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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이매지 > 멈출수 없는 숟갈질. 마약청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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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가시장미 >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국립박물관(2)

* 삼국시대: 고구려 편

 

국립 중앙 박물관의 벽면에 있는 고구려 무덤벽화에 대한 안내 글 입니다.


고구려 무덤벽화에 대한 설명에서 조금 이상한 부분을 발견하였습니다. 수도였던 지안과 평양일대에 벽화가 집중되어 있다고 써져있는데 저는 그 지안이라는 지역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친절한 네이버에서 검색을 통해 여러 정보를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고구려의 2번째 수도였던 국내성과 비슷한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기에 먼저 국내성을 검색해보았습니다.

-국내성: 고구려의 두번째 수도. 지금의 만주 지안[輯安(집안)]과 그 배후의 산성을 포함하는 지역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AD 3년(유리왕 22)에 국내성으로 천도하고 위나암성(尉那巖城)을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발굴 조사한 결과 둘레는 2686m이며 성벽은 잘 다듬어진 네모뿔형의 돌로 쌓았고 성벽의 높이는 5∼6m 정도라고 밝혀졌다. 성문은 모두 6개였고 성의 네 모서리에서 각루(角樓)터가 발견되었으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치(雉)를 설치하였다. 최근의 시굴(試掘) 결과 이 석축성(石築城)이 축조되기 이전에 토성이 존재했음이 확인되었다.

-지안:  동서 길이 80㎞, 남북 너비 75㎞로 총면적 3,217㎢이며 인구는 23만 명(1998)이다. 다민족 거거지로서 한족[漢族]이 86.4%를 차지하며 조선족(朝鮮族)·만족(滿族)·후이족[回族]·멍구족[蒙古族]·시버족[錫伯族] 등의 소수민족이 13.6%를 차지한다. 소수민족 중에서는 조선족이 가장 많다. 동남쪽으로는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하고 북쪽으로는 바이산시[白山市]·퉁화시[通化市]·퉁화현[通化縣]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본래 명칭은 지안[輯安]이며 퉁거우[通溝]라고도 불린다. 신석기시대부터 인류가 살기 시작했으며 고구려문화의 발상지이자 고구려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였다. 1965년부터 지안현이라 불렸으며 1988년 5월에 시로 승격되었다. 고구려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데, 그 중 광개토대왕비가 유명하다.

 

그러므로, 지안은 고구려의 두번째 수도인 국내성지역에 속하며, 지금은 퉁거우라고 불리운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그곳에 고구려의 유적이 많이 남아있고, 광개토대왕비가 유명하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이 부분을 고려해 본다면 중국인들이 고구려를 자신의 역사라고 우기고 있는 역사왜곡 프로젝트와 지안지역이 깊은 연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것과 관련된 내용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고구려 벽화 도굴에 숨겨진 거대한 음모 : 중국인들은 동북공정 프로젝트에 따라 고구려 역사를 왜곡시키기 위하여, 3년동안 군인들의 강력한 통제속에 자신들에게 불리한 고구려 유물들을 모두 빼돌렸다. 동북공정 프로젝트 이전에는 고구려 유물이 훼손되길 바라면서 일부러 방치했던 고구려 유물이, 왜 갑자기 군인의 철저한 통제하에 놓인 이 시기에 왜 하필 도굴되었는가 우리는 의심에 봐야 한다. 거기에는 고구려 역사를 왜곡하여 만주를 합법적으로 빼앗고자 하는 중국인의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고구려 벽화 도굴은 가식이고, 보다 그 근원적인 내막이 고구려 벽화 이면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바로 고구려가 중국을 지배했다는 명백한 물증이 그 고구려 벽화 너머에 감춰져 있기 때문에, 중국의 만주 지배에 절대 불리한 물증을 인멸하기 위해 벽화는 중국 당국에 의하여 뜯겨졌던 것이라고 우리는 단언할 수 있는 것이다. 유네스코가 내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할 계획이던 고구려 고분 벽화 가운데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 삼실총(三室塚)과 장천1호분벽화가 지난해 도굴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조선일보는 4일자에서 중국 지안시 공안국 문물보호파출소 경찰관의 말을 인용,"이들 고분 벽화가 심한 것은 벽면이 완전히 없어졌을 정도로 도굴당했다"며 "범인들은 조선족이 포함된 중국인들로 모두 잡혔으나 벽화는 행방불명"이라고 보도했다. 장천 1호분은 시신을 안치한 현실(玄室) 앞의 전실(前室) 동서쪽 벽면 전체를차지했던 무덤 주인공 부부의 가무 관람도(동쪽)와 악기연주, 씨름, 소풍, 사냥 등의 장면을 담은 생활풍속도(서쪽), 전실 천장 고임에 있던 예불도(禮佛圖), 비천상(飛天像) 등이 도굴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니, 중국인들은 고구려의 벽화를 도굴하면서까지 역사왜곡에 힘쓰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이에 대해 어떤 대응도 하고 있지 않는 것 입니까? =_= 알고 계신 분, 계시면 좀 알려주세요!! 제가 알기로는 아직 어떤 정당한 대응도 하지 않고 있고, 중국은 암암리에 계속 프르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요?

