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 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아간 49인의 초상
서경식 지음, 이목 옮김 / 돌베개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20세기는 근대화=문명이라는 등식이 마치 상식인듯 만들어져가던 시대다.
하지만 그 이면이 얼마나 추악한 야만으로 얼룩져 있는지를 여기 이 사람들이 증언한다.

안네 프랑크나 체 게바라 안중근 같은 이처럼 모두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이도 있고,
갓산 카나파니(팔레스타인의 작가, 언론인)나 잭 시라이(스페인 내전에 의용군으로 참가한 일본인)라는 이처럼 이곳에서 처음 만난 이도 있다.
기존에 알던 사람이든 모르던 이든 이들의 삶이 증언하는것은 한가지다.
20세기가 인간을 얘기하고 정의를 얘기하는 이를 어떻게 억압하고 죽였나를 그들의 삶과 죽음이 웅변하고 있다는 것.

서경식씨에게 책을 쓴다는 것은 기억한다와 동의어인 것 같다.
그의 소년시대를 통해 재일조선인의 삶을 기억하고자 한 것도 그렇고,
쁘리모 레비를 통해 홀로코스트의 야만을 그리고 그 반동으로서의 이스라엘의 야만을 기억하고자 하는 것도 그렇고....
삶 전체가 경계인일수 밖에 없었던 그의 존재가 어쩌면 예정한 삶이었는지도....

그가 이 책에서 선택한 인물들 중 어떤 이 - 체 게바라나 아옌데같은 - 는 20세기의 인물로 누구나가 꼽을 인물이겠지만 그 외에도 의외이다 싶은 인물들도 많이 눈에 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일본의 패전후 조선인이면서도 전범으로 사형당해야 했던 조문상 같은 인물.
죽으면서 "천황폐화 만세"와 "조선독립만세"를 같이 외치는 모순을 함께 간직할 수 밖에 없었던 인물이다. 어디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부여받지 못한 경계인의 삶의 한 단면.
최근에야 그 삶이 조명되고 있는 가네고 후미코 역시 그런 경계에 선 인물이다.
일본인이지만 가난하고 불행했던 어린시절엔 조선에 와서 자신의 동족이 조선인들을 어떻게 학대하는지를 보고 자랐고, 일본으로 돌아간 후에는 조선인 청년 박열을 사랑했고 그와 사상적 동지가 되었다가 체포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그녀.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천황의 특사로 무기징역으로 감형받자 그 명령서를 찢으며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선택해버린 그녀의 정체성은 일본인이라 할 수 있을까?

20세기는 민족과 국가의 경계선의 시대였다.
여기가 아니면 저기 이렇게....
하지만 어디에서 경계선에 선 사람들은 넘쳐났고 그들은 그 때문에 고통받았다.
때로는 저항하는 이도 있었고 더 많게는 억압만 받다가 죽어갔다.
경계선은 그 자체가 이미 억압과 고통의 선이었던 것.
그러면 21세기는? 여전히 20세기의 경계들은 더더욱 굳건해지고 있다.
여기 실린 49인의 증언자들에게 우리는 뭐라고 얘기해야 할까?
야만의 시대를 끝내는 게 여전히 멀어보인다고?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글샘 2007-10-08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이 살았던 모든 시대는 야만의 시대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뭘 읽어도 야만의 냄새는 가득하니까요...
서경식 선생 글을 읽노라면 알싸하게 슬픈 호르몬을 유발시키는 메시지가 톡톡 씹히는 것 같지요. 저도 이 책 신청해 두고 있습니다.

바람돌이 2007-10-08 11:35   좋아요 0 | URL
모든 시대에 인간의 야만은 있었지만 20세기가 특별한건 아마도 그 야만의 희생양의 숫자가 어떤 시대와도 비교되지 않는다는 데 있지 않을까요? 서경식씨가 마지막에 여기에 이렇게 이름조차 올리지 못하는 수많은 난민들과 희생자들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코끝이 찡했습니다.
 
