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인도
한상호.강성용.김대식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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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동명의 EBS 다큐멘터리를 단행본으로 정리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1년 전, 이 책의 공저자 세 명, 그러니까 다큐멘터리 감독인 한상호 PD와 두 출연자 강성용 교수와 김대식 교수가 진행하는 북토크에 갔었다. 그런데 저자들이 "이 책을 다 읽고 오신 분?"이라고 물었을 때 손을 든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사실 나도 새 회사에 적응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이 책의 도입부 몇십 페이지만 읽고 와서 미안했다. 그 뒤로 이런저런 일들에 치여 살다 거의 1년이 지나서야 이 책을 다 읽었다.

1년 전 북토크이지만 책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라기보다는 다큐를 만들면서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는지에 대한 수다에 가까웠다는 것은 기억난다(하긴 다 읽은 독자가 한 명도 안 왔는데 어떻게 책에 대해 깊이 얘기하겠는가). 그리고 한상호 PD가 두 가지를 자랑했던 것이 기억난다. 하나는 한국 최초로 생성형 AI 기술을 다큐멘터리에 활용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가 투입되어 새로운 시각으로 인도를 바라볼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가 단행본에서는 한상호 PD가 기대했던 효과를 이루었을까.

우선 생성형 AI 기술은 종이책에서 눈에 띄는 효과를 내기 어렵기에, 이 책에서도 생성형 AI는 그렇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책에서는 삽화가가 그린 삽화나 재연 배우들이 찍은 재연극 장면 스틸컷을 대체한 AI 이미지들로 나타나는데, 고증은 당연히 맞을 리 없고 미묘하게 기괴한 부분들이 보인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의 손가락들이 갈고리 모양이고, 기차에서 내동댕이쳐지는 간디의 옷자락과 두 다리는 나무 뿌리처럼 얽혀 있다. 전쟁터에 나온 말들의 얼굴에는 눈이 이상한 방향으로 붙어 있다. 삽화나 사진에 들일 비용은 절약하면서 얼핏 보기에는 그럴듯한 인도풍 이미지를 만들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쾌한 골짜기 현상이 일어난다.

인도학자 강성용 교수와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의 대담이 이 책의 바탕이 되었지만, 단행본에서는 두 사람의 대화는 화두를 던지는 장면 정도만 나오고 나머지 내용은 줄글로 정리되었다. 그런데 김대식 교수가 강성용 교수에게 던지는 질문들은 뇌과학자, 아니, 과학자만이 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니다. 세계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나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할 수 있는 질문이다. 책만으로 보자면 과학자로서의 시선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니 단행본으로만 보면 김대식 교수가 참여했다는 것이 그렇게 큰 메리트인 것 같지 않다.

그 두 가지를 특별히 신경 쓰지 않는다면 이 책은 꽤 괜찮은 인도사 입문서다. 고대 인더스 문명부터 현대까지 인도를 이뤄온 것들이 무엇이고 그것들이 어떤 역사를 만들어냈는지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어, 인도라는 나라의 역사를 쭉 훑어보기에 좋다. 그 덕분에 인도라는 나라를 만들어온 정신과 본질이 어떤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있다.


