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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온도 - 지극히 소소하지만 너무나도 따스한 이덕무의 위로
이덕무 지음, 한정주 엮음 / 다산초당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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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장의 온도. 최근에 베스트셀러가 된 에세이집 『언어의 온도』를 벤치마킹한 듯한 제목이다. 제목만 들으면 젊은 작가의 에세이집 같지만, 사실 이 책은 조선의 실학자 이덕무(1741~1793)의 글을 모은 문집이다. 하얀 바탕에 노란 복숭아 하나가 놓여 있는 산뜻한 표지도 조선시대 문인의 문집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책 소개 플랫폼 '소행성 책방'의 홍보 웹툰도 이 책을 '남의 일기를 훔쳐보는 맛이 있다.', '이덕무의 인간적인 모습이 드러나 마치 SNS 같다'며 친근한 느낌을 부각시킨다. 표지의 '지극히 소소하지만 너무나도 따스한 이덕무의 위로'라는 홍보 문구까지 보면, 출판사는 조선시대 문집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낡고 딱딱한 느낌을 지우려고 애쓴 것 같다.

 책 소개를 보고 '힐링 에세이'를 기대했는데, 그냥 조선시대 문집이잖아, 라고 느낄 수 있다. 이덕무는 실학자이고 이 책은 그가 20대 시절에 쓴 글들을 모은 것이지만, 그는 조선시대 선비다. 성리학에 얽매이지 않는 실학자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공자, 맹자와 백만 광년 떨어져 있는 사람은 아니다. 공자와 맹자의 말도 꽤 많이 인용되고, 선비답게 자기수양을 강조하는 글들이 많다. 명예와 권세에 집착하지 말라, 군자가 될 수 있도록 정진하라, 이런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이 많은데도 훈계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덕무가 자기답게, 자연스럽게 사는 삶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말똥구리는 스스로 말똥 굴리기를 좋아할 뿐 용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용 또한 여의주를 자랑하거나 뽐내면서 저 말똥구리의 말똥을 비웃지 않는다."(p. 35.)

 사람들이 보기에는 여의주가 말똥보다 훨씬 귀하다. 하지만 말똥구리는 용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말똥구리로서는 자신의 말똥이 여의주보다 못하다고 여길 이유가 없으니까. 누군가 자기보다 잘났다고 부러워하지도 않고, 자기보다 못났다고 비웃지도 않고 그저 각자의 삶을 사는 것이다. 

"걸리고 얽힌 것을 잘 운용하는 사람은 비록 천 번 제지당하거나 만 번 억압당해도 그 걸리고 얽힌 것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 또한 그 걸리고 얽힌 것에 노예가 되어 부림을 당하지도 않는다. 때에 따라 굽히기도 하고 펴기도 하면서 제각각 그 마땅함을 극진히 하면 걸리고 얽힌 것이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나의 온화한 기운 역시 손상되지 않아 자연스럽고 순조로운 경계 속에서 움직일 수 있다."(p. 276.)

 세상에는 우리 자신을 제약하는 것들이 너무 많고, 때로는 우리 자신조차 자기검열을 한다. 그러나 유연하게 상황을 받아들이면서 자유롭게, 자연스럽게 살아가려고 애쓴다면 자신다운 모습을 잃지 않고,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도덕적 수양을 강조해도 훈계로 느껴지지 않는 또 한 가지 이유는, 그가 솔직하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도 음덕을 베풀지 못하지만 마땅히 하려고 하고, 자신도 다른 사람의 잘못과 실수를 언급하지만 마땅히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솔직히 인정한다.(p. 351.) 그리고 겨울날 집에 있던 책들을 이불 위에 펼쳐 추위를 막았다는 등, 자신의 가난한 처지도 솔직하게 드러낸다. 

"우산이 떨어져 우뢰를 맞으며 깁고, ...새들을 문하생으로 삼고, 구름을 벗 삼아 산다. 세상 사람들은 이와 같은 형암(이덕무의 호)의 생활을 두고 '편안한 삶'이라고 한다. 우습고 또 우습구나!(p. 265.)

 안빈낙도하려고 애쓰면서도 가난한 삶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는 것도 인정하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가난에 시달리며 살아간 데다, 서얼 출신이라는 신분의 한계 때문에 자기 재주와 역량을 마음껏 펼치지 못했다. 그는 『논어』 속의 온화하고 기쁜 글을 읽으면서 거칠고 추한 마음을 없애고 평온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공자가 아니었다면 내가 거의 발광해 달아나 버렸을 것이다."(p. 273.) 자기 가능성을 펼칠 기회가 없어 답답한 마음을 책으로 달래는 모습에 깊이 공감했다. 

