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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학교 - 달콤한 육아, 편안한 교육, 행복한 삶을 배우는
서형숙 지음 / 큰솔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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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다시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는 일이 잦아졌다.
마음 하나 바꾸고 생각하나 바꾸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내가 몸이 힘들거나 바쁘거나 하게 되면 쉽게 아이를 다그치고 소리를 치며 나무라게 된다.
그러고 곧 후회하고 자책하는 일의 반복!
결국 내게 육아서는 이럴때 내리는 처방전이다.
다 아는 내용인데도 읽어주고 나면 한동안은 다시 약발이 먹힌다.
소리지르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책의 내용은 사실 새로운건 없다.
왠만한 육아서에서는 다 얘기하고 있는 것들.
그럼에도 이 책이 다른 책에 비해 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것은 아마도 저자가 자신의 아이를 직접 키우면서 그것도 남들보기에 아주 좋아보이게 잘 키워냈고 그 과정을 얘기한 것이기 때문일게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교육경험이란 것.

뭐 어떻게 보면 자기 자랑과 자식 자랑이 너무 심한 것 아냐라고 삐딱선을 타고 볼 수 있는 면도 좀 있고...
그럼에도 원칙의 문제
아이의 행복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하라는 교훈은 늘 옳다.

근데 정말 내가 맘에 들었던 것은 책의 내용보다도 바로 제목에 있다.
엄마 학교라니...
정말 엄마 학교가 아니 부모학교가 있었으면 좋겠다.
부모가 된다는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가를 알게되고
더더욱 그 부모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책임인가를 깨닫게 되면서는 말이다.
그래서 요즘 우리나라 정책에서 정말 되었으면 싶은 것이
아이를 임신하면 부모 모두 최소 일주일 정도라도 부모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했으면 하는 것.
내가 전에 받았던 PET교육같은 것 말이다.
부모가 되는 것의 중요함을 사회가 같이 인식하고 그것을 국가 예산으로 충당하는 것이 당연시 되는 사회.
직장에서도 당연히 그 시간을 유급휴가로 내어줄 수 있는 사회.
이런 것들을 진정한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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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2-13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흔들리는 추가 정지상태가 되면 순간적으로 사라진다고 현대물리학에서는 이야기하나봅니다.
자신의 생각이 멈춘 곳에서는 자신이 사라지는 것과도 같지요.
그러면 우리들의 집착과 욕망도 쉬는 공간이 됩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더군요.
그래서 순간순간 마음을 돌리는 자리가 필요합니다.
제대로 된 부모노릇 할려면 제대로 된 사람이 되어야 하고
제대로 된 사람이 되려면 자기를 바로 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님의 말대로 제목이 좋군요.
학교에선 교사학교이기도 하겠군요...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때문에 교사가 성장하는 것은 아닌지...
보관함으로..

바람돌이 2007-02-13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굳이 보관함으로 넣어야 할지는 모르겠고요. 그냥 제겐 이런 책이 일종의 마음을 다시 비우고 가다듬는 역할 정도지 저 책에서 말한대로 꼭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라서.... 어떤 사람들은 이 책을 보고 맞아 이렇게 하면 저자처럼 아이들 대학을 잘 보낼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싶어요. 일종의 부작용!! ^^
제대로 된 사람이 되려면 자기를 바로 보아야 한다는 님의 말이 더 맘에 와닿습니다.

미설 2007-02-14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주기적으로 한번씩 읽어줄 필요를 느낀다는...

홍수맘 2007-02-28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님처럼 마음을 비우고 가다듬을 필요가 있을 때 봐야할까봐요. 일단 보관함으로 보내봅니다.

