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포토 다큐 세계사 5 - 아일랜드의 세기
마이클 매카시 모로 지음, 빌 바그넬.믹 패럴리 사진편집, 조준희 옮김, 박지향 감수 / 북폴리오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아일랜드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둘 있었다.
고등학교땐가 배운 "아 목동아~~~" 어쩌고 하는 노래가 떠올리는 이미지
이것도 뭐 어디선가 주워들은 것들의 복합체이긴 하겠지만 하여튼 한없이 목가적이고 그러면서도 약간 애절한 그런 분위기가 하나.
그 다음은 한때는 신문의 국제난에 심심찮게 오르내렸던 IRA로 대변되는 극단적인 저항과 테러리즘의 이미지 - 이 두가지는 분명히 세계관 자체가 다른 개념인데도 같이 떠오르다니....

20세기 포토 다큐세계사의 국가선정에서 가장 맘에 드는 부분이 이 책이다.
앞의 20세기 세계사 하면 누구나 먼저 떠오르는게 너무나 당연한 식상할 정도의 선택이었다면,
제 아무리 유럽이라 하더라도 영국의 부속지역의 하나쯤으로 여겨지는 아일랜드를 독립시켜 책을 만들다니 꽤 신선하고 바람직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다.
다른 시리즈들은 사실 책속의 글때문에 샀다기 보다는 거의 사진들때문에 샀다는게 정확하다.
하지만 아일랜드 만큼은 기본적으로 내가 아는게 워낙 없어 책속의 내용들도 무지하게 궁금했다.

책을 보고 난 후!
먼저 아 목동아의 이미지는 왕창 깨졌다.
아일랜드 땅 어디에도 그런 목가적인 분위기는 없었다.
20세기가 들어오고도 내내 사람들과 거리는 하나같이 남루하고 비참하다.
아일랜드 시골마을의 집들조차도 그 남루함이 눈을 가려 목가적인 시골농가의 모습을 찾기 힘들다. 식민지의 착취와 억압의 교묘한 은폐조차도 사치스럽다고 생각하는듯 그것은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시리즈의 영국편을 먼저 보아서 그런가?
제국주의 국가와 그 지배를 받는 식민지의 풍경이 이렇게도 확연하게 달라지는 거였구나.

몇개의 영화가 떠올랐다.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 같이 나왔던 <파 앤 어웨이>
아일랜드의 가난한 소작농인 청년과 대지주의 딸의 사랑얘기였었는데, 자유와 희망을 찾아 아메리카로 둘이 도망치는 대목에서도 청년은 여자와 연인행세를 하지 못하고 하인으로 분해 떠났던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아메리카 땅에 도착한 후에도 청년은 가난한 아일랜드 출신으로 온갖 차별과 설움을 받았던 것. -
겹쳐지는 장면들은 영국인 대지주들 자신들의 이익만을 생각한 행동에 의해 심각한 정도를 가속화시켰던 아일랜드 대기근의 장면들이다.
그런 시기마다 수많은 아일랜드인들이 굶어죽지 않기 위해 아일랜드를 탈출했다.
이런 대규모의 탈출로 인해 그나마  아일랜드인들이 몽땅 굶어죽는걸 피할 수 있었다는 역사의 기록은 참담할 지경이다.

흔히 IRA(아일랜드 공화국군)의 창시자로 알려져있는 마이클 콜린스를 그린 영화<마이클 콜린스> - 바바리 자락을 휘날리며 걷는 그의 시니컬한 모습이 참 멋졌었는데 말이다.
식민지배가 지나치게 오래 계속되면(아일랜드는 12세기부터니까 참 징하기도 하다.) 그것도 바로 옆에 붙어서 말도 안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아일랜드의 경우 북아일랜드 지역에서는 영국인 내지는 친영파 신교도들이 인구의 다수를 점해버리는 사태다.
아일랜드는 영국과도 싸워야 했지만 바로 이 내부의 적들과도 싸워야 했다.
영국을 상대로 무장독립투쟁을 벌였던 IRA의 마이클 콜린스가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니라 자치를 협약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은 한 때 내겐 큰 의문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그의 그 선택이 얼마나 고뇌에 찬 선택이었는지....
때로 원칙을 향해 가는 길이 둘러갈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극단적일 정도의 희생이 끊이지 않는 땅에서 일단 평화를 가져오고 싶었던, 그리고 그 평화의 연장선상에서 완전독립의 수순을 하나씩 밟아나가는 것이 어쩌면 유일한 현실적인 대안이었지 않았을까? 
영국과의 협정에 서명을 하고 나오던 마이클 콜린스가 "나는 오늘 내 사형장에 서명했네"라고 했던 말의 의미는 곧 현실이 되어버린다.
이후 아일랜드는 독립하지만 그것은 불안전한 독립이었다.
분쟁의 씨앗을 내부에 간직한.....
카톨릭의 아일랜드와 신교도가 우세한 북부지역은 결국 분단이 돼 버리고, 이 둘 아니 영국까지 셋의 끊임없는 전쟁은 아일랜드에서 민족주의 이외의 다른 정치적 대안을 사상시켜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고도 할 수 있겠다.