  그리고 조선의 유학자라는 시대적, 사상적 경계를 넘어 내가 그에게 공감할 수 있던 것은 책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는 책을 2만 권이나 읽었다고 한다. 요즘처럼 공공도서관도 없었지만 그는 온갖 서적을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책을 빌려서 읽었다. 살면서 읽은 책이 아직 천 권도 안 되는 나는 그에 비하면 "단지 마시고 먹고 잠이나 자는" 사람이지만, 책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와 같다. 누군가에게서 온갖 훈계를 들어도 "감히 말씀하신 대로 따르지 않겠습니까."라고 순순히 받아들이던 그가, "서책에 대한 기호를 버려야 한다."는 말에 "서책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하라는 말입니까?"라고 정색을 한다. 그리고 눈병이 나도 책을 하루도 떠나보낼 수 없다고 말한다. 사방이 막혀 있는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그의 모습이 나와 겹쳐 보였다. 

  이덕무가 "수고했어, 오늘도", "괜찮아, 잘될 거야" 라고 직접적으로 위로하지는 않는다. 표지에서는 위로라고 했는데 훈계만 많은데?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난하고 가능성이 막혀 버린 삶 속에서도 끊임없이 책을 읽고 글을 썼던 그의 모습, 솔직하고 자유롭게, 자연스럽게 살아가려 했던 그의 모습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그렇게 우리는 2백여 년 전 조선 선비 이덕무에게 공감하고, 우리 자신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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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의 정치 민음 생각 1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지음, 김남우 외 옮김 / 민음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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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판인 여러분, 저는 이 책을 통해 키케로가 저를 설득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이 책의 저자이자 로마의 정치가인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연설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누구보다 능했던 사람입니다. 연설의 수천 년 역사 속에서 연설의 전범(典範)을 만든 사람입니다. 그런 그의 연설 중에서도 가장 설득력 있고 감동적이고 신뢰감을 주는 연설문 일곱 개를 모았는데, 설득되지 않았을 리 없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에 실린 연설 일곱 개 모두가 저를 설득하지는 못했습니다. 그의 모든 이야기에 설득되기엔 그와 저 사이의 2000여 년이라는 긴 세월과 그로 인한 사고방식의 차이가 너무나 컸습니다. 그 동안 제목만 들어 보았던 「카틸리나 탄핵 연설」은 소문대로 명문장이었습니다. 문장 하나 하나에 힘이 흘러넘쳐 수천 년 뒤의 독자인 저까지 압도했습니다. 제가 당시의 원로원 의원이나 로마 시민이었다면 , 그의 연설을 글이 아닌 육성으로 직접 들었다면 설득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시 로마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미래인으로서 저는 그의 연설에 설득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가 말하는 것만큼 카틸리나가 극악무도한 반역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카틸리나는 다만 키케로와 정치적 견해가 달랐고, 궁지에 몰려서 과격해졌던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카틸리나가 죽은 뒤에도 로마 빈민들은 부채 전액 탕감이라는 과감한 그의 공약 때문이었는지 그를 역적으로 보지 않고 그를 존경했다고 합니다. 그에 대한 우호적인 평가는 어느 정도 유지되었고 키케로조차 그가 악과 함께 미덕도 겸비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게다가 키케로는 절차와 원칙, 법을 중시하는 자신의 신념도 어기고 무리하게 카틸리나를 처형했습니다. 

 같은 이유로 「무레나 변호 연설」도 저를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무레나는 실제로 선거법을 위반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무레나를 카틸리나를 막을 수 있는 대항마이자 자신의 정책을 이을 정치적 후계자로 보았기에, 키케로는 무레나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돕게 됐습니다. 그는 무레나에 대한 탄핵에 "정도를 넘어서 경직된, 진리나 인간 본성이 감당하기에는 다소 완고하고 가혹한 원칙들이 덧붙여져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 원칙을 지키기 위해 무레나를 탄핵한 사람들의 손을 들어주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로마가 갈리아 등 외부 세력의 침입에 노출된 상태였기 때문에 그를 비롯한 로마의 지배층들이 반란에 더 민감했다는 것, 그가 로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지켜야 했다는 것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자신의 원칙까지 어겨가며 누군가를 탄핵하거나 변호하는 것이 정당성 있는 행동이라고 설득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인정되는 절대적인 정의를 위해서 그가 한 연설들에는 설득되었습니다.  「로스키우스 변호 연설」은 아직 20대 후반이었던 그가 누구도 보호해 주지 않는 약자를 위해 했던 연설이었습니다. 로스키우스의 아버지의 재산을 노린 친척들은 아버지를 죽이고 그에게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씌웠습니다. 하지만 친척들이 당시의 최고 권력자 술라의 측근 크리소고누스의 비호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로스키우스를 변호하러 나서지 않았습니다. "충분한 변호를 제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만 그가 완전히 버림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라는 말에서 어떤 사람도 법과 정의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려는 그의 정의감과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의 변호 덕분에 로스키우스는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정작 그는 크리소고누스와 술라의 보복이 두려워 2년 동안 외국에 나가 있었다는 사실에서, 현실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낍니다. 하지만 약자를 위해 정의를 지키려는 그의 정신은 수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습니다.