아름다운 북 디자인도 이 책의 장점이다. 인도에는 예전부터 관심이 있긴 했지만 나를 홀린 것은 은은한 황금빛의 가네샤 신상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묵직한 적갈색 하드커버 표지였다. 장중하면서도 인도다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표지에, 본문도 잡지처럼 감각적인 디자인이고 사진 자료도 많아 소장욕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막상 정독해 보니, 같은 장소를 찍은 사진들이 너무 많고 지도는 너무 간략했다. 알고 보니 다큐멘터리에 나온 지도를 그대로 쓴 것인데, 지도에 당시의 주요 도시나 하천, 지형의 이름도 표시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지도나 도표를 좀 더 활용했다면 책의 내용을 좀 더 명확하게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다큐멘터리 영상을 찾아보니 영상보다는 책이 낫다고 생각했다. 머리말에서 극장 안에 두 진행자 강성용 교수, 김대식 교수와 함께 인도사를 빛낸 위인들을 불러모아 대담을 진행한다는 야심찬 발상을 이야기했는데, 실제로 만들어진 결과물은 기대에 못 미쳤다. 인도 위인들의 사진이나 초상화를 객석에 합성했는데, 2차원 이미지의 입과 팔다리만 움직여 마치 종이인형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게다가 인도 위인들의 목소리를 맡은 성우들은 (아마 전문 성우가 아닐 것 같은데) 일반인 같은 발성과 연기를 보여주어 목소리가 위인의 이미지에 붙지 않고 겉돌았다.

게다가 두 진행자가 인도 영화 <RRR>의 주제가 <Naatu Naatu>에서 가져온 듯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데, 중년이고 춤과 연이 없는 두 사람이 추기에는 안무의 난이도가 높았는지 AI로 만든 두 사람의 캐릭터가 춤을 춘다. 그런데 가상 캐릭터에 두 사람의 얼굴만 씌워 놓은 형태인 데다 두 사람이 무한 증식되기까지 하니 기괴해 보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BBC와 HBO가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 괜히 비싼 돈 들여 실제 배우로 재연극을 찍는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그 두 곳도 CG로 영상을 보강하겠지만).


AI 이미지들 속에서 불쾌한 골짜기가 불쑥 튀어나오긴 하지만, 그래도 책은 정제된 글로 정리되고 아름다운 디자인이 뒷받침해 꽤 괜찮은 교양 역사서가 되었다. 나는 책에서나 다큐에서나 연출자의 의도와 결과 사이 괴리를 느꼈지만, 한상호 PD 본인은 나와 달리 대만족했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시도를 참신하고 재미있다고 느끼는 시청자들도 있다. 지금은 좀 어설퍼 보일지 몰라도 의도와 결과를 좁혀가려고 노력한다면 우리는 AI를 점점 더 지혜롭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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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세스지 지음, 전선영 옮김 / 반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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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공포 영화는 잘 못 보면서 나폴리탄 괴담은 좋아한다. '나폴리탄 괴담'은 일본의 '공포의 나폴리탄'이라는 괴담에서 유래했는데, 주인공이 일본식 스파게티인 나폴리탄 스파게티를 먹으려고 했는데 그 나폴리탄 스파게티의 정체를 알아채고 공포에 휩싸였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정작 그 정체가 무엇인지는 끝까지 밝히지 않는다. 이렇게 나폴리탄 괴담은 무엇인가를 굉장히 미스터리하고 공포스러운 존재로 묘사하지만, 정작 그것의 정체는 확실히 밝히지 않는다. 누락된 정보 때문에 그 존재는 듣는 사람의 상상 속에서 더욱 불가사의하고 무시무시한 존재가 된다.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존재보다 더 큰 공포를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우리의 상상력일지도 모른다.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도 정보를 일부러 누락시킴으로써 더 큰 공포를 불러오는 전략을 사용한다. 한 사람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쭉 이어나가는 보통의 소설들과 달리, 이 소설은 일본의 긴키 지역(수도였던 교토를 중심으로 한 일본의 옛 수도권 지역)에서 일어나는 괴이한 현상들에 대한 온갖 (가상의) 자료들을 모아놓은 모습이다. 공포 전문 잡지 기사와 인터뷰 녹취 기록, 인터넷 게시판에서 그대로 긁어 온 글과 댓글까지 자료의 출처나 형식도 다양하고 시점도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그렇기에 진상은 직선적인 스토리라인을 따라 밝혀지지 않는다. 각 자료에 담긴 단서들이 퍼즐 조각처럼 하나의 그림으로 맞춰져 간다. 퍼즐이 완성되기 전에 어떤 진상이 숨겨져 있는지 알기 어렵기에 더 공포스럽다.