바람돌이 2007-02-28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수맘님 굳이 이 책이 아니더라도 육아서의 대부분은 부모의 마음 수양을 위한 책 아닐까요? ^^

2007-03-03 0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7-03-03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인님/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지만 맘에 안드는 부분도 많아요. 애들 키우는덴 정답이 없기 때문이겠죠. ㅎㅎ
 
프라하의 소녀시대 지식여행자 1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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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었나보다.
평온한 삶을 꿈꾼다.
20대에는 평온한 삶이란 그저 약간의 비아냥이 섞인 무시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평온한 삶을 꿈꾼다.
나의 노동으로 하루 3끼 걱정을 하지 않고 아이들이 아플때 병원갈 돈이 있고 내가 정직하게 성실하게 사는만큼만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나를 대해주고....
거대 국가나 역사의 소용돌이는 제발 내가 살아있는동안 피해줬으면 싶다.
국가나 민족의 경계란게 없어지면 더더욱 금상첨화겠고....

하지만 이놈의 평온한 삶이란게 꿈이라는걸 알만큼은 또 나이가 먹었다.
나의 평온한 삶에의 꿈은 언제 어디서든 너무나도 쉽게 한점의 바람에도 깨질 수 있는 결코 소박하지 않은 소망이란 것.

세명의 소녀가 있다.
그네들의 배경은 전혀 평범하지 않다.
민족과 출신국가는 다르지만 모두 국제적인 혁명전사들을 부모로 가진 아이들.
그나마 그들은 역동의 시대에 살아남을수 있었던 엄청난 행운을 가진 부모의 아이들이다.
프라하라는 낭만의 냄새가 풍기는 도시에서 그들은 노동자당 국제정보국에 파견근무를 나간 부모를 따라 소녀시대를 보내게 된다.

열전은 잠시 숨을 들이킨 냉전시대에 다행히도 소녀들은 평온한 삶을 산다.
완전히 평범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특별한 것도 아닌 그런 소녀시절.

몇년이 지나고 모두들 각자의 삶을 찾아 헤어진 후 그 소녀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네들의 부모가 국가나 이데올로기와 전혀 무관할 수 없었던 것처럼 그녀들의 삶역시 그 중간 어딘가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삶을 산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조국 그리스를 너무나도 그리워하던 리차는 그리스에 돌아가서 정착했을까?
한 때 혁명전사였다는 생각을 전혀 못갖게 하는 아냐의 부모에 의해 원래 공산주의자란 그런 특권적인 계층이라는 것을 뼛속깊이 각인시켰던 아냐는?
20세기 마지막 최대의 고통의 땅 - 유고슬라비아를 고향으로 가진 야스나는 살아남기는 했을까?

소녀들의 삶은 전혀 평온하지 않다.
그들을 둘러싼 이데올로기의 세상은 그들을 그들 자신이 꿈꾸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으로 그네들을 인도한다.
그속에서 새로운 삶의 방법을 발견하기도 하고,
또는 끝없는자기 기만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기도 하고,
삶 전체가 산산히 부서지기도 한다.

부디 세상이 좀 더 평온해지기를...
소녀의 꿈이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그 무엇이 되기를...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자리가 항상 싸움의 자리가 되어야함을 잊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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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2-13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명깊게 읽고 갑니다. 이 책 그전부터 좋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이제야 바람돌이님 서평보고 보관함에 담아 둡니다. 감사합니다.

바람돌이 2007-02-13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만한 소설보다 흥미진진해요. 추리소설도 아닌데 뒤가 궁금해서 도저히 책을 놓을 수 없어 단숨에 읽었다니까요. ^^
 
천양희의 시의 숲을 거닐다 - 시에서 배우는 삶과 사랑
천양희 지음 / 샘터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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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소설이나 수필같은 산문과는 달라서
시집 한 권을 다 읽고 그 중에 나의 마음을 울린 시가 단 한편이라도 있다면 그 시집은 내게 최고의 책이 된다.
어려운 말로 뭐라 하는 평론가의 말이 그다지 맘에 들어오지 않는 분야가 시이다.
시란 그야말로 인간의 마음을 위로하기도 하고 때리기도 하며
마음속 가장 깊은 곳을 두드리는 글이기 때문일게다.