세번째 영화 - 북아일랜드, 그리고 <아버지의 이름으로>
건달노릇밖에 못하던 북아일랜드의 한 청년이 신IRA의 폭탄 테러의 누명을 쓰고 영국 법정에 선다. 영화 내용이야 그런 아들을 구하기 위한 아버지의 감동적인 휴먼 스토리지만, 여기에서 현재의 아일랜드의 모습을 본다.
아일랜드가 독립한 이후 북아일랜드는 이상한 모습을 띄게 된다.
북아일랜드의 다수는 영국으로의 귀속을 주장하며 소수파인 카톨릭교도 하층민들을 철저하게 억압하는.... 그런 차별 정책에 의해 소수 카톨릭교도들의 민족주의는 한층 강렬해지고 투쟁의 형태도 흔히 소수파가 그러하듯이 강렬한 테러의 형태를 띄게 된다.
신페인당이 주도하는 신 IRA의 등장.
흔히 신문에서 보던 온갖 테러의 주인공이다.
이들은 2005년에 영국과의 협상을 통해 무장해제를 선언했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북아일랜드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닐게다.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원하지 않는 다수파, 그 다수파에 의해서 철저하게 억압당하는 소수파들과 그들의 저항. -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문제는 어디에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걸까?
현재의 아일랜드는 이제 오랜 가난에서 드디어 벗어났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안고있는 시한폭탄같은 문제의 해법이 보이는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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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7-12-21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것도 사고 싶네요.

바람돌이 2007-12-21 09:09   좋아요 0 | URL
책값이 좀 많이 비싸긴 하지만 꽂아두면 뽄대는 나요. ㅎㅎ

BRINY 2007-12-21 19:01   좋아요 0 | URL
가격보고 벌러덩!

바람돌이 2007-12-23 00:39   좋아요 0 | URL
좀 많이 비싸긴 해요. ㅎㅎ 저도 한꺼번에는 도저히 못살것같아 나올때마다 한권씩 샀어요.

아사히 2007-12-21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이런 영화가 있지요.
'보리 밭을 흔드는 바람' 켄 로치 감독으로 작년에 시네마 테크에서 봤네요.
1920년대 아일랜드,어째 민주화되었다면서 새롭게 갈등을 일으키는 우리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는 가슴 아픈 영화...
아일랜드 역사라.. 읽고 싶군요.

바람돌이 2007-12-23 00:40   좋아요 0 | URL
보고싶었는데 못본 영화네. 하기야 못보고 넘기는 영화가 어디 한둘이라야지... 보고싶은 영화 못볼때 아줌마의 비애 느낀다. 매년 국제 영화제 할때도... ㅎㅎ
 
바무와 게로의 하늘 여행 벨 이마주 95
시마다 유카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전편이었던 <바무와 게로의 시장가는 날>을 우리 아이들이 썩 좋아하지는 않았던 관계로 살까 말까를 망설였었는데 내용 소개에서 비행기를 만들어 탄다는 얘기가 있어 구입했다.
이런 얘기에 열광하는 둘째가 좋아할 듯 하였던 것.
솔직히 말하면 비행기를 조립하는 과정이 주 얘기이지 않을까 싶었던 것.
근데 전혀 아니었다.
비행기 조립은 슬쩍 슬쩍하고 그 비행기로 바무와 게로가 할아버지 댁을 찾아가는 과정이 주였던 것이다.

