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봐 놓고 딴소리 - 드라마, 예능, 웹툰으로 갈고닦는 미디어리터러시 생각하는 10대
이승한 지음 / 북트리거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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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 도서의 장점은 교과서처럼 쉽고 친절하게 설명하면서 기억해야 할 점은 딱딱 짚어준다는 것이다. 이 책도 그렇다. 211페이지밖에 안 되는 분량에 판형도 작아, 마음 먹으면 하루 만에 읽을 수 있다. 알록달록한 일러스트가 중간중간에 들어 있어 지루하지 않고, 중요한 단어나 개념은 본문 옆의 작은 글 상자에서 설명해 본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거기에 청소년들에게 이야기하듯이 경어체로 서술하는데, 친근하고 유머 감각이 있는 문체라 더 쉽게 읽힌다. 이 책에서 언급한 콘텐츠 중 본 것은 영화 <검은 사제들>(2015) 하나밖에 없는데도 재미있게 읽었다. 오히려 내가 몰랐던 프로그램이나 이슈들을 알게 돼서 흥미로웠다.


  코로나가 한창 퍼지고 있던 2021년에 출간된 책이라 그때의 상황과 관련된 내용들도 꽤 많다. 드라마처럼 출연자의 표정 연기가 잘 보여야 하는 것도 아닌데, 방역 수칙을 준수한다면서 마스크를 벗고 촬영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 재난 주관 방송사인 KBS나 보도 전문 채널 YTN, 연합뉴스 TV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방송사가 음성 언어 발표자의 얼굴만 클로즈업해, 청각장애인의 알 권리를 침해했다는 이야기 등. 출간된 지 3년이 지나고 코로나의 영향력에서도 벗어나고 있는 지금으로서는 시의성이 떨어지지만, 오히려 코로나 유행 시기에 대한 기록으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또 다른 팬데믹이 터진다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문제도 있고, 장애인의 알 권리는 언제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청소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들은 성인 독자들 또한 기억하고 명심하면 좋은 것들이다. 미디어에 둘러싸여 살면서 미디어에서 보고 듣는 것으로 세계관과 가치관이 형성되는 것은 성인 독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 강조하는 '미디어 리터러시(미디어 독해 능력)'은 성인 독자들에게도 필요하다. 2020년 개정된 KBS 방송 제작 가이드라인에는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인물의 외모를 평가하지 말아야 하며 이를 조롱, 혐오의 대상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이주민의 어눌한 한국어 표현 및 행동을 구경거리로 묘사하지 말아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 있지만, 이 조항을 지키지 않는 프로그램들이 지금도 종종 보인다. '드라마는 드라마고, 예능은 예능일 뿐이니까 따지지 말고 그냥 재밌게 보자.'는 말을 하지 않고,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것이 미디어 리터러시를 기르는 길이다. 미디어 리터러시를 기르면 당장 미디어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미디어가 세상을 보여주고 표현하는 방식을 스스로 점검하고 반성하고 개선하게 할 수 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시각을 더 넓힐 수 있다. 그러니 저자가 잘 봐 놓고 하는 한소리를 성인 독자들도 귀 기울여 들으면 좋다. 허투루 보지 않고 잘 봤으니 한소리를 할 수 있는 거다. 우리도 대충 보지 않고 한층 더 나아진 미디어 리터러시로 보고 나면 우리만의 한소리를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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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개정증보판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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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안녕, 이렇게 같이 책 얘기하는 건 오랜만이네.

H: 그러게. 그런데 이 책 저자 이름, 어디서 많이 들어본 거 같은데.

B: 4년 전에 우리가 같이 얘기했던 책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의 저자야.

H: 아, 그랬지. 그런데 이 책 꽤 한참 전에 나온 책 같은데?

B: 나는 2016년 개정판으로 읽었긴 하지만 사실 2000년에 쓰인 책이 원서야.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는 손녀에게 들려주는 형식이었는데, 이 책은 아들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으니 두 책의 출간 시기 사이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있지.

