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득이 - 제1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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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어디선가 똥주 선생이 악다구니를 고래고래 지르고 있을 것만 같다. 완득이를 부르는 저 사람은 과연 완득이를 부르고 있는 것일까. 부름으로써 불러오려는 것일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이름은 대상에 존재를 아로새긴다. 존재에 이 세상은 제대로 된 이름을 부여했을까. 스스로를 감추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주변에서 내 이름을 불러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까. 불법체류 외국 노동자들, 시대에 쓸려나간 카바레 춤꾼, 시집온 외국처녀, 문닫는 킥봉싱 도장, 입시에 자아를 맡긴 학생, 가진 거라곤 미숙한 지능과 미달되는 신장 뿐인 사람들… 혹 중심에 머물 수 없는 주변의 목소리를 비웃음에 묻어 버리지는 않았는지.
이 유쾌한 육담의 드라마는 각자의 의미를 되찾기 위해 부단히 움직인다. 움직이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지워질 것처럼 스텝을 밟고, 악을 지르고, 꺾고 비튼다.

흔해빠진 소망들이 야한 욕망만큼이나 내면을 얼룩지게 만들었다. 각자가 짊어진 운명의 무게가 가벼워지길, 다른 이에게 전이되지 않기를 바라며 마치 이물질인냥 체에 거르고 또 거른다. 완득이는 거룩한 이름으로 소망하나니 “빛깔과 향기”가 어울리지 않는 존재의 죽음을 기도한다. “빛깔과 향기”가 어울리는 존재의 부활을 희망한다. 지긋지긋한 일상의 죽음을 기도한다. 잊혀진 의미의 부활을 희망한다.

“우리들은 모두 / 무엇이 되고 싶다. /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천박한(?) 척박한(?) 사회의 먹이사슬이 그들에게도 있다. 그 사슬이 느슨해지고 꼬이더니 끈끈한 관계가 되어버리는 지경이 되고서야 갈등이 멈춘다. 화해는 폐계를 나눠먹음으로써 찾아왔다. 이 놈의 질긴 닭, 질긴 놈의 인연…. 그대가 떠나도, 그대를 떠나도 숨길 수 없는 서로들....

차별을 물려주기 싫었다고? 미워할 수 없는 작은 세상의 마찰음이 진동하더니 결국엔 웃고 만다. 마구 공간을 몸부림치더니 그제서야 공간이 생기는구나. 이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그게 바로 성장통이구나. 이 소설은 모두의 성장통을 담았다.


- (만화처럼)완득이의 머리 위에 생기는 말구름이 대체로 웃기나, 어색한 부분도 있음
34페이지 지하철 격투씬에서 “두 남자 모두 내게 덤볐다.”, “남자가 쓰러졌다.”, “이제 한 남자만 해치우면 된다.” 
완득이가 화자인지 작가가 화자인지… 소설 분위기상 “놈”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영화로도 만들면 재미있을 법한 ‘시나리오’다.
내가 생각하는 캐스팅은…
똥주 : 당연히 황정민~! (야비하고 승질 더럽지만 동시에 구수한 인간 냄새를 풍김)
혁주 : 봉태규 (깐쭉)
민구삼촌 : 박노식 (말 더듬으며 4차원적인 분위기가 딱)
완득이 아버지 : 임현식 (카바레, 중절모가 잘 어울릴 듯)
완득이 어머니 : 고두심 (ㅡ.ㅡ);
박두식 : 이병준 (구타유발자의 그 느끼한 아저씨, 난닝구가 잘 어울릴 듯)
완득이 : 박해일 또는 조인성 (그냥)
정윤하 : 황보라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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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8-03-29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거 너무 좋았어요. 완전 짱 좋았어요. 완득이는 다 좋아요. 완득이도 똥주도 윤하도 혁주도. 다 좋아요. :)

라주미힌 2008-03-30 00:33   좋아요 0 | URL
근데 추천이 없네요? ㅋㅋㅋ

산사춘 2008-03-30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은 제가... ㅎㅎㅎ

다락방 2008-03-30 18:50   좋아요 0 | URL
추천은 산사춘님이 ㅋㅋㅋ

라주미힌 2008-03-30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 두 분의 애정, 감솨합니당.