 또한 독재자 안토니우스를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왕에 빗댄 「필리포스 연설(안토니우스 탄핵 연설)」도 제게 남기는 바가 있었습니다. 그는 카이사르 사후 처음에는 독재관직 폐지를 약속했지만, 점차 원로원과 민회를 무력으로 탄압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법률을 통과시키는 안토니우스의 전횡에 맞서 이 연설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안토니우스의 전횡을 막는 데 실패했고, 오히려 안토니우스가 보낸 병사들에게 살해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이 준엄한 비판은 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저런 갈채를, 특히 선동가들로 인한 경우, 늘 경멸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상류층, 중류층, 하류층, 요컨대 모두가 하나같이 갈채를 보내고, 앞서 인민의 동의를 얻곤 하던 자들이 쫓겨나는 것을 보면서, 저는 그것은 단순한 갈채가 아니라 심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대중들이 얼마나 변덕스럽고 변하기 쉬운 존재인지를 알고 있었고, 누구보다 중우정치를 두려워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도 모두가 하나같이 누군가에게 갈채를 보내거나 누군가를 쫓아내는 것은 하나의 심판이라고 인정합니다. 저는 이번 선거를 보면서 그의 말에 더욱 더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심판인 여러분, 그는  수천 년 전의 사람입니다. 노예가 있는 것도, 재판을 위해 노예가 고문을 당하는 것도 당연시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정의와 공공의 이익, 도덕적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그의 신념은 수천 년을 뛰어넘어 지금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저는 설득되었습니다.  그의 신념이 심판인 여러분들 또한 설득하기를 바라며 저는 그의 말로 제 변론을 마치려고 합니다.

"심판인 여러분, 이 나라에서 이런 잔인함을 몰아내십시오. 이 나라에서 이제 이런 잔인함을 용납하지 마십시오. ... 매 순간 잔인한 행위를 보고 듣는다면, 본성상 아무리 온순할지라도 우리는 끊임없는 고통 가운데 인간성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 것입니다." -「로스키우스 변호 연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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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 양장본
마크 해던 지음, 유은영 옮김 / 문학수첩 리틀북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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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원작, 연극 스포일러 포함

1. 이 책의 모든 장은 소수로 이루어져 있다. 1은 소수가 아니다그러므로 이 책은 1장이 아니라 2장에서 시작된다. 각 장에는 자연수인 1, 2, 3, 4...가 아니라 2, 3, 5, 7, 11... 같은 소수들이 순서대로 붙어 있다. 1장이 뜯겨 나간 건지 서점이나 도서관에 문의할 필요는 없다원래 1장은 없다.

2. 크리스토퍼는 심적으로 불안할 때 연극에서 개 소리를 내는 것과 달리 원작에서는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거나 북을 친다백색소음을 들을 때 안정을 찾기 때문이다

백색소음일정한 주파수를 가지고 특정한 청각패턴을 갖지 않는 소리. 귀에 쉽게 익숙해지기 때문에 오히려 거슬리는 주변 소음을 덮어주는 작용을  한다. 진공청소기나 공기 정화 장치의 소리, 파도 소리, 빗소리, 폭포 소리 등이 백색소음에 속한다.

