의 형(形)만이 생산된다는 논지였다.

이 비교를 깊이 생각하는 중에, 이상에서 묘사된 기술의 발달과정은 어느 결정적인 한 점에서―즉 다윈의 이론에서―우연이 문제되는 바로 그 시점에서 다윈의 학설과는 모순된다는 것이 나에게는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다양한 인간의 발견은 바로 우연을 통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의도와 숙고를 통해서 비로소 생기는 것이다. 이 같은 비교를 사람들이 보다 신중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어떠한 결론이 나올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다윈의 우연의 자리에는 무엇이 대신할 수 있는가를 마음에 그려보려고 노력하였다. 여기서 「의도」라는 개념이 어떠한 역할을 할 수는 없는 것인가? 본래 「의도」라는 말은 인간의 경우에만 문제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소시지를 먹을 욕심으로 부뚜막에 오르는 강아지의 경우에는 아마도 「의도」라는 것을 간신히 허용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박테리아에 접근하고 있는 「박테리오파지」는 그곳에서 증식하기 위하여 그 박테리아 속으로 침투하려는 그 어떤 의도를 갖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만약 우리가 여기서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아마도 주위의 환경조건에 잘 적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이렇게까지 생각을 거듭하게 되면 「의도」라는 말이 남용되고 있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질문에 대해서 좀더 신중한 표현을 선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실현 가능한 것 즉 도달될 수 있는 목표가 인과적인 진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다시 양자이론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 이유는 양자이론의 파동함수는 실제적인 것이 아니라 가능한 것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다윈의 이론에서 그토록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우연은 그것이 양자역학의 법칙들을 배열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그저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미묘한 그 무엇일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319 ~ 320


“자연에 대한 모든 심사숙고는 불가피하게 커다란 원이나 나선형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까닭은 우리는 자연에 대해서 깊이 고찰할 때에만 자연에 관해서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으며, 우리의 사고와 모든 행동방식은 자연의 역사로부터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원칙적으로는 어떤 자리에서도 시작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고는 가장 간단한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합목적적으로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가장 간단한 것이란 다름 아닌 양자택일입니다. 예스냐 노냐, 존재냐 비존재냐, 선이냐 악이냐 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항상 일어나고 있는 바와 같이, 그런 양자택일만 생각하고 있는 한 거기서는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양자이론에서는 확실히 양자택일에 있어서도 예스나 노라는 대답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그밖에 상보적인 대답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즉 그 대답 안에서는 예스나 노에 대한 확률이 정해져 있으며, 더 나아가서 예스와 노 사이에 하나의 진술가치(陳述價値)가 있는 어떤 종류의 간섭이 확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가능한 대답의 하나의 연속체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수학적으로는 두개의 복소변수(複素變數)를 가지고 있는 일차변환(一次變換)의 연속군이 문제가 됩니다. 이러한 군(群) 안에는 이미 상대성이론의 로렌쯔군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이 가능한 대답들 중에서 어떤 하나에 대하여 그것의 정당성 여부를 묻는다면 그것은 이미 현실세계의 공간 시간 연속체와 같은 하나의 공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꼴이 됩니다. 이와 같이 나는 당신들의 장의 방정식에 의해 확립되었고, 또 어떤 의미로는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군구조(群構造)를 양자택일의 중첩된 층에 의해 전개하는 것을 시도해 보았으면 합니다.”

                                                                       321 ~ 322


“양자택일은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 있어서의 삼각형과 같이 물질이 아니지. 그러나 사람들이 양자이론의 논리를 그 기초에 둔다면 양자택일은 복잡한 기본형식이 반복에 의해서 출현할 수 있는 하나의 기본형식이 된다. 따라서 내가 자네를 정확하게 이해하였다고 한다면, 그 방향은 양자택일로부터 대칭성이라는 어떤 하나의 특성에 이르게 될 것이다.

                                                                       323


멀리 떨어져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엘리자베트가 기어들었다.

