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즐거움>을 리뷰해주세요
노년의 즐거움 - 은퇴 후 30년… 그 가슴 뛰는 삶의 시작!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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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늙을텐데, 그리고 정년퇴직이란걸 하게 되면 그 이후에도 참 오래 살아야 할텐데 우리 그때는 뭘하고 살까?
이런 질문을 부부사이에 하게 되었다는거, 이건 우리가 꽤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일테다.
이 뭘하고 살까에는 노년에 대한 불안감이 서려있다.
평균수명만큼 살아준다 가정하고 하는 이 고민에는 20년이 넘는 그 긴시간을 어떻게 먹고 살까에 대한 불안감이 스며 있는게 사실이다.
이 책에서도 얘기하듯이 우리 세대가 노년을 자식에게 기댈 수 있는 세대는 아니지 않은가말이다. 그렇다고 자식에게 기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거나 그래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건 노인 인구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테고 나 역시 그 노인 인구에 숫자를 보탤터인데 그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우리나라에는 없다는 것에 대한 불안일터... 

솔직히 서평단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 기뻤다.
나의 저 막연한 불안을 해소해줄 또는 좀 더 즐거운 마음으로 노년의 나의 삶을 상상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
또는 늘어나는 노인 인구에 대한 특히 저소득층 노인 인구에 대한 어떤 대책들이 필요한지...
나아가서 자식의 사교육에 모든 걸 올인하면서 자신들이 직업없이 살아갈 노후 20-30년간에 대한 대비는 전무한 오늘의 한국 사회에 대해 뭔가 진단과 처방을 내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 말이다.
더구나 한국학의 대가라고 하는 저자의 약력과 얼마전에 독서에 관한 책까지 펴냈던 약력이 이런 기대를 증폭시켰다.
하지만 결론은 전혀 기대에 못미친다는 것.  

老라는 글자, 그리고 그 글자가 빚어내는 수많은 말들
노인 노년 노숙 노장 등등등...
그 말들에는 노인을 비하하고 늙음에 대해 두려워하고 조롱하는 말도 있는 반면 원숙하고 깊어가는 노년의 멋을 표현하는 말도 있다. 그것은 어느 세대에 가든 어떤 말이든 모든 것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면일뿐 老라는 글자 하나에 국한 된 것은 아닐테다.
그럼에도 저자는 이 글자들에 대한 풀이를 통해 그저 바람직한 노년의 모습을 추상적으로 풀이하고 있을 뿐 뭔가 특별한 노년의 삶에 대한 비전은 찾아보기 힘들다.
또 한편으로 저자처럼 적당한 경제적 여유와 옛 선비들처럼 낙향하여 안빈낙도 하는 사람이 알 수없는 수많은 노인들은 어떤 비전을 가지고 살아야 할까?
별로 어렵지도 않은 그렇다고 두껍지도 않은 책이 그렇게 진도가 나가지 않는건 결국 구체적인 공감이 힘들었던 때문이 아닐까?
혹시 내가 이렇게 공감이 힘들었던건 내가 아직 노인이 아니어서인지도 모른다는건 일단 여운으로 남겨두자. 그거야 말로 내가 노인이 되기 전엔 알 수 없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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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9-07-20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살뻔 했는데 말이죠~ ^^

바람돌이 2009-07-20 23:46   좋아요 0 | URL
글쎄요. 사람마다 책을 마음에 들어하게 되는 이유는 제각각이니... 그냥 제 기대와 다른 것이었겠죠. ^^
 
<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를 리뷰해주세요.
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
권진.이화정 지음 / 씨네21북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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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소원 중에서 실현 불가능한게 하나 있다면 그건 다른 나라 가서 한 2년만 살다오는거다.
거의 실현가능성이 없지만....
내 직업상으로는 노력만하면 일본쯤은 가능한데, 그 노력이란게 일본어능력이니 외국어라면 바보수준에 가까운 내 수준과 능력으로는 언감생신이다.
그래서 주변에서 제일 부러운게 남편따라 한 2년 나가게 된 여자들이라나? ㅎㅎ 

이 책은 역으로 외국에서 우리나라에 와 짧게는 4년 길게는 10년도 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한 기록이다.
아 그런데 제목에는 유감있다.
이 책에서 보면 미국이나 일본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 코트디부아르, 독일에서 온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이 이 제목을 보면 기분이 어떨까?
솔직히 내가 인터뷰이였다면 만들어진 책의 제목보고 황당했을듯....
아무래도 뉴욕이나 도쿄가 좀 세련되보이니 판매를 위해 제목을 이렇게 단 듯한데 솔직히 실망스럽다.  