H: 뭔가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네. 그런데 왜 갑자기 이 책을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

B: 예전부터 이런 책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도서관에서 읽을 책 찾다 우연히 이 책이랑 마주치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세계 시민으로서 읽어야 되는 책인데 여태 안 읽고 있었구나 싶었어.

H: 그런데 24년 전의 이야기인데, 지금 읽으면 시의성이 떨어지지 않을까?

B: 그렇긴 하지. 2016년 개정판이어서 편집자가 2000년 이후부터 2016년까지의 상황을 업데이트한 주석을 넣긴 했는데, 2016년도 벌써 8년 전이잖아. 그런데 근본적인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거 같아. 2022년 1월에 <위대한 수업>이라는 EBS 프로그램에서 장 지글러 교수가 강의를 했었거든. 그때 한 이야기와 이 책에서 한 이야기가 크게 다르지 않아. 물론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경험한 걸 이야기하니 이 책 내용과 겹치지 않을 수 없겠지만, 내 기억으로는 이 책을 쓴 시점 이후로 세계의 기아 문제가 나빠지면 더 나빠졌지 좋아졌다는 이야기는 없었던 거 같아.

H: 그렇다면 이 책을 읽는 의미가 없잖아.

B: 24년이 지났어도 나아진 건 없다고 절망하고 있을 수만은 없어.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금까지 계속되는 문제가 어디서 시작된 건지, 그런 문제를 만들어낸 사회 구조, 세상의 흐름은 어떤 건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지. 그걸 이 책이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어.

H: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에서 얘기한 것처럼 역시 자본주의가 문제겠지.

B: 맞아. 사실 이 지구에서는 120억 명이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된대. 그것도 한 명이 하루에 2400~2700칼로리는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그런데 하루에 10만 명이, 5초에 한 명씩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 문제는 아무리 식량을 충분히 생산해도 그 식량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배분되지 않는 거야. 당장 사람들이 죽어가도 자기들 이익이, 권력이 더 우선인 사람들 때문에.

그걸 막기 위해 법과 규제가 있는 건데, 그런 규제들을 다 풀면 세상이 알아서 잘 돌아갈 수 있다고 하는 게 자본주의, 더 정확히 말하면 신자유주의야. 자본 활동의 자유를 강조하고 정부의 개입은 최소한으로 줄이라는 과거의 자유주의를 계승한 거지. 장 지글러 교수는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 국제통화기금 등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치고 몇몇 소수의 다국적 기업들이 온 지구의 경제를 틀어쥐고 있어서, 기아와의 투쟁이 어렵다고 얘기해. 그런 사실들을 폭로해 왔기 때문에 다국적 기업들에게서 소송도 많이 당했다고 지글러 교수가 <위대한 수업>에서 얘기했던 게 기억나.

H: 진실을 말한 대가가 너무 무겁구나. 평생 그렇게 싸워오기 쉽지 않았을 텐데.

B: 엄청난 액수가 걸린 소송을 계속 당하면서도 지글러 교수는 다국적 기업과 그들이 주는 이익에 눈이 멀어 자국의 개혁도 중지시켜 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아. 그리고 뜬구름 잡는 식의 정서적인 대응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하지만 자신이 구호 현장에서 봤던 사람들에 대한 인류애는 잃지 않는 게 책 곳곳에서 느껴져. 온 세계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라도 더 전하려고 하거든. <위대한 수업>에서도 영양실조 때문에 노마라는 병에 걸려 안면 조직이 녹아버린 사람들의 사진을 직접 인쇄해 와서, 이걸 꼭 방송에서 보여달라고 했던 게 기억나. 그렇게 비싸지 않은 항생제만 사 먹어도 퇴치할 수 있는 병인데, 가난해서 걸린 병이라고 했었어. 정말 이건 꼭 알려야겠다는 열의와 간곡함이 느껴졌어. 구호단체의 일이 오히려 각 지역의 지배층들의 배를 불려주고 권력을 공고히 하게 되어버린다 해도, 그 어떤 대가도 한 아이의 생명에 비할 수 없다고 하는 데서 지글러 교수의 마음이 느껴졌어.

