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란다 나무의 아이들
사하르 들리자니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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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강의 <소년이 온다>와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들을 섞어놓은 듯하다. 그 둘보다 무게감과 깊이는 떨어지지만 민주화에서 희생된 사람들과 그 가족들에서 이야기라는 점에서 우리가 깊이 공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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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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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은 지 며칠이 지나도록 서평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이 책에 담긴 고통이 너무 크고 무거워서 그것에 대해 말하기가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해 좋은 서평을 썼는데 내가 서투른 글 하나를 더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냥 읽은 것으로 끝내는 것보다 감상을 조금이라도 적어야 남는 것이 있을 테니, 두서없이 몇 자라도 적어보려고 한다.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면서 5.18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보다, 제목만 들어왔던 『소년이 온다』가 5.18에 대한 소설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택시운전사>를 통해 희생자들의 시신이 안치된 병원 문앞까지 갔다면,  『소년이 온다』를 통해서는 그 병원 안으로 들어가 희생자들의 시신 앞에 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시신들 앞에서 눈을 돌릴 수 없다. 더 이상 시신을 놓을 자리도 없는 병원, 희생자들의 시신이 무더기로 쌓여 썩어가는 숲 속, 말하기도 끔찍한 고문들이 이루어졌던 취조실. 그곳에서 일어났던 일들, 희생자들이 죽었기 때문에, 또는 살아 있어도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증언될 수 없었던 일들을 책을 통해서나마 목격했다.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은 읽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고 역겨울 정도로 잔혹한데, 그 일들을 이야기하는 문장은 단정하고 정갈하다. 검열 때문에 배우들이 소리 내어 대사를 말하지 못하고 입만 뻥긋거려야 했지만 오히려 더 깊은 인상을 남긴 소설 속 연극. 그 연극처럼 이 소설은 고요하지만 큰 울림을 남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여기 직선으로 쓰러져 죽어 있는 아이들에 대해 선생에게 말해야 합니까? 
무슨 권리로 그걸 나에게 요구합니까?

 이제는 내가 선생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 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소설 속 증언을 수집하는 연구자에게 던져진 이 질문의 무게는 읽는 나까지 압도한다. 그저 종이 위의 글씨로 그때의 광주를 알게 되는 나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대답할 자격은 있을까. 하지만 적어도 그때의 광주를 잊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소년의 형은 아무도 내 동생을 더 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 주세요, 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그들을 모독하는 사람은 아직도 많다. 우리 어머니는 아직도 폭력배들이 사람들을 선동하는 바람에 광주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믿고 있다. 무고한 사람들이 죽은 것은 알고 있고 그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폭력배들까지 민주화 유공자로서 특혜를 받고 있는 것이 싫다고 하신다. 이제 30대밖에 되지 않은 선배는 페이스북에서 광주 민주화 운동이 북한의 사주로 일어난 일이라는 글을 공유한다. 무엇보다, 이 모든 일을 일으킨 장본인은 아직도 멀쩡히 살아서 자신이 저지른 짓을 그린 영화가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평범한 사람의 무지부터 가해자의 뻔뻔함까지 다양한 모독이 숨을 막히게 한다. 그러나 잊지 않는다면 이러한 모독들이 사라질 날도 꼭 올 것이라고 믿는다.

  학살이 오고, 고문이 오고, 강제진압이 오지만 소년도 온다. 응달진 길을 싫어해 늘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가자고 했던 소년이 온다. 소설 속 문장처럼 그 소년이 이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우리를 이끌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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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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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으깨어지게 만든 책. 수많은 사람들이 으깨어지면서도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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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생
프레드 울만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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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은글에 결말 스포일러 포함. 모바일과 앱 버전에서는 숨은글이 적용되지 않으니 스포일러 표시 부분 아래는 읽지 않으시면 됩니다.


 '안네의 일기'부터 '쉰들러 리스트', '이것이 인간인가'까지 나치의 유대인 탄압을 다룬 작품들은 수없이 많다. 이 소설도 그 수많은 책들 중 한 권이다. "그렇더라도 나는 이 얇은 책이 서가에서 영원히 차지할 자리를 찾아낼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는다."고 작가 아서 케스틀러는 자신있게 이 소설을 추천한다. 소설을 읽기 전까지 나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소설을 읽은 뒤에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 