바무와 게로가 아침으로 팬케이크를 먹고 있는데(얘들의 아침 식사는 늘 팬케이크이다.) 편지와 소포가 도착한다.
생일을 맞은 할아버지의 초대장!
그것도 비행기 부품을 잔뜩보내 그걸로 비행기를 만들어서 오라는 것.

근데 이들의 여정이 정말 재밌다.
양파산맥, 벌레가 득실득실한 사과산, 50년에 한 번씩 폭발하는(당연히 올해가 그 50년째다 ^^) 호박화산, 꽃무늬 물뱀이 사는 바다, 흡혈박쥐가 사는 동굴 등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넘칠만큼 황당하고 지극히 발랄한 여정이다.

하지만 우리집 아이들이 열광하는건 그 여정을 헤쳐나가는 바무와 게로의 행동들이다.
이 둘은 항상 할아버지의 주의사항을 너무 늦게 알아 그 위험들을 하나도 피하지 못한다.
그러고는 늘 다음엔 꼭 조심해야지 하는 말을 되풀이하고....
우리집 아이들은 "얘들은 할아버지 말을 하나도 안들어"하면서 낄낄거린다.
아빠 엄마 말 안듣는 자기들과 똑같다는 생각을 하는걸까?
항상 아이들은 말썽장이들에게 열광하는데 이번에는 바무와 게로가 그 열광의 대상이 돼버렸다.
데이빗 이후 최대의 인기짱 말썽장이랄까? ^^

근데 바무와 게로는 그 위험들을 다 겪으면서도 또 나름대로의 지혜를 발휘해 그 위기들을 무사히 넘긴다.
흡혈박쥐를 피하기 위해 토마토 케첩을 뿌려대는 것 같은....
아마도 바무와 게로가 나름의 방법으로 위기를 벗어나는 것도 아이들에겐 신나는 일인가 보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주인공외에도 볼거리가 아주 많다는 거다.
마치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것처럼 삽화속의 얘깃거리들을 더 많이 찾아낼 수 있다.
가는 곳마다 달라지는 구름의 모양들
벌레사과산에서는 온갖 포즈의 벌레들이 꿈틀대는데 게중에는 딸기잼을 파는 벌레까지....
"엄마 얘는 장사해"라는 아이의 목소리가 어찌나 들떠 있던지....
이런 그림들을 하나 하나 보며 얘기하다 보면 엄마가 못보는 걸 아이들이 볼때도 있다.
물 뱀이 살고있는 바다위에 떠있는 섬들이 사실은 물뱀의 등이였다는 것. 그래서 거기서 일광욕을 하던 토끼가 화들짝 놀라는 건 난 못알아 챘는데 아이들이 먼저 알아채고 얘기해 준 것이다.

이 책 덕분에 심드렁 하던 <바무와 게로의 시장가는 날>도 갑자기 인기도서가 돼버렸다.
아이들이 신나게 웃으며 즐겁게 볼 수 있는 책을 찾는다면 단연코 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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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07-12-19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바무와 게로 후속편이로군요.^^
반가워라~

바람돌이 2007-12-20 00:04   좋아요 0 | URL
민이도 바무와 게로 좋아하나요? 저는 시장가는날보다 훨씬 재밌던데 아마 민이도 좋아할거예요. ^^ 잘 지내시죠? 요즘 저도 뜸하고 님도 뜸하니 인사나눈것도 오랫만인것 같아요. ㅎㅎ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세트 - 전4권 (무선) 해리 포터 시리즈
조앤 K. 롤링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수첩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가끔은 요즘 애들이 부러웠다.
자기와 같이 커가는 판타지의 주인공을 만날 수 있다는 게 말이다.
몇년전부터 시리즈가 나오길 손꼽아 기다리는 몇 안되는 책 중의 하나 해리포터가 드디어 완결됐다.
원서는 좀 더 일찍 나왔지만 내 실력에 무슨 원서는....
빨리 번역이 안되는걸 어찌나 안타까워 했는지....