또 하나 공포감을 더하는 것은 긴키 지방이 우리에게 낯선 지역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긴키 지방이 자신이 사는 곳이라 이야기를 상상하기 쉬웠고, 이 지방 사람이 아닌 사람들도 수학여행으로 한 번은 와봤을 곳이기에 친숙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괴이한 현상이 일어나는 곳도 주택가나 노래방, 회사처럼 일상적인 곳이기에 공포가 일상으로 파고드는 것을 노렸을 것이다. 번역가는 일본에 자주 여행을 간 한국인에게도 긴키 지방은 친숙할 것이기에 작가의 이러한 전략이 유효할 것이라고 본다. 반면 '긴키'라는 지역명을 이 책으로 처음 들을 정도로 일본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 긴키 지방은 낯선 곳이다. 일본은 한국보다 더 덥고 습하고, 더 무성하고 깊은 숲과 산으로 가득하다. 게다가 원한이 풀리면 천도되는 한국의 귀신과 달리, 일본의 귀신은 아무나 자기 영역에 들어오면 해쳐서 희생자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낸다. 이런 일본 괴담 특유의 밑도 끝도 없는 악의가 낯설고 무섭다.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의 귀신들도 이런 무차별적인 악의를 퍼뜨리는 존재들이기에 이해할 수가 없다. 이해할 수 없어 더 두렵다.

하지만 소설이기에 진상은 결국 밝혀질 수밖에 없다. 결말까지 오면서 커진 공포감은, 결말에서 진상을 알고 나면 그 모든 재앙의 원인이 너무 하찮아 식는다. 이 책을 다 읽은 날 밤 이상하게도 바람이 유난히 세게 불어 더 무서웠는데, 이 책 속 만악의 근원이 된 존재를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어 무서운 마음이 가셨다. 세상에 결혼 못 한 게 자기만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기를 안 만나주는 여자들을 죽인 놈 달래준다고 신사까지 세워줬는데. 몇십 년 동안 제물도 받아 먹고 죄 없는 여자들도 홀려서 신부로 데려와 놓고선, 이제 자기를 잊어버리고 제사를 안 지내준다고 저주를 퍼뜨린다. 그렇게 여자들을 많이 홀리고도 만족을 못 하는지 남녀가 결혼하고 뭘 하는지도 모르는 초등학생 여자애를 납치해 '신부'로 삼는다. 이런 치졸하고 추잡한 귀신을 봤나. 이 책을 읽고 밤에 무섭다면 책 속 귀신의 하찮음을 생각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래도 결말까지 조각난 단서들이 서서히 맞춰지면서 그 사이의 공백을 독자 스스로 상상으로 메꿔 가면서 공포를 키워가게 유도하는 실력이 뛰어나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나서도 끈적끈적한 악의가 읽는 나에게서도 떨어지지 않는 듯하다. 본문 뒤에 실린 (가상의) 문서, 사진들은 어떤 것은 현실감이 있어서, 어떤 것은 조악해서 오히려 더 불쾌감과 공포감을 일으킨다. 이 책이 곁에 있는 것 자체가 꺼림칙하게 느껴질 정도다. 여러모로 영리하게 공포를 만들어내는 책이다.

읽어주셔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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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현지 쇼핑 대백과
오가와 지에코 지음, 김정원 옮김 / 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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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넘게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고 있다가 작년 12월에 대만에 다녀왔다. 중국어도 영어도 잘 못하지만 혼자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는 다른 나라들에도 도전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여행 서적들을 예전보다 많이 찾게 되었다. 여행 서적들은 외국의 갖가지 풍경과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 예쁜 물건들의 사진과 그에 대한 이야기를 가득 싣고 있어 읽는 것만으로 기분 전환이 된다. 이 책은 기분 전환할 겸, 대만 여행을 곱씹어 볼 겸 도서관에서 빌렸다. 나중에 또 대만에 갈 때 뭘 사면 좋을지 참고할 수 있고.

