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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식인 - 서구의 야만 신화에 대한 라틴아메리카의 유쾌한 응수 ㅣ 서울대 인문 강의 시리즈 7
임호준 지음 / 민음사 / 2017년 11월
평점 :
'즐거운 식인'이라니, 제목만 들으면 고어물 같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식인'은 문자 그대로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것이 아니다. 어떤 외래 문물이라도 좋은 것들은 집어삼켜서 흡수하고, 나쁜 것들은 배설해 버리겠다는 주의다. 이런 '식인주의'는 20세기 브라질 문화의 토대를 이루었고, 지금까지도 문학, 영화, 음악, 미술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브라질 대중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데 왜 굳이 '식인'이라는 섬뜩한 이름을 붙였을까?
'식인주의'라는 말을 붙인 이유를 알아보려면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왔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유럽이 아메리카를 정복하던 시절의 기록들 중에는 라틴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식인을 했다는 기록이 많다. 하지만 그런 기록들을 검증해 보면 하나같이 자신이 직접 목격한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이다. 스페인은 1507년에, 포르투갈은 1570년에 아메리카 원주민을 노예로 삼는 것을 금지하는 법령을 제정했다. 그러나 식인종만은 노예로 삼아도 된다는 예외조항을 두었다. 이러니 유럽 정복자들이 식인종이 아닌 원주민들까지 식인종으로 몰아 노예로 삼는 일은 수없이 많았을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인들은 유럽인들의 '원주민 식인종설'이 허위라고 반박하기는커녕, 이렇게 응수한다. 그래, 우리는 식인종이라고. 너희들을 집어삼켜서 너희들의 좋은 점은 다 흡수하고 나쁜 점은 배설해버릴 거라고. 저자는 1920년대 브라질 모더니즘 운동부터 1990년대의 브라질 대중문화까지 문학과 음악, 영화를 중심으로 식인주의가 라틴아메리카 대중문화에 미친 영향을 설명한다.
1928년 식인주의자들이 선포한 「식인선언」은 서양 문명을 '먹어 삼키고자 하되' 경외하지 않는다. 또한 브라질의 민중 문화를 부흥시키려 하되 폐쇄적인 민족주의에 빠지지 않는다. 식인주의의 영향을 받은 소설에는 설화, 편지, 노래, 기도문 등 다양한 종류의 텍스트가 섞여 있다. 심지어 표절도 이들에게는 훌륭한 창작의 원천이다. 식인주의를 주창한 인물 중 하나인 마리우 지 안드라지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어떤 종류의 작품이든 표절에 반대하지 않네. 표절도 훌륭한 자질이 있으니까. 그건 우리를 훌륭하게 만들고, 지적인 설명이 붙은 지나친 각주를 덜어주고, 좋긴 하지만 허접하게 표현된 남의 생각을 개선시킬 수도 있게 해 주지. 하지만 표절은, 도둑질한 것을 개선시켜야 한다는 자각을 가져야 하네."(p. 135-136.)
표절이 원본을 개선시켜 원본보다 더 뛰어날 수도 있다는 뻔뻔함에서 식인주의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문학뿐만 아니라 식인주의는 대중음악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메리카, 아프리카, 유럽 등 다양한 문화와 삼바, 보사노바, 록까지 다양한 장르가 혼합된 브라질의 열대주의 음악은 새로운 브라질 음악을 탄생시켰다. 1960년대 브라질의 군부 독재 아래서 진보적인 영화인들이 펼친 브라질의 신영화 운동인 '시네마 노부'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은, 주변으로 밀려났던 여성, 원주민,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옮겨 와 브라질의 국가 정체성을 새롭게 구성하려고 한다.
이 책에서 식인주의의 대표소설로 소개되고 분석되는 『마쿠나이마』는 국내에도 번역 출간되었다. 그리고 유튜브에서 검색해 보면 브라질 열대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명곡들을 들을 수 있다. 직접 식인주의를 대표하는 문학 작품과 음악을 감상한다면, 식인주의 특유의 다채롭고 신선한 매력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열대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노래 '트로피칼리아'의 라이브 영상과 가사를 아래에 넣는다.