그런 시의 숲속에서 사는 이는 가난해도 고통스러워도 행복할 것이다.
천양희씨는 시의 숲에서 건진 아름다움들을 시인의 이야기와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담담히 풀어내고 있다.
물레에서 실이 자아져 나오듯이 술술 풀려나오는 시들의 이야기는
그 물레를 젓는 이의 노동을 잊게 한다.
그저 쉽게 마음 편하게 시의 숲으로 이 실을 따라 가만 가만 따라오세요라는 속삭임이 들리는 듯하다.

그 수많은 시인들은 어떻게 그렇게 하나같이 삶이 고통스러웠을까?
삶의 고통을 알지 못하면 시인이 될 수 없는걸까?
고통속에서 탄생한 시만이 다른 이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것일까?
사람 하나의 마음을 사로잡는게 온 우주의 진리를 깨닫는만큼의 어려움이라는 것을 안다면
평범하고 안이한 삶에서는 다른 이의 마음을 휘어잡는 글이 나오기 힘든거겠지....
그래서 시인은 그냥 되는게 아닌가보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삶을 고민하고 싸우고 살아간 자만이 그런 영광을 누릴 자격을 갖게 되는 거겠지...

나같은 범인은 그저 그런 시인들의 시 한자락을 만난 것으로 고마울 따름이다.
시의 숲에서 시인을 만나고
삶의 고민들을 만나고
잊지 말아야 할 것들. 싸워야 할 것들. 보듬어 안아야 할 것들을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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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사이언티스트 - 에밀리와 볼테르, 열정의 과학 로맨스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최세민 옮김 / 생각의나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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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진보한 나라였으나, 지금 우리 눈으로 보면 기괴하기 짝이 없는 사회였다. 여성은 남편에게 채찍질과 매질을 당하기 일쑤였으나 법에 호소할 수 없었다. 동성애자는 공공장소에서 화형당하거나, 쇠갈고리고 몸이 갈기 갈기 찢긴 다음 쓰레기장에 버려지는게 다반사였다.  - 10페이지 들어가는 말 중에서...

유럽 그 중에서도 프랑스의 18세기는 계몽사상과 프랑스 혁명의 시대로 연상된다.
그 새로운 시대를 연 본격적인 출발점에 선 사람이 바로 볼테르이고...
이 책은 그러한 시대에 그러나 여성에게는 전혀 계몽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았던 시대를 배경으로
에밀리 뒤 샤틀레라는 한 귀족 여성의 삶을 추적해간다.

그녀는 요즘말로 빵빵한 귀족집안 출신이었으며 그 시대 소녀들이 다 그러했던 것처럼 집안의 정략과 적당한 거래의 결과로 결혼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영특했던 그녀는 그 시대 다른 귀족여성들이 화려한 궁정생활과 사치에만 눈을 돌리던 시절 그녀의 어머니가 미쳤다고 표현할 정도로 학문에 열정을 불태운다.
그리고 볼테르를 만나고 그와 사랑을 하고 과학을 연구하고 논한다.

과학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당시 프랑스에서 어떤 남자보다도 뉴튼을 잘 이해하고 있었으며 빛의 성질을 연구하고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대한 논리를 발달시켜 나간다.
그녀의 연구는 후에 사진술 발명과 적외선 발견의 기초가 되기도 했다 한다.
조금 더 나아가면 아이슈타인의 저 유명한 공식 E=mc2의 제곱 개념도 사실상 에밀리의 연구에서 나온것이란다.

이렇게 대단한 여성이라면 과학사의 한페이지쯤 화려하게 장식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훨씬 후에 나타난 퀴리부인이 여자임에도 과학사의 중요한 한 장을 할애받는 것처럼....
하지만 불행히도 에밀리가 살았던 시대는 여전히 여성에게는 야만의 시대였다.
따라서 그녀는 그녀의 재능과 업적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으며
또한 볼테르에 가려버린 존재였다.