H: 그렇게 수십 년 동안 싸워왔는데도 세상은 여전한 걸 보면,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것 같다고 느껴지지 않을까?

B: 이 책의 마지막에서 부르키나파소에서의 농업 개혁이 실패로 끝난 것을 듣고 지글러 교수의 아들이 말해. 그러니까 결국 좌절과 절망만 남은 거냐고. 지글러 교수는 비극은 끝없이 반복되고 있지만,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지 못하게 하는 살인적인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해. 자국민들이 자기 손으로 자기 나라를 바로 세우고, 자기 나라 경제가 자립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고.

H: 공산주의를 시작한 사람들부터 최근의 개혁자들까지 도전했지만 계속 실패해 왔던 일이야. 늘 느끼는 거지만 현실은 참 구체적이고도 너무 굳건히 우리 앞에 서 있는데, 이상은 그에 비해 단순하고 너무 멀게 느껴져.

B: 체 게바라가 "우리 모두 현실주의자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품자"고 했잖아. 우선 이상을 높게 잡아야 현실을 그 이상의 50퍼센트, 70퍼센트, 90퍼센트로 점점 끌어올리지. 장 지글러 교수는 원래 인간은 자신 곁에 있는 가족, 일족, 이웃에게서만 연대감을 느꼈지만 국가를 세우면서 처음으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연대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해. 그렇게 인류가 질적으로 도약할 수 있을 거라고,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살고 인간적인 지구를 만들기 위해 한 걸음만 더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고 말해. 희망은 정의를 향한 인간의 불굴에 의지 속에 있다고. <위대한 수업>을 보면 그런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게 보여. 방송한 지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럴 거야.

우리는 뭘 할 수 있을까? 음, 예를 들어보면 선진국들에서 소고기를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그러니까 소를 더 살찌우기 위해 소들에게 풀 대신 곡물 사료를 먹이는데, 그런 축사의 연간 옥수수 소비량이 잠비아 같은 나라의 연간 필요량보다 더 많다고 하잖아. 우리가 고기를 조금이라도 덜 먹으면 그런 현상을 조금이라도 완화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글러 교수는 이 책에서 "인간은 다른 사람이 처한 고통에 함께 아파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이라고 했어. 우리가 세상의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문제를 기억하고 함께 아파한다면, 작은 것이라도 행동하고 실천하려 한다면 세상이 아주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이 책의 다음 개정판은 좀 더 희망적인 이야기로 채워졌으면 좋겠어.

* 종이책이어서 업데이트되지 못한 2024년 2월 현재의 상황

- 내전 기간인 1996년 적대 세력 수천 명을 포위해 굶어 죽게 만들었던 라이베리아의 전 대통령 찰스 테일러는 2006년 체포되었고 2012년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징역 50년을 선고받았다. 현재 복역 중이다.