이 책은 클의 'ㅁㅁ 대백과' 시리즈 중 한 권이고, 이 대백과 시리즈는 도감과 시각예술 관련 책들을 주로 내는 일본의 출판사 타츠미 사의 도감들을 번역 출간한 것이다. 대만에서 살며 대만 요리를 연구하는 일본의 요리 연구가가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요리 연구가이다 보니 간식, 음료, 식재료, 조미료, 주방에 쓰이는 각종 도구와 생활용품 125가지를 소개하고 있고, 대만 요리 몇 가지의 레시피도 함께 실었다.


『대만 현지 쇼핑 대백과』의 본문

'대백과'라고 하기에는 200페이지도 안 되는 얇은 책이지만 알면 좋은 정보들을 차곡차곡 압축해 알차다. 소개하는 상품 이름은 중국어 발음과 한자 표기를 함께 써놓았고, 현지에서 주문하기 좋게 성조도 붙여놓았다. 중국어 성조를 잘 모르는 독자를 위해 노래에서의 음의 변화에 비유해 네 가지 성조를 설명했다(외국어 액센트에 약한 나는 그렇게 설명해도 잘 안되긴 하지만). 가게 이름도 중국어 발음과 한자 표기를 함께 표시했고, 위치는 QR 코드로 연결해 놨는데, 지금까지는 다 잘 연결된다. 구글 지도에서 리뷰를 보니 한국인 리뷰가 없거나 적은 곳이 많다. 저자가 일본인이라 일본인들의 입맛과 취향에 맞는 곳들을 선정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한국인들이 잘 모르던 보석 같은 곳을 발견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가게와 상품에 대한 설명은 한 페이지(상품 사진이 페이지의 반을 차지하니 사실상 반 페이지)씩이지만 필요한 정보는 다 들어 있고 맛과 모양에 대한 묘사도 꽤 생생하다. 책 자체의 디자인은 잡지처럼 세련되고 감각적이고 음식과 물건 사진들도 예뻐서 책으로 아이쇼핑하는 기분이다. 내가 대만을 여행할 때 가보지 못한 곳들을 책으로 둘러보는 기분이었다.

원서에 적힌 정보들은 2024년 7월 기준인데, 한국어판 출판사 편집부에서 출간 시점(2025년 3월)에 맞춰 정보를 수정했다고 한다. 한국에 반입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면세 기준 등 한국에 올 때 주의할 점도 본문 앞에 부록으로 넣어놨다. 여러모로 세심하게 만든 책이다. 대만에 가기 전에 예습용으로, 대만을 여행할 때 쇼핑 가이드로, 대만에 갔다 와서 복습용으로 쓰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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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용의자
찬호께이 지음, 허유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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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호께이의 모든 작품을 챙겨 읽을 정도로 그를 좋아하지는 않고, 아직까지는 그가 『13.67』을 넘는 작품은 쓰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반적인 완성도는 아쉬운 작품들도 재미 하나는 확실히 있어서 차기작이 나오면 관심을 갖게 된다. 『고독한 용의자』는 3년 만에 나온 그의 신작이고, '20년 동안 방 밖으로 나오지도 않던 은둔형 외톨이가 방에서 자살했는데, 그의 방 옷장에서 토막 난 시신이 든 표본들이 발견됐다'는 시놉시스만으로 흥미로웠다. 도서관에 신청하고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드디어 도서관에 비치돼서 읽게 됐다.