천사 같은 우리 애들 왜 이렇게 싸울까? - 부모들이 잘 모르는 자녀들이 싸우는 이유와 대처법
일레인 마즐리시.아델 페이버 지음, 서진영 옮김 / 여름언덕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형제간에 안싸우는 집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볼까?
한집도 없다는데 내기를 걸수도 있겠다. 그래서 위로삼아 나온 말이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거야라는 말이 생긴지도 모르겠다. 그말을 위로삼다가도 싸움의 강도가 참기 힘들어지면 속이 뒤집어져서 폭발하는 부모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일단 이 책을 보면 위로가 된다.
아! 여기 비하면 우리집 애들은 양반이구나 하면서....
물론 일부 부모들은 또  아! 이건 우리집이야 내지는 우리집은 더 심해라고도 할수도 있겠다.
집집마다 상황은 다르니...
어쨌든 다행스럽게도 나의 경우 우리집 애들은 양반이야 할 수 있어서 위로를 받았다.
(이거야말로 남의 불행을 나의 위안으로 삼는격이니 죄책감이 조금 들긴 한다.)
어쨌든 형제간의 싸움은 영원한 부모의 고민거리다.

그런 고민을, 또는 아이들의 싸움을 방치할 것인가? 정말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거야 하면서 놔둬도 될것인가?
이 책은 거기에 대해서 절대 아니라고 얘기한다.
어렸을때의 형제관계 - 아니 사실은 그런 싸움들에 대한 부모의 태도는 어른이 되어서까지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거나 아이들의 성장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이 책의 기본 입장이다.
따라서 아이들의 싸움에 대해서 부모는 적절한 태도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아주 실제적이다.
책의 내용이 실제 부모들과 저자의 워크샵과 그 결과를 적고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부모들이 고민을 가지고 온다.(그 고민들의 내용은 부모라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그 고민을 같이 얘기하고 적절한 처방을 제시하고 한주동안 실천하고 다시 얘기하는 방식. 그렇기 때문에 지금 아이들의 싸움때문에 고민하는 부모라면 아주 적절한 대처방식을 발견할 수 있을거라는게 이 책의 최대 장점이다.

이 책에서 얘기하는 것 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들만 몇가지 얘기하면
일단 아이들의 감정을 인정해주라는 것이다.
뭐 그런걸 가지고 싸우냐 내지는 그까짓거 왜 양보안하니하는 식의 말을 하지 말라는 것.
일단은 아이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감정을 인정해주고 표현해주라는 것이다.
이건 보통의 육아서적들에서 대부분 가장 먼저 이야기 하는 것이니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다.(뭐 물론 실천이 잘 안되는건 나도 안다. 내가 잘 못할때가 많으니....)

더 도움이 되었던건 실제 싸움에 대해서 대처하는 방식에서 아이들의 싸움을 아이들이 스스로 조절하고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건 우리집에서 쓰는 방식이다.
우리집에서 절대 안나오는 말이 언니니까 양보해 내지는 동생이니까 양보해라는 말이다.
아이들이 어디서 그런 말을 듣고 와도 우리 부부의 경우 단호히 그 말을 부정한다.
언니라고 무조건 양보해야 되는건 아니야라고....
아이들 싸움이 생기면 일단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상황을 정리해주면서 둘이서 해결하도록 한다.
10번에 한번쯤은 해결이 안될때도 있다. 그러면 마지막엔 가위바위보다. ㅎㅎ
그런데 우리집 애들이 다른 집에 비해서 확실히 덜 싸우는걸 보면 이 방법이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나의 경우 여기서 생긴 고민이 뭐냐하면 이런 아이들끼리의 협상이 경우 큰애가 거의 다 이긴다는 거다. 이런 저런 말로 둘째를 꼬드겨서 자신이 원하는걸 이루고야 만다는 것.
이것때문에 둘째가 너무 치이는게 아닌가 고민이었는데 이 책속에 아주 위로가 되는 말이 있었다.
"두 아이다 만족한다면 신경쓰지 마라! 당신의 둘째는 지금 가장 훌륭한 스승에게서 협상의 기술을 배우는 중이다."라는 식의 말. ^^