- 현재도 기후 난민은 기존의 난민 정의(국적, 인종, 종교, 특정사회집단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 때문에 자국 내에서 박해에 이르는 차별을 받고, 그와 같은 박해 때문에 자국으로 돌아가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머물 수밖에 없는 사람)에 맞지 않기 때문에 난민으로 분류되지 않고 있다. 유엔난민기구는 '기후 난민'이라는 용어 대신 '기후 변화로 인한 강제 실향민'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 이 책에서는 2015년에 세계 인구가 71억 명이 될 것이고 그중 60퍼센트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2024년 현재 세계 인구는 약 81억 명이고 2021년 기준 전 세계 인구의 56퍼센트가 도시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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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할 자격 - 게으르고 불안정하며 늙고 의지 없는… ‘나쁜 노동자’들이 말하는 노동의 자격
희정 지음 / 갈라파고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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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고 했다. 일하지 않으면 살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일하고 싶다고 누구나 일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일할 자격’이 없으면 일할 수가 없다고. 그렇다면 이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 시장에서 ‘일할 자격’은 어떤 것들일까. 이 책에서 한마디로 요약하는 ‘일할 자격’은 ‘정상성’이다. 젊고 건강하고 신체나 정신에 이상이 없을 것. 어느 모로 보나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 저자는 ‘일할 자격’이 있는 ‘정상적인’ 노동자라는 개념 자체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밝히고, ‘정상’ 노동자의 범주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그들에게 ‘비정상’이라는 낙인을 찍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이야기한다.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며 월급이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삶. 이런 삶이 정상적이고 평범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런 삶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쏟는 노력은 비정상적이다.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을 수행할 능력과 자질이 있는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업무 외 시간에도 자기 계발에 힘쓴다. 순종적이면서 자기 주도적이라는 모순적인 인재상은 사실상 실현하기 불가능하니 그런 인재인 척 처세한다. 이렇게 끝없이 노력해도 눈에 보이고 수치화할 수 있는 성과가 있어야만 노력하고 있다고, 성실하다고 인정받는다. 슬프게도 그렇게 노력해서 이룬 성과는 너무도 기본적인 것이다.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것. 사회에서 정상적인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할까 봐 쉬지 않고 달리는 마음을 자기계발서는 동력이라고 포장하지만, 실은 불안이고 자본주의는 그런 불안을 먹이 삼아 성장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건강하고 성실하고 정상적인 노동자,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는 노동자는 우리 내면에 주입된 환상이고, 자본주의 사회는 그 환상을 동력으로 굴러간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돌아보면 이런 환상 속 모범적인 노동자상에 맞아떨어지지 않는 사람들, 정상의 범주에 들지 못하는 현실의 노동자들이 보인다.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고 퇴사를 반복하는 청년들, 미혼모, 정신 질환자, 자신도 노년으로 접어드는 나이인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더 나이 든 노인들을 돌보는 일로 떠밀리는 돌봄 노동자들, 과체중이어서 ‘자기 관리’를 제대로 못 하는 노동자로 치부되는 사람들, 현역병의 신체 기준에 미치지 못해 보충역이 된 사람들. 이들이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루는 ‘비정상’ 노동자들이다. 저자는 이들의 목소리와 이들이 처한 현실을 전할 뿐만 아니라, 무엇이 그들을 정상이라는 범주 밖으로 밀어내고 삶을 영위할 권리마저 위협하는지 분석한다.


  우리 사회는 노동자 자신이 정상적인 노동자, 쓸모 있는 몸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기 관리, 자기 계발이라는 미명하에 자신을 소진하도록 내버려 두거나 심지어 조장한다. 그러나 누구라도 나이가 들면 노쇠해지고, 언제라도 병에 걸리거나 사고로 장애를 가지게 되어 정상의 범주에서 밀려날 수 있다. 이 경쟁 사회에서는 그들을 보호하기보다는 그들을 대체할 새로운 노동력, 더 젊고 건강한 몸들을 찾는다. 국제노동기구(ILO)가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178개의 기술협약 중 현재 한국 정부가 비준한 것은 22개뿐이고, 한국 정부가 비준하지 않은 협약들에는 직장 내 폭력과 괴롭힘 근절을 위한 협약, 업무상 재해 급여에 관한 협약이 포함되어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뒷덜미가 서늘해지지 않을 노동자가 어디 있을까.