3.  책 속 문장의 대부분이 연극에서는 크리스토퍼와 시오반 선생님의 나레이션과 대사로 표현된다그러므로 두 사람의 대사량은 다른 배역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4. 원작에서 은유법으로 나온 문장들이 한국판 연극에서는 직유법으로 번역되었다. ㅇㅇ은 ㅁㅁ다, 라는 문장이 ㅇㅇ 같은 ㅁㅁ, 라는 문장으로 번역된 것. 크리스토퍼는 은유법을 싫어하지만 직유법은 싫어하지 않는다은유법은 거짓말이지만 직유법은 거짓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5.  연극에서 크리스토퍼가 비를 좋아하는 이유는 엄마의 시신을 화장한 재엄마의 분자들이 비에 섞여 내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원작에서는 빗소리가 백색소음 같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해져서 비를 좋아한다.
 연극의 대사는 엄마를 화장한 일에 대한 크리스토퍼의 생각과 비 오는 날에 대한 크리스토퍼의 생각을 합치고 조금 변형시킨 것이다. 이 대사를 통해 엄마의 죽음에 지극히 담담한 반응을 보이던 크리스토퍼에게도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원작 속 문장 


그런데 우리는 엄마를 화장했다. 즉 엄마를 관 속에 넣어 태우고, 재와 연기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나는 엄마가 재가 되기까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거기에 대해 물어볼 수도 없었다. 엄마 장례식에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기는 굴뚝에서 나와 대기로 퍼졌을 것이다. 나는 이따금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한다. 하늘에 엄마의 분자들이 떠다니고, 아프리카의 구름 위로, 혹은 남극 지방, 혹은 브라질의 우림에 비가 되어 내려올 수도 있고, 어딘가에 눈이 되어 떨어질 수도 있다고.
나는 2층으로 올라가 내 방에 앉아서 거리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았다. 비가 하도 억수 같이 내려서 하얀색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이건 은유가 아니라 직유다.) 모두들 집 안에 있어서 거리에는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그 광경을 보자 이 세상의 모든 물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이 빗물은 멕시코만이나 배핀 만에 있는 바다 어딘가에서 증발해서 지금 집 앞에 내리고 있다. 그러고는 배수구로 스며들어 하수처리장으로 흘러가 깨끗해지고 나서 강을 거쳐 바다로 돌아갈 것이다.

연극 속 대사

"나 비 보는 거 좋아해요. 왜냐면 세상의 모든 물들이 다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 이 물, 그러니까 이 비는 아마 멕시코 만이랑 배핀 만에서 증발한 물일 거예요. 근데 지금은 우리 집 앞에 떨어지고 있어요. 그리고 하수구로 흘러들어가서 하수처리장에 모인 다음 정수되고 그런 다음 강으로 흘러가고 그런 다음 다시 바다로 돌아갈 거예요.
화장돼서 재가 된 엄마도, 굴뚝에서 나와 대기로 퍼졌을 거예요. 공기 중에 엄마의 분자들이 떠다니다가 구름에 섞여 비가 되어 내리는 걸 수도 있어요.”

6. 알렉산더 부인은 원작에서는 차분한 성격으로연극에서는 보다 수다스럽고 주책없는 모습으로 나온다. 


창문 모양의 바텐베르크 케이크. 겉에도 속에도 노란색이 있어 크리스토퍼는 먹지 않는다.

7. 한국판 연극에서는 알렉산더 부인이 크리스토퍼에게 주려는 것이 비스켓이라고 나온다. 원작과 웨스트엔드 버전 연극에서 알렉산더 부인이 주려고 했던 것은 케이크의 일종인 바텐베르크(Batenberg)다바텐베르크는 단면이 두 가지 색의 창문 모양인 케이크이다크리스토퍼는 노란색을 싫어하기 때문에 노란색 마지팬(제과 재료 중 하나, 케이크의 인형 장식에 쓰인다.)으로 겉을 싸고 있고 속에도 노란색이 들어있는 바텐베르크를 먹지 않는다.

8. 원작에서 언급되는 크리스토퍼의 이상행동으로는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는 것오랫동안 먹거나 마시지 않을 때가 있는 것다른 종류의 음식끼리 서로 닿으면 그 음식들을 먹지 않는 것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땅콩버터를 식탁에 쏟고 모서리까지 발라놓는다든가신발이나 호일설탕을 가스레인지로 태워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보는 것 등), 가구를 옮기는 것을 싫어하는 것 등이 있다. 연극에서도 크리스토퍼는 다른 종류의 음식끼리 서로 닿으면 그 음식들을 먹지 않는다. 이런 크리스토퍼의 습관 때문에 아빠와 엄마, 시어즈 아저씨는 곤혹스러워한다.