볼테르와 에밀리는 어떤 관계였을까?
그 둘은 거의 공인된 연인 - 정부관계였단다.
(여기서 당시 프랑스 상류사회의 결혼관이나 연애관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혼란스럽다. 결혼과 연애는 기본적인 몇가지의 룰만 지킨다면 전혀 별개의 것으로서 거의 무한대의 자유를 누린다.)
또한 둘의 연애관계가 평생을 오직 한사람만 바라본 지고지순한 것이었냐 하면 그것도 전혀 아니다.
서로에게 질리고 힘들어질때마다 그 둘은 각자 다른 연인을 찾아나섰다.

그럼에도 그 오랜 세월동안 둘을 묶어준 것은 학문과 문학이었다.
볼테르는 어떤 사람도 에밀리만큼 지적으로 그를 자극하며 새로운 페러다임의 문을 열어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에밀리 역시 누구도 자신의 과학적 견해나 연구를 볼테르만큼 잘 이해하고 인정해준 이가 없었다.
둘은 에밀리 소유의 파리 근교 시레이성에 둘의 연구실을 차리고 연인으로 학문적 동반자로 삶을 함께 한다.
물론 그들의 삶은 전혀 평탄하지않았다.
볼테르는 이 책에 의하면 영웅주의적 자만심이 심한 사람이었고
그의 그러한 면은 끊임없이 자신과 에밀리에게 위험을 닥치게 한다.
그러한 볼테르의 뒤를 늘 챙기고 사태를 해결하는 것은 늘 에밀리였고...

또한 문학에서는 에밀리가 따라갈 수 없는 볼테르였지만
과학과 수학에서는 정 반대였다.
둘의 상황이 안정적이고 연구와 실험이 초반에 진행되는 상황에서는 둘의 관계는 이상적일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 사랑의 콩깍지가 벗겨지고 삶의 자잘한 문제들이 그들을 괴롭힐때면 둘은 경쟁자로 돌변하기도 한다.
이 책에 의하면 볼테르쪽에서 더 그런 경쟁심에 시달렸다고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오늘날 계몽사상의 선구자로 추앙받는 볼테르의 인간사회에 대한 통찰이
바로 에밀리가 제기했던 과학과자연에 대한 통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뉴턴이 밝힌 자연의 질서를 연구하고 토론하는 과정은 인간사회에도 그러한 합법칙성이나 새로운 질서를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당연히 들게햇고 어쩌면 그것이 근대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여성의 역할이 가정내에서 남성의 보조적인 역할 이외에는 전혀 인정받지 못하던
아니 오히려 경원시되던 시대에 자신의 삶의방식을 스스로 선택한 에밀리는 시대의 선구자일 것이다.
하지만 볼테르는 선구자로 남았고
그녀는 아이를 낳다가 죽은 이후로 잊혀져갔다.

그녀의 삶은 당시의 다른 여성들의 삶과 비교한다면 굳이 불행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녀는 부자였고, 돈이 떨어질때면 베르사유 궁에서의 도박같은 걸로 보충할 수 있었고 또한 귀족이었다.
남편은 그녀의 삶을 인정했고
그리고 그녀에게는 볼테르라는 학문적 동지이자 연인도 있었다.
아마도 그녀가 불행했다면 그것은 천재적이었던 자신의 능력이 제대로 인정받을 수없는 당시의 사회구조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를 앞서간 여성의 삶 치고는 평온한 것이었다고 얘기한다면 에밀리에게 항의를 받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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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6-12-21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꾹 누지르고 갑니다. 잘 읽었습니다.
 