 

* 고구려의 사신도

.

사신도는 사방 벽에 사신도를 그린 것인데, 동쪽에는 청룡(靑龍), 서쪽에는 백호(白虎), 남쪽에는 주작(朱雀), 북쪽에는 현무(玄武)를 표현한 것이다. 사신도에서는 역동감이 있고 박진감이 넘치는 필치를 느낄 수 있으며,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 청룡



소리치는 큰 입에서 타는 듯한 혀를 내밀고 눈알은 튀어나갈 듯한 쌍뿔 청룡이다. 흘러내리는 S자 형의 목의 곡선은 가슴에 이르러 굵게 확장되고 몸통으로부터 꼬리로 감에 따라 차차로 가늘게 길어져서 탄력성 있게 움직인다. 중심이 앞부분에 옮겨져서 앞발을 내밀고 사납게 전진하는 모습은 속도감이 넘치고 웅혼하다. 새빨갛게 테두리를 칠한 가슴날개도 날카롭게 하늘을 날고 도약을 강조한다. 세련된 구도이며 채색도 화려하다. 장식적 요소가 농후한 비늘이지만 푸른색, 녹색, 주색 등의 배색도 적절하여 섬세하고 호탕한 채색으로 입체감과 생동감을 표현하였다.

 

- 현무



강서대묘의 현무도는 고구려 회화의 조형미가 가장 원숙하다.  북방위신인 거북이를 휘감은 뱀의 긴 타원형의 곡선이 자아내는 훌륭한 공간 분할과 서로 맞댄 두 개의 대가리의 사이에 생기는 긴장감, 그리고 격동하는 몸체는 힘에 넘쳐난 멋진 구성이다. 뱀의 비늘이나 귀갑 무늬도 섬세하게 그려져 있고 힘찬 철선 묘사와 그륵 채색에도 명확히 입체가 표현되어 신비적 짐승이기는 하나 생명을 가진 현세의 동물과 같이 생생하다. (뱀과 거북이를 섞어 만든 상상속의 동물의 모습)
 
 
 
- 백호
 
 


( 백호벽화의 사진은 너무 흐려서 색감을 포샵으로 조정했더니. 좀 이상하네요. =_= )
 
대묘의 백호는 선명치 못한 데가 많아 섬세한 부분은 알아볼 수 없으나 길게 뻗어나간 목과 벌린 아가리는 백호의 용맹을 잘 나타내었고 형식이 중묘와 공통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가슴날개의 색채와 아가리 주변과 몸체 전반의 운동감, 곡선의 흐름이 자아내는 인상이 다르다. 이 백호는 장중한 감이 난다. 이 벽화는 수분이 많은 점도 있어 주홍색의 날개가 아주 선명하다
 
 
 
- 주작
 
 