단 폭력을 동반한 싸움에 대해서는 부모는 절대적으로 단호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잊지 않는다.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상처입혔을때는 무조건 일단 상처를 입은 아이를 먼저 안아주고 다독여줄 필요가 있으며, 이후에 때린 아이에 대새 폭력은 안된다라는 것을 확실하게 주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내가 어느정도는 알고 있던 부분이고 또 실천하고 있던 부분인데
이 부분말고 나를 헉겁하게 만든 부분은 부모의 태도가 아이들의 삶이나 태도를 고정시킬 위험성이 굉장히 크다는 거였다.
부모의 차별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 차별의 범위가 얼마나 넓은지에 대해서는 미처 몰랐던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집의 경우에도 큰애는 꼼꼼하고 섬세한 편이어서 앉아서 뭔가 집중해서 하는 놀이들을 잘한다. 반면 둘째는 몸을 움직이는 것들에 훨씬 능하고....
우리는 칭찬이랍시고 언니는 그림이랑 블럭을 잘하고 동생은 달리기를 잘해라고 하는데 이것도 차별이란다. 아이들이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지거나 즐길수 있는 기회를 부모의 태도가 원천적으로 가로막아버린다는 것. 즉 둘째도 그림을 잘 못그리지만 충분히 즐길수는 있는데 이런 부모의 태도가 아이가 그림그리는 것을 심리적으로 싫어하게 만들수 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부모의 차별을 얘기한 부분에서는 나를 반성하고 새롭게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 많아 가장 도움이 되었던 부분.

어쨌든 지금 형제를 기르고 있는 당신이라면 한번쯤은 꼭 읽어볼만한 책이다.
전체 다는 아니라 하더라도 어느 한 부분쯤은 도움이 될 만한게 꼭 있을테니.....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7-10-06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 애들은 다섯살 차이가 나도 아직도 으르릉, 쳇, 흥, 이러고 살죠.ㅎㅎ
이 책 님이 다섯개 별을 준 거 보니 정말 유용한가 봐요. 무심코 부모가 하는 말로
차별 당한다는 느낌, 가능성을 한계 짓는 결과, 조심해야겠군요. 음.
토요일이에요, 즐거운 주말 맞으시길요.^^

바람돌이 2007-10-06 09:19   좋아요 0 | URL
육아서적은 역시 실제적인 책이 제일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실제로 제가 반성을 많이 하게 됐다는 의미에서 별 다섯이예요. ㅎㅎ 다섯살 차이 싸우는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20살 차이나는 동생과 싸우는 언니, 누나도 제 주변에서는 봤는걸요. ㅎㅎ

클리오 2007-10-06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둘째는 안가질 것 같지만...^^ 늘 남동생 둘의 누나라서 차별받는다는 느낌을 뼈속 깊이 간직하고 자란 저로서 이해가 되는군요. 그렇게 되면 동생들과 사이가 별로 안좋고 배려하고 싶은 생각도 안들거든요. 지금이야 다 결혼하고 좀 나아졌지만(동생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보는 순간이 생겨야 비로소 해결되는 듯해요..), 부모님이 우리 아이들은 왜 이렇게 사이가 안좋을까 할 때마다 부모님 탓이라고 속으로 외치곤 했답니다. ㅋ~(부모님은 좀 억울해하시겠죠?^^;) 그래서 저는 형제가 있어야 안외롭다는 사람들 볼 때마다, 형제가 있다고 해서 인간이 근본적으로 안외로운건 아니다, 형제가 애물단지가 되는경우도 많다고 단호히 이야기하는 인생관을 가졌답니다. ㅎㅎ

바람돌이 2007-10-08 00:01   좋아요 0 | URL
아직은 출산의 휴유증이 다 가시지 않았으니 당연히 둘째 생각은 없으시겠죠. 뭐 저도 그랬습니다. 저 애 낳을때 다시는 애 안낳는다는 결심을 무진장 했었던 기억이 나거든요. ㅎㅎ 근데 요 애라는게 뭐 그 전에도 예쁘긴 하지만 돌 지나고 나면 그 예뻐진다는 강도가 장난이 아니게 됩니다. 뭐 그러면서 출산의 고통을 깜박하게 되더라는.... ㅎㅎㅎ
형제가 애물단지가 되는경우야 주변에 너무 많이 널렸죠... 근데 아닌 경우는 살아갈 수록 형제가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의 경우는 지금 여동생이 바로 옆에 사는데 얼마나 의지가 되는지 모르거든요. 아마 그래서 꼭 둘째를 낳아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네요. ㅎㅎ

조선인 2007-10-06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미리 대비를 해야할까요? 일단 보관함에 넣겠습니다.

