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세상을 비웃다 - 걸리버와 함께 하는 통쾌한 풍자 여행
박홍규 지음 / 가산출판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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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한국사람이 썼는데, 번역서 읽는 것 같다. (썩 좋지 않은 번역서)
2. 재미있을 내용을 이렇게 두서없이 재미없게 서술하다니…
3. 걸리버 여행기가 그런 내용이었어?

그리고, 깨달은 점은 정작 걸리버 여행기는 읽어본 적이 없다는 점.

영화나 에니메이션 같은 대채제의 역할이 컸다. 마치 읽어 본 것 같은 착각을 그동안 심어주었다.
비슷한 대우를 받는 작품으로는 로빈슨 크루소, 크리스마스 캐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해저 2만리, 천일야화, 80일간의 세계일주 등등이 있겠다.


그냥 막연한 추측….
내용이 체계적이지 않고, 번역서 같은 이유로는 다른 책을 짜집기 해서 그런가?라는 느낌이 들게 한다. 독창적인 자신의 생각보다는 누군가의 것을 많이 차용했다는  인상을 꽤 받았다.

별로 추천하고 싶은 책은 아니나, 걸리버 여행기는 ‘이런 책이다’라는 것이 궁금한 사람들에게는 좋은 책이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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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6-10-26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홍규씨 책이 좀 그런 성향이 있죠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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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문학이로구나.
화자는 숨으려 애쓰고, 독자는 찾으려 애쓰는 숨바꼭질.
포장이 너무나 잘 되어 있어서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매끈함.
몽롱, 모호, 불분명하여 해석의 폭을 무한대로 확장하는 작업.
놀이처럼 유쾌하고 자유롭게 다가서지만, 왠지 낯선 물음표들. 

이 소설에서는 목적보다는 과정을 중요하게, 줄거리보다는 문장과 배치의 실험성에 주목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일상으로부터 분리된 시공간은 나를 잡아당기기도 하고, 밀쳐내기도 한다.

이 놀이의 장에 참여한 이상, 무엇인가는 찾아내야 할 텐데…
결국 문학적 감수성의 한계를 절절히 느끼고 말았다. 난독증에 걸린 것처럼 버버버벅 하다가 끝나버린 느낌이다. 하지만 당하기만 하면 억울함 감이 있어 대꾸가 하고 싶어진다.
감정의 절제와 노출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이 놀이의 질적 향상을 위한 인지상정일 터. 너무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으면 그것은 놀이가 아닌 모험이지 않은가. 숨은아이만 숨어버리고 모두가 퇴근해 버리지 않을까. 밤이 되어 ‘나 여기있는데’ 하면서 나온다면 그것도 김 빠지는 일이다. 뭐든지 즐겁지가 않으면 그것은 노동이다.
그것은 문학과 대중의 간격을 넓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자기 말만 하고서 휙 돌아서는 것이 싸나이의 로망처럼 보일거라는 착각은 ‘악성 착각’이다.

이 책은 정말로 ‘허벌나게’ 시끄럽다. 마치 자신의 과잉감정을 보이고 싶지 않은 듯이 곳곳에 ‘잡음’을 두어 집중을 방해한다. 생뚱맞은 내용들의 연관성을 고민하다가 뭔가를 놓친 기분이 들게끔 한다. 벗어난 논리,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서 헤매다 보면 자신의 낮은 레벨을 한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또는 자신이 이르지 못한 경지에 대한 동경과 환상을 조작할지도 모르겠다. 잦은 화자의 변경, 꼬아놓은 시간, 여백과 사진과 문장에서 나타나는 인위적 설정들…
퍼즐을 완성하기엔 나의 내공이 너무나 부족하도다. 아니 퍼즐의 완성된 그림이 없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부여된 의미를 찾을 것인가. 부여할 의미를 찾을 것인가. 일단 내용보다는 형식이 압도하는 책이니 나는 완성된 그림이 가장 궁금할 뿐이다.