  저자는 말한다. “삶을 영위할 권리는 자격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에게 일할 자격을 요구하며 삶을 영위할 권리조차 공짜로 내어주지 않는다. 세계 인권 선언에 따르면 그 권리는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당연하게 누려야 하는 것인데. 이 사회가 지닌 노동의 환상에 잡아먹히지 말고 내가 어떤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직시하라고 하지만, 그 환상을 채워주지 않는 노동자가 다시 노동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을까. 이 글을 쓰면서도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들이 다 게으른 노동자의 핑계라고, 일을 찾지 못하는 것은 개인의 책임이라고 하지는 않을까 두렵다. 실제로 나 자신도 ‘네가 노동자로서 경력을 이어가지 못하는 것을 남 탓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저자도 자신이 인터뷰한 사람도 자신도 성실한 사람, 정상적인 노동자라는 사회의 통념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우리는 이런 현실에서 소진되다 노동에 적합하지 않은 몸이 되었을 때 버려질 수밖에 없는 것일까.


  하지만 저자는 절망하기보다는 계속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려고 한다. 일할 자격뿐만 아니라 말할 자격조차 박탈하는 힘을 뚫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동료 노동자들을 지지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자신이 속하지 않은 비정상의 범주에 있는 노동자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단순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함께 싸우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 1급 몸, 1등 국민, 정상적인 노동자와 그렇지 않은 몸, 국민, 노동자를 나누는 위계질서를 거부하고, 일의 세계 안에서도 나다움을 지키면서 타인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그 세상은 ‘일할 자격’을 요구하면서 그 자격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내치는 사회가 아니라, 단순히 ‘일할 권리’뿐만 아니라 더 행복하게,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일 것이다. 나 자신에게 ‘일할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나도 절망하기보다는 꿈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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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쇄 찍는 법 - 잃은 독자에서 읽는 독자로 땅콩문고
박지혜 지음 / 유유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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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쇄를 찍는다'는 표현은 일본 드라마 <중쇄를 찍자> 덕분에 많이 알려졌을 것이다. 중쇄란 처음 출간한 책이 시장에서 모두 팔려 나가 같은 책을 더 인쇄하는 것을 말한다. 내가 알기로 내가 만들어낸 책 중에서 중쇄를 찍은 책은 아직까지 단 한 권도 없다. 심지어 출간된 지 3년밖에 안 됐는데 절판돼서 더 이상 판매되지 않는 책도 여러 권 있다. 아마 가장 많이 팔린 책도 판매 부수가 천 부는 못 넘었을 것이다. 그런 나로서는 출판사를 차리고 나서 낸 책들의 70퍼센트는 중쇄를 찍었고, 독립하기 전엔 몇 만 부씩은 팔리는 책을 만들었다는 저자가 다른 세상 사람 같다. 나도 그 다른 세상으로 넘어갈 수 있을까, 사실 아직도 회의적이다. 그럼에도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었다.

편집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이후 출판 시장의 형편이 더 좋아졌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매년 더 나빠진다는 이야기만 들었고 '출판 시장 최대의 위기'는 과연 어디까지 커질지 짐작도 안 된다. 넷플릭스와 유튜브 보느라 책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들에게 책을 팔아야 하는데, 나조차도 유튜브에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한다. 그럼에도 저자처럼 희망을 찾고 싶다. 그래서 1장 첫 페이지부터 '마치 책 사줄 독자가 모두 사라져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열패감에 사로잡혀' 있는 태도와는 거리를 두겠다고 선언하는 저자의 모습이 반가웠다.

