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설에 빠지다 - 금오신화에서 호질까지 맛있게 읽기
조혜란 지음 / 마음산책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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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란 늘 그 시대 사람들의 욕망을 반영한다. 적어도 내가 아는 소설은 그렇다.
그럼 조선시대 사람들의 욕망은 무엇이었을까?
양반사대부들의 지고의 가치였던 성리학을 비롯한 유학서적들을 보면 알 수 있을까?
아니 그건 때로 입신양명의 도구이며 한껏 치장된 이미지들이다. 날 것 그대로의 욕망을 보여줄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고상한 학문도 그림도 아니다. 때로 풍속화나 민화들, 속화들에게서 그런 욕망들이 보이긴 한다. 그러나 그것의 양을 따지자면 허기를 면하기 어려울정도의 양이다.
그러면 남는건? 아 소설이 있었구나...
솔직히 말해서 난 정말이지 조선시대에 창작되고 읽혀진 소설이 이렇게 많다는걸 정말 몰랐다.
내가 아는 조선시대 소설의 양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있을, 즉 고등학교까지의 학교교육에서 입시를 위해 제목을 외웠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 제목을 외워야 했던 고등학교때의 고문 시간은 얼마나 괴로웠던가? 늘 임금에 대한 사모의 정을 노래하고 전원생활과 안빈낙도를 부르짖던 문학작품들은 어린 마음에도 비정상으로 보였으니 어찌 안괴로웠겠는가 말이다.

여기 정말로 조선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날것 그대로의 욕망이 있다. 바로 소설들이다.
조혜란씨의 한바탕 수다에 의해 새로운 생명을 얻은 소설속의 욕망들이 꿈틀거린다. 

소설 속에 사랑이야기가 빠질수가 없다. 당연히 첫 장은 사랑이야기로 시작한다.
금오신화 속 한편인 <이생규장전>, 작자미상의 <소설-눈을쓸다>와 <윤지경전>
이거 분명히 조선시대 소설인데 말이다. 등장인물들의 하는 양은 전혀 조선스럽지 않다. 아니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조선에 대한 관념과 맞지 않는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이생과 최소저의 사랑에서는 최소저가 훨씬 적극적이다. 담너머 오가며 눈길이 간 이생에게 먼저 유혹을 하는 것도 그리고 이생을 침실로 끌어가고 결국 결혼으로 이어가는 것도 모두 최소저가 주도한다. 또 그 첫 유혹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길가에 있는 이, 누구네 낭군인가요
푸른소매 큰 띠가 수양버들 사이로 아른아른.
어찌해야 뜰안의 저 제비처럼
구슬발을 헤치고 사뿐히 담장을 넘어갈까?
이토록 풍취있는 유혹에 누군들 안 넘어갈까?
<소설>속 사랑은 또 어떠한가? 어린시절부터 함께 자란 관찰사댁 도련님과 관기의 사랑.
당연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어야 마땅할터인데 관찰사어르신은 아들의 사랑을 지켜주고 싶어한다. 정실부인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런 아버지의 배려를 한마디로 딱 자르며 거절하는 도련님! "아버님! 제가 그까짓 기생 하나 때문에 상사병이라도 나겠습니까? 어차피 한양으로 데리고 가도 그 아이는 헌신짝이 될 겁니다. 염려마십시오."라니.... 그러나 도련님의 이 호기는 결국 이별이란 것을 해본 적이 없기에 그것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정말로 철없는 어린아이의 오산이었으니.... 결국 두고온 연인에 대한 그리움으로 한 겨울 무작정 길을 떠나는 도련님. 그런 도련님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기생. 조선의 사람들도 그래 젊은 날의 격정적 사랑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있었구나....
그에 비해 윤지경전은 기묘사화를 배경으로 하면서 당대 사대부들의 정치적 상황이 가미되는 바람에 그리고 후반부의 사랑에 정치적 욕구가 끼어들면서 사랑얘기로는 격이 떨어져버렸다. 그 반면 이 때 사림 양반들의 은밀한 욕망, 왕권에 도전하는 신권, 왕명에도 굽히지 않는 신념, 어쩌면 그들이 실제로 이룰 수는 없었던 욕망이 왕의 딸 옹주를 거부하는 주인공 윤지경과 겹친다고나 할까? 