바람돌이 2007-10-08 00:02   좋아요 0 | URL
아마도 님께서도 조만간 녀석들의 쌈박질로 머리아플때가 오지 않을까 싶은데요. ㅎㅎ 근데 다행인건 그나마 위에가 누나일때는 좀 덜하다고 하더군요. ㅎㅎ

2007-10-07 2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7-10-08 00:07   좋아요 0 | URL
스팀청소기는 안샀어요. 그래서 어떤지 모르겠고... 미니오븐은 전 중소기업제품으로 싼걸로다 구입했었는데 별로였어요. 과자 굽는거 외에는 기능이 너무 떨어져서... 그래서 누가 산다고 하면 돈 좀 더 주고 좋은 걸로 사라고 하고 싶어요.(참고로 저는 10만원대) 그나마도 애들이 문을 하도 열어대며 장난치더니 지금은 문이 부서져서 안닫혀요. ㅠ.ㅠ

2007-10-08 2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7-10-08 22:02   좋아요 0 | URL
뭐 갈수록 집에 남아나는 물건이 없습니다. 지금 집에서 만약 이사를 가게 된다면 가져갈 물건이 책장과 책, 책상 빼고 나면 하나도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저희집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내녀석들 기르는 집은 정말 장난 아니던데요. ㅎㅎㅎ 육아도 어느정도는 쉬어줘야 하는데 계속 아이하고만 있으니 처지는건 당연하죠? 저 방학때 집에 있으면 딱 지쳐서 이제 그만 싶으면 개학해주시더라구요. ㅎㅎ 하여튼 아이 키우는거 말이 쉽지 장난 아니죠...
 
쥐를 잡자 - 제4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푸른도서관 18
임태희 지음 / 푸른책들 / 200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전 tv를 보다가 우연히 대만의 소녀임신문제에 대한 논쟁을 보았다.
TV속에서 보여지는 대만은 적어도 우리나라보다는 나았다.
혼전임신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이 무료로 진료를 받고 낙태수술을 받을 수 있는 전용병원이라도 있었고, 그들에 대한 실제적인 성교육-가령 콘돔의 사용방법같은-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대만의 정책도 충분한 것은 못되어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임신을 하게된 여학생들의 교육권을 보장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대만이나 우리나라나 일단 임신을 하게 되고 그것이 학교에 알려지게 되면 그녀는 더 이상의 학교생활이 불가능해진다.
대만은 적어도 이런 상황의 문제점에 대해서 사회적 토론이 되고 이슈화가 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결국 학교와 학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실패하고 말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청소년의 임신문제는 심각할 지경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적인 공론의 장으로 나오지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주소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별적인 문제로서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되어 임신한 소녀를 죄인으로 낙인찍는다.
동시에 그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고 나면 그녀는 더이상의 교육을 받을 권리는 포기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의 교육의 의무를 지고 있으며 동시에 헌법에서 행복추구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지만 그것은 임신한 소녀들에게는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면서 늘 무책임한 생명존중 교육이니 청소년의 건전한 교제 어쩌고 하는 말만 되풀이 되고 있다.