자신의 나라가 아닌 생김새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그런 나라에서 산다는 것.
그건 어떤 의미를 가질까?
미국에서 온 작가 젠 아이비는
무리에서 떨어져 사는건, 이방인이 되어 사는 건 철저하게 자신을 지키기에 가장 쉬운 방법이에요. 여기에서의 예를 들면, 한국인들은 내게 한국인이 될 것을 젼혀 기대하고 있지 않아요. 그런 부분에서 난 자유롭죠..........이렇게 자신의 문화 밖을 경험하며 살면 원래 자신의 문화를 더 상세히 인식하게 되요.
도쿄에서 온 아티스트 곤도 유카코는
일본에 살 땐 주로 자기와의 대화를 계속 했단 거지요. 그런데 외국에서 살면 자신보다는 외부에 관심을 가져야 하죠. 그러다 보니 일상생활의 여러 면들이 자기 안에 들어오게 되지요......일상의 모습들을 더 자세히 관찰해 나를 발견하고, 지금 자신이 있는 세계를 생각하는 것이 오리지널리티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하지요. 
얼핏 다른 얘기를 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결국 같은 얘기의 다른 표현이다.
온갖 관계로부터 일정정도 자유로워지면서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더 자유로워진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또 역으로 이들을 통해 우리 자신을 더 잘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책 속 인터뷰이들은 공통적으로 한국의 사라져가는 풍경들에 대한 아쉬움을 강력하게 표현하다.
내가 서울에 살지 않으니 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대충 분위기만으로도 짐작이 가는 풍경들
지금은 재개발의 광풍으로 점점 사라져가는 공간들 또는 이미 사라져버린 곳들
재래시장과 인사동, 홍대앞, 의릉산책길, 낙원동 뒷길, 북촌 등등...
우리들은 너무나도 익숙해 오히려 생활의 불편함을 말하는 공간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들...
어쩌면 이건 당연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몇 번 안되는 해외여행에서 가장 흥미로운 곳은 재래시장이었던 기억이 있다.
재래시장과 뒷골목은 언제나 그곳의 화장하지 않은 맨얼굴의 진짜 삶이 있는 곳이다. 

인터뷰이가 어떤 나라에서 왔는지에 따라 생각의 차이가 참 뚜렸했다.
대부분인 백인들이 한국사람들은 참 친절하다든가 오랫동안 사귀면 정이 많은 사람들이라든가 하는 말을 늘어놓을때 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에서 온 댄스강사 바또 브레이즈는 흑인에 대한 근거없는 불신때문에 받은 상처를 얘기한다.
그는 한국의 문화가 어쩌고 하는 얘기를 할 여유가 없다.
다만 한국 사람들이 춤을 참 빨리 배운다는 얘기를 할 뿐.... 그는 여기가 참 힘든 일터이고 여건만 된다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이다.
어디에서 왔는지가 우리가 그들을 대하는 눈이 되고 그것은 그대로 그들에게 읽혀진다.
직접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우리 자신을 다시 돌아보아야 할 부분이다. 

아쉬움이 있다면 인터뷰이의 선정에 좀 더 다양한 국적안배를 했다면 하는 것.
우리가 볼 수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 더 많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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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9-06-15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외국에 나가서 살아보고 싶은 희망 사항을 가지고 사는 1인입니다. ^^

바람돌이 2009-06-15 16:40   좋아요 0 | URL
글샘님은 외국어 능력 안되시나요? 님이나 저나 과목으로는 가능성이 충분한데 말입니다. ㅎㅎ

2009-06-15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16 08: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09-06-21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일본에서 살아보고 싶어요. 딱 1년만 ㅎㅎ
시험을 보고 갈 수 있긴 하더만 요즘 젊은 직원덜은 프리토킹이 가능하다고 하니 언감생심 2입니다.

바람돌이 2009-06-21 23:14   좋아요 0 | URL
외국어 영역 지진아가 접니다. ㅠ.ㅠ
저는 일본 아니라 아무데라도 좋아요. ^^
 
읽어주며 키우며
강백향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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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책을 읽을까?
나에게 물으면 대답은 너무 간단하다.
때로는 필요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필요든 아니든 어쨌든 그게 즐거우니까...