중년 같은 9살짜리 주인공, 그의 할아버지, 아버지와 같은 운명을 타고나서 일까. 사라진 것들에게서 느껴지는 방황과 그리움은 그가 감당할 나이를 훌쩍 뛰어넘는다.
강요된 성숙함!
말투와 행동이 빙의된 것처럼 어쩜 그럴 수가 있지.
아마도 거대한 스트레스!
그것이 심리적 공황을 초래했겠지.
그에게 닥친 이 상황을 종결 시켜줄 ‘답’을 찾아서, 열쇠와 자물쇠의 비밀을 찾아 나설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죽은 자의 기억 전부를 한 입에 삼켜야 할 부담이니까.
어떻게 9살짜리가 받아들일 수 있겠어!

감당해야 할 모든 것들.
그래서 시계바늘을 뒤로 돌린다.
1mm의 변화도 거부하고 싶어진다.
마지막 장에 월드트레이드 센터 빌딩에서 ‘자유낙하 운동’을 하는 사람을 에니메이션처럼 종이를 넘겨보라.
앞으로, 뒤로.
순간 순간의 연속이 만들어낸 인간의 절정[切情]들은 “나 돌아갈래~” 박하사탕의 설경구의 외침이 되어 질걱질걱 흘러나온다. 참을 수 없는 순간을 벗어나는 것은 되돌리는 것 뿐이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Irreversible… 시간이 파괴한 모든 것들의 부활을 위하여….
아이의 시간은 계속 흐른다. 믿을 수 없게 가까운 곳에서….

문학이란 이런 것인가. 엄청나게 화려하고, 믿을 수 없이 단조로운….

Ps. 소설 속의 실험적 장치들을 이것저것 둘러보는 재미는 좋다.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






틀렸어. 이건 아냐... 아냐.
라고 빨간 볼펜으로 그어 놓은 곳에...
문법과 문장의 질서를 뛰어넘는 곳에...

진실은 있을까?

"너를 사랑한다.
아버지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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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1 오늘의 일본문학 3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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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뉴스에 나왔으니까 너도 알고 있겠지만, 그게 우리 가족이다.
각목을 휘두른 사람이 아버지고, 집의 기둥을 붙들고 있었던 게 어머니, 순경 아저씨의 등판을 후려친 건 누나야.
293p

박진감 넘치는 유소년 활극, 탁월한 스토리텔링, 얌체공 같은 캐릭터들의 분주한 몸짓, 유쾌한 달변, 낭만과 풍자와 애정의 쓱쓱싹싹 버무림… 재미를 위해 조합된 각 요소들은 특급의 품질을 자랑한다. 이게 ‘이야기’의 맛이구나. 덮어버리고 싶은 책들과 달리 전진하는 페이지 숫자가 반갑지 않은 소설이다.

이 소설의 재미의 반은 캐릭터다. ‘식욕대왕’ 지로와 ‘시대의 낭인’ 지로 아버지의 신경전은 K-1을 넉다운 시킨다. ‘과거’ 있는 엄마와 불륜의 여주인공 누나, 수학 숙제 해주고 싶은 여동생 모모코… 한국에 영화 ‘가족의 탄생’이 있다면, 일본에는 ‘가족의 해체’가 있다고 할만큼 ‘날아다니는 집안’이다.
국가와 국민의 의무에 두드러기가 나는 중환자 아나키스트를 아버지로 둔 ‘초딩’ 6학년, 4학년 아이들에겐 커다란 시련일지라. 아마도 식성이 좋은 것은 살아 남으려는 본능의 용트림인 듯 하다. 이밖에도 지로 친구들, 동네 ‘달건이’ 가쓰 또한 조연급으로는 훌륭한 역할을 한다. 게다가 2권에서도 성격파 캐릭터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이 소설의 나머지 반의 재미는 ‘날아다니는 가족사’에 있다.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그들 주변에서 터짐으로 해서 일본 최남단의 작은 섬으로 ‘튄다’. 지로는 이상하리만큼 호혜적인 그 곳 동네 주민들에게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해낸다. 부모와 조상 그리고 그 섬의 역사와 현실을 보게 된다. 이 소설의 가족사는 단순한 가족사가 아니라, 일본 현대사 뿐만 아니라, 한국의 사회상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 때문에 사회적인 성격을 가진다.