자 당신에게 물어보자.
만약에 말이다.
당신의 어린 딸이 누군가의 교제에 의해 예상치 못한 임신을 했다면 당신은 어쩌겠는가?
우리 딸은 그럴리가 없다고?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웃기지 마라. 청소년의 성의식은 우리 같은 어른들이 따라잡을 수없을 정도로 개방적이 되어가고 있다. 당신의 딸도 예외는 아니다.
만약 임신한 아이가 나의 딸이라면 혹은 나의 학생이라면 나는 아마도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그 아이들 데리고 병원으로 가 낙태를 시킬 것이다. 그녀와 그녀의 부모와 나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게....
낙태로 인한 정신적 충격과 엉망이 되어버릴 소녀의 삶의 저울질 하면서 나는 아마도 소녀의 삶이 더 무겁다고 결정지을 것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라고 나는 생각한다.
생명의 존중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면 그 아이를 낳아기를 수 있는 국가적 지원과 사회적 분위기를 먼저 만들어줘야 하지 않는가?
TV속에서 대만의 학부모와 교사들은 만약 아이를 낳은 소녀들의 학업을 계속 인정한다면 기하급수적으로 청소년의 성관계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를 하고 있다.
이들은 아마도 마음속으로는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이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듯하다. 그렇기에 정상적이라고 그어놓은 선을 벗어난 아이들의 삶에 대해서 이렇게 무책임하게 선언할 수 있을테니....

아이들에게 생명존중을 얘기하는 것만으로는 절대 부족하다.
그것은 무지한 성관계와 그것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예측할 수없도록 한다.
다만 임신에 대해 태아에 대해 죽을 것 같은 죄책감만 가져다줄뿐...
같이 병행되어야 할 것은 실질적인 성교육이고,
동시에 소녀들에게도 낙태가 살인이라는 의식을 주입할 것이 아니라 낙태 역시 그녀의 삶의 한 권리임을 가르치는 것, 동시에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권리도 보장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녀들이 아이를 낳고 출산휴가를 갖고 다시 학교에 복귀하는 것이 그렇게도 말이 안되는 일일까?

책속의 주홍이는 혼자 고민을 싸안고 혼자 괴로워하다가 결국 죽음을 택한다.
한 생명의 죽였다는 죄책감은 결국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것으로 갚은 것이다.
주홍이의 부모도 교사도 누구 하나 그런 주홍이를 막지 못한다.
당신은 당신의 딸이 주홍이와 같이 되기를 바라는가?

임신의 고통으로 자신의 아이를 쥐라고 여기고,
낙태의 고통으로 자신의 생명을 죽이는 주홍이는 보고싶지 않다.
낙태도 자신의 권리로 당당히 받아들이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도 자신의 권리로 주장할 수 있는 그런 주홍이의 탄생은 언제정도면 가능해질까?


댓글(6)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인 2007-09-29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시원한 리뷰네요.

바람돌이 2007-09-29 23:39   좋아요 0 | URL
리뷰만 속시원하면 뭐하겠습니까? 지금도 이런 일로 고통받는 아이들이 많은데요.

프레이야 2007-09-29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우리가 현실을 제대로 못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싶어요.
아니면 믿고 싶지 않아 외면하거나.. 꾸욱^^

바람돌이 2007-09-29 23:40   좋아요 0 | URL
문제는 대부분의 어른들은 이런 일이 자기 자식에게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이상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거 같아요. 일부 문제가정, 문제아들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하니까 이 아이들을 나의 아이와 같은 맘으로 봐지지가 않는게 아니가 싶은....

대지의 마음 2008-01-10 0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이 너무 생명의 문제로만 자의식과 죄책감이 극대화되어 있어 속상했습니다. 아기를 가진 아이들이 갖는 진정한 문제는 그것에 국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설이 너무 매끄럽게 써지고 잘 읽혀지기는 하지만, 사회적인 순결의식과 퇴행적이고 겉으로만 보수적인 성에 대한 인식 문제의 후진성 모두 담아지지도 다루어 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다 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생명을 귀중히 여겨야 한다는 지점으로 이야기가 집중되어서 이것도 아니의 사회적 편견에 다름아닌 것은 아닌가 하고 ... 어쨌든 글 잘 읽었습니다

바람돌이 2008-01-12 01:33   좋아요 0 | URL
그렇죠? 만약 실제로 임신한 10대 아이가 이 책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요? 주홍이처럼 저도 죽어야 한다고 생각해야 하는건가? 뭐 그런 불만들이 생겼습니다.
 