억세게 퍼덕이는 날개와 회오리쳐서 솟을 듯한 꼬리 등 큰 무덤의 주작은 곡선의 움직임이 강조되어서 화려하다. 깃털도 타오르는 불길같이 설레이고 있다. 아래 부분에는 갈색, 불그스름한 갈색의 산맥이 그려져 그윽한 분위기가 흐른다. 새는 물에 의해 퇴색이 눈에 띄지만 용약한 주작의 운동감과 색채의 화려함이 인상적이다. ( 새의 모습을 최대한 많이 담기 위해 세로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
 
 
 
-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고구려의 유물 중에서 사신도가 가장 인상에 남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탓도 있지만, 벽화를 전시할 때 사신도를 방향에 맞추어 사방에 전시해두었기 때문에 생동감 넘치는 벽화를 공간 속에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 역사공부할 때 단어로만 암기 했던 사신도를 눈 앞에서 살펴보니 고구려 역사에서 '패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감'으로 확인 할 수 있었고, 이 벽화와 관련된 역사가 고구려의 역사이고ㅡ 우리 민족의 역사라는 사실을 중국에서 왜곡하기 위해 많은 투자와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예전보다 많은 유감을 표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어떤 정당한 대응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고, 활발하고 적극적인 대응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불편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앞으로도 계속 알아보고, 공부해보고 싶습니다. 혹, 아시는 분이 계시다면 많이 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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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5-11-16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흐흐 돌이언니! 고구려 역사를 공부하다가 마음이 아파서 혼났습니다.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ㅠ_ㅠ 우리의 역사였던 대륙을 빼앗긴것도 억울한데 그 지역의 뿌리를 왜곡하려 들다니.. 나빠요! 엉엉~

야클 2005-11-16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보내주신 책이 왔어요.

정성스레 써주신 엽서도요. ^^

한 호흡에 쭉~~ 읽기보다는 책상에 놔 두고 가끔식 펼쳐볼게요.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조만간 이 원수는... ㅋㅋㅋ

 


바람돌이 2005-11-17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 재미나게 읽으세요. ^^
 
 전출처 : 딸기 > 호수가 사라진다

지구온난화와 용수 남용으로 호수들이 말라간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최근 차드호(湖)를 비롯한 아프리카의 호수들이 사막화와 무리한 물 빼내기 때문에 급격히 말라가고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위성사진들을 공개했다. 10년 간격으로 촬영된 위성사진들은 바닥이 드러난 차드호와 케냐의 나쿠루호, 빅토리아호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줬다.

사실 거대 호수들의 고갈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프리카 중부 차드호와 중앙아시아의 아랄해, 중동의 사해는 한때 세계적으로 이름 높았던 특색 있는 호수들이었지만 무분별한 물 끌어쓰기와 기후변화 때문에 오히려 `환경 재앙'으로 변질되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호수를 살리기 위해서는 국제 협력과 전지구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호소하지만 국경과 국익에 막혀, 개발과 이기주의에 막히기 일쑤다.


# 1. 사하라에 합병돼가는 차드호


차드호는 한때 차드, 니제르,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나이지리아, 카메룬, 수단, 알제리, 리비아 등 8개국에 걸쳐 막대한 수역(水域)을 자랑하던 호수였다. 그러나 태고 이래 수많은 사람들의 생활터전이 돼왔던 차드호는 불과 40년만에 20분의1로 줄어들면서 대부분 지역이 말라붙은 땅으로 변하고 말았다.




왼쪽은 1968년 미국 아폴로7호 우주선 비행사가 촬영한 차드호의 모습

오른쪽은 2002년 항공촬영한 차드호. 사막화로 인해 먼지바람에 덮여가고 있다.


차드호의 위기가 시작된 것은 1960년 나이지리아, 차드, 니제르,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카메룬 등이 일제히 독립하면서부터. 신생공화국 정부들은 개발을 위해 대대적으로 물길을 만들고 호수 물을 농업용수로 뽑아 쓰기 시작했다. 결과는 무서웠다. 1963년 차드호 면적은 2만5000㎢였으나 10년 뒤인 1973년 1만5400㎢로 줄더니, 1982년에는 2276㎢로 급감했다. 1994년에는 1756㎢, 2003년에는 1350㎢로 줄었다. 지구온난화로 북쪽의 사하라사막이 남쪽으로 급속히 확장된 것도 차드호 고갈을 가속화시켰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차드호는 남진(南進)해오는 사하라 사막에 잡아먹힐 것으로 보인다.