  기대했던 대로 확실히 재미있었다. 책을 읽는데 넷플릭스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일하느라 계속 읽을 수 없다는 게 안타깝고 그 뒤의 이야기가 일하는 내내 궁금했다. 퇴근하면 이제 다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게 기뻐 퇴근하면서도 퇴근하고 나서도 쉬지 않고 읽었다. 그래서 평일인데도 5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이틀 만에 다 읽었다. 진상이 밝혀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고, 새롭게 밝혀진 진상도 사실은 진실이 아니었다. 이렇게 이야기의 흐름을 능수능란하게 바꾸면서 끝까지 읽게 만드는 솜씨는 여전했다. '망자의 고백'과 칸즈위안의 미발표 소설에서 발췌한 내용이 중간중간에 섞여 있는데, 이 두 부분이 교차되면서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다 마지막 망자의 고백에서 완전히 드러났을 때의 전율은 잊을 수 없다.


  하지만 밝혀진 진상이 너무 억지스러웠다. 한 독자가 '은둔형 외톨이라는 설정을 너무 편의적으로 사용한다'고 했는데 내 생각도 그렇다. 은둔형 외톨이었다는 이유로 사람이 바뀐 것을 친어머니도 모른다는 것이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다. 녹음된 목소리는 어떻게 하든 실제 목소리와는 다르고, 살아 있는 실제 사람이 내는 목소리라면 녹음된 목소리처럼 매번 똑같을 수가 없는데,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는 게 이상하다. 20년 동안 도대체 방 안에서 무슨 일이 있는 건지 확인도 하지 않고 계속 그 상태로 살아오다니. 셰바이천의 어머니가 아무리 소심하고 겁이 많다고 해도. 그리고 장례를 치르려면 고인의 머리도 수염도 이발해서 단정한 상태로 만들었을 텐데, 그러면 바이정환의 얼굴도 드러났을 것이다. 입관하거나 화장하기 전에 유가족이 고인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는 절차가 있고. 시신이 셰바이천이 아니라 바이정환인 것을 숨기기 위해 머리카락과 수염이 마구 자라 덥수룩한 채로 장례를 치렀다는 것인가? 마지막 반전을 위해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을 만들어낸 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칸즈위안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이 이 작품을 이끌어 가고, 그의 서사는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칸즈위안은 반듯한 외모에 중고등학교 때 전교 1등이었을 뿐만 아니라 경찰들보다 더 뛰어난 추리력과 행동력으로 복잡한 사건을 풀어나간다. 또 다른 주인공인 쉬유이 경위는 공무원으로서 개인이 공무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지만, 칸즈위안의 교묘한 수에 번번이 당하다 결국 그와 공조하게 된다. 마치 사마의를 농락하는 제갈량을 보는 것 같다. 거기에 작가로서의 문학적 재능까지 갖추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뭔가 숨기는 것이 있는 듯하다. 그가 숨기고 있는 것이 그에게 그늘을 드리우는데, 그 그늘이 그를 더 신비하고 매력적으로 만든다.


  마지막에 밝혀진 칸즈위안의 사연은 그의 캐릭터에 입체감과 인간미를 더하면서 그라는 인간 자체를 연민하게 만든다. '고독한 용의자'는 사실 그였다. 셰바이천이나 바이정환은 모든 것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친구가 있었기에 불행한 삶을 살다 떠나도 고독하지 않았다. 하지만 칸즈위안에게는 이제 남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 오랜 세월 동안 거의 모든 것을 혼자 감당했는데, 이제는 혼자 뭔가를 지키는 일에서 자유로워졌지만 그래서 더 외로울 것이다. 그래도 새롭게 얻은 자유 속에서 그가 또 다른 소중한 것,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길 바란다. 이 작품도 추리 소설로서의 완성도나 문학성이나 『13.67』에는 못 미친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마음속에 여운이 남는다. 칸즈위안처럼 감당하기 힘든 일을 혼자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해오고 있는 친구를 지켜보는 것이 어떤 마음인지 알기 때문이다.