해리포터 시리즈가 가진 매력은 뭘까?
환상적인 마법사의 세계, 인간과 거의 다를바 없으면서 먼 어딘가의 나라가 아니라 현재의 인간세계와 바로 이웃해 사는 공간 설정,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대결 구도들, 그리고 선악의 분명한 구분이 주는 명쾌함!
하지만 무엇보다도 전세계의 수많은 독자들을 해리포터로 이끄는 매력은 무엇보다도 캐릭터들의 생생함일게다.
소년소설류에서 보이는 도식적인 인간상은 여기에 없다.
이들은 모두 바로 우리 옆에서 숨쉬는 듯, 내 옆에 어딘가에 있을듯이 평범하고 불완전하다.
해리 포터는 마법사의 경이로운 세계에 첫발을 내딛고 흥분해 어쩔 줄 모르는 어린애에서 사춘기의 반항적인 소년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대로 밟는다.
그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는 사춘기 소년의 특성을 모두 갖고 있다.
7부에서는 더더욱 존경해마지 않던 덤블도어에 대해서조차 회의하고 의심하는 소년이다.
끊임없이 자신에 대한 주변의 기대를 감당하지 못해 헐떡거리고 괴로워하는 그는 성장통을 앓는 여느 소년들과 다를바가 전혀 없다.

론은 또 어떤가?
영화에서나 책에서나 론은 참 멍청해보일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너무나 유명한 친구때문에 질투도 하고, 사랑에는 너무나도 서툴러 늘 엉뚱한 행동으로 역효과만 내고마는....
심지어 이번편에서는 불편한 생활에 온갖 불평을 늘어놓다가 해리와 헤리미온느를 버리기까지 한단 말이다.

헤르미온느 역시 이들중 가장 영특하긴 하지만 사춘기 소녀의 새침떨기와 민감함을 동시에 가진 우리 주변의 한 소녀다.
말썽꾸러기의 대명사지만 한 번도 미워할 수 없었던 프레드와 조지.(솔직히 난 얘들이 제일 좋더라...)
왕따였지만 근사한 덤블도어의 군대로 변신한 네빌과 루나

마법만 뺀다면 이들은 우리 학교의 아이들 그대로인듯하다.
이런 인물 성격의 현실성이 독자들을 해리포터의 세계로 이끈 걸까?

볼드모트와 해리포터의 마지막 대결을 짓는 7부는 역시 4권이 가장 재밌다.
호그와트를 배경으로 양쪽의 군대가 격렬한 전투를 벌이는 장면은 상상의 재미를 극대화한다.
또한 마지막으로 벗겨지는 비밀 하나는 최후의 순간의 볼드모트와 해리포터의 대결보다도 흥미진진하다.(그 비밀이 뭔지 말하고 싶어 죽겠으나 아마도 말했다간 무수한 사람들의 돌팔매를 맞으리라.... ㅠ.ㅠ)

어쨋든 중요한건 그동안 해리포터 시리즈는 내게는 커다란 즐거움이었다는 것이다.
마지막 시리즈가 나온게 완결의 기쁨보다는 이제 다시 해리포터를 만날  수 없다는 서글픔을 더 많이 느끼게 하니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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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7-12-17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말고사가 끝난 우리반도 해리포터 시리즈의 학급문고화! 전 영화 나오기 직전에 보는 주의라 참고 있습니다.

바람돌이 2007-12-18 12:46   좋아요 0 | URL
전 예전에 해리포터 영화 처음 나올때 그 퀴디치 게임이란걸 도대체 어떻게 화면에 펼쳐놓을까자 너무 너무 궁금했었어요. 그 장면 하나만큼은 영화가 실망시키지 않던걸요. ㅎㅎ
그나저나 브리니님 요즘 뜸하셨던 것 같은데 건강하시죠?
 
가자에 띄운 편지
발레리 제나티 지음, 이선주 옮김 / 낭기열라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가자지구 >
팔레스타인 인구의 40%인 150만여 주민들이 고립된채 포위되어 살고있는 땅.
주민의 60%가 국제 난민으로 공식등록되어 있는 곳.
전체 인구의 70%가 실업상태에서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다.
가자지구를 둘러싼 이스라엘군은 5개의 검문소를 통해 철저하게 출입을 통제한다.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감옥이다.
조그만 사건에도 모든 출입이 차단되어버리는 은유적 의미가 아니라 실제의 감옥인 땅.
그곳에 오늘도 사람들이 살고있다.
우리와 같이 숨쉬고 기뻐하고 슬퍼할 줄 아는 사람들이......