우선 출판업도 제조업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기술력을 갖춰야 한다는 이야기에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특히 종이책은 한 번 찍히면 다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인쇄될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정정한 부분을 스티커로 만들어 붙일 수 있지만 임시방편일 뿐이고 추가로 들여야 할 비용과 수고가 만만치 않다). 인쇄하기 전까지 신경을 날카롭게 세우고 편집 작업을 하다 막상 인쇄 직전에 힘이 풀려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액화천연가스 수송선은 9천 개에 달하는 패널을 깔고, 이 수송선을 만드는 용접 기술자들은 매일 아침 용접 테스트를 거치고 매달 자격증을 갱신한다고 한다. 책 만드는 사람도 그렇게 자기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의 완성도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매번 반복되는 고된 사이클 때문에 해이해질 때 이것을 기억해야겠다고 다시 마음먹게 되었다. 예전에 한 웹소설 출판사 PD가 자신들은 책의 외형까지 만들어내야 하는 종이책 출판사 편집자들과 달리 콘텐츠 자체에 더 집중하고 개발하는 데 힘쓸 수 있다고 자랑했었는데, 나는 오히려 종이책 출판사 편집자들이 책의 겉모습을 더 완전하게 만들어내는 제조업자이기도 하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천 년 동안 그 책에 가장 잘 어울리고 그 책의 내용을 더 온전하게 전달하고 표현할 수 있는 겉모습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민하고 땀 흘렸고, 그래서 지금까지 책의 역사가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책의 내용은 어때야 할까. 저자는 2할의 전복성과 7할의 충분성, 1할의 미래 지향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전의 책과 같은 내용을 반복한다면 그 책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기존에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내용, 새로운 것을 담고 있어야 독자들은 유튜브 동영상을 보는 대신 그 책을 읽기로 선택한다. 그런데 참신한 주장만 있을 뿐 그를 뒷받침할 내용이 없다면 함량 미달인 책이 된다. 그러니 그 책의 함량을 꽉 채워줄 7할의 충실한 내용물이 필요하다.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제시하는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어야 출판사의 특성이 뚜렷해진다. 지금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비슷비슷한 책들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기존의 책들과 다른 책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러면서 책의 내실은 어떻게 다져야 할까 고민하는 내게 이 비율은 하나의 지침이 되었다.

내 또 다른 고민은 내가 만든 도서 기획안들이 늘 '시장성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그래서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든다는 뚝심을 지켜오고 있고,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전복성이 구현된다는 저자에게서 희망을 보았다. 실패해도 좋으니 하고 싶은 걸 하겠다고 마음을 따라 시도하다 보면 시장이 요구하는 것과 정반대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복성은 시장에 끌려 다니기를 거부할 때 이뤄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제까지 찾아볼 수 없었던 주제 중에서, 남들은 뭐래도 나는 꼭 해보고 싶었던 이야기를, 우리의 핵심 타깃이 좋아하는 형태로, 해당 주제를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드는 책을 만들어보자고. 저자가 이 책에서 제시한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성공 사례처럼 이것을 실현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다 가닥이 손에 잡혀가는 느낌이 들었다.

중쇄를 찍는 것은커녕 책을 만들 기회가 다시 올지조차 모르는 상황이다. 그래도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중쇄를 찍을 날을 꿈꾼다. 더 많은 독자들이 내가 만든 책을 읽고, 지식을 얻고 위로를 받고 더 깊이 생각하고 책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중쇄율 0퍼센트의 편집자인 내게 이 책은 그 꿈을 잃지 않게 해주는 작은 버팀목이 되어준다.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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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본시인 2024-01-17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묵묵하게 지켜나가려는 모습에 큰 인상을 받았습니다. 응원합니다!

바스티안 2024-01-17 23:15   좋아요 0 | URL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의 그 부분 때문에 상처받았는데, 꿈에서본시인님 댓글에 위로를 받았어요. 이런 응원과 칭찬을 받기에는 부족하지만, 정말 감사합니다!
 
부르주아 생리학 인간 생리학
앙리 모니에 지음, 김지현 옮김 / 페이퍼로드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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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오해가 없도록, 우선 '부르주아 생리학'이라는 제목의 의미부터 풀어보자. '부르주아bourgeois'는 '도시'를 뜻하는 프랑스어 '부르bourg'에서 유래한 말로 '성 안 사람'이라는 뜻이다. 영주에게 귀속된 시골의 농노들과 달리 성 안의 자유 시민인 부르주아들은 성 안의 온갖 산업, 상업의 주체로 활동하면서 세력을 키워갔고, 결국 프랑스 대혁명을 주도하는 세력이 되었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 이후 가장 유력한 사회적 계급이 되면서, 부르주아는 이전 체제의 귀족들을 흉내 내는 기득권 세력이 되고 말았다. '생리학'은 생물 유기체의 구성과 조직, 기능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18세기 말 유럽의 지성인들은 인간의 육체적인 구조나 생리적 변화가 인간의 감정이나 지성, 성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정신까지 생리학의 연구 대상이 되었고, 1840년대에는 다양한 인간 유형을 제시하고 그 유형의 속성을 관찰하고 풍자하는 '생리학'이라는 장르가 프랑스 문학에서 유행하게 되었다. 19세기 프랑스의 풍자화가이자 희극 작가 앙리 모니에Henry Monnier가 부르주아를 파헤친 책 『부르주아 생리학』도 그러한 '생리학' 문학 중 하나이다.



