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고전강의 공산당 선언 - 젊은 세대를 위한 마르크스 입문서
강유원 지음, 정훈이 그림 / 뿌리와이파리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자기계발 서적은 넘쳐 난다.
재테크, 자산 관리, 잠재된 능력 계발, 자신감 고취시키기, 각오 다지기, 구체적인 방안, 성공사례에서부터 뜬구름 잡기식까지 다양한 시도로 독자를 유혹한다. 그것은 실용성이란 명목하에 일상의 전장터에서 전투력 배가를 위한 소위 말하는 ‘경제적 능력’을 획득하기 위한 ‘비급서’처럼 활용되고 있다. 경쟁적인 삶,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목표 없이 살다가 명퇴, 정리해고로 마감되는 인생은 마치 중독처럼 서서히 우리를 잠식한다. 자본주의의 중독은 스스로에게 욕망을 강요함으로써 본인의 의지로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는 점에 있어서 위협적이다. 끊임없는 경쟁과 불안과 불확실성에 자신을 던지고 하루하루에 탈진한 ‘신인류’의 자본주의 사랑은 ‘안~되요 되요 되요 되요’와 같은 두 가지 속성을 내포하는 것처럼 보인다.

종속과 탈피.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내기 위하여 자본주의의 심연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종속적일지라도 잘 적응하기 위해서 또는 이상적인 삶의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서라도 어찌됐던 알아야 한다. 현실과의 대면, 그것은 관찰자의 위치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책임지려는 최소한의 노력인 것이다.

후세에 모범이 될만한 가치를 지닌 것을 고전이라 불렀으니, 공산당 선언은 자본주의의 성질을 잘 정리해 놓은 고전 중의 고전이다. 이 책은 공산당 선언을 읽고, 체제 속의 인간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들이댄다. 노동과 자본, 국가와 계급을 통하여 우리의 위치와 미래를 고민하게 한다.

이것은 현실적이다.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과 책임을 말하는 직접적인 방식이다.
 
150년 전의 선언이지만, 아직까지도 유효한 부분들을 발견하는 것은 놀랍고도 씁쓸한 맛을 남긴다.
‘현대의 국가 권력은 부르주아 계급 전체의 공동 업무를 관장하는 위원회일 뿐이다.’
한국 사회의 양극화 문제를 접근하는 데에 있어서 이 문장의 의미는 가벼이 여길 수 없다. 비정규직과 하도급 노동자들의 불평등한 노동조건, FTA라는 비밀스러운 협약이 민중의 삶에 미칠 효과를 고려해 본다면 위의 문장은 마치 운명처럼 들린다.

우리의 운명을 자본주의에 맡길 것인가, 포스트 자본주의를 선언할 것인가…
진정한 자기계발은 사회와 자기 자신의 관계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이 전하는 고전 읽기의 새로운 시도는 상업 자본주의의 ‘자기계발서’를 뒤집는 전복적 메타포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은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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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6-07-25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업 자본주의의 ‘자기계발서’를 뒤집는 전복적 메타포를 보여준다.
음...땡기네요.^^

라주미힌 2006-07-25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쉽고 재미나요... 꼭 읽어보세욤.
 

발터 뫼어스 지음, 안영란 옮김, 귀스타브 도레 그림 / 문학동네 / 200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발터 뫼르스의 소설.

‘루모의 어둠 속의 기적’을 읽고 난 후에 ‘꿈꾸는 책들의 도시’를 읽으면서, 이 책을 읽었다. 세 작품을 거의 동시에 읽어서 그런지 몰라도 비슷한 세계관과 주제의식에 약간의 노곤함을 느끼면서도 각각의 상이한 면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이 책은 ‘귀스타브 도레’라는 19세기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들을 짜맞추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는 점이 독특하다. 이야기의 흐름과 그림이 매우 잘 어우러져 있어서 ‘그림을 위한 글’이었어도 ‘글을 위한 그림’처럼 다가온다. 상상을 위한 소설에 그림이 필요할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것은 괜한 것이었다. 굵고 거친 고딕의 선이 음침함을 더하고, 그로테스크한 일러스트가 악마적 분위기를 돋군다. 유명한 그림들이라고 하니 ‘그런가 보다’하고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환상 소설에 가까운 이 모험담은 발터 뫼르스의 다른 소설들처럼 인생을 빗대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었다. 사랑, 근심, 운명, 시간, 공포, 꿈, 그리고 죽음…
전인류에게 똑같은 기회로 고뇌를 안기는 삶의 마디마디는 영원한 주제일 수 밖에 없다. 산다는 것 자체가 불확실하고 불완전한 것이기에 그것은 모험인 것이다.