가로세로 세계사 1 : 발칸반도 - 강인한 민족들의 땅 가로세로 세계사 1
이원복 글.그림 / 김영사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원복씨라면 학습만화계에서는 스타급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어린시절에도 그의 먼나라 이웃나라를 보면서 자랐는데 요즘의 아이들도 마찬가지니 하나의 책이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사랑받는다는건 정말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런 그가 요즘은 먼나라 이웃나라의 유럽에서 벗어나서 세계를 확대하고 있다.
유럽 중심의 세계 - 정확히 말하면 서유럽 중심의 세계에서 벗어나 동유럽,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등 다른 지역으로 확대해 나가기 시작한 것.
일단 이원복씨가 쓰면 기본은 팔려나간다는점에서 그가 이런 지역들을 써준것이 고맙기만 하다.

이제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보자.
실제로 책의 내용중에서 발칸반도를 다룬 부분은 반정도밖에 안된다.
책의 앞 반 정도는 민족과 민족주의, 민족국가, 국민국가, 제국과 제국주의 등의 설명에 할애하고 있다. 이 책을 읽을 아이들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개념이지만 실제로 근현대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피해갈 수 없는 개념들이다.
발칸반도는 특히나 민족과 종교, 역사가 복잡하게 뒤얽혀 그들 내부의 민족주의들이 상호 끊임없이 충돌하고, 또한 지정학적 위치로 인하여 제국주의 열강들의 이해가 맞물리는 곳이었으니 더욱더 이러한 개념들의 정리는 필요할 것이다.
그리하여 다소 지루하더라도 저자는 이런 개념정리를 위해 상당히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그의 개념 설명은 대체로 별 무리없이 민족과 국민국가의 성립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초등학생에게는 솔직히 이 설명이 얼마나 이해되어 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워낙에 단일민족의 신화의 맹목성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와 또 실제로 그런 민족이라 하면 혈연의 단일성부터 떠올릴 수 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에서 그가 하는 설명은 피부로 와닿기에는 무리가 많다.
그래서 어쩌면 이원복씨의 이 시리즈 중 이 책만큼은 중고생용이 되어야 하지않을까 싶기도 하다.

발칸반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방정교의 이해가 필수적이다.
발칸반도에는 카톨릭, 이슬람교 등 여러 종교가 믿어지지만 역시 중심을 이루는 것은 동방정교이기 때문이다.
역시 책은 동방정교의 성립과 역사 그리고 카톨릭과 비교되는 그만의 특징을 찾아내는데서 부터 시작된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생소한 종교의 하나이기도 하기에 무척이나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
동방정교와 카톨릭의 분리에서 부터 시작하여 오늘날의 카톨릭과는 다른 독특한 특징을 형성하는 동방정교의 역사가 재미있게 정리가 잘 되었다.
개인적으로 동방의 이콘 문화가 어떻게 발달할 수 있었을까가 궁금했었다.
우상숭배반대를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성상파괴운동을 주도한 비잔틴 제국이지만 그들 역시 야만족이라 불리던 이민족인 슬라브족이 이동해오자 그들을 교화시키기 위해 다시 이콘을 유행시켰던 상황은 결국 종교라는 것이 필요에 의해 자신의 주장이나 모습을 얼마나 간단히 변화시키는가를 보여준다.

마지막 장에서는 본격적으로 발칸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이 부분은 좀 더 자세하게 다루어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지정학적 위치로 인하여 원래 이 지역에 살던 민족들외에 이후 대규모의 슬라브족의 이동. 그리고 오랜 오스만 제국의 지배 등은 이 지역의 민족구성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또한 이슬람의 지배기간동안 개종자도 많이 생겼는데 보통은 이 개종이 마을이나 촌락단위로 이루어짐으로써 이후 종교적인 분열의 싹까지 만들게 된다.
그것이 이후 구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인종 청소, 코소보사태를 만들어내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책을 읽다보면 민족이나 종교는 다르지만 수백년의 세월을 같이 살아온 사람들이 결국 서로를 말살시키고자 싸우는 광경은 이것이 인간사회의 일이라고 믿고싶지 않은 기분이 든다.
다양한 민족과 인종의 공존, 종교의 공존이란것은 결국 이상에 불과한 것일까
그것도 꽤 오랫동안 공산주의라는 체제하에서 동지적 연대를 경험했던 사람들이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져 서로를 향한 증오의 총구를 들이댈 수 있다는 것은 섬뜩한 현실이다.

