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꽃
와리스 디리 지음, 이다희 옮김 / 섬앤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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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소말리아를 누비면서 많은 가족을 만나 그 딸들과 놀곤 했다. 그러나 다시 만나면 딸들이 보이지 않기가 일쑤였다. 아무도 그 이유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딸들이 없어진 사실조차 언급하지 않았다. ~ 놀랄 일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처럼 살아남은 여자들이 놀라울 뿐이다.” 85p

사라지는 딸들, 호러영화가 아니다. 여성 할례라는 야만스러운 남성 폭력이 인습의 굴레를 틀어쥐고 여성들을 난도질한 것이다. 저자인 와리스 디리는 그것의 피해자이고, 이 책을 통하여 생생한 증언을 한다. 여성으로써 살아남기, 그녀에게 가해진 폭력과 차별의 인습이 사막이라는 환경보다 얼마나 더 참혹했는가를 보여준다.

“숫처녀들은 아프리카의 중매시장에서 인기 있는 상품이다. 드러내고 말하지는 않아도 그것이 여성할례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딸이 어여쁜 숫처녀라면 부모는 비싼 값을 기대할 수 있지만,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은 딸은 치울 수가 없었다.” 91p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낙타 5마리 때문에 백발의 노인에게 팔려갈 뻔한 그녀가 맨발로 도망을 친 사막에는 ‘사자밥’이라는 운명이 기다릴 것만 같았다. 그랬던 그녀가 세계적인 패션 모델이 되고 여성인권 운동가가 된다. 이처럼 극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는 ‘논픽션’이 아니면 줄 수 없는 영역에 있다. 자신을 덮고 있는 세상, 상식의 흐름을 깨고 뛰쳐나온 사람의 삶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문제의식과 카타르시스는 감히 쉽게 얻을 수 없는 의미를 지닌다.

전쟁에 의해, 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것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 스며있는 폭력의 위험성은 바로 인지할 수 없다는 데에 심각성이 있다. ‘당연한 것’ 그 당위성에는 수 많은 사람을 해칠 수 있는 논리가 스며있는 것이다. 히잡과 차도르로 봉쇄당한 인권, 혈통주의로 착취당한 정체성, 여성성과 성을 제거하려는 무자비한 ‘노력’들…

역사와 공간을 가르는 곳곳에서 드러나는 것들은 현재 진행형이고, 특별한 누구의 것만은 아니다. 여성의 문제만이 아니고, 사회의 주류가 될 수 없었던 수 많은 사람들의 문제이다.

할례…  메스를 대야 할 곳은 여성의 몸과 정신이 아니라, 아무렇지 않게 폭력성을 드러내는 사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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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6-06-09 0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땡스투... 잘 읽었습니다.

라주미힌 2006-06-09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한 여성을 만나실 수 있을 거에욤...

마노아 2006-06-09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되는 리뷰입니다. 어떤 책일지 꼭 보고 싶네요.

딸기 2006-07-02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택에 이 책 알게되어, 재밌게 읽었어요 라주미힌님!

라주미힌 2006-07-02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딸기님 서재에서 좋은 책 많이 건졌습니당...
 
과격하고 서툰 사랑 고백 우리시대의 논리 1
손석춘 지음 / 후마니타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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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지식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에게는 사회적 책임이 있다. 진실을 말하라. '거짓이 판을 치는 곳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혁명이다'라는 말처럼 그들은 침묵이란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와 스포츠, 과학과 애국주의가 합작하여 우민을 만들고 있는 요즘에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바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몸으로 저항하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뉴스를 장식하지만, 세상의 권력을 쥔 자들은 그것을 구경거리로 만들어 버리는 재주를 부린다.

세상은 끊임없이 현명해지기를 요구하면서 우둔함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공식허가를 받은 책만 읽은 사람은 같은 시대 사람들보다 거의 100년이나 뒤질 것이다” 말제르브  38p

언론 매체를 통하여 바른말을 하는 사람 중의 하나인 손석춘은 어느 정도 우리 사회의 긍정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었다. 이 책 ‘과격하고 서툰 사랑고백’은 그의 지난 2년간의 ‘자전적 칼럼집’으로써 우리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보게 한다.