2부는 전쟁과 그 참상에 대한 소설들이다.
<김영철전> <강도몽유록> <<박씨전>
<김영철전>은 평안도에 살았던 김영철이라는 사람(신분은 안 나와있으나 대략 중인 내지는 평민으로 보인다)이 병자호란이 일어나면서 파란만장한 생을 보내게 되는 일대기형태이다.
이 소설에서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흔히 조선하면 떠오르는 병자호란에 대한 비분강개, 애국충정 이런것들로부터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소설의 내용은 어쩌면 조선이라는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이 시대에 와도 여전히 어울릴듯한 느낌이다. 전쟁이 한 인간과 가족의 삶을 어떻게 파괴했는지, 고향으로 돌아오기 위해 그리 모진 고통을 감내했으나 돌아온 고향에서 포상을 받기는 커녕 그동안의 일로 인해 빚더미에 올라안고 결국 자식들에게 절대로 군역을 지게 하지 않기위해 성을 쌓다 늙어죽는 삶이라니... 전쟁으로 인한 인간삶의 파괴를 이렇게 적나라하게 표현한 소설이 정녕 조선시대에도 있었구나....
그에 비하면 <강도몽유록>은 병자호란을 피해 강화도로 들어갔던 고관대작 집안의 여인들이 주인공이다. 그들은 모두 자의든 타의든 죽음을 맞았고 그 죽음의 한스러움과 왕과 고관대작 남자들의 행태를 고발하는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 상당히 강도높은 정부비판서인 셈이다. 그것도 여자들의 입을 빌린 형태로.... 하지만 여자들의 이야기에서 자기 속에 내면화된 열녀의 이미지를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면은 이 책에 실린 소설 중 가장 호감도를 떨어지게 하는 면이 돼버리는구나... 
<박씨전>은 이 중 많이 알려진 소설이지만 박씨 부인의 처소 <피화당>을 당대 병자호란이란 전쟁에서의 패배에 대한 소설적 보상으로 읽어내는 저자 조혜란씨의 해석이 더 의미심장하였다. 

3부는 양반남성들의 판타지를 다루고있다. 뭐 솔직히 가장 관심 안가는 분야다. ^^;;
<옥루몽><오유란전><적성의전><금방울전>
<옥루몽>은 인간으로 탄생한 하늘의 선남선녀들의 이야기를 살짝 빌어 지상에서 그들이 다시 만나고 한 남자에게 지고지순한 사랑을 바치는 다섯 선녀출신 여성들의 사랑얘기. 뭐 이정도면 은밀한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노골적인 남성적 판타지다. 이 부분에서 애초에 나는 옥루몽을 읽고싶다는 생각을 한적이 없었다. 그런데 조혜란씨의 글을 읽다보면 완역판이 5권이나 되는 대하소설을 이런 간단한 줄거리만으로 재단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근대이후의 일하는 인간이 아니라 근대 이전의 놀이하는 인간에 대한 긍정적 묘사와 재조명까지 읽어낼 수 있다는 걸 보면 읽고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한단 말이지....
형제간의 그 오래된 갈등과 싸움을 다룬 <적성의전>은 평범할 듯하고, 진짜 금방울이 주인공인 <금방울전>은 동화책을 보는 느낌일듯...
3부에서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오유란전>
두 사대부 청년의 우정과 성장담을 다루고 있는 표면적인 이야기보다는 그 성장을 이끄는 오유란이라는 캐릭터가 훨씬 흥미롭다. 그녀가 이생이라는 새장속 사대부청년을 인간의 세계로 이끄는 방법이 파격적이다. 그런 그녀가 느닷없이 소설속에서 사라져버린다. 남자들 속에 철저하게 묻혀버리는 조선시대 여성들의 비존재감이랄까?
이 소설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학년말에 계획하고 있는 조선시대 여성사 수업에 오유란전 다시쓰기 내지는 소설 이어가기를 해보면 재밌을듯 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또는 재창조되는 여성 오유란? 일단 오유란전 원본을 읽고나서 계획을 잡아봐야 될듯... 