순오기 2008-03-30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다 읽었어요.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재미...^^
영화로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했어요. 캐스팅한 배우들이 너무 나이가 안 맞아요.ㅎㅎㅎ
 
암살단 - 이슬람의 암살 전통
버나드 루이스 지음, 주민아 옮김, 이희수 감수 / 살림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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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 승리의 그날이 오면,
우리의 동료들처럼 이승과 저승 양쪽에서 큰 행운을 받는다면,
단 한 명의 무사만으로도 수만 명의 기병을 소유한 왕일지라도
공포에 벌벌 떨게 만들 것이니.”          220p


암살자(assassin)로 알려진 아사신파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오늘날 미국이 만들어낸 ‘테러리스트’와 이슬람과의 연쇄적 자유연상이 마치 그들의 전통인냥 굳어져 버린 작금의 인식을 환기시킬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을 잠깐 살피자면, 암살은 이슬람의 전통이 아님을 설파한다. 세계의 어느 역사를 보더라도 암살은 정치적 적대세력의 주요인물을 제거하는 손쉬운 방법이었을 뿐이다. 아사신이 대표성을 띄게 된 것은 그들의 탁월한 ‘체제 전복 기술’, 암살의 전문성에 있다. 그들은 타키야 원칙(Taqiyya, 위기에 처했을 때 종교적 의무를 관면)을 활용하여 스스로를 은폐하고, 대중을 장악하고, 기반이 되는 요새나 성을 점령하는 등 지속적인 세력확장에 힘을 썼다. 그리고 이슬람 외부의 적, 십자군보다는 이슬람 내부의 지도자들을 목표로 삼았다. 파괴할 것은 이슬람 기성 정치, 경제, 관료 체제였던 것이다. 무함마드의 정통 후계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이상제국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그 누구와도 전략적으로 동맹을 맺고, 핍박과 억압으로 채워진 삶을 메시아적 소망으로 대체했다. 목적을 위한 수단의 합목적성은 “해방과 파괴의 복음”이 되어 불가항력적인 폭력을 동원한다. 신앙과 자기 희생이라는 신도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업고서 적의 심장을 노렸다. 때문에 칸, 술탄, 파티마, 왕, 종교 지도자들 모두는 아사신을 두려워 했다. 그들의 표적이 되면 죽임이 늘 곁에 있음을 경계해야만 했다.

아사신이 노린 정치적 효과는 존재 자체가 주는 공포였다. 언제나 갑옷을 입고 다녀야 할만큼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세계를 선사한 것이다. 이 책의 핵심은 결국엔 그들도 실패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단검 하나를 쥔 소리 없는 죽음의 위협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기존 질서를 뒤집기는 커녕 하나의 도시를 장악하지도 못했으니까.
아사신의 현대적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대중의 “표적 없는 분노”를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조직화 할 수 있다면 아사신은 누구에게나 전통이 된다. 그러나 그들은 공포효과, 그 이상을 결코 이끌어 낼 수 없다.

국제분쟁이나 이슬람 관련도서를 읽으면서 궁금해왔던 것 중 하나가, 순니파와 시아파의 기나긴 역사적 갈등의 과정과 원인이었다. 이 책은 그 내용을 자세히 밝히고 있다. 종교적 분열이 아닌 정치적 분열이었다는 점. 시아파의 정통성에 대한 열망, 근본주의적인 성향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12이맘파, 이스마일파, 니자리파, 다이, 다와 등에 관한 설명도 들을 수 있다. 워낙 사람이름, 고유명사 등이 많이 나와서 읽기 힘든 부분도 있지만, 금세기 최고의 중동사학자 버나드 루이스의 책을 통하여 중동의 역사와 정치를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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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자누스 2008-03-29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he Occupation of Iraq: Winning the War, Losing the Peace (Hardcover)
by Ali A. Allawi (Author) 이 책의 저자는 이라크 사람인데
미국의 네오콘에게 이라크 무력점령이라는 기본 아이디어를 준 사람으로 버나드 루이스와 레오 슈트라우스를 꼽고 이라크 점령에 한 몫을 한 네오콘 가운데 그 누구도 이라크 현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말하니 버나드 루이스의 정체가 무언지 아리송하네요