9. 연극에서와 달리 원작에서 크리스토퍼는 결코 멍청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크리스토퍼가 좋아하는 간식 밀키바


10. 밀키바는 화이트 초콜릿으로 만든 초코바로 크리스토퍼가 좋아하는 간식이다크리스토퍼는 밀키바를 사서 자신만의 음식 상자에 넣어둔다이 음식 상자는 아빠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원작에 나온다.



죽은 개 웰링턴을 안고 있는 크리스토퍼(전성우).



크리스토퍼의 개 샌디로 출연하는 골든 리트리버 종 강아지 샌디.


11. 한밤개에는 시어즈 부인의 개 웰링턴(제목에 나오는 개가 바로 웰링턴이다.)알렉산더 부인의 개 아이볼크리스토퍼의 개 샌디 등 세 마리의 개가 등장한다연극에서 웰링턴은 모형으로아이볼은 동그라미 모양의 조명 몇 개로샌디는 실제 골든리트리버 종의 개로 표현된다아이볼이 똥을 쌌을 때 조명은 갈색으로 변한다.(갈색은 크리스토퍼가 싫어하는 색이 중 샌디는 배우들제작진들관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12. 원작에서  아빠의 직장동료 로드리는 크리스토퍼가 음식에 넣어 먹는 빨간 식용색소(크리스토퍼는 빨간색을 좋아한다.)를 빨간 페인트라고 놀리지 않는다따라서 "빨간 페인트 먹으면 아플 텐데~?"하는 크리스토퍼의 대사도 나오지 않는다.

13. 연극에서는 크리스토퍼가 노란색과 갈색을 싫어하는 이유를 밝히지 않는다. 원작에서는 노란색은 황열병꽃가루 알러지를 일으키는 노란색 꽃소화 안 될 때 대변 속에 그대로 나오는 스위트콘을 연상시켜서갈색은 오물썩기 쉬운 목재를 연상시켜서 싫어한다고 나온다.



지하실에서 엄마가 보낸 편지들을 발견하는 크리스토퍼


14. 연극에서는 지하실에서, 원작에서는 아빠 방에서 아빠가 숨겨놓은 크리스토퍼의 사건 일지와 엄마가 보낸 편지들을 발견한다. 연극에서는 지하실을 표현하는 무대 장치의 이용이 돋보인다. 한국판 연극에서는 앙상블 배우들이 지하실과 집안의 가재도구 역할까지 한다. 

15. 연극에서는 크리스토퍼가 좋아하는 장난감 철도 세트를 설치하는 동안 엄마의 편지들이 나레이션으로 흘러나온다. 장난감 철도가 완성되고 기차가 철도 위를 달려갈 때 엄마의 편지가 끝나기 때문에 크리스토퍼와 그에게 철도 부품을 가져다주는 조연들은 타이밍을 잘 맞추어야 한다.


런던 시내에서 수많은 글자들의 홍수들을 만나고 혼란스러워하는 크리스토퍼


16. 크리스토퍼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주변의 모든 것을 본다. 주변에 있는 사물 하나하나를 보고  그대로 묘사한다낯선 장소에 있을 때 크리스토퍼는 모든 것들이 눈에 들어와컴퓨터가 동시에 너무 많은 작업을 수행할 때처럼 혼란에 빠진다그리고 그 장소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일들에 신경을 곤두세운다그렇기 때문에 크리스토퍼는 낯선 장소에 있으면 무척이나 피곤해진다연극에서는 이런 혼란스러움을 어지럽게 섞이는 글자들과 그림들소리들로 표현한다. 원작에서도 수많은 광고판의 글씨와 그림들을 지면에 삽입해  낯설고 혼잡한 런던에서 크리스토퍼가 느끼는 혼란스러움을 표현한다.

17. 크리스토퍼는 리듬이 있는 뭔가를 하면 안정을 찾는다크리스토퍼가 낯선 장소에서 혼란에 빠졌을 때 왼발오른발 번갈아서 리듬에 맞추어서 걷는 것도 안정을 찾기 위해서이다.  연극에서 크리스토퍼는 머릿속으로 시오반 선생님의 왼발, 오른발 구령을 떠올리며 안정을 찾는다.

18. 연극에서는 크리스토퍼가 토비를 언제 우리에서 꺼냈는지 정확히 나오지 않지만 책에서는 크리스토퍼가 집에 다시 들어와 여행에 필요한 물건을 챙길 때 토비를 우리에서 꺼내 외투 주머니에 넣은 것으로 나온다들고 다니기에 우리는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19. 런던에서 스윈든까지의 거리는 약 120Km, 서울에서 원주까지의 거리또는 서울에서 천안까지의 거리와 비슷하다크리스토퍼는 엄마를 찾기 위해 그 정도의 거리를 혼자 여행한 것이다.