이야기는 이렇게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도쿄의 삶과 이리오모테 섬의 삶.
부모 세대의 의식와 자식 세대의  의식,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의무,
집단의 권력과 소수의 권리.
세대(시간)와 지역(공간)의 이분된 상황은 마치 가족의 갈등과 반목을 필연성을 띠게끔 구조화 되어 있다.
절대 폭력을 행사하는 국가와 기업, 마찬가지로 교내에서 벌어지는 상급생의 폭력.
자식과 부모 세대는 서로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서로의 세계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서서히 공감대를 형성해 간다. 체험이 전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국민성을 재생산해내는 의무교육보다 뛰어난 교육이란 것을 지로 아버지의 ‘방목형 교육‘이 입증한 것일까. 마지막에 지로는 부모를 이해하고 성장한다. 그들의 갈등은 이해할 수 없는 것 자체로 남겨졌었지만, 그들이 ‘남쪽으로 튀어간 그곳’에서는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변화시켰다.
“나는 낙원을 추구해. 단지 그것뿐이야.”라는 지로 아버지의 멘트는 그의 단순한 삶, 하지만 진짜 삶의 모형을 보여준다.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가기 보다 스스로에게 선택할 자유를 아들에게 준 것이다.

큐슈보다 대만에 더 가까운 이리오모테 섬의 역사는 한 가족사에 담겨져 있다. 기억하는 것은 착취에 대한 분노이고, 반골기질의 피는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다. 변하지 않는 것은 낙원에 대한 동경이고,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다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소설로 엿보는 것은 어려우면서도 쉽다. 배경지식의 유무가 관건이겠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소양과 상식, 유사체험으로 해석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진 보편적인 삶의 렌즈를 통하여 발견해 낼 수 있는 공통점들은 이해와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에 대단한 역할을 해낸다. 진학을 위한 교육에 매달린 가정, 자본 획득을 위하여 주민을 내쫓고 환경을 파괴하고, 착취와 억압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으며, 가족의 평화와 사랑을 그리워 한다.

그 모든 것들의 ‘이야기’를 이 소설 한 권이 전한다.

 

낙원이 어디에 있다고?

남쪽에

 

이리오모테 호시즈나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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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10-17 0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바닷물이 이렇게 맑다니요.. 리뷰 늘 잘 쓰시잖아요 호호~~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꾸욱..

라주미힌 2006-10-17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만쉐~ :-)
바다 좋아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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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된 공간 속에서 수 십년을 살아야만 했던 한 인간의 생각을 읽어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 구절 한 구절 여백을 아끼고, 글자를 다듬어서 써야만 했던 사색의 결정이 가벼울 리 없다. 인간보다 시멘트 벽에 더 친숙해져야만 하는 고독, 새로움과 창조의 양지에서 배제된 삶에 대한 번민, 압박 속에서 기존의 지식에 얽매일지도 모른다는 지식인으로써의 자존심과 불안, 그리고 잘려나간 학자로써의 학문열…

이 모든 것들의 기억과 경험은 특수하다. 역사와 개인의 시대적 간극을 무엇으로도 좁힐 수 없어보인다. 모호한 관념과 막연한 존경으로 우상을 만들어낼 뿐이다. 그렇다고 소통을 강요할 필요는 없고, 이해를 가장할 필요도 없다. 다만 자신의 삶에 구경꾼이 되어서는 안되듯이 그의 사념에 포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치열함을 치열하게 다가서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이 책은 30년 간의 편지다.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것들을 표방하고 있지만, 저자인 자신에게 보내는 독백이며, 넘치는 학자의 기질을 정리하는 작업이다. 글을 쓰고 싶은 욕망, 글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부단한 노력이 처연하다. 그것이 학자의 본능인가. 학자로써의 자존심을 잃고 싶지 않아서일까. 글은 유난히 고고한 어휘를 휘날린다. 이것은 나의 생각이고 나에게 보내는 선물이라는 듯이 많은 치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관념과 겉치레를 경계하고 성찰하는 모습도 보인다.