“한 권의 책을 두려워하고 한 장의 전단을 무서워하여 자유의 힘을 불신했을 때의 태도로 아직도 우리는 자유와 진실을 불신하고 있다. 진실과 허위가 싸우게 하라. 자유롭고 공개된 싸움에서 진실이 패배하는 것을 본 일이 있는가.” 아레오파니티카, 밀턴   46p

우리가 놓아버린 진실들, 진실이라고 믿었던 거짓들. 질주하는 기차를 멈출 수 없다고 하던 자들이 벌인 추악한 일들이 일상이 된 현실은 피로감으로 찌들어 있다. 무엇보다 비참한 것은 우리는 그것을 되풀이 하고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희생 위에 올라서려고 하고, 공존보다는 경쟁에 익숙한 손을 들어주고, 너도나도 불안한 미래로 행군한다.

읽으면서 ‘지난’ 칼럼을 읽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미 지나간 일인데, 그런데 아닌걸… 우리는 미래를 읽고 있는 것이다. 과거를 걷고 있는 것이다.

207p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민족에게 역사는 보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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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06-09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민족에게 역사는 보복한다.”
마지막 문장이 압권이군요. 추천합니다.

후마니타스 2007-06-20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입니다.
도서에 관한 리뷰를 출판사 홈페이지로 담아갑니다.
미리 허락을 얻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글이 다른곳에 옮겨지는걸 원하지 않으신다면 홈페이지에 글을 남겨주세요.
확인즉시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humanitasbook.co.kr
입니다.
건강하세요 ^^
 
소풍
성석제 지음, 김경호 그림 / 창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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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할 수록 기억은 아름다워진다. 감상적인 미덕때문인가. 부끄러움, 원망, 고통조차도 추억이 되곤 했다. 인간에 대한 그리움, 향수에 옭아 매지는 것은 현실의 불만, 미래의 불안이 과거를 돌아보게 하는 것, 그것은 일종의 보상으로 이어진다.

성석제의 산문집 ‘소풍’은 감각적인 기억을 반추하게 한다. 마치 거대한 바가지에 각각의 맛이 살아있는 온갖 나물을 쓱쓱싹싹 버무려 놓은 것처럼 다양하면서도 일정한 법칙을 따른다.

그 법칙은 맛이다. 사는 맛, 어울리는 맛, 인생의 한 컷을 장식하게 된 그 맛들…
1부에서 4부까지 이어지는 맛의 퍼레이드는 ‘이 사람이 먹을 것만 찾아 다녔나’ 싶을 정도의 집착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러한 모습이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언뜻 든다. ‘먹는다’라는 것은 가장 본연적인 행위이고, 그것을 함께 한다는 것(만드는 것, 먹어주는 것)은 소통의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새끼를 낳은 어미의 첫번째 행위로 젖을 물리듯 ‘맛을 찾는다’는 것은 인간 최초의 경험을 욕망하는 것이 아닐까.

과거일 수 밖에 없다. 기억의 흔적을 모아야 한다. 옛 집의 마루, 문, 창, 지붕, 기둥에서 나는 냄새들처럼 이야기는 역사를 담고 있어야 한다. 사람이 묻힌, 사람에게 묻어나야 ‘진국’인 것이다.

그런데 매체의 영향으로 숨어있던 ‘맛집’들이 곳곳에 등장하셨다. 동네마다 있다. 어느 프로그램에 소개되었다는 광고판에 기댄 강력한 전시효과는 위압적이다.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그 집의 맛을 의심케 한다. 흔해빠진 ‘맛집’일 뿐이다. 우리가 찾는 것이 과연 유명세일까. 골목 곳곳을 누비고 다닌 이 책에는 인간에 대한 신뢰와 유머로 감칠맛을 더한다.

“술이란 지집이 따러야 맛이제.”

그러나 책의 기획에 억지로 끼운 듯한 글들이 많다. 다시 말하자면 함량 미달이면서 구색만 맞춘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너무나 기억력에 의존했나. 표현의 맛은 ‘변산반도 쭈꾸미 통신’(박형진) 못 미치고, 진득한 인간의 이야기는 ‘마음이 배부른 식당’(김형민)에 이르지 못한다. 성석제의 입담에 기대를 했건만 그것마저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중간 중간에 삽입된 별쭝맞은 만화들이 신경 쓰인다. 재미도 없고, 그다지 인상적이지도 않은데 왜 그랬는지 의도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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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죄악 - 뱀파이어 헌터 애니타 블레이크 시리즈 1 밀리언셀러 클럽 36
로렐 K. 해밀턴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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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소재 중의 하나가 뱀파이어이다. 영화, 애니메이션, 소설 등 대중문화의 영역 곳곳에서 등장하는 뱀파이어가 매력적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힘, 그 힘은 근육에서 솟구치는 근력 뿐만 아니라, 성적인 매력 또한 주요한 요소이다. 인간을 언제든지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마력’은 어떻게 보면 신의 영역에 가까운 것이고, 그것은 인간이 동경하는 힘이며 공포인 것이다. 지배하느냐 지배를 당하느냐, 인간의 두려움은 이중적이고 이기적이다.  