20크리스토퍼는 노란색 커스터드 크림을 좋아하지 않지만 여행 가방에 커스터드 크림을 챙긴다.



조명과 무대장치로 표현되는 연극 속 지하철


21원작에서는 지하철 철로로 도망간 토비를 잡으러 철로에 내려갔다 열차에 치일 뻔한 크리스토퍼를 행인이 구한다그러나 크리스토퍼에게 감사 인사도 듣지 못한다연극에서는 크리스토퍼 스스로 열차가 들어오기 직전에 플랫폼으로 올라온다

22원작에서 연인과 통화하면서 지하철에서 크리스토퍼를 목격한 이야기를 하는 게이는 등장하지 않는다.

23한국판 연극에서는 원작과 달리 크리스토퍼가 혼자 엄마를 찾아 왔다고 하자 우리 아들 다 컸네.”라고 말하는 대사와 크리스토퍼가 싫어하는 노란색 머플러를 벗는 디테일을 추가하는 배우도 있다또한 원작에서 엄마가 크리스토퍼에게 노란색 반바지를 입히는 것과 달리 연극에서는 빨간색 줄무늬가 있는 회색 옷을 입힌다둘 다 노란색을 싫어하는 크리스토퍼를 위한 엄마의 배려이다.

24. 원작에서 크리스토퍼는 그 말은 내가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뜻이다.”라고 확신하며 글을 끝맺는다. 반면 연극에서 크리스토퍼는 마지막 순간에 
그 말은 내가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뜻인가요?라고 질문한다그 질문에 대한 답은 관객들의 몫이다한국판 연극의 김태형 연출은 자료조사를 하면서 영국에선 충분히 ''라는 대답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하지만 한국 실정은 아니다모 지역에서 장애인 학교를 짓는다고 했을 때 집 값 떨어진다고 시위하는 피켓에 꺼져라는 단어를 봤을 때 충격적이었다그러므로 아니넌 뭐든 걸 할 수는 없어하지만 넌 런던에 갔고 엄마를 찾았고 아빠를 용서했어그건 뭐든 도전할 수 있다는 거야그리고 너의 도전을 옆에서 지켜봐 줄게.’라고 대답할 것이다.”라고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야기했다.

그 밖에 31가지가 더 있지만 쓸 공간이 부족해 적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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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구하는 경제학 - 경제학 고전에 공동체의 행복을 묻다
조형근.김종배 지음 / 반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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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1 때 사회 시간 이후로는 경제학을 공부한 적이 없었고, 경제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GNP(국민 총생산)와 GDP(국내 총생산)도 헷갈리고 리먼 브라더스가 왜 망했는지도 모르고 있는 내 자신을 보고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나 자신의 재정 관리를 위해서라도, 지금 우리나라의 경제 정책들이 올바른 건지 제대로 시행되고 있기는 한지 알기 위해서라도 경제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작년부터 경제학 책을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경제학 공식이나 법칙을 설명하기보다는, 경제학이 실질적으로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야기해 주는 책들을 읽고 있다. 이 책 『사회를 구하는 경제학』도 그런 책이다. 이 책은 팟캐스트 방송 '김종배의 사사로운 토크'에서 사회학자 조형근 교수와 시사평론가 김종배가 진행했던 코너 '꼬투리 경제학'의 내용을 정리, 보충한 책이다. "경제라면 고등학교에서 얻은 약간의 기초 지식이 있고 잘 해야 『맨큐의 경제학』 정도를 공부했을 사람들"을 위해 썼다지만, 고등학교에서 얻은 기초 지식도 다 잊어버렸고 맨큐의 경제학은 이 책 서문을 읽고 그 존재를 알게 된 나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물론 검색의 힘이 좀 필요했지만. 

 『사회를 구하는 경제학』이라는 제목대로 이 책에 소개되는 경제학자들이 고민했던 것은 경제학이 사회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 경제학이 인간의 삶에 어떻게 접목되어야 하는가, 였다.  자본가들은 이들 경제학자들이 쓴 경제학 고전마저 거대 자본과 시장 논리를 옹호하는 근거로 이용하고 있고, 지금의 주류 경제학은 거대 자본과 시장 논리에 치우쳐져 실제 인간의 삶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이 책은 거기에 맞서 말한다. 경제학의 기초를 다진 이들 경제학자들이 고민한 것은 인간의 경제 현실이었다고. 경제학의 지향점은 결국 인간이어야 한다고.