“복잡한 표현과 관념적 사고를 내심 즐기며, 그것이 상위의 것이라 여기던 오만의 시절이 있었는가 하면” 236p

인간은 그렇게 성장한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생물학적 성장이 이뤄지고, 감당해야 할 억지적 환경 속에서 방황도 하면서 정신적 성장을 일궈낸다. 벽은 3차원 공간을 지배하지만, 인간의 정신만큼은 지배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노년을 쫓아가는 자식과 부모가 겪는 변화의 시간들이다. 감옥 안에서 늙어가는 자식과 감옥 밖에서 늙어가는 부모… 마치 스냅샷을 찍듯 서서히 서로의 시간으로 빠져드는 애틋함이 저린다. 그들에게서 빼앗아 간 날들…. 잘려나간 가능성들의 통곡. 어떻게든 표현해야만 하는 상황… 책은 그렇게 탄생한다.

이 책은 감동적이지 않다.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것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읽은 것만이 있을 뿐이다.

감옥... 인간 내면의 고결함을 완성시키고 뿌리내리는 공간이라고
신영복의 삶은 나직이 읊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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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방 - 내가 혼자가 아닌 그 곳
언니네 사람들 지음 / 갤리온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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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언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적 정의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다. 이루고자 하는 욕망조차도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하고, 그러한 구조를 받아들여야 만이 사회적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진다. 금기와 억압의 사슬은 그들의 언어에 침묵의 재갈을 선사한다. 이러한 사회적 폭력은 일상적이고 무의식적일 때 가장 폭력적이다. 가해도 없고, 피해도 없다. 오직 누군가의 상흔만이 기억을 증명한다.

대상은 지워진다. 그것은 반복한다. 피 속에 새겨져서 다음 세대에게 전한다. 이것은 생활이다. 생활 속에 상식으로 통한다. 상식을 가진 자의 특권이고, 그것을 당당히 전유한다. 당연한 것은 무뎌진다. 자극은 불편하다. 그리고 불쾌하다. 인간의 행복추구권은 신성하다. 그래서 불쾌함을 거부한다. 그리고 현재의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
이것이 사회라고….

그것이 사회라고? 이 책은 기어코 누군가의 은밀한 언어를 세상에 꺼내고야 만다. 누군가의 너덜너덜 해진 심장을 들춰본 느낌이랄까. 박동할 때마다 분출하는 피냄새가 진동한다. 그것이 고통의 향이구나. 세상에 대한 분노구나. 슬러지 같은 놈들 때문이라도 행복해지려는 사람들. 그들의 글은 세상을 긍정하려 한다. 자신에게 걸었던 결계를 막 부숴버린 자들의 해방을 담았다. 행복을 두려워 하지 말라고 주문한다. 세상에 나와 화끈하게 살라고 한다.

여성들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은 아닐 것이다. 그들끼리 읽는 책도 아닐 것이다. 술 쳐드시면 여성을 주무르시는 최연x 국회의원도 봐야 하고, 아내는 돈도 벌어야 하고 살림도 전담해야 한다는 내 친구도 읽어야 할테고, 페미라는 말만 들어도 두드러기 나시는 네티즌 여러분도 읽어야 할 것 같다. ‘경험’하지 못했던 세계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가해자의 편에 서지 않는 것이 생각 있는 사람이 할 일이다."라고 알베르 카뮈는 말한다. 내가 누려온 날들. 나의 특권들. 나의 상식들. 싹 벗어야겠다. 아직 노출의 계절은 아니지만, 때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때는 지금이다.

나의 상처는 나만의 상처가 아니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이야기들을 들어야 하고, 전해야 하며, 그 사람들 편에 서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22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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