라주미힌 2008-03-29 23:32   좋아요 0 | URL
'중동전문가' 맞나보네요.. 침략전쟁을 위한 '아이디어'라니... :-)
정보 감사합니다.
 
친절한 조선사 - 역사의 새로운 재미를 열어주는 조선의 재구성
최형국 지음 / 미루나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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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사회구조, 체제의 변화를 기록한 것이 역사다. 큰 흐름을 기술하는 거시사를 주로 접하다 보니 고목 껍질의 결을 매만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것을 보완하기엔 미시사가 제격이다. ‘변방의 역사’, ‘개인의 역사’를 현미경으로 관찰함으로써 더 큰 역동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주시하지 않았던 개인과 문화, 사료 속에서 역사의 우연성과 변혁의 ‘끼’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만으로도 미시사는 매력적이다. 지엽적인 것에 치우칠 수도 있겠지만, 체제와 사회구조 속 주체를 이해하는 것이 커다란 역사를 정교하게 다듬을 수 있는 필수 요소임은 분명하다. 

다른 시대보다 사료가 풍부해서 그런지 조선사 관련 책들이 많다. 요즘 부쩍 늘었는데, 예전에 대단히 인기를 끌었던 ‘조선의 뒷골목 풍경’ 같은 책과 다르게 왕과 관련된 책들이 많이 출간된 듯 하다. TV사극 열풍과도 무관하지는 않을 듯 싶다. 이 책은 그와 또 다르게 ‘조선시대에 이런 일이’라는 느낌을 줄 만큼 색다른 소재를 다룬다. (개인적으로 익숙한 것이 더 많다.) 소제목도 잘 지어서 스포츠 신문 타이틀마냥 호기심을 자극한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쓴 책이라서 그런지 내용도 쉬워서 술술 읽힌다. 하지만 각 꼭지를 읽고 나면 허전하다. 그게 다야? 사실을 기술함에 있어서 분석이 빈약해 보인다. ‘있었다’라는 것만 있지 ‘왜’ ‘어떻게’라는 호기심을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게다가 본문과 다르게 인용하는 자료들은 거의 대부분 ‘날 것’에 가깝다. 요즘 말로 쉽게 풀어서 해석해주는 것이 저자의 몫 아닌가? 제목은 친절한 조선사인데, 결코 친절하다고 볼 수 없다. 가령 먹거리를 다루는 ‘소젖 많이 짜지 마라 백성이 운다.’에 이어 나오는 ‘임금의 수라에 올라갔던 음식의 양과 비용은?’은 아무런 가공도 없이 데이터만 나열해 놓았다. 그 당시 서민이나 양반의 음식 소비량과 비교라도 했으면 의미라도 있지 않았을까. 서빙고에 저장된 얼음의 양도 그렇고 단순 인용은 지면만 채우는 역할만 담당할 뿐이다. 사료를 정리하고 분석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저자의 노고가 엿보이는 책이지만, 최소한 소제목에 부합하는 결론은 도출해야 하지않을까. ‘바다귀신 흑인용병은 임진왜란에 참전하다’의 결론은 심하게 허무했다.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놓고, 왜 그랬을까로 마무리하다니 낚인것인가.
3세대 아날학파 페르낭 브로델은 미시사를 '사건의 역사', 이야기만 나열하는 역사라고 혹평했다.
이 책이 이러한 혹평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 '치즈와 구더기', '고양이 대학살' 같은 깊이 있고 흥미로운 미시사를 기대해 본다.