 마지막 장은 워낙에 명문인 허균과 박지원을 빼놓을 수 없어 그들의 작품에 대한 얘기를 풀어놓고 있다. 허균의 <남궁선생전>과 박지원의 <호질> <열녀함양박씨전>
하지만 작가의 관심도 딱히 이곳에 있는 것 같지 않고 꽤 알려져 있는 내용들이라 딱히 마음에 와닿지는 않는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와 함께 옛 소설 속에 빠져 살았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 옛 소설의 풍부함이 지나치게 알려져 있지 않은 안타까움이 저자에게 이런 수다판을 열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을 것이다. 그래 뭔가를 꼬실려면 이정도는 돼야지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유혹이란 것도 이 정도 되면 고수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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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라고 하니 먼저 읽기 어렵지 않을까 걱정부터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드는데 전혀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고등학생만 돼도 충분히 재밌게 읽을 수 있을 듯....그저 쉽게 옛 소설에 대한 수다를 즐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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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헨 2009-04-15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석류인가요 아니면 그냥 소설모음에 뒤에 설명이 있는???
님의 리뷰를 보니...이 책 땡기는걸요~~~

바람돌이 2009-04-15 08:58   좋아요 0 | URL
아뇨 그야말로 옛 소설에 대한 수다입니다. 소설의 내용을 요약 소개하고 각 편에 원문 약간을 소개, 그리고 그에 대한 조혜란씨의 이해를 돕기위한 글이나 감상문 약간이 붙어있는 형태예요. 고등학생부터라면 누구나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글인것 같아요.

2009-04-15 1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16 1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국경을넘어 2009-04-15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요거 학생들하고 함께 읽어봐야겠군요. 구미가 당기는... ㅋㅎㅎㅎ

바람돌이 2009-04-16 10:31   좋아요 0 | URL
고등학생들이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니 그것도 좋을 것 같네요. ^^

2009-04-26 0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26 0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9-04-26 01:04   좋아요 0 | URL
아~ 예~ 감사
제가 중학교 어머니독서회 선정도서 우선 올려볼게요.
제가 추천한 책과 선생님이 골랐는데 더 많은 책을 사준다는 교장샘 약속 믿고 좋은 책 욕심내는 중이거든요.^^
 
똥떡 국시꼬랭이 동네 1
박지훈 그림, 이춘희 글, 임재해 감수 / 사파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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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 얘기 싫어하는 애들 있음 나와봐!!
처음엔 똥떡이란 제목을 보자마자 애들은 윽~~ 똥으로 떡을 만들어? 어~~ 더러워~~ 하면서도 눈은 반짝 반짝 빛난다. ^^
몇 번이나 읽었지만 읽을때마다 재밌나보다.  


옛날 퍼세식 화장실에 앉아 엉덩이에 힘을 주는 저 모습 얼마나 리얼한지...
같이 보면서 키득 키득 웃다가 문득 준호의 손에 쥐어진 저 신문지 같은 종이를 보고 문득 추억에 잠기는 엄마.
"얘들아 엄마 어렸을땐 화장지가 없었거든. 그래서 저기 저 준호처럼 신문지 같은걸 가져다가 막 비벼서 보들 보들 만들어서 닦았어. 근데 그러면 신문지의 글자들이 묻어서 손도 새까매지고 똥꼬도 새까매졌다."  우리 아이들 눈이 반짝 반짝.. 진짜야? 엄마를 연발한다.
아 난 다시는 신문지로 뒤닦고 싶은 맘이 없건만 아이들에겐 그저 신기한 얘기인듯... 