이원복씨는 이렇게 발칸의 현대사까지를 서술하면서 닫힌 민족주의, 국수주의가 얼마나 위험한 사상인가를 열변한다. 하지만 그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여전히 민족주의다.
열린 민족주의라는 것이 그것.
하지만 저자가 앞서 했던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과 비교하면 이러한 결론은 지나치게 안이한 결론이라는 비판을 버릴 수 없다.
열린 민족주의라는 것은 결국 본질은 그대로 둔채 얼굴에 살짜 분만 바른 민족주의에 다름 아니다라는 것.
실제로 책의 마지막 문장들

내나라, 내민족, 내 문화에 대해 강한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란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한편 세계와 인류를 함께 사랑하고 더불어 살아간다는 의식을 지니는 것이 열린 민족주의지. 그러니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무한한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세계로 진출하며 문화국민, 문화민족으로 세계를 당당하게 끌어안는 정신과 자세 그래서 세계의 중심에 서는 것이야말로 바로 열린 민족주의로군요.

일면 도덕교과서에 딱 나올법한 평범한 결론이다. 하지만 이런 민족주의가 결국 기존에 말한던 민족주의와 뭐가 다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누구든 평화시기에는 민족주의에 대해 저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저런 민족주의가 자신이 조금이라도 불리해질때면 어떻게 다른 이에 대한 가혹한 폭력으로 전환될수 있는가를 발칸의 역사는 충분히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결국 이원복씨는 제대로 잘 말해놓고 마지막에 가서 결론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우물쭈물해버리는 우유부단함을 보인다.
만약 말하기가 힘들었거나 결론을 내지지 않았다면 그냥 결론 없이 열린대로 두어도 될 법한 책이었는데 말이다.
결국 민족주의의 유령은 참 떨치기 어려운가 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글샘 2007-09-28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르완다의 민족간 참극이나 보스니아의 참상들을 읽다 보면, 정말 민족이나 국가라는 것을 가지고 장난치는 넘들에 대해 너무도 증오심이 끓어올랐습니다.
정말, 민족이나 나라 같은 것은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어요.

바람돌이 2007-09-28 22:21   좋아요 0 | URL
민족이나 국가라는 것은 결구 그 태생부터 차별을 전제하고 나온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과 비국민, 민족과 비민족 그래서 내부자가 아닌 타자에 대한 폭력을 필연적으로 전제한 것이라는 거죠. 요즘은 제대로 된 세상이 되려면 정말 님의 말처럼 민족의 경계라는 것부터 없애야 한다는 생각이 저도 듭니다.
 
리진 2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경숙과 역사소설이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간의 우리문학에서 역사소설이란 민족주의 아니면 맑시즘(?? 이건 좀 애매하긴 하다. 그냥 두리뭉실 민중주의라고 할까?)을 벗어나서 이야기 하기 힘들고....
따라서 역사소설이라면 항상 대하소설의 뉘앙스을 느끼게 된다
거기에 신경숙씨의 가늘디 가늘고 숨조차 쉬기 힘든 내면의 독백같은 문장들이 어울리려나 싶은 것.

하지만 역시 신경숙과 역사소설은 어울리지 않았다.
이걸 역사소설이라고 한게 도대체 누구야라고 묻고 싶다.
이것은 그저 아프디 아팠던 한 여인의 독백이지 역사소설은 아니다.
그 여인은 그저 여인일수도, 또는 그와 운명을 같이 했던 조선이라는 나라일수도 있을테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을 배경을 달리하는 다른 시대, 혹은 다른 나라로 옮겨놓는다 해도 고쳐야 할 부분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조선의  궁중 무희 리진은 그대로 조선을 빼닮았다.
그런데 여기서 리진이 조선을 빼닮았다 함은 누구의 시선으로 보여진 조선이냐는 물음을 전제해야만 한다.
그것은 콜랭으로 대표되는 서구와 같은 강대국에 비친 조선의 모습이다.
아니 그렇게 비쳐졌으리라 생각되어지는 모습이겠다.