"문화적 대상은 역사가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가 연구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만들어진다. 그들은 의미를 내뿜는다. 그들을 세는 것이 아니라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고양이 대학살’의 저자 로버트 단턴의 말에서 미시사의 방향을 읽을 수 있다. 독자는 사실의 나열이 아닌 읽을 것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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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3-21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 리뷰가 점점 물이 올라요. 따끔하게 할 말을 꼭 집어주는 센스! 영화리뷰도 늘 재밌게 보고 있거든요^^

라주미힌 2008-03-21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감솨합니다.. :-)
마노아님도 이 책 읽어보셨죠? 제가 너무 않좋게 썼나.. 저자에게 쬐끔 미안하네요. 솔직하게 쓰는게 최고의 미덕이라고는 생각합니다만 ㅎㅎㅎ

마노아 2008-03-21 23:54   좋아요 0 | URL
아뇨, 못 봤어요. 승주나무님 리뷰만 보았답니다. 거긴 별점 다섯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하늘바람 2008-03-21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정말 빨리 읽으시나봐요

라주미힌 2008-03-21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한 달에 두권 읽어요 ㅋㅋㅋ

승주나무 2008-03-22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 님..제가 너무 좋게 이 책을 해석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라주미힌의 관점에 동의합니다. "거시사에서 미시사로 가는 흐름의 부표"라는 관점에서 프리미엄을 많이 주었습니다.
이 책은 엄밀히 말하면 '미시사'라기보다는 'anti 거시사' 정도 될 것 같군요. 거시사의 거대한 뿌리와 전통은 워낙 깊잖아요. 자료도 많고.. 미시사는 별로 귀기울이지 않는 영역이라 많은 개발과 고민이 필요할 것 같아요~~
라주미힌의 솔직한 리뷰에 필받아서 적습니다.

마노아 2008-03-22 12:06   좋아요 0 | URL
두분 리뷰 모두 즐겁게 보았어요. 여전히 책에 대한 관심은 유지중이구요. 조선사 들어갈 때쯤 읽어볼까 해요^^
 
법률사무소 김앤장 - 신자유주의를 성공 사업으로 만든 변호사 집단의 이야기 우리시대의 논리 10
임종인.장화식 지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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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노동을 하는 자는 남을 다스리고, 육체노동을 하는 자는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다 (勞心者治人 勞力者治於人)”라는 맹자의 사상에 한국 사회가 질퍽하게 젖어 있어서 일까. 어렸을 때부터 ‘사’자 들어가는 ‘직업군의 인간’이 되라는 말을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다. 선망의 전문직 중 대표격인 법조계에 입성하려는 노력들을 보면 조선의 과거제를 떠올릴 만큼 과열이다, 로스쿨법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을 보더라도 ‘고지 사수’에 대한 열망은 노골적이다 못해 치사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을 그들은 잊어먹고 있는 듯 하다. 사회적 지위와 재력을 그들이 쥘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의 책임과 사회적 역할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고시만 패쓰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때부터가 진짜 시작인 것이다.

<변호사법>
제1조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
제2조 “변호사는 공공성을 지닌 법률 전문직으로서 독립하여 자유롭게 그 직무를 행한다.”

인권과 사회정의, 공공성을 위해 그들이 ‘달달 외운 법률지식’을 활용해야 할 텐데, 이 책을 보니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럼 그렇지’를 연발케 한다. IMF때부터 로펌에 관한 기사가 종종 나오곤 했었다. 국내 기업이 외국에 팔릴 때면 어김없이 등장했던 것 같다. 금융개방의 충격에 취약했던 ‘부실 기업’들이 여기저기서 KO를 당하자 ‘법조계’에서 발벗고 나섰었다. 기업형 변호사 집단은 투기 자본에 기업을 팔아먹고 무럭무럭 자랐다. 이 책은 국내 로펌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규모가 큰데다가 ‘신비주의’를 추구하는 ‘김앤장’을 ‘사회 고발’하기 위해 출간되었다.

<두산 백과사전>
로펌 : 특정분야에서 전문가를 요구하는 사회현상에 따라 한국에서도 김&장,세종,태평양·광장 등 대형 로펌이 등장하였다.