이 소설에도 뱀파이어가 등장한다. 좀비도 나오고 구울, 늑대인간, 쥐 인간 등 ‘포스트 인류’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이 사는 곳은 인간들이 사는 도시.
인간과 비인간이 공존하는 세상은 비현실적이지만, 우리의 현실임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계, 과연 모두들 인간적일까? 인간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가? 우리 모두는 평등할까? ‘인간’을 위한 법은 비인간에게는 법이 아니다. 이 소설에는 뱀파이어가 인간 세계에 편입되기 위한 조건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조건에서 벗어났을 경우에는 가차없이 ‘제거’ 대상에 오른다.

인간들 중에 ‘제거’를 담당하는 자가 있으니 이 소설의 주인공인 ‘애니타 블레이크’, 그는 처형 집행자로 불리우는 뱀파이어 헌터이다. 제거와 제거 대상, 그 관계는 전복적이다. 두려움은 상호적이며, 죽음은 무작위적이다. 선빵을 날리는 자가 유리하고, 심장의 박동이 목까지 차오르는 공포를 억누르는 자만이 살아 남는다. 애니타 블레이크는 뱀파이어를 두려워하는 뱀파이어 헌터이다. 인간다움은 불완전함에 있기에 오히려 두려움이 없는 에드워드는 터미네이터 같은 살인기계에 가깝고, 뱀파이어 보다 더 괴물답다.

애니타의 이러한 성향은 뱀파이어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매력을 애써 거부하는 ‘여인’의 모습처럼 비춰진다. 마초적 남성들이 득실거리는 곳에서 살아 남으려는 여성 말이다. XY염색체에 다가서는 순간 그녀는 무장해제 되어 버리니까. 헌터가 아니라, 헌팅이 되니까.

이 소설의 전체적인 구도는 바로 이것 때문에 적절한 긴장감이 있다. 공포와 동경, 사냥과 사냥감, 인간과 비인간, 남성과 여성… 흡사 전쟁하듯, 연애하듯, 사냥하듯 팽팽하게 줄을 당겼다 풀었다 하는 구도 속에서 소설의 매력이 발산된다.

이 소설은 딱 영화나 TV 드라마용이다. 한마디로 비쥬얼이 강한 소설이다. 이야기는 단순하고 액션은 선명하다. 부담 없이 보고 즐기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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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29 2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장미와 씨날코 - 1959년 이기붕家의 선물 꾸러미
김진송 지음 / 푸른역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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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5일, 빨간 모자 아저씨가 커다란 선물 꾸러미를 들고서 집집마다 방문하여 선물을 나누어 준다. 아름답게 보이는 이 연례행사를 약간 변형하고 싶어진다. 만약 1년 내내 빨간 모자 아저씨의 집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그에게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바친다면,

그것은 선물일까?

어느 신문사에서 종이 뭉치가 발견되었다. 거기에는 이름과 물품 목록이 적혀있었다. 이기붕의 집에서 나온 것으로 매일 같이 많게는 하루에도 수백여명이 흔적을 남긴 방명록이면서 장부의 성격이 담긴 꾸러미였다. 그 물품 목록을 살펴 보면 백화점 진열대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갈비, 생선, 과일, 코카콜라 한 상자, 씨날코, 휘발유 세 드럼, 포플린 세 필, 아이스크림 세 통, 병아리 세 마리, 이불, 새우젓, 소금, 장미, 십자매, 진돗개, 빈대떡, 만둣국, 게장, 간장, 뎀뿌라, 꿩, 노루, 우장춘 박사가 보낸 '씨 없는 수박 세 통 등' 80p

사과박스, 차떼기, 트럭정도는 되어야 하는 요즘의 상황과 비교되게 당대 최고의 세도가의 집에 들어오는 물품 목록은 매우 보잘 것 없는 것들이다.
“이승만은 군림하고 있었으며 이기붕은 통치하고 있었다. 군림하는 대통령과 통치하는 이기붕은 자식마저 주고받는 근친교배의 과정을 거쳐 생성된 자웅동체였다.” 268p

그렇다면 선물일까?