'나, 너, 그' 하는 식의 단수는 존재하지도 않고, 그냥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라는 복수만 있는거지. 불쌍한 팔레스타인 사람들, 아니면 나쁜 팔레스타인 사람들 하는 식으로 ........우리는 절대로 '하나 + 하나 + 하나'가 아니라 늘 400만인 거야. 그러니 사람들은 민족을 통째로 등에 지고서 살아가는 것이고. 무거워. 무거워 등이 뭉개질 것만 같아서 차라리 눈을 감고 싶어져버리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사는 이제 20살이 되려는 청년 나임은 이렇게 절규한다.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에서 이제 몇명이 죽었다느니, 또 폭탄테러가 일어났다느니 하는 얘기들은 더 이상 화제가 되지 못한다.
심지어 이제는 몇몇이 죽어서는 외신을 타지도 못한다고 해야겠지....
보다 강력한 강도의 보다 많은 숫자가 되지 않고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도 못하는 수많은 이들의 죽음.
그런데 그 죽음이나 고통조차도 언제나 개인의 것으로 특별한 누군가의 것으로 인식되어지지는 못한다. 그저 늘 누군가와 함께 숫자와 그들이라는 복수로 인식되어질 뿐....
숫자는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의 그 많은 눈물과 삶을 일일이 보듬어주지 않는다.

팔레스타인 가자에 사는 나임은 그 숫자가 무겁다.
그의 민족에게는 희망이 없고 그것은 그럼으로 인해 그가 절대로 그 민족의 무게에서 벗어나지 못할것임을 예고한다.
20살 - 꿈도 많을 것이고 무엇이든 기존의 권위에 저항하고 벗어나고 싶을 나이다.
그가 저항하고 싶은것이 이스라엘이나 미국에 대해서뿐이라고 누가 자신하랴?
20살의 나이는 세계의 어느 젊은이도 다 그러하듯 가족에게서도 벗어나고 싶고 자신의 나라 또는 민족에서도 벗어나고 싶고 저항하고 싶은 나이일게다.
나는 나라고 자신의 고유성을 한껏 주장하고 싶은....
그럼에도 나임은 고통받는 자신의 민족이라는 짐을 벗어던질수가 없다.
민족을 떠난 자신을 아예 꿈꿀수 없는 얽매인 존재로서의 팔레스타인 청년 나임!
그런 그는 민족을 떠나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잡았음에도 결국은 그 여정의 끝은 다시 돌아오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나임의 저 절규속에 여기 멀리 한국땅에서 방관자이면서 저들에게 동정적인체 하는 나의 모습이 겹쳐졌다.
아마도 팔레스타인에 동정적이라 자부하는 그래서 진보적인체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팔레스타인의 모습에 대한 절규일거다.
어떤 민족이 집단적으로 고통을 강요당하고 있을때 그 민족을 괴롭히는 것은 분명 굶주림, 질병, 앞날에 대한 불안감같은 것일게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또 하나 잊고 있는 것. - 개인이 개인으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개인이 자신의 삶을 맘껏 펼쳐보지 못하는 것, 언제나 전체를 위해 뭔가를 희생해야 하는 존재로 각인되어지는 것 .그런 고통에 대해서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게 아닐까?
내일이면 나임은 새로운 세상으로 갈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길거리를 지나다가 어디선가 날아들 총알에 맞아 그 꿈을 완전히 접어야 할지도 모를 것이다.
이방인의 눈으로는 결코 알수없는 팔레스타인 청년의 절규가 내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우리 부모님과 나, 우리 식구들은 너희도 나라를 가질 수 있기를 바라며 늘 운동을 해왔어. 평화라는 단어가 그저 노래나 사전, 연설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말이야...... 그런데 너희 쪽 평화주의 운동가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냐는 거야. 어째서 10만여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모여서 증오의 눈길 없이 우리와 평화를 맺자고 하는 일은 없느냐는 말이야.

19살의 이스라엘 소녀 탈은 팔레스타인 소년에게 묻는다.
이스라엘의 유대인들 중에도 평화를 바라고 팔레스타인인과 자유를 주고싶어하는 사람들이 여기 있지 않냐고....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면 세상도 언젠가는 바뀌지 않겠냐고....
그러나 그녀는 아직은 모른다.
그 물음 자체가 이미 가진자의 오만일수도 있으며, 또한 순진한 낭만적 기대임을....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에게 진심으로 물어보자.