그런데 김앤장은 로펌이 아니란다. 건물은 여러채 있는데, 간판이 없다. 비즈니스 할 때는 로펌이고, 문제 될 때는 법률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투명 보호막을 뒤집어 쓴다. 이 로펌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고 하니, 뛰어난 변호사 집단이라기 보다 전 판검사들 기수별, 연수원-고시원 동기 수 백명을 촘촘히 꿰어 만든 '막강 로비의 축’에서 나온다. 게다가 정부 인사들이 퇴직하면 엄청난 연봉을 줘서 자기 회사로 데려온다. 그리고 투기자본과 결탁하여 그들에게 국가 정책의 방향을 움직이는 임무를 부여한다. 은행의 해외매각, 공기업 민영화, 정부의 법률자문도 ‘돈벌이 비즈니스’로 전락한 이유가 있었다. 그런 식으로 나눠 먹으니까… 민영화를 강력하게 외치던 정부 관계자들이 괜히 그랬겠는가.

권력의 민영화, 사유화는 군사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냉전 이후에 민영화를 통한 군산복합체의 탄생은 전쟁을 생산하는 시대를 열었다. “군인들과 무기들이 공개 시장에 넘쳐 나게 되었다. 예를 들어 T-55 탱크 가격이 SUV 차량 값보다 싸고, 우간다에서는 AK-47 소총 한 정이 닭 한 마리 값이면 살 수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냉전의 종식은 '안보 공백'을 낳았고 그에 따라 분쟁이 엄청나게 늘어나 1990년대 중반에는 냉전 종식 이전보다 5배나 많이 발생했다.”
"전 국방부 관료 출신들은 군수산업체 고문으로 영입되어 냉전시기의 무기체계를 유지하고 무기 수출을 촉진하고자 로비에 매달리고 있다. 퇴역 장성들은 외국 군대를 훈련시키는 회사를 차리고 미국의 군사 개입을 부추기고 있다. 미 정보기관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무기거래상들도 여전히 전세계를 떠돌며 때로는 정부가 주도하는 군사작전을 돕는다는 구실로, 때로는 철저히 상업적 목적에서 무기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들 '민간전쟁광'은 전쟁과 지역 분쟁을 통해 경제적 이익과 경력을 함께 쌓아왔으며, 미국의 국방. 외교 정책이 강경 노선을 유지하도록 긴밀한 유착관계를 통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냉전이 끝난 뒤에도 미국이 여전히 탈냉전적 세계 질서로 이행하지 못하는 데는 이들의 집단적 영향력이 커다란 원인이 되고 있다"
<전쟁대행주식회사> 피터 W.싱어 저/유강은 역 | 지식의풍경

이것은 사적인 이익을 위해 조직된 집단이 범죄 조직과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민간인은 공격 목표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전통적인 전쟁 법규가 무력해졌음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국가적 책임조차도 민영화 함으로써 기존의 질서와 책임은 공중분해가 된 것이다. 이것을 법과 경제 분야에 대입시키면 김앤장과 같은 괴물이 탄생한다.

사회 정의, 공공성이라는 본래적 책임은 내던지고, 오로지 사익 추구를 위해서라면 법을 뜯어 고쳐서라도 자본에 충성하는 권력의 카르텔은 막강하다. 권력을 쥔 자들이 '이해'라는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연대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돈이 궁했던 1999년에 만들어진) “지식의 부가가치를 능동적으로 창출”하는 ‘신지식인’ 일 수도 있겠다.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신지식인. 사회적 약자들 편에 섰었던 고전적 지식인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재벌들의 ‘탈법의 합법화’에 앞장서고, 사법질서는 물론 사회정의까지 비즈니스의 영역으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그 책임과 피해를 사회와 시민이 떠안게 되었다는 점이 그들이 이룩한 업적이라면 업적. 이명박이라면 ‘선진금융기법’이라고 했을 '합법을 가장한 불법의 대가들’답게 심한 분노도 우리에게 선사해 주셨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될 부분은 과연 김앤장만의 문제인가 하는 점이다. 국익이라는 명제 하에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일부분의 국민적 합의가 되었던) ‘미국의 침략전쟁에 파병’건을 보더라도 김앤장만이 추구하는 '사회적 논리'는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권력을 가졌건 가지고있지 않건 자본논리는 ‘자각하지 못하는 누구’에게나 언제든 기회만을 엿보고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재산권을 최고의 가치로 끌어올린 신자유주의가 삶의 곳곳을 파고들고 있다. 그것은 ‘보이지 않던 권력의 실체’가 아니라 ‘보이는 권력에 대한 자발적 복종’이다.