이어 준호가 똥간에 빠지는 장면에서는 근데 옛날에 너네 이모도 똥간에 빠진적 있었다 하니 난리도 아니다. 뭐 이모는 다리만 빠졌지만.... 하여튼 그거 씻는다고 무지 힘들었어...
아마 내일이면 아이들이 이모를 놀리지 않을까?  

근데 우리 애들이 열광하는 그림들은 항상 구석구석에 있다.  


똥간에 빠진 준호 옆면에 있는 똥파리!
엄마 엄마 똥파리가 똥먹어. 으~~ 더러워... 말은 그러면서 좋아 죽는다. 똥먹는 흉내까지 내며.. 


준호가 목욕하는 장면에서는 옆면 강아지에 주목!
엄마 강아지가 냄새난다고 이러고 있어 하며 흉내내기... 


당연히 뒷간 귀신 흉내내기!! 

하여튼 이 녀석들은 책을 보면 엄마가 보라는건 안보고 늘 딴짓이다.
그래도 엄마는 어릴때의 추억에 잠시 잠기고 아이들은 엄마의 어린시절을 듣고,
재미있는 장면을 맘껏 흉내내고 아이와 같이 즐거운 시간이 된다.
책 읽는 시간이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면 책의 내용이 무엇인들 뭐 그리 중요할까? 

똥떡을 왜 만들었는지 굳이 묻지 않아도 아이들은 이미 마음으로 이해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속에서 똥간에 빠져 서러울 아이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싶은 어른들의 마음을 아이들도 마음으로 받지 않았을까? 

마지막 빙그레 웃고 있는 저 뒷간 귀신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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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4-07 0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이 책 애들이 좋아 죽지요~~ㅋㅋㅋ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푸세식 화장실 써 본 아이들은 제대로 알지요.^^
그림책 보는 묘미, 예린이랑 해아는 제대로 아는군요~~ㅋㅋㅋ

바람돌이 2009-04-07 08:53   좋아요 0 | URL
우리 애들은 푸세식 화장실에서는 아예 변을 못보더라구요. 너무 긴장해서 나오던 것도 들어가는걸까요? ^^

무해한모리군 2009-04-07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애들은 왜 똥을 좋아할까요?
자기 몸에서 나오는 노란게 신기한걸까요 ㅎㅎ
오호 이 그림책 끝내주네요.. 돌쟁이 선물로는 어떨까요?

바람돌이 2009-04-07 08:54   좋아요 0 | URL
돌쟁이 선물로는 좀 힘들듯.... 돌쟁이는 그저 달님안녕이나 손이나왔네 곰사냥을 떠나자같은 책이 좋았던듯.... 그맘때 애들은 말 자체가 리듬감이 있는게 읽어주기에도 좋고 들으면서도 좋아하는 것 같더라구요.
근데 애들은 똥을 좋아한다기보다 똥얘기를 좋아합니다. 그건 거의 중학생정도까지라고 할까? ^^
 
안녕하세요, 세잔씨
류승희 지음 / 아트북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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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화가의 사과는 먹고 싶지만 세잔의 사과는 껍질을 벗기고 싶지 않다. 잘 그리기만 한 사과는 군침을 돌게 하지만 세잔의 사과는 마음에 말을 건넨다 - 모리스 드니 

세잔의 그림이라고 화보에 나오는 것들은 대부분 사과등을 그린 정물이거나 아니면 세잔덕분에 너무나 유명해진 생트빅투아르산을 그린 풍경화다.
이 그림들에게서 난 무엇을 느껴야 하는거지?
왜 세잔을 위대한 화가라고 부르는 거지?
별반 잘 그린것도 없는 것 같은 평범해보이는 정물화들, 그리고 괜찮아보이지만 뭐 그렇다고 엄청 특별할 건 없어보이는 산을 그린 풍경화?
세잔의 그림에서 내가 받는 느낌은 딱 요정도라고나 할까? 
이제 나만의 느낌은 아닌 것 같은 것이 비슷한 시대의 다른 화가들 - 고흐나 고갱에 비하면 인기도 면에서 많이 처지는게 사실이니 다른 사람도 비슷하다는 얘기겠지... 