유대인들의 테러에서 자유로와지고 평화로워지기 위해 당신이 지금 가진것의 반을 온전히 내놓으라고 한다면 과연 내놓을 수 있냐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에게 그의 마지막 무기마저 먼저 포기하라고 하는 것은 과연 정당한 거래일까?
이스라엘인들은 그들이 당한 테러로 인한 상처를 말하기 전에 먼저 팔레스타인의 나임과 같은 청년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

이스라엘 소녀 탈은 어느날 바로 집옆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나자 뭔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가자지구에 병을 던진다. 누군가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어떻게 하면 이런 일들을 막을 수 있을지 서로가 왜 서로를 이토록 모르는지 알고싶다는 욕구다.
그래서 만난 이가 팔레스타인 청년 나임이다.
소설은 이 둘이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싹트는 우정을 얘기한다.
그러나 그 우정이란건 개인대 개인으로서의 나임과 탈일뿐.....
그럼으로 앞서 나임의 저 절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마지막의 탈의 충격적인 경험을 통해 작가는 결국 두 민족의 증오가 일방적인 상처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호작용하고 있음을, 그럼으로써 팔레스타인 사람들 못지않게 이스라엘 인들 역시 큰 상처를 동시에 받고 있음을 얘기하고 싶어하는듯 하다.
나임과 탈처럼 서로가 대화하고 이해함으로써만이 그 상처의 극복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상투적인 결론을 내리는 결말보다 내 맘을 때린 것은 나임과 탈의 저 말들이었다.
저 말들은 바로 지금의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유대인의 거리를 알려주는 말이다.
저 인식의 차이의 거리는 멀고도 멀다.
어슬픈 낭만으로 덮어버리기에는 너무도 머나먼 길.....

누가 먼저 양보해야 하는가? 누가 먼저 상대의 눈물을 닦아줘야하는가?
탈! 그녀는 나임의 그 상처를 닦아줄 수 있을까?

어쩌면 오늘도 가자지구의 검문소의 문은 닫혀있을지도 모른다.
하루 벌어 하루먹고 살기도 힘든 그들에겐 생존의 문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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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31 17: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국경을넘어 2007-11-01 0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20살 청년(팔레스타인)과 19살 소녀(이스라엘)라는 설정이 조금은 걸립니다. 똑같은 내용이되, 만약 바꿔서 20살 청년(이스라엘)과 19살 소녀(팔레스타인)이라는 구도로 이글이 쓰여졌다면 어떠했을까요?

바람돌이 2007-11-15 12:35   좋아요 0 | URL
너무 오랫동안 방치했다가 댓글을 달려니 쑥스럽네요. ㅎㅎ 이 글에 나오는 탈의 오빠는 이스라엘 청년으로 가자지구를 지키는 군인입니다. 그 오빠가 탈의 병을 가자지구 바닷가 모래밭에 던져놓음으로 해서 둘의 인연이 시작되는거죠. 책의 내용으로 보건대 설정이 바뀌었다 해도 뭐 그렇게 달라지는 부분이 없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군요. 아마도 군인인 이스라엘 청년의 딜레마가 더 많이 눈에 띄는 정도랄까..... 뭐 그정도일것 같아요.
 
소수성의 정치학 - No.1, 2007 부커진 R 시리즈 1
그린비 + '연구공간 수유+너머' 기획 / 그린비 / 2007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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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R은 혁명의 그 R이다.
이념이라고는 다 씻겨가버린 것 같은 시대에, 혁명이라고는 구시대의 유물 내지는 잔재로 퀘퀘먹은 냄새나 뿌리는 것으로 치부되는 이 21세기에 다시 혁명이라니.....

하지만 조금만 정직해져 볼까?
87년 이래로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었다고,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말이다.
민주화가 되었다면 고통받는 사람의 숫자가, 삶의 주변부로 몰려나는 사람의 숫자가 줄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왜 그 절대적 수치조차도 갈수록 늘어가고 있는지....
곳곳에서 국가와 사회에서 막다른데까지 몰리고 몰려 죽어가는 사람들이 왜 이리도 많은지....
혹시 민주화 된것은 세상이 바뀌었다는 실감을 느끼는 것은 일부 중산층 내지는 중산층 진입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일부에 대한 것은 아니었을까?
부자의 것을 나눠 가난한자의 삶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의 것을 뺏어 어중간한 중산층의 입을 막은 것이 오늘의 한국사회는 아닌지....
그렇다면 민주화를 말하고 진보를 말하는 당신의 입, 나의 입은 위선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그래서, 그러므로 여전히 혁명의 R이다.
그러나 21세기 한국의 혁명은 더이상 87년의 그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이제는 무너진 사회주의체제에서 찾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부커진의 연구자들이 주장하는 혁명은 뭘까?