<아니, 당신들은 요즈음의 젊은 세대들이 당신들이 논하고 있는 그와 같은 커다란 연관성 따위의 문제에 관심이나 있는 줄 아세요? 젊은 세대들의 관심은 대부분 개개의 작은 문제에 쏠려 있지, 커다란 연관성 같은 것은 거의 거론해서는 안 되는 터부가 되어 있는 것 같이 보이던데요. 사람들이 바로 다음의 일식과 월식을 원(圓)과 주전원(周轉圓)의 중첩으로 계산해 내는 데만 만족해 버리고, 아리스탈쿠스의 태양중심의 행성계 같은 것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저 옛날과 같은 일이 다시 되풀이되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요. 당신들이 말하는 커다란 연관성에 관한 일반적인 물음에 대하여 사람들이 흥미를 완전히 상실해 버리고 마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나는 그렇게 비관적이 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반론을 폈다.

“개개의 작은 일에 대한 관심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며 오히려 필요한 것이야. 그 까닭은 우리는 바로 그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아야만 하기 때문이지. 당신도 보어가 항상 즐겨 인용한 구절 즉 「충실한 곳에 바로 명석이 따른다」라는 말을 기억하고 있지 않소. 그리고 그 터부라는 것도 나는 그렇게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아요. 터부라는 것은 사람이 그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금지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니까 말이오. 예부터 터부의 논거로서 괴테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지 않소. 「아무에게나 말하지 말고 오로지 현인에게만 말하라. 많은 사라들은 그것을 조롱하기 때문에」라고. 그러니까 터부에 대해서 저항해서는 안되오. 항상 세상의 젊은이들 가운데는 끝까지 성실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커다란 연관성을 깊이 생각하려는 몇몇이 꼭 있게 마련이오. 그때는 그 수의 다소가 문제되지 않소.”

……

폰 홀스트는 비올라를 갖고 우리 두 아이들 사이에 앉아서 베토벤이 청년시절 작곡한 세레나데 D장조를 연주하기 시작하였다. 그 곡은 생명력과 환희에 넘쳐 있었으며, 중심적 질서를 향한 신뢰가 무기력과 피로감을 완전히 물리쳐주고 있었다. 그 곡을 경청하는 동안 내 전신에는 보어가 「사람은 항상 커다란 드라마 속의 관객인 동시에 공연자」라고 말한 것처럼, 인류의 시간이란 척도에서 본다면 우리들 자신의 협력은 매우 짧다고 할지 모르나 생활도 음악도 학문도 끊임없이 전진하리라는 확신이 점점 깊이 파고드는 것이었다.

                                                                       325. 본문 끝.

역자후기(譯者後記)


결국 하이젠베르크는 “……우리는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어떤 일정한 주위환경과 일정한 언어와 사고영역에서 태어나서 매우 어릴 때 그곳을 떠나지 않는 이상 그는 그 영역에서 가장 적절하게 성장할 수 있으며 또 그곳에서 가장 능률적으로 일할 수 있는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앞으로 어떠한 처절한 일이 자기 주변에 생길지도 모르는 자기 조국 독일로 귀국의 길을 재촉하는 모습은 마치 순교자의 거룩한 모습을 연상시키는 숭고한 장면이었다.

                                                                       328



하이젠베르크는 1901년 12월 5일 독일의 뷜쯔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는 뮌헨에 있는 막스 김나지움의 교장을 역임하였다고 한다. 본문에도 잠깐 나오지만, 그의 아버지는 비잔틴 문학자로서 후에 뮌헨 대학의 교수가 된다. 따라서 그는 교육자 및 학자의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뮌헨시에는 그의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하이젠베르크 거리가 있다고 하니 그의 아버지도 상당히 저명한 학자였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 책의 전편에 흐르고 있는 하이젠베르크의 인품에서 우리는 그를 그렇게 길러낸 그의 아버지의 인품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329


최근의 과학기술의 발달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의 발달은 도리 없이 학문의 세분화 및 전문화를 가져오고 말았다. 단순히 소립자물리학(素粒子物理學) 한 분야만 하더라도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서로가 무엇을 연구하는지를 잘 모를 정도로 세분화되어 가고 있다. 이것은 비단 물리학에 한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다. 그래서 오늘날 과학자들은 전체를 보는 눈은 아예 없어지고 말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부분만을 응시하게 되었다.