호수 고갈에 따른 생태계 파괴는 불 보듯 뻔한 결과였다. 호수 생물종들 대부분이 사라졌고, 마른 땅이 된 호수 바닥엔 외래동식물이 자리를 잡았다. 차드호의 물로 살아가던 숲들도 사라졌다. 주변국들은 차드호 생태계를 살리기 위해 2000년대 들어와 공동 작업에 들어갔지만 역부족이다. 과거 차드호가 있던 지역 주민들은 물을 마구 쓴 죄로 농업 용수 부족과 식수 오염 등 부메랑을 맞아 빈곤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 2. 세 조각으로 나뉘어가는 아랄해


아랄해는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사이에 위치해있다. 한때 세계에서 4번째로 넓은 호수로서 `바다'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컸지만 이제는 이름을 버려야 할 판이 됐다. 1960년대 말부터 30년간 총면적의 60%가 사라지면서 거대한 호수는 대(大)아랄해와 소(小)아랄해로 나뉘었다가 이제는 세 갈래로 나뉠 지경이 됐다.




위성사진으로 확인한 아랄해의 변화. 왼쪽부터 1973년, 1987년, 2000년의 모습이다.


1963년 아랄해의 면적은 6만6100㎢였고 평균 수심 16m, 최대 수심 68m에 염분 농도는 1%였다. 그러나 인접국들이 경쟁적으로 아랄해 물을 뽑아 공업용, 농업용으로 끌어쓴데다 아랄해로 유입되는 강물까지 개발 지역으로 돌리는 바람에 호수가 말라가기 시작했다. 1965년 아랄해에 연간 유입되는 물의 양은 50㎦였으나 80년대에 이르자 아무다리야 강과 시르다리야 강의 물길이 모두 끊겨 아예 한 방울도 유입되지 않는 지경이 됐다. 1987년에 아랄해 넓이는 2만7000㎢로 줄었고, 수량은 60%가 감소했다. 이대로라면 2020년에는 아랄해 완전히 막힐 것으로 UNEP는 보고 있다.

아랄해 주변의 어민들은 살길이 막혔다. 60년대 아랄해 어민은 6만명에 이르렀지만 1980년대에는 상업 어로가 완전히 사라졌다. 농업용수가 모자라고 가뭄이 늘면서 농작물 생장기간이 짧아지고 벼 수확량도 줄었다. 재앙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호수 물이 마르면서 염분, 미네랄 농도가 높아져 아랄해는 주변 생태계에 엄청난 피해를 주는 `환경 괴물'이 되고 말았다. 호수 바닥이 드러나면서 거센 바람이 흙먼지를 불러일으킨 것. 아랄해가 있는 아랄스크 지역에는 반경 300㎞에 걸쳐 매일 20만톤의 소금과 모래가 공기를 타고 날아다닌다. 게다가 마실물이 오염돼 박테리아가 넘치고 잔류농약과 염분 농도가 높아지면서 질병이 넘쳐나고 있다. 주민들은 제초제 중독과 중금속 오염에 시달린다. 결핵, 간염, 후두암, 장티푸스 발병률이 인근 지역들보다 3배 이상 높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떠날 곳 없는 빈민들만 남아 이런 환경 재앙을 몸으로 견뎌내고 있다.