트로피칼리아 - 카에타노 벨로주
Sobre a cabeça os aviões
머리 위로 비행기가
Sob os meus pés os caminhões
발 아래론 트럭이
Aponta contra os chapadões
대평원을 가리키는
Meu nariz
나의 코
Eu organizo o movimento
나는 운동을 조직하고
Eu oriento o carnaval
카니발을 지휘하고
Eu inauguro o monumento
기념비를 개막하네
No planalto central do país
이 나라의 중앙 평원에서
Viva a bossa, sa, sa
보사노바 만세
Viva a palhoça, ça, ça, ça, ça
초가집 만세
Viva a bossa, sa, sa
보사노바 만세
Viva a palhoça, ça, ça, ça, ça
초가집 만세
O monumento é de papel crepom e prata
기념비는 크레퐁 종이와 은으로 만들어졌네
Os olhos verdes da mulata
물라토 소녀의 초록색 눈
A cabeleira esconde atrás da verde mata
그녀의 머리카락은 초록빛 숲 뒤로 숨어 버리고
O luar do sertão
황무지의 달빛
O monumento não tem porta
기념비에는 문이 없고
A entrada é uma rua antiga, estreita e torta
입구는 좁고 구부러진 오래된 길이네
E no joelho uma criança sorridente, feia e morta
그녀의 무릎 위에는 한 못생긴 아이가 웃는 표정으로 죽어 있네
Estende a mão
손을 내밀며......
Viva a mata, ta, ta
밀림 만세
Viva a mulata, ta, ta, ta, ta
물라토 소녀 만세
Viva a mata, ta, ta
밀림 만세
Viva a mulata, ta, ta, ta, ta
물라토 소녀 만세
No pátio interno há uma piscina
안뜰에는 수영장이 있다네
Com água azul de Amaralina
아마라우리나의 파란색 물로 채워진
Coqueiro, brisa e fala nordestina e faróis
코코넛 나무, 잔잔한 바람 , 그리고 북동부 억양, 그리고 불빛들
Na mão direita tem uma roseira
오른손에 장미꽃
Autenticando eterna primavera
영원한 봄을 확인시켜 주는
E no jardim os urubus passeiam
정원에는 콘도르가 산책하네
a tarde inteira entre os girassóis
오후 내내 해바라기 사이로
Viva Maria, ia, ia
마리아 만세
Viva a Bahia, ia, ia, ia, ia
바이아 만세
Viva Maria, ia, ia
마리아 만세
Viva a Bahia, ia, ia, ia, ia
바이아 만세
No pulso esquerdo o bang-bang
왼쪽 손목에는 총알 자국
Em suas veias corre muito pouco sangue
정맥을 타고 흐르는 아주 적은 피
Mas seu coração balança um samba de tamborim
하지만 심장에는 삼바의 탬버린이 요동치네
Emite acordes dissonantes Pelos cinco mil alto-falantes
오천 개의 시끄러운 스피커로 불협화음이 쏟아지네
Senhoras e senhores
신사 숙녀 여러분
Ele põe os olhos grandes sobre mim
그는 큰 눈으로 내게 시선을 보내네
Viva Iracema, ma, ma
이라세마 만세
Viva Ipanema, ma, ma, ma, ma
이파네마 만세
Viva Iracema, ma, ma
이라세마 만세
Viva Ipanema, ma, ma, ma, ma
이파네마 만세
Domingo é o fino-da-bossa
일요일엔 최고의 보사노바
Segunda-feira está na fossa
월요일엔 블루스
Terça-feira vai à roça
화요일엔 전원으로 나가자
Porém
하지만!
O monumento é bem moderno
기념비는 꽤 현대적이네
Não disse nada do modelo do meu terno
내 옷의 디자인에 대해선 아무 말 하지 말게
Que tudo mais vá pro inferno, meu bem
다른 모든 것은 지옥에나 가, 제발!
Que tudo mais vá pro inferno, meu bem
다른 모든 것은 지옥에나 가, 제발!
Viva a banda, da, da
밴드 만세!
Carmen Miranda, da, da, da, da
카르멘 미란다 만세!
Viva a banda, da, da
밴드 만세!
Carmen Miranda, da, da, da, da
카르멘 미란다 만세!
이 곡의 가사는 이 책에 실려 있고, 저자가 직접 번역한 것이다.(일부 가사는 내가 번역을 수정했다.) 근대화의 상징으로 행정수도 브라질리아가 건설되고 기념비가 세워졌지만, 그 이면에서는 한 아이가 죽어가는 모습을 통해 정권이 추진한 근대화 작업의 어두운 면을 풍자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물라토(백인과 흑인의 혼혈) 소녀, 이라세마, 이파네마 등 브라질을 대표하는 인종, 자연환경, 고전 등을 나열하며 브라질적인 것을 칭송하는 노래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