                                                                       330


본문에서 필자가 느낀 바로는, 그가 조머펠트에게서는 물리학도 부분적으로는 수학을 가지고 다루어나가야 하는 것을 배웠고, 전체적인 콘텍스트와의 연관성을 고려에 넣는 철학적인 사고방식은 닐스 보어에게서 배운 것으로 생각된다. 즉 부분과 전체가 하이젠베르크에서 완성되었다고 보아도 잘못이 없을 것 같다.

어떤 구체성을 띤 일을 하기 시작할 때는 대단히 작은 점까지를 세밀하게 검토해 가면서 몰두하는 저자의 모습을 우리는 본문에서 볼 수 있다. 거의 초인적인 정력을 쏟으며 산중에서 씨름하고 있는 저자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의 부분적인 문제를 정확하게 처리해 나가는 태도와, 일단 결과가 얻어지면 이론 전체 또는 실험 전체의 상황 하에서의 총체적인 관련성을 재검토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이와 같은 전체성을 재검토하는 일들이 본문에 전개되고 있는 주옥과 같은 대화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부분성만을 생각하였을 때 그는 아마도 미국으로 이민을 갔을지도 모른다. 전체성을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는 그의 조국에 남아서 끝까지 원자력의 무기로서의 개발을 저지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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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스 다윈 (지은이), 박영목 (옮긴이) | 한길사, 362쪽

내가 종의 기원에 처음으로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1999년이었습니다.

어떤 계기에 의하여 접한지는 모르겠으나, 이 책은 내가 이전에 샀던 책 중 가장 비싸고 아름다운 책(특히 그림과 사진)이었습니다.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하고 받았을 때의 흥분은 아직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그 해 여름은 제가 '가난'이라는 것을 절감한 계절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막노동판으로 가서 해가 떨어지는 모습을 일주일, 한달 동안 보는 것은

억압이며 고통이었습니다.

그 때 '스피노자'를 만났고 그것은 내게 축복이었습니다.

리처드 리키라는 생물학계에서도 자상하고 진중한 과학자가 현대적 입장에 맞게 덧붙이면서도 자연스럽게 다윈을 되살린 이 책의 서문을 읽는 데만 일주일이 걸렸을 정도였습니다.

그 때는 국어사전을 펴고, 모르는 단어들을 적어가며 읽었습니다. (그때까지 국어사전에 이렇게 많은 용어가 담겨 있는지 몰랐습니다.)

서문을 읽고 나서 나는 지금 읽을 책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덮어버렸습니다.

두 번째 기회는 군에 있을 때 찾아왔습니다.

용어를 적어놓은 주황색 노트를 마침내 찾았지만, 읽을 수 없었습니다.

국어사전에서 한두 줄 말해주는 용어를 가지고 어떻게 종의 기원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전역, 서울 생활..

서울에 자리를 잡자마자 나는 집에 있는 동아 백과사전을 공수해 옵니다.

종의 기원을 읽기 위해서이죠.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동아 대백과사전 일곱 권을 박스에 넣으면 용량 초과로 더 이상 보낼 수 없습니다.

이렇게 두 번 공수해 오고,

어머니가 소포를 보낼 때마다 한두 권씩 보낸 것이 거의 모아졌을 때,

올라온 사전들은 필요에 의해서 모두 폐기됩니다.

인터넷 백과사전이 더욱 상세하게 나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용어와 본문을 따로 정리하며 읽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직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갑자기 7년 간 잊지 못하던 이 책을 읽고 나자

주책스런 마음이 발동한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문학의 비조라면, 다윈은 생물학의 비조가 되기에 모자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생물학의 현대적 개념을 부여한 사람은 바로 다윈인 것 같습니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자연과학의 역사에 따르면 현대와 당분간의 미래를 대표하는 학문은 생물학이 될 것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나도 생물학의 줄기라도 좀 잡고 싶어서 계획을 세웠습니다.