그렇다고 근심할 필요는 없다.

 “내 몰골을 보면 우유도 금세 상해버리고 말 테니까. 언젠가 잔잔한 물에 내 모습을 비춰본 적이 있는데, 그 때 난 거의 기절할 뻔했지…”
괴물의 ‘근심에 찬 한탄’은 공포마저도 무기력하게 한다. 저자가 말하려는 것은 이런 것이겠지.

‘우유가 상할 정도의 몰골’을 당신 인생에서 치워주세요!

그래서 발터 뫼르스에게 있어서 ‘삶’은 ‘경이로운 모험’ 이어야 한다. 모험은 활력이고, 미래를 지탱하는 주춧돌이다. 이 소설에서 보여지듯이 주인공은 죽음과 내기를 하고, 죽음에 도전을 하고, 죽음을 극복한다.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우주와 사후 세계, 괴물과 영웅들을 치환하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모형을 천진하게 또는 광폭한 손짓으로 조물락거리는데 그 조형물은 가히 기괴하다.

도움이 절실할 것 같은 전라의 ‘아마조네스 여전사’는 ‘생식 다이어트’하듯이 용을 갈아 마시고, 괴물은 근심에 싸여 마른 장작이 되어가고, ‘괴물 돼지’는 썩은 어금니를 뽑아달라 한다. 공간과 시간, 우주와 차원을 넘어선 상상의 언어는 상식을 전복한다. 창조는 파괴 뒤에 오는 것 아니겠는가.

밤...
시간의 전복, 세계의 전복, 상상의 전복이 이루어지는 그 순간에,
우리가 모두 꿈꾸는 그것이 살아나는 밤에.

 


사랑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아니 정말로 가슴이 찢어져 정확히 반으로 나누어지고 말았다. 이것으로 영영 돌아오지 않을 아름다운 처녀를 품은 쪽과, 아직은 온전히 그의 것으로 남아 있는 나머지 반쪽으로 가슴 한복판을 관통하는 그 차가운 균열의 느낌은 여태껏 느껴본 그 어떤 육체적 고통보다 심한 것이었다.”  4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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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60년의 한국정치 - 1945~2005
손호철 지음 / 이매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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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해방 60주년을 맞아 우리가 바라는 민주주의가 삼성공화국 내지, 미국정치를 비판할 때 쓰는 표현대로, ‘돈으로 살 수 있는 최상의 민주주의’일 수는 없지 않은가? 군사독재 못지않게 자본의 지배 역시 민주주의의 적이며, 군사독재를 대체한 것이 기껏해야 금권의 지배와 정-경-언 유착구조라면 그것은 반쪽 민주화일 뿐이다.”

”이제 다시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로 돌아갈 수는 없다. 따라서 한국정치가 진보정당의 성장을 통해 진보-보수의 구도로 전면 개편될 때 지역주의는 약화될 것이다.”