 소설 본문은 한국어 번역판 기준으로 130페이지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책 크기가 작은 데다 글씨는 크고 여백은 넓으니, 글씨와 여백을 줄이면 100페이지보다 적을 수도 있을 것이다. 케스틀러는 이 짧은 소설을 왜 그렇게까지 극찬했을까. 소설이 남기는 여운이 소설의 실제 분량보다 몇 배는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1932년 2월에 내 삶으로 들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이 첫 문장으로 작가는 '그'에 대한 '나'의 감정을 함축한다. '그'는 '나', 유대인 소년 한스 슈바르츠가 평생 잊지 못하는 친구 콘라딘 폰 호엔펠스이다. 한스는 '내가 그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친구'를 꿈꾸고 콘라딘이 그런 친구라고 믿었다. 다른 동급생들이 자신에게 어떻게 대하는지는 신경 쓰지도 않고 콘라딘 하나만을 친구로 여겼고, 콘라딘에게도 한스는 유일한 친구였다. 둘이 함께 책을 읽고 아름다운 자연 속을 거닐며 둘만의 우정을 쌓아가는 모습은 더 없이 순수하고 서정적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콘라딘은 독일 귀족 가문 출신이고, 그의 부모님은 나치에 협조적이고 유대인을 혐오한다. 유대인에 대한 혐오는 스멀스멀 모습을 드러내고, 그들의 우정에도 금이 가기 시작한다. 유혈낭자한 폭력은 나오지 않지만, 두 친구를 갈라놓는 시대적 상황 자체가 거대한 폭력임을 보여준다. 둘은 1년 동안이라는 짧은 시간 우정을 나누고 그보다 수십 배는 긴 시간 동안 떨어져 있게 된다. 그러나 수십 년 뒤, 한스는 생각지도 못한 편지를 받게 된다.


  이 책을 보는 독자들은 하나 같이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런 서평들을 너무 많이 보아서 심드렁해져 있던 나조차도 마지막 문장을 보았을 때 심장이 멎는 기분이었다. 그 뒤에 어떤 사족도 붙지 않았기 때문에 마지막 한 문장의 무게감이 더 크게 다가온다. 아름다운 우정과 시대의 어두움이 교차하며 이어지던 이야기는 이 한 문장으로 강렬한 결말을 맞지만, 한스도 독자들도 그 뒤로 많은 감정들을 느낄 것이다. 어떤 군더더기도 없이 간결하지만 실제 분량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함축하고 있는, 한 편의 시 같은 소설. 이 소설은 독자들이 마지막 한 문장의 무게감에서 오래도록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 스포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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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호엔펠스, 콘라딘, 히틀러 암살 음모에 연루, 처형


  바로 이 문장이 많은 독자들을 충격에 빠뜨렸던 마지막 문장이다. 나치의 유대인 탄압을 피해 미국에서 수십 년 동안 살아 왔던 한스는 콘라딘과 함께 다녔던 학교에서 2차 세계대전 때 전사했던 동창들을 기리는 추모비 건립에 기부해 달라는 편지를 받는다. 그 편지와 함께 동창들의 행적이 적힌 인명부가 왔다. 일부러 콘라딘의 이름이 있을 H 항목만 빼고 읽다 다시 용기를 내어 H 항목을 읽는다. 그 때 이 마지막 문장이 나타난다. 


  그 뒤로 한스의 반응이나 뒷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독자들은 다만 짐작할 뿐이다. 콘라딘을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한스와 달리, 콘라딘은 유대인을 싫어하는 부모님 앞에서 한스를 모른 척 했었다. 한스가 자기 부모님 때문에 상처 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지만. 그리고 한스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에서조차 콘라딘은 자신이 나치를 지지한다고 이야기한다. 동급생들이 아무리 자신을 유대인이라고 놀리고 따돌려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한스도, 콘라딘의 마지막 편지에는 깊이 상처를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콘라딘의 마지막 선택이 더욱 더 큰 반전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콘라딘은 어떻게 히틀러가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까? 히틀러의 잘못을 깨닫고 그를 처단하겠다고 결심하는 데 한스에 대한 우정이 얼마만큼 영향을 미쳤을까? 한스가 콘라딘에게 배신당했다고 느끼고 그를 잊으려 노력하던 순간에도, 콘라딘이 한스를 위해 용기를 내고 한스를 위해 죽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콘라딘은 이미 죽었지만 콘라딘의 우정은 수십 년을 뛰어넘어 한스에게 전해졌다. 그것만으로도 둘의 재회(Reunion, 이 책의 원제이다.)는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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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생
프레드 울만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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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처럼 실제 분량보다 더욱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 소설. 마지막 한 문장이 주는 무게감에서 오래도록 헤어나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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