다윈의 대표작 중 번역된 종의 기원과 '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 (Paperback) '('인류의 유래와 성선택'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확장된 표현형', '시계공', '악마의 사도'

왓슨, 크랩의 '이중 나선'

정도를 훑어보고 생물에 대한 개념을 좀 잡으려고 해요. 제가 생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군에서 읽은 '이기적 유전자' 때문이었지만, 어떤 생물학자도 아버지의 영예를 '다윈'에 두고 있더군요. 그래서 이렇게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암튼 7년간 끌어왔던 '종의 기원'을 일독하고 난 기분에 남깁니다.
이제 시작이지만요..

덧 : 이렇게 예쁜 책이 절판이라니. 이보다 더 자상한 책이 나온 모양이죠. 다위니즘이 현대 인문 자연과학의 큰 산맥인 만큼 숙독하고 나서 리뷰를 보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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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중앙일보 후원을 받아서 전국단위 대규모 논술 캠프를 준비 중이다.

초짜지만, 회사가 격변기라 이런 기획 저런 기획 내면서,

집필 계획도 하고, 콘텐츠 개발 같은 것도 몇 개 건네서 OK 받은 것도 있다.

300명이 넘는 인원이 하는 억대 행사로, 내 생애 가장 큰 행사에 앞서

착잡한 마음이 드는 것은 뒤늦게 생각난 기획안 때문이다.

실력은 있지만 기회가 없는 사람을 위해

마땅히 일정 부분 할애를 해야 하는 것이 기업 활동이라 생각한다.

SK 텔레콤 광고가 다른 광고보다 두세 발자국 정도 앞서간다고 보는 결정적인 근거는

그 광고가 '사회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기업들은 '기업의 사회성'이란 가치를 모르거나,

그것을 공격적으로 '사용'할 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것 역시 하나의 '전략 사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기업,

행동에 실천하는 기업은 극히 적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실력은 있지만 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위해

무료 참가자를 두었어야 했다.

관련 자치단체장과 교육감, 학교장 등에게 공문을 발송하고

학생을 추천 받아 5명이나 10명 이상은 무료로 캠프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렇지만 문제는 너무 늦게 그것을 깨달았다는 데 있다.

좋은 안건이라는 인정은 받았지만, 기획 단계를 넘었기 때문에

새로운 건의는 큰 의미가 없다.

일류 기업과 이삼류 기업의 큰 차이는

사업 규모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사회성 실천'에 있다는 모르는 바는 아니었는데..

내가 회사를 아끼고 사회 안의 나의 존재를 실천한다면

이 점은 반드시 지속적으로 관찰시켜야 한다.

가슴이 아프다. 너무 늦어 버려서..

하지만 깨닫는 바가 있다. 이것이 나를 안위하는 마지막 변명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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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01-10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K 광고가 사회성이 있다는 거, 읽고보니 그러네요. 생활백서에서 청각장애인 얘기도 다루구요... 하지만... 장애인을 위하는 광고를 하면서 실제로 장애인 채용에 인색한 삼성처럼, 광고만 좋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 뭐 딴지는 결코 아닙니다.

승주나무 2006-01-10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그건 그렇죠. 하지만 사회성을 흉내내는 것과 사회성을 실천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르죠. SK와 삼성이 사회성을 흉내내는 것만으로도 생각보다 큰 호응을 얻어서 좋아할지도 모르겠지만, 사회성을 실천하는 것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안 되죠. 하지만 그들은 그 효과에 대해서 확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볼 때 SK와 삼성은 품이 작은 기업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품이 큰 기업은 없다구요. '품'은 경제 규모로만 따질 일은 아니죠. 결국 '품'을 중심으로 절장보단해서 경제규모가 맞추어 지겠지만요..^^ 횡성수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