P. S. 1. 중국어 원제는 '숨은 용의자(隱蔽嫌疑人)'이고 영어판 제목은 데이비드 보위의 노래 제목에서 따 온 'The Loneliest Guy'(이 노래는 소설 본문에서도 셰바이천이 좋아하던 노래로 언급되며 여러 장면에서 배경음악으로 깔린다)인데, 한국어판 제목인 '고독한 용의자'는 아무래도 한국에서도 인기 있는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서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셋 다 같은 사람을 가리키고 있고 '고독한 용의자'도 가장 중요한 그 인물을 한마디로 요약한 표현으로 적절한 데다 '고독한 미식가' 덕분에 입에 잘 붙으니 문제는 없다.


P. S. 2. 데이트하러 가려고 차려입은 칸즈위안을 '한국 배우같이 입었다'고 묘사하고, 바이정환과 궈쯔닝이 대화할 때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가수 중 하나로 BTS가 언급되는 것을 보면 한류가 아시아에서 확고한 흐름으로 자리 잡은 게 맞는 것 같다. 찬호께이가 딱히 한국을 의식하고 쓰지는 않은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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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 - 식민지 조선을 위로한 8가지 디저트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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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마음을 끈다. 우리에게 아픈 역사인 일제 강점기를 흥밋거리로 소비하지 않을까 스스로 경계하지만, 일제 강점기의 일상생활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 어두운 시기에도 사람들은 우리와 비슷한 일상을 살았다는 것이 신기해서이다.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처럼 지금 사용하는 현대식 문물을 그때도 사용했고, 맛집을 찾고 디저트도 즐겼다는 것이. 어두운 시기에 빛을 찾기 위해 싸우면서도 사람들은 각자의 일상을 충실히 살아갔다. 작가는 전작 『경성 맛집 산책』에서 일제 강점기 당시 경성에 있었던 열 곳의 맛집을 다루었는데, 이 책에서는 일제 강점기에 사람들이 즐겼던 디저트 여덟 가지를 다룬다. 그중 라무네와 관련된 이야기를 청량음료 전반에 대한 이야기로 본다면 여덟 가지 디저트 모두 지금의 우리도 즐기는 것들이다. 그 디저트들을 통해 우리는 일제 강점기의 사람들과 이어진다.

저자는 일제 강점기의 소설과 신문, 잡지 기사 들에서 각 디저트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찾아내어 그와 관련된 당시의 생활상을 재구성한다. 디저트 자체의 기원과 변천 과정도 짤막하게 소개하면서 그것이 우리나라에 어떻게 들어왔고 일제 강점기에는 어떻게 소비되었고 어떤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였는지, 그것이 사회적, 경제적으로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고찰해 본다. 이렇게 디저트를 통해서도 일제 강점기는 더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우리 앞에 떠오른다.

많은 한국인들이 매일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긴다. 이 책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때 사람들은 커피의 맛보다는 커피를 마시면서 누리는 여유를 더 즐겼던 것 같다. 1926년 중앙일보에 실린 '커피 맛있게 끓이는 법'에서는 커피를 30분이나 달이라고 하니, 커피를 잘 모르는 내가 봐도 도무지 맛있게 끓여지지 않을 것 같은 레시피다. 다방 커피에서는 밍숭맹숭해서 맹물 같은 맛이 난다는 기록도 있고. 그러나 다방은 자기 꿈을 자유롭게 펼칠 수 없는 시대에 '고독한 꿈이 다른 꿈들과 위로를 나누었던' 공간이 되어주었으니, 커피 그 자체보다는 커피가 만들어주는 만남의 기회가 당시 사람들에게 더 따뜻하고 부드러웠을 것 같다.