그런데 말이다. 미술사 관련 책을 보다 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어디에서고 세잔은 가장 위대한 화가, 아니 화가들의 스승같은 화가들의 화가가 되어있다.
20세기 최고의 화가들인 피카소, 마티스같은 이들이 보내는 찬사는 더 이상의 찬사가 부족할듯..
그저 입으로 찬사를 보내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들은 그들의 작품으로 경의를 표하기까지 한다.
세잔의 목욕하는 여인들 그림을 보다보면 저절로 마티스의 <춤>이나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을 떠올리게 된다.  또한 세잔의 <마르디그라>는 피에로를 그린 피카소의 일련의 작품들을 떠올리게 만들고, 생트 빅트와르산 연작의 마지막쯤에 오면 칸딘스키가 떠오른다.

여기쯤 와서야 왜 그토록 많은 화가들이 세잔에 대한 경의를 표했는지 살짝 이해될듯도 하다.
기존의 회화의 모든 관습을 뛰어넘어 새로운 회화의 세계를 열어준 이. 
사물의 본질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원근법도 전통적인 소묘법도 무시할 수 있다는 아니 오히려 그럼으로써 더 사물의 본질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준 이
그가 바로 세잔 아닌가? 

책은 그런 세잔이 갔던 곳을 정말 참 열심히도 찾아다닌다.
그리고 세잔이 이젤을 놓아던곳에 이젤 대신 카메라를 놓고 그림속 풍경을 찾아낸다.
그런 풍경과 그림이 나란히 놓이면 아 여기가 이렇게 표현되었구나 경탄하게 된다.
사실적인 풍경이 아님에도 단순화된 몇개의 선과 그보다 훨씬 풍부한 색채로 똑같은 풍경을 그림속에 재현해낸 것에 놀라움을 느끼게 된다.
작가가 의도한 것보다 세잔의 생애 전반을 짓누른 고독은 그렇게 많이 와닿지는 않는다. 세잔 그보다 더 고독했던 화가도 얼마나 많은가말이다.
다만 세잔의 이젤과 저자의 카메라가 같은 위치에 놓인순간 세잔의 그림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걸 느끼는 즐거움이 더 컸다고 할까? 

아직까지는 세잔의 그림을 실제로 본적이 없으니 내가 세잔의 그림을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이를듯... 하지만 세잔이라는 화가의 그림을 그저 별것없는 풍경화나 정물화로 생각하지는 않으리라..


고대 로마의 길들은 늘 아름다운 흔적으로 남아 있다. 그 길들은 풍경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들이다. 그림은 바로 이와 같이 길 위에 서서 바라보는 풍경으로부터 출발한다. - 세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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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ㄱㄴㄷ - 글자그림책 ㄱA1 그림책은 내 친구 13
이지원 기획,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그림 / 논장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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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글자를 인식하는 방법이 참 다르다.
큰 아이는 글자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바로 글자를 분해했었다.
그리고는 그럼 ㄱ 하고 ㅏ가 만나면 '가'니까, ㄴ 하고 ㅏ가 만나면 '나'가 되는거야? 하는 식.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이런 식으로 자음과 모음을 분해하고 결합하는 식으로 글자를 익혔었던 것.
이런 방법때문인지 글자를 배우는게 정말 빨랐었다. 

