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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인권기행 - 눈물 젖은 대륙, 왼쪽으로 이동하다
하영식 지음 / 레디앙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한 때 내게 보이는 세상은 참으로 단순했었다.
혁명이냐 반동이냐 그것으로 세상은 나누어졌었고, 그 흑백논리속에서 모든 사람은 내 편 아니면 적이었다. 적은 너무나 분명했고 그 적외에는 모두 현재의 동지 또는 잠재적인 동지, 즉 앞으로 내가 동지로 만들어야 할 사람정도?
근데 이런 이분법으로 세상을 보면 참 편리하다. 그렇게 명쾌할 수 가 없다.
러시아 혁명, 베트남전쟁, 쿠바혁명, 산디니스타혁명 이 모든 것들이 동경과 열망의 대상이었으며 이들에 대한 비판은 아예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아니 비판받아야 마땅한 점이 보여도 그것은 적들의 농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것이 되곤 했다.
이런 이분법속에서는 내 안의 적은 보이지 않는다. 혁명세력의 과오도 보이지 않는다.
인간성과 인간 세계의 그 복잡다단함과 변화의 엄청난 폭은 그 시절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 이건 내 20대 초반의 초상이다.
이런 이분법 덕분에 나는 늘 확신에 차있었고 늘 자신감에 넘쳤으며 그리고 헌신적일 수 있었다.
또한 그만큼 무지했으며 그만큼 독선적이었다.
내게 남미는 체게바라, 카스트로의 땅, 그리고 산디니스타의 땅이며 약간은 아옌데의 땅이기도 했다.
그들이 바로 남미 그 자체였다. 당연하게도 이렇게 구성된 남미는 그저 내 욕망과 희망의 그림이었을뿐.... 현실은 아니었을게다.
혁명 그 자체에 열광하던 20대를 지나고 이제 와서는 어쩌면 더 어렵고도 중요한 것은 혁명 그 자체보다다 그 이후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혁명의 성공은 그저 생각일뿐 폭발의 순간을 지난다고 모든 것이 저절로 해결되는 법은 절대로 없다.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참을성과 더 많은 결단과 더 많은 위험들 위협들을 건너야한다. 그리고 더 많은 새로운 탐욕들과 싸워야 하고......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정권의 부패는 그래서 더더욱 충격적이며 혁명이후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절감하게 한다.
체 게바라가 마지막을 맞이했던 볼리비아에 최근 좌파정권인 모랄레스 정권이 들어섰다.
그 자신 가난한 농민출신이면서 그 가난한 농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은 대통령이 들어섰다. 그야말로 공산주의 서적에서 말하던 프롤레타리아 그 자체이다.
그렇다면 이제 볼리비아는 바로 토지개혁이 이루어질것이며 농민들이 가난에서 점차 벗어나고 점진적인 평등이라도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인가?
아 여기서 바로 대답이 네라고 나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대답은 글쎄요. 아마도 쉽지 않을걸요이다. 미국의 간섭만이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내부에 있다.
주요 지지층인 농민들을 위해서는 곧바로 토지개혁에 착수해야 하고 농업생산력발달 비용과 의료비등 각종 정책 수행을 위해서는 곧바로 기간산업의 국유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전체 9개 주의 7개주가 급진적 개혁에 반대해 자치를 선언하고 떨어져나가는 상황에서 개혁이 과연 가능할까?
지주들, 외국인 투자자나 이민자들 그리고 그들의 뜻에 동조하는 중산층과 노동자들....
세상이 계급과 그 지향이 딱 맞아떨어진다면 세상의 혁명이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으리라.....
물론 내부의 계급이나 계급의식 그리고 물질적 욕망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너무나 당연히도 주변의 외세의 영향또한 무시할 수 없다. 아니 그 주변이 미국이라고 하면 무시못할 정도가 아니라 절대적이라 할 것이다.
태평양을 온전히 건너야 하는 이놈의 한반도에서도 미국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자기 앞마당이라고 생각되는 중남미에서는 오죽할까?
마음에 안들면? 폭력, 살인은 당연한 수순이고 아르헨티나에 이르면 어린이유기까지 저지른다.
아르헨티나의 군부는 수많은 시민을 수용소로 끌고가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런데 어디에서도 행해지지 않은 아르헨티나 군부의 독창성은 임산부를 대하는 그들의 방법에서 이루어졌다. 임산부가 아이를 낳고 나면 임산부는 사라지고 아이는 군부 내의 여러 주요 인사들의 호적으로 입적된 것.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이런 발상이 가능할까?
그렇게 군부에 입양된 아니 강탈되어진 아이들은 어떻게 자랐을까?
자신의 부모를 죽인 사람이 양부모라는 것을 알게된 이들은 그 고통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 아르헨티나의 고통은 그래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마요 광장에서 여전히 실종자를 찾기 위한 그리고 학살자 처벌을 위한 시위를 계속하고 있는 할머니들. 그들에게 아르헨티나의 고통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당시 학살을 저질렀던 군부의 인사들은 반드시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고서 학살을 저지른 뒤 이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국가 전체가 아무런 도덕성이 없음을 말해 준다. 젊은 세대들에게 가장 중요한 산교육이라면 정의가 살아 있다는 점을 사회가 보여 주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미겔 드 쿠카 교수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대로 우리 나라와 겹쳐진다. 친일파도 1980년 광주의 학살자도 심판대에 올리지 못한 이 나라에서 젊은이들에게 무슨 면목으로 정의를 가르칠까?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참는다는 오늘 날 20대를 말하는 말에 오히려 윗세대가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런 일들을 보다보면 일종의 데자뷔를 경험하게 된다. 피노체트의 죽음을 슬퍼하는 칠레의 모습은 박정희를 그리워하는 우리의 모습과 겹친다. 피노체트덕분에 경제발전이 이루어졌다고 하는 말까지 어쩜 그리 똑같은지....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지도부가 혁명의 성공 이후 부패의 길을 걷는 것 역시 낯익은 모습이다.
문제는 이런 데자뷔가 현재진행형이라는 것.
남미든 아시아든 그리고 여기 대한민국이든..... 더 이상 세계도 인간이란 존재도 단순해보이지 않는 나이. 흑백 사이에 놓은 수많은 컬러들, 그럼에도 늘 진실은 있다는 것
무엇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게 할 것인가?
남미에서 아시아에서 그리고 대한민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