UNEP를 비롯한 환경 기구들이 1997년 `아랄해 살리기 국제기금(IFSAS)'을 만들고 보전작업에 착수, 강물이 유입되게 만들었으나 큰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최근 카자흐스탄 정부가 자국내에 있는 소아랄해 보전계획을 발표했지만, 우즈베키스탄 쪽 대아랄해로 들어가는 지류들은 오히려 막겠다는 것이어서 `제로 섬 게임'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 3. 포화상태에 이른 사해


요르단과 이스라엘 사이에 있는 짠물호수 사해는 요르단강에서 물이 유입되지만 건조기후 때문에 들어오는 만큼 수분이 증발, 일정한 수량을 유지해왔다. 유출구가 없는 독특한 호수인데다 염분 농도가 높아 사람이 들어가면 둥둥 뜨는 것으로 유명하다. 물고기는 살지 않지만 미네랄 함유량이 많아 `천연 병원'으로 이름 높고, 주변에 유대교-기독교-이슬람 성지가 몰려 있어 천혜의 관광지로도 각광을 받아왔다. 해발 고도 돥400m에 위치한 세계 최저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해는 요즘 말 그대로 `죽은 바다'가 되어가고 있다. 이스라엘이 사막지대 관개용수로 요르단강 물을 뽑아 쓰면서 수량이 줄고 염분 농도가 30%를 웃돌면서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는 것. 반세기 동안 수량은 3분의1로 줄었다. UNEP에 따르면 사해의 수면은 연평균 80㎝씩 낮아지고 있다. 사해 호숫가에는 소금덩이들이 말라붙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2050년쯤에는 모두 고갈될 것으로 예상된다.




1989년(왼쪽)과 2001년(오른쪽)의 사해.


사해를 공유하고 있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요르단은 홍해의 물을 끌어들여 사해로 흘려보내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요르단 남부 홍해에 면한 아카바 항구에서 사해에 이르는 파이프라인 건설은 자금을 다 마련하지 못해 쉽게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또 홍해 물 끌어오기는 미봉책일 뿐이며, 사해의 생명을 20~30년 정도 늦추는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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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5-11-16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늪도 생태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걸
자연적으로 없어지기도 전에 사람들이 먼저 메워 버린다죠...
호수나 늪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점점 사라진다니 걱정입니다요.

바람돌이 2005-11-16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말예요.진주님!!! ㅠㅡㅠ

하늘바람 2005-11-16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좋은 자료네요. 가져가서 널리 알릴게요
 
 전출처 : 가시장미 >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국립박물관(1)



여기는 청량리역입니다. 용산 국립 중앙 박물관을 가기 위해서 국철을 타고 이촌역을 향하기로 했습니다. 일요일 침부터 박물관을 향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많이 설레였어요.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어 조금 피곤한 길이 되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예상대로 인파가 굉장히 몰렸더래요. 그래도 후회하지 않을만큼 아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왔습니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박물관을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어찌나 예뻐보이던지, 저도 어릴적에 한번쯤은 저런 기회를 가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에 부러워 마음까지 들었답니다. 그래서 광고를 하려고 합니다!! 필요하신 분들께 유익한 정보가 되길 바라면서 긴 글을 작정하고 써보렵니다. ^-^단, 올리는 사진은 제 핸드폰으로 찍은 것으로 상태가 많이 안좋을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주시고, 제가 역사적인 지식이 짧은 관계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글을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개관시간
평일: 오전 9시- 오후 6시
주말: 휴일: 오전 9시- 오후 7시
휴관일: 매년 1월 1일, 매주 월요일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다음날 휴관)
* 관람요금
2005년 12월 말까지 무료입장
* 오시는 길
버스: 9502(빨강),0014(초록),0211(초록)
지하철: 4호선,1호선- 이촌역 2번 출구

 

 



이것은 입구에서 나눠주는 안내자료를 사진으로 찍은 것입니다. 잘 안보이죠? 죄송해요.. ㅠ_ㅠ 전시관은 총 6개의 관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그림은 고고관의 위치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총6개 중 제가 오늘 다녀온 곳은 고고관 이었습니다.