그런데 둘째는 이게 안된다.
지금은 더듬더듬 글자를 읽는데 아직도 모르는 글자가 많다.
글자를 익히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 즉 둘째는 글자를 통으로 익히는 것이다.
오히려 둘째의 경우 글자를 익히는게 늦은 편이어서 중간 중간 의식적으로 ㄱ, ㄴ, ㄷ을 가르치고 글자공부를 집에서 이것저것 시켰었다.
그런데도 자음과 모음의 결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그러다보니 글자를 배우는게 더디고 느릴수밖에 없다.
하나 하나의 글자를 다 외워야 하니 얼마나 힘들까?
거기다 아직 ㄱ, ㄴ, ㄷ을 다 알지도 못한다. 그냥 통글자를 알 뿐... 

솔직히 글자를 익히고 아이가 그를 기반으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나가는데 어느 방식이 좋은지는 모르겠다.
그게 가르친다고 다 돼는 것도 아닌것 같고...
아이 각각이 어떤 지식을 받아들이는 방식 자체가 다른 것 같은데 그걸 어느쪽이 좋다고 부모가 억지로 떠다밀어서는 안될 것 같아서 그냥 아이들이 이해하는 방식대로 가르쳤다.
다만 통으로 글자를 배우고 익히는 둘째는 너무 한글익히는게 더디고 힘들어하는 것 같아 좀 안스러울뿐이고...
거기다 아직 한글 자음 모음을 다 못외우니 뭔가를 설명할때 불편하기도 하고.... 

그래서 왠만한 글자는 읽어내는 둘째에게 한글 자음모음을 재밌게 가르쳐줄 책이 없을까 고민하다 발견한 책이 바로 요 책이다.
미리보기에도 나오지만 그림들이 정말 재밌다.
그래도 어른의 눈에는 재밌구나 정도인데 아이는 정말 환상적으로 좋아한다.
별 내용도 없고 그냥 자음들에 따라 여러가지 그림, 여러가지 포즈들이 있을뿐인데도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오히려 사준 내가 어안이 벙벙하다.
책을 보면서 하나 하나 짚어가며 웃어대고 나중에는 책에 나오는대로 흉내란 흉내는 다 내며 "엄마 나도 만들 수 있어"를 연발한다.  
책 사준 보람이 한껏 느껴질때가 바로 요런 순간! 

한글 자음을 신나고 즐겁게 배울 수 있는 책
그러면서 그림의 상상력이 정말 기발하여 어른도 보면서 같이 즐거울 수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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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04-01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 조카 글자 배울 때도 통으로 외우던걸요. 간판을 보면 그 글자를 어떻게 읽냐고 물어보고 통으로 외운 다음, 같은 글자가 나오면 그걸 기억해 내더라구요. 우리가 초등학교 입학하면 ㄱㄴㄷ배우던 그것과 너무 달라서 신기했어요. 해아랑 비슷해요.^^

바람돌이 2009-04-02 23:11   좋아요 0 | URL
글자를 익히는 방법도 타고나는 아이들 특징에 따라 다른 거 같아요. 그게 부모가 어쩔 수 있는게 아니라 타고 나는 것같아서요. 다만 통으로 외우는거 보면 너무 힘들어 보여요. ㅠ.ㅠ

하늘바람 2009-03-31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통으로 태은이도 ㄱ~ㅎ 그리고 가~하까지 익혔어요 아마도 그림처럼 인식하는 듯해요. 저도 ㄱ에 ㅏ를 더해 가 이렇게 알려주고 싶은데 그건 이해력이 더 늘어나는 시기나 가능할 것같더라고요. 음 이책 보곤 그냥 지나쳤는데 주의해 봐야겠어요.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르지만 딱 이거다 라기보단 아이가 잘 하면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같아요

바람돌이 2009-04-02 23:12   좋아요 0 | URL
예린이의 경우는 그런식으로 한글을 이해하는게 가르친게 아니라 지가 알아서 그렇게 하더라구요. 따로 한글 공부를 시킨 적도 없구요. 언어쪽이 빠른 아이들이 아마 이렇게 배우는 것 같아요. 이 책은 5살쯤부터 보면 좋을 듯해요. 아이들과 함께 놀면서 볼 수 있는 책이에요.