구구절절 맞는 말을 듣다 보면 생각이 없어진다. 마비된 사고를 추스르고 보려 해도 반세기의 역사를 감당하기엔 내 역량으로는 한없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말하려는 이유는 나는 이곳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사적인 것은 정치적이다’, ‘시장 경제는 정치적이다.’
한정된 자원의 배분을 놓고 벌이는 ‘정치’는 생활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저임금을 놓고 벌이는 노동계와 재계의 갈등, FTA에 반대하는 목소리들, 스크린쿼터제 축소에 항의 하는 영화인들. 안마사 법에 대한 위헌판결에 대한 시각 장애인들의 시위 등을 보면서 정치라는 지배체제의 질서가 ‘먹고 사는 문제’에 얼마나 민감하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정치가 싫어서 관심이 없어요.’라고 말한다면 ‘나는 먹고 사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이제 그런 무책임한 말은 꺼낼 수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기득이익이 가장 강력한 헤게모니를 갖고 있는 영역은 경제’이고, 그곳에는 늘 정치 권력이 자리를 잡고 있다. 정치와 경제의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우리는 그동안 정경분리를 말하였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경제와 정치를 분리하지 말아야 하는 것에 있다. 분절된 정치는 사적영역의 정치를 위한 정치에 머물고, 실제적인 공적영역의 정치를 실행하지 않음으로써 혈세 낭비는 물론 민중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한국 정치의 문제는 정치적인 문제를 비정치적으로 해결하려고 했고, 그렇게 해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
분단과 반공 이데올로기, 군사독재와 민주화,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이어지는 ‘한국정치 로드맵’을 걷다 보면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의 방향을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일말의 기대를 심어주는 데에 있다고 본다. 신자유주의와 FTA라는 거대한 파고에 직면한 현 시점에서 우리의 선택은 사실상 없어 보인다. 하지만, 흔히들 ‘어쩔 수 없다’라는 말. 또는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지 않고서 비판만 하지 말라는 ‘관망적인 태도’보다는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21세기 한국의 발전 모형이 ‘좌파 신자유주의자’가 이끄는 FTA이여야만 한다면, 우리는 그것의 타당성을 제대로 검증하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결코 이런 식으로 생략되어서는 안된다. 대의제라고 모든 결정권을 청와대와 국회에 넘긴 것은 아니다. 국민의 판단과 선택을 존중해야 하며, 우리의 삶에 직결된 문제일수록 신중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역사에 치이고 밟혀도 결국에는 민중이 움직여야 한다. 우리의 삶이 버겁다면, 버거움의 원인을 고민하고 함께 풀어야 할 것이다. ‘좌파 신자유주의자’의 독선적인 판단에 우리의 생존을 맡긴다면 ‘로또 인생’으로 불려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

양극화, 모 아니면 도 인생?
난 그렇게 되기 싫거던…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지속적이고 안정된 삶이다. 농민이 자살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노동자가 분신하는 것도 원하지 않고, 시각장애인의 울분을 지켜보는 것도 아니다.
 
그 놈은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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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모와 어둠 속의 기적 1
발터 뫼르스 지음, 이광일 옮김 / 들녘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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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돌리노(움베르토 에코, 열린책들)가 찾아 나선 동방의 요한 사제의 왕국을 기억하는가?
환상과 모험이 가득한 곳, 그곳으로 인도하는 것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내밀한 공포였다. 예상할 수 없는 운명과 고난 뒤에 얻게 될 상상의 풍요와 자유로움은 탐닉할 수 밖에 없는 욕망을 드러내게 한다.
그 힘의 진원은 현실의 구속에서 벗어나 있는 듯 하지만, 현실의 잔영에 가깝다. 초월을 말하지만, 삶과 죽음의 순환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비현실적이지만,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는 쾌감은 현시적이다. 활자에 머물지 않기에 즐거운 탐독에 빠져든다


이 책은 장대한 사가(Saga)이다. 악마바위에서 겪었던 잔혹한 유년의 성장기, 무예와 재능 개발을 위한 눈높이 교육의 성과, 기이한 생명체들과의 전쟁, 죽음과 공포를 극복하고서 구한 사랑…
장르로 말하자면 성장 모험 로드 판타지 스릴러 슬레셔 잔혹 코믹에 신화적 요소가 첨가된 발터 뫼르스식 짬뽕밥이다.

걸죽하다.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우걱우걱 구겨넣으면 그게 ‘진맛’일게다. ‘은띠’를 찾아 뚜벅뚜벅 걸어가다 보면 작가가 배설한 미장센들이 이야기를 한다. 이 책이 산만한 구성을 보이는 이유는 그 모든 것에 역사가 있고 말하려 하기 때문이다.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고, 그들의 역사와 사연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하나로 이어진다.

바로 삶.

길어질수록 짧아지는 삶, 그리고 늘 우리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죽음, 운명적이고도 지독한 사랑이 주제인 셈이다.