나탈리 제먼 데이비스는 선물 경제는 시장 경제와 나란히 존속했으며 상호 보완적이라고 주장한다. 선물은 세계시장이 발달했어도 비 시장관계가 중요한 사회적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인데, 그 관계는 역시 권력과 자본의 사적 소유를 위한 목적성을 띄고 있는 것이다.
“부정과 부패와 횡령과 사기를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은 권력의 주변에 있던 선택 받은 사람들이다. 그런 짓은 적어도 돈과 물자 있는 곳 근처에 얼쩡거릴 수 있는 특권이 있어야 저지를 수 있는 범죄들이었다.
권력의 근처에 얼쩡거리지 않으면 도무지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229p

그래서 뇌물일까?

황당하게도 저자는 잘 모르겠다고 한다. 책의 의도가 아마도 그것을 밝히는 것이 아닌가 기대했던 나를 당황하게 만든다. 사회적 정황으로 봐서는 선물로 보기 어렵고, 뇌물로 보자면 너무 보잘 것이 없다라는 것, 심적으로는 의심이 가는데 증거로는 불충분한 종이뭉치 일뿐이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제목처럼 선물로서의 ‘장미’와 뇌물로서의 ‘씨날코’의 경계가 모호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책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저자가 밝히길, “이 문서가 의미가 있다면 바로 권력을 사유화하는 공식 장소의 출입자와 물품의 출납이 기록되어 있는 자료라는 것이며, 실증적인 자료를 통해서 권력을 사유화하는 방법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기붕의 집은 권력을 사유화하는 공적인 장소였던 셈이다. " 40p

물품 자체의 의미는 중요했던 것이 아니다. 그 물건들이 어떤 경로로 누구에게 어떤 의미로 전해지는가를 살펴 봄으로써 공적 영역의 정치가 끊임없이 사적 영역을 침범하는 과정을 발견해 낸 것이 커다란 수확인 셈이다. 사유화 된 권력이 재생산되고 있었던 당대의 풍경은 말한다. 1959년 이기붕의 집은 한국의 무능과 부패를 일삼던 정치 부라퀴들의 이합과 집산이 곰비임비 이루어지고 있었던 허브(Hub)였고, 그것은 역사의 순간에 머물지 않는 연속성과 지속성을 갖춘 권력의 단면임을 일깨워 준다.

“모든 것은 권력으로 집중되어버렸다.” 315p
"전쟁이 끝난 후 모두 '없다'는 데 동의하고 있었고 누구는 '있다'라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뭐든게 궁핍했다던 그 때에도 물자의 배분 문제 여전했다.” 142p
무능과 부패로 얼룩진 한국 현대사는 권력과 물자의 집중화에 그 원인이 있다.
배분의 불평등, 권력의 집중화, 전쟁과 반공이데올로기가 만든 일상의 폭력, 정치의 부패와 정부의 무능이 불러온 사회적 현상들은 신기하게도 과거와 현재를 오버랩시킨다. 시간과 공간의 차원이 꼬여버린 것일까. 어떻게 과거와 현실이 똑같은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한다면 역사로부터 응징을 받는다는 말이 뇌리를 스친다.

“과거의 야만은 득이 되면 받아들이고, 실이 되면 거부하는 단순한 논리로 무장되어 있었으며 여기에 토론과 논쟁과 조정의 절차는 매우 낯선 일이었다. 이로우면 밀어붙이고 해가 되면 저지하는 야만적 절차에 수십 년 동안 익숙해 있던 사람들에게 정치란 매우 단순한 노동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의 야만이 오늘 똑같이 보여주는 논리이다. 현재의 그들에게서 50년 전 과거의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행운이었다.” 292p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행운’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들이 보았고, 우리가 보고 있고, 누군가가 보게 될 익숙한 역사는 여전히 증기를 내뿜으며 달리고 있다. 어이없이 ‘침목’이 되어야만 했던 사람들, 우리가 ‘침묵’하는 사람들, 현대사는 그렇게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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