hnine 2009-03-31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마다 다르더라구요. 저도 제 친구가 정말 아이 글자 가르치는 것 쉽다며 알려준 방법으로 해보았는데 (단어 카드 만들어 열장씩 벽에 걸어 놓고 가끔씩 카드를 바꿔주는 방법) 별 효과 없었고, 오히려 가, 거, 고, 구, 기 이런 식으로 공책에 써주고 따라 쓰게 하는, 아주 구식 방법으로 가르치니 그게 제일 빨랐어요.

바람돌이 2009-04-02 23:13   좋아요 0 | URL
글쎄말예요. 아이들마다 다 공부방법도 좋아하는 공부도 다 다른데 모두 다 잘해야 한다는 이 강박관념을 어쩌면 좋을까요? ㅠ.ㅠ

꿈꾸는섬 2009-03-31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한글을 너무 이른 나이에 가르치는게 문제가 아닌가싶어요. 우리때처럼 천천히 가르치면 아이들 정말 금방 배우거든요. 엄마들이 7살까지 기다려주질 않으니 아이들이 힘들수밖에 없는것 같아요. 한글교육하는분들도 통글자로 가르치더라구요. 거의 그림으로 생각하는거죠. 좀 더 이해력이 생겼을때 시키면 좋은데 다들 왜이리 빨리 못 하면 큰일인듯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바람돌이 2009-04-02 23:14   좋아요 0 | URL
해아는 지금 7살이에요. 예린이 학교 보내보니 한글은 일단 무조건 떼고 들어가야지 그거 안떼고 가면 안되겠다는게 확실하게 느껴지더라구요. 그래서 요즘 열심히 시키고 있습니다. 예린이처럼 알아서 저절로 그냥 해주면 얼마나 편했을까요ㅠ.ㅠ 하여튼 부모의 욕심이란...ㅠ.ㅠ
 
함께 있을 수 있다면 2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세계사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랫만에 말랑말랑한 연애소설이 보고싶어졌다.
가볍고 따뜻한 로맨스영화를 보고싶은 기분과 같다고 할까?
연애소설을 보고싶은 기분이란 머리아프고 뭣하나 제대로 풀리지 않는 그리고  악받치는 일들만 출몰하는 세상에서 뭔가 그래도 따뜻한 온기, 그리고 순리대로 풀려가는 뭔가를 보고싶은 그런 기분이랄까?
딱 그런 기분일때 하이드님 서재에서 안나 가발다를 만났다. 뭔가 지금의 내 기분과 맞을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마침 도서관에 안나 가발다라는 이름도 처음 들은 이 작가의 책이 있었던건 내겐 행운이었던듯...
연애소설의 공식을 차분히 빠뜨리지 않고 밟아가는, 그러면서 주인공의 마음이 되어 같이 연애의 떨림을 공유하는 시간들은 오랫만에 맛보는 기분이다.
책을 읽는 동안일지라도 꽤나 근사한 기분이다.  

어찌보면 모두들 세상의 아웃사이더인 주인공들과 주변인물들이 하나씩 하나씩 벽을 허물면서 서로에게서 안식과 위안을 찾고 기대나가는 과정의 묘사가 섬세하다.
세상은 이렇게 잘 풀릴수는 없어라며 책을 덮지만 그래도 세상에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행복을 찾아가는 것도 사실이잖아라고 나직이 속삭이게 된다. 
한 명도 온전해보이지 않는 상처투성이의 주인공들이 그렇기에 더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안아가는 과정이 허황되지 않아 보이는건 우리 사는 세상이 그러하기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일게다.

세상 사는게 뭐 별거있어?
다 그렇게 서로의 상처를 적당히 숨기다가 또 그걸 알아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그렇게 의지하며 사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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