지금도 전철역에 갈 때마다 고소하고 달콤한 델리만쥬 냄새가 풍겨 온다. 사실 부드러운 밀가루 반죽에 커스터드를 넣은 델리만쥬보다는, 버석버석한 빵 안에 밤소를 넣은 밤만쥬나 팥 앙금을 넣은 각 지역별 특산품 'ㅇㅇ빵'이 일본에서 전해진 디저트 만주의 원형에 가깝다. 일제 강점기에 사람들이 먹었던 만주도 그쪽에 더 가까운 형태였다. 안 그래도 발음이 비슷한 만주와 만두의 관계가 궁금했는데, 한중일 만두의 역사를 통해 그 궁금중을 풀 수 있었다. 한편 추운 겨울밤에 만주를 팔아 학비를 마련하다, 굶주림에 지쳐 만주를 훔치려던 사람에게 살해당한 고학생의 이야기는 당시 사람들의 신산한 삶을 보여주어 독자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멜론은 지금은 그렇게 귀한 과일이 아니지만, 일제 강점기에는 과일의 왕 대접을 받던 과일이었다. 작가 안석영은 1934년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 「남양에서 굴러온 사생아」에서 이국의 과일을 먹고 즐기는 것이 조선 사람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못마땅해했지만, 오히려 그의 글에서 당시 사람들이 멜론으로 상징되는 열대 지방에 품은 동경을 읽어낼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사람들이 참외보다 더 달고 부드럽고 이국적인 멜론에 끌리고, 참외도 더 달고 맛있는 품종으로 개량되고 획일화되어 가는 모습에서 사람들의 욕망을 채우고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자본주의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수십 년 전 과일 하나를 소비하는 양상에서도 자본주의가 일제 강점기에 어떻게 작동했는지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호떡은 중국을 나타내는 '호(胡)'가 이름에 붙어 있는 것부터 중국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이 책에서 확인했다. 그런데 호떡의 전신으로 보이는 '후빙胡餠'은 대만의 야시장들에서 파는 후추빵이나 그것을 벤치마킹한 인천 차이나타운의 화덕만두처럼 화덕 안쪽에 붙여서 구워내는 빵이었는데, 한국에서는 왜, 어떻게 기름을 두르고 지져내는 빵으로 변형되었는지 궁금하다. 아쉽지만 저자가 그에 대해서는 연구해 보지 않았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는 호떡집이 성황을 이루었으면서도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중국인들은 불결하고 중국인들이 만들어낸 물건도 불결하고 부실해 품질이 좋지 않다는 인식) 때문에 사람들이 호떡집에 가서 호떡 사 먹는 것을 부끄러워했다는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저자는 여기서 원래 아시아의 중심이었던 중국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씌워 아시아에 대한 침탈을 정당화하는 일본의 의도가 작용한다고 본다. 그때도 지금도 흔히 먹는 호떡에도 제국주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라무네는 일제 강점기 당시에도 지금도 일본에서 생산되는 레몬맛 청량음료다. 나는 라무네를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지만 라무네는 유리구슬이 마개 역할을 하는 특이한 병 때문에 지금도 인기가 많은가 보다. 사실 이 유리구슬 병마개는 영국에서 고안된 것이라 일본 고유의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도 라무네를 대표하는 이미지인 것은 분명하다. 이효석이 소설 『들』에서 푸른 하늘을 우러르다 푸르게 물든 두 눈을 라무네 병의 유리구슬에 비유한 것을 보면 당시 사람들이 생각했던 라무네의 이미지를 알 수 있다. 또한 라무네를 비롯한 청량음료가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물보다 위생적이라고 생각했다고 하니, 당시 사람들의 근대 문명에 대한 동경을 엿볼 수 있다.

초콜릿이 연애의 상징이 된 것은 일본 회사들의 상술 때문이라고들 하지만, 19세기 말 영국의 제과회사에서 이미 밸런타인데이 선물 용도로 초콜릿을 판매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한국에서 초콜릿이 연인의 마음을 전달하는 선물이 된 것은 1960년대 일본 제과 회사들의 영향이라고는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쓰인 소설들에서도 초콜릿은 연애 감정을 품은 상대를 유혹하는 수단으로 등장하고, '연애사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까지 한다. 1929년 『동아일보』에 실린 메이지제과의 초콜릿 광고에도 초콜릿은 연인들이 함께 먹는 디저트로 나온다. 일제 강점기 사람들도 초콜릿의 달콤한 맛과 부드러운 감촉에서 연애의 달콤함을 떠올렸다는 데서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한편 당을 건강의 적으로 보는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몸을 건강하게 하는 영양소로, 부와 문명의 상징으로 보았기 때문에 더 달콤한 초콜릿이 한과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했다는 것이 흥미롭다.