"오늘날에도 권력을 지닌 자들은 마구잡이로 불법을 자행하면서, 이른바 공공의 안녕, 인민을 위한 허울좋은 모델로써 그것을 은폐하고 있다. 이러한 짓거리는 옛날의 그것보다 심했으면 심했지, 결코 나아졌다고 할 수 없다."
<자발적 복종>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

16세기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가 18살 때 쓴 <자발적 복종>의 통찰력은 언제 봐도 놀랍다. 바퀴벌레의 생명력 만큼이나 질긴 것들이 언제나 우리 앞에 있구나. 여하튼 이제라도 김앤장이 신비주의가 벗겨지게 되었다는 점은 축하할 일이다. 책으로도 나왔으니 지들이 어디로 숨겠는가. 사회적 감시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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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마니타스 2008-03-11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법률사무소 김앤장』 저자 간담회가 3월 15일(토요일) 오후 2시 서교동에서 있습니다. 관심 있으시면 블로그에 들려서 신청해주세요. 광고성 댓글을 남겨서 죄송합니다.

http://blog.naver.com/humanitas1/30028666122
 
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 문학동네 화첩기행 5
김병종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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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감각과 감성을 도취시키는 작업이다. 익숙한 모든 것들로부터의 해방이 주는 흥분은 정착적인 삶에 찌든 때를 말끔히 날려 버린다. 아, 그러나 현실이라는 벽에 가로 막힌다. 누가 대리만족이라는 것을 만들어 놓았을까. 게다가 음흉한 세력들은 책 같은 것으로 대충 해소하게끔 한다. 동경이 좌절의 토양 위에서 무럭무럭 자라듯이 반대급부는 어딜 가나 존재하나, 욕구 뒷편의 결핍이 근질거리는 것은 숨길 수가 없다.

그래서 이 책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예술과 혁명, 열정의 라틴기행+화첩이라….
이럴수가 읽고 나니 머리, 가슴, 신체 어디에도 남은 것이 없다. 예술과 문학, 인물과 풍경이 범벅이 된 ‘정처 없는 기행’을 졸졸 따라다니는 데에 피로하기까지 했다. 저자가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느꼈는지 공감할 수 없었다. 공감과 상상력을 자극하기엔 그림도 썩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김용택 시인의 ‘그림과 글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는 평도 의심스럽다.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니깐 정답은 없는 것이겠지만, 감흥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는 최소한 변명거리라도 찾아내야만 하는 것이 이 책에 대한 ‘도리’가 아닐까 고민해야만 했다.

인물과 명물, 풍경, 예술이 중심인 것은 좋다. 저자의 필력과 지식도 좋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의 살가운 삶의 이야기가 없다. '죽은 것들'에 관한 지식과 주관적인 느낌을 ‘감성의 언어’로 나열하느라 '살아있는 삶의 주체'들이 소외됐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고 어떤 재미도 느낄 수 없었다. ‘글재주’, ‘그림재주’는 이 책에 있어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반대였다. ‘대리만족’ 하려고 읽는 것인데 말이다. 글과 그림의 '전체적인 모양새'도 잘 그려지지 않는다. 손에 잡을 수 없는 이 물컹거림이란, 흡사 멀미처럼 느껴진다.

역시나 백문불여일견. ‘기행 도서’의 한계가 드러나 있는 책이라고 말하면 너무 혹독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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