선녀는 왜 나무꾼을 떠났을까 - 옛이야기를 통해서 본 여성성의 재발견
고혜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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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 선녀와 나뭇꾼의 얘기를 들으면서 늘 궁금했었다.
선녀는 왜 나뭇꾼을 떠났을까?
이야기속에서 선녀는 나뭇꾼이랑 아들딸 잘 낳고 살다가 왜 왜 말이다.
어린아이는 언제나 해피엔딩을 바란다.(적어도 나의 어린시절은 그랬다.)
그리고 그 해피엔딩은 언제나 두사람은 영원히 행복하게 잘살았습니다였다.
그런데 그 해피엔딩을 버리고 나뭇꾼을 버리고 하늘로 날아가버리는 괘씸한 선녀라니....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 보는 전래동화는 다르다.
나뭇꾼은 무작정 선녀의 옷을 훔쳐버림으로써 선녀에게 어떤 선택권도 박탈했던 것이다.
선택권이 존중되지 않은 삶,
또한 백번 양보해서 그것이 사랑을 호소하기 위한 절박한 요구에서 유일한 대안이었다고 생각해준다 해도,
이후에 나뭇꾼은 천상을 날던 선녀의 삶을 존중해준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일방적인 강탈로서의 사랑은 아마도 선녀를 숨막히게 했으리라....
그래서 선녀는 당연히 날개옷을 보자마자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난 것이다.
선녀에게 박수를.....

어찌보면 우리 옛사람들, 옛 여인들의 맘속에 이런 설화가 살아남아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가부장제라면 세계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을 우리 민족 아닌가?
가부장제를 뒤흔들고 조롱하는 선녀에게,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을 놓치지 않고 후대에까지 기어이 물려주고 마신 할머니들에게 또한 박수를......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서양동화들을 새롭게 해석하고 분석하는 글들은 꽤 나왔었다.
그런 글들을 읽으면서 늘 가지는 아쉬움은 왜 우리 동화에는 이런 분석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거였다.
그런데 드디어 나왔다.
어렵지 않게 옛이야기를 조근 조근 풀어내며 이야기의 다른 측면들을 신나게 풀어내는 마당이 열린거다.

심청의 얘기는 우리가 어린시절 들었을땐 언제나 효녀심청이였다.
어른이 되면서 과연 그것이 정말 효일까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 뿐.
심청은 강요된 규범을 수동적으로 받어들이는 존재였지만
연꽃으로 다시 태어난 심청은 참 자신의 발견으로 자기 안에 만개한 생명의 힘을 마음껏 발하는, 기쁨과 신비로 충만한 완전한 여성으로의 탄생인 것이다.
이 여성성이 바로 심봉사의 눈멈으로 상징되는 어둠의 세계, 야만의 세계를 치유하는 힘임을 깨닫는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는 해님달님 이야기의 해석이다.
오누이가 오두막이라는 공간을 탈피하여 강제적이고 폭력적인 형태로 성장의 통과의례를 지내는 것으로 이야기를 해석하는 것은 참 수긍이 갔다.
또한 그 과정에서 오누이만이 성장통을 겪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 역시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것 같은 고통을 겪으면서 자식을 놓아주어야 한다는 해석 역시 의미심장했다.
사회 전체에 의한 통과의례가 사라지면서 제대로 어른이 되는 과정을 겪지 못하는 지금의 아이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해줘야 할까를 고민하게 만든다고나 할까?

또한 계모로 상징되는 나쁜 엄마로서의 이미지가 한 여성이 지니는 이중적인 측면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해석은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래 나는 좋은 엄마이기도 하지만 나쁜 엄마이기도 해.
죄책감 가지지마 모든 엄마들이 다 그렇게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걸 모르겠니?
그냥 인정하면 돼
인정함으로써 그 불편한 감정들에 정확하게 이름을 붙여보면 오히려 이런 감정들의 지배를 덜 받게 될거야.
계모의 마술을 푸는건 나쁜 엄마로서의 너의 감정을 자연스런 감정이라고 인정하는데서 부터 시작하는거야.

고혜경씨의 글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조금 과한 해석이 아닌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중반쯤에는 아하! 이런 면으로 생각할수도 있구나 탄식하고,
종반에는 내 속의 상처를 치유하는 느낌!!
작가와 함께 내 안으로의 여행을 아주 홀가분하게 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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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맘에 드는 책이었지만 아직은 모든 의견들이 삶에 완전히 밀착한 느낌보다는 추상적이라는 느낌이 많이 남아 별 하나를 뺀다.
하지만 우리의 이야기를 여성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본격적인 첫걸음이 떼어졌다는 점에서 이 책은 충분히 의의를 가질 수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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