어린 시절에 드럼통에 고구마를 구워 파는 고구마 장수들을 보았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편의점에서 군고구마를 판다. 일제 강점기에도 군고구마는 흔히 먹는 간식이기에 어디에나 군고구마 장수가 있었다고 한다. 이 장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김동인의 소설 제목 「감자」가 사실은 감자가 아니라 고구마였다는 것이다. 김동인은 1941년에 쓴 문학 평론에서 자신의 고향인 평양에서는 고구마를 감자라고 부른다며 자신이 집필할 때 주인공 복녀가 훔친 것은 감자가 아니라 고구마였다고 밝혔다. 자신이 생각한 것은 고구마였다고 밝힌 것은 그만큼 소설의 '감자'를 고구마가 아닌 감자로 받아들인 독자들이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자신의 소설 속 감자를 '고구마'로 고치지 않았다. 저자는 김동인이 주인공 복녀가 몰락한 이유를 빈곤이 아니라 그릇된 성적 욕망으로 보았기에 구황작물인 감자가 아니라, 당시에도 간식으로 여겼던 고구마로 소재를 설정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반면 나는 김동인 자신도 복녀 자신의 절박한 처지를 보여주기에는 고구마보다는 감자가 더 어울린다고 느꼈기에 '감자'로 놔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복녀 개인의 성적 타락이라고 보기에는 그녀가 처한 경제적, 사회적 상황이 너무나 열악했다.

일제 강점기 사람들도 여름에는 빙수를 즐겼다. 일본의 가키고리처럼 얼음에 시럽만 끼얹는 단순한 형태였는데도 사람들은 빙수를 즐기며 어느 집에서 빙수를 잘 만드는지도 이야기했다. 맛있는 빙수의 조건은 얼음이 얼마나 곱게 갈렸는지, 얼음 위에 시럽을 얼마나 많이 뿌렸는지였다. 눈처럼 곱게 갈린 우유 얼음 위에 각종 토핑을 산더미처럼 쌓아 올린 지금의 빙수 전문점 빙수들을 보면 일제 강점기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했을지 궁금하다. '빙수' 챕터 뒤의 '더 읽을거리' 코너에서는 잡지 『별건곤』의 「20전(지금의 한화로는 약 만 원)으로 피서하는 법」이라는 1928년 특집 기사를 소개한다. 편집국장이 그해 여름에 갑자기 기자들에게 20전씩 주면서 20전으로 피서하는 방법을 알아내라고 지시해서 나온 기사라는 데서, 당시 직장인들의 고충을 알 수 있다. 빙수를 사 먹는 것뿐만 아니라 계곡에 들어가 앉아 과일을 먹는 것, 냉방이 잘되는 공공도서관에 가는 것은 지금에도 할 수 있는 피서법이라 과거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진다.

같은 이야기가 되풀이되는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일제 강점기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디저트를 즐기고 남겼던 기록을 통해 그들을 만나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다. 얼마 전에 본 뮤지컬은 1980년대의 대학생인 남주인공이 어느 오래된 책방의 낡은 책 한 권을 통해 1940년대의 책방 주인인 여주인공과 소통하는 이야기였는데, 그 뮤지컬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그들이 즐겼던 디저트가 지금은 어떤 모습이고 어떤 맛인지 보여주고 맛보이고 싶기도 하다. 또 이 시대는 이 시대 나름대로의 어려움이 있지만 그때보다는 더 편안하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디저트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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