고고관은 민족문화의 기원관 시대별 전개과정에 따른 특징적인 유물을 토대로 독창적인 우리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구석기시대부터 발해까지의 선사 및 고대 유물이 망라되어 있으며, 총 10개의 전시실에 4,500여 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구석기,신석기,청동기,초기철기,원삼국,고구려,백제,가야,신라,통일신라,발해) - 철처: 안내자료

총 10개의 전시실을 관람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학창시절에 무조건 역사적인 사실을 암기해야 하는 교육을 받아왔던터라 '역사'라는 단어만 들으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고 뭔가를 외워야 할 것 같다는 압박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하지만 올 초에 경상도 일주를 하면서 경주를 여행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많은 유적지를 돌아다니면서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박물관을 다녀오면서 예전에 느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느꼈고, 그것이 앞으로 제가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는 충분한 동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시간을 내서 역사공부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부모님과 함께 박물관에 다녀오는 사소한 일상이 아이들에게도 큰 동기부여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이 글을 씁니다.

 

- 인상 깊었던 유물과 그것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을 정리 해보았습니다.


참, 고고관 입구의 벽면에 그려져 있었던 지도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색감이 너무 좋죠? ^-^



 

-신석기: 빗살무늬 토기

빗살무늬 토기는 그릇 생김새와 무늬에 따라 크게 중서부 지역, 남부 지역, 동부 지역, 서북 지역 등 네개의 지역군으로 나눌 수 있다. 각 지역에서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무늬의 종류와 장식 방법에 차이를 보인다. 빗살무늬 토기는 기본적으로 지역성이 두드러지지만 공통적으로 무늬가 점차 간략해지고, 무늬의 면적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빗살무늬 토기는 기원전 1000년 무렵 청동기 시대로 접어들면서 점차 새로운 형식의 민무늬 토기로 대체되었다. ( 적어오느라 고생한 벽면의 글입니다. -_-;)

 



아니,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는 빗살무늬 토기의 모양이 이렇게 다양하다는 것을 왜 알려주지 않았던가?
더 많은 자료와 정보를 찾아보지 않은 나의 잘못이지만, 저는 지금까지 아래의 빗살무늬 토기만 생각했습니다. =_= 빗살무늬 토기는 시베리아 고아시아인들에 의해 우리나라에 전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토기의 연대가 더 빠르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정보를 찾아본 결과 우리나라에서 시베리아 지역으로 역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아이! 이렇게 기쁠수가! ^-^

 



 

-청동기: 민무늬 토기

청동기시대의 특징적인 토기로 알려져 있다. 신석기시대에 유행하던 빗살무늬토기가 청동기시대에 들어오면서 점차 소멸하고 대신 각지에서 다양한 모습의 무늬없는 토기가 널리 사용되었다. 민무늬토기는 빗살무늬토기에 비해 대체로 태토가 정선되지 못하고 기벽이 두터우며, 노천에서 낮은 온도로 구워졌기 때문에 흔히 적갈색을 띠고 있다. 기형의 측면에서 볼 때, 빗살무늬토기는 뾰쪽바닥과 둥근바닥이 많았지만 민무늬토기는 대부분이 납작바닥이라는 점이 큰 특색이고, 아울러 그릇에 목이 달린 토기가 많아진 것도 특색의 하나이다. (네이버에서 검색)

 



민무늬 토기의 모양이 이렇게 다양하다는 것에 세삼 놀랐습니다. 저 나름대로 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공부 열심히 할려고 노력했던 것 같은데.... 민무늬 토기의 모양이 이렇게 여러가지 인줄은 몰랐습니다. -_-; 
위의 그림을 보았을 때, 아래 사진의 모양이 전부 인줄 알았다는 것이 참으로 부끄럽게 여겨졌습니다.

 



 

-청동기: 거푸집

 



한국에서 발견된 거푸집으로서 가장 알려진 것은 기원전 2~3세기에 칼·방울·도끼·거울·낚시바늘 등의 청동기 제작에 사용된 것들로서, 그 중 전남 영암에서 발견된 것은 이 시기에 고도로 정교한 청동기가 제작되었음을 말해준다. 청동기를 제작한 거푸집 중에는 한 번에 여러 개의 도구를 제작할 수 있도록 여러 도구의 형태를 하나의 거푸집에 새긴 것들도 있다.