『부르주아 생리학』의 한 대목과 그가 직접 그린 삽화

풍자랍시고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의 약점을 가지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앙리 모니에는 자신과 같은 계층인 부르주아를 풍자한다. 그 자신이 부르주아였기 때문에 부르주아 사회 안에서 그들의 생태를 관찰하고 그 속에 숨은 허영과 모순을 포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예술가들)에게 부르주아라는 단어는... 하나의 욕지거리이다. ... 어떠한 신통찮은 화가라도 부르주아로 취급되기보다 차라리 가장 끔찍한 흉악범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천 배는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모니에는 이렇게 자기가 속한 계층을 멸시하는 시선도 유쾌하게 받아들이며 자녀 교육, 사업, 사교 생활, 가정 생활, 문화 생활, 은퇴 후의 생활까지 부르주아의 삶 구석구석의 단면들을 꺼내놓고 풍자한다. 책 속의 부르주아들이 자신들끼리, 다른 계층의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는 지금의 한국 독자들도 웃길 수 있을 정도로 신랄하고 코믹하다. 희극 작가로서의 장점을 이 풍자 에세이에서도 발휘했나 보다. 그가 직접 그린 삽화는 본문에서 그려지는 부르주아들의 캐리커처로 등장하며, 당시 부르주아들의 모습을 한결 더 생생하게 느껴지게 한다.

그런데 그가 보여주는 부르주아들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기분 나쁘게 듣지 않았으면 해요'라고 하고 나서는 꼭 상대방이 기분 나쁠 말을 하는 이상한 버릇부터 자신은 누구보다 선량하고 현명하고 안목이 높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 웃는 얼굴로 서로에게 비수를 날리는 독설가 기질에 자질구레한 허례허식에 집착하는 허영까지. 무슨 질문을 해도 자신의 집 주소만 대답하는 부르주아 소년의 모습에서는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라는 아파트 광고 문구와, 초등학생들도 거주하는 집 형태를 두고 상대방을 놀리거나 따돌리는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 행태가 왜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보면, '과거의 부르주아들에게서 우리는 적어도 스스로를 풍자할 줄 아는 그 동력을 부러워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역자 서문의 마지막 문장에 동감하게 된다.

백수십 년 전을 살아갔던 사람의 풍자가 전혀 낡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은 그의 풍자가 그만큼 생명력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풍자가 백 년이 넘은 지금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니 슬픈 일이다. 세상이 아주 조금씩이라도 변해서 그의 풍자가 아주 먼 옛날의 먼지 쌓인 유산으로 느껴질 날이 왔으면 좋겠다.

P. S. 지금의 한국 독자도 배경 지식 없이 웃을 수 있을 만큼 모니에의 풍자는 이해하기 쉽고 유쾌하지만, 당시의 프랑스 사회와 정치 상황, 문화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도 분명히 있다. 번역가가 서문(본문의 첫 문장을 패러디한 첫 문장에서 번역가의 유머 감각을 느낄 수 있다)과 각주로 수능 강사만큼이나 친절하고 자세하게 '부르주아'와 '생리학'이 어떤 것인지, '생리학'이라는 문학 장르가 생겨난 배경과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프랑스의 정치, 사회 상황을 설명해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맛깔나게 번역해 작가의 신랄하고 유쾌한 풍자를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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