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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모와 어둠 속의 기적 1
발터 뫼르스 지음, 이광일 옮김 / 들녘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바우돌리노(움베르토 에코, 열린책들)가 찾아 나선 동방의 요한 사제의 왕국을 기억하는가?
환상과 모험이 가득한 곳, 그곳으로 인도하는 것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내밀한 공포였다. 예상할 수 없는 운명과 고난 뒤에 얻게 될 상상의 풍요와 자유로움은 탐닉할 수 밖에 없는 욕망을 드러내게 한다.
그 힘의 진원은 현실의 구속에서 벗어나 있는 듯 하지만, 현실의 잔영에 가깝다. 초월을 말하지만, 삶과 죽음의 순환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비현실적이지만,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는 쾌감은 현시적이다. 활자에 머물지 않기에 즐거운 탐독에 빠져든다
이 책은 장대한 사가(Saga)이다. 악마바위에서 겪었던 잔혹한 유년의 성장기, 무예와 재능 개발을 위한 눈높이 교육의 성과, 기이한 생명체들과의 전쟁, 죽음과 공포를 극복하고서 구한 사랑…
장르로 말하자면 성장 모험 로드 판타지 스릴러 슬레셔 잔혹 코믹에 신화적 요소가 첨가된 발터 뫼르스식 짬뽕밥이다.
걸죽하다.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우걱우걱 구겨넣으면 그게 ‘진맛’일게다. ‘은띠’를 찾아 뚜벅뚜벅 걸어가다 보면 작가가 배설한 미장센들이 이야기를 한다. 이 책이 산만한 구성을 보이는 이유는 그 모든 것에 역사가 있고 말하려 하기 때문이다.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고, 그들의 역사와 사연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하나로 이어진다.
바로 삶.
길어질수록 짧아지는 삶, 그리고 늘 우리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죽음, 운명적이고도 지독한 사랑이 주제인 셈이다.
페르세포네가 지하세계로 끌려갔듯이, ‘루모’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팔뚝 문신’과 칼 한자루를 쥐고서 위험 가득한 지하세계로 ‘랄라’를 찾으러 간다. 믿는 것은 운명이고, 얻을 것은 미녀와 명예이다. 마치 무협지의 은둔 고수처럼, 스타워즈의 제다이 기사처럼 그것은 선택이 아닌 필연을 띤다. 필연은 늘 앞서간다. 행위보다 결과가 앞장을 선다. 그 필연성은 간절한 바람이 만들어낸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정리하면,
‘사랑을 놓고 벌이는 죽음과 삶의 처절한 싸움’이 되겠다.
죽음의 지배를 받느냐, 삶의 지배를 받느냐…
숙명적인 불확실성에 놓인 우리의 삶,
지상세계와 지하세계가 맞닿아 있어 언제 허물어질지 모르는 경계에 불안하게 놓인 나약함
루모는 불멸의 사랑에 대한 우리 모두의 바람을 성취시켰기에 ‘영웅’이 된 것이다.
설령 그것이 하룻밤의 단꿈일지라도 맛보고 싶은 것이 ‘진맛’ 중의 ‘진맛’이 아닐까.
Ps. 이 책을 보다 보면, 서양사가 숨어 있는 듯하다.
이민(야만)족의 침입, 십자군의 철갑, 로마의 (미친)왕과 검투사.
그리고 쥘 베른의 ‘지구 속 여행’, 인체 속 탐험은 80년대 에니메이션 ‘미미의 컴퓨터 여행’이 연상된다…
숨어 있는 신화나 작품, 상징을 나름대로 끼어 맞추어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