87년 체제에 대한 대다수의 연구들은.... 87년 체제가 가지는 불안정성을 민주주의의 불안정성에서 찾고 있다.....이들에게 중요한 과제는 미완의 상태로 남아있는 87년 운도의 기획을 완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제의 완수를 위해 시민사회에서의 민주주의를 심화하고 시민사회의 민주적 요구를 반영하는 권력구조의 합리화를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에 의하면 이질적인 성분으로 구성된 대중은 시민이라는 하나의 고정된 주체성으로 환원되어 그 이질성과 다양성을 상실하게 된다. 더불어 시민이라는 주체성 외부에 있는 자들, 즉 이주노동자들, 장애인, 성매매여성 등과 같은 비-시민들은 한국사회의 질서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배제될 수 밖에 없다. (182-183쪽)

부커진의 필자들의 입장은 대체로 위에서 말하는 저 시민이라는 하나의 고정된 주체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이질성과 다양성의 존재들 자체에 주목한다. "
그들은 권력에서 이 사회에서 배제되어있다는 의미에서 소수자다.
그러한 소수자의 정치가 저항이 오늘날의 한국사회를 어떻게 관통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투쟁과 저항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대답하는 것이 이 책의 일관된 내용이라 하겠다.

오늘날 기존의 민주화 운동이라 불리던 것들은 -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운동조차도 - 거의가 체제내의 운동으로,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정권의 토대를 한치도 건드릴 수 없는 그런 운동일뿐이다.
그러면 거칠것없어 보이는 자본주의 세상에  흠집을 내고 홈을 파고 돌발을 일으키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올해도 농사짓자고 얘기하는 대추리의 농군이며, 새만금 갯벌에서 삶의 터전을 지키는 어민이며, 대한민국법으로 포섭되지 않으며 끊임없이 이동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지키는 이주노동자의 삶과 투쟁이며, 이동권과 활동보조인의 법제화를 위해 싸우는 중증장애인들의 싸움, 그리고 KTX여직원들의 투쟁같은 비정규직철폐를 위한 노동자들의 싸움이 그것이다.
이러한 대중들의 끊임없는 탈주, - 국가가 정해준 틀, 법이라는 틀, 아니 아예 국가라는 틀 자체를 탈주하는 이들 소수자의 싸움과 연대야말로 21세기 혁명의 새로운 내용이다.

자 여기까지 일단 동의하자.
사실 동의 안할려고 해도 별로 그럴 부분이 없다. 적어도 내 능력으로는 말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오늘날 한국사회를 가로지르는 수많은 탈주들은 권력에 의해서 고정된 것들을 벗어나는 움직임들이다. 심지어 국가라는 고정불변인듯 보이는 괴물조차도....

그런데 여기서 근원적인 질문을 참을수가 없다.
과연 이러한 탈주들 만으로 사회의 변화가 가능할 것인가?
대추리의 농민과 이주노동자와 새만금의 어민이, 중증장애인이 연대의 손을 뻗고 어깨를 거는 날은 과연 올것인가?
그들이 분명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이 사회의 다른 면을 부각시키고 문제시하고 싸우는 것은 분명하지만 조직화되지 못한 이러한 탈주들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은 언제가 될것인가?
그리고 갈수록 지능적이고 고도화되어가는 자본의 횡포를 과연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부커진의 필자들은 의외로 낙관적인 듯하다.