거푸집의 제작은 금속기를 대량으로 주조하였음을 뜻하며, 그러한 금속기의 대량생산은 사회경제적으로 생산력의 급격한 증대를 가져오기 때문에 사회경제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발전이 있었음을 뜻한다. 또한 거푸집 하나에서 동일한 금속제품이 여러 개 제작되기 때문에, 금속기 제작의 중심지와 금속기의 분포양상을 통해 사회경제적 조직구조를 알 수 있는 증거가 된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거푸집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항상 궁금해하던 유리의 기원이 거푸집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유리를 제작하기 시작한 시점은 기원전 2세기 초로 처음에는 봉에 찍거나 감아서 유리를 제작했으나 원삼국 시대 이후에는 주로 거푸집을 이용하여 유리를 제작했다고 합니다. 전남 해남에서 발견된 유리 유물을 눈으로 확인하였습니다. 아래 사진은 유리를 이용하여 제작한 목걸이 입니다.  너무너무 아름답지 않습니까? +_+ 와우!

 



 

잠시!!!!



이 사진은 박물관을 관람하다가 잠시 지쳐서 앉아 있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머리가 왕따시 크게 나와서 마음에 안드는 사진이지만. 으흐흐흐 (에어리언 같지 않나요? ㅠ_ㅠ)

지금 제 표정이 이 사진의 표정과 사뭇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벌써 새벽 1시를 향해가네요. 저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교재모임에 참석해야 합니다.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
다음에는 삼국시대와 그 후 시대의 유물을 공부하려합니다.

 

긴 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내일이 벌써 또 월요일이네요. 행복하게 한주를 시작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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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5-11-14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자세하게 정리해 주셨네요. 전 오늘 쯤 가볼가 했더니 월요일이네요. ^^

바람돌이 2005-11-14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이게 제가 정리한게 아니고요. 가시장미님이 갔다가 정리하신걸 제가 퍼온거예요. 댓글은 가시장미님께..... 헤헤 ^^

국경을넘어 2005-11-14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잘 보시구요. 실은 이전에 나누기 행사하시는 것 보고 잘 받았다는 건 알았는데 미처 답글은 달지 못했습니다^^ 시절이 하수상하다보니 -.-;;(이런 나약한 변병을) 이번 주에 국립중앙박물관을 가보려고 합니다. 바람도 쐴 겸해서...

바람돌이 2005-11-15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폐인촌님 덕분에 나누기 행사도 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 감사....
근데 이번주에 가시려구요. 박물관 안에는 따뜻해서 바람은 안불터인데.... 하여튼 잘 다녀오세요. 갖다와서 도움이 되는 얘기들도 많이 해주시고요. 글구 지금 박물관에 사람 무지 많답니다. ^^

가시장미 2005-11-16 0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제 페이퍼 옮겨주셔서 감사드려요. 으흐흐흐 (1)편인데.. 이렇게 홍보를 해주시니 (2)편 쓰는 것이 부담을 느끼게 되지만서도. 써보렵니다. 오늘 잠도 안오는데 (2)편은 고구려로 정하여 써볼까 합니다만. 잘 될 수 있을지.. ^-^; 헤헤

바람돌이 2005-11-16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닛 장미동상!! 내가 필요해서 옮긴걸 무슨 인사씩이나.... 오히려 내가 고맙지 뭐 헤헤~~
 
 전출처 : 진/우맘 > 바람돌이님, 연우가 고맙다네요~^^



어라, 뭐 이런 걸 다.....(갑작스런 선물에 어리둥절한 연우^^)


호오, 책이 참 멋지군요!!!


바람돌이이모, 고마워요~ 자, 특별히 내 손가락 한 번 빨아보도록 해줄게요~(아직도 손가락을 빠는...연우입니다.^^;;;)

그리고......연우책만 왔느냐, 아니지요~ 제 선물도 들어있었습니다.


자, 어제와 뭔가 다르지 않습니까? 똑같다구요? 에이, 잘 봐요~~~~




유후~ 섹쉬한 내 입술~~~ 젤리틴트 레드미니스커트랍니다.

바람돌이님,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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