그렇다면 다시 물어보자.
아이들에겐 왜 책을 자꾸 읽어주지?
그리고 왜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랐으면 하고 바랄까?
아이들이 책을 보면서 행복해지길 바라니까 - 이게 정답이다.
근데 말이다. 그렇게 말하고 맘속을 조금 더 들어가보면 거기에는 고약한 욕심들이 또아리를 치고 있다.
아 책을 많이 읽으면 지식도 늘어나고 독해력도 늘테고 그러면 저절로 공부도 좀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좀 깊어지고 남을 배려할 줄도 아는 아이로 크지 않을까?
어릴때부터 책을 많이 읽으면 나중에 논술같은 것도 알아서 좀 해주지 않을까?
하여튼 뭐 이런 욕심들이 내면에 있다는걸 어찌 부정하리오...

근데 참 말하고보니 웃기네..
나는 즐거워서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에게는 그 이상의 무엇을 은연중에 요구하는 꼴이니말이다.
아 우리 애들이 엄마의 이런 욕심을 눈치챘으면 안되는데...

이 책의 저자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자 두 아이의 엄마다.
두 아이와 학교의 아이들과 같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즐거움들이 이 책의 내용이다.
거기에는 흔히 나오는 이렇게 하니까 저절로 공부를 잘하게 되더라식의 이야기를 하자는게 아니다.
책을 통해서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소통하게 되는 이야기들이다.
책 읽는 즐거움을 알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소복이 담겨있다.
정말로 아이들과 같이 책을 읽는 것의 기쁨이 무엇일까?
그건 소통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책 속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즈음에서 나도 다시 한번 내 속의 욕심들을 비울 일이다.
우리 아이들이 눈치채기 전에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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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 권리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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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존재와 나 자신 사이의 어떤 것이다. 어떤 점에서 그 둘은 같다. 온전하게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길이 바로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는 길이다. 내가 망명에 성공한다면, 내게 남는 것은 여권에 나와 있는 그 생물학적인 존재, 단독자적인 존재임이 분명하다. 내게는 이름과 성별과 나이와 국적만이 남을 것이다. 그게 바로 내가 꿈꾸는 다른 존재다. 공항에서 비행기표와 여권만 들고 출국심사대를 빠져나갈 때마다 나는 거의 다른 존재가 된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 착각은 참으로 감미롭다. 그런 점에서 공항은 환각의 극장이며 착각의 궁전이다. 그리하여 공항은 마침내 삶에 대한 절절한 역설이 되는 셈이다. 맞다. 덧없이 반복적으로 스쳐가는 것들만이 영원하다. – 289쪽

 여행 그리고 그 출발점 공항 또는 정류장, 기차역 모두 기대와 설레임의 단어들이다.
그것이 기대와 설레임인것은 결국 내가 아닌 나를 만나는 시작점이기때문이리라....
나를 규정하는 모든 것들 - 가족의 틀, 지위, 일상의 지겨움, 나를 아는 것들로부터의 안녕이라는 것.
나라는 존재의 외피를 모두 벗어버린다는 것은 물론 설레임보다는 두려움일터,
기대와 설레임의 여행은 결국 돌아올 곳을 준비한 벗어남일테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럼으로써 나를 좀 더 객관화시켜 볼수 있는 것?
아니 그것만은 아닐것 같다.

작가 김연수는 국경이라는걸 가져보지 못한 우리의 비애를 얘기한다.
동, 서, 남으로는 바다뿐인, 그리고 북으로는 결코 갈수없는 휴전선으로 막힌 섬나라 한국.
이곳에서는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며 나와 타인을 같이 바라보며 사고를 확장하거나,
자신을 타자화함으로써 자신속에 갇힌 세계관을 벗어나는것이 자연스럽게 생겨나기를 기대할수 없다.
기껏 이곳을 벗어나려면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하거나
아니면 월북이다.
둘다 이것은 공동체로부터의 이탈이며 배신이라는 굴레를 뒤집어써야 한다.
자유로운 월경이 봉쇄당한 곳.
그래서 늘 우리를 강조하며 우리속에 있을때만이 모든것이 좋아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곳.
이 공간을 탈출하는 것이 여행이다.
그렇다면 이 여행은 단순히 지리적인 이동만을 의미하는 것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아니 설사 지리적인 이동을 하더라도 늘 김치와 고추장을 싸다니고 우리끼리 우루루 패키지로 몰려다니며 그래도 우리께 제일좋아, 집이 제일 좋아를 연발하고 다닌다면 그건 그저 지리적 이동일뿐이다.