 이 책은 애덤 스미스에서 마르크스, 케인즈, 슘페터까지 경제학의 기초를 다진 경제학자 여덟 명의 이론 중에서도 우리의 현실 경제 문제와 맞닿아 있는 부분들을 살펴보고 있다. 타인과 상생하며 사는 삶을 중시했던 애덤 스미스, 노동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고민했던 마르크스, 협동조합에서 서로를 돕는 선물경제의 가능성을 본 마르셀 모스 등의 모습을 통해, 이들 경제학자들이 생각했던 경제학의 토대이자 지향점은 결국 인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의 경제 현실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고민한 결과가 그들의 경제학 이론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고민과 대안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지금의 자본주의의 한계를 넘어 우리의 경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가볍지 않지만, 주제를 다루는 방식은 딱딱하지 않다. 평범한 생활인의 눈높이에 맞춘 김종배의 질문과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알찬 조형근 교수의 대답을 통해 이들 경제학자의 이론을 즐겁게 배울 수 있다. 애덤 스미스를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칭송하면서, 정작 그의 이론 중 타인과 약자를 배려하는 도덕 원칙은 무시하는 재벌들을 "경제학의 패륜아들"이라고 하고,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개신교가 경제 발전에 유리하다는 취지로 오용하는 사람들에게 "베버의 책을 안 읽은 티가 확 난다"고 말하는, 이들의 거침 없는 입담은 읽는 사람의 속을 시원하게 만든다. 평생 마르크스를 경제적으로 지원했던 엥겔스의 우정과, 화려한 연애 경력 끝에 정착한 아내를 향한 케인즈의 순애보 등 경제학자들의 숨겨진 개인사 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경제학이 숫자와 공식이 아닌 우리의 현실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사람을 위한 경제학은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삶을,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각 챕터 끝에는 더 읽을거리들의 목록이 있는데, 여기에 있는 책들을 통해 각 학자들에 대해 더 깊이 공부할 수 있다.  유튜브에 '꼬투리 경제학' 10강이 모두 올라와 있는데, 실제 방송된 내용과 책의 내용을 비교하면서 어떻게 수정되고 보완되었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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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和! 일본 - 응집하는 일본인의 의식구조 해부
성호철 지음 / 나남출판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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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일본인의 의식 구조를 본심인 '혼네'와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인 '다테마에'로 설명한다. 일본인은 겉과 속이 다른 민족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설명에서 벗어나 일본을 '눈이 지배하는 사회'로 정의한다. '눈이 지배하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저자는 일본인이 세계를 '안'과 '밖'으로 나눈다고 말한다. 밖은 자신과 무관한 세상이기에 어떤 무례를 저질러도 자신이 속한 안에서 이를 용인하면 괜찮다. 하지만 안은 와(和), 즉 다른 이들과의 조화를 지향하는 세계이고, 와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안의 구성원들 하나 하나는 서로를 감시하는 눈이 된다. 안의 세계의 모든 구성원은 남을 바라보는 시선이자 남의 시선의 대상이다. 이 시선들은 와의 질서를 깨는 이를 찾아 그들을 와의 세계에서 배제한다. 서로를 감시하는 안의 시선은 구성원 개인의 주관적인 시선이 아닌, 그 집단의 입장에서 보는 시선이다. 자신의 입장이 아닌 다른 주체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는 시선을 메센(目線)이라고 하는데, 일본인들은 자신이 속한 세계의 메센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안의 세계에서 한 번 정해진 메센은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하고, 그에 대한 반대 의견을 말하지 않아야 배제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일본인들은 다른 구성원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메센에 어긋나지 않도록 개인의 욕망을 억제한다. 눈 때문에 개인의 욕망을 억제하는 극단적인 예로 2011년 여름 열사병으로 숨진 일본 노인들을 들 수 있다. 그해 동일본 대지진으로 원전 가동이 중단되어 정부에서 절전을 요구하자, 절전 목표 설정 지역이 아닌 곳에서도 에어컨과 선풍기를 틀지 않다 열사병으로 숨지는 노인들이 생겼다. 일본인들은 노인들의 사망을 안타까워하면서도 그들의 행동을 납득했다. 전체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희생되는 것도 감내하는 것이다. 전체를 위해 구성원이 얼마든지 희생될 수 있다는 집단주의는 누구라도 그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개인적인 감정조차 안의 질서보다 우선시될 수는 없다. 고베 대지진 당시 일본인들은 가족들이 시신으로 발견되어도 그에 대한 슬픔을 표시하지 않고, 구조대원들에 대한 감사와 미안함을 표시했다. IS의 인질이 된 일본인 저널리스트 고토 겐지의 어머니는 기자회견에서 아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나라에 폐를 끼친 아들을 위해 또 나라에 폐를 끼치는 행동이라며 비난을 받았다. 심지어 나라를 위해 고토 겐지가 자살하는 편이 좋지 않겠냐고 말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또, 도서관의 어린이 코너에는 낙서가 있는 동화책이 단 한 권도 없다. 도서관의 이용자들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저자는 어린 아이들조차 어린 아이다운 성정을 누르고 안의 질서에 순응하는 모습에 숨막혀한다.  