그녀는 한마리 나비로 연상된다.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하는 그녀의 춘앵무도 그 나비를 연상시킨다.
아니 그녀의 몸짓, 빠져들듯 깊을 검은 눈동자, 단조로우나 물기가 배어있을 목소리까지도...
아름답고 신비롭지만 지붕을 두드리는 빗줄기에도 찢어질 한없이 연약한 나비.
그럼으로 해서 그녀가 자기 주장을 드러낼때의 콜랭은 곤혹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왜 이집트이 것이 여기에 와있어요?
콜랭, 사람들은 나 또한 당신이 조선에서 가져온 수집품들같이 구경하죠.

서구인이 본 조선도 이런 모습이었을까?
아름다운 산천을 배경으로 착하고 순박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살고 있으나 또한 무언가 함부로 하지 못할 기품을 간직하기도 한 그런 나라.
하지만 약하디 약하여 누군가의 보호를 벗어나면 곧 쓰러질 것 같은.....
콜랭의 보호에서 벗어난 리진이 그녀에게는 어머니와도 같은 중전에게 돌아오나 곧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곧 파멸의 길로 휩쓸려 들어가 버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그러하다.

소설의 이런 면은 역사소설의 혐의를 풍기기도 하지만 작가가 마음을 쓰고 애절해 하는 것은 여인을 둘러싼 환경이 아니며 역사적 배경도 아니다.
그녀는 리진의 마음으로 상징되어지는 조선이라는 나라에 안타까운 애도시 한자락을 올리고 싶었던 듯하다.
리진의 아름다움과 그녀에 대한 애틋함.
그것은 조선이라는 불행한 결말을 간직한 나라에 대한 애틋함이 아니었을까?
작가가 써내려간 문장과 리진의 애틋한 모습과 그리고 조선의 아픈 결말이 하나로 겹쳐진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글샘 2007-09-19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착하고 순박하게 보였을까요? 아님, 지저분하고 무식해 보였을까요...
비숍 여사의 글이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있는데, 후자 같아요. ^^

바람돌이 2007-09-21 02:17   좋아요 0 | URL
저도 후자일거라 생각해요. 다만 이 책에서 콜랭이 보는건 지배층에 대한 시각이죠. 나름대로 우아할 수 있었던 왕실과 지배층 지식인들 말입니다.

짱꿀라 2007-09-21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진은 역사소설로 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여성적 시각으로 보시면 조금 편안해 지실 겁니다. 아시겠지만, 리진의 생을 조명한게 아니고, 명성왕후를 오히려 더 부각시킨 느낌이 듭니다. 또한 리진이 있었다면 일본과 탕헤트 같은 곳을 전혀 집어 넣지 않구요. 아마 김탁환씨가 쓴 리심을 보시면 대조가 잘 될 것 같은데요. 사설이 너무 길었습니다. 각설하고 너무 오랫만에 댓글을 다는 것 같아서 죄송도 하고, 참 면목이 없습니다. 어찌 전주로 자리를 옮기고 나니 더 시간이 쫓기네요. 이곳에 오면 시간이 더 나줄 알았는데요. 며칠이면 정말 추석입니다. 추석 잘 보내시구요. 친지분들과 좋은 시간, 맛난 음식도 많이 많이 드시구, 두루두루 좋은 시간 가지세요. 행복하소서. 이만 줄입니다.

바람돌이 2007-09-24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적 시각도 글쎄요. 그리 편한 시각은 아닌듯합니다. 리진이란 인물은 새로운 시대가 아닌 스러져 가는 조선을 대표하는 여성인듯.... 산타님도 맛난 음식 많이 해드시고 행복한 추석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