하지만 우리는 좌절보다 몇 백 배 더 큰 희망을 보았다. 권력과 자본은 대중들을 추방하고 주변화하지만, 대중들은 그만큼 더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탈주하고 소수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권력과 자본은 추방을 명령했지만, 대중들은 그 명령을 거부하고 다른 삶을 실험하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보았기에 거기에 몇퍼센트의 가능성이 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웃음으로 답한다. 투쟁은 길을 묻지 가능성을 묻지 않는다.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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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10-08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투쟁은 길이라는 존재성 자체만 묻지는 않지요.길이면 일단 연대라는 이름으로 가능하겠지만 길의 방향에 대해서는 늘 끊없는 논쟁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대중은 시민과 소비자로 포섭되었는데...자칫 위험한게 ..소수자의 정치성이라는 것이 결국 탈시민화된 사람들을 시민화하자는 선에 머무는 것인지 아니면 그 너머를 지향하는 것인지 가끔 의문이생깁니다. 그런데 일단 전자라면 결국 기존 질서에 대한 미편입을 편입시키는 자유주의적 움직임에 준하지 않으며, 또한 그 너머를 지향한다면 역사적으로 이루어져온 세계와 인간이라는 존재와 한계성이라는 틀에 대해 너무 이론적 낙관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볼수 있지 않을까요.
소수자운동에 적극 동의합니다만 ...(소수자의 정치가 탈근대사회에서 전위가 되리라는 가능성에 대한 전망때문이겠지요..실제 그런 면도 많고..)..실제 부커진이나 수유팀들의 경우는 존재적 쪽팔림을 만회하기 위한 실천이라는 생각도 가끔 듭니다.그 이론적 경향에 대한 그동안의 평가때문에 생긴 선입견일겝니다.

바람돌이 2007-10-08 22:18   좋아요 0 | URL
위에 인용되었던 투쟁의 길이란 방향성 없는 투쟁을 얘기하는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가능성이라는 이름아래 이런 저런 회피의 이유를 대고 숨는 행위에 대한 비판이고 또한 투쟁의 당위성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생각하고요. 당연히 저들이 주장하는 것은 소수자들을 시민에 편입시키고자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 너머를 지향하는 것은 분명한데 그 분명한 것의 상에 대해서는 그들 역시 아직은 구체화된 답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아니면 이 세계라는 것 자체를 끊임없는 투쟁의 연속으로 보며 이전의 사회주의가 제시햇던 하나의 이상향 내지는 목표지점에 대해서는 상정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저 소수자의 투쟁을 제대로 자리매김하고 그들(아니 우리들 전체라고 해야 되겠죠)사이의 연대가 이루어질때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겠는가? (즉 시민사회론이나 시민계급의 투쟁은 이제 더 이상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력이 되기 힘들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론적 낙관이라는 부분에서는 저도 일정정도 동의하고 의심을 품고 있습니다만 제 공부가 워낙에 얕다보니 혐의일뿐 뭐라고 반박하기는 힘들군요. 아 어려워요. 이들의 논의의 근거가 되는 철학자들이 푸코나 들뢰즈같은 이들이라고 생각되는데 개설서 수준을 벗어나서 그들을 읽어내기에는 옛날에 받은 상처가 워낙 커서 다시 잡아지지 않을 것 같군요.(읽다가 벽에다 집어던진 책들이여... ㅎㅎ)

마지막으로 수유팀에 대해서 하신 말씀에 대해서는 일단은 갈갈갈 웃었습니다. 하지만 뭐 웃었다고 해서 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는건 아니고요. 글쎄 지금 시기에서 실천이란걸 어떻게 정의할까라는건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결국 그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세상을 바꾸는데 한 역할을 하고자 하는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진중권씨처럼 현재의 모든 논점에 개입하고 논쟁하고 하는 모습으로 나타날수도 있지만 그들의 경우처럼 철학적 바탕을 모색하고 미래에 대한 학문적 성찰을 이루어내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결국 어떤 기여를 하게될지는 더 두고봐야할 문제지 지금의 단계에서 이론적 편향이다라는 말은 좀 과한게 아닌가 싶군요.

2007-10-08 1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7-10-08 22:23   좋아요 0 | URL
뭘 심신이 폐허가 될때까지 싸우냐? 말 뽄대없게 하는거야 하루이틀 일도 아니고.... 나는 니 말에 틀린게 없다고 생각하는데 선배의 시비가 조금 도를 넘어섰던거지... ㅎㅎ
너무 상심하지 말고 그냥 털어버려라... 이놈의 영감탱이 다음주에 만나면 좀 따져주지 뭐... 이 책은 글쎄 너야 워낙에 꼼꼼하게 읽어내는 스타일이니 나보다는 어렵게 넘어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나는 사실 내가 모르는 부분 나오면 기냥 넘어가버리거든....ㅎㅎ) 그렇게 어려운 책은 아니니 고민말고 읽으셔. 옛날부터 이쪽 인간들 글이 왜 논리정연한 일관성 하나는 끝내줬잖냐? 나도 오랫만에 글 보면서 참 글 쓰는 스타일은 안 변한다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던데....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