 폐쇄적인 사회였던 일본에서 서로 갈등하다 자멸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메센이라는 기준을 세운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안의 세계의 메센을 따르기 위해 한 것이라면 어떤 행동이든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 일본 사회의 위험성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일본인은 절대적인 기준으로서의 옳고 그름의 규범에 어긋난 행위를 했을 때 죄의식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안의 세계의 메센을 어겼을 때 죄의식을 느낀다.  다른 나라와 달리 죄의식의 기준이 상대적인 것이다. 이들은 안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제강점기에 저지른 학살에 대해서 죄의식을 갖지 못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바람이 분다'의 포스터. 미야자키 하야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전투기 개발자였던 주인공이 단지 열심히 시대에 따라 살아갔다고 말했지만, 그가 만든 무기가 전쟁에서 한 역할을 생각하면 그도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이 책은 일본 안의 세계에는 일본 국민들 스스로를 진정한 전쟁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메센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일본 내 보수와 진보를 가릴 것 없이 일본인이 피해자라는 안의 메센을 따르는 일본인들의 모습은 우리의 마음을 답답하게 한다.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하는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무기 개발자들도 자기가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하는 '바람이 분다' 같은 애니메이션을 만든 것이다. 그는 전쟁을 위한 무기를 만든 일본인들도, 군대에 간 일본인들도, 전쟁 결정을 내린 일본인들도 절대적인 악이 아니라 전승국 쪽에서 본 상대적인 악일 뿐이라고 인식한다.


 그나마 2000년 이전까지는 패전세대가 정치와 경제를 이끄는 주체였기에 침략 전쟁을 부정하고 전후 민주주의 체제를 지지하는 것이 일본의 메센이었다. 이들은 패전을 직접 경험했고 황폐해진 일본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기에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침략 전쟁을 비판하고 군국주의를 배격하며 민주주의 체제를 지지하는 아사히신문의 태도, 즉 아사히적 사고는 2000년까지 일본 사회를 이끈 메센이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정치와 경제 분야의 주체가 이후 세대로 넘어오게 되면서 반(反)아사히적 사고는 수면 위로 떠올라 아사히적 사고와 부딪치게 되었다. 역사에 대한 반성을 자학이라고 하면서 일본의 잘못을 부정하는 반(反)아사히적 사고가 메센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무조건 적대적인 태도로 대하기보다는 일본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그들과의 화(和, 조화)를 지키자는 신숙주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혼네'와 '다테마에'라는 공식에서 벗어나 일본을 '눈이 지배하는 사회'로 보고, 일본 안의 '시선을 의식하는 문화'가 일본 안팎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까지 살펴보는 저자의 분석은 날카롭고 치밀하다. 최근에 나온 책답게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같은 최근의 소설부터 '나루토', '프리큐어' 같은 인기 애니메이션, '한자와 나오키' 같은 최근의 인기 드라마까지 분석의 예로 들어,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면서 더 쉽게 일본 사회의 구조와 질서를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다만 일본에서의 패전 이후 세대의 아사히에 대한 공격과 한국 네티즌들의 조선일보 비판을 단순비교한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네티즌들의 조선일보 비판을 아사히에 대한 일본 네티즌들의 공격과 같은, 기존 질서를 상징하는 권력 언론기관에 대한 '화풀이'로 치부한다. 네티즌들에게는 이들 언론사에 대항하는 것 자체가 '본인이 깨어 있음을 증명한다'고 믿는 경향이 없잖아 있다는 것이다. 군국주의에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아사히신문에 대한 공격과 민주주의 질서를 지키려는 행동조차 매도하는 조선일보에 대한 비판을 같은 선에 두고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조선일보에 몸 담은 사람으로서 어쩔 수 없었다 해도, 이 책의 가장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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