페르세포네가 지하세계로 끌려갔듯이, ‘루모’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팔뚝 문신’과 칼 한자루를 쥐고서 위험 가득한 지하세계로 ‘랄라’를 찾으러 간다. 믿는 것은 운명이고, 얻을 것은 미녀와 명예이다. 마치 무협지의 은둔 고수처럼, 스타워즈의 제다이 기사처럼 그것은 선택이 아닌 필연을 띤다. 필연은 늘 앞서간다. 행위보다 결과가 앞장을 선다. 그 필연성은 간절한 바람이 만들어낸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정리하면,
‘사랑을 놓고 벌이는 죽음과 삶의 처절한 싸움’이 되겠다.
죽음의 지배를 받느냐, 삶의 지배를 받느냐…
숙명적인 불확실성에 놓인 우리의 삶,
지상세계와 지하세계가 맞닿아 있어 언제 허물어질지 모르는 경계에 불안하게 놓인 나약함
루모는 불멸의 사랑에 대한 우리 모두의 바람을 성취시켰기에 ‘영웅’이 된 것이다.

설령 그것이 하룻밤의 단꿈일지라도 맛보고 싶은 것이 ‘진맛’ 중의 ‘진맛’이 아닐까.


Ps. 이 책을 보다 보면, 서양사가 숨어 있는 듯하다.
이민(야만)족의 침입, 십자군의 철갑, 로마의 (미친)왕과 검투사.
그리고 쥘 베른의 ‘지구 속 여행’, 인체 속 탐험은 80년대 에니메이션 ‘미미의 컴퓨터 여행’이 연상된다…
숨어 있는 신화나 작품, 상징을 나름대로 끼어 맞추어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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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6-29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보셨군요. 전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로드무비 2006-06-29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근사하여요.^^

라주미힌 2006-06-29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이거 읽는데 시간 좀 걸리더라구용...
로드무비님/ 칭찬 받았다 ㅎㅎㅎㅎ 감사..
 
구름빵 한솔 마음씨앗 그림책 2
백희나 글.사진 / 한솔수북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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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 졸림, 호기심, 재미, 만족.
아이들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중심으로 행동합니다. 회귀해야 할 고향처럼 동경과 그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최초의 인간’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이 그러하듯 시작은 언제나 아름다운 법. 나락 한 알 속에서 우주를 발견 할 수 있듯이 우리(성장한 인간들, 성장하는 인간들, 성장을 멈춘 인간들)의 ‘원형’에서 발견 할 수 있는 것은 무한한 잠재성에 있습니다.
 
감각은 욕망의 지배를 받지만, 그 욕망의 허기는 아이들의 성장 밑거름이 됩니다. 그렇게 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감격’과 ‘흥분’은 부모들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입니다. 이 책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것과 맞닿아 있습니다.

나무에 걸려 있던 구름으로 만든 빵을 먹음으로써 아이들은 하늘을 날게 됩니다. 그것은 대상의 능력을 얻기 위해 먹어버리는 주술적인 행위를 통하여 ‘아이’의 정체성을 탈피하는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흔히들 ‘제한적’이고 ‘불가능’하다라고 믿어 온 것들에서조차도 거의 모든 것들, 심지어 얻을 수 없는 것조차도 아이들은 찾아내곤 하지요. 구름빵은 바로 경계를 넘어선 ‘상상력의 산물’이며 그것을 먹음으로써 자신의 모습을 뛰어넘는 진화하는 인간상을 그려냅니다.

늘 의지하고, 관심을 받아왔던 객체적 입장에서 주체가 되는 것은 아빠에게 자신들이 먹었던 빵을 주는 장면에 있습니다. 자신들이 얻은 능력을 나눠주는 호혜적 행위는 자신들의 세계로 어른을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을 잘 나타냅니다. ‘이미 아이들은 완전한 인간의 모습이었다’라고 증명하듯이 책 속의 아이들은 모든 것을 자신들의 의지로 행합니다.

바로 상상의 힘이고, 그 힘은 인간을 성숙케 하는 힘이었던 것입니다.
아이들은 상상을 먹고 자라고, 어른들은 영감을 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유명한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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