작가는 지리적인 여행속에서 이런 월경의 경험을 끊임없이 환기시키고자 한다.
해방후 일본에서 조국으로 돌아와 부산항 앞의 닥지닥지 붙은 초라한 집들을 바라본 작가의 어렸던 아버지는 평생을 여긴 내가 있을데가 아닌데라는 심정으로 살았단다.
그러면서도 우리속에서 내처질까봐 그 마음을 한 번도 표현하지 못하고 살았단다.
그분에게 지리적 국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의 고향은 바다 건너 저편인데....
그런 마음을 억압하는 섬의 비애
그것을 벗어나는 것이 그리고 그 마음을 알아주고 표현해주는 것, 그럼으로써 민족이니 국가니 하는 것의 강고한 압박을 벗어나는 것
그 틀에 갇혀 나와 또다른 나들을 사고하지 못하는 정신의 감옥을 벗어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작가 김연수의 여행이리라...
그리고 여행할 권리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일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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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 권리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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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국경을 넘어 다른 민족 속으로 들어가, 이윽고 사라지는 유전자가 존재하지 않으니까. 종교의 자유를 찾아 신세계를 향해 떠난뒤, 거기서 다시 돌아오지 안은 선조들이란 도무지 우리에겐 없으니까. 결국 모두 돌아왔으니까. 결국 자살이 아니면 월북뿐인 셈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비행기나 선박의 도움을 받지 않고 그 수평선 안쪽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란.-13쪽

"모든 건 너에게 달린 문제다. 네가 여기서 살고 싶다면 너는 여기서 살수 있다."
"아니 비자문제도 있고."
내 말에 후사꼬 할머니는 눈가의 주름이 보이도록 웃으면서 "그게 무슨 상관이냐?"며 반문했다.
"지금 캘리포니아에 사는 사람들도 한때는 모두 불법체류자들이었어. 그런건 상관없어. 네가 살고 싶다면 너는 살 수 있는 거야."
그러니까 버클리에서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일은 이처럼 간단했다. 먼저 자신이 원하는 삶만 알아내면 된다. 그다음에는 그냥 살면 된다. 그러면 나는 어떤 삶을 원하는가?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101쪽

뭔가를 찾아 영구 운동하지 못하는 문학, 영구 망명을 꿈꾸지 못하는 문학은 결국 내가 생각하는 좋은 문학이 될 수 없었으니까.-159쪽

한번도 경계를 넘어서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속한 세계와 다른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납득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계관이란 그런게 아닐까?-167쪽

그런 까닭에 작가는 씸퍼사이저 이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 이상이 되는 경우, 작가는 사상가로 바뀌면서 '국내'라는 것에 집착하게 된다. 국내란 중심을 향해 응축되는 공간이다. 진지한 문학이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낯설게 만들어 자아를 끊임없이 재해석하게 만드는데, 국내용 문학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자신들이 아는 세계에 맞게 자아를 만들어내면 되는 일이니까. 그러고 나면 경계선 바깥은 모두 타자가 된다. 국내용 문학이 하는 일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169쪽

정치적으로 봤을때, 말할 수 있는 것들은 존재가 그 목소리로 증명된다. 반대로 말하지 못하는 것들, 즉 입술이 없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대신해서 말한다는 점에서 문학은 본디부터 정치적이다. -198-199쪽

저항적이건 공격적이건 모든 민족주의는 '국내용 사상'이고 '지역적 사상'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야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중국인 가게를 공격하면서 기염을 토할 수 있었겠지만, 국경만 넘어가면 상당히 곤란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1930년대 만주지역에서 활동하던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은 민족주의자를 친일파와 동일시했다. -215쪽

공항에서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존재와 나 자신 사이의 어떤 것이다. 어떤 점에서 그 둘은 같다. 온전하게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길이 마로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는 길이다. 내가 망명에 성공한다면, 내게 남는 것은 여권에 나와 있는 그 생물학적인 존재, 단독자적인 존재임이 분명하다. 내게는 이름과 성별과 나이와 국적만이 남을 것이다. 그게 바로 내가 꿈꾸는 다른 존재다. 공항에서 비행기표와 여권만 들고 출국심사대를 빠져나갈 때마다 나는 거의 다른 존재가 된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 착각은 참으로 감미롭다. 그런 점에서 공항은 환각의 극장이며 착각의 궁전이다. 그리하여 공항은 마침내 삶에 대한 절절한 역설이 되는 셈이다. 맞다. 덧없이 반복적으로 스쳐가